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포돌스키

(포돌스키에서 넘어옴)
갈라타사라이 SK No.11
루카스 요제프 포돌스키
(Lukas Josef Podolski)
생년월일1985년 6월 4일
국적독일
출신지폴란드 글리비체[1]
신체 조건182cm, 83kg
포지션세컨드 스트라이커, 윙어[2]
주로 쓰는 발왼발
등번호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10번
갈라타사라이 SK - 11번
유소년 클럽FC 07 베르크하임 (1991 ~ 1995)
1.FC 쾰른 (1995 ~ 2003)
소속 클럽1.FC 쾰른 II (2003)
1.FC 쾰른 (2003 ~ 2006)
FC 바이에른 뮌헨 II (2007 ~ 2008)
FC 바이에른 뮌헨 (2006 ~ 2009)
1.FC 쾰른 (2009 ~ 2012)
아스날 FC (2012 ~ 201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2015, 임대)
갈라타사라이 SK (2015 ~ )
국가대표
(2004 ~ 2016)
129경기, 48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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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신인상
루카스 포돌스키

손꼽히던 괴물신인 이었으나 기복이 아쉬운 윙어

A매치에서 만큼은 월드 클래스 포워드

국대스키 포돌이 스키

1 소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같이 폴란드 실레지아(슐레지엔) 출신의 독일 국가대표 축구선수.
애칭은 폴디(Poldi). 전 소속팀 FC 쾰른에서의 독보적인 활약으로 폴디 왕자님(Prinz Poldi)이라는 별명도 있다.

회사에선 경력의 반 가량을 불량사원으로 보냈지만 국대만 오면 시종 날아다녀서 진정한 애국자로 불린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국내 한정 별명으로 '국대스키'가 생겼다. 그래서 풋볼 매니저에서도 히든 능력치인 적응력을 5, 일관성을 9로 만들어놓았다(...) 대신 중요 경기 활약은 20!!![4]

애국자 포스에 힘입어 2006년 독일 월드컵때에는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이후 유로 2008에서도 레프트윙으로 출전하여 상대 팀의 우측면을 초토화, 폭발적인 돌파력을 보여주는 빼어난 활약을 대회 내내 선보이며 독일을 결승전까지 올리는데 일조한다.

2 클럽 활약

2.1 바이에른 뮌헨

그러나 이와는 달리 당시 소속 클럽인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비교적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첫 시즌에는 로이 마카이클라우디오 피사로에게 밀리고, 둘이 이적한 07/08 시즌에는 일명 토나오제라고 불리던 루카 토니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영입되면서 또 후보가 되었다. 그나마 08/09 시즌부터 점점 이 두 선수의 폼이 안 좋아졌지만, 포돌스키의 폼도 시망이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2.2 FC 쾰른

2009-2010 시즌에는 결국 친정팀 쾰른으로 이적하게 되었으나 27경기 2골이라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하게 된다. 이 때 세운 무득점 기록은 무려 1425분(...) 거기다 유일하게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던 국가대표로서의 입지도 무너질뻔한 일이 생긴다. 2009년 4월 1일 웨일즈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당시 독일 대표팀 주장이었던 미하엘 발락의 뺨을 때린 일로 그는 구설수에 올랐다. 본인은 부인했으나 그가 좀 더 열심히 뛸 것을 요구하는 발락에게 "Lauf selber du arschloch!"(직역하자면 "너나 뛰어라 이 똥꼬야!")라고 외쳤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5] 이후 5000유로의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국대에서 제명해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6]

그러나 요아힘 뢰브 감독이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으로 또 다시 차출하자 자국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게 된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뢰브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 월드컵에서는 역시나 대활약! 세대 교체를 진행하는 독일을 3위에 올리는데 한 몫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다.

