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프랑스

1 개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항목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 팀이라도, 선수들간의 팀워크가 맞지 않으면 개발살이 날 뿐이다. 축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 11명이 같이 하는 것이다."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

2 상세

2.1 21세기판 '신의 손' 사태의 재림

프랑스1998년 월드컵 우승,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사건이 있기는 했으나 2006년에도 준우승을 일군 강호 중의 강호였다. 그러나 2010년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는 세르비아에 밀려 2위를 함으로써 플레이오프로 떨어지고 프랑스 vs 아일랜드 전에서 티에리 앙리의 핸들링 파울로 겨우 1승1무를 거두어 진출하는 초안습함을 보여준다.

일명 신의 손 사건으로 인해, 아일랜드를 꺾고 월드컵 본선에 오른 프랑스 대표팀과 앙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재경기를 요구했으나 FIFA는 아일랜드를 인정할 경우 다른 나라들이 추가로 항소할 수 있으니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거절.

이후 피파가 이 사태를 덮기 위해서 아일랜드에 거금의 뒷돈을 줬다는 말이 나왔다.

2.2 천운의 조편성

경기 결과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손을 들어준 FIFA였지만 위의 이유 때문인지 본선 조추첨에서 프랑스의 시드권을 박탈한다. 단순히 프랑스의 FIFA 랭킹이 낮아서 시드권이 밀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프랑스의 FIFA 랭킹은 9위로 개최국 남아공을 제외한 시드권 획득국들보다 랭킹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대회까지 피파 랭킹보다는 최근 대회의 성적을 기준으로 탑 시드를 부여한 걸 보면 의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추첨 직전인 2009년 11월 피파 랭킹 5위였던 포르투갈 역시 탑 시드를 못받은 것을 보면 의도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어쨌든 시드 2순위로 1순위에 있는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등과 엮여 죽음의 조가 탄생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천운이 함께 하는지 공교롭게도 개최국 자격으로 시드 1순위를 차지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같은 조가 된다. 추첨 결과 남아공, 멕시코, 우루과이와 한 조가 된 프랑스의 반응은 존나좋군?.

2.3 콩가루 조직력 대표팀

행운의 조편성으로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 상황이었지만, 프랑스 대표팀은 월드컵도 진출하지 못한 중국에 1:0으로 패한다. 스코어도 스코어지만 경기 내용도 OME스러웠는데, 이 경기를 계기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은 위험수준이었다. 트레제게[1], 프레이는 대놓고 빠지기로 하고 아스날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나스리는 뽑히지도 않았는데 갈라스, 리베리와의 불화 탓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당시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는 요앙 구르퀴프, 시드니 고부[2], 프랑크 리베리, 아부 디아비, 니콜라 아넬카[3] 등은 서로 사이가 안좋기로 유명하였다. 대표팀에 뽑히지 않은 사미르 나스리, 카림 벤제마, 하템 벤 아르파의 경우 실력보다는 불화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안뽑힌거라는 말도 있었다. 셋이 청소년 대표 동기인데, 나스리와 벤제마는 프랑스 리그 시절 라이벌팀인 마르세유와 리옹 출신임에도 서로 친하다. 반대로 벤 아르파는 나스리랑도 안친하고, 벤제마와의 경우 리옹 시절 동료였음에도 사이가 나빴다.(…) 그 탓인지 리옹은 벤 아르파를 마르세유로 이적시킨다. 리옹 구단주는 그를 해외팀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가 프랑스 리그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서 그랬다고 했다. 청대 시절에는 아부 디아비와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기도 했다.

