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중 숙소에서 연습할 때는 좋은 성적을 올리지만 막상 대회나 방송경기에 나가면 OME급 경기를 펼쳐 시청자들을 실망시키는 선수들을 말한다. 즉, 이영호나 허영무와 같이 방송경기에서도 잘하고 연습실에서도 잘하면 연습실 본좌라고 하지 않는다. 비슷한 용어로는 온라인 본좌와 하부리그의 본좌 등이 있다.
보통 신인급 선수들이 방송경기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거나, 지독히 운이 좋지 않아 이런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붙는 일이 많다. 보통 새가슴과 일맥상통한다.
야구로 치면 2군 본즈, 불펜에서 몸풀때만 잘한다는 '불펜 선동열', 패전처리때만 잘한다는 '패동열' 등이 있으며, 오키나와에서 있는 사전경기에만 잘 던지는 선수에게 오키나와 커쇼같은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비슷한 표현으로 솔랭전사가 있다.
일본 개그계에서도 비슷한 말로 '대기실 개그맨(가쿠야게닌)'이라는 말이 있다.[1]
한국이 외국인 용병에게도 적응 타령을 하는 편이지만, 실제로 방송 경기와 관중이 있는 경기를 맞는 선수의 자세가 달라지고 심리적 적응이 필요한만큼 선수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2 연습실 본좌의 계보(?)
초창기 프로게이머 중 연습실 본좌로 유명한 선수는 이재훈과 문준희가 있다. 그리고 이후에 이학주와 주영달 등이 피씨방의 XXX 시리즈를 양산시키며 새로운 연습실 본좌로 떠올랐다.
2.1 이재훈
가히 초대 연습실 본좌라 할 수 있는 선수이다. 당시에는 '온라인 본좌'란 명칭으로 불렸다. 배틀넷 상에서 수 많은 상대를 압살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의 투게이트 옵드라는 알고도 막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종족도 매우 잘해서 저그, 테란으로 GO 팀원들의 연습 상대가 되어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때 이재훈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연습 방법은 바로 "상대방 아이디로 연습상대 해주기"로 특히 이재훈이 실제 상대의 플레이 스타일을 잘 따라해서 GO팀원들이 많은 도움이되었다고 인터뷰로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 경기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특기인 테란전을 제외하면 나머지 종족전은 평이했으며 개인리그와도 인연이 없어 단 한번도 4강 문턱을 밟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인 03~05년 한번 떨어지면 지옥이라는 피시방 예선을 수차례 통과하고도 최종전이나 순위 결정전, 듀얼 토너먼트에서 수차례 탈락할 만큼 스타리그와 연이 없다. [1]
그의 마지막 스타리그가 된 올림푸스때는 스타리그 진출이 너무 기뻐서 스타리그 통과자한테 주는 이름표를 계속 달고 다녔다고 한다.
이윤열과의 경기에서 일명 '50게이트 사건'이라 불리는 드라마틱한 역전패를 당한 적이 있다. 또한 '일부는 시즈모드 됐고 일부는 퉁퉁퉁퉁퉁퉁!'으로 유명한 기요틴에서의 대 임요환 전 역시 유명하다. 어째서인지 패배한 경기의 임팩트가 크다..
그래도 우주닷컴 MSL에서 프로토스의 재앙 박성준을 처절하게 짓밟아준 것과 선수 생활 막판에 2005년 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을 따며 비운의 선수 이미지를 벗게 된다.[2] 이후에는 은퇴하여 코치로 활동 하다가 그만두었다.
2.2 문준희
연습실 본좌의 전설. 아마추어 시절 이윤열과 온라인 대결을 펼쳐 5전 전승을 거둔 일화는 유명하다[3]. 이후 프로가 된 문준희는 잘 생긴 외모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방송 경기 성적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통산 5승 27패(...). 데뷔해에 KPGA 투어 4차리그에 진출해서 엑스트라 매치에 배정됐는데 9전 전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거두고 광탈.
그후 3년만에 처음으로 온게임넷 PC방 예선을 뚫고 올라간 문준희는 다음 다이렉트 듀얼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김정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생애 첫 스타리그 진출의 가능성을 엿보았으나 이어지는 승자전에서 임요환의 채팅러시[4] 낚여 패배, 그리고 이어진 최종전에서 삼성준에게도 지며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만다.
2004년, 팀리그 예선에서 POS가 SKT T1과 만난 적이 있는데, 이때 선봉으로 출전하여 7전 4선제에서 3연승을 거둔 적도 있다. 상대가 이창훈, 임요환, 박용욱... 그러나 최연성에게 역올킬 당했다.
