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張苞
생몰년도 미상
장비의 장남, 장준의 아버지. 남동생은 장소[1](張紹), 두 여동생(경애황후와 장황후)은 유선의 아내이다.
1.1 정사
장비보다 먼저 요절했다고 하며, 장비가 죽었을 때 장포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장소가 후사를 이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연의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재창조한 관흥은 죽으니까 그 재능을 아까워해 제갈량이 슬퍼했다는 기록이라도 있지 장포는 그런거 없다. 심지어 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것 외에 알려져 있는 내용은 아들 장준이 263년 등애가 이끄는 위군이 촉을 멸망시킬 때 면죽관에서 제갈첨과 함께 싸우다 죽었다는 구절이 있다. 아버지보다 기록이 몇 배는 길다!
1.2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흰 전포를 입은 채로 이릉대전에 참전했는데, 관흥과 함께 선봉이 되기 위해 다투어 100보 밖에 깃발을 세워 붉은 칠을 한 부분을 맞췄으며, 관흥도 활 솜씨를 보이자 창으로 다투려고 했지만 유비가 말려서 두 사람을 화살을 꺾어 서로 구해주도록 하는 맹세를 하면서 관흥과 함께 각기 병사 3천명을 거느려 임금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자귀에서 손환을 공격하러 갔다가 사정과 싸워 30여합 만에 도망치게 만들거나 이이와 20여합을 싸우다가 승부가 나지 않아 담웅이 화살로 말을 맞춰 죽을 뻔 하지만 관흥이 이이를 죽이면서 구해졌으며, 다음날에는 오군의 영채를 공격해서 사정을 죽였다.
또한 관흥과 함께 각기 5천 명을 거느려 산골짜기에 매복했다가 주연의 수군이 손환을 구하러 오는 틈을 타 관흥과 함께 협공했다가 최우를 사로잡았다. 유비가 관흥과 장포를 칭찬하면서 예전에 따르던 장수들은 늙고 쓸모없다는 얘기를 하자 황충이 동오의 영채를 공격하러 가자 관흥과 함께 구하러 가서 황충을 말렸으며, 황충이 이를 듣지 않고 출진하였다가 오군에게 포위되어 어깨에 마충의 화살을 맞자 관흥과 함께 구출한다.
오나라에서 유비의 공격을 무마시키기 위해 범강, 장달을 보내자 이들을 직접 참수해 장비의 영위를 차렸다. 제갈량의 북벌 때 봉명산 전투에서 설칙을 죽이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229년에 무도, 음평을 공략하면서 이 두 군을 방어하기 위해 온 곽회와 손례를 추격하다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면서 성도로 보내졌다가 결국에는 사망했다. 교통사고를 조심하자
여담으로 "목소리가 우뢰 같다" 거나, 고함소리로 적장들을 겁주는 묘사가 있는데 이것도 유전인 것 같다.
1.3 미디어 믹스
- 장포/기타 창작물 항목 참조.
2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張布
(? ~ 264년)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2.1 정사
손휴가 낭야왕으로 있을 때부터 섬겨 좌우장독으로 있으면서 신임을 받았으며, 258년에 손침이 손량을 폐위하면서 손휴를 황제로 세우자 손휴를 도와 열심히 수고한 공으로 장수교위에서 보의장군에 임명되면서 영강후에 봉해졌다.
이후 장포는 좌장군이 되었는데 손침이 계속 권력을 잡고 있었기에 손휴는 손침을 두려워했으며, 한 번은 손침이 준 술과 고기를 손휴가 받지 않은 일이 있어 손침은 장포에게 가 술을 마셨다. 손침은 손휴를 황제로 만들어줬더니 진상품을 안 받는다면서 다른 신하와 동급으로 여긴다고 무시한다면서 본 때를 보여주겠다고 장포에게 얘기했다.