특히, 구르퀴프가 프랑스 국대내에서 이른바 왕따당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구르퀴프가 좀 튀는 성격이라[4] 아넬카 등을 두고 비판을 하였다가 역으로 본인이 비판을 받게 되고 이에 사과까지 했지만, 아넬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따를 주도했으며[5] 여기에 리베리, 갈라스 등이 합세하여 구르퀴프를 비난하고 그러다 보니 좋든싫든 옆에 있던 나머지들도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 해외파들의 국내파(특히 보르도) 무시, 여기에 도메네크의 총애까지 겹쳐진 탓에 구르퀴프는 소속팀 보르도의 라이벌인 리옹 소속의 제레미 툴랄랑하고만 같이 말을 트고 훈련도 했다고 한다. 현재 프랑스 대표팀 주장인 요리스도 구르퀴프, 툴랄랑과 절친이다.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느냐면 이를 말려야할 주장 에브라조차도 "구르퀴프랑 말하려면 툴랄랑하고 해라" 라고 하였을 정도. 왜 툴랄랑만이 구르퀴프를 따 시키는 것에 동참을 안할 수 있었느냐면 그는 전직 복싱선수인지라 아무리 성격 안좋은 아넬카라도 어떻게 할 자신이 없어서(…). 게다가 원래 구르퀴프와 친했다. 어쨌건 구르퀴프가 라이벌 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인배적 면모를 보여준 덕에 툴랄랑의 주가만 상승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후 구르퀴프가 리옹으로 이적하여 둘은 같은 팀에서 뛰게되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때는 카리스마가 있는 킹왕짱 리더 지단이 있었다는 점.(…) 06년도에도 프랑스는 국내파와 해외파의 갈등이 강했지만 그나마 카리스마있는 지단이 있었기에 그를 중심으로 뭉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단이 없는 유로 2008 때부터 영건들인 카림 벤제마, 나스리와 고참인 마케렐레, 갈라스 등의 갈등이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월드컵 시점에선 손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멕시코와의 2차전 후, 프랑스의 주전 공격수인 아넬카는 월드컵 기간 도중에 팀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 뉴스에 따르면 다른 선수들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패스도 하지 않으며[6] 도메네크 감독에게도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아넬카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 사건 이후 아넬카는 18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어차피 본인은 이 사건에 관계 없이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위의 사태에 관하여 에브라는 좀 사실이긴 한데, 이 사실이 누설된 것을 보아서 팀 내에 프랑스가 망하기를 원하는 배신자가 있다고 하였다. 왕따를 한 것보다 외부에 누설한 게 더 나쁘다는 건가? 배신자설은 리베리 등도 동의한 것을 보면 사실인 것 같긴 한데... 덕분에 누군가가 친구 배신자일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서로 불신감만 커지고... 김전일, 코난 출동시킬 기세.

에브라와 피트니스 코치가 말싸움하는 장면

이후에도 막장스런 상황은 계속되어, 도메네크 감독과 코치간의 불화로 코치가 훈련장을 떠나고 선수들은 아넬카의 귀국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훈련을 거부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대표팀 단장은 사임했으며, 내분 수습을 위해 체육부 장관이 직접 도메네크 감독과 축구 협회장, 주장인 에브라를 만날 계획도 밝혔다. 그리고 체육부 장관에게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은 사르코지 대통령. 뭐지? 애들 싸움에 어른들이 끼어든 것 같은 이 느낌은(…) 사실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아래에 설명.

지브릴 시세 등 몇몇 선수들은 훈련거부에 동참한 것을 후회하면서[7] 훈련거부를 주도한 선수들(파트리스 에브라, 프랑크 리베리, 윌리엄 갈라스 등)과 도메네크 감독을 화해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에브라, 리베리, 갈라스, 아비달은 경기 출전조차 거부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니 이쯤되면 거의 막장 드라마...

2.4 세네갈 쇼크의 재현

프랑스는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1명이 퇴장당한 우루과이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이룬다. 우루과이의 로데이로가 퇴장당했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는 탄탄한 우루과이에게 한참 밀리던 참이었다. 프랑스는 이와 같이 막장스러운 경기력으로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A조를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이러다간 콩가루 같은 06년도의 토고 국대가 재현될 것같다는 평을 받았는데... 승점셔틀은 면했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차전 멕시코전은 리베리, 아넬카등의 염원(?)대로 구르퀴프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고 리베리가 공미를 맡았지만 우루과이 전보다도 못한 한심한 경기력으로 0-2으로 패배했다. 아 망했어요.