국대스키가 어느정도냐면, 데뷔이후 2011년 시즌 포함해 클럽에서 236게임 85골을 기록했는데, 국대에선 95경기 43골 기록중이다.[7] 거의 경기당 골수 0.5(...) 유로 2012 덴마크전에서 만 27세 13일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는데 이는 당시 유럽 최연소 센츄리클럽 가입 기록이었다.[8]

사실 포돌스키가 '국대스키'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 계기는 역시 바이에른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시절 포돌스키는 좀 힘들 수 밖에 없었다. 포돌스키가 공격전반을 다 소화할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처진 공격수 자리와 왼쪽 날개 자리가 잘 맞는데 당시 바이에른의 공격진의 주축은 루카 토니와 클로제였다. 완벽한 골게터 타겟과 완벽한 이타적 타겟, 세리에 30골 득점왕과 2000년대 분데스 제일 공격수에게 대항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442의 측면 미들을 노리기에도 그 자리에는 프랑크 리베리슈바인슈타이거가 있었다. 아무래도 왼쪽의 리베리에겐 대항할 수가 없고,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대항하기에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에 선다는건 좀....

게다가 당시 바이에른의 공격 알고리즘은 대강 이랬다. 대놓고 루카 토니나 클로제에게 뻥 or 리베리가 다 알아서 하겠지 or 너무 리베리쪽에 수비가 몰리면 오른쪽에서 얼리크로스. 이와 같이 쌈빡한 매커니즘이었기에 포돌스키가 뛰기 힘들기도 했다.

포돌스키는 클럽이나 국대에서 봐도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나 왼쪽 측면 자리에서 빠른 스피드와 튼실한 피지컬을 이용해 직선돌파 혹은 강력한 킥력을 이용한 무식한 중거리가 최고의 장점인데 바이에른에서는 포돌스키에게 이런 공간을 허용해 주지 않았다. 그 공간은 공격수의 것이거나 그냥 리베리를 위해 비워뒀다. 게다가 교체출장도 잦았고...

09-10시즌은 18경기 2골로 그야말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음에도 요아힘 뢰브 감독은 포돌스키를 그대로 대표팀에 선발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폴디는 그 비난이 무색하게 월드컵에서 호주전, 잉글랜드전에서 강력한 왼발슛으로 득점포를 올리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독일의 3위에 일조한다. 그러자 월드컵이 끝나고 비난의 화살은 쾰른으로 향했다. 이렇게 멀쩡한 애를 도대체 어떻게 쓰길래 클럽에선 기록이 그 모양이냐고..

여하튼, 2010-2011 시즌에는 포지션을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를 오가는 프리롤 형태의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바꾸고 드디어 본 실력을 클럽에서도 발휘하는지 굉장한 활약을 펼쳤다. 소속팀인 쾰른은 전력이 불안정한 하위권팀인데 거기서 단연 군계일학, 가장 빛나는 선수가 당시 주장직을 맡고 있던 포돌스키. 32경기 13골 6어시스트의 상당히 준수한 스탯을 쌓았다. 이제는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포워드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한 상황.

...그런데 클럽에서 잘하니깐 이젠 바뀌어 대표팀에서 말썽이다. A매치 몇 경기째 골 못넣는건 고사하고 경기력도 부진한 상황. 유로 2012가 코 앞인데 최근 무섭게 치고 나오는 새파란 애송이인 안드레 쉬를레에게도 밀릴 지경이다. 한 곳에만 전념하는 타입인듯

설상가상으로 2011-2012 시즌이 시작하기 전, 소속팀 쾰른에서 한 시즌만에 주장직을 박탈 당했다. 원래 성격이 어른스럽고 리더십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좋지 않은 언행과 사고[9]를 자주 쳐서 주장직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이로 인해 쾰른의 폴커 핀케 단장과 스톨레 솔바켄[10] 감독이 리더쉽 부족이라고 하며 포돌스키와 마찰이 일어났고 결국 주장직을 브라질 수비수인 페드로 게로멜에게 넘겨주었다. 심지어 부주장 자리까지 사샤 리터에게 주며 제대로 눈밖에 난 상황. 이 같은 상황으로 언론에는 이적설까지 떴으나 어찌어찌해서 일단은 쾰른에 잔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속에서 2011-2012 시즌에는 29경기에 출전해 18골 8도움으로 팀 내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여 아주 좋은 활약을 펼쳤다. 여담으로 득점 2위인 클레멘스가 26경기에서 5골, 노바코비치가 17경기에서 4골을 기록할 정도로 그가 쾰른의 공격 혼자서 책임지고 있다고 할만큼 과언이 아니다. 국대용이란 말도 점점 옛말이 되어가는 듯. 하지만 분데스리가 안 보는 사람들은 이걸 모르고 여전히 포돌스키의 예를 들며 독일 선수들이 소속 클럽에서 못한다고 드립질한다.

