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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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고등학교
Cheonan High School
天安高等學校
교훈 근면, 강직, 검소
개교 1954년 4월 15일[1]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자
운영형태 사립
교장 황춘배
이사장 오정애
학교법인 학교법인 계광학원[2]
관할교육청 충청남도교육청
학생 수 1,160명 (2016. 4. 1.)
교직원 수 89명 (2016. 4. 1.)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봉명로 53
천안고등학교 홈페이지

1 개요

경천애인(敬天愛人) 인재양성(人才養成)[3]
근면, 강직, 검소[4]
강한 천고[5][6]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봉명동 205-1(봉명로 53)에 위치한 남자 사립고등학교이다. 설립자는 학교법인 계광학원을 설립한 서광벽(1908~1996) 선생이며, 관할 관청은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이다. 같은 법인인 계광중학교[7]와 붙어 있다. 교목은 향나무이며 교화는 매화이다.

2 역사

1951년에 계광학원 설립인가를 받고 1954년 4월 15일 천안시 오룡동에서 계광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 당시의 위치는 제일고등학교 앞의 버들육거리와 남부오거리 사이의 중앙로 인근으로 추정된다. 당시만 해도 오룡동은 천안시 구도심의 한복판으로, 천안의 중심이었다. 초대 교장은 계광학원을 설립한 우강 서광벽 선생이 계광학원의 초대 이사장과 함께 겸임하였다. 아후 바로 다음해인 1955년에 지금의 봉명동 부지로 이전하였다. 천안고의 개교기념일은 특이하게도 오룡동에서 개교한 날이 아니라 봉명동 신축 부지로 이전한 6월 30일로 되어있다. 때문에 매번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걸린다. 계광-천고 라인이라면 6년 내내 못 논다[8] 1959년에 지금의 천안고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6년 2월에 제 60회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3 구조

본관, 신관, 기숙사(웅비관), 세미나실 및 교실(우강관&청마홀), 강당(J&C홀), 구 강당(계광홀)으로 구성되어있다. 음악실, 과학실 등의 특수 교실은 계광홀 1층에, 도서실과 자습실은 2층에 있다.

운동장은 중앙정원 아래쪽에 넓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운동장에서 학교 건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계광중학교와 운동장을 공유한다 [9]

학교정문에서 급식실 올라가는 길, 중앙정원, 운동장 옆길 등에 초목이 잘 가꾸어져 칙칙한 남고의 우울함을 약간 덜어준다. 그러나 정작 남고딩들은 신경 안쓴다 벚꽃필때면 탄식하면서 사진찍긴 하지만

중앙정원 한가운데에는 천안고 개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매설한 타입캡슐이 자리잡고 있다. 2004년 6월에 매설되었으며 개봉은 2054년 6월 30일 개교 100주년에 거행될 예정이다.

4 상징

여러 상징이 있지만, 청마가 상징의 키워드이다. 특별반은 청마반, 예전 교지 이름도 청마...유치환 시인의 호와 같다 천마페가수스가 아니다
청마를 강조하기 때문에 교목과 교화를 기억 못할지도 신관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청마 그림이 학생들을 반겨준다 청마 그림그려진 노트도 있다 청마도서관 앱이라고 파란말이 웃고있는 안내판도 있다 아무도 그 앱 안쓰지만

아래 노래들은 1학년 음악시간에만 몇번 부르고, 교가 제외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아예 부를일이 없다. 교가는 부를 일이 좀 있다. 졸업하고 나서도 동문 모임하게 되면 항상 부른다.

4.1 교가

1절

차령맥 줄기차게 뻗어온 아래
위례성 옛 역사 빛을 뿌리고
오룡의 정기 받은 거룩한 땅에
슬기로운 건아들 모여들었네

(후렴)씩씩하게 자~라난 천고의 열매
강산 곳곳에 씨가 되겠네

2절

화랑도 이어받은 우리의 몸에
광덕을 터전삼고 관순을 따라
이나라 이루-울 새 일꾼들이
배움을 찾으려고 모여들었네

(후렴)

같은 법인인 계광중학교와 같다.
후렴에 천고가 계광이라는 것만 다르다 2절은 아는 사람이 없다 입학식날 전통이라고 하면서 교가를 배운다.

