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 이름
대한민국에서 많이 쓰이는 여성 이름 중 하나. 1948년 출생 여성 이름 순위 1위였고, 광복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출생한 여성 이름 순위에서 꾸준히 10위 안에 들 정도로 많이 쓰였다. 다만 오늘날엔 ~자로 끝나는 여성 이름 자체가 여성 이름으로 어감이 부적절하고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나쁜 이름 취급 받으며 오늘날엔 보기 드문 이름이 되었다.
일본에서 유래된 이름으로서 일본식 발음으로는 준코(順子/純子)가 된다. 괴짜가족의 준코는 한국판에서 순자로 번역된게 이상한게 아니다.
1.1 관련 동명이인
1.1.1 실존 인물
1.1.2 가상 인물
2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선왕先王[2]의 도道는 인仁의 융성함이며, 중정中正을 헤아려 행行해진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중정이라 하는가?이르기를; "예의禮義가 바로 그것이다!" 하리라.
순자荀子(BC 298 ? ~ BC 238 ?)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이름은 황(況). 경칭으로는 순경(荀卿) 또는 손경자(孫卿子)로도 불린다. 직하학파 출신으로 수차례 좨주가 되었고, 초나라 춘신군의 부름을 받아 난릉령에 임명되었으나, 춘신군이 살해당하면서 그도 파직되었다.
주자 출현 이후, 성리학의 관학화에 따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근 800년 간 순자는 이단시[3]되었으나, 오늘날 동서양의 학계가 공인하는 바, 그는 자하 이후 잊혀지다시피 했던 유가 외왕파外王派[4]의 미미한 맥을 흥기시켜 계승하고 증자-자사-맹자로 이어지는 유가 내성파內聖派[5] 및 여타 제자백가 사상 또한 비판적으로 계승한, 선진先秦 유가의 마지막 적통이자 백가의 집대성자이다. 하여 순자의 철학이 담긴 《순자》 32편은 고대 중국 철학사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여겨진다.
흔히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되는 성악설을 주장했다고 잘 알려져 있으나, 고대중국에는 근원적 악(Evil)이라는 개념[6]이 존재하지 않았다. "惡"[7]라는 글자는 노자에서 美의 반대말로 등장하는데, 그 뜻은 "추하고 더럽다", "싫다", "혐오嫌惡스럽다" 정도. 마찬가지로 맹자의 '선' 역시 '아름다움' 즉 아름다울 미와 통하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 맹자의 선은 '있을 유'(무언가 타고난 아름다움의 틀이 있다), 순자의 악(혹은 오)은 '없을 무'(타고난 아름다움의 틀이란 없다)와도 연결된다. 순자의 이론은 정확히 말해서 성오설이다.[8]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조금만 생각해봐도 사람은 선한 일을 볼때 '아름답다'는 감각을 먼저 느끼고, 악한 일을 볼때 '더럽다'는 감각을 먼저 느낀다. '저 사람 참 선하다'거나 '저 사람 참 악하다' 하는 건 그야말로 고차원적인 추상의 개념이고 아름다움과 더러움이라는 본능적 감각 뒤에 나온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성오설에 대한 순자의 대표적인 언급은 "인간의 본성은 혐오스러우며,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인위적인 결과물이다."(人之性惡,其善者僞也。)[9] 그의 이론은 인간의 본성은 배고프면 먹으려고 하고, 힘들면 쉬려고 하고, 추우면 따뜻해지려고 하는 것이므로 배고파도 가족과 나누어 먹고, 힘들어도 꾹 참고 일하는 등의 행위는 인위적인 결과이지 자연적인 본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상관없지만, 문명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본성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데, 낙후된 환경 속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인위적 윤리를 얻지 못하고 혐오스러운 본성에 따라 사는 바람에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가 왔다는 것이다.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은 현실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의 혁명론에 대한 신념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선포일 뿐이다. 이에 대해 냉철한 현실주의자인 순자는 반대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인간이 원래 혐오스러우니 막장으로 살자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다.
