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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원혜영(元惠榮) |
출생일 | 1951년 9월 27일 |
출생지 |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 (現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
본관 | 원주 원씨 |
본적 |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번동리 |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학사 |
소속 정당 | 더불어민주당 |
의원 선수 | 5선 |
의원 대수 | 14, 17, 18, 19, 20 |
종교 | 개신교 |
배우자 | 안정숙 |
자녀 | 2남 |
약력 | 서울대 교양과정부 학생회장 (주)풀무원식품 창업 민선 2·3대 부천시장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최고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초대 당대표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장 |
외부 링크 | 공식 사이트 |
5선 당선을 이룬 2016년 4월 13일, 부인 안정숙씨와 함께.
1 개요
대한민국의 이름만 들어보면 여자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자인 정치인이다. 원만하고 무난한 성품으로 갈등 조정을 잘 하는 관리형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수도권 5선 중진의원에 당대표, 원내대표도 지냈던 거물 정치인 치고는 큰 이벤트 또는 임팩트가 없다는 평을 받는데, 풀무원식품을 창업한 자수성가형 기업가 출신에 재선 시장으로 지방행정 경험까지 갖춘데다 대변인부터 당대표까지 주요당직을 빠짐없이 역임한 폭넓은 경륜은 다른 의원들이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다.
한편, 검소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과 부천시장을 오랫동안 지내고도 태어난 이래로 쭉 살던 고택에서 66년째 거주하고, 수십만 킬로미터 이상 주행한 자동차를 계속 사용했을 정도. 또한 선친 원경선 선생 이래로 부천시에서 쭉 해왔던 자선사업의 뜻을 이어가는 것인지, 기부활동을 많이 하는 정치인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2 생애
1951년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현 부천시 도당동)[1]에서 풀무원 창업주 원경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참고로 원경선은 "풀무원농장"의 창업주이고 이후의 식품 기업 풀무원은 출소 후 생계유지를 위해 강남 지역에서 유기농 식품 가게를 운영하던 원혜영이 창업하였다. 2016년 현재 5선 국회의원으로 부천시 옛 오정구 지역이 지역구이다.
부천북초등학교(당시 부천소사북국민학교)와 중동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제적 및 복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75년 민청학련 사건 미석방자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기소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6년 동안 친구 남승우(現 풀무원 대표)와 함께 풀무원에서 일하였다. 오랫동안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다가 14대 국회의원 당선 뒤 1996년 서울대학교를 25년만에 졸업한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남구(현 옛 소사구 및 원미구 일부 지역)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최기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중구 을(현 옛 오정구 지역)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1995년 정계복귀한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최선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노무현, 김원기, 유인태 등과 국민통합추진회의(약칭 통추)를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며 '하로동선'이라는 고깃집을 차려 장사를 한 적이 있었으나 잘 되지는 못했다고. (...)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김원기 등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으며 이듬해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을 받아 부천시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상당히 무난하게 시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수도권에서 새천년민주당이 고전하는 와중에도 무려 55%의 득표율로 재선되는 기염을 토했는데, 실제로 재임기간에 전국 최초로 버스정보시스템을 도입한 것과 북부도서관 건립 등의 교육/문화 사업을 활발히 벌인게 지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단점 또는 부정적 평가로는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운영이 매우 늦어진 것이나[2] 여러 예산을 문화예술분야에 대해 전시행정에 사용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부천시의 버스교통이 원혜영 의원의 시장 재임 이후 좋아졌다는건 객관적으로 사실이다.[3]
재선되고 1년 6개월 정도의 임기를 수행한 뒤 2003년 말에 사임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8년 만의 국회 복귀에 성공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이 수도권에서 그야말로 참혹하게 나가떨어지던 와중에도 당선되어 3선 고지에 올랐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최고위원을 지냈다.
18대에는 원내대표 및 당대표에 버금가는 당직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18대 국회 때는 당시 당대표였던 정세균 의원과 함께 내부적으로는 몰락 직전까지 몰렸던 민주당을 재정비했고, 외부적으로는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의 원내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으려 노력해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반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공을 세웠다고 평가된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받아 서울로 주소를 이전한 일이 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비롯한 야권 성향의 무소속 후보까지도 이에 대해 맹비판해 당시 부천 오정구 선거구의 공보물에 원혜영 의원을 비판하는 내용이 없는 후보가 없었을 정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4선 고지에 올랐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경기도지사 경선에 나가기도 했다. 원혜영 의원도 경기도 내에선 인지도가 적지 않은 편이지만 수원 영통구 출신의 김진표 의원에게 밀려 도지사 선거 본선에 나서지는 못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5선을 달성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권유를 폭넓게 받았으나,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권보다는 개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관심갖고 있는 정치개혁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겠다고. [4]
3 부천의 맹주?
부천시의 명실상부한 맹주라 불리어도 과언이 아닌 정치인이다. 그 위세는 전성기의 정동영이 전주에서 누렸던 위세조차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정도. 부천에서 5선 국회의원으로 인지도와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부천시장을 두 번 역임하면서 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17대 총선에서 부천시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총선 출마한 것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나가려고 잠시 주소를 이전한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는 중...이라고는 하나 부천시장 사임 직후 총선에서의 득표율이 과반을 넘어 60.1%에 이르렀고, 야당이 81석에 그치며 대참패한 18대 총선에서도 56.3%를 득표하며 생환할 정도로 폭넓은 지지를 꾸준히 받은 것도 사실이다.
원혜영이 부천시의 거물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순수하게 부천에서 나고 자랐거나 부천 지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현실 정치인이 드물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천에는 부천군, 초기 부천시 시절(70~80년대)부터 살아온 어르신들을 제외하면 외부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5] 90년대 이후 부천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 중 잘 알려진 인물은 원혜영을 제외하고는 김근태, 이사철, 안동선 뿐이다.
결정적으로 원혜영 의원의 집안이 부천에서 쌓은 공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원경선 창업주 이래로 풀무원농장을 통해 부천에서 빈민구제 등의 자선사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 풀무원농장 자체가 개신교의 노작활동에 기반을 두고 빈민구제를 목표로 세워진 집단농장으로, 창업 목적 자체가 이미 사회에 대한 봉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덕분에 원씨 집안은 과장을 보태면 부천에서 거의 신으로 통할 정도여서 3,40년 이상 부천에서 살아온 시민들은 원혜영 의원 집안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남구) | 한겨레민주당 | 6,839 (5.5%) | 낙선 (6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중구 을) | 민주당 | 36,608 (52.5%) | 당선 (1위)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오정구) | 통합민주당 | 20,502 (30.1%) | 낙선 (2위) |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부천시장) | 새정치국민회의 | 123,448 (54.3%) | 당선 (1위) |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부천시장) | 새천년민주당 | 117,502 (55.0%) | 당선 (1위) | 2003.12.17 이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목적)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오정구) | 열린우리당 | 43,284 (60.1%) | 당선 (1위)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오정구) | 통합민주당 | 32,861 (56.3%) | 당선 (1위)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오정구) | 민주통합당 | 38,850 (53.4%) | 당선 (1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오정구) | 더불어민주당 | 35,559 (44.8%) | 당선 (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