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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에인절스 입단식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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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 유니폼을 입은 모습
보-근닮았다
SK 와이번스 No.55 | |
정영일(丁榮一 / Young-Il Jeong) | |
생년월일 | 1988년 11월 16일 |
출신지 | 광주광역시 서구 |
가족 | 동생 정형식 |
학력 | 광주화정초 - 충장중 - 진흥고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LA 에인절스) 2014년 2차 5라운드(전체 53순위, SK 와이번스) |
소속팀 | LA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2007 ~ 2011) 고양 원더스(2011)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즈(2013) 상무 피닉스(2014 ~ 2015) (군복무) SK 와이번스(2016 ~ 현재) |
목차
1 소개
SK 와이번스 소속의 야구 선수. 입단과 동시에 상무에 입대하여 2016 시즌부터 SK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게 된다. 진흥고 시절에는 건장한 체구와 더불어 140대 후반, 최고구속 151km/h의 강속구를 던지는[1] 초고교급 유망주였으나, 고교 시절의 혹사에 따른 부상으로 결국 발목을 잡힌 비운의 선수다. 친동생 정형식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외야수로 활약 중이었다.
2 선수생활
2.1 고교 시절
특유의 강속구를 앞세워 진흥고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안산공고의 김광현, 북일고의 장필준과 함께 고교 최대어로 부상, 국내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받게 된다. 문제는 실적에 급급한 대한민국 고교 야구의 실정상 무지막한 혹사를 당했다는 점인데,(당시 진흥고 감독은 박철우)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1회전에서 13⅔이닝동안 경기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서 242개의 공을 던지는 무지막지한 혹사를 당했다. 탈삼진 23개를 잡으며 고교 신기록을 세웠으나[2] 팀은 끝내기 안타를 맞고 졌다. 그리고 이런 식의 혹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익히 알려져 있다.[3][4]
이것으로 끝나면 모르겠지만, 다음 청룡기에서도 5게임 동안 700개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이 때는 진흥고가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청룡기 결승에서 경남고등학교와 만나 16이닝 동안 222개의 공을 던졌다. 이렇게 하고 우승을 했으면 모를까, 결국 청룡기 결승에서는 이상화와 이재곤이 이어던진[5] 경남고에게 16회 연장 접전 끝에 패[6]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연달아 개최된 대통령배, 청룡기, 광주 무등기[7]에서 이런식으로 매 대회마다 매경기 마운드를 책임지며 혹사당했다. 그리고 좌타자로서의 재능도 있어서 타석에도 종종 들어섰기 때문에 쉴 기회 자체가 없었다.
2.2 미국 진출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고 팀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게 된 정영일은 한기주의 10억, 김진우의 7억에 이은 KIA 타이거즈 신인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인 5억 원의 계약금을 제시받았다. 하지만 정영일 측은 한기주와 김진우 사이의 계약금을 요구했고 기아가 고민끝에 협의 금액인 7억원을 맞춰주면서 1차지명을 하였으나 거절 후 미국 진출 시도하였다. 그리고 정영일은 2006년 7월 LA 에인절스과 계약, 역대 31번째로 미국에 진출한 대한민국 유망주가 된다. 계약금액은 110만 달러로, 당시 환율로 따지면 약 11억원이었다.[8] [9]
입단하자마자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에인절스 내 유망주 랭킹 4위에 오르는 등 그의 장래는 밝아 보였으나, 고교 시절의 혹사 후유증이 생각보다 깊었다. 미국 진출 후에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8년에는 오른쪽 팔꿈치 부상 때문에 토미 존 서저리를 받기에 이르는데, 장기간의 재활로 시간을 허비한데다 다른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성장하며 그의 입지는 줄어만 갔다. 결국 2011년 2월, 정영일은 자진해서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고, 결국 같은 해 5월 27일에 방출되었다.