교육을 통해 인간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은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말한다. 인간에게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교육을 베푼다 할지라도 인간은 결코 선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맹자의 성선설 역시 인간은 선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지, 그냥 내버려둬도 선하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맹자도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선의 씨앗을 싹틔워 선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사실 따지고 보면 맹자와 순자의 '성선설'과 '성오설'은 이론적 발단의 동기에 대한 추상적 차이만 있을 뿐, 방법론적인 차이, 혹은 최종 목적의 차이는 거의 없다. 맹자나 순자나 결론은 사람은 배워야 아름다워지니까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맹자와 순자는 모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순자의 현실주의를 계승한 제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한비자, 이사 등의 법가[10]이다. 이들은 아예 인간을 형법으로만 통제하는 이론을 구성하게 되고, 결국 중국에 통일제국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는 국내에서 통용하던 법을 천하에 융통성없이 적용하는 심각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곧 파멸했지만[11], 뒤이어 등장한 한나라도, 유교를 받들면서도, 결국은 법가적 질서로 제국을 통치했다는 말이 있다.
순자를 마치 포스트모던한 매우 냉혹하고 인간미없는 인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그 또한 공자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인물이므로 도덕성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다.[12]『순자』 「군도」에 이러한 명언이 있다: "어지러운 군주는 있어도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질서를 세우는 사람은 있어도 질서를 세우는 법은 없다"(有亂君,無亂國。有治人,無治法。) 한마디로 다스리는 놈이 막장인 경우는 있어도 나라 자체가 막장인 경우는 없으며, 현명한 사람이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이지 법질서가 세상의 질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 이미 순자는 자기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법가의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법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며, 그 중요한 사람을 가르칠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백성에 대한 태도도 유교에서 얘기하는 인을 강조하고 있는데, 말이 두려움에 떨면 마차를 몰수 없듯이 관리는 백성이 정부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인으로 대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군사에 대해서도 계략등의 술책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소인의 군사들에게나 통하지 인으로 다스리는 군자의 군대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순자는 현실주의적인 유교상을 제안한 인물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자연관은 독특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맹가의 천(天)을 부정하고 기계적 자연관을 제시했다. 이는 다른 유학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으며 몇천년 뒤 유럽에서 나타난 사상과 비슷하다! 이 덕분에 묵자와 장자의 사상은 신랄하게 깠다.
여담으로, '청출어람'이라는 성어가 순자의 권학편에 나온다.
순욱이 그의 자손이라 한다.[13] 또 조조의 이름과 자는, 역시 권학편에 언급되는 '덕조(德操)'에서 취한 것이다(<삼국지 오디세이> 발췌).뭔가 위나라하고 관련이 많은 듯.
2.1 관련 인용구
군자君子는 이르기를 "학문이란 그칠 수 없는 것이다" 한다.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취한 것이되 쪽풀보다 더욱 푸르고, 얼음은 물이 변한 것이되 물보다 더욱 차갑다.
나무의 곧음이 먹줄에 들어맞더라도, 휘어서 수레바퀴를 만들면 그 굽음이 그림쇠에 들어맞으며, 비록 말라붙고 쬐이더라도 되돌아가지 않는 것은 휘어 놓은 바의 그러함 때문이다.
하여, 나무는 먹줄을 받아야 곧아지는 것이요, 쇠붙이는 숫돌을 따라야 날이 서는 것이니,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세 가지 성찰[14]을 하여야 지혜가 밝아지고 행동에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하여,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것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서보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알지 못하며, 선왕先王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간干, 월越, 이夷, 맥貉[15]의 아이들은 나서는 울음소리가 같더라도 자라서는 다른 풍속에서 사니, 교육한 바의 그러함 때문이다.
시詩에 이르기를 '아아! 그대, 군자여! 늘상 안락히 쉴 수야 없느니! 점잖게 그대 자리 다잡고, 올곧음을 좋아하면, 신명神明이 이를 듣고서, 그대의 찬란한 복福을 키우리라!' 하였다.
교화敎化의 도道보다 더 위대한 신명이 없고, 화禍가 없는 것보다 더 나은 복이 없다.
학문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가?이르노니,
그 방법으로 따진다면, 경전을 암송하기에서 시작하여 예禮를 독파하기에서 끝나고,
그 지향志向으로 따진다면, 선비가 되기에서 시작하여 성인聖人이 되기에서 끝난다.
진실하게 힘들이기를 오래하여야 성인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니,
학문이란 죽음에 이른 뒤에나 그칠 수 있는 것이다.
하여, 학문의 방법에는 끝남이 있을지라도, 그 지향은 잠시라도 버려둘 수 없다.
