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비오 10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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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오 10세회의 문장


1 개요

프랑스인 대주교 마르셀 르페브르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에 반발하여 설립한 전통 가톨릭 성향의 사제회이다. 단체 이름에 비오 10세의 이름이 들어간 이유는, 교회에 대한 현대화 및 자유주의화 요구에 맞서 교회가 간직해왔다고 여겨져온 '불변의 진리'를 수호하고자 했던 비오 10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성 비오 10세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라 많이 달라진 교회 안팎의 변화에 맞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통을 수호하고자 하는 단체이다. 전례에 있어서는 전례 개혁 이전의 트리엔트 전례만을 사용하며, 교리에 있어서도 공의회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이단은 아니지만, 교황청과 완전히 일치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부이나 로마 가톨릭교회의 완전한 지체는 아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성 비오 10세회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성사 등은 유효한 것이지만 불법적인 것이다.[1]

비슷한 단체로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FSSP)가 있는데, 이 단체는 1988년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의 주교 성성 이후 성 비오 10세회에서 탈퇴한 사제들이 설립한 사제회이다.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회 전통을 보전하기 위하여 그리고 전통 가톨릭 성향의 신자들을 의식하여 특별히 설립된 사제회로서 교황청과 일치되어 있는 단체다. 참고로,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는 2009년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성 비오 10세회 소속 주교들에 대한 파문 제재 철회를 환영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2 교리

성 비오 10세회의 주장을 모두 압축하여 한 마디로 제시한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통이 옳으며 다시 교회는 그 전통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점은, 이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한 주요 변화들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 점 때문에 교회 내 자유주의자들은 성 비오 10세회를 특히 싫어할 뿐만 아니라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트리엔트 전례 자체를 불온시하는 성향이 있다.

성 비오 10세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공의회들의 가르침과 교리문답을 수용한다.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을 중요시한다. 성 비오 10세회의 교리는 기본적으로 현행 가톨릭의 교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이외의 부분들에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하여 발생한 변화를 거부한다. 전례양식에 대한 것은 물론, 갈라진 그리스도교파나 다른 종교에 대한 시각변화 등을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에 기존의 교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선언이 있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목적 공의회로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리는 부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구원의 제1수단은 가톨릭 교회이며 복음 전파의 필요성이 있음을 선언하였으나, 동시에 가톨릭 교회만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라는 폐쇄성에서 한 걸음 물러나 비가톨릭에 대해서도 친화적인 시선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반대한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의된 상당수의 사항들을 부정하고, 그것이 가톨릭교회의 진정한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현행 미사개신교화된 의식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며, 라틴어 미사인 트리엔트 미사만이 옳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비오 10세회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은 거의 근본주의 뺨치는 수준으로, 한국의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포용적이고 유화적인 한국 가톨릭과는 달리 매우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다. 이 때문에 이 단체에서는 개신교는 그야말로 지옥행 급행열차를 탄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2] 또한 현행 미사의 관습들 역시 신성모독급의 행위에 준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예를 들면 손영성체를 거부한다든지.

2차 바티칸 공의회와 전례 개혁 이후, 트리엔트 미사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 트리엔트 미사 자체를 필요 이상으로 불온시하는 분위기가 가톨릭 교회 내에 있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 점에 있어서 전통주의자들이 하는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다만 성 비오 10세회 등이 원하는 것은 트리엔트 전례의 유지 그 이상이다.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은 새 전례에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물인 교회일치주의, 주교단체주의, 타 종교와의 대화, 국가[3]와 가톨릭교회의 분리에도 부정적이다. 또한 공의회의 여파로 도입된 수도생활의 '현대화'에도 부정적이다.

성 비오 10세회 출신으로 전통을 고수한다는 이들 중에 프리메이슨 음모론과 결합시켜 교황이 바꿔치기당했다는, 가톨릭 신자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며 황당한 주장까지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성 비오 10세회의 공식적인 주장도 아니며, 이들은 대부분 성 비오 10세회에서 나간 과격파들 중에 많다. 성 비오 10세회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 일단 성 비오 10세회는[4] 에큐메니즘이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해 나타난 오류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교황에게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단은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기는 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이들을 포용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교황의 동의 없이 르페브르 대주교로부터 주교로 서품받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파문을 받은 성 비오 10세회 소속 주교들에게 파문을 철회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문을 철회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으므로 여전히 유효하나 불법적이며, 따라서 교회 안에서 아무런 직책도 받을 수 없는 주교'로 남았다.