남고 교가치곤 후렴부분의 음이 더럽게 높아서 완벽히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4.2 청마의 노래

1절

근면한 밝은생활 청마의 기상
희망찬 내일 향해 힘차게 뛴다
오룡의 큰 기개로 하늘을 뚫는
우리는 젊은학도 보람에 산다
(후렴)아 아 슬기로운 천고의 청마
아아 용맹스런 천고의 청마

2절

강직한 우리 성품 내일의 기둥
무한한 가능성의 젊은 우리들
청운의 높은뜻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젊은학도 꿈을 키운다
(후렴)

3절

검소한 생활태도 고이 간직한
전통의 우리 천고 명예를 지고
향나무 푸른기상 빛을 발하는
우리는 젊은 학도 희망에 산다
(후렴)

여담으로 1,2,3절의 첫 단어는 학교의 교훈 근면, 강직, 검소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4.3 응원가

청마 청마 청마야! (땃땃땃)
빠 빠 빠 빠빠바 빠바 빠바바바 빠 빠 빠
오룡의 정기 받았다 청마 용사들아
대적할 자 그 누구냐 청마 전진한다
우리는 근면한 청마 용사다
영원히 전진할 우리는 청마
청마 청마 청마야!

배구부나 골프부가 있지만 학생들이 응원을 가지는 않기 때문에 음악시간 빼고 음악시간에도 안부른다[10] 부를 일이 없다.
체육대회가 있어도 부르는 일은 없더라. 다들 피시방 가야해서 바쁘지

4.4 청마의 행진

1절

숭고한 피땀들이 얼룩진 이 곳
후박과 향목으로 감싸인 천고
백제의 옛정신을 되살려보세
이곳은 청마가 달리는 배움의 동산
(후렴) 우리 모두 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
우리모두 달려라 달려 청마의 행진

2절

근면 강직 검소를 횃불삼아서
부자나라 이룩할 길을 밝히세
대한나라 역군될 천고의 청마
열심히 갈고 닦아 씨를 뿌리세
(후렴)

3절

높푸른 하늘위로 치닫는 청마
해맑은 태양아래 뭉친 천고인
나가자 싸우자 모두 이기자
(3절만 가사가 없는 줄이다 기억난다면 추가바람.)
(후렴)

5 특징

5.1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 62년

1954년에 인문계 고등학교로 개교하였는데, 저 때만 해도 천안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천안시 뿐만 아니라 충남권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11] 1950년대만 해도 천안에는 계광고등학교(천안고등학교의 전신)와 천안여고밖에 없었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가 부족했던 옛날에는 멀리 농촌지역에서 올라와 하숙하며 다니던 학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산, 예산, 서산, 당진, 태안 등지에서도 천안고등학교에 지원했을 정도이다. 지금은 전부 재개발에 들어갔지만, 천안고등학교의 아랫 동네인 봉명동 부창구역이 당시 천고 학생들의 하숙집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인지도가 높은 학교?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타 지역과는 드물게 사립 고등학교가 지역명을 쓰고 있는 특이한 겅우.

사실 전국적으로 보면 천안고보다 오래된 학교들은 많이 있다. 천안 지역만 하더라도 제일고(과거 농고)가 천안고보다 20년은 먼저 개교했고, 공고, 심지어 천안여고도 천안고보다 먼저 생겼다. 다만 천안고가 지역 명문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유지의 자제들이 이 곳에 진학하거나, 졸업생 본인이 지역 유지가 되어 동문 파워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2 천안고 동문회

천안고에서 가까운 충무로 길가, 충무병원 맞은편에 총동문회 건물이 있다.
천안 지역에서 천안고 동문회의 힘은 꽤 있는 편이다. 천안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서북구에 새로이 지어진 신생고등학교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중앙고북일고에 비해서도 동문의 입김이 쎄다. 그도 그럴 것이 1950~60년대에 천안에서 유일한 인문계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12]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現 제 2작전사령관인 박찬주[13],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용학,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현 천안시장 구본영이 천안고 출신이며, 현 충청남도 교육감 김지철도 천안고 출신이다. 천안시의원과 충남도의원에 재직 중인 동문도 많다.

