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에 집행된 출시 광고.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긴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애국심 마케팅이다.[1]
1 개요
오스틴 메트로(Austin Metro)[2]는 1980~1997년 사이에 만들어진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슈퍼미니급 해치백 소형차이다.(링크) 본래 클래식 미니의 후속 차종으로 계획되었다가, 미니보다 한 등급 위의 차로서 분리되어 판매되었다.
2 배경
사진은 1977년에 만들어진 ADO88의 주행 프로토타입. |
본래 오스틴 메트로가 개발되기 전에도, 미니의 후속차종 프로젝트는 1968년에 알렉 이시고니스가 기획한 미니 9X, 1970년대 초반에 브리티시 레일랜드에 의해 기획된 ADO74 프로젝트 등이 있었는데 1974년부터 ADO88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메트로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니의 차체 하부, 엔진 안에 변속기가 들어가 있는 구조의 A-시리즈 1리터와 1.3리터 엔진, 하이드라가스(Hydragas) 유압 서스펜션을 비롯한 많은 부품들을 미니 등의 기존 BL차들과 공유했고, 때문에 미니 특유의 불편했던 운전 자세와 변속하기 힘든 구조의 변속기 등도 메트로에 고스란히 들어가있었다.[3]
또한 하이드라가스 서스펜션은 기존의 다른 서스펜션에 비해 크기가 작아 실내공간을 당시로서 상당히 넓은 수준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으나, 비용절감을 이유로 같은 서스펜션이 쓰이던 다른 차들의 앞뒤 연결식 구성 대신 좌우 연결식으로 적용되었다. 엔진 역시 연비와 성능을 위해 OHC 구조로 바꾸려고 했으나 시간과 비용 문제로 취소되었고, 대신 이를 참조해 저비용으로 OHC 버전과 비슷한 성능을 내는 “A-플러스“ 버전을 개발했다. 참고로 모델명은 메트로와 마에스트로, 매치의 3개 이름이 후보로 준비되었다가 최종적으로는 메트로의 이름이 선택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열차 및 버스 제조사였던 Metro Cammell(MCW)이 상표권 문제를 제기하자 BL에서는 서브네임을 붙인 "미니 메트로"의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4]
이 프로젝트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한때 로버 SD1의 작업을 같이 맡았던 설계자 스펜 킹(Spen King)과 디자이너 데이비드 배쉬(David Batch), 오스틴 알레그로와 프린세스 등의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이너 해리스 만(Harris Mann), 그리고 ADO88(이후 LC8로 개명)프로젝트에 우선권을 주고 밀어 준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새 경영자 마이클 에드워즈(Micheal Edwards)가 있었다.
본래는 1977년 말에 출시하려고 했으나 1978년 1월에 에드워즈가 메트로의 개발 상황을 처음 보았을 당시, 컨셉트를 잘 잡은 것에 비해 배쉬가 담당한 프로토타입의 디자인이 너무 밋밋하고 승용밴같다는 부정적인 고객 클리닉 결과 때문에 지연되었다. 이때 해리스 만과 로저 터커(Roger Tucker), 고든 스케드(Gordon Sked) 등의 디자이너들이 호출되어 5주간 디자인을 보수해 새로운 앞모습과 범퍼 스포일러, 캐릭터라인, 평평한 테일게이트 대신 장착힌 꺾인 디자인의 테일게이트가 장착되어 디자인이 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실내도 개선되어 당시 BL이 보유하고 있던 안전실험차(ESV)의 요소들이 반영되기도 했다.
3 오스틴 메트로 (1980 ~ 1990)
사진은 1983년식 오스틴 메트로 자동변속기 사양
"A British Car to Beat the World(세계에 대항할 영국차)" - 1980년 출시 당시 광고.
