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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쟁점
1.1 비교
1.1.1 조선조정 무능론 타파의 개연성
징비록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드라마는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역사의 과오를 꾸짖고(懲) 미래의 위기에 대비(毖)하는 지혜와 통찰을 구하는 것"[1]을 근본적인 기획의도로 삼고 있다. 따라서 스토리라인을 통해 왜 조선이 임진왜란에 대한 대응에 실패하였고, 왜 조선군이 개전 초기에 일방적으로 패하였으며, 왜 전국이 불바다가 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역사로부터 실패의 이유를 돌아보고 그 책임을 따져보는 것 자체는 사극으로서 의미 있는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종전의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에서는 조선조정의 무능이 전란을 못 막고 확전시켰다고 묘사했다. 예를 들자면 국방력이 해이했다, 당쟁으로 일본 돌아가는 사정에 무지했다, 당파싸움만 하고 대비도 안했다, 당쟁의 이해 때문에 통신사간의 보고가 엇갈렸다 등 모두 조선의 책임으로 전적으로 돌렸었다. 그러한 자의적인 해석이 역사적 사실의 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는 임진왜란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조선 내부에서 고정시키지 않았다. 1회 ~ 13회까지를 보면 이유가 타당성 있게 상세히 묘사된다. 왜 통신사의 의견이 엇갈렸는가? 왜 전란에 대해 전폭적으로 축성과 군비증강, 명과의 공조가 이루어 지지 못했는가를 세밀히 설명한다. 김성일이 당파이해의 잇속으로 허위보고를 한 것이 아닌 점, 축성과 관련민생에서의 붕당의 대응방식차이 등 종전의 사극에서는 간과한 차이를 놓치지 않고 짚어간다. 논쟁의 차이중에 조선의 사회상에 관해 보자면 전작에서 조선을 민본의 이상이 담긴 나라로, 사대부를 재능만 있다면 누구든지 오를 수 있는 신분으로 묘사[2]하여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전작과 징비록(드라마)의 조선 시대는 조선 초기와 조선 중기라는 200년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 전기는 양천제를 기본으로 역동적인 사회였다. 하지만 중기로 가면서 양천제 대신 4신분제로 기득권과 신분제가 공고해진 면에서 사회상이 큰 차이가 있으니 드라마에서 사회상을 왜곡한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전후기에 드라마에서 국가와 조정이 백성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붕당을 초월해 방식의 차이가 있었음을 에피소드들마다 보여 주었다.
또한 그간 진행된 임진왜란기 연구성과를 드라마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많이 보였다. 초반부에 조선 조정이 일본 사정을 파악하려 시도하거나 전쟁에 대비하고자 노력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제작비 대폭 삭감문제로 전쟁 진행과정은 그냥 생략의 잦음. 게다가 '올바른' 정책은 오로지 주인공 개인의 업적으로 돌아가며, 더욱 큰 문제는 류성룡에 치중된 면이 아쉽다.
또한 스토리라인에서 전쟁경과의 생략이 많아 이 드라마는 그 플롯을 통해 많은 문제와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주제의식은 나타냈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캐릭터성은 작가의 교체에 따른 쪽대본으로 말미암아 이리저리 표류하기 시작하였고, 이후로도 극 전반의 연출에 있어 지대한 해악을 끼치는 요인으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자세한 고증 관계는 징비록(드라마)/고증 문서 참조.
1.1.2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
이 드라마가 정말로 상술한 바와 같은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왜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에서 조선군이 무너지고 말았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건만, 정작 이 드라마는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었어야 할 임진왜란의 초기 전황과 조선의 초기 대응 상황을 불충분한 전황묘사로 이해를 충분히 시키지 못했다. 오죽하면 탄금대 전투가 묘사된 15회부터 5회 연속으로 '총체적 난국'이라는 평가가 내려질까. 아니 애당초 징비록이라는 드라마가 임진왜란 개전부터 파천까지 고작 4회밖에 안 걸린 것도 넌센스다. 전황이 상세하지 못해 시청자가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개전 초기 조선군의 초동대응이 늦어지게 된 원인은 당시에는 어쩔수 없는 정보전달 속도의 한계와 홍여순으로 대표되는 관료제의 문제점이었는데 이런 점은 통째로 생략되고 그냥 양반들이 상황파악 못하고 제 몸만 챙기다가 늦어진 것으로 상황이 묘사되고, 제승방략에 대한 연출도 그저 국사교과서 수준으로 일방적으로 단점만 부각되었다.[3] 실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나서야 할 류성룡은 그저 선조 앞에서 '이건 전쟁이다'라고 소리나 지르고, 애꿎은 유생의 유건에 칼질이나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놓고 정작 류성룡을 정당하게 띄워줄 수 있는 일화들은 모두 날려먹었다는 점이 웃음거리. 류성룡이 체찰사가 되어 직접 모병에 나서자 순식간에 8천 명의 장사가 모집되었던 일이나, 이들을 대인배스럽게 신립에게 양도해 주었던 일, 중장갑옷을 만들자는 주장에 너무 무거워서 쓰지 못한다며 류성룡 홀로 반대했던 일 따위는 생략되었다. 또한 극중의 류성룡은 조선군의 한심한 군사동원 능력을 한탄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류성룡 자신이 병조판서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거 자폭이다.