이를 견지하면 사람이요, 이를 버리면 금수禽獸이다.
사람의 상相을 따지는 일은 옛사람이 거들떠보지 않은 일이요, 학자學者가 말하지 않는 일이다.옛날에 고포자경姑布子卿[16]이 있었고, 지금 세상에는 양梁나라의 당거唐擧가 있어, 사람의 형상形狀과 안색顔色을 보고 그 길흉吉凶과 요상妖祥[17]을 알아, 세속에서 이를 칭송한다지만, 옛사람이 거들떠보지 않은 일이요, 학자가 말하지 않는 일이다.
하여, 형상形狀을 살피는 것은 심지心志를 논論하는 것만 못하고, 심지를 논하는 것은 술책術策을 택하는 것만 못하다. 형상은 심지를 이기지 못하고, 심지는 술책을 이기지 못한다. 술책이 바르다면야 심지는 따르기 마련이다.
곧, 형상이 비록 나쁘다 해도 심지와 술책이 좋다면 군자君子가 됨에 해害가 없는 것이요, 형상이 비록 좋다 해도 심지와 술책이 나쁘다면 소인小人이 됨에 해가 없는 것이다.
군자를 일러 길하다 하고, 소인을 일러 흉하다 한다.
때문에 장단長短[18], 소대小大[19], 선악善惡[20] 등의 형상은 길하고 흉하고가 없다.
옛사람이 거들떠보지 않은 일이요, 학자가 말하지 않는 일이다.
물과 불은 기운이 있으나 생명이 없고,풀과 나무는 생명이 있으나 지각이 없고,
날짐승과 들짐승은 지각이 있으나 의義가 없다.
허나 사람에게는 기운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지각이 있고 의 또한 있다.
때문에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어지러운 군주가 있으되,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다스리는 사람이 있으되, 다스리는 법은 없다.예羿[21]의 사법射法이 사라지지 않았으나, 예와 같은 이는 금세今世에 있지 않다.
우禹[22]의 국법國法이 아직 남아 있으나, 하夏나라는 금세에 왕천하王天下하지 않는다.
하여, 법은 홀로 설 수 없고, 사회는 스스로 펴 나갈 수 없다.
그 인재를 얻으면 곧 존속되고, 그 인재를 잃으면 곧 스러진다.
하늘의 운행에는 상도常道가 있다.요堯[23]로 인하여 존속되는 것이 아니요, 걸桀[24]로 인하여 스러지는 것이 아니다.
응하기를 다스림으로써 하면 길吉하고, 응하기를 어지럽힘으로써 하면 흉凶하다.
근본[25]을 튼튼히 하고, 씀씀이를 절제하면, 하늘일지라도 빈궁케 할 수 없다.
양성하고, 대비하며, 시의적절히 움직이면, 하늘일지라도 병들게 할 수 없다
도道에 진력하되, 우왕좌왕하지 않으면, 하늘일지라도 화禍를 입힐 수 없다.
인성人性은 악惡하며, 그 선善이란 것은 위僞[26]이다.지금, 인성이란,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함이 있음이니,
이를 곧대로 따른 결과, 쟁탈이 생겨나고 사양辭讓은 스러지는 것이다.
날 때부터 질투하고 미워함이 있음이니,
이를 곧대로 따른 결과, 잔적殘賊이 생겨나고 충신忠信은 스러지는 것이다.
날 때부터 귀, 눈의 욕망이 있어, 흥겨운 소리와 아름다운 빛깔을 좋아함이 있음이니,
이를 곧대로 따른 결과, 음란이 생겨나고 예의문리禮義文理는 스러지는 것이다.
예禮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이르노니,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이 있으므로 욕망하면서도 얻지 못하면 구함이 없을 수 없게 된다.
구함에 정도, 정량, 분수, 한계가 없다면 다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투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궁해진다.
선왕先王이 그 어지러움을 싫어한 까닭에 예의禮義를 제정해 그것을 분별케 하고,
이로써 사람의 욕망을 보살피고, 사람의 구하는 바를 공급했던 것이다.
이에 욕망은 반드시 물자에 궁해지지 않도록 하고, 물자는 반드시 욕망에 부족하지 않도록 하여
양자가 서로에게 기대며 성장케 하였다.