정영일이 5년간 마이너리그(루키리그, 싱글 A)에서 던진 이닝수는 고작 33이닝. 5년간 4게임 정도 완투한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당한 혹사가 이런 참담한 결과를 빚은 것이다. 정영일의 혹사 이후로 고교야구 선수들의 혹사를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이 고안되었으나 실패하고[10] 결국 도입된 게 주말야구제다.
2.3 귀국
방출되어 귀국한 후 가진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대한민국에 돌아온 후 모교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KIA의 지명권이 해외 진출로 인해 소멸되어 신인 드래프트에 다시 참가해야 하는 데다가 2년의 유예 기간 및 군 문제도 걸려 있고 부상 경력이 있어 복귀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무와 경찰청 입대를 시도했으나 지원에 실패했다.그냥 미련을 접고 바로 현역으로 복무하지 그랬니
이에 대해 정영일 본인은 인터뷰에서 규정상 입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엄밀히 말해 해외파 선수들의 입대를 제한하는 규정은 명문상 없으나[11]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2013년 현 시점에서는 사실로 보인다.[12]
3 고양 원더스 입단과 퇴단
2011년 말 국내 첫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다. 12월 27일 팀 훈련에 합류했다. KBO에서는 정영일이 고양 원더스에 몸담은 기간이 유예 기간에 들어가는지 제외되는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13] 그러다가 정영일, 남윤성[14]에게 퓨처스리그 출전 제한 조치가 내렸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몸 상태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정영일은 결국 선수 명단에서 제외됨으로써 고양 원더스와의 인연을 끊게 되었다.
3.1 원더스 퇴단 이후
그 뒤 별다른 소식이 없다가 2012년 6월 7일부터 4일 동안 열린 3회 제주 국제생활체육야구대회에서 경기도 안산 연합팀 소속으로 출장해 12타수 10안타를 기록하며 타격상을 수상했음이 알려졌다.[15]
고교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입문 때까지 한살 위인 한기주와 자주 비교가 되었다. 기아가 정영일을 놓쳤을 때, 한기주와 정영일 둘 다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기아 팬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근데 2010년대에 접어든 이후로는 둘 다 신통치 않다. 둘 모두 광주광역시 출신이고 고등학교때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한기주는 기아에 와서 혹사로 "한작가"로 전락하며 부상병동을 전전하고 있고, 정영일은 선수생활 자체가 기로에 섰으니...
2013년 3월 6일, 일본 독립리그 팀인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즈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본인 말로는 전반기에 기량을 끌어올려 대한민국 또는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언급한 것을 봐서는 알음알음 병역 면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한 정보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독립리그에서도 고작 3경기에 등판해 1 2/3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5.40, 1피안타, 4피사사구, 2탈삼진에 그쳤다.
결국 7월 1일자로 일본 독립리그를 떠나 2차지명에 응하기로 했다. 이미 유예기간은 5월 말로 다 채웠기 때문에 신인 지명 대상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지만 오랜 기간 실전 등판이 거의 없었던데다가 병역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잘해야 하위 라운드에서 로또를 바라는 수밖에는 없는 실정. 물론 과감히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16]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일단 8월 7일 KBO에서 주최한 트라이아웃[17]에서는 최대 구속이 140 초반에 그쳤다. 더운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당초 2차지명 참가를 밝히면서 언급했다는 148에는 못 미치는 수치.
4 SK 입단
2013년 8월 26일 SK 와이번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50km/h를 던졌던 포텐셜과 가능성, 절박함을 보고 민경삼 SK 와이번스 단장이 지명했다고 언급했다. 여러 번 실패를 맛본 만큼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로서 SK와 삼성은 혈맹 관계??[18] 정형식은 "우리 형이라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며 기뻐했다. 한편으론 투타로 만났을 때는 반드시 안타를 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다짐은 정형식이 이듬해 음주운전으로 자멸하며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조만간 나이가 차게 되는 관계로, 아직 미필인 그의 군 입대 시기가 언제인가였다. 민경삼 단장은 정영일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병역에 대해서 정영일 본인과 상의해서 조율할 것이라고 입단 때 언급했다. 일단 9월 4일 오수호와 함께 재활군에 합류했으며, 9월 30일에 계약금 없이 SK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다.[19] 병역은 둘째치고 팔꿈치 부상 이후 실전 감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실전 감각 회복과 몸 관리라는 2마리 토끼를 잡는 측면에서 우선 상무에 입대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2013년 10월 25일 발표한 2013년도 4/4분기 상무의 선수 선발 서류전형 합격자에 포함되었고, 결국 최종 합격에 성공해서 비로소 군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춤 안 추고 갈거냐!