1592년 4월 28일, 삼도순변사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했다. 신립은 기마군을 이용해 4차례에 걸쳐 왜군을 격퇴했지만, 결국 강변에 습지대가 기마병의 발목을 잡으며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신립 김여물 충주목사 이종장 등이 마지막까지 용전분투하고 최후를 맞았지만, 왜군 또한 절반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고 이는 소서행장이 북쪽으로 몽진한 선조를 곧바로 추격하지 못하고 잠시 한양에 머물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징비록> 15회, 나레이션
이같은 막장의 절정은 탄금대 전투 묘사로, 기병들이 활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도 아닌 칼을 들고 적진으로 반자이 돌격을 하는데다가 일본군의 피해가 8천에 달했다고 나오는데 탄금대 전투에서의 왜군 피해 많이 잡아봐야 수백이다. 이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쓴다는 작가들이 전쟁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지식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전이든 고대전이든, 실제 사람이 진행하는 전투는 컴퓨터 게임처럼 유닛이 반만 남아도 끝까지 싸우다 다 죽어나가지 않는다. 대부분 20-30퍼센트의 사상자만 발생해도 그 부대는 전투를 수행할수 없을정도로 만신창이가 된다.
여기에 비밀리에 파천을 준비하다가 기습적으로 터뜨려서 의사를 관철시킨 선조도 한가롭게(?) 밀당이나 하고 있고, 실제 역사에서 류성룡은 선조가 은밀히 피난을 준비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고 간접적으로 지지하기까지 했는데 정작 극중에서는 '왕은 백성의 어버이이니 도망칠 바에 싸우다 죽어라'라는 여러모로 엄청난 주장을 펼쳤다.
자세한 고증 관계는 징비록(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문서 참조.
1.2 구성
1.2.1 우리편 아니면 다 비정상
정도전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주인공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을 마냥 찌질한 악역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몽주는 정도전과 다른 또 다른 정의였고 간신 이인임도 정도전을 몇번이나 좌절시킨 막강한 정치적 역량에 나름의 관용과 품위를 갖춘 악역이었다. 그러나 징비록은 류성룡과 그에 동조하는 아군을 제외하면 캐릭터묘사가 부족하다. 특히 일본과 명에 대한 묘사는 류성룡의 활약에 집중되다보니 상세성이 많이 줄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입체적으로 그리나 싶던 일본진영은 고래고래 소리나 지르는 잔혹한 대마왕 부하들이 되었고 명군에 대한 묘사는 강화에 많이 치우쳐 있다. 명 자체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아닌 송응창 개인의 안하무인과 비열함에 많이 집중된다.[4] 직산 전투나 울산성 전투같이 명군이 분전한 전투는 상세함이 부족하고[5] 2차 평양성 전투나 벽제관 전투같은 명군이 패한 전투도 많이 나온다.[사실 임진왜란기에 4차평양성전투의 전공을 빼놓고는 나머지전투에서는 명은 미온적이었다. 미온성은 정유재란기에 예교성전투,사천성전투와 조선과 명의 합동작전에서도 그다지 명군이 큰 전적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정유재란기에 이순신장군의 각고의 노력으로 수습된 전쟁이다.] [사실 명군의 난행과 횡포는 당대에 사료인 실록과 쇄미록, 징비록에도 기록된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당시대 사람들도 명군의 부정적인 점은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료에 기반하면 명을 긍정적으로 조명할 수 만은 없다. 이는 당대의 역사성을 망각하는 결과가 된다. 국방을 충실히 하고 싶어했던 징비라는 가치에서도 어긋난다. 그러니 제작진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일본 측의 캐릭터성이 부족한 것은 매우 아쉽지만
그렇다고 조선쪽에선 잘 묘사했냐면 아주 충분하지는 않다. 선조와 지배층들에게 모든 어그로를 모았는데 이게 순 어거지다. 심지어 선조가 분명 옳은 말을 했는데도 이를 부정적인 것 마냥 묘사하기도 한다. 비판받을 만한 행위가 아닌 경우도 긍정적으로는 보지 않았다. 특히 선조의 의병의 관군편입, 강화반대 같은 조치들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는데 드라마는 그냥 덮어놓고 선조를 비난하고 광해군을 추켜세운다. 게다가 KBS 방송사 차원에서 이런 왜곡을 지원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역사저널 그날 6월 7일 방영분에선 의병을 다뤘는데 선조가 의심병에 걸려 의병장들을 숙청해서 의병이 위축되고 병자호란때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인터넷발 낭설을 적극 수용했다.[6][7]
1.2.2 느린 이야기 전개
가장 심각하고 큰 문제점. 방영초기 60부작 정도로 예상되다 제작진이 협의로 중반쯤 50화 완결로 결정된 정도전과 달리 이쪽은 제작 단계부터 50화로 못을 박았다. 헌데 스토리 전개가 너무 느렸다. 1화가 1589년이었는데 12화까지 1591년이라는 지독하게 느린 진행을 보여줬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아[8] 완결을 단 한주 남긴 48화 시점에서 노량해전은 고사하고 명량해전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특히 송응창의 갑질 파트로 10여회를 잡아먹는 등, 이야기 전개는 거의 하지 않아 정유년 여름부터 무술년, 류성룡 탄핵 이후의 행적까지 달랑 2화에 다 담아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극의 완성도를 무시하고 완결을 위해 내달렸고, 자연히 스토리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이 갑자기 휙휙 바뀌는 총체적 난국이 벌어졌다.
