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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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辛基南 1952. 10. 16 ~)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주요 경력으로는 열린우리당 의장, 15~17,19대 4선 국회의원이 있다.

2 경력

1952년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한민국 해군 장교(교수사관)로 만기 전역(1979년부터 1982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최종 계급은 항해중위.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당선된 정동영, 천정배와 천-신-정 소장파 트리오로 활동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5년까지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해군 출신답게,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을 제작하는 데 힘을 보태는 등, 제2연평해전 유가족 및 전상자의 보훈 활동에 힘썼다. 이 때 대립하는 정당인 새누리당 소속 이병석 의원과 적극 협력하였는데, 이는 당파를 초월한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3 논란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대대적인 친일잔재청산활동을 주도하던 중, 아버지 신상묵일제강점기 당시 헌병 오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기남 의원은 이를 부정하다가 도리어 큰 역풍을 받았다. 결국 아버지의 악랄한 친일행적이 논란이 되자,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하였다.[1] 그 결과 노무현 정권의 친일잔재청산운동은 큰 타격을 입고 흐지부지되었으며 노무현 정부의 이른 레임덕에 영향을 미쳤다.

2015년 11월 27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떨어진 아들을 위해 학교에 찾아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아들이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커트라인 이하의 점수로 낙제 판정을 받아,[2] 2016년 변호사 시험에 응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로스쿨 원장을 찾아가 "아들을 구제해주면 법무부에 얘기해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80%까지 올려주겠다"며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신 의원은 학교 측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 "부모 된 마음에 상황을 알아보고 상담하고자 찾아간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참고로 신 의원의 딸은 인하대학교[3]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왔는데, 변호사시험에 이미 불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당무감사원의 조사를 받아 2016년 1월 25일에 당원자격정지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당원의 자격이 정지되어 있는 이 기간에는 당의 이름을 걸고 출마하는 것이 금지된다. 따라서 2016년 1월 25일부터 2016년 4월 24일까지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을 수가 없고, 20대 총선이 2016년 4월 13일이므로 현실적으로 공천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재선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만약 총선에 출마하려면 탈당 후 다른 당에 입당하여 공천을 받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금지와 같은 징계를 받은 것이다.

한편 2월 3일, 신기남 의원 아들의 지도교수인 소재선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로스쿨 졸업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을 한바 있다. 기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는 출마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2월 14일, 신기남 의원이 당원자격정지 3개월 징계에 반발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 20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다. 기사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탈당 이후인 3월 17일, 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여론조사에서 4선의원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안습한 지지율을 보여주었고기사 본선에서도 결국 양당의 후보인 금태섭구상찬은 물론이요, 30년 내리 출마한무소속 백철 후보에게도 밀리면서(...) 꼴찌로 낙선했다. 그야말로 망했어요. 차라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4] 이로써 정치인생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할 듯.더 추해지기 전에 은퇴해야

4 선거 이력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구 갑)
새정치국민회의29,671 (33.6%)당선(1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구 갑)
새천년민주당45,406 (50.4%)당선(1위)2003.11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구 갑)
열린우리당63,331 (51.2%)당선(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구 갑)
통합민주당41,833 (41.3%)낙선(2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구 갑)
민주통합당64,187 (48.7%)당선(1위)2016. 3. 17 민주당으로 당적변경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서구 갑)
민주당6,496 (6.4%)낙선(5위)
  1. 당시 소설가 이문열은 신기남을 직간접적으로 저격하는 컬럼인 「겜뻬이 고쬬오니 게이부」를 중앙일보투고, 당시 친일청산 아젠다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역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 졸업시험을 모두 세번 치렀는데, 그 중 한번만 합격해도 되는 것을 세번 모두 낙제했다고 한다.
  3. 전에는 연세대학교라고 되어있었는데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인하대학교이고 이 딸도 졸업시험에 두번이나 떨어졌으나 세번째에 붙어 이번 사건처럼 그 때도 신기남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며 고시생들이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4. 비슷하게 더민주에서 컷오프 되고 세종특별자치시에 무소속 출마한 이해찬 전 총리는 정반대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으며, 한 때 정치적 동지였던 역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도 자신의 홈 그라운드인 전주시 에서 국회 복귀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