마지막 3차전에서 프랑스는 남아공을 100-0으로 이겨도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무재배만 하면 16강에 진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 실낱같은 가능성마저도 승리 이후에나 기대해볼만 것이었지만 정작 프랑스는 승리할 가능성 자체가 회의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6월 22일 남아공과의 마지막 3차전 경기가 벌어졌고 선발출장한 구르퀴프가 전반 24분 만에 퇴장당해 광속 퇴갤한데 이어 전반에만 2골을 먹히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후반 24분에 플로랑 말루다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1-2로 패하고 말았다.

결국 프랑스는 모래알 조직력을 보이며 남아공에게도 패배하여 A조 최약체임을 인증하면서 광탈했고, 남아공은 비록 멕시코에 골득실에서 밀려 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비운의 개최국이 되긴 했지만, 프랑스에게 1승을 거두며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그야말로 남아공 쇼크. 프랑스 대표팀은 1무 2패, 1득점 4실점이란 악몽같은 성적표를 쥔 채 파리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프랑스 축구협회는 광탈의 책임을 물어 귀국행 비행기 좌석들을 이코노미로 끊었다.

이로써 2010년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모여있어도 팀워크가 맞지 않으면, 결국은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과, 축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 11명이 같이 하는 것."을 전세계에 증명하고 말았다.

3 프랑스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우선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지도력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도메네크 감독은 유로 2008 당시의 졸전으로 경질 의견이 높았다. 그나마 만만한 상대로 꼽히던 루마니아와 무득점으로 비기고 네덜란드한테도 1-4로 떡실신을 당하면서 1무 1패.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전 대패와 루마니아전 무승부가 된 이탈리아와 2010년 동아시아컵의 한일전마냥 경질 더비가 성사되어 결국 프랑스가 지고 광탈했으나, 어찌저찌 2010 월드컵까지 계속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프랑스가 조별예선도 통과 못하는 부진을 보인 유로 2008 당시에도 청혼 드립, 별자리 드립 등 각종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며 신뢰를 잃어버리고 모가지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 덕분에 도메네크 감독의 생명은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8] 즉 월드컵에 임하기 전부터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였다.

도메네크 감독이 범한 최악의 실책은 바로 선수단 장악 실패. 사실, 도메네크 감독과 프랑스 선수들의 반목과 갈등은 그 역사가 꽤나 길다. 이미 2004년에 감독에 처음 부임했을때부터 로베르 피레스와 갈등을 빚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감독과 지단의 불화, 선수들 간의 갈등은 프랑스 언론의 주요 이슈였다. 그저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 덕분에 묻힌 것 뿐. 2010년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은 전혀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선수단 구성이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AS 로마의 더블 러너업을 이끈 멕세[9] 도 없고, 세리에 3대 골키퍼 프레이도 일치감치 빠져버리고...물론 저 둘은 유로 2008때 아주 안습한 경기력을 보인긴 했지만,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펼치는 졸전을 볼 때 과연 멕세와 프레이가 문제였을까? 그나마 빛났던 다비드 트레제게도 끊임없는 갈등 끝에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나름 구심점이 될수 있었던 베테랑 파트리크 비에이라는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무시했다. 아스날 FC에서 나름대로 멋진 활약을 보여준 사미르 나스리는 대표팀 내의 내분 탓에 선발되지도 못했다.

이런 도메네크 감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 수준이라,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 선발시 선수의 별자리를 고려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도메네크 감독은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보니 2006 월드컵 때도 컨디션이 좋았던 로베르 피레스루도비크 지울리, 미쿠를 뽑지 않은 이유가 단지 별자리가 좋지 않아서다 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 내용은 언론에서 약간 과장한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들과 불화가 심했다.

물론 본인은 극구 부인하며 루머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 언론들 또한 도메네크 감독에 우호적이지 않아서,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럴 바에는 프랑스 대표팀의 진정한 감독이였던 지네딘 지단을 다시 불러오는 게 낫다며 비판에 여념이 없었다. 근데 지단 나이가 곧 있으면 40줄인데.(...)