시즌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소속팀이었던 쾰른이 전력 보강을 약속 해놓고 이행하지 않는다며 툴툴대며 구단과 계속 마찰을 빚어오더니 결국 아스날 FC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언론에 알려진 계약 세부 내용으로는 4년 계약에 이적료 1,300만 유로, 주급은 10만~11만 파운드를 받는다고 한다. 이적 시장 기간이 아닌 3월에 이적 협상이 이루어지며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양측 구단이 이적 완료를 시켰는데, 아스날측에서는 반 페르시에게 팀의 야망을 보여주고 유로 2012를 통해 폴디의 몸값이 오를것을 우려한 점이고 쾰른에서는 강등당하면 헐값에 포돌스키를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협상이 이뤄진 셈이다.

그리고 결국 쾰른은 분데스리가 2011-2012 시즌 17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강등을 당하게 되었다. 이적하기 전 소속팀을 강등의 위기에서 탈출시키며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던 포돌스키는 안타까움을 토로했고 쾰른 팬들은 강등당한 설움도 모자라 그들이 끔찍히도 아끼던 포돌스키를 눈물을 흘리며 보내야만 했다.[11][12]

2.3 아스날 FC

등번호는 9번으로 확정. 9번의 전 주인이었던 박주영은 30번으로 밀리고 이적시장 막판에 프리메라 리가의 셀타 비고로 1년 임대를 떠났다.과연 9번의 저주는 어찌될 것인가? 이걸 저주가 깨졌다고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3R 리버풀전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EPL 데뷔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4R와 이어진 챔스에서도 한골씩 기록, 세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시즌 초반을 보냈지만 9번의 저주? 그게 뭔가연? 먹는건가연? 부숴주마. 너의 그 저주를!

아스날이라는 클럽자체가 큰 기복을 보이는만큼(...) 폴디의 기복도 꽤나 있는 편. 하지만 절대로 실패한 영입은 아니다. 오히려 몸값에 비해 좋은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주급이 약간 아쉽긴하지만서도..
깁스와의 콤비네이션도 좋으며 수비 가담률이 좋아서 왼쪽이 뚫리는 일도 적고사..산토스제외(...), 이타적인 플레이와 반페르시좆까만큼의 강력한 왼발을 자주 보여준다. 거기에 이타적인 플레이는 덤. 함께 영입된 카솔라가 대박이라면 포돌스키는 최소 중박 이상은 쳐주고 있다.

37라운드 현재 리그 스텟만 11골 9어시, 거기에 챔스에서만 5골을 박아넣는 준수한 스텟을 자랑한다.[13] 스텟만 보면 정상급 윙어다. 기복이 심해서 그렇지...
거기에 같이 영입된 지루에 비해서 몰아넣은 적 없이 영양가도 만점인 골들이다.[14]

그리고 38라운드에서 코듣보의 골을 도우며 어시스트 1개 추가, 이로서 첫시즌 리그 10-10[15]을 달성하는 활약을 펼쳤다.

왼쪽 윙어로서 카솔라에게 밀린 기분이지만, 그래도 출전시간이 꾸준히 보장되는 중, 애초에 제대로 된 우승권 팀이라면 이런 훌륭한 선수들을 로테이션하는게 기본이다.

솔직히 첫시즌이란 것을 감안하면 초대박이다. 게다가 그가 조용했던 때는 분데스리가 기준으로 휴식기였기에 그의 실력을 탓할 수도 없다.

