Андрей Тарковский
(1932. 4. 4 - 1986. 12. 29)
" 만일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건 타르코프스키 같은 감독 덕분일 것이다. "
ㅡ 잉마르 베리만
1 개요
러시아의 영화 감독. 풀네임은 "안드레이 아르세니예비치 타르코프스키" (Андрей Арсеньевич Тарковский)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사람이며, 많은 영화팬들과 평론가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거장이다.
2 소개
삶과 꿈과 시간을 시적인 영상에 담아내는 것이 특징으로, 이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90년대 한국 극장가에 예술영화 붐이 일었을 때 상징과도 같았던 존재. 그의 작품들을 찬양하는 관객들도 많은 반면, 예술영화에 익숙치 않거나 취향에 맞지 않는 이들은 극중 상징들과 지루한 구성, 롱테이크 장면들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작품들이 사건보다 흐름으로 진행되다보니, 영화가 좀 지루하기로 유명한데(...) 이는 감독이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취향이 안 맞는 사람들은 굳이 자신의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 의도치곤 결과가 패기 넘친다
3 생애
1932년 4월 4일, 자브라이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는 소련의 유명한 시인이며 모스크바 대학 교수였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 이바노브나 비슈나코바는 인쇄소 교정공이었다. 불행히도 1936년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고,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여동생 마리아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이 시절, 그의 어머니는 톨스토이의 책을 자주 읽어주셨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학교를 다녔고, 음악학교 과정도 함께 이수하였다. 3년간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동양어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일본어에 특히 관심을 가졌으며, 고대 일본 시 양식인 하이쿠를 즐겨 읽었다.
1954년부터 1956년까지 시베리아에서 지질학을 공부했다. 그는 이 시기가 자신의 `단련의 시간'이었으며, 이때 `관찰의 훈련'을 쌓았다고 말한다. 1956년, 국립영화학교 VGIK 에 입학했으며, 1961년,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을 졸업작품으로 낸다.
이후 영화 감독으로 작품활동을 계속 하면서, 구소련당국에게는 자본주의적인 예술성향을 가졌다고 비판을 받았다. 결국 1984년 구소련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기자회견과 함께, 아들을 남겨두고 서방으로 망명하였다.
1985년, 암 판정을 받은 타르코프스키는 1986년 파리에서 사망하게 된다.[2] 생이별해야 했던 아들과는, 다행히도 구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 투병생활 중이던 1986년 재회하였다.
4 일화
그의 일기를 모은 책인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97년에 출판되었다)에서 솔라리스를 찍은 후 실직상태로 점령술사 에게 앞으로 내가 몇 개의 영화를 만들수 있을 것 같냐고 묻는데, 점령술사가 "네 편."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겨우 네 편?"이라고 화를 내자, 곧이어 그가 "아주 좋은 네 편."이라고 답했다. 그 후, 타르코프스키는 거울, 스토커, 노스탤지아, 희생을 만들고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비슷하게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었던 동료 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가 날조된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당하자 당국에 탄원서를 보낸 적이 있으나 무시당했다.(...)
생전엔 구로사와 아키라랑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둘이 만나서 술 마시다가 〈7인의 사무라이〉 주제가를 합창할 정도였다고.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
5 연출작 일람
공식적인 장편영화는 7편이며, 단편까지 더할 경우 총 10편이다.
100px | (단편) 킬러 Убийцы (1956) ---- 타르코프스키가 영화학교 학생 시절에 만든 단편 영화. 같은 학교에 다니던 두 친구와 함께 제작했으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만들었다. |
(단편)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3] Каток и скрипка (1961) - 바이올린을 켜는 소년과 로드롤러를 모는 노동자 청년 사이의 우정을 다룬 영화. 단편이지만 북미에서 DVD로도 출시된 바 있고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상영하기도 하였다. 타르코프스키가 학생영화로 만든 작품이지만 제작은 모스필름의 아동영화부에서 맡았다. 작품을 제출하고 가장 높은 등급의 점수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 |
이반의 어린 시절 Иваново детство (1962) 주인공 이반은 소년으로, 독일군 때문에 가정이 박살난 경험때문에 독소전쟁의 첩보전에 자원한다. 그런데 부대장은 소년에게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그를 군사학교로 보낼려고 하지만 상부에서 어리기 때문에 의심을 덜 받는다고 무시한다. 그런데 나중에 베를린에서 발견된 서류에 의하면 빨치산 취급을 받아서 사살되었다. 여기 나온 소년은 안드레이 루블료프에도 나온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영화의 비판에 대해 실존주의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그에 대해 변론을 쓰기도 했다. | |
안드레이 루블료프 Андрей Рублёв (1966) 15세기 러시아의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전기 영화. 말만 '전기 영화'지, 영화 전체가 거의 픽션이다(...) 총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삶과 현실과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 |
솔라리스 Солярис (1972) 본격 SF 심리 로맨스 좀비 예술영화(...) 동유럽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 불리기도 한다. | |
100px | 거울 Зеркало (1975) 촬영과 편집이 가장 요란한 작품이자, 타르코프스키 영화 중 가장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품. 영화 자체는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
스토커 (잠입자) Сталкер (1979) 근미래 SF 영화. 제목 그대로 금지구역에 잠입하는 이야기. | |
노스탤지아 Ностальгия (1983) 향수와 구원에 대한 영화. 칸 영화제 공개 당시 극찬을 받았으나,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에서 쫓겨나 이탈리아로 망명한다. | |
(단편) 여정의 시간 Tempo di Viaggio (1983) -- 노스탤지아의 시나리오 작가인 토니노 게라[4]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이며, 이 여행은 노스탤지아 제작의 토대가 되었다. "여행의 계절"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문 제목은 Voyage in Time. | |
희생 Offret (1986) ---- 타르코프스키의 유작. 제목 그대로 '희생'에 대한 영화이며, 잉마르 베리만에 대한 경의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
6 외부 자료
-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두레
- 타르코프스키의 삶과 작품들 - 정성일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대하여 - DVD프라임
- nostalghia.com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팬사이트 (영어)
- ↑ 더 졸린 영화들이 수두룩하나, 타르코프스키가 가장 유명하다보니 얼떨결에 상징 같은 것이 돼버렸다(...)
- ↑ 여기에 대해서는 한때 구소련 당국이 암살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스토커에 스태프로 참여했던 부인과 배우가 같은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점 때문에, 〈스토커〉를 촬영했던 장소 근처의 공장 탓이 아니겠느냐는 설도 있다.
- ↑ 원 제목은 〈로드롤러와 바이올린〉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국내 영화제나 네이버 영화 등에선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이라는 제목으로 표기되었다.
- ↑ 이탈리아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1920~2012) 타르코프스키는 물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테오 앙겔로풀로스, 페데리코 펠리니 등 거장들과 작업한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