트리엔트 미사가 특별양식으로 선포되어 마음대로 봉헌할 수 있게 되고, FSSP가 존재하는 것도 이들을 포용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성 비오 10세회에 대한 가톨릭의 공식 입장은 일단 이단은 아니다라는 것이다.[5] 따라서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가 드리는 미사와 성사 역시 성사적으로는 유효하지만, 교회법적으로 불법이다. 성 비오 10세회는 지역 교구장 허가 없이 미사나 성사를 드릴 수 없다. 이처럼 유효하지만 불법적인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와 이런 미사에 참례하는 평신도는 지역 교구의 재치권[6]을 어김으로써 죄를 짓는 것이 된다.

구성원 일부는 과도한 반유대주의 입장을 취한다.[7]성 비오 10세회의 주교 중 한명이었으며[8], 베네딕토 16세가 파문을 풀어준 사람들 중 한 명인 리처드 윌러엄슨 주교는 나치 독일홀로코스트 만행에 대해서 "과장되거나 없었던 일"이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며 베네딕토 16세의 체면도 먹칠이 되었다. 사실 리처드 윌리엄슨은 본래 성공회 신자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 비오 10세회에 가입한 인물로서, 말하자면 주류 가톨릭, 곧 교황청과 완전히 일치하는 공동체에서 산 적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후에 윌리엄슨은 성 비오 10세회로부터 제명당했으며 독자적인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구성원 일부는 과도한 이슬람포비아적 입장을 취한다. 설립자인 르페브로 대주교도 생전에 "어느날 카사블랑카에 우리의 어머니, 누나, 여동생들이 납치되어 있다면 그건 이슬람교도가 한 짓일 것이다."[9]라는 말을 지상파 방송에서 했다가 벌금을 무는 사건도 있었다. 그래놓고는 이슬람권 선교를 더 부르짖었다.

구성원 일부는 정치적으로 프랑스에서 왕정복고주의자이다. 구성원들은 신학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런 입장을 이해하려면 로마 가톨릭교회프랑스 대혁명때부터 정치적으로는 세속 정부에게 탄압[10]받았고 사상적으로는 자유주의자들에게 공격받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프랑스 대혁명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와 가톨릭교회의 분리, 주교단체주의, 교회일치주의, 타 종교와의 대화 등 근대 사상의 결과물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취했으며 공화정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비록 왕정이 올바른 정치 체제이다라고 못박아두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성 비오 10세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이전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또한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와[#]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에 큰 혐오감을 보이고[#][#][#][#] 성모 발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곳 모두 가톨릭에서 정식으로 성모발현으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대다수 가톨릭 신자들이 베이사이드에 부정적인 반면 메주고리예에는 대부분 긍정적이지만 성 비오10세회는 둘다 부정적이다.


3 현황

스위스 에콘의 성 비오 10세 신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독자적으로 관구 체계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에콘에 위치한 성 비오 10세 신학교를 포함한 6곳의 신학교[11]에서 사제를 배출한다. 700여곳 이상의 성당 및 공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600여명의 사제와 100여명 이상의 수사와 100여명 이상의 수녀가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 비오 10세회의 지도를 받는 남녀 수도회들이 있다. 평신도 단체들도 지도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학교 수십 곳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스위스 에콘의 성 비오 10세 신학교

종종 교구 성직자나 은퇴한 교구 성직자가 성 비오 10세회에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탈리아 비첸차 교구의 마시모 시비체코(Massimo Sbicego) 신부나 필리핀 산 페르난도 데 라 우니온 교구의 전 교구장 살바도르 라소 라소(Salvador L. Lazo) 주교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성 비오 10세회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성 비오 10세회에 우호적인 교구 성직자나 은퇴한 교구 성직자도 있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대교구의 보좌주교인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 주교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2000년 8월, 성 비오 10세회 차원에서 대규모 로마 순례를 했다.

2015년 2월 20일~22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피정을 열었다. 피정은 김제공소에서 진행되었다. 피정에는 아시아 관구장으로 부임한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와 오노다 토마스 신부와 한국인 예비 신학생 그리고 한국의 성 비오 10세회 교우들이 참석했다.

2015년 2월, 성 비오 10세회의 지도를 받는 팡주(Fanjeaux)의 도미니코 교육 수녀회와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이 로마로 대규모 순례를 갔다왔다. [팡주의 도미니코 수녀회 학교들의 로마 순례]

2015년 9월 1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자비의 희년' 기간 동안 낙태 여성이 진심으로 속죄한다면 모든 사제에게 낙태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교서를 발표하면서 성 비오 10세회의 사제 또한 다른 가톨릭 사제와 마찬가지로 낙태죄를 사할 권한을 갖는다고 [밝혔다].

