프랑스어: Le sacre du printemps
러시아어: Весна священная
영어: The Rite of Spring
러시아 출신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전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고, 초연 때 청중들의 난리법석(...)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은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노이즈 마케팅 물론 제목만 보면 비발디 '사계'의 '봄'이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같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1 개요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로 꼽히는 곡들 중에 전작들인 '불새(1910)' 나 '페트루슈카(1911)' 도 러시아 민화를 소재로 하고 러시아 전통음악 요소들을 자신의 전위적인 면모와 적절히 조합해 기존 음악에 길들여져 있었던 청중들의 귀에도 어느 정도 잘받는 편이었다. 하지만 1913년 발표한 이 작품은 좀 많이 달랐다.
말년에 출간된 자서전에 의하면 이미 '불새' 의 작곡을 마무리할 무렵에 창작 동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꿈에서 매우 추상적인 형태의 원시 종교 제전을 보고 이것을 발레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다만 실제 작곡에 들어간 시기는 '페트루슈카' 를 완성한 뒤에 가서였다. 전작인 두 발레와 마찬가지로 당시 스트라빈스키와 호흡을 맞추고 있던 발레단인 '발레 뤼스' 의 단장이자 흥행주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도 창작과 초연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2 곡의 형태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며, 그 때까지의 스트라빈스키 발레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표제는 프랑스어로 기입되어 있다.
1부: 대지에 대한 찬양 (Première Partie: L'adoration de la Terre)
서주 (Introduction)
봄의 태동: 젊은 여자들의 춤 (Les Augures Printaniers: Danses des Adolescentes)
유괴 의식 (Jeu du Rapt)
봄의 윤무 (Rondes Printanières)
적대하는 두 부족의 의식 (Jeux des Cités Rivales)
현자의 행렬 (Cortège du Sage)
대지에 대한 찬양 (Adoration de la Terre)
대지의 춤 (Danse de la Terre)
2부: 희생제 (Seconde Partie: Le Sacrifice)
서주 (Introduction)
젊은 여자들의 신비한 모임 (Cercles Mystérieux des Adolescentes)
선택받은 여자에 대한 찬미 (Glorification de l'Élue)
조상에 대한 초혼 (Evocation des Ancêtres)
조상에 대한 의식 (Action Rituelle des Ancêtres)
신성한 춤 (Danse Sacrale)
물론 이 발레도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하지 않고는 있지만, 매우 추상적이고 몽환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줄거리와 거기에 걸맞는 음악적인 파격이 더해져 있다.
저마다 다른 리듬형이나 조성이 복잡하게 얽히는 복리듬(Polyrhythm)이나 복조성(Polytonality), 단음정이나 증음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겹치게 만들어 노골적인 부딪힘을 얻는 불협화음(Dissonance) 등이 전위적인 느낌을 조성하는 핵심적인 작곡 기법인데, 물론 이런 요소들이 스트라빈스키 시대에 갑자기 등장했다거나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조성감을 뚜렷하게 유지하면서 양념처럼 넣어 텐션 조절에 쓰였던 예전의 용법과 달리, 이 곡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오히려 주를 이루고 있어서 명확한 조성감도, 그렇다고 규칙적인 박절법이나 리듬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게 꾸며져 있다. 이 때문에 당대 안무가들은 여기에 안무를 어떻게 짜넣어야 하는지 미친듯이 고민해야 했고, 관현악단도 너무 자주 바뀌는 박자나 강세, 빠르기에 갈짓자 걸음을 걷는 경우도 허다했다.
3 악기 편성
관현악 편성도 기존 발레에 동원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큰데, 다음과 같다;
목관: 피콜로, 플루트 3(3번 주자는 피콜로를 겸함), 알토플루트[1], 오보에4(4번 주자는 코랑글레를 겸함), 코랑글레, 피콜로클라리넷(D), 피콜로클라리넷(E플랫), 클라리넷(A플랫)3(3번 주자는 베이스클라리넷을 겸함), 클라리넷(B플랫)3(3번 주자는 베이스클라리넷을 겸함), 베이스클라리넷2, 바순4(4번 주자는 콘트라바순을 겸함), 콘트라바순
금관: 호른8(7, 8번 주자는 테너 바그너 튜바를 겸함), 피콜로트럼펫(D), 트럼펫(C)4(4번 주자는 베이스트럼펫(E플랫)을 겸함), 트롬본2, 베이스 트롬본1, 베이스 튜바2
타악기: 팀파니5(연주자 2명), 큰북, 탐탐, 트라이앵글, 심벌즈, 앤틱 심벌즈, 탬버린, 기로
현악기: 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발레 음악 치고는 거의 바그너 오페라에나 쓰임직한 5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을 구사한 것도 중요한데, 단순히 크기만 크게 뿔린 것도 아니고 특수한 관악기들을 대거 투입하고 현악 파트도 기존의 5분할 이상으로 잘게 쪼개거나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 같이 당대에는 찬밥 신세였던 악기들을 독주 혹은 중주로 구사하는 등 의외로 섬세하고 정밀한 면모를 볼 수 있다.