천안고 동문들의 힘이 얼마나 결집되느냐에 따라 선거의 향배가 갈리기도 한다. 2000년 4월 실시된 16대 국회의원 천안 갑 선거구가 대표적이었다. 당시 천안 갑 선거구에 등록한 천안고 동문은 전용학 후보 한 사람이었고, 동문회의 빵빵한 후원을 등에 업고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전용학 후보를 포함한 복수의 동문이 출마했고, 결국 동문 파워가 분산되어 두 사람 모두 당선되지 못한 흑역사가 있다. 여담으로 그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친의 전철을 밟으실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던 양승조 국회의원이다.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일한 천안 갑 선거구에 천안고 출신의 한태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으나, 초선인데다 현역의원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구 획정 탓에 새누리당 후보에 패배하고 말았다.

총동문회와는 별도로 각 지역별 동문회가 존재한다.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된 동문의 경우 재경(在京) 천안고 동문회, 대전에서 생활하는 동문은 재전(在田) 천안고 동문회에서 활동하는 식이다. 그리고 특정 대학별로 동문회가 따로 있기도 하다. 서울대학교의 천서회, 고려대학교의 청호회가 대표적이다. 서울 지역 대학가에서 지방 일반고 동문회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 속에서도 천안고 출신 동문회는 압도적으로 잘 운영되고있다. 여담으로 천안고등학교 동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육대회도 있다.

5.3 청마반

학교의 상징인 청마를 맘대로 갖다 붙인 청마반

청마반이라는 세련된 이름은 비교적 최근인, 2005년 신입생인 52회부터 생겨났다. 그 전 51회까지는 '생활관' 기숙사 아니냐 그건 웅비관으로 불렸는데, 생활관은 그냥 자습실일 뿐이고 그 자습실에 속하는 학생들이 별도로 수업을 받는 반이 '특별반' 이었다. 별도의 호칭이 없이 학년단 별로 중구난방 불리다가 52회부터 '청마반'으로 명명되어 현재까지 내려온다. '특별반'은 평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특별한 수업을 받는데, 수시로 대학 갈 것 아니면 무쓸모와 비효율의 극치이므로 하지말자 주로 국영수 위주로 수업을 받는다.

속히 말하는 특별반. 특별반답게 성적 상위권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청마반 학생들에게는 본관 4층에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자습실이 있어 야간 자습이 끝난 뒤 추가적으로 강제적으로 청마반 자습을 실시한다.

63회 이전 학생의 경우 총 60명을 선발해서 기숙사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고, 40명 넘게 기숙사를 신청했을 경우, 그 중 상위 40명을 선발해 기숙사에 입사했다.

2016년 고1 학생들인 63회부터 기숙사 시스템이 개편되어 30명 정원의 제 1기 청마 웅비반이 새로 편성됐다. 청마반 학생들 중 기숙사 희망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보고 선발한다.

청마반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방법에 4가지의 은어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낙마: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다음 학기 청마반이 지명되는데 기존 청마반 학생 중 성적[14]이 낮은 학생이 다음학기 청마반에서 제외되는 것. 추가적으로, 청마반 변동이 심한 1학년 사이에서는 전기낙마[15], 후기낙마[16] [17] 로 나뉘어져 불리운다.
2.짤마: 학기 중 태도가 개노답일 때[18] 학년단 선생님에 의하여 청마반에서 제외되는것. 오랜만에 자습실에 갔는데 출석부에 내 이름이 수정테이프로 지워져 있는 경우 '짤마'에 해당된다.
3.탈마: 본인의 의지로 청마반에서 나오는것. 보통 강압적인 청마반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선생님과 갈등이 있어 청마반을 나올 경우를 탈마라 한다.
4.승마: 성적이 우수한 경우 청마반 재편성 때 청마반에 입성 가능한데, 이를 승마라 한다.


학교 내에서 청마반 시스템은 특정한 [19] 학생들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있어서, 학생들 간의 학교내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정 설명회를 청마반 중에서도 상위권 대상으로만 진행하기도 한다.관심있는 사람만 교무실로 부를 때도 있는데 청마반이 아닌 학생은 교실로 다시 돌려보낸다
추가 바람.


참고로 2015년 서울대학교 입시설명회는 전교 20등 까지만 선정해서 사전공지만으로 진행했다.

