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아넬카나 니콜라스 아넬카 등으로도 검색해도 모두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
뭄바이 시티 FC No.39 | |
니콜라 세바스티앵 아넬카 (Nicolas Sebastien Anelka) | |
생년월일 | 1979년 3월 14일 |
국적 | 프랑스 |
종교 | 이슬람 [1] |
출신지 | 르 셰스나이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키 | 185cm |
프로입단 | 1994년 파리 생제르맹 FC 입단 |
소속팀 | 파리 생제르맹 FC (1994~1997) 아스날 FC (1997~1999) 레알 마드리드 CF (1999~2000) 파리 생제르맹 FC (2000~2002) 리버풀 FC (임대) (2002) 맨체스터 시티 FC (2002~2004) 페네르바흐체 SK (2004~2006) 볼턴 원더러스 FC (2006~2008) 첼시 FC (2008~2011) 상하이 선화 (2012~2013) 유벤투스 FC (임대) (2013)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13~2014) 뭄바이 시티 FC (2014~) |
지도자 | 상하이 선화 감독 (2012) 뭄바이 시티 FC 감독 (2015~) |
국가대표 | 69경기 14골 |
크리스티안 비에리 이후 루카 토니와 함께 최고의 저니맨 축구 유니폼만 14개
1 개요
프랑스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별명은 '저니맨'. 본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이나, 첼시 FC에서는 주로 3톱의 윙포워드로 뛰고 있다. 특유의 활동성과 수비가담과 위치선정이나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게 윙인지 섀도우 스트라이커인지 공미인지 잘 감이 안잡힌다. 굳이 비교하자면 허정무 체제에서의 염기훈과 흡사하지만 당연히 염기훈보다 훨씬 클래스 있는 움직임을 보인다. 일단 오른발 왼발 다 의족이 아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체제에서는 디디에 드록바와의 투톱 호흡이 맞지않아 고생하였지만, 거스 히딩크의 매직으로 투톱을 맞추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가능한 정도이지 영혼의 투톱까진 아니지만 이 정도의 투톱을 갖춘 팀은 프리미어 리그 안에서도 보기 드물다.
다소간 아넬카에 대한 언급이 너무 부실해서 덧붙여 말한다면, 스터리지처럼 다재다능하지만 좀 더 골에 관여하는 직선적인 움직임을 더 선호하는 선수이다. 실제로, 베르캄프가 앙리보다는 보다 직선적인 아넬카가 자기와 어울렸었다고 말했을 정도.
선수시절 클래스는 닥 월드클래스이다. MNF에서 캐러거가 지루에 대한 설명을 할때 " 아넬카 & 당신 ( 여기서는 앙리 ) 과 달리 월드클래스는 아니지만, 좋은 선수 " 라고 말하면서, 아넬카가 월클임을 인증한 바가 있다.
2 선수 경력
커리어 내내 각종 명문팀이 그를 영입하려 들 만큼 실력 하나는 확실했던 선수이나, 독선적이다 못해 이기적인 성격으로 팀원이나 감독과 충돌이 잦았으며 폭언도 일삼을 만큼 과격하여 좀처럼 팀과 융화되지 못했다. 거기다 실력에 대한 자존심도 엄청나서 자기 주제로 팬투표를 한 것에 삐져서 이적을 결심할 정도.
볼턴 원더러스 입단 전까지만 해도 이 때문에 실력과 득점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만약 정착을 했다면 이청용의 어시스트는 기하급수로 늘었겠지 특히 레알 마드리드에 있을 때 가장 심했다. 하필라울 곤살레스와의 마찰이 특히 심해서 선수단 주도로 왕따를 시켰다는 말도 있다. 그때는 이적 자체도 갑작스럽게 결정해서 제 실력을 못 냈다.