두 번째 이유로는 프랑스 축구협회와 전직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간의 내분을 들 수 있다. 당시 프랑스 축구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의 선수들과 프랑스 축구협회의 내분이 극심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한 예전 대표팀 선수들은 끊임없이 도메네크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하며 이래저래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려 했고, 프랑스 축구협회는 여기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유로 2008에서의 광탈에도 불구하고 도메네크 감독을 경질하지 않는 강수를 취한 것. 즉, 권력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팀도 장악하지 못하고 성적도 나지 않는 감독을 월드컵이라는 중요한 대회에서 계속 기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당시 지단과 함께 프랑스의 우승을 이끈 로랑 블랑 현 보르도 감독을 선임해 놓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도메네크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지도 않았다. 이미 차기 감독이 정해져 있으니 안 그래도 신뢰받지 못하는 도메네크 감독은 레임덕 현상에 직면한 것.

여기에 전직 프랑스 대표팀 선수들, 특히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이 이런 내분을 조장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지네딘 지단이 선수들의 에이전트를 통해 선수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도메네크 감독에게 끊임없이 반기를 들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주 내용. 지단의 영향을 받은 에이전트들과 선수들이 도메네크 감독에게 전술 변경을 요구했고 도메네크 감독은 이를 수락했지만, 나중에 이들의 배후에 지단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화를 내며 전술 변경을 없던 일로 해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지단이 팀 전술 문제까지 개입하는 등, 도메네크 감독을 반쪽 감독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의혹이 있다. 이렇게 지단에게 휘둘린 안좋은 기억이 있는 도메네크 감독이 이번에도 또다시 지단이 개입하려 하자 화를 냈다는 것. 물론 지단은 이러한 언론 보도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지만... 한 나라의 축구 영웅이 이런 음모론에 휘말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는 반증이다. 이런 음모론은 과거 유로 2000 당시 최악이던 독일 대표팀에도 있었다. 로타어 마테우스를 둘러싼 내용이었는데, 한쪽은 선수들이 만으로 39세인 마테우스가 아직도 대표라며 불만을 품었다는 내용, 다른 한쪽은 에리히 리벡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불화로 선수들이 단체로 마테우스에게 "차라리 당신이 감독을 해달라." 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명색이 국가대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팀워크는 안중에도 없이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서 그저 팀을 해치는 행동만 해댔던 프랑스 선수들의 책임 또한 결코 작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남아공에서 세네갈 쇼크를 능가하는 프랑스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를 찍은 것은 그야말로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4 각계의 반응과 후폭풍

마지막 1차전을 남겨 놓기 전까진 아직 탈락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프랑스의 탈락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여러 언론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툴랄랑은 "틀렸어 이젠 꿈도 희망도 없어."스러운 선언을 하였다. 이게 툴랄랑 혼자만의 생각이 절대 아니어서, 지네딘 지단마르셀 드사이 등 프랑스 축구계의 이름 있는 인사들도 모두 "이번 프랑스는 꿈도 희망도 없다."는 의견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특히 지네딘 지단의 경우 도메네크는 감독도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인터뷰 하는 등 매우 격하게 도메네크 감독과 프랑스 대표팀을 비난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광탈크리.

대표팀은 전원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귀국해야 했는데, 1등석만 타던 그들에게는 크나큰 굴욕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때문에 월드컵 무대를 밞지 못한 아일랜드는 이에 사필귀정이라며 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프랑스 대표팀의 막장 행각은 프랑스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프랑스의 야당인 사회당 등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인주의적인 마인드가 사회에 펴져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사르코지 대통령을 까댔다. 흠좀무... 그러니까 프랑스 좌파들은 사르코지가 통합을 못했다고 비판하는 중이다. 문제는 그걸 억지로 축구에 갔다댔다는 거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우세력들은 포용적 이민정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응부터 순혈이 없어서 졌다는 병맛이 좔좔 흐르는 망언을 늘어놓으며 인종 문제로 끌고가려는 모습을 보였다.[10] 좌파는 좌파대로 백만장자들이라면서 선수들을 깠다. 결국 좌우 모두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 선수들을 까대는 국가적 병림픽이...