5.4 기숙사

천안고 신관(1, 2학년 하얀 건물) 뒤쪽 쌍용대로에 면하여 웅비관이라는 기숙사 건물이 있다. 웅비관은 2006년 5월 7일 일요일에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에는 4인 1실 * 26실 = 104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기숙사 전용 건물로는 개교 이래 처음 생긴 건물이다. 천안고 51회가 3학년 때 처음으로 기숙사를 사용하여 기숙사 1기가 되었다.
웅비관이 생기기 전에는 계광홀의 집현전 맞은 편, 화장실 옆의 자습실이 비어있어, 캐비넷 몇 개 갖다놓고 생활관으로 활용했다. 학년 구분 없이 그냥 이불 깔아놓고 자는 곳이었다고 한다. 49회를 마지막으로 사용 종료했다.
선발된 청마반 60명 중에 40명을 선발한다. 현재 2016년은 30명만 선발했다.
2016년 63회 신입생 기준으로 내신 20%, 고입선발고사 20%, 자체 진단평가 25%(변별력 있는 문제 위주 수학 20, 영어 25문제이며 제한 시간은 50분.), 2016년 3월 모의고사 20%, 면접 15%로 청마반이 선발되었다. 그중 신청을 받아서 3차 면접까지 거친 뒤에 30명의 기숙사생을 선발했다. 기숙사 제도가 개편되어 2016년 입학생들은 위와 같이 제 1기 청마 웅비반이 되었다.
6시 40분부터 8시 10분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8시 30분부터 10시 40분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한다. 청마반과 같이 자습을 진행하며 60(청마+웅비)명의 개인 책상, 사물함이 있다. 주말 자습은 토요일 1/2부, 일요일로 나뉜다. 토요일 1부는 오전 9~12시, 2부는 오후 1~5시이다. 토요일은 1부나 2부 혹은 전체를 선택할 수 있다. 일요일은 오후 1~5시이다.

5.5 학교 건물의 특징

기숙사와 J&C홀을 제외하고 모든 건물이 이어져 있다. 때문에 비 오는 날에도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차피 기숙사는 잠 잘때나 들어가는 곳이고, 평상시에는 J&C홀을 이용할 일이 별로 없긴 하다.
우강관과 본관 건물 2, 3층이 서로 이어져 있고, 신관과 본관은 구름다리로 이어져있다. 보통 3학년 4반으로 많이 이용되는 우강관 3층 가장 끝 교실은 뒤쪽이 엄청나게 넓다. 그 곳에서 말뚝박기하고 축구를 해도 전혀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교실 뒤쪽이 휑하다.
선생님들의 교무실이 여기저기에 있다. 교감선생님이 계신 본관에 큰 교무실이 있고, 각 학년단마다 교무실이 따로 있다. 어떤 분은 과학실에 계시기도 하고, 보건실에 계시기도 하고, 학생부실에 계시기도 하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매년 쓰는 책상을 들고 움직이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교장실은 우강관 1층에 있다.
남자고등학교이지만 여자화장실이 있다. 교원용 및 내빈용 화장실인데, 총 2곳이 있다.
2016년 6월 현재 기숙사 옆, 예전 급식실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있다. 도서관과 음악실, 자습실같은 다목적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건물 짓는데 예산 33억 들였다고 한다

5.6 진학 실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

닥치고 서울대를 많이 보내면 된다!!!
박성광이 싫어합니다.
유독 이 문단에 정성이 깃든 것처럼 보인다면 기분 탓이다

지방의 사립 남자고등학교 중 안 그런 곳이 별로 없겠지만, 정말 고3 및 졸업생의 진학 실적에 대한 집착이 강한 학교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속칭 Top3 (천고 중앙 북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기인하는 악습이다. 천안 지역에서 학교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입에서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이고, 그것이 우수한 신입생을 유치하여 좋은 대입 결과를 내는 선순환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1995년 제 42회 입학생을 시작으로 비평준화로 돌아선 이후, 쓰리고 그 중에서도 천안고는 몇 년간 상위권 학생을 제대로 유치하지 못해 꽤나 애를 먹었다. 인원수+공립고 프리미엄의 중앙고, 충남 각지에서 우수 학생이 몰려드는데다 두둑한 재단의 지원을 둔 북일고와 경쟁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프로스포츠마냥 중학교를 졸업하는 우수한 학생들에게 FA계약처럼 이것저것 걸어서 학생을 유치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야구로 따지면 북일고는 돈성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 천안고는 편리한 교통과 더불어 실적은 그저그런 LG 트윈스, 중앙고는 실적은 나쁘지 않지만 왠지 모를 2인자 느낌의 두산 베어스의 포지션