47화 말미에 화의결렬, 48화에서 칠천량 해전, 49화에서 명량해전과 울산성 전투가 매우 짧게 묘사되었으며, 바로 뒤인 50화에 노량해전이 나왔다. 정유재란을 약 3회분이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볶아 먹는 듯한 속도로 진행시켰다. 수작이란 평가를 들은 전작 정도전도 조선건국~무인정사를 단 10화로 마무리짓는 바람에 지나친 급전개라는 비판을 받고 평가가 깎였는데 징비록은 그보다 훨씬 심각했다. 드라마의 원작격인 징비록에서는 정유재란의 분량이 매우 적어서 원작 재현을 위해 그리되었다는 변명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 목표는 징비록을 베이스로 임진왜란기 조선조정을 그리는 것이었지, 징비록을 영상화시키는게 아니었다.
1.3 인물
1.3.1 정체된 주인공
중반 이후 류성룡이 절대선, 만능캐릭터로 작중에 벌어지는 거의 모든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이로인한 편중도가 커졌다
극의 중심이 되어야할 주인공 류성룡이 극의 중심이 전혀 되지 못한다. 역사속 류성룡은 인간관계 무난하고, 할말 하고 사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나, 그렇다고 당파간 이해관계에서 초탈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고, 공이 크지만 임진왜란 발발의 책임도 과오도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류성룡을 당파간 이해관계에서 초탈한 절대선역 이상주의자 캐릭터[9]로서 묘사하여 캐릭터 자체의 입체성을 떨어뜨리고 작품의 몰입감을 해친다. 게다가 류성룡이 그러한 인격을 갖게 된 당위성을 제공해 주지도 않는다. 성공한 사극들의 경우 주인공의 어린시절이든 사회초년병이든 그 캐릭터가 이러한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을 짧든 길든 다뤄서 시청자를 납득시킨다. 하지만 시청자의 집중도를 높이고 임진왜란에 조명하다 보니 류성룡 인물됨 형성에 대한 묘사는 길게 할 수 없었다. 전작이자 역시 정치권이 주무대였던 정도전이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기치 아래, 악역 캐릭터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주인공 캐릭터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입체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했던 것과는 정반대.
임진왜란 도입부에서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당최 앞뒤가 안맞는 행보를 보였다. 예를 들어 15화에서 대신들이 파천을 논의할때 류성룡은 자신도 정말로 한양 사수를 고집하려는게 아니라 선조가 한양을 사수하려는 의지를 보이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지는 지키고 싶은데 선조가 영 지킬 생각이 없어보이니까 시간 끌다가 상황 닥쳐서 어쩔수 없게 하려고 밀어붙이기 보다는 살살 달래본거다 그런데 바로 다음씬에서 진지하게 병력 4천 5백으로 성가퀴 3만개 짜리 성을 지키려 들더니 16화에선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명분을 내세워 한양을 버리고 어디로 가냐고 울부짖는다. 17화에선 한양 함락 소식에 한양과 가까운 개성을 떠나 평양으로 가려는 선조를 제지하며 전라감사 이광과 임진강 유역의 북병을 합치면 왜적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데 18화에서는 반드시 평양을 지키겠다며 백성들을 위무하는 선조에게 다가가 임진강 방어선 무너지면 어쩔거냐며 헛된 희망을 주지말라 어깃장을 놓는다.[10] 선조가 평양사수를 자신한 이유는 전라도군 5만과 북병, 김명원 휘하의 군사를 합쳐 7만에 달하고 군량도 충분해 임진강에서 적을 막을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이는 바로 전화에서 류성룡이 주장한 내용이다. 이 와중에 류성룡이 해야할 역할[11]은 윤두수가 하고 있다.
또한 조정 대신들이 뭔가 논의를 하고 있을때 갑자기 끼어들어서 훈계를 하며 다른 중신들 데꿀멍 시키는 전개가 무척 많이 나오는데 이러한 연출방식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12] 쟁쟁한 조정 대신들을 다 침묵하게 만들고 류성룡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작중 류성룡이 보여주는 논리나 수준에서 더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했으면 금상첨화 일 것을
드라마는 21 ~ 22화를 기점으로 어느 정도 중심을 잡았지만 그 주역은 류성룡이 아니라 선조와 광해군으로 극을 이끌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지금 류성룡의 캐릭터는 광해군이나 선조를 주연으로 했을 때 입바른 소리하는 조연 캐릭터로나 적합하지 주연으로 극을 이끌어나갈 존재가 아니었다.
극이 진행되면서 류성룡의 캐릭터는 국난극복에 앞장서고 큰 도움이 되는 데도, 내용이 난해해서 그런 지 몰입에서 이해 못하는 시청층도 있다. 역사에서의 명은 싸울 의욕은 있지만 보급이 안 되서 행패를 부린 것도 있고, 정유재란에서는 지휘권 문제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 되었다. 명과 조선의 관계를 긴밀하게 협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할 류성룡이 보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명과 조선의 갈등을 일으키는 데 원인도 되어가고 있다. 내놓은 계책들도 명의 횡포를 조목조목 지적하다 보니 협력보다 명의 불만을 사는 일들이었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이다. 내용에서 짜임새가 부족하다보니 이해에 힘이든다.