티에리 앙리는 귀국하자마자,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사르코지 대통령을 면담하려 엘리제궁으로 향했다. 조별리그 탈락 때문에 뒤숭숭해진 프랑스 사회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수들과 대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그리고 도메네크 감독과 장-피에르 에스칼레트 프랑스 축구협회장은 프랑스 국회의 청문회에 불려갔다. 세계일보

축구 하나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한 이유는 프랑스가 단순히 전 대회 준우승팀이라거나 프랑스 사람들이 축구에 미쳐 산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되려 프랑스는 주변국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축구 인기가 덜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다민족 다문화를 훌륭하게 통합한 예로 프랑스 사회의 관용과 박애, 자유, 통합의 상징이었다. 이민자 출신인 지단이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과 준우승을 하면서 프랑스 축구대표팀은 일개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프랑스 통합의 심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프랑스적 가치를 대변하는 살아있는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그런 대표팀 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준 것이다.

그렇다 보니 패망의 원흉인 도메네크와 사임을 하기로 한 에스칼레트 축협회장은 나란히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분열원인과 참패 원인을 소명하게 된다. 그리고 국회에서 감독은 언론 탓, 협회장은 선수 탓 하면서 버티다가 국회의원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안습. FIFA"정치계가 축구에 개입하면 안된다!"라며 청문회를 연 것을 비판했지만, 프랑스의 반응은 한마디로 "내부 사정이니 끼어들지 마셈 ㅇㅋ?"라고 씹는 것이었다.

지단, 블랑, 데샹등과 같이 98년도 트로피를 들어올린 튀랑은 감독책임보다는 선수들의 책임이 강하다고 하면서 모두들에게 책임을 지게하고 특히 주장이면서 도리어 내분에 열심히 참여한 파트리스 에브라는 국대에 발도 못붙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벌을 주도한 에브라, 리베리, 아넬카 등의 선수들도 청문회에 소환되어 에브라 5경기, 리베리 3경기, 아넬카 18경기 등의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 끝나고 2경기만에 복귀시켰다는게 함정.

이 최악의 사태는 FIFA 랭킹에까지도 그대로 악영향을 끼쳤다. 2010년 7월 FIFA 랭킹에서 프랑스는 동년 5월과 비교해[11] 무려 154점이나 깎이며 9위에서 21위로 미끄러졌다. 177점이 깎이며 19위에서 40위로 미끄러진 카메룬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항상 거의 최상위권을 고수해 온 프랑스에게 있어 이는 매우 큰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막장 사태 후 예정대로 취임한 로랑 블랑 프랑스 대표팀 신임 감독은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었던 선수 전원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경제 그리고, 그 경기에서 아템 벤 아르파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노르웨이의 에릭 후세클렙이 연속골을 작렬하여 1-2로 또 조개양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역시 막장 사태에 휘말린 선수들이 빠진 상태에서 유로 2012 지역 예선을 치렀는데 첫 경기인 벨라루스전(홈)에서 0-1로 또 조개를 캤다. 새로 부임한 로랑 블랑 감독의 한마디 "도대체 골을 넣는 방법을 아는 선수가 있기는 한 건가..." 하지만 10월 중순 이후, 3연승을 거두면서 조 1위 등극. 오오 블랑느님.

그러나 블랑 감독도 역시 이들 없이는 팀 운영이 힘들다고 느꼈는지 출장정지 기간이 끝나자마자 1-2경기만에 징계를 받은 선수들을 칼같이 소집하였다. 골닷컴 전임 감독 밑에서 있었던 일이라 별로 개의치 않는 걸수도.

그리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유로2012 본선에 진출해 8강까지 오르며 월드컵에서의 추태를 어느정도 만회하였다. 8강에서 스페인에게 무너지긴 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때는 그래도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8강까지 오르며 지난 대회의 모습을 어느정도 만회했다.

5 기타

워런 버핏은 프랑스가 16강 진출할 경우, 3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는 상황이었다. 설마 뒤에서 조종?

KBS 한준희 축구해설위원도 프랑스의 16강 탈락을 예언하였다.

사실은 이미 2007년에 무한도전에서 예고된 일이었다 카더라.

