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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마태오이다.
1935년 경기도 부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제환에게 신민당 공천에서 밀리자 군소정당인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1년 신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옹진군-시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 윤국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김포군-강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박규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잠시 이기택계에 속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다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후 정대철이 평화민주당 대변인을 사퇴하자 후임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천시 중구 선거구에 출하마였으나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고 이회창을 지지하였다. 이후 자유선진당을 거쳐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다.
여담으로 2002년 여름 당사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비난하며 "내가 30년 넘게 정치하는 동안 이런 사기 정당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가 조경태 부산 사하을 지구당 위원장에게 반말로 일갈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참고로 조경태는 1968년생으로 안동선의 아들 뻘.(...) 그러나 2016년 1월 21일 조경태도 새누리당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