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PYH2010122700730006200_P2.jpg
사진은 강원도 도지사 역임 시절. (출처)

역대 대한민국 강원도지사
32~34대 김진선
권한대행 강기창
35대 이광재권한대행 강기창
36~37대 최문순

1 초년병부터 국회 입성까지

이광재(李光宰). 1965년 2월 28일 출생.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이자, 기초단체장이다. 종교불교다. 강원도 평창군에서 태어나, 중학생때 원주로 올라왔고 원주중학교,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출신.[1] 입학 대학생 시절에 주로 학생운동 및 공장노동자로 일했으며[2] 병역은 현역 판정을 받고 징집되었으나 손가락 절단 사유로 귀가조치된 뒤 면제 판정을 받았다.[3]

PYH2010060302060006200_P2.jpg
PYH2010060302050006200_P2.jpg
노무현 의원의 보좌관 시절 모습. 맨 왼쪽의 인물이다. 쌈자?

노무현과의 유서깊은 인연으로도 유명한다. 1988년 노무현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래 보좌진이 되어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뒤 비서 및 참모역할로서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력이 있었다. 이후 본인도 국회에 입성한 뒤로도 노무현이 대통령을 하기까지 주요 참모로서 정치적 결단에 깊히 관여를 하기도 했다. '좌희정-우광재' 라는 타이틀로 참여정부의 핵심일원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친노의 핵심으로 분류되고 있는 중이다.[4]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회의원비서관,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으로 근무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로 출마,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한나라당 김용학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참패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서도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하지만, 2009년 민주당을 덮친 박연차 게이트로 인하여 검찰조사 및 구속을 받게 되었다. 밑에도 자세하게 과정이 서술될 것이지만 이는 정치활동에 있어 시한폭탄이 되어버렸다.

2 이변아닌 이변, 강원도지사 당선

무게감 있는 정치인 중에서는 보기드문 강원도 출신이었고, 노무현 측근 및 의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으며, 강원도에 예산을 많이 쥐어주며 강원도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왔다. 오죽하면 당내 동료 의원들한테 "고향 너무 챙기네"라는 뒷담화성 농담을 들었을 정도. (...)

그렇게 대통령 측근 및 국회의원을 지내며 승승장구한 계기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강원도지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로서 여당인 한나라당이계진[5] 의원과 대결하게 되는데, 사실 강원도는 전반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어 민주당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그야말로 낮은데다 민주당에서 공천한 인물들조차 대부분 버리는 카드(...)였기 때문에 이광재의 강원도지사 당선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더군다나 의원 시절 박연차 게이트로 인하여 정치활동에 큰 부담을 진 상황이다보니 매우 불안한 승부였다.

하지만, 강원도는 야심차게 준비하던 의료단지를 대구광역시에 빼앗기는 등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홀대를 받으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는 시점이었다.[6] 그런 상황에서 이광재가 그간 강원도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데 대한 믿음에다가[7] 강원도 출신 거물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는 도민들의 열망이 표로 결집되면서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서도 대권주자급 거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강원도에서도 대권주자급 거물이 나와야 한다."라는 인물론을 평가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민주당 후보 이광재가 한나라당을 제치고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53%대의 여유있는 득표율로!

특이하게도 북한과 인접한 접경지역을 제외하고는 영서-영동 가릴것 없이 득표수가 앞서는 양상을 보였는데 강원도 빅3인 원주시, 춘천시, 강릉시[8] 모두에서 이광재가 앞서면서 사실상 강원도 전역에서 승리한거나 마찬가지. 그리하여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와 함께 친노의 화려한 부활을 장식했다. 그러나...

3 터져버린 시한폭탄과 그 이후

앞서 서술했다시피 의원시절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조사를 받고 징역형이 구형되어 법원의 선고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한 기사의 제목은 <"제가 돈 안 받았죠?" "예" 이광재, 박연차 직접 '심문'> 이었다고 한다.물론 그러는 과정속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되어 직무에 뛰어들기 시작한 때였다. 법원 판결에 따라 그의 지사직 직위를 좌우할수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강원도 민심은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물론 철도 사업 등등 직무가 산더미같은 상황속에서 업무가 정지된다면, 강원도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재보선이 실시된다면 이에따른 정치, 경제적 파장은...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당선된지 불과 1개월 뒤 2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지사직 직무가 완전히 정지되었다. 헌법소원을 하며 도민의 지지 속에서 위헌 판결을 얻어내어 잠시 지사 업무에 복귀하였으나, 이듬해 연초 대법원의 판결에서 결국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으면서 결국 지사직을 상실하게 되었다.[9]

거기다 사면이 없는 이상 형 확정일로부터 10년 간 선거에 출마할 자격까지 박탈당하면서 현재까지도 정치적인 보직은 없는 상태. 3개월 뒤 빈 지사 자리를 재선거를 통해 메꿨는데, 이 때 민주당 후보였던 최문순 의원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문순이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이광재의 영향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분석도 제기되었으나 이후 강원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 점 등을 미루어보면 새누리당 측 강원도지사 후보가 경쟁력이 뒤떨어진 후보를 내세웠다는 반론도 있다.