2016년 4월 2일, 바티칸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성 비오 10세회 총장상 베르나르 펠레이 주교와 비공식 환담을 [가졌다]. 이 비공식 환담에서 교황은 성 비오 10세회는 가톨릭이라고 생각하고 성 비오 10세회를 단죄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고 [한다].


4 한국에서

전례개혁에 의한 새 미사 도입 이후, 한국에서 최초로 다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한 단체가 바로 성 비오 10세회이다.

1987년부터 한국에 사제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는 1년에 1~2차례만 봉헌하던 것을 1993년부터 정기적으로 봉헌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의 유일한 합법적 트리엔트 미사 봉헌 단체임을 강조하는 [전통 라틴 전례회]의 경우, 2005년에서야 모임이 구성되었고 2007년에 이르러서야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1달에 하루 정도만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한국에서 봉헌되는 트리엔트 미사의 대부분은 성 비오 10세회에서 봉헌하는 셈이다!

성모무염시태성당에서 봉헌되는 트리엔트 미사

성 비오 10세회의 아시아관구 관할지역인 한국에서는 원래 서울 종로구 충신동 평범한 오피스 빌딩에 성당을 꾸리고 있었다. 종로구 충신동에 입주해 있었을 때에는 종종, 종로 거리에서 성체 거동이나 성모상 행렬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2012년 총장상 베르나르 펠레이주교와 교황청간의 화해를 위한 움직임이 일면서 일부 사제들과 신자들이 제명된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와 함께 성 비오 10세회 밖에서 독자적인 공동체를 꾸리기로 하자, 그 여파가 한국에도 미쳤다. 당시 프랑스인 샤자르 신부와 일본인 오노다 신부 간의 대립과 신자들 간의 대립으로 성당 물품, 부지 소유권 및 아시아 관구 담당신부에 대한 순명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공동체가 둘로 쪼개지게 된다. 그 후로는 성체 거동이나 성모상 행렬 대신 매년 절두산 성지 순례를 하고 있다.[#][#][#]

원래의 성 비오 10세회 아시아 관구에서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성모무염시태성당[12]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김제공소[13][14]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성 비오 10세회에서는 한국에 사제를 상주시키고 있지 않다. 일본인 사제 오노다 토마스 신부가 성모무염시태성당의 주임을 맡고 있고, 일본인 사제와 프랑스인 사제가 번갈아가며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성모무염시태성당에서는 대개 매월 2주차, 4주차씩 격주로 목/금/토/일요일 미사를 집전하고, 미사가 없을 때에는 공소예절이 2015년부터 신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김제공소에서도 1달에 2차례 신부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15]하고 있다. 회보로는 월간 치비타스를 발행하고 있다.[치비타스] 한국 성 비오 10세회 유튜브 계정도 운영하고 있다.

성모무염시태성당#
김제공소#

현재 성 비오 10세회에는 한국인 사제가 없다. 호주의 성 십자가 신학교에 한국인 신학생이 1명 있으며 필리핀에 한국인 예비 신학생이 3명 있다.

2014년, 한국을 관할하는 아시아 관구의 신임 관구장으로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부임했다.

2015년, 2월 17일 아시아 관구장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방한해서 2월 20일~22일 김제공소에서 있은 피정을 지도했다. 피정에는 한국인 예비 신학생도 참석했는데 그는 3월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성 십자가 신학교에 입학했다.

2015년, 11월 24일에 아시아 관구장 칼 슈텔린(Karl Stehlin) 신부가 다시 방한해서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서 있은 피정을 지도했다.


5 여담

한국에서는 처음 이들과 접하다 보면 용어에서부터 상당한 혼란을 느낀다. 용어, 기도문 등에서 주류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현대식으로 개정된 용어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인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한국에서 쓰던 천주교 용어와 기도문을 쓰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천주로, 성령을 성신[16]으로 부르는 것, 긍휼을 긍련이라고 부르는 것, 은총을 성총이라고 부르는 것 등에서 그렇다. 성서마저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발행된 구 번역 가톨릭 성서를 가장 좋게 여긴다.