이것이 예의 기원 되는 바이다.
그런대로 선왕先王을 본받기는 하나 그 정통은 알지 못한다.그러면서도 기질은 열렬하고, 뜻은 웅대하며, 견문은 가지가지로 넓다.
옛날 옛적의 일을 참고하여 학설을 날조하고는 「오행五行」[27]이라 일컫는데, 지극히 편벽되고 어긋나 유례가 없고, 그윽히 가려져 있는데 설명이 없으며, 닫히고 맺혀 있는데 해명이 없다.
참고해 꾸며낸 그 말을 삼가 공경하며 이르기를 "이는 진실로 선군자先君子의 말이다" 한다.
자사子思가 이를 제창하고, 맹가孟軻가 이에 화합[28]하였다.
세속의 미련하고 우유부단하며 우매한 유자儒者은 왁자지껄하면서도 그 그릇된 바는 알지 못하여, 끝내는 그것을 수용하고 전승하며 중니仲尼와 자유子遊[29]가 이로써 후세에 후한 평가를 얻는 줄로 여긴다.
이는 곧 자사와 맹가의 죄이다.
들어와서 효성스럽고 나가서 공손함은 사람의 작은 행실이다.위를 대하여 유순하고 아래를 대하여 돈독함은 사람의 중간 가는 행실이다.
도道를 따르되 군주를 따르지 아니하고 의義를 따르되 아버지를 따르지 아니함은 사람의 큰 행실이다.
하늘이 백성을 낳은 것은 군주를 위함이 아니나, 하늘이 군주를 세운 것은 백성을 위함이다.
3 서적
순자의 사상을 기록한 책이다. 위 항목에서 언급했듯이 제자백가 철학 전체를 망라하여 선진 사상계의 대단원을 장식한 명저지만, 오늘날 한국에 번역된 《순자》 중 양질의 것은 고사하고 완역본조차 찾기 힘드니 참 안습한 일(...). 김학주 교수 역 을유문화사 《순자》, 신동준 씨 저 인간사랑 《순자론》이 완역본이긴 하나, 전자는 김학주 교수의 여타 번역서와 비교하면 의아할 만큼 질이 떨어진다. 오역은 기본[30]이고 번역된 한글의 철자도 틀리[31]기 일쑤.[32] 후자는 그런대로 원문의 본의와 맞기는 하나, 한자어를 그냥 음역한 부분이 많아 일반인이 보기엔 어렵다. 또한 오탈자와 해석문 누락도 종종 있는 편. 그리고 해설 지문에 " ~이/가 아닐 수 없다" 이중부정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이외에 16편씩 1,2권으로 분권하여 한길사에서 출판한 이운구 역 완역본도 있다. 이쪽도 오역과 의역들은 피할 수 없으나 위의 두 종에 비하면 양호해 보인다.- ↑ 우측 상단에 전국시초난릉령순황戰國時楚蘭陵令荀況이라 쓰여져 있는데, 이는 전국시대 초나라 난릉 지방의 수령, 순황이라는 뜻이다.
- ↑ 여기서 선왕先王이란 단순히 선대의 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선대의 문화 영웅(Culture Hero)들, 즉 성왕聖王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 ↑ 약간의 비약으로 쉽게 말하자면 메인 철학자가 천년도 넘게 지난 뒤 후세의 주자 때문에 쩌리철학자가 되었다는 뜻.
- ↑ 밖으로 왕자王者가 되는 데 중점을 둔 학파.
- ↑ 안으로 성인聖人이 되는 데 중점을 둔 학파.
- ↑ 절대악이란 개념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만 있다
- ↑ 흔히 말하는 악할 악 이외에도 "미워할 오"라고 읽을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더럽고 추하다는 개념도 포함하고 있던 단어이다.
- ↑ 사실 '조악粗惡하다'의 뜻으로 해석하면 그만이므로, 성악설이라는 명칭이 자체부터 틀린 말은 아니다. 뜻이 다르다는게 중요한 거지 발음이 다르다는 것에 중요함을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 괜히 잘난 척 한다고 주변에 "이봐, 순자는 '성악'을 말하지 않았어. 그의 주장은 정확히는 '성오설'이라규!"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학계에서 도올 외에는 그냥 다 성악이라 지칭하는 편이다.
