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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基旭
1943년 11월 02일 ~ 2012년 07월 02일
1943년 충청남도 서산군(현 서산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하여 수재로 이름났다. 이후 행정고시, 사법시험 양과에 합격하였고 검사로 근무하였다. 1980년 검사를 사임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과 한국국민당에 각각 충청남도 서산군-당진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였다. 그리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김현욱 후보와 민주한국당 한영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현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입하였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다시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면서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위해 박찬종, 이철, 홍사덕, 조순형, 허경구 등과 같이 노력하였다. 후보단일화가 실패하자 1988년 평화민주당을 탈당하였다. 그리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황병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꼬마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보건사회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후신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김중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되어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남도 서산시-태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문석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