그 시절 천안고가 내세운 장점으로는 크게 막강한 동문 파워 + 상대적으로 깔끔한 교복 + 서부 지역에 위치한 편리한 교통 정도였다. 그러나 실상은 예비 고등학생들에게 그닥 어필이 안되는 내용일 뿐이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예비 고 1이 동문 파워의 막강함은 어떻게 체감할 것이며, 교복은 그 자체로 억압의 상징 아니던가. 게다가 천안 쌍용동을 비롯한 서부 지역에 택지가 개발되기 전에는 천안고가 있는 봉명동은 천안의 외곽 시골 동네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교통이 딱히 편리하지도 않았다. 이래저래 중앙고와 북일고에 치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대입 실적을 그럴싸하게 내서 플래카드를 거는 것이 확실한 어필 전략으로 자리잡게 된 것. 하필 비평준화 전환 직후부터 진학지도를 주도적으로 하셨던 모 선생님의 지략이 아무래도 서울대 숫자만 맞추면 되는거 아닌가? 였고, 그 분이 서울 학원가에서 재수, 삼수중인 본교 졸업생 및 이미 서울대에 진학한 졸업생들과 전방위적으로 연락을 취하여 모교를 출입하게 함으로써, 학교 안에 오묘한 서울대 지상주의를 형성하는데 기여하셨다. 게다가 당시의 천안고는 서울대 진학자에게 입학금 및 1학기 등록금을 하사하는 엄청난 특전을 주었다. 고교 졸업성적과는 별개로.

이게 먹혀들어갔던 것이, 정말로 그 시절엔 서울대 숫자만 따져도 충분히 천안시내에서는 어필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의 중학교 3학년에게 가고싶은 대학을 물어보면 고려대, 연세대요!라고 말하는 애들이 별로 없다. 다들 서울대라고 말하지....그러니까 서로 바보인거다 사실 서울대 진학 숫자만 가지고 학교의 척도를 결정한다는게 말이 안되긴 하는데, 그래도 프로스포츠에 준할 정도로 박터지게 벌어지는 천안시 고입 유치전쟁에서는 엄청난 무기가 되는 것이다. 겨우 서울대 합격자 수일 뿐인데그 학생들이 실제로 진학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합격자 숫자가 중요할 뿐. 서울대를 많이 보낸것처럼 보이는 학교에 진학함으로써 일종의 후광효과를 향유하는 셈인데... 그렇다고 이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실제로 여러 해를 거치며 증명된 사실이다. 대입에서 고교 내신 반영 비중이 높아졌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천안지역의 상위권 남학생들은 기숙사학교+상위권 집중관리로 수능 준비에 유리한 북일고와 학년당 학생 수가 많아 내신관리에 유리한 중앙고를 지망하는 바람에 입시경쟁에서 도태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2005년~2007년 사이의 천안고 아웃풋은 시내 쓰리고와 비교해서 게임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물론 천안고의 삽질로 인한 반사이익은 쓰리고의 나머지 학교인 북일고등학교천안중앙고등학교가 가지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집착은, 대학 진학실적이 좋으면 우수 신입생 자원이 풍부해져서 3년 후에 다시 좋은 진학 실적을 내게 되기 때문에 주변학교와의 경쟁이 수월해지고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쥐는, 입시 선순환구조를 안정적으로 얻기 위한 것이었....으나 항상 잘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유치전에 활용할 수 있는 졸업생들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예비 고1학생들보다 4~5년 정도 선배인, 고입 당시의 대학교 1~2학년들의 입시실적이다. 그러나 천안고가 서울대를 20명이나 합격시키며 승승장구하던 2002~2003년 당시에 입학했던 천안고 50~51기의 실적은 말 그대로 개교 이래 최악이었다. 그나마 50기는 49기 재수생들의 커버 효과로 외견상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재수생 엄호를 받지못한 51기는 말 그대로 폭망...51기에 대한 투자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는 1등 지상주의가 만연한 이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대입을 준비해보면 서울대는 커녕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다. 하물며 고연대는 아니지만 KAIST포항공대도 있고, 수도권 및 각 지방에 산재하는 각종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예과 등등이 있는데... 진짜, 전근대적인 발상에 가깝지만 실제 진학지도를 지휘하는 선생님들의 기본 마인드는 닥치고 서울대 써라. 나머지는 잡대학. 학교는 어떻게든 서울대 합격자를 늘리고자 별의별 꼼수를 다 부리게 되었다.