안동시와 풍산그룹의 지원으로 제작되기는 했어도 류성룡을 우상화와 미화한 것은 절대 아니다. 원래가 곧은나무 캐릭터니 드라마성이 부족하기도 하다.
추가로 드라마에 나오진 않았지만 밑에서 언급할 백작가의 '초기 각본'에서는 류성룡이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것을 반대하는 부분도 있었다(...)[13]
1.3.2 선조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면
이 작품은 제목부터 징비록이지만, 이순신 등장 이후로 급격하게 주인공인 류성룡이 전체적인 스토리의 중심을 못 잡고 있다보니 문제가 있다. 결국 일각에선 차라리 드라마 제목을 징비록이 아닌 선조실록으로 하는게 낫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스토리로 볼 때 기존에 임진왜란 드라마였던 불멸의 이순신보다 더욱 더 선조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지고 진행되는 상황이니 그런소리가 나오는것. 거기다가 김태우의 찌질한 선조역의 일품연기로 인하여 시너지는 폭발.
1.3.3 부실한 인물묘사
작중 내적고뇌 비슷한 거라도 하는 캐릭터가 선조와 광해군 뿐이다. 왜적이라는 외부의 적과 조정이라는 내부의 적과 맞서는 팔라딘 류성룡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조정대신들도 그들의 내면을 제대로 조망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냥 역사가 이랬으니까 따라간다 식이다.[14] 거기다 류성룡은 극을 이끌어 가야하는 주인공인데, 인물묘사가 제일 부실하다. 오히려 비중 크지 않다던 이순신은 초기엔 우리가 잘 아는 성웅의 모습을, 때로는 군율에 철저한 이순신의 모습을, 때로는 병사들과 백성들의 삶에 신경쓰는 목민관의 모습[15]을, 때로는 부하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벌이고 아끼는 부하의 죽음에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는 상황. 이 드라마는 불멸의 이순신 시즌 2가 아닙니다. 물론 다 사서에 있는 내용이라 왜곡은 아니고, 이 정도 묘사가 이뤄지는게 정상이긴 하지만 이건 난중일기가 아니다! 극의 초점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몇 사람에게만 집중된 게 절대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본측은 더 심각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개전 후 매번 이순신 타령만 하는 종래의 잔혹한 대마왕 캐릭터로 고정[16]되었고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록에서부터 전해오는 돌격대장, 대마왕부하 캐릭터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나마 입체적인게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 정도인데 비중이 크지 않을 뿐더러 고니시는 평양성 전투 이후론 종래의 대마왕 부하로 돌아갔고 요시토시는 공기 수준. 어떻게 된게 1985년 작품인 조선왕조 500년 임진왜란 편의 일본 캐릭터들이 훨씬 입체적이었다.
백성의 묘사도 형편없어서 조선시대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소리를 백성들이 태연하게 한다.[17] 류성룡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조선시대엔 있을수 없는 행동이다. 사화동의 경우 조선사대부의 권리무한 책임전무론을 내세우며 어쩔수 없다는 듯한 모호한 태도다. 불멸의 이순신이 방송된 시점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사화동을 어느 정도 동정하고 조정을 비판했지만 말이다. 전작 정도전에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보여준 것에 비하면[18] 에피소드가 부족하다.
또한 전쟁이 진행될수록 광해군과 류성룡이 의도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선조를 배제하고 있고, 선조가 이에 대해 진노하면 마치 열폭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 또한 큰 문제이다. 현대 국가에서도 전시에 명령계통을 무시하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 하물며 전근대사회에서 의도적으로 국왕을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하고 또 그런 행위를 옹호한다는 것은 바로 대역죄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의병의 사병화 문제 역시 선조의 우려가 지극히 합리적인데 이를 마치 물정 모르는 소리인 양 취급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마도 선조를 비판하기 위한 묘사로 보이나 실상 이러한 묘사는 선조 특유의 편집증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전란 중에 왕의 권한이 평시처럼 온전할 수는 없겠다. 그 예로 어전에서 필부라느니 한심하게 생각하는 묘사는 실록에 기술된 사실이지만 이유가 불충분하기도 하다.
부실한 인물묘사에 대한 단적인 예로, 주요 캐릭터 몇 몇을 제외하면 인물들이 맡고있는 역할이나 대사는 다른 캐릭터가 해도 별 차이가 없다. 윤두수나 정철의 대화나 행동을 바꿔도, 이항복, 이원익, 이덕형등의 대화나 행동을 서로 바꿔도 별로 문제될게 없을 정도로 대신들간에 차별화된 캐릭터가 없다! 어떤대신은 왕에게 필부 운운할 정도로 강경한 면이 있었고(윤두수가 필부발언한 것이 아니다) 정철은 전란중에도 술 취해 회의에 빠질만큼 소위 '니나노 근성'이 심했다. 이항복은 전란중에도 농담을 던질 정도로 베짱이 대단했으며 이덕형은 능력은 나무랄데가 없었지만 사려깊은 성격에 이항복만큼 능글맞지 못해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극중에선 이런 인물들의 개성이 전혀 발휘되지 못한다. 선조가 말하면 비웃거나 한숨이나 쉬고 류성룡이 말하면 감복이나 하는 기계적이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홍여순이 그나마 개그캐릭터로써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을 뿐.