물론 연주 난이도도 당대의 어떠한 관현악 작품들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었고, 특히 1부의 서주 첫머리에 나오는 바순의 고음역 솔로는 지금도 관현악단에서 바순 주자를 뽑을 때 꽤 자주 과제로 내놓을 정도[2]로 숙련된 기교를 요한다. 워낙 편성이 큰 탓에, 초연 후 발레로 상연되기 보다는 무용을 생략하고 관현악 연주회의 레퍼토리로 공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휘자에게도 꽤 도전적인 레퍼토리인데, 현대음악 쪽에 특화된 지휘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기존 곡처럼 지휘자가 자기 재량으로 곡을 연주시켰다가는 곡의 색깔을 죄다 망쳐놓는 일이 다반사라서, 가능한한 악보의 지시에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이 곡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대음악의 일반적인 성격을 미리 보여준 곡으로도 평가받는다.
여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작품들처럼 초연 후인 1921년과 1943년 두 차례 개정한 판본을 내놓았는데, 각 판본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은 없고 세부적인 면을 주로 수정한 정도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1913년 초연판.[3] 이외에도 피아노 두 대를 위한 축약형 편곡판이 존재한다.
4 공연 준비
스트라빈스키는 꽤 구체적인 줄거리와 세부 사항을 미리 결정해놓은 모양이었는데, 원시적인 소재를 주로 그리고 있던 화가 니콜라스 뢰리히에게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맡기고 '페트루슈카' 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었던 희대의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에게 안무를 맡겼다.
하지만 막상 스트라빈스키가 내민 악보를 받아든 니진스키는, 평소 해왔던 곡들보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거절할 뻔했다고 한다. 결국 비교적 규칙적인 박자와 템포에 맞춰 안무를 짜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거친 폭력과 성적인 요소를 더한 상당히 '날것의' 춤을 무용수들에게 요구했다.
곡이 어려워서 힘들어했던 것은 무용 쪽 뿐 아니라 연주를 담당하는 관현악 쪽도 마찬가지였는데, 섭외된 지휘자인 피에르 몽퇴는 평소에 한두 번 연습하고 공연에 임했던 발레나 오페라 반주 관현악 리허설의 관례를 깨고 열여섯 번의 강도높은 리허설을 행했다. 물론 이렇게 빡센 연습량과 강도는 무용단이었던 발레 뤼스도 마찬가지였고, 적어도 초연 직전까지는 모든 준비가 차질없이 행해질 수 있었다.
5 초연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에서 묘사된 '봄의 제전' 초연)
그렇게 해서 1913년 5월 29일에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첫 상연이 행해졌는데, '불새' 나 '페트루슈카' 에서 보여준 스트라빈스키의 절충적인 면모를 기대한 청중들의 바람을 제대로 역행했다. 바순이 극단적으로 높은 음역에서 연주하는 솔로로 시작하는 서주 부분부터 청중석에서는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 가락을 코랑글레가 받을 즈음에는 대놓고 욕설과 비난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공연은 계속되었고, '봄의 태동: 젊은 여자들의 춤' 에서 현악기와 호른의 거친 8비트 리듬이 들려올 즈음에는 고함과 야유가 크게 터져나오다 못해 야유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곡을 옹호하는 몇몇 청중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시끄럽다고 짜증내는 청중들 사이의 멱살잡이와 주먹다짐까지 있었다(...).
무대 뒤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안무가 니진스키는 무용수들에게 박자를 맞춰주게 하려고 러시아어로 숫자를 고함쳐가며 지시했다. 디아길레프는 조명 스탭에게 청중들의 혼란을 진정시키라며 조명을 깜빡깜빡거리라고 했는데, 오히려 청중들의 관심만 더 끌 뿐이었다. 그럼에도 몽퇴는 계속 지휘봉을 휘둘렀고, 악단도 무용단도 청중석의 혼란을 완벽히 무시하고 공연을 진행했다.