일단 고3이 되어 어느정도 상위권에 든 학생들을 추려낸 다음 그들을 속칭 '서울대반'으로 편성하여 집중관리에 들어간다. 이 집중관리라는 것이 대입에 민감한 고 3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엄청나게 주는 것인데다, 교사들의 추가 수업을 강요하는 시스템인 것. 게다가 기본적으로 학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오로지 성적만으로 학생을 판단하는, 학생을 도구로서 간주하는 권위적인 작태이다. 또한 학생부 조작등의 관행이 있어왔으며[20] 특정 방과후 수업 [21] 을 위 학생들 전용으로 설치하여 타 학생들은 수강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일반 학생들이나 상위권 학생들 모두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편이다. 더욱이 학교가 학생에게 유무형의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제 아무리 해당 학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더라도(...) 일단 성적이 되는 학생에겐 전공 따지지 말고 무조건 서울대에 쓰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식이다. 즉 주어진 지원 기회 중 한번은 반드시 (전공 따지지 말고, 즉 관심있는 학과든 아니든 따지지 말고) 서울대에 지원하라는 식인 것이다.[22] 이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엄청난 반항이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그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더라도 학교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일례로 IMF 직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 자연계열 최상위권들은 의대, 치대, 한의대, 약학 계열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이 많아졌는데, 그런 학생들의 경우 고3에 올라갈 때쯤 되면 애시당초 서울대에 가겠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서울대에는 한의대, 치대를 선발하는 전형이 없었을 뿐더러...[23] 적당히 눈을 낮추면 갈 수 있는 학교가 전국 여기저기에 많기 때문. 서울대 의대나 약대가 목표라면 모를까 바로 그런 학생들에게까지 학교에 대한 명분을 앞세워 서울대 원서질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게 되었던 것. 물론 학생 개인이 합격증 콜렉터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학교와 학생이 서로 윈윈하는 것이겠지만 실제 대부분 학생에게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래서 1학기 수시가 있던 2000년대 중반까지 학교는 내신 1등인 학생과 원서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고[24], 일부 학생은 정당한 권리를 앞세워 학교로부터의 압박에서 벗어나지만, 졸업한 이후에 교사들이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의리 없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졸업생 선배라고 이야기를 하는 등 뒷끝이 좋지 못한 관계로 남는다.

심지어 심각한 경우[25]에는 졸업하고 나서 수 년이 지나 개인적인 목표가 생겨서 수능을 다시 치른 예비역 20대 중반 졸업생등에게도 연락을 취한다. 이를테면 그 학생의 동기 중에 서울대 재학중인 졸업생에게 연락을 해서 "XX야 너 OO이랑 친구지? 이번에 그 친구가 수능을 봤던데... 샘이 그 친구랑 그렇게 안 친해서 그런데 잠깐 학교에 같이 와 볼 수 없을까?" 라고 유인하는 식으로[26] 서울대 원서질을 강요하기도 한다. 예비역의 무서움을 잊으셨나보다 문제는 이렇게 어거지로 낸 진학실적이 고교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여전히 먹혀들어간다는 데 있다. 그 학교의 진학실적 자체가 자녀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데 결정적인 유인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형으로 적은 건 이제 평준화라

또한 여러 특목고와 비교를 하면서 특목고를 따라잡겠다고 더 강도를 늘리고 있다. 그나마 2016년 신입생부터 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에, 고입 인풋을 높이기 위한 불필요한 경쟁 및 진학실적 요구는 많이 줄어들거라 기대된다. 다만 현재는 북일고자율형 사립 고등학교가 되어 경쟁에서 이탈했고, 천안중앙고의 프리미엄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이라 천안고가 가만히 있어도 우수학생들이 알아서 오는 형국이 되었다...