- ↑ 여기서 僞는 "거짓"이 아니라 人爲를 합친 것.
- ↑ 물론 후술된 대로 법가는 도가의 영향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유가에서 독립한 정통 후계 학파 정도로 볼 수는 없다. 여러 사상을 합쳐 새로운 방향을 찾은 학파라 봐야 한다.
- ↑ 사실 관점에 따라 진나라도 그렇게 법가의 사상을 충실히 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분서갱유처럼 책을 태우고 선비들을 학살한 사건은 '백성의 앎(공부, 지식)이란 군주(혹은 국가)의 독'이라고 한 도가의 주장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법가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모든 백성을 포함해 왕조차 예외없이 법 아래에 둬야 하는 원칙, 즉 왕도 법을 따라야 하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해 진시황이나 그 후 황제들 모두 백성들에게나 엄할 뿐 자신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법가를 백성에 대한 일방적이고 엄한 압박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 오해다. 이는 추후 서양철학사에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왜곡과도 비슷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오히려 백성들에게 도덕적으로 보이는 방향에서 다방면으로 행동하라는 의미)을 가리지 않아야한다고 했다고 한다.
- ↑ 사실 주자가 맹자를 연구하기 전에는 순자가 공자의 직계 후계자 중 한 명으로 인식되었었다. 고등학교 윤리과목 문제에서 드물게 나오는 지문으로 그(순자)는 공자의 직계 후계자로 불렸으나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입장을 부정했기 때문에...(아니 사실 공자는 성선설같은 거에 관심도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공자는 선천적인 무언가보다는 교육, 학습, 수신 등과 같은 후천적인 것에 지배적인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규정을 내린 적이 없다. 공자가 성선설을 내세웠다는 것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수준의 카더라 통신 수준이고, 최소한 유학은 맹자에 이르기까지 성선설이 주장된 적은 없었다. 심지어 순자의 성악설과 대비되어 얘기되는 맹자 역시 '절대적 성선설'을 내세운 적이 없었다. 그는 "측은지심은 인의 단초"라 하였다. 즉 누구나 자연스럽게 느끼는 측은한 마음은 유가 삼대 덕목의 하나인 인(仁)의 단초이니 누구나 다 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누구나 완성된 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맹자 본인이 스스로 말하기를, "그 정情(감정感情의 의미가 아니다. 실정實情(=실태實態, 실상實相)의 의미. 혹은 '경향성/동향성'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는 자신의 저서 《어맹자의語孟字義》에서 "정은 성의 욕구하는 바이니, 움직이는 것이 있다는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 때문에 성정性情으로 병칭한다. 〈악기樂記〉에서 이르기를 '물物에 감하여 움직이는 것이 성의 욕구이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 하였다. 성균관대학교 이기동 교수 저 《이또오진사이-일본 사상의 대변자》에 이 《어맹자의》의 번역이 실려 있으므로 자세한 바를 알고 싶은 위키러는 이를 참조하시길)을 따른다면 선善하게 될 수 있으니, 때문에 내 이르기를 성선性善이라 한 것이다"라 하였다. 곧 우리의 본성을 고찰해 볼 때, 선을 좋아하는 경향성이 있고, 그 배경에는 (완성형이든 맹아萌芽형이든 간에) 인의예지의 사덕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를 서양식 성선설 성악설에 짜맞추다보니 성선설의 맹자, 성악설의 순자라는 얘기가 나왔을 뿐이다.)와 같은 지문이 나오기도 한다.
- ↑ 후한서에 그의 조부 순숙이 순자의 11세손이라 기록되어 있다.
- ↑ 《논어》에 이른 바, 증자는 날마다 세 가지의 성찰을 하였다: '남을 도움에 진실하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벗과 사귐에 신실하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전해 받은 가르침을 익히지 못하지는 않았는가?'
- ↑ 간과 월은 남방의 오랑캐로, 각각 오吳나라 근방과 월越나라를 지칭한다. 이는 동방의 오랑캐, 맥은 북방의 오랑캐이다. 하지만 이, 맥은 구분이 크게 명확하지는 않아서, 그냥 동북방의 오랑캐를 뭉뚱그려 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 ↑ 조양자趙襄子와 공자의 상을 보아 그들의 미래를 예견했다는 전설상의 인물.
- ↑ 요사스러움과 상서로움.