사이먼 쿠퍼의 <사커노믹스>라는 책에 레알 마드리드 이적 당시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소개되었는데, 내성적이고 섬세한 젊은 청년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떨어져 자기 라커 하나 못 잡고 쩔쩔매고 있는데 구단에서 도와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선수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목이었지만 정작 사람들은 여린 성격의 아넬카에 주목했다고. 2010-11 시즌 시작 당시 플로랑 말루다도 인터뷰에서 아넬카의 섬세하고 여린 성격을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축구장 내에서 사고뭉치 취급을 받았지만 축구장 바깥에서 사고를 쳐서 이슈가 된 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2]
희대의 로리콘이자 모국사랑 아르센 벵거 감독이 '최고의 재능'이라고 격찬하며 50만 파운드로 파리 생제르망으로부터 아스날로 데려왔던 선수다. 아스날 FC에 뛰면서 90경기 28골을 넣었고 이 당시에 팀의 일원으로 더블을 이루는 데에 기여하며 1998-99년 PFA 올해의 유망주 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 1999년 레알 마드리드로 2230만 파운드에 이적한다. 이적 초반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감독 및 선수단과의 마찰로 오래 있지 못하고 2000만 파운드에 파리 생제르맹 FC로 돌아왔다가 리버풀 FC로 임대된다.
리버풀에서는 오웬-헤스키-아넬카의 삼각편대를 구성하며 제법 준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당시 리버풀 감독이던 울리에가 먹튀로 전락하는 엘 하지 디우프를 거액으로 데려오며 그를 내치는 병크를 저지른다. 제라드가 자서전에서 이걸 대차게 깠다.(...) 이후 1300만 파운드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 3시즌을 뛰며 91경기 30골이라는 스탯을 쌓았다. 이후 7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터키의 페네르바흐체 SK로 가서 뛰다가, 샘 알라다이스에 의해 800만 파운드에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해 53경기 21골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2008년 아브람 그랜트 당시 첼시 감독에 의해 1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첼시 FC에 왔다. 2008-09 시즌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국대에서는 유로 2000에 차출된 이후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워낙 팀을 많이 옮겨다녀서(...) 선발되지 않았으나 그 이후로는 꾸준히 차출되었다. 국대에서도 그놈의 성깔이 안 죽었는지 2010 FIFA 월드컵에서 일을 저질렀다.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의 마찰은 물론 선수단과도 마찰이 심했으며, 파트리스 에브라, 프랑크 리베리 등과 함께 프랑스 대표팀의 불화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요앙 구르퀴프 왕따설의 유력한 배후로 지목되었다. 조별 예선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 도중 좋은 득점 찬스를 놓친 뒤 대놓고 도메네크 감독을 조롱하는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다. 결국 이날 프랑스는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어진 멕시코와의 두번째 경기에서는 구르퀴프에게 절대로 패스를 안해주는 모습을 보였고 전반 끝날때 라커룸으로 들어가면서 도메네크 감독이 이것에 대해 지적하자 "엿먹어, 개XX"라고 욕하며 귀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멸망했다. 첼시에서는 괜찮은 팀워크를 보여주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이야기이다.
2010-11 시즌 중반 이후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스피드와 득점력이 현저하게 죽어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드리블 실력과 성숙한 노련미가 돋보이는 패싱, 넓은 시야 등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으면서 활약중. 여차하면 본인이 직접 골을 집어넣기도 하는 등 다양한 플레이를 펼치며 첼시의 중반기의 부진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1-12 시즌에는 체력적인 문제 때문인지 선발보다는 교체 출장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지만 풍부한 경험을 통한 패싱력과 경기 조율 능력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라운드와 3라운드의 승리는 모두 아넬카의 공이 컸다.