참고로 수시 합격 발표가 난 후 아이들이 정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문자가 올 수도 있다. 열어보면 그 학년도에 천안고가 명문대를 얼마나 보냈는지 친히 알려준다. 의대 3명, 서울대 3명, 성균관대 16명... 등등. 그래도 내신 시험이 끝난 날엔 어김없이 "남자는 정시!" 소리가 들린다. 여기 유행어가 파워정시! 이거다.

5.7 청마 예술제

청마 예술제는 천안고등학교의 학생 축제로 1988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주로 벚꽃이 피기 직전 혹은 지고 난 다음인 왜죠? 4월의 어느 토요일에 열렸었다. 왜냐하면 돈으로 무장한 어느 신생학교와 축제가 겹치지 않게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벚꽃은 그 학교가서 보면 되기 때문에... 사실 남학교 축제가 다 그렇듯 컨텐츠 자체가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학교가 개방되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에 중요도가 높았다. 학교에 여학생들이 오기 때문. 흠많무 개이득

그때그때 조금씩 컨텐츠가 바뀌지만 연례행사도 있었다. 흑사회 중앙정원 전시회나 미스 청마 선발대회, 1학년 반장들이 주체가 되어 뽐내는 우정의 무대 등등.... 인접한 천안여상과의 콜라보도 인기가 있었다. 여자가 나오니까 2004년에는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학교에서 돈을 왕창 쏟아부었는데, 그 때는 무려 구피가 왔었다. 일개 지방 고등학교 축제인데.. ㄷㄷ

2004년 5월 29일 토요일에는, 천안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개교 50주년 기념축제를 천안종합운동장 광장에서 따로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에 개그 콘서트에서 잘 나가던 박준형김기수가 사회를 봤고, 빅마마, 배일호, 장나라 등이 초대가수로 출연했었다. 아니 얼마나 돈이 많았으면 그런 행사를 열었어요???? 선생님들이 소녀시대가 왔다는데 사실이다! [27] 소녀시대 극성팬 한명이 전교생몫까지 혼자 다 응모했다 카더라 흠좀무

2013년을 마지막으로 토요일에 하던 축제는 마지막이 되었고, 2014년부터 동아리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수능 끝난 뒤 쯤 평일에 열리게 되었다. 그들만의 리그... 여자가 안온다 ㅜㅜ

5.8 기타 사항

학교의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엘리베이터도 없고 구관 건물은 낡은 편이다. 이전에 급식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어 도서관, 음악실등을 이전하기로 했다.
도서실은 그리 크지 않은 편. 책장 사이를 걷다보면 좁은 것이 체감이 된다. 원래 도서관이 그렇게 작았던 것은 아니고, 집현전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는 자습실의 가장 넓은 공간이 원래 도서관이 있던 자리이다. 서가도 꽤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토론수업에 유용하도록 모둠형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어서 보기드물게 쾌적한 도서관을 자랑했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그러나 2007년에 교감선생님이 되신 분의 철학이 자습실을 늘려서 애들을 빡세게 굴려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자습 공간 확충을 위해 서가가 작은 방 안에 다 짱박히게 되었던 것이다. 어쩐지 도서관이 구리더라!현재 서가가 있는 곳은 선생님들의 집무실 겸 정보검색실, 복사실로 쓰이던 곳이었다. 실제 2004~2005년경에 촬영한 천안고 홍보영상에 보면 그 시절 쾌적한 도서관을 알 수 있다. 진정 천안시내 각급학교 어디를 내 놓아도 꿀리지 않을 퀄리티의 도서관이었다.
한 때 도서관에는 라노벨이나 만화가 배치되있었으나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운이 좋다면 26년이나 나이트런 파더스 데이|나이트런/Another Episode-1 Father's day, 고전부 시리즈,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일간의 행복 등을 발견할수도 있다. 또는 괴물 이야기 라든지 어나더라든지 그 많던 라노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14년 당시 도서관 담당 선생님과 몇몇 라노벨을 싫어하는 도서관 관리 학생들의 합작으로 많은 책들이 폐기되었으며, 라노벨을 들여오는것도 많은 제약이 생겼다
도서관 내에는 열람할 수 있는 오래된 도서자료가 무지하게 많다. 이유는 자료보관을 위한것도 있지만, 선생님들이 버리지 말라고 하셔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70~80년대의 도서자료(심지어 비디오도 있다!)는 물론이고 유신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국제순회방문 일지라던지, 1954년에 쓰여진 고가연구, 한국문자급어학사 같은 고서당 뺨치는 희귀서적들도 있다. 여러모로 역사가 있는(?) 도서관인 셈. 여담으로 기부받은 영어 원문 책들 중에는 상당히 오래된 것들이 많은데(대부분이 40~50년대 서적들이다.), 최고로 오래된 것은 1937년(...)에 Osbourne McConathy가 쓴 "The Music Hour First Book - (Dedicated to Lowell Mason)"이라는 책이다. 거의 규장각급 이런건 대체 어떻게 구한거야