그렇게 해서 1980년 10월에 출시된 ADO88(LC8) 오스틴 메트로는 롱브릿지 공장에 새로 추가한 로봇화 공정과 함께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새로운 국면을 도맡게 되었다. 출시된 지 수년이 지난 차들을 간간히 손봐서 팔던 당시로서는 1976년에 나온 로버 SD1 이후로 처음 나온 신차라는 점, 르노 5와 포드 피에스타 등이 이끌던 슈퍼미니급 소형 해치백의 인기, 당시로서는 넓찍한 실내공간, 훌륭한 연비, 그리고 미니에 크게 뒤지지 않는 운전 재미가 합처져 큰 성공을 터뜨려 수년 간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한 덕분에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돈줄이 되어 주었다.(시승기) 때문에 BL/오스틴 로버 그룹에서도 1983년까지는 메트로를 중심으로 광고를 내보냈으며 첫 2~3년간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차로 등극했다. 심지어는 다이애나 스펜서도 자신의 승용차로 이 차의 저가 트림을 선택해 1984년까지 타고 다녔을 정도였다.
998cc와 1275cc(즉, 1리터와 1.3리터) A-시리즈 플러스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가 주 배합이였으며 처음에는 3도어 버전과 승용밴만이 판매되었으나 1982년에는 고급형 트림인 "반덴 플라(Vandan Plas)"[5]와 MG 브랜드로 풀시되는 스포티 버전인 “MG 1300“[6]이 추가되었다. 또한 1983년에 MG 브랜드 라인업에 추가된 터보 버전[7]과 MG 메트로 6R4 랠리카의 활약도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이였다. 또한 이 해에는 리어 스포일러를 장착해 연비를 개선했고 변속을 어렵게 만들었던 유압 클러치를 캐이블식으로 바꾸어주었으며 1984년 후반에는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오스틴 마에스트로/몬테고에서 가져온 버튼을 적용한 새 인테리어와 5도어 버전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은 1989년식 MG 메트로 터보. 1984년 페이스리프트 당시의 디자인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BL차에서 흔히 터져나오던 품질 및 신뢰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메트로의 성공이 또다시 위기를 맞았고, 또한 메트로의 뒤를 이은 준중형 해치백 오스틴 마에스트로(Maestro)와 중형 세단 오스틴 몬테고(Montego)의 상업적 실패와 함께 BL(당시의 오스틴 로버 그룹)의 민영화까지 겪어야만 했으며 그 동안 다른 경쟁사에서 신차들을 출시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혼다와의 기술제휴와 로버 브랜드 외에는 BL에 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새 주인,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의 정책과 오스틴의 부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이유로 오스틴 브랜드가 1987년에 폐기되자 메트로는 사양별 라인업을 손보면서 휠과 데칼, 트림명 등을 바꾸거나 1989년에 그동안 A-시리즈 엔진에 대응이 안되던 무연휘발유의 사용에 대응하기 위해 3도어 모델에 개선된 연료 필러 캡을 적용하는 등의 소소한 디자인 변경으로 버티면서, 마에스트로, 몬테고와 함께 1990년까지 모델명으로만 판매되는 수모를 맞아야만 했다.[8]
피아트 우노, 포드 피에스타, 푸조 205, 오펠 코르사를 비롯한 다른 경쟁차들이 출시되면서 5단 변속기의 부제와 낡아가는 외관 및 엔진과 같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10년간 판매량을 꾸준히 유지해 1백만대 이상의 생산대수를 기록했고, 한때 포드 에스코트를 제외하면 판매량으로 맞설 차가 없었을 정도였다.