2번째 시즌인 13-14시즌, 페네르바흐체와의 챔스 플레이오프에서 햄스트링에 큰 부상을 입었다. 아스날의 팀 닥터가 ' 내가 본 햄스트링 부상 중 가장 끔찍하다 ' 라고 평할 정도로 .. 재활부터 복귀까지 대략 3개월이 걸렸고, 그 이후 폼이 좋지 않았다 ..
따라서 포돌스키는 끝없이 이적설에 휘둘렸고, 교체 당하면서 표정이 좋지 않은 모습도 보였는데 ..

부활했다!!! 리그 후반부에 들어서 아스날이 주전급 줄부상[16]이 당하며 박싱데이 이후 2월까지 유지했던 순위가 4위권으로 폭망하자, 다시 한번 폼을 끌어올리며 아스날을 구원했다.
스완지시티전에서 1:0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교체되자마자 골을 박아넣고 지루의 골을 어시스트하였고[17], 바로 다음 경기 맨시티에서 좌측을 뚫고 올린 크로스가 플라미니에 발끝에 걸려 동점골 어시스트에 성공! 그 뒤, 에버튼전에선 부진하였으나, 웨스트햄전, 헐시티전에 연속 멀티골을 쏘아올리며 팀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3개월이 넘는 장기부상을 끊었음에도 올 시즌 스텟은 벌써 12골 4어시스트.
멘탈도 좋고 경험도 풍부한 선수인만큼, 이적설은 쏙 들어가고 스쿼드 플레이어로 안고가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는 중.

가장 좋은 선택은 아스날에서 황혼까지 뛰다가 본인이 원하는데로, 은퇴 전에 쾰른으로 보내는 것이 아닐지.

2013-2014 시즌 팀의 마지막 경기인 FA컵 결승전에서 다소 좋지 못한 모습으로 60분만에 교체되어 나갔다. 팀은 연장 후반 터진 램지의 골로 우승! 일찍 교체되어 앙금을 품은(?) 포돌이는 경기가 끝나고 샴페인으로 벵거를 목욕시켰다.

2014-2015 시즌에는 나올 때마다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부상도 아닌데 못 나오고 있다(...) 갈라타사라이와의 조별리그 원정경기에서 선발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물론 이 경기 이후에도 벤치신세..

사실 여름 이적시장 막판에 떠날 가능성이 높았고 본인도 인스타그램에 이적을 암시하는 사진과 글을 올렸지만 올리비에 지루가 부상당하며 갑작스럽게 남게 된 감이 있었다.

2.4 인테르나치오날레

인테르로의 이적얘기가 있었지만 마테우스의 비판과 포돌스키 본인의 부인 벵거의 임대거부로 인하여 무산될것으로 보였다. 사우스햄튼과의 원정에서 부상으로 동행하지 않음으로써 이적설이 확산되고 벵거의 인정하는듯한 발언으로 팀을 떠날것으로 보이나 본인은 미러의 기사를 부인했으나 결국 1월3일 세리에A 인테르로 임대되었다.#
이적 후엔 자신에게는 출전을 보장해줄수있는 팀이 필요했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다.

데뷔전을 유벤투스와의 이탈리안 더비로 치뤘다! 후반전에 교체 출전하여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끝으로 사라진다
이후 골을 기록하긴 하지만, 임대생으로서의 활약은 더이상 보여주지 못하고 또다시 잊혀진 존재가 된다.역시 리그보단 국대지

인터 밀란의 만치니 감독이 원했던 모습은 함께 영입된 제르단 샤치리와 함께 마우로 이카르디, 마테오 코바치치등 젊은 선수들과 융화되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었는데 리그경기 절반정도인 18경기를 출전하며 1골 1도움만을 기록, 버로우를 탄 채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로 아스날로 복귀한다.

복귀하며 자신의 인터밀란 행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내용인데, 임대생에게 18경기 910분가량을 준 만치니감독에게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출전시간이 부족했다고 징징대는 모양새다... 자신의 1골 1도움 기록을 잊은듯하다.뱅거에게 내쳐진데에는 이유가 있다

2.5 갈라타사라이

2015년 7월 4일 갈라타사라이에 입단했다. 이적료 최대[18] 300만 유로에 연봉도 300만 유로이며, 계약기간은 3+1년이다.