그리고 초반에 비중있게 나오던 김성일, 조헌 등의 캐릭터는 전쟁 발발 후 어느새 그냥 증발했다. 처음부터 비중이 없었다면 몰라도 김성일은 대중이 가진 당파씨움에 눈이 멀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비겁한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아닌 강직한 선비의 이미지를 보여 처음으로 그의 임진왜란 중 행적을 제대로 다루는 사극이 될 거란 기대가 있었고, 조헌도 도끼를 들고 상소를 올리는 강경한 이미지를 보여 의병장 활동도 잘 그릴 것으로 기대됐지만, 별다른 설명없이 이들의 활약을 스킵하여 그나마 평가가 좋을 수 있었을 부분을 스스로 포기했다. 전작인 정도전의 경우 여기서 별 언급없이 안 나온 인물은 이첨처럼 드라마 종료 시점에 유배나 파직으로 중앙 정계에 없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인물이었고, 대부분은 스킵한 세월 사이에 죽은 사람이 아닌 한 주요인물의 퇴장은 착실히 묘사했고, 최무선의 예처럼 주요 행적을 다루지 않을 거라면 그냥 대사로만 처리하고 아예 등장시키지 않았다.
선조가 직접 싸우는 장졸들보다 호종공신들이나 명나라를 더 우대하는 등 백 번 까여도 할 말이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전시에 아예 왕을 왕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당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행위이며 선조가 이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을 때 중신들이 답답한 소리 취급하며 반박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위의 민중의식 묘사와 더불어 제작진의 전쟁과 권력, 전근대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게 하는 부분이다. 비록 세세한 고증까지 완벽하게 지킨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권력관계 및 인물 묘사로 호평을 받았던 전작과 가장 대비되는 지점이다.
1.4 제작진
1.4.1 작가 교체
이 드라마의 만악의 근원.
방영 전 처음에는 백운철 작가[19]가 집필하기로 했으나 다모-주몽(드라마), 계백(드라마)의 정형수 작가, 정도전(드라마)의 정지연 작가로 교체되었다(2014년 12월 15일 기사). 그런데 백운철 작가가 각본가에서 교체되기 전에 집필한 대본 내용들이 역사 왜곡인데다가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로 다음 징비록 카페에 있는 백운철 작가의 대본들을 누군가가 징비록 갤러리에 올려놓았다.[20] 정도전은 고사하고 기황후 따라갈 뻔했다 결정적으로 작가가 교체된 이유는 역사 왜곡 투성이로 되어있는 대본 때문인 듯 보이며 전작과 같이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게 위해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덧붙여서 백작가의 대본은 정통 사극의 불씨를 꺼뜨리는 행위이자 정통 사극의 명성을 포기한 행위이다. 백운철이 제작진에게 빅엿을 주고 갔다.
그러나 이 작가 교체는 여러가지로 안 좋은 점을 낳았는데, 일단 방영 직전에 작가가 교체된지라 쪽대본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15 ~ 20화까지의 소위 말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리고 대본 수정 과정에서 제작진의 실수도 있었다. 백작가가 만든 가상 캐릭터들은 캐릭터성이나 분량상 삭제되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설정 바꿔 그냥 남겨놔서 시청자의 몰입만 방해하였다. 다행히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이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게다가 시간에 쫒겨가며 대본을 쓰다보니, 역사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를 토대로 모든 관련사건을 조명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야 고퀄리티의 대본이 나오는데, 당장 다음회 방영분 대본부터 확보하기 위해 급하게 집필하다 보니 스토리에서 회마다 시간에 압사했다.
29회부터 쪽대본의 영향인지 인물들 대사가 약간씩 어색하게 들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명나라군이 평양성을 수복하는 장면에서 열심히 일본군을 베고 난 뒤 부장이 이여송에게 "장군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수고 많았다는 대사는 적어도 동급의 장군들끼리 할 수있는 대사지, 일개 부장이 하는건 어색하다. 애초에 "수고했다"라는 표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거나 동급의 친구간, 동료간에나 쓰는 말이지 상급자에게는 써서는 안되는 말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수고하셨습니다"나 "수고하십시오"가 흔히 인삿말로도 쓰이긴 하지만 연장자나 상급자에게는 실례되는 말이다. 그 뒤 내 오늘 널 뜨끈한 술로 목욕시켜주마란 대사도 배우 음성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어색하게 들리는건 덤.
1.4.2 자문? 드라마 제작기간이 비정상으로 쫒기지 않았어도
제작진이 이 작품을 준비하는데 고심을 알려주는 부분. 제작진이 출간한 '징비록, 못 다한 이야기'를 보면 본작에 참연한 자문진은 최희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21]와 조경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연구원, 김재욱 고전철학연구원 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도 다른 드라마 정도라도 시간과 힘을 실어 주었으면 드라마에 다 반영 되었을 것을. 작가의 대본에 자문단과 제작진의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제작비에도 다 반영되었더라면... 학계에 전문적인 전쟁사 연구자는 많지 않지만 임진왜란 개개전투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임진왜란기 정치사 연구자는 말 그대로 넘쳐난다. 그러므로 이루어졌다면 전쟁사에서 기록적이 되었을 텐데.