하지만, 감독 AVB와의 마찰 끝에 결국 팀을 떠나게 됐다. 아넬카의 인터뷰에 따르면 유스 팀과 같이 훈련하고 같은 주차장이나 탈의실을 쓰게 했다고...떠날 팀을 모색하다가 그가 선택한 팀은 바로...중국 슈퍼 리그의 상하이 선화.입단후 팀연습에서 소림축구를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아넬카가 떠나자 거짓말처럼 첼시는 검은 예수의 가호로 챔스 우승
그리고 상하이에서 플레잉 코치를 맡다가 감독인 장 티가나 감독의 경질 이후 선수 겸 감독이 되었다. 상해의 김수겸
하지만 중국에서 활동은 별로이며 시즌 12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는 수준에 적응을 못하는 터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가 잉글랜드 복귀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뜬금없이 유벤투스 이적에 매우 가까워졌다! 현지시각 2013년 1월 26일에 있을 유벤투스와 제노아의 경기를 관람한 후 곧 공식 계약을 맺는다고 하며 결국 유벤투스에 6개월 단기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과연 유베의 처참한 공격진을 구원할 수 있을지? 하지만 구원하지 못했다. 아넬카 영입할거면 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랑 재계약 안 했냐고 타 팀팬들까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2013-14 시즌, 3시즌만에 EPL로 복귀해 웨스트 브롬위치로 이적했다. 대표적인 저니맨답게 EPL에서만 여섯 번째 소속팀을 찾았다.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1995년부터 같이 일하며 친형제처럼 지낸 에이전트가 사망하여 큰 슬픔에 빠져 은퇴를 선언했으나, 1주일 후 번복하고 팀에 복귀했다.
리그 첫골을 12월 28일에서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전에서 터뜨렸는데, 위 그림과 같은 '케넬(quenelle)' 제스처로 골 세리머니를 펼쳐 큰 논란을 야기했다. 이 동작은 코미디언 디외도네가 널리 유포시킨 나치의 거수경례를 뒤집어 놓은 포즈로 반유태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아넬카는 친구 디외도네를 위해 이 세리머니를 펼쳤을 뿐이라 항변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유럽 전역에서 쌍욕을 얻어먹은 것은 당연지사에, 소속팀의 스폰서였던 부동산 업체 주플라도 분개하여(사장이 유태인이다.) 후원 계약을 해지해 버렸다.
그 후 구단과 마찰이 있었는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계약해지를 하겠다고 SNS에 일방적으로 통보하였고, FA가 된 그를 브라질의 아틀레치쿠 미네이루가 영입하였다. 이젠 대륙까지 넘나든다! 그런데 입단식 치르기도 전에 사라져버렸다! 알고보니 무단으로 이슬람행사에 참여한 것이 밝혀졌다. 아넬카 입장은 계약을 한적도 없다고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아넬카와 회장말을 종합해보면 아넬카 대리인인 아넬카의 형이 구단과 구두계약을 맺었다고 해석할수도 있는 상황. 단단히 화가난 미네이루 회장이 FIFA 제소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말년에 이게 무슨 짓거리냐
2014년 9월 4일 뭄바이 시티 FC와 3개월 계약을 맺었다. 그가 3개월 동안 벌게 될 수입은 100만 달러로 알려졌다.
2015년 1월 10일 알제리 리그의 NA 후세인 데로 이적하였다.
2015년 6월 9일 뭄바이 시티 FC의 선수 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3 여담
- 티에리 앙리와는 절친. 그런데 둘은 같은 팀을 거치긴 했지만, 함께 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동시에 거쳤던 팀은 바로 아스날 FC과 유벤투스. 지금에서야 상상하기 힘들지만, 사실 앙리는 아넬카 이적 후에 아스날의 벵거 감독이 아넬카를 대체하기 위해 영입한 선수였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세계 무대에 멋지게 데뷔했지만 유벤투스에서 적응하지 못해 죽 쑤고 있던 앙리를 아넬카 대신 영입했던 것.[3] 그 결과 한 명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되었고, 한 명은 희대의 저니맨이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 레알 마드리드 라커룸의 전설적인 일화 아넬카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사건의 주모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파일:아넬카사건.jpg
▲ 스포츠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사이먼 쿠퍼와 스테판 지만스키의 저서인 싸커노믹스에 실린 내용이다.