3 국가대표

국대에서만 잘하는 선수들의 표본.
왠지 이 생각난다.
왠지 친정팀 출신들이 많은 것 같지만 넘어가자.
같은 국대에도 이런 후배가 있다

만샤프트에서의 포돌스키는 날두보다 강력하다

독일의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2004년 6월 6일, 헝가리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에 첫 데뷔했으며, 유로 2004에도 발탁되었다. 이후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투톱을 맞추면서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클로제와 함께 맹활약을 펼치며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으며 대회 3골을 기록해 득점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메시, 호날두, 루니 등을 제치고 영플레이어상을 받았다.

이후 유로 2008과 2010 월드컵, 유로 2012에도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 클럽에서의 모습에 비해 국가대표에서는 훌륭한 모습으로 애국자(...)로써 가치를 보여나갔다. 유로 2012 대회 도중 A매치 유럽 선수 최연소 100경기 출장 기록[19]을 달성하게 되었다.

2013년 5월 30일 에콰도르와의 A매치전에서 9초만에 골을 넣었다. A매치 역대기록 2위.[20]

에콰도르 수비수의 실책덕...이긴 하지만 1위가 8.3초만에 골이라는걸 생각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이날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면서 국대스키인걸 한번더 인증

본인은 독일 국가대표임을 항상 인식하고 있으나 정체성의 뿌리는 폴란드인으로 규정하는 듯 하는 면모를 여러 인터뷰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모국어는 폴란드어이다. 선수생활 초기에는 독일어가 서툴어 조롱을 많이 당했고 이 때문에 당시 자신을 놀림거리로 삼던 몇몇 언론에 호의적이지 못하다. 이 중 일부와는 지금까지도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을 정도. 유로 2008 폴란드전에서 포돌스키는 혼자 두 골을 넣어 독일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으며 골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독일 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는 포돌스키를 뛰어넘는 역대급 애국자가 등장하여 콩라인...

2014 월드컵 이후 국대에서도 점점 예전같은 모습이 줄어들면서 점차 서브 자원으로 밀려났지만 뢰브 감독은 포돌스키를 여전히 신뢰하여 국가대표에 꾸준히 선발했으며 유로 2016을 마지막으로 포돌스키는 독일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통산 A매치 129경기 48골.

4 여담

고향은 폴란드이나 쾰른 시를 제 2의 고향으로 인식하며 1.FC 쾰른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당시에는 무려 자비로 의상을 준비해 해마다 열리는 로젠몬탁 페스티발에 참가해 거리 곳곳에 과자를 뿌리곤 했다. 쾰른 시민들도 쾰른의 아들로 불러대며 그를 매우 좋아하여 어떠한 부진을 겪어도 쉽게 욕하지 않고, 심지어 가난한 시민구단인 FC 쾰른이 이적료가 없어 포돌스키를 되사오지 못하자 자발적으로 그의 사진을 구매하는 등 나름대로 돈을 모아 이적료를 마련한 일은 유명하다. 쾰른 복귀 후 부진에 허덕일때도 포돌스키를 욕하지 않고 대신 '우리 폴디한테서 신경꺼라 언론 XXX들아'라는 투의 플랜카드를 경기장에 걸었다.

쾰른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기에 아스날에서 뛰는 지금도 부상중이거나 라인업에서 제외될때면 독일로 날아가 쾰른의 홈경기를 관전하기도 하고 폴디의 아내와 자식도 여전히 쾰른에서 생활중이다. 쾰른이 빅매치를 이기거나 하면 광속으로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한다.