한국에서 교회법적으로 합법적인 트리엔트 미사를 주관한다고 하는 [전통 라틴 전례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성 비오 10세회와 접촉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아직 성 비오 10세회가 교회법적으로 합법화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자신들이 한때 파문[17] 당했던 성 비오 10세회와 같은 성격의 단체로 보일까봐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에는 전통 라틴 전례회의 회원 중에서 개인적으로 성 비오 10세회에서 봉헌하는 트리엔트 미사에 참례한 사람이 있었고, 트리엔트 미사 봉헌 문제로 전통 라틴 전례회측에서 성 비오 10세회에 문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2012년 당시 윌리엄슨 주교파를 지지했던 사제와 신자들은 서울 연신내역 부근에 그들만의 성당을 새로 건립하였고, 이 성당은 성 비오 10세 - 마리아의 군대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성당은 2012년 윌리엄슨파가 새롭게 창립한 공동체인 마르셀 르페브르 사제회에서 운영하는 성당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셀 르페브르 사제회의 초보수적인 경향 때문인지, 그나마 원래의 가톨릭교회를 존중[18]하려는 성 비오 10세회와 달리 훨씬 배타적이다. 거의 교황공석주의 수준에 견진성사마저 새로 받아야한다.

2013년 10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외곽 동굴에서 수백 명을 학살한 나치 독일 전범 에리히 프리브케가 100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죽었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의 매장을 [거부하고][19] 교황청은 '로마 안의 가톨릭 교회는 프리브케의 장례 미사를 집전하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성 비오 10세회는 프리브케 가족들의 부탁으로 비공개로 프리브케의 장례미사를 집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프리브케의 변호사가 장례 미사가 있다는 정보를 외부에 알렸고, 장례미사 집전은 일부 알비노 주민들이 포함된 반대 시위자들의 저지로 집전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고, 고해성사로서 사적으로 참회를 했다지만 공적으로 참회를 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교황청에서는 장례 미사를 금한 것이다.

성 비오 10세회에서 유럽과 미국에서 성소자가 감소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경우가 있다. 유럽과 미국의 성소자 감소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성소자가 감소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교구 신학교에 입학하는 신학생이든 단체와 연계된 신학교에 입학하는 신학생이든, 유럽과 미국의 전체 성소자 숫자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6 관련 링크

[한국 성 비오 10세회 공식 홈페이지]
[한국 성 비오 10세회 유튜브 계정]


[오노다 신부 블로그]
  1. 교회법 상으로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가톨릭이 개신교바라보았던 시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가톨릭교인이 다수인 국가에서의 국가와 가톨릭교회의 분리
  4.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5. 창립자인 르페브르 대주교 본인 역시 자신은 별도의 교회를 만들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6.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
  7. 사실 보수 가톨릭에서 반유대주의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항상 어느 정도 있어왔다. 그러다가 교리적으로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 처형에 책임이 없음을 인정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반유대주의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알겠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부하는 집단이다 보니
  8. 2012년 10월 4일자로 성 비오 10세회에서 제명되었다.
  9.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을 무수히 납치해 팔았던 바르바리 해적 등을 염두해서 한 발언 같긴 한데, 전통적인 바르바리 해적이 이미 19세기에 소멸하였으므로 이런 말은 시대착오적이고 포비아적인 생각일 뿐이다.
  10. 로마 가톨릭교회에는 프랑스 대혁명이나 이후의 스페인 혁명 당시 순교한 성인들이 있다.
  11. 스위스의 성 비오 10세 신학교, 프랑스의 아르스의 성 비안네 신학교, 독일의 예수성심 신학교, 미국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교, 아르헨티나의 성모 마리아 신학교, 오스트레일리아의 성 십자가 신학교
  12.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55길 17, 5층(서초동 중추빌딩).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인 중추빌딩의 5층에 입주해 있다.
  13. 전북 김제시 금산면 수류7길, 97.
  14. 김제공소는 김제시에 사는 일부 가톨릭 교우들의 요청으로 2013년 9월 문을 열었다고 한다. 공소가 위치한 금산면 화율리 일대는 19세기 말부터 이어진 전북의 대표적인 천주교 신앙촌이라, 성 비오 10세회를 지지하는 신자가 있을만한 곳이다.
  15. 미사 시간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16. 90년대까지는 한국 가톨릭에서도 사용했었다. 정확히 대체된 시기는 추가바람.
  17. 2009년 1월 21일 교령을 통해 철회되었다.
  18. 원래의 가톨릭교회와 성 비오 10세회는 상대방의 성사의 유효성을 인정한다.
  19. 프리브케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아르헨티나 남부 관광명소인 바릴로체로 도망쳐(나치의 남미 도주) 40년 이상 호텔 지배인으로 살다 1995년 이탈리아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인류의 존엄에 대한 모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