나이지리아도 16강 탈락 이후 프랑스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 쪽은 대통령이 직접 "이제 니네 못믿겠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고친다!" 라면서 나이지리아 축협 물갈이를 시도했는데, 이에 FIFA는 처음에는 프랑스의 그것을 예로 들면서 경고조치만 내려오다가 나중에 정부 인사가 축협관련 인사에 들어갈 조짐을 느끼고는 가장 강력한 처분인 나이지리아 축구팀(국대/클럽 전부)의 국제대회 출장 금지 처분을 내렸다. 경향신문 즉 축협에 정부 인사가 들어감으로서 축협이 정부의 힘에 휘둘리는 잠재적인 가능성 때문에 이런 조치가 나왔는데, 이 통보를 들은 나이지리아 정부가 데꿀멍 "우리가 잘못했으니 좀 봐주세요. 징징" 하면서 눈물로 자비를 빌면서 축협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자 그제서야 제한을 풀었다.

이를 국력 차이에서 기인한 걸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애초에 나이지리아는 대놓고 정부에서 협회의 일에 관여하려다 그런 거고 프랑스의 경우 선수단 청문회 몇 번 하긴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직접 협회 일에 개입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징계를 내릴 이유가 없다.

몇년 뒤인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조별예선에서 보여준 카메룬의 내부분열과 멘탈 문제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내부의 상처가 얼마나 곪았는지는 조별예선의 추태만 봐도 알 수 있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2014년 6월 19일까지도 얼마나 심한지 진단조차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조별 예선 마지막 브라질전에서 조금은 나아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 대패하며 월드컵 참가국 중 뒤에서 1등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한국도 2014 월드컵을 준비하던 시기에 기성용윤석영SNS 논란과 이전부터 떠돌고 있던 축구대표팀 내의 해외파, 국내파 간의 갈등 논란이 거세지면서 당시 프랑스가 겪은 일들이 조금씩 재조명되었다. 대부분 이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서 국가대표팀이 내우외환을 극복하기를 바랐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다르게 반면교사는 커녕, 고쳐치는 모습은 전혀 없었고 결국은 더더욱 나쁜 결과만을 낳았다.
  1. 이미 유로 2008때부터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2. 특별한 장점이 보이지 않음에도 레몽 도메네크는 계속 그를 중용해서 혹시 양자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3. 아넬카는 트레제게 다음으로 티에리 앙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앙리 또한 아넬카의 이번 사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참고로 아넬카는 그가 뛰었던 거의 모든 소속팀에서 실력이라면 몰라도 성격 면에서는 좋은 소리를 못들었다.(…)
  4. 구르퀴프의 성격에 대해서는 너무 곱고 바르게 자라서 자기 주장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 주된 평가인데, 물론 프랑스 대표님 내에서라면 이것도 충분히 튀는 성격이랄 수 있겠다.(…) 다만 경기력이 계속 부진한데도 중용되는지라 애초에 주위의 불만이 많았다.
  5. 아넬카 본인이 레알 마드리드 시절 라울과 이에로의 주도로 왕따 당한 사실은 잊고 있는 듯.(…) 가해자가 된 피해자.
  6. 아넬카는 실제로 다른 동료들, 특히 구르퀴프에게는 패스하는 꼴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같이 왕따를 하던 리베리는 백패스라도 했고, 구르퀴프도 리베리에게 프리킥으로 패스해주는 모습을 보였건만...
  7. 구르퀴프, 요리스, 사냐 등은 즉석에서 반대하였지만 까일 뻔하고 데꿀멍하였다 한다.
  8. 사실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때부터 무재배를 많이 하는 등 엄청 고전하는 등 무언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본선 진출도 지네딘 지단과 같은 베테랑을 다시 불러서 가능했던것.
  9. 다만 멕세는 그시즌에 폼이 급속히 떨어져 부르디소한테 주전자리를 밀릴정도로 좋지않은 모습을 보이긴했다. 물론 독일월드컵 당시 멕세대신 3B의 붐송(....)을 뽑은걸보면 리그를 씹어먹었어도 안뽑았겠지만....
  10. 극우파의 대표자라고 할수 있는 장 마리 르펜은 98 월드컵 때에도 프랑스 대표팀에 흑인이 너무 많다, 프랑스 대표선수들이 국가를 부를줄 모른다 라고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11. 2010년 6월은 월드컵 본선 기간이라 FIFA 랭킹 업데이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