임요환의 채팅러쉬에 당한 이후 다시는 개인리그 문턱을 밟지 못했으며 프로리그에서도 지지부진한 활약을 보였다. 2006년 전기리그 결승전에서는 깜짝출전하여 박태민과 맞붙는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도 드라군의 사업을 안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며 박태민에게 승리를 헌납한다. 그리고 그는 두 번 다시 방송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2.3 김윤환(T)
이영호를 데려오기 전, KT 롤스터에서 랭킹전 1위를 도맡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 경기만 나오면 자꾸 패하며 유망주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2007년 들어서는 에이스결정전에도 출전하는 등 신뢰받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고, 이영호가 급성장하는 바람에 출전기회를 잃어 STX SouL로 이적해 재기를 꾀했지만 순탄치않아 은퇴 후 KT 롤스터에 코치로 재입단했다. 하지만 테란 코치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해냈다.
2.4 이학주
일명 'PC방의 최연성'. 오프라인 예선에서는 마치 최연성과 같은 패기를 보였기에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를 줄여 피중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피씨방의 괴물, 피연성 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다. 통산 성적은 25승 51패. 개인리그 전적의 대부분이 듀얼 토너먼트와 서바이버 토너먼트와 같은 하부리그에 집중되어 있다. 하부리그 통산 전적은 10승 17패.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거진 2년간 오프라인 예선과 하부리그 탈락을 반복하였다. 결국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스타리그와 MSL의 본선 문턱을 밟아보나 양 리그 모두 광탈하였다.
사실 이 선수는 프로리그 성적도 딱히 좋지 않았고 연습실 성적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오프라인 예선에서만 힘을 발휘한 특이한 케이스. 연습실 본좌라는 표현보다는 피씨방(오프라인)의 본좌라는 말이 어울린다.
2.5 이영호(P)
이영호는 위메이드 연습생 시절에 주성욱과 1,2위를 다툴 정도로 연습실 최강이였다고. 하지만 프로리그에서는 짭영호일뿐(...)
2.6 주영달
PC방의 마에스트로라 불리며 이학주와 대극을 이룬 선수. 온게임넷 오프라인 예선에서는 부진했지만 MSL의 하부리그인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꾸준히 출전하며 피재윤, 피에스트로 등의 별명을 얻는다. 통산 서바이버 토너먼트 성적은 9승 14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MSL 진출을 하지 못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년 가까이 하부리그에 머물며 그가 거둔 성적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학주와 마찬가지로 프로리그에서도 딱히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2011년까지의 통산 전적이 29승 45패.
2.7 정윤종
SKT 내부전에서 1군상대로 정윤종이 승률 80% 이상 나왔었고 내부랭킹전에서 1.정윤종 2.김택용 3.정명훈 아니면 1.김택용 2.정윤종 3.정명훈 이렇게 병행시즌 전까지는 이렇게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스타2에서 기량이 만개해 2회 우승, 1회 준우승을 달성했으니 이 항목에 작성된 나머지 선수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성적을 남겼다.
2.8 박종수
PC방의 혁명가, PC방의 김택용이라 불리는 인물. 앞의 이학주와 주영달에 비하면 인지도가 약간 떨어진다. 스타리그 36강을 포함한 통산 하부리그 성적은 2승 12패. 2004 스카이 프로리그에서 신인왕을 수상하고 팀플에서도 여러모로 활약하는 등, 프로리그에서는 소울의 토스카드로 꽤 활약했지만 개인리그 포텐셜은 터지지 않은 선수. 그래도 빌드나 판짜기 능력은 뛰어나 소울팀의 토스에 큰 도움을 주었고, 현재는 코치로 보직전환했다.
3 하부리그의 본좌
연습실 본좌와 비슷한 개념. 듀얼 토너먼트, 서바이버 토너먼트 등의 하부리그에서는 맹활약하여 메이저 리그에 종종 오르나 이후 광탈하여 다시 하부리그를 지배하는 순환을 반복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 안기효가 가장 유명하며 고인규, 진영수 등도 이름 높다.
3.1 안준호
프로게이머 시절의 이름인 안기효로 유명한 하부리그의 제왕. 하데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7년 스타 챌린지에서 보여준 리쌍 격파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자세한 것은 안준호(프로게이머) 항목 참조.
3.2 고인규
MSL의 하부리그를 제패한 자. 서바이버 토너먼트의 황제를 줄여 서황이라고 불린다. 한 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16연승을 질주하며 무패를 자랑했으며[5] 그 다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도 2승 1패로 MSL을 진출하며 서황의 위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17번째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1승 2패로 탈락하며 연속 진출에 실패한다. 세 시즌만에 다시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올라간 고인규는 2010년 11월 11일에 있었던 피디팝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또 한 번 1승 2패로 고배를 마시며 MSL 진출에 실패한다. 2011년 3월 17일에 열린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는 2연패로 광탈. 그리고 서황의 칭호는 서바이버 토너먼트 20연승을 달성한 염보성에게 내줬다.
3.3 진영수
MSL 32강의 최강자. 고인규보다 한 단계 위 리그의 지배자다. 32강은 듀얼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뤄지는데 진영수는 9회 연속으로 32강을 돌파했다. 통산 32강 성적은 18승 3패. 이 경이적인 연속 진출은 그가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스캔들에 휘말리며 프로게이머 자격을 박탈당하고 나서야 중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