2 옹호론
2.1 시류와 방향성
하나의 '기업'인 방송사는 무엇보다 이윤(시청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고증을 하고 스토리를 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자면 사극이 순수문학이 아닌 이상에야 어떤 극을 만들어야 이윤이 창출될 수 있는지, 드라마가 방영되는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작금의 한국 사회는 오랜 취업난과 이념 갈등을 주 요소로 보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회적 신뢰가 붕괴된 데다 극단적인 자기 연민 상태에 빠진 상황으로 심지어 헬조센 담론 및 사회의 전면적인 붕괴와 재구성을 요구하는 주장이 서민, 특히 20대 청년층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하고 있는데[22]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주인공은 악과 맞서는 절대선의 영웅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류성룡 본인이 이순신 등과 더불어 한국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오점이 적은 인물인 것도 사실이니 만큼, 방송사나 제작진 입장에서는 기왕 제작할 바에야 류성룡의 캐릭터를 아예 '절대선'으로 만들자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절대선으로 만들기로 했다면, 그와 대립각을 세우게 될 선조와 조정 관료들은 진짜 선량하다는 게 증명된 극소수를 빼고는 다 악당으로 만들고 양반들도 곽재우처럼 의병장으로 활약한 소수 빼고는 다 권리무한 책임전무의 무책임한 인물들로 바꾸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대표되는 적대관계인 일본은 거의 모두를 절대악으로 만들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 맞서는 '백성의 편'이자 '민중의 지팡이'인 류성룡을 등장시키면 시청자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률에 그대로 반영되지 못하였다.[23]
2.2 적은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투장면
아무리 조정이 중심이라도 임진왜란이 배경인 이상 황산대첩과 개경 시가전 정도만 다루면 되었던 정도전보다는 많은 전투씬이 필요한데도 제작비는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 작가 교체로 여유있게 준비를 할 수 없다는 점 등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은 이해해야 한다. 110억의 제작비로 전작 보다 훨씬 많은 전투를 찍어낸 제작진의 역량도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물론 부산진 전투를 외에도 중요 핵심적인 전투를 보여주었다[24] 전투씬 연출에서 잦은 슬로우 모션 사용과 2% 부족한 CG사용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다. 정도전도 그대로 답습했던 전투시 대오에서 이탈한 전투신 연출은 아쉽다.[25]
다만 제작비 관련해서 잘못된 얘기가 돌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하며 징비록이 불멸의 1/3도 안되는 비용으로 만들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글들이 인터넷 상에 많이 퍼져 있다. 당장 이 항목도 350v 이전까지는 이 설을 싣고 있었다. 이건 총제작비만 봐서 나오는 함정으로 불멸은 방영시간 1시간, 총 104부작으로 제작되었고 징비록은 방영시간 50분, 총 50부작으로 불멸의 절반 이하의 길이로 제작되어서 그런 것. 실제 KBS 사업부에서 밝힌 편당 제작비로 평가하면 불멸은 편당 제작비가 2억 7천만, 징비록은 2억 2천만이다. 제작비 관련해서 징비록이 힘들었던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고 이에 대해 KBS의 각성 또한 필요한 일이다.[26]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해 10년간 대폭상승한 물가상승률에 비춰볼 때, 올라도 모자랄 판에 삭감률까지 커졌다니 비감한 노릇이다.
2.3 지상전을 중심으로 한 전개
10년전 불멸의 이순신은 메인이 메인이다보니[27] 수전에 포커스가 맞춰질 수 밖에 없었기에 지상전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28] 그러나 징비록에서는 다른 임진왜란 드라마들이 다루지 못한 지상전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드라마 중반부 까지만해도 부산진 전투를 제외하면 불멸의 이순신처럼 옥포 해전, 한산도 대첩만 비중있게 나오는등 지상전을 다루지 못하는듯 하였다. 하지만 이후 평양성 전투와 행주 대첩이 상당히 비중있게 나와서 불멸의 이순신과 차별화를 이루어냈다. 특히 행주 대첩은 조선왕조 500년 이후 30년만에 공중파 드라마에서 다뤄줬다. 변이중화차와 비격진천뢰등 임진왜란기에 등장한 신무기를 재현하며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재현해냈다. 지상전을 중심으로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를 어느정도는 실현한 것이다. 경주성 전투에서 비격진천뢰를 사용한 전투장면 구현은 악조건에서도 제작한 관련인들의 집념을 보여준다.
불멸의 이순신이 생략한 전투를 다뤘다는데도 의의가 크다.. 류성룡이 대부분의 전투에 개입하는걸로 집중시키는 바람에 전투 전후 다른 인물들의 활약이 중심에서 벗어났다. 무엇보다 조선왕조 500년 이후 30년이 흐르며 새로이 밝혀진 점들이 많건만 제작비여건상 드라마에는 많이 반영되지 못했다. 전작 정도전 경우는 정몽주를 단순한 충신이 아닌 왕조를 위해 가차없이 왕을 내치고 혈통을 부정하는 냉혹한 정치가로 표현했는데, 이는 근래의 정몽주에 대한 연구성과가 반영된 것이다. 정도전은 이외에도 최근의 연구성과가 많이 반영해 시청자, 특히 역덕들의 호평을 불러왔고, 시대적으로 겹치는 명작 용의 눈물과의 차별성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두 드라마를 비교하면 역사학계의 인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다.