이 말을 들은 장포는 손휴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했으며, 손휴는 그를 두려워 하면서도 변고를 일으킬까봐 걱정해 여러 차례 상을 주며 손침이 역모를 꾀한다고 보고하는 자가 있으면 오히려 그 자를 손침에게 보내 처리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손침 또한 자신의 적이 많다는 것에 겁이나 맹종을 통해 무창으로 옮겨서 주둔할 것을 요청하고 손휴는 이를 허락한다. 오래 지나지 않아 손휴는 위막, 시삭 등에게서 손침이 병사들을 밖으로 옮겼으니 조만간 변이 일어난다고 보고받는다. 장포는 손휴의 부름을 받아 함께 상의하면서 정봉을 추천해 정봉은 납회에서 손침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12월 8일에 손휴가 조서를 내려 손침을 체포하면서 연회를 열어 손침을 불렀는데 손침 또한 낌세가 이상하여 오지 않자 사자 10명을 보내 억지로 불렀으며 손침의 부하가 불을 질러 그걸 끄기 위해 나가려는 것을 막아 결국 정봉과 함께 손침을 붙잡아 "유배를 보내거나 노비로 삼는 한이 있더라고 살려주세요"라고 비는 것을 비웃으며 처형한다. 9일에 간신을 토벌하도록 명령받아 잔당을 처리하고 중군독의 관직을 더했으며, 두 동생은 장돈, 장순도 관직이 주어졌다. 262년에 손휴가 복양흥과 함께 정무를 맡기게 하면서 궁궐의 부서를 주관했는데, 총애와 대우가 더욱더 두터워지자 권력을 독점해 무례한 행동을 많이 했다.
손휴가 위요, 성충 등을 불러 도덕과 육예에 관해 논의하려고 하자 자신의 단점을 꺼렸기 때문에 성실하고 솔직한 두 사람이 들어와서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과실을 발견해 전권을 휘두를 수 없게 할까봐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다. 손휴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단지 그들과 책에 대해 논할 뿐이라고 하는 조서를 받은 후에 사과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해 정사를 방해할까봐 두렵다고 했는데, 손휴는 정무와 학업이 각기 다른 흐름이 있어 방해되지 않는다고 하자 표를 바쳐 고개를 조아리면서 죄를 시인하자 손휴가 장포에게 깨우치고자 했을 뿐으로 좋은 시작을 끝까지 지키라고 하면서 손휴는 장포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의 의심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장포의 의견에 동의해 위요, 성충 등을 궁궐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264년에 손휴가 죽기 전에 만욱의 설득으로 복양흥과 함께 주부인에게 손호를 후사로 삼을 것으로 권유했으며, 손호가 즉위하자 그 공으로 8월에 표기장군과 시중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손호는 포악하거나 교만해 꺼리기 싫어하는 것이 많아져 주색을 좋아했기 때문에 복양흥과 함께 후회했으며, 만욱이 이 사실을 손호한테 알려 복양흥과 함께 광주로 유배갔다가 손호가 도중에 사람을 보내 살해된 것과 동시에 삼족이 멸족당했다.
2.2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행적은 대부분 동일하지만 손침을 토벌할 때의 기록이 조금 다른데 연회 때 정봉, 위막, 시삭 등이 밖의 일을 맡으면 장포는 안에서 호응하기로 해 다음날에 손침이 손휴의 부름을 받고 나오자 검을 뽑아들면서 무사 30명과 함께 궁전으로 와서 조서를 받들어 역적 손침을 잡는다고 외치면서 붙잡았다.
섬돌 아래로 끌고 가서 손침의 목을 베었다가 죄는 손침 한 사람에게만 있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따지지 않는다는 조서를 선포했다. 그 최후도 달라서 광주로 유배된 것이 나오지 않고, 손호에게 충고했다가 복양흥과 함께 살해되었다고 나온다.
2.3 미디어 믹스
삼국지 11 |
삼국지 13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후반기 오나라 문관다운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통솔, 무력은 쓰레기에 지력,정치도 70수준이라는 소리. 한데 손침의 목을 쳐서 그런지 손호에게 죽임을 당한 대부분이 매력이 괜찮은데 비해 장포는 매력도 낮은 편.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34/22/72/64. 능력은 별로지만 병법은 누선, 혼란, 덫으로 나름 쓸 수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32/31/70/67/17 에 특기는 상업, 반목. 상업특기가 있지만 정치가 67이라 미묘하고, 반목특기는 지력이 70으로 애매한건 둘째치고 통솔이 32인 장수를 전장에 데리고 나설 일이 있을지? 여담으로 일러스트는 무관 A처럼 생겨놓고 능력치는 저모양이다.
삼국지 11에선 매력이 대폭 상향되어 31/24/71/66/41의 능력치. 매력이 대폭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후졌고, 무력은 오히려 깎인지라 상향이긴 한데 체감상 변한건 별로...
삼국전투기에서는 전 회의 손휴의 패러디에 맞추어 DMC의 니시다 테루미치로 등장한다. 그리고 곧 카뮤로 변신하여 손침을 SALHAE했다. 손휴 사망 후 어째서인지 대장군으로 나오며 손휴의 유언대로 손완을 황제로 세우려는 복양흥에게 손완이 너무 어리고 자신들은 제갈양이나 제갈각같은 능력자가 아니라며 만욱의 추천으로 손호를 대충 황제로 세운다.- ↑ 묘하게도 오에도 동명이인이 둘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