현재는 자숙기를 가지면서 강원도 내에서 강연을 여는 등 소소한 활동을 하는 중이다. 같은 친노측근 연고전 파트너이자 현재 충남지사로서 순항 중인 안희정과 자주 만나는 듯하다. 2015년 광복 70주년으로 여론에서는 광복절 특사로 이광재도 사면 대상 후보군에 들었으나, 불발되었다. 현재는 피선거권이 2021년 2월까지 박탈되어있는 상태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열린우리당39,061 (46.7%)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통합민주당42,321 (53.6%)당선 (1위)2010.5.29 사퇴
(강원도지사 선거 출마)
2010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강원도지사)민주당388,443 (54.4%)당선 (1위)2011.1.27 자격상실
(정치자금 수수)

5 여담

같은 당의 최재성 국회의원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이광재가 강원도지사로 재임하던 시기에 그의 직무정지 등을 놓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엉뚱한 최재성 의원에게 다가와 위로했다는 일화도 있고, 2004년 두 사람 모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초선 의원을 지낼 때는 어떤 네티즌이 최재성 의원의 홈페이지에 대놓고 이광재 의원과 쌍둥이가 아니냐(...)는 질문을 올리자 최의원이 직접 "그런 얘기가 많은 걸로 알지만 잘생긴 최재성에게 이광재 의원이라고 하는건 좀 실례가 아닌가 싶다."라는 자뻑 겸 동료 의원 디스. 답글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이 문서 맨 위에 있는 젊은 시절의 이광재의 사진을 보면.....
  1. 화학공학과 83학번 입학, 2001년 법학과 졸업
  2. 이 과정에서 경찰에 끌려간 적이 많은데, 한 번은 취조받던 도중 형사가 탕수육소주를 시켜줘서 먹다가 "광재야, 내 아들이 고3인데 공부 잘할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알려줘."라는 말을 했다고. 이광재는 이 일화에 대해 독재정권 치하의 경찰들도 결국 이 땅의 아버지임을 느꼈다고 회상했으며, 이런 경험 탓인지 국회의원 시절에 이념 논쟁보다는 자기 지역구를 챙기는 일에 더 집중했다.
  3. 밝혀질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고, 이광재를 공격하는 주요 떡밥(?) 중 하나가 되었다. 군면제를 위한 고의성을 두고 논란이 되었는데, 이광재 본인이 해명을 했지만 일관성없는 해명 때문에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결국 학생운동 당시 보안사에 끌려가면 동지의 정보를 불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당시에는 '운동' 경력이 있는 학생은 입대 후 보안사에 끌려가기 십상이었고, 여학생도 경찰의 치욕스러운 성고문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차라리 동기 남학생과 동침하고 싶다"며 울부짖는 일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런 역사적 시대적 맥락을 살펴보지 않은 채 어느 언론은 이광재가 고의로 군을 기피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멀쩡히 손가락 안 자르고 군대 갔다온 운동권 출신들은? 다만 해명을 이리저리 바꾼 점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4. 다만 진보적인 친노 지지층에게는 원망의 대상이기도 한데, 요는 이광재가 참여정부를 삼성공화국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
  5. 강원도 원주와 KBS 앵커 출신으로서 원주시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었다. 훗날 이광재 도지사직 하야 후 재보궐선거에서도 공천제의를 받았다고 알려졌으나, 본인은 불출마를 결정.
  6. 지역에서 당에 충성을 했음에도 그저 봉(?) 취급을 받아 불신하는 현상은 현재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을 대하는 현상이 있다.
  7. 당시 선거 분위기 자체가 이광재 vs 한나라당이었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세는 그닥 별로였지만 이광재 개인에 대한 강원도민들의 호감은 매우 높았으며 지방선거 직후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는 한나라당 당직자가 "강원도에서는 이광재가 '신'이더라."는 명언(?)을 남겼을 정도.
  8. 보수성향이 가장 짙은 곳이라 가장 의외라는 결과가 발생한 지역이다. 그러나 영서-영동의 갈등으로 영동에서 영서권을 떨어뜨리기 위해 비 영서권 출신을 뽑는, 지역갈등의 혜택을 역으로 받았다는 분석이 있다. 이광재 본인도 평창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영서 출신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원주의 정체성이 강한 이계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9. 민주당 내부는 말할 것도 없고 강원도 민심 또한 '이광재 죽이기'라며 반발하는 기류가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