3.1 MG 메트로 6R4(1984~1987년)
1984년에 "윌리엄스 그랑프리 엔지니어링(Williams Grand Prix Engineering)"에게 외주를 주어 생산이 시작된 이 랠리카는 WRC의 그룹 B 레이싱카 규정에 맞추어져 제작되었으며, 다른 랠리카들이 그랬들이 기존의 메트로와의 공통점은 겉모습뿐이였다. 4륜구동 시스템에다가 데이비드 우드(David Wood)가 코스워스(Cosworth) 제품을 활용해 설계한 2991cc V6 DOHC 24밸브 410마력 엔진을 리어 미드쉽 구조로 장착했고, 다른 랠리카들과 달리 터보차저가 장착되지 않았다.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지붕과 철제 문짝을 제외하면 차체 패널 전방이 GRP로 제작되었고, 그룹 B 규정 충족을 위한 도로주행용 "클럽맨(Clubman)"이 250마력 엔진과 4만 파운드의 가격표를 달고 200대 한정 판매되었으며 20대 가량이 위에서의 41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규정 충족을 위해 200대를 체우느라 1985년에 공개되었으며, 오스틴 로버 그룹이 그해 11월부터 메트로 6R4와 함께 WRC 랠리 경기에 참전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영국 롬바드 RAC 랠리(Lombard RAC rally)에서 토니 폰드(Tony Pond)가 메트로를 타고 출전했고, 이때 란치아 델타 S4 2대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오스틴 로버 그룹에서는 WRC 경기에 메트로 6R4를 계속 출전시켰으나 몬테카를로, 스웨덴, 포르투갈, 코르시카 등에 참전한 1986년 시즌 동안에는 메트로 6R4의 V6 엔진에 여러 자잘한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면서 제대로 된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덤으로 메트로 6R4가 목표로 삼았던 그룹 B 랠리가 여러 건의 사망사고로 완전히 폐지되면서 6R4는 살 길을 잃어버렸고, 1987년에 로버 그룹(오스틴 로버 그룹)이 랠리 경기에서 철수하면서 단종되었다. 다만 개인 소유의 판매용 6R4들은 나름대로 몇몇 소규모 랠리 경기에서 살길을 찾을 수 있었고, 1987년 당시 V6 엔진을 비롯한 6R4의 부품들은 "톰 월킨쇼 레이싱(Tom Walkinshaw Racing)"으로 판매되어 재규어 XJ220 슈퍼카에서 터보차저가 장착된 상태로 재활용되었다.
4 로버 메트로/100 시리즈(1990 ~ 1997)
사진은 1993년식 로버 메트로 리오 그란데(Rio Grande) 특별 사양
"Metromorphosis" - 1990년 당시 슬로건.
BAe의 오스틴 로버 그룹 인수는 메트로의 후속이였던 소형차 프로젝트, 오스틴 AR6[9][10]이 막대한 비용과 당시 BAe의 회장이였던 그레이엄 데이(Graham Day)의 투자 거부를 이유로 중단되는 사태로도 이어졌다. 그렇다고 소형차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로버 그룹은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메트로에다가 당시로서는 새로 설계하고 있었던 K-시리즈 1.1리터와 1.4리터 엔진을 푸조-시트로엥제 4단이나 5단 수동변속기와 조합해 장착하고, 기존의 좌우 연결식 하이드라가스 유압 서스펜션을 하이드라가스의 설계자 알렉스 몰튼(Alex Moulton)의 제안에 따라 앞뒤 연결식으로 손봐 승차감을 크게 개선한 뒤[11] 앞뒤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손봐 로버 브랜드로 재출시했다.링크
회사 사정상 10년이 된 차를 우려먹어야 했기 때문에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한 개발팀들의 생각과는 달리, 1990년 5월에 로버 브랜드로 재출시된 새 메트로(프로젝트 R6)는 기존 모델 대비 크게 항상된 성능과 승차감 등으로 "최고의 슈퍼미니급 소형차"라는 호평을 얻으면서 출시된 지 10년이 지난 차 치고는 호조를 달렸다. 비록 기존의 생산대수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머물러야 했으나, 그러한 호조는 기존에 메트로 후속차로 개발하고 있던 R3 프로젝트(3세대 로버 200 시리즈)를 메트로의 윗급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수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으며, GTi와 GTa[12], 카브리올레[13], 디젤[14]과 CVT[15], 다양한 특별 사양차들의 추가를 통해 라인업을 확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메트로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사진은 로버 100 나이트브릿지(Knightsbridge) SE 특별사양
하지만 이는 이미 15년이 다 되어가던 메트로를 또다시 우려먹는 데 일조하는 부작용도 낳았으니 그 결과물이 바로 1995년 1월에 나온 로버 100.[16] 비록 제정 부서와 판매 부서가 이를 두고 논쟁을 했으나, 경영진들은 시장 점유율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메트로를 남겨두어야 된다는 판매 부서의 의견을 받아들여 로버 400을 중형차급, 로버 200 시리즈를 준중형차급으로 홍보하되 메트로와 클래식 미니를 병행 판매하다가 신형 미니로 차기 모델을 통합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로버 100은 "오스틴->로버 메트로"의 개발과정과는 달리 1990년대 중반에 맞게 앞모습을 크게 손보고 에어백 등의 안전장비를 좀 추가했던 것 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지라 이미 시대에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던 메트로를 시대와 더욱 동떨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으며, 1994년까지만 해도 포드 피에스타의 절반 수준을 유지하던 판매량은 서서히 감소치를 보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6년 유로 NCAP에서 진행한 충돌 실험에서 별 5점 만점중 1개만을 획득하는 등, 설계된 지 20년이 가까이 지난 고령차의 모습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판매량이 급감하게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이 1999년에 클래식 미니와 같이 단종시키려고 했던 계획을 앞당기면서 1997년 12월에 불명예스러운 단종을 맞고 말았다.