2.4 서인 프리메이슨 구도 탈피
이덕일의 영향으로 인해 요새 나오는 사극에서는 서인들이 만악의 근원이나 수구꼴통 악의축으로 나오는 반면에 징비록의 서인들은 동이나 화정처럼 주인공의 편이 아님에도 악의 축으로 나오지 않고 윤두수와 정철같은 서인측의 영수들도 자신들 나름대로 나라를 걱정하며 동인들처럼 유교적 이상정치를 이루어 내고 싶어하는 자들로 나온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자신들 동인들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산해에게 류성룡이 왜 우리들만이 옳다고 생각하는냐 저들에게도 율곡같은 선비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하는 등 무조건적인 선한 동인 악한 서인 구도에서 벗어나는 등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해 붕당과 조정을 선악 이분법 구도를 탈피해 재평가한 점도 크게 전향적인 면모이다. 1990년대 ~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중들의 역사관이 잘된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신하들을 주체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좋은건 현명한 신하들이 애쓴덕이고 잘못된 건 당쟁만 일삼는 신하들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이 되자 이번에는 왕에게도 돌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잘된 건 현명한 왕 덕, 잘못된 건 왕이 암군이라서. 그러다 보니 선조의 캐릭터는 과거 작품에서는 신하들에 휘둘리는 물스러운 군주로 표현되었고 근래에는 배경, 조건 다 무시하고 질투심 많은 암군으로만 묘사된다. 특히 이순신의 대한 관점은 암군 선조의 대해서 나온다.
실제로는 선조가 쿠데타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것이 잘 묘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선조는 결정적일 때는 무책임해서 그렇지 아이러니하게 권력을 다루고, 판세를 보는데 유능했다. 다만 작중에서 선조가 극 초반기와 다르게 계속 찌질거리기는 암군으로 전락하나 권력을 다루고 판세를 보는 능력과 정치능력 자체는 극이 끝날 때까지 매우 뛰어난 인물로 나왔다.
3 결론
촉박한 시간, 제작비 삭감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정통사극의 면모는 충실히 갖춘 점, 불멸의 이순신에서 어느 정도 발전된 역사 고증, 평작이라는 점이 위안이다. 하지만 정확한 역사 고증을 자랑하여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전작인 정도전보다 역사 고증이 크게 퇴보했고 시청률이 못 미친 점이 뼈 아프다.- ↑ 근데 사실 여기서부터 한자가 틀렸다(...). 대비한다는 뜻의 '비'는 '備(갖출 비)'라고 쓰고, 이에 비해 징비록의 '毖(삼갈 비)'는 조심한다거나 경고한다는 의미에 더욱 가깝다. 징비라는 말의 출처인 시경 소비의 '予其懲而毖後患'란 구절도 나 자신을 꾸짖어서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지, 이를 후환에 대비한다고 해석하는 책은 없다.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 ↑ 극중 정도전은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신분이 천해도 재능과 노력만 있다면 조선의 재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실제로 신분이 타인의 사유재산에 속하는 노비만 아니었다면 조선의 법제상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세조대를 거치면서 훈구파의 형성과 함께 이러한 건국 이상이 상당히 퇴색됨에도 조선왕조 전반에 걸쳐 과거급제자의 4할 가량은 평민이었다.
- ↑ 왜란 초기의 전면패주는 상상을 뛰어넘는 왜군의 규모와 급속히 확산된 전쟁공포 때문이다.
- ↑ 휴전협상기간이라 전쟁이 정체돼고 비중이 낮아지자 송응창과 심유경에다가 악역롤을 넘긴걸로 보일지경이다. 보면 알겠지만 30화 중후반의 악역은 일본측 장수들이 아니라 송응창이다
- ↑ 직산전투는 대사와 나레이션으로 언급만 되었을 뿐더러 류성룡과 권율이 작전계획을 주도하고 실제론 참전하지도 않았던 조선군이 참여하는걸로 명의 공을 축소시켰다. 울산성 전투는 명군의 분전을 빼버리고 전투의지 없는 명군이 조선군 수뇌부의 독전요구를 무시하고 퇴각하는걸로 했다.
- ↑ 정유년에 들어 의병활동이 와해된건 의병장 태반이 임진~계사년간에 전사하고 남은 의병대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자부족으로 해산되거나 관군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의병장을 숙청했으면 의병활동을 적극 내세웠던 북인이 무슨수로 집권당이 된단 말인가. 선조가 죽인 의병장은 이산겸과 김덕령 둘인데 이산겸은 군사들을 한곳에 주둔시키고 움직이지 않아 온건성향의 류성룡조차 딴 뜻있는거 아닌가 의심했었고 김덕령은 송유진의 난때도 이름이 거론되었고 살인사건으로 압송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역모에 연루되었는데 관계자 증언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온탓에 전근대 왕조국가에선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김덕령과 함께 거론된 곽재우와 홍계남은 아예 불문에 붙여 압송도 하지 않았고 김덕령 휘하에 있다 함께 압송된 최강과 최담령은 무혐의로 방면된다. 최담령은 선조의 지시로 김덕령이 이끌던 군사들을 그대로 이끌게 된다. 그런 사람이 의병장들을 의심하고 숙청했다?
- ↑ 병자호란 당시의 의병으론 정홍명을 중심으로 한 호남의병대, 평안도의 최효일, 황해도 김응남, 용강 박철산, 경상도 김제회, 각성과 명조의 승군 등이 있다. 청이 오직 인조를 목표로 기동전을 벌여 전쟁기간이 짧았고 도원수 김자점의 실책으로 조정이 전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늦었으며, 근왕을 독려해야할 왕이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고 광해군때의 폭정으로 무너진 향촌경제가 회복되기 전이었던지라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지 없었던게 아니다.