입대하기 전 괌으로 출국, 재활캠프에서 김경태 재활코치를 통해 밸런스를 잡은 후 귀국하여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2014년 상무에서는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39경기 42이닝 동안 3승 2패 1세이브 9홀드 ERA 3.86의 무난한 성적을 냈다. 구속 역시 145km/h 이상으로 올라왔다. 퓨처스 올스타전에도 선정되어 남부리그의 마무리로 대기하고 있었으나 경기가 2회에 우천으로 취소되면서 등판은 없는 일이 되었다.
2015년에는 2군 리그가 끝난 후 제대를 앞두고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했다. 시즌 후 2차 드래프트가 있기 때문에 구단의 방침에 따라 제대 후 문승원, 김태훈, 오수호 등과 함께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교육리그에 파견되어 빼어난 구위를 선보였으며, 최고 구속은 154km/h 를 기록했다. 이후에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특별 마무리캠프에도 참가했다.
2016년 정우람, 윤길현 등 기존 불펜들이 상당히 빠져나간지라 상당수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5 SK 와이번스 시절
5.1 2016 시즌
4월7일 사직 롯데전에서 8회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손아섭에게 솔로홈런을 맞기는 했으나 1이닝 1피안타 1홈런 1실점으로 잘 막았다.
4월 14일 기아전에서 2점차 뒤진 상황, 2사 만루에서 8회초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김주찬을 삼진으로 처리하고 위기를 넘긴다. 9회초 또한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고, 9회말 정의윤의 동점타와 박정권의 끝내기 안타로 KBO 통산 첫 승리를 챙겼다. 통산 첫 승을 기록하고 팀에 피자 20판을 돌렸다고 한다.
5월 2일 더 많은 경기에 등판해 감을 쌓으라는 김용희 감독의 지시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가 6월 9일 1군에 다시 콜업되었다.
6월 15일 삼성전에서 3이닝을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홀드를 따냈다. 이 경기 중 투구하다가 모자가 자꾸 벗겨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본인은 힘이 잘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개의치 않고 있다.
첫 시즌은 1군과 2군을 오가며 21경기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4.74의 성적을 기록했다.
6 이야깃거리
- 상술했듯이 친동생인 정형식이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였다. 지금까지 형제 선수들은 여럿 있었는데 정수근 - 정수성, 조동화 - 조동찬 형제를 제외하면 둘 중에 한 명이 무명이거나 2군인 경우가 많아 화제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형식은 1군 붙박이 멤버고 정영일은 이것저것 화젯거리가 많아 형제 관계가 자주 언급되었다. 특히 둘 다 타자인 조동화 - 조동찬 형제와는 달리 정영일 - 정형식은 투타 관계라 정명원 - 정학원 형제에 이은 투타 대결이 벌어질지도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정영일이 상무에서 복무하는 동안 정형식이 2014년 음주운전으로 임의탈퇴 공시되는 바람에 결국 형제 투타대결은 무산되었다.
- SK에 지명받기 직전에 비영리 봉사단체에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기부한 삼성 투수 차우찬에게 소개를 받고 자신도 기부했으며, 동생인 정형식을 포함 김상수, 우동균 등의 삼성 선수들도 동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자선단체의 대표가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는 바람에 묘하게 됐다. #
- 투구시 한 구 한 구 던질 때마다 모자가 벗겨져 떨어진다. 파워 피칭 때문인지 두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팬들은 턱끈이라도 만들어주자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