- ↑ 키의 길고 짧음.
- ↑ 몸집의 작고 큼
- ↑ 생김새의 좋고 나쁨. 잘생기고 못생김.
- ↑ 고대 중국 전설상의 명궁.
- ↑ 하夏 왕조의 시조.
- ↑ 중국 전설상 제 1의 성왕聖王. 유가의 지론에 따르면, 순舜에게 제위를 선양하여 성인의 도통을 일으켰다.
- ↑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으로, 유가의 지론에 따르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폭군에 해당한다.
- ↑ 본本. 고대 중국은 농본주의 사회였기에 이는 본업, 즉 '농사일'을 의미하기도 했다.
- ↑ 인위人僞. 또는 인위의 결과. 《순자》〈정명正名〉을 보면 , 위僞는 상기의 두 의미를 갖는다 명시되어 있다.
- ↑ 음양오행의 그 오행이 아니라, 자사의 저서 《오행》에서 이르는 다섯 가지의 실천철학적 덕목,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성聖을 가리킨다. 훗날 동중서가 제시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행과는 다르나, 자사의 《오행》이 전국시대 이후 망실되었다가 최근에야 재발견된 터라, 현재까지 동중서의 짝퉁 오행(...)이 더 유명하고, 널리 일컬어지는 실정.
- ↑ 자사의 오행설은 그 사상적 후계인 맹자에 의해 적극 활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덕의 단초가 인간 심성에 내재해 있다는 사단설四端說. 참고로, 여기에 성聖이 끼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자사의 오행설 내에서도 성의 취급이 인의예지와 달랐기 때문이다. 인의예지에 대해서는 "○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行: ○이(가) 내면에 형성되어 그 의지로써 행동이 그것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은 내재된 ○으로(로)부터의 도덕적 행동, 덕행이다. 그러나 내면의 ○의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은 행동이라면, 그것이 ○에 의한 덕행의 효과를 지닌다 하더라도 실상 아무런 도덕적 의미가 없는 단순 물리적 행동일 뿐이다." 하였으나, 성에 대해서 만큼은 "聖形於內, 謂之德之行. 不形於內, 謂之德之行: 성이 내면에서 형성되어 그 의지로써 행동이 그것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은 성으로부터의 도덕적 행동, 덕행이다. 내적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성에 의한 덕행이다." 하였다.이것은 성의 덕행이란 의식적 덕행을 넘어선 덕아일체德我一體의 경지에서의 덕행임을 설명하는 것으로, 《논어》에 기술된 바, '공자는 70세가 되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가 바로 그 예이다. 이처럼, 성의 경지는 성인이 되지 않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위상이므로, 맹자 또한 이에 이르기까지의 강력한 인위성과 후천성을 의식하여 성만은 단초라도 있는 인의예지와는 달리, 오로지 부단한 노력에 달린 것이라 여긴 것이다. 맹자는 성에 다다름을 활쏘기에 비유하여 "화살이 과녁에 닿음은 너의 힘이다" 하였다.
- ↑ 자궁子弓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 자궁은 곧 염옹冉雍으로, 공자가 평하기를 "옹雍은 남면南面할 만하다."라 하였다. 남면은 군주가 남쪽을 바라보고 앉는 것ㅡ이는 여러 별들이 절기에 따라 자리를 바꾸어 회전하는 와중에 그 원심점이 되어 홀로 제자리를 지키며 남쪽을 비추는 북극성의 특성에서 착안해, 지존자至尊者의 상징성을 취한 것이다.ㅡ을 의미한다. 순자는 "성인聖人이나 권세는 얻지 못한 이들이 공자와 자궁이다" 하여 그에 대한 대단한 존경을 나타낸 바 있다.
- ↑ 일례로, "人之性惡, 其善者僞也。" 대목을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고교 윤리와 사상 수업만 제대로 들었어도 여기서 '僞'가 人과 爲의 합체자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올바른 번역은 "사람의 성性은 악하다. 그것이 선하게 됨은 인위人爲의 결과이다." 정도가 된다.
- ↑ 일례로, 仁을 곳곳에 '어짐(...)'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올바른 철자는 '어짊'이다. 몹시 당황스러운 게, 몇몇 부분에는 어짊이라고 제대로 써 놨다(...)
- ↑ 이 점은 김학주 교수 본인도 인정하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