한때 바이에른 뮌헨에서 FC쾰른으로 돌아올때 F1레이서 슈마허가 포돌스키를 위해 성금을 일부 지원한 바가 있어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포르투갈전 전날에 6개월전 스키장의 사고로 혼수상태의 슈마허를 위해 포르투갈전을 슈마허를위해 뛰겠다고 말한바 있지만 당일날 기적적으로 슈마허가 혼수상태에서 회복하면서 훈훈한 광경이 목격돼었다.역시 악운을 없애는 이매진 브레이커

상술한대로 쾰른에서의 인기가 엄청나 쾰른에서 뛰지않는 지금도 쾰른지역의 한 맥주업체의 광고 모델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바이에른 뮌헨에서 이적한 이후 인터뷰에서 뮌헨에 별 감정은 없다고 얘기했지만 아스날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을때 미칠듯이 뛰어다니고 골까지 넣어대는걸 보면 감정이 아주 단단히 있는듯

준수한 얼굴에 개구쟁이, 악동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대내외적으로 사생활, 특히 이성 문제 쪽은 매우 깨끗한 편이며,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패리스 힐튼이 그에게 '만나지 않겠느냐'라는 투로 이야기하며 큰 관심(...)을 표한 바 있으나 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갑의 누군가가 생각난다 이후로 17세 정도부터 교제하며 몇 년 전부터 동거해오던 폴란드계 여성과 2011년에 결혼을 올렸으며 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지구 반대편의 어느 국가에서는 포돌스키와 비슷한 이름의 모 경찰 캐릭터를 포돌스키의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그와 함께 애국자라 불린 클로제와 비슷한 면이 많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폴란드 출신이라는 외에 두 사람 모두 아버지는 축구 선수 어머니는 핸드볼 선수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그리고 둘다 폴란드 출신인데 독일국대에서 미친듯이 활약했다.

5 경력

5.1 우승 기록

  • 아스날 FC (2012/13 - 2014/15)

5.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2002/031.FC 쾰른 2독일 지역 리그10----
2003/041.FC 쾰른 2독일 지역 리그10----
2003/041.FC 쾰른독일 분데스리가191010--
2004/051.FC 쾰른독일 2. 분데스리가302425--
2005/061.FC 쾰른독일 분데스리가321210--
2006/07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243271
2007/08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5540125
2007/08FC 바이에른 뮌헨 2독일 지역 리그20----
2008/09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463142
2009/101.FC 쾰른독일 분데스리가27241--
2010/111.FC 쾰른독일 분데스리가321321--
2011/121.FC 쾰른독일 분데스리가291820--
2012/13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33112164
2013/14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2084331
2014/15아스날 FC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700053
2014/15인터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17110--
2015/16갈라타사라이 SK터키 슈페르 리그29123182