유로 NCAP 테스트 영상. 처참하다.
공식적인 후속 차종은 없으나, 로버 그룹에서는 로버 200에 1.1리터 엔진을 추가해 메트로가 남긴 공백을 메꾸려고 했으며 MG로버 그룹에서 타타 인디카를 들여와 “시티로버(CityRover)“로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시도는 메트로가 기록했던 성적에 전혀 미치지 못했으며, 미니와 메트로를 통합하려던 차는 2000년에 BMW에 의해 출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단종 때까지 내수와 수출 모두를 포함해 17년간 총 200만대 가량이 생산되었으며, 품질과는 별개로 위기상황에 놓인 영국의 자동차산업 존속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다. 메트로 모델명의 상표권은 현재 미니의 소유주인 BMW가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17]
즉, 이 차에 대해 요약하자면 여러 가지 의미로 영국의 기아 프라이드인 셈.[18] 2015년 12월 기준으로 영국에서 운행 중인 메트로는 오스틴 버전 1708대와 MG 버전 549대, 로버 버전 4783대이다. 잔존 대수가 크게 감소한 것은 녹이 잘 스는 차체, 개조 없이는 무연휘발유에 대응이 안 되는 오스틴과 MG 버전의 엔진, 그리고 미니와 같이 돌려쓰던 엔진 때문에 미니 복원을 위해 희생되는 개체가 많기 때문이라고.
여담으로, 로버 그룹에서는 1990년대 후반기에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에서 진행하던 국산차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말레오"에다 메트로를 베이스 모델로 제공하기로 계약한 적이 있었다. 메트로를 베이스로 하는 4도어 세단을 만들어 "Rancang Maleo"라는 이름으로 출시하려고 했었으나 1998년 1월 수하르토의 퇴진으로 무산되었고 대신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이 인도네시아의 자동차 시장에 참여했다.- ↑ 이게 어느 정도나면, 일본의 닛산 체리, 독일의 폭스바겐 폴로, 이탈리아의 피아트 127, 프랑스의 르노 5를 비롯한 수입차들을 직접 "외국 침입자"로 등장시킨 뒤 "외국인들을 자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차가 필요하다는 식의 나레이션까지 깔았다.
- ↑ 본래는 상표권 문제로 "오스틴 미니 메트로(miniMetro)"라는 이름으로 출시.
- ↑ 이는 1990년에 로버 이름으로 재출시되었을 때 변속기와 엔진이 들어갈 공간을 늘리고자 휠베이스가 늘어나고, 엔진과 변속기를 새것으로 바꾸면서 어느 정도 바로잡혔다.
- ↑ 마침 MCW가 만들고 있던 2층버스 명칭이 메트로버스(Metrobus)였고, 회사 명칭에도 "메트로"가 들어가있었다.
- ↑ 카세트 플레이어와 전동 앞좌석 창문, 타코미터, 트립 컴퓨터, 가죽 인테리어 마감, 리모컨식 트렁크 계폐 기능, 안개등을 비롯한 고급 장비들이 들어갔으며, 4단 자동변속기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이후에는 GS 트림으로 대체되었다.
- ↑ 기존의 1.3리터 엔진의 실린더헤드를 개향해 더 커다란 밸브 및 카뷰레터를 얹고 최고 속력을 약 172km/h까지, 0-96km/h까지 10.1초, 최고출력을 20% 끌어올려 72마력을 기록했다. 디자인상으로는 전용 휠과 데칼, 빨간색 카펫과 안전벨트 및 스포츠 타입의 스티어링 휠이 적용된 스포티한 인테리어로 구분되었다.