- ↑ 이게 가장 심했던 15~16화는 파천 하나로 한주를 때웠다. 100분 분량중 90분 가량을 4월 28~30, 3일에 쏟아부었다.
- ↑ 태조 왕건부터 대왕의 꿈까지 무인시대, 정도전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나타난 설정이자 한국 사극의 고질병이다. 그나마 태조 왕건때는 궁예와 견훤이란 개성강한 군주 캐릭터가 왕건과 공동주연이었기에 이 문제점이 어느정도 상쇄되었지만 후대 사극들은 이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
- ↑ 고증대로면 벌써 임진강 전투 끝난 시점인 건 차치한다.
- ↑ 왕을 다독이고 힘든 상황에서 최대한 할 일을 하고자 한다.
- ↑ 네티즌 시청자들은 이런 식으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류성룡에 대해 '찬물룡'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붙여 주었다.
- ↑ 이는 불멸의 이순신에도 나온다. 처음 광해군과의 대화에서 명나라의 원군이 보면 조선은 명의 복속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결국 명나라의 구걸에 가까운 부탁을 한다.
- ↑ 그나마 초반 정여립 옥사때는 시도한 흔적이 보이지만 임란 시작하자 그냥 다 날아갔다. 심지어 그나마 입체적인 건 정철과 윤두수같은 서인 대신들이 류성룡보다는 더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제작진중에 윤두수빠가 있는 게 분명하다. - ↑ 군량미 절도로 사형시킨 병사들을 전사자로 예우하고 그들의 가족들에 절도범들이 훔친 곡식을 지급하였다.
- ↑ 다만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자체가 반쯤 맛이 가서 일본 측 연구자들조차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할 지경이라 이 정도 각색에는 큰 문제가 없기는 하다.
극의 완성도보다 고증에 충실했을 따름입니다 - ↑ 중세 전제왕조국가의 백성이 더군더나 양반 앞에서 백성도 왕을 버릴수 있다 운운한다. 조선의 민중이 왕이 임명한 수령을 탐학하니 죽이겠다고 나선건 19세기 말 고부민란 때였고 그때조차 외세와 지배층이 표적이었지 왕은 예외였다. 그 이전 최대의 민란이었던 임술민란때까지만 해도 수령이 워낙 탐욕스러워서 내버려둘 순 없지만 나라님이 내려보낸 사람을 죽일수도 없다며 고을 밖으로 쫓아낸게 조선민중의 의식구조였다.
- ↑ 왕이 무능하면 신하든 누구든 나서서 백성을 돌봐야 하지 않느냐고 일갈하는 이성계에게 신하의 임무는 왕이 빛나도록 돕는 것이며, 왕조국가에서 신하가 왕보다 앞에 나서는 것은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일임을 지적하는 정몽주 등의 인물묘사에어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 ↑ 《최강칠우》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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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이용한 콘텐츠쪽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징비록에선 후자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 ↑ 실제로 네이버 뉴스나 다음 아고라, 루리웹 등 포털사이트들을 보면 좌우를 막론하고 헬조센 드립이 없는 곳이나 당장 나라 전체를 갈아엎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이글루스 정도가 온건한 비판에 머물고 있는 수준.
- ↑ 위의 말처럼 사회 불만이 가득한 사람으로 제일 좋은 캐릭터가 바로 정도전이다. 실제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소리친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다. 드라마 정도전은 이런 인물의 좌절과 성공 그리고 무리수를 잘 보여준다. 그런 반면, 징비록은 권력 유지의 몰수 해 괴물이 되어 가는 선조만 묘사된다. 그의 반면 류성룡은 그냥 선인 그 이상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냥 착하기만 한 캐릭터에 몰입성이 있을까. 단순 착하다고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그런 착한 신념을 가혹한 상황에서 지켜 나갈 수 있는지 잘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유성룡이라는 캐릭터가 선해 주위인물과의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 ↑ 특히 해전은 화포와 총통이 핵심전투력이 돼어 전투를 수행 한 점에서 고증에 부합한다.
- ↑ 제작비나 여건이 훨씬 모자랐던 삼국기 시절에는 장군들이 칼들고 소리지르는 대신 지휘를 하고 병사들은 대오를 이뤘는데 정작 제작비가 오른 지금은 여건 핑계로 지켜지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개판난전 전투씬은 엑스트라들 교육시키기 힘들고 시간 없어서 그렇다쳐도 장군들이 지휘하는 대신 칼들고 날뛰는건 대본만 수정해도 얼마든지 해결가능한 부분이다.
- ↑ 사실 각성 운운하기전에 전적을 생각해야한다. 영웅군주 트리오 3편을 연달아 말아먹었다. 그나마 KBS는 명색 공영방송이라 완전히 접지않고 제작하는거다..
- ↑ MBC 조선왕조 500년은 육전, 수전 모두 비중있게 다루었다. 기존 임진왜란 사극들이 전부 수전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건 편견이다.
- ↑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거지, 이치 전투나 평양성 전투, 진주 대첩 등 행주 대첩을 제외한 중요 육전들은 비중있게 다 다뤘다. 특히 진주 대첩은 수군의 주요 해전에만 쓰던 나레이션 형 예고까지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