상황이 거의 폭동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한 극장 관계자들은 경찰을 불렀는데, 경찰들도 1부가 끝나고 나서야 극장에 출동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찌 됐건 첫 공연은 큰 중단 없이 마무리되었고, 다음 날 신문지상에는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한 엄청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생상스 같은 고명한 원로 작곡가들도 스트라빈스키가 음악 공부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대놓고 질타했고,[4] 후속 공연 일정을 취소하라는 협박조의 투서도 행해졌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주요 스탭들은 전혀 꿈쩍이지 않고 예정된 나머지 5일 동안의 공연을 속행했고, 청중들도 첫날과 달리 안정적으로 관람했다. 그래도 언론에서는 엇갈린 비평이 쏟아져 나왔고, 그 뒤로 유럽 각지와 미국에서 연주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6 공연 이후
물론 2차대전 후에는 이 곡도 그냥 좀 터프한 곡 아니면 별로인 곡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다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거나 없는 이들에게 이 곡을 들려주면 아직도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무용 쪽에서도 정통 발레를 주로 공연하는 발레단 보다는 여러 실험적인 동작이나 연기, 무대 디자인으로 전위적인 면모를 추구하는 모던 댄스 그룹에서 더 자주 상연하는 편이다.
클래식 애호가도 전문 무용수도 아닌 뒷골목의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곡을 들려주고 춤을 추게 해 현대무용 공연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으며, 2003년에 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안무가 로이스턴 말둠이 이 방법으로 야외 공연을 해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에도 레퍼토리를 매년 바꿔가며 계속 진행하고 있다.[5]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외에도 니진스키가 보여준 안무를 복원하는 움직임도 1980년대 후반 들어 진행되고 있는데, 다만 공연 당시의 사진이나 무용단 소속 생존 무용수들의 증언 등의 단편적인 자료로만 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안무가 개개인의 재해석이나 보완이 곁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는 곡의 전위성에 안무가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한껏 끌어올려 무용수가 변기통을 붙잡고 구토를 하는 등의(...) 행위예술에 가까운 안무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7 그 외
- 곡에 대한 여론이 긍정적인 쪽으로 돌아선 1940년대에 월트 디즈니가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킨다는 취지로 만든 환타지아에도 이 곡이 축약본 형태로 들어갔다.
- 초연 후 각지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관현악단들은 여전히 너무 자주 바뀌는 박자 때문에 수도 없이 실수를 하고 있었다. 특히 보수적인 악단이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연주에 어려움을 겪었다.결국 스트라빈스키가 정한 거의 모든 변박을 싸그리 무시하고 특정 박자를 기본박으로 잡아 아예 새로 악보를 만들어내 가까스로 공연을 성사시켰다.
- 2차대전 후 클래식 음악계를 주무른 대가들 중 한 사람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이 곡만큼은 제대로 공연해내기 쉽지 않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1964년에 베를린 필을 이끌고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음반을 제작했지만, 스트라빈스키는 이 녹음을 들어보고는 '너무 세련되고 매끄러워 전체적으로 실패작' 이라고 얘기했다. 스트라빈스키 사후인 1977년에 다시 한 번 베를린 필과 재녹음을 했는데, 이 때도 평은 좋지 않았다. 독일 작곡가들의 관현악곡 + 이탈리아 오페라 + 차이코프스키에서 가장 빛나는 지휘를 보여 주고, 유려한 선율과 디테일(특히 현악기군)에 강점이 있는 카라얀과 이 곡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 젊은 작곡가들이 이 곡을 듣고 자기 작풍을 수정하는 사례도 꽤 많았다. 홋카이도 태생의 일본 작곡가 이후쿠베 아키라[6]도 이 곡의 레코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고, 아르헨티나 탱고의 유명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아스토르 피아졸라도 만년의 인터뷰에서 '작곡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 이 곡의 악보를 분석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 술회했다.
- 보이저 2호에 탑재된 골든 레코드에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스트라빈스키 지휘, 1960년) 연주 버전 중 제2부 희생의 춤(Danse Sacrale) 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까지 MBC 뉴스데스크 (당시 뉴스의 현장) 시그널로 쓰였다.
- ↑ 알토플루트를 이른 시기에 관현악에 편성한 작곡가로는 이 사람과 모리스 라벨밖에 없다.
- ↑ 심지어 초연 당시 바순이 제대로 삑사리가 나 처음부터 관객들이 얼굴을 찌푸렸다고 한다. 원래 바순은 낮은음자리표를 사용할 정도로 음역대가 낮다.
- ↑ 쇼스타코비치 같은 후배 작곡가들의 경우, 스트라빈스키의 개정은 순전히 '출판사로부터 인세 뜯어먹으려고 한 생계형 개정에 불과하다' 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 ↑ 생상스는 드뷔시 정도의 인상주의 음악조차도 맘에 안들어했을 정도로 보수적인 작곡 성향을 견지했던 인물인데, 봄의 제전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을 정도였다.
드뷔시보다 더 쇼킹한 자가 있었을 줄이야... - ↑ 이 공연의 준비 과정과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Rhythm is it' 이 제작되었는데, 현대음악이나 현대무용 뿐 아니라 교육심리학 분야에서도 추천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로 손꼽힌다.
- ↑ 고지라 시리즈의 음악을 맡아 유명한 작곡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