- ↑ 로터스가 튜닝에 참여해 서스펜션을 단단하게 세팅했고, 크랭크축을 강화하고 출력 전달 시스템을 손본 뒤 가레트(Garette)제 터보차저를 얹어 0-96km/h까지 8.9초에다가 최고시속도 185km/h로 올라갔고 출력도 21마력 더 올라가 성능이 크게 항상되었다. 지금은 미니 소유주들이 엔진 제공을 위한 부품차로 써먹으면서 오직 20대만 영국에 남아 있는 희귀종이라고.
- ↑ 한편, MG 메트로는 오스틴 브랜드가 폐기된 후에도 1991년까지 MG 브랜드를 유지했다.
- ↑ 사실 AR6은 마에스트로와 몬테고 후속 프로젝트인 AR5 및 AR7과 같이 개발되었는데, 같은 플랫폼으로 개발되는 건 물론 기존의 생산 라인과 호환성도 높았다. 알루미늄 차체 기술을 로터스와 같이 개발하기도 했으나, 결국 AR6만 홀로 남아 개발되었다.
- ↑ 한편, AR6의 대안으로는 R6(지금의 로버 메트로) 외에 R6에 새 차체를 씌운 R6X나, 혼다 엔진을 얹은 버전이 고려되기도 했다.
- ↑ 본래 몰튼은 미니의 서스펜션을 이처럼 개조해 초기 메트로의 개발 과정에다가 제안했으나 비용 절감을 이유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이후 로버 그룹에서 메트로를 개량할 차에 장착할 서스펜션을 고르는 데 있어서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AR6의 평범한 서스펜션 구성을 고르는 데는 차체를 손보는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을 듣고 자신의 메트로를 개조해 마이클 에드워즈 전 회장과 "Car" 잡지를 초청해 시승하게 했고, 이때 에드워즈를 통해 이 차의 존재를 알게 된 로버 그룹에서는 몰튼의 메트로를 가져다가 시험주행한 뒤 앞뒤 연결식 하이드라가스 시스템을 고르기로 결정했다.
- ↑ GTi는 3도어 전용에다가 고급스러운 편의장비와 전용 드레스업, 로버 K-시리즈 1.4리터 16밸브 엔진이 적용되었고, GTa는 3/5도어 양쪽으로 제공되면서 낮은 등급의 편의장비, 기존의 1.4리터 8밸브 K-시리즈 엔진이 쓰였다. 즉 GTi가 제대로 된 핫해치이고, GTa는 일반 메트로에 스포티한 맛을 더한 "왐 해치"에 해당된다. 다만, 메트로 이름이 쓰이는 동안 GTa는 GTi에서 쓰이던 프론트 안티 롤바와 기어비를 조절한 5단 변속기도 같이 적용되었으며, 1995년부터는 GTa만 다운그레이드(비록 외양은 고급스러워졌으나, 기술적으로는 기어비를 조절된 5단 변속기만 사전주문형으로 물려받았다.)되어 판매되었다.
- ↑ 로버 메트로 5도어 트림을 베이스로 개발되었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미니 카브리올레와 로버 200 카브리올레 사이에 배치된 틈새시장 라인이였다. 전동 캔버스탑이 장착된 이 차는 메트로 중에서도 상당히 비싸면서도 메트로와 100 버전을 합쳐 2200대 정도만 생산되어 희귀한 편이다.
- ↑ 푸조-시트로엥에서 만든 1.4리터 디젤엔진이 사용되었다. 이후 로버 100으로 개명되었을 때는 1.5리터로 배기량이 확장되었다.
- ↑ 반 도르네(DAF) 제품이 사용되었다.
- ↑ 그 이전에도 로버 메트로의 해외 수출명은 "로버 100 시리즈"로, 영국 내수에 남아 있었던 메트로의 네임 밸류 때문에 메트로 이름을 유지하던 내수시장에도 "로버 100 시리즈"의 이름을 확대적용해 메트로를 "로버차"로 완전히 통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 ↑ 여담으로, 한때 아우디가 A1 컨셉트 모델의 이름으로 "메트로" 단어를 넣었다가 BMW가 이를 지적한 사례가 있다.
- ↑ 다만, 17년이나 끌었던 생산 기간과 품질 및 신뢰성 문제가 메트로의 명성에 크게 악영향을 끼쳐, GTi와 GTa 등의 스포티 라인을 제외하면 영국 본토에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