4 기록
4.1 득점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 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5/96 | 파리 셍제르망 | 프랑스 리그 앙 | 2 | 0 | 0 | 0 | 0 | 0 |
1996/97 | 파리 셍제르망 | 프랑스 리그 앙 | 8 | 1 | 0 | 0 | 1 | 0 |
1996/97 | 아스날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4 | 0 | 0 | 0 | 0 | 0 |
1997/98 | 아스날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26 | 6 | 9 | 3 | 3 | 0 |
1998/99 | 아스날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35 | 17 | 5 | 0 | 0 | 0 |
1999/00 | 레알 마드리드 | 스페인 라 리가 | 19 | 2 | 1 | 0 | 10 | 2 |
2000/01 | 파리 셍제르망 | 프랑스 리그 앙 | 27 | 8 | 0 | 0 | 9 | 5 |
2001/02 | 파리 셍제르망 | 프랑스 리그 앙 | 12 | 2 | 1 | 0 | 7 | 3 |
2001/02 | 리버풀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 | 20 | 4 | 2 | 1 | 0 | 0 |
2002/03 | 맨체스터 시티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38 | 14 | 1 | 0 | - | - |
2003/04 | 맨체스터 시티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32 | 16 | 4 | 4 | 5 | 4 |
2004/05 | 맨체스터 시티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19 | 7 | 0 | 0 | - | - |
2004/05 | 페네르바체 | 터키 쉬페르리가 | 14 | 4 | 2 | 0 | 2 | 0 |
2005/06 | 페네르바체 | 터키 쉬페르리가 | 25 | 10 | 6 | 2 | 6 | 0 |
2006/07 | 페네르바체 | 터키 쉬페르리가 | 0 | 0 | 0 | 0 | 2 | 0 |
2006/07 | 볼튼 원더러스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35 | 11 | 3 | 0 | - | - |
2007/08 | 볼튼 원더러스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18 | 10 | 0 | 0 | 4 | 1 |
2007/08 | 첼시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14 | 1 | 0 | 0 | 4 | 1 |
2008/09 | 첼시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37 | 19 | 5 | 4 | 12 | 2 |
2009/10 | 첼시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33 | 11 | 4 | 1 | 7 | 3 |
2010/11 | 첼시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32 | 6 | 3 | 1 | 9 | 7 |
2011/12 | 첼시 FC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9 | 1 | 0 | 0 | 4 | 0 |
2012 | 상하이 선화 | 중국 슈퍼리그 | 22 | 3 | 1 | 0 | - | - |
2012/13 | 유벤투스 | 이탈리아 세리에 A | 2 | 0 | 0 | 0 | 1 | 0 |
2013/14 |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12 | 2 | 0 | 0 | - | - |
2014 | 뭄바이 시티 | 인도 슈퍼리그 | 3 | 2 | - | - | - | - |
2015 | 뭄바이 시티 | 인도 슈퍼리그 | 6 | 0 | - | - | - | - |
4.2 대회 실적
- 아스날 (1996/97 - 1998/99)
- 잉글랜시 프리미어리그 (1) : 1997/98
- FA컵 (1) : 1997/98
- FA 커뮤니티 실드 (1) : 1998
- 레알 마드리드 (1999/00)
- UEFA 챔피언스 리그 (1) : 1999/00
- 파리 셍제르망 (1995/96 - 1996/97, 2000/01 - 2001/02)
- UEFA 인터토토 컵 (1) : 2001
- 페네르바흐체 SK (2004/05 - 2006/07)
- 터키 쉬페르리그 (1) : 2004/05
- 첼시 FC (2007/08 - 2011/12)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 : 2009/10
- FA 컵 (2) : 2008/09,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1) : 2009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07/08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1997 UEFA U-18 선수권 대회 우승
- 유로 2000 우승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우승
- ↑ 출처
- ↑ 그러나 이때는 아넬카도 좀 심했는데 훈련 무단 불참이나 700분 무득점 등 혁혁한 기록을 세우는 와중에도 레알을 내 위주로 돌려야 된다 전술을 바꾸라는 인터뷰를 하는 등 레알 성골들이 빡칠 만한 행동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 ↑ 엄밀하게 따져서 앙리가 아넬카보다 밑(...)으로 취급되었던 시절은 딱 이 1년뿐이었다. 1998-99 시즌 앙리가 죽을 쑤고, 아넬카가 급부상하면서 벌어진 일. 당시 아스날이 앙리를 데려가서 폭발하기 직전까지 앙리는 그저 월드컵에서 잠깐 터졌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팽배해있었던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