5.3 개인 수상

  • 2004/05 2.분데스리가 득점 왕
  • 2006 FIFA 월드컵 최우수 신인선수 상
  • 유로 2008 베스트 일레븐
  • 유로 2008 실버 부츠
  • 은월계수잎 훈장[21] : 2006, 2010, 2014
  1. 독일어 지명으로는 글라이비츠.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후 독일 국적을 선택하였다.
  2. 최전방도 뛸 수는 있으나 활약상은 별로라서 최전방은 도저히 쓸 공격수가 없을 때에만 기용된다.
  3.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3위, 역대 득점 3위
  4. 근작에서는 그래도 적응력을 10 초중반까지는 올려줬다. 다만 일관성은 여전히 형편없고, 중요 경기 활약은 최고급. 반면 프로의식이 비례해서 내려갔다.
  5. 그런데 독일에서 Arschloch라는 욕은 영어의 Asshole과 사전적인 의미는 같지만 어감은 영어 쪽보다도 훨씬 강하고 모욕적인 단어이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똥꼬라는 욕과는 강도가 비교불가다. 오히려 '씨X놈' 정도는 되어야 걸맞을 정도.
  6.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으로 팬을 꽤 잃었다. 특히 발락의 팬들이나 당시 발락이 몸 담고 있던 FC첼시의 팬들은 거의 다 등을 돌렸다. 그러나 엄격한 위계질서가 강한 우리나라에선 유독 '주장에게 대든 괘씸한' 포돌스키로서의 이미지만 부각된 데 비해 당시 독일에서는 통독세대의 비중이 큰 현 독일대표팀에서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고압적으로 선수들을 다루는 발락의 태도 또한 같이 비판받았다. 이는 동독 출신으로 공산주의 사회의 경직된 문화를 보고 배운 발락의 어쩔수 없는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7. 이 수치는 리오넬 메시의 국가대표 경기 96경기 45골에 필적한다. 국대에선 메시급
  8. 이 기록은 1986년 3월 30일 생인 세르히오 라모스가 2013년 3월 26세 357일의 나이로 2014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4차전 핀란드와의 경기에서 100번째 경기를 달성함으로써 얼마 뒤에 깨어졌다. 전 세계를 기준으로 최연소 센추리 클럽은 차범근의 24세 139일.
  9. 그 무렵 친 사고 중 가장 큰 것이 누리 사힌 3:0 드립 사건이었다. 도르트문트의 선수였던 누리 사힌과 태클 문제로 인해 시비가 붙자 면전에 대고 손가락으로 3과 0을 표시하며 독일 대표팀에게 3:0으로 패한 터키 대표팀을 조롱했다. (누리 사힌은 외질과는 달리 독일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터키 대표팀을 선택한 터키 국가대표 선수이다. 둘이 비교되는 바람에 당시 이로 인해 본의아니게 외질이 터키 국민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게 만든 장본인) 당시 경기 영상을 살펴보면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해당 숫자를 만들면서 drei, null(3, 0)이라고 말하는 입모양이 잡힌다. 그리고 포돌스키가 이렇게 조롱을 한 지 5분도 채 안 되어 쾰른은 사힌에게 한 골을 내 주었다.(...) 골을 넣은 직후 사힌이 포돌스키 바로 앞에서 골 세레머니를 하고 그 모습을 보며 뒷머리를 긁는 포돌스키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중계카메라에 실렸다.
  10. Ståle Solbakken. 스웨덴 출신 감독이다.(스탈레 솔바켄으로 읽는 사람들이 많으나 å는 아 보다는 오 발음에 가깝다.) 이전 소속팀 코펜하겐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까지 올려놓아 분데스리가로 스카우트 되었으며 지도 스타일은 엄격한 스칸디나비아식 스타일.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모든 선수를 공평하게 대하며 감독의 권한을 키우려 노력했다. 무슨 짓을 해도 예쁨받는 '쾰른의 아들' 포돌스키를 위시한 스타플레이어 몇 명에게 무게추가 기울어있고 그날그날 경기때마다 해당 유명선수들의 컨디션에 따른 분위기를 많이 타는 쾰른의 무게중심을 자기쪽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를 많이 했으며 포돌스키의 주장직 박탈은 이와도 무관하지 않다.
  11. 수정 전에 험한 욕을 날린 쾰른 팬들도 다수였다고 적혀있었으나 사실과 다르다. 프리시즌에 치뤄진 아스날과 쾰른의 친선경기에서도 쾰른팬들은 페널티킥 상황을 제외하고는 포돌스키에게 전혀 야유를 하지 않았다. 이적 후에도 폴디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는 쾰른 팬들의 호의적인 리플들이 가득하다.
  12. 거기다 2012년 1월에 아스날로부터 거액의 오퍼가 왔으나 포돌스키는 팀을 잔류시키기 위해 겨울시장에서 이적하는건 거절했다
  13. 여담이자면 FA컵에서도 1골 1도움
  14. 스토크시티전 결승골, 리버풀전 시즌 첫골, 챔스 몽펠리에 추격,쐐기골 바이에른전 골 등, 하지만 어시는 몰아서 쌓았다 본격 어시트릭 등.
  15. 11골 10어시
  16. 메수트 외질, 아론 램지, 잭 윌셔, 시오 월콧등이 싹다 최소 2달 이상의 장기부상을 끊었다. 거기에 월콧은 아예 시즌아웃.
  17. 다만 플라미니의 운없는 자책골로 비긴 아쉬운 경기였다.
  18. 250만 유로를 일단 지불하고 50만 유로는 옵션조항이 붙어있다
  19. 이 기록은 이후 스페인의 세르히오 라모스에 의해 깨지게 된다.
  20. A매치 역사상 가장 빠른 골은 1993년 산 마리노의 다비드 괄티에리가 잉글랜드전에서 기록한 8.3초다.
  21. 독일 내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들에게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