보통 한 학기 후반에 연체자 목록을 달아놓는데, 어째 가장 많이 연체된 사람들이 선생님들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6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6.1 버스

천안고등학교 정류장

광혜당약국, 계광중학교 정류장

  • 그외 대다수의 시내운행 버스 및 900번대 버스.

학교 앞 대로가 천안종합터미널 및 번화가인 두정동 에서 주거밀집지역인 쌍용동, 신방동, 불당동을 비롯한 서부로 가는 주된 도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버스가 이쪽을 지난다.

6.2 철도

7 출신 인물

  • 전,현직 본교 교원 중 다수

8 트리비아

  • 가끔 도서관을 보면 선배들의 졸업앨범이 꽂혀 있는데, 계산만 잘 한다면 천안고 출신 선생님들의 고등학교 시절을 감상할 수도 있다.
  • 급식에 닭 요리가 비교적 자주 나오는 편이라 학교 어딘가에 양계장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계광재단의 계는 역시 닭이었나 桂光이 아니라 鷄狂이라는 썰이 오래전부터 돌고있다 감자요리도 상당히 많이 나오는 편인데, 이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그래서 닭감자조림이 많이 나오는 거였어
  • 2016/10월 기준으로 매점 옆쪽 실외기가 모여 있는 샛길에 작은 고양이가 살기 시작했다.고양이 장난감으로 놀아주는 학생이나 밥을주는 학생이 많다 귀엽다

9 관련 문서

쓰리고
  1. 그러나 개교기념일은 6월 30일로 되어있다. 봉명동으로 이전한 날이다.
  2. 다리로 연결된 계광중학교와 같은 재단. 참고로 계광중학교와 급식실 및 운동장을 공유하며 계광중학교는 각종 행사 및 체육시간에 고교 내 강당인 계광홀을 사용한다. 또한 천안고등학교는 실내 체육 시 계광홀 대신 운동장 앞 J&C홀을 사용하는데, 이곳에서 매년 입학식을 양측학교가 동시에 한다. 61회 입학식 기준이므로 현재는 추가바람.
  3. 건학이념
  4. 교훈
  5. 요즘 밀고 있는(?) 문구이다. 특히 진로진학 관련 인쇄물 등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신xx(유명 수학 강사)의 슬로건과 많이 닮았다.
  6. 해당 문구의 캘리그래피 작가도 천안고 출신이다.
  7. 참고로 남자중학교이다. 고추밭 천고도 남고이다
  8. 2016년 올해는 개교기념일이 7월 1일로 미뤄져서 기말고사 후 놀 수 있다!
  9. 절반을 갈라 왼쪽은 천고, 오른쪽은 계광중이 사용한다.
  10. 현재는 퇴임하신 전임 음악선생님(그..그립다!!)이 수행평가로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를 했는데, 학생들이 부를 노래를 찾지 못해서 대부분 애국가와 교가를 불렀다. 심지어 한번도 부르지 않았던 청마 응원가도!
  11. 그렇다고 전국급의 인지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충남의 교육도시는 공주시였고, 이 때만 하더라도 대전이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이자 가장 큰 도시였기 때문에 충남의 명문고는 대전에 몰려있었으며, 그리고 천안의 경우 서울까지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학생 유출이 심했다.
  12. 중앙고 1회는 1971년에 졸업하였다. 북일고는 1979년.
  13. 계급으로 치면 대장, 즉 4스타. 동생과 두 형까지 4형제가 모두 동문이다.
  14. 모의고사+내신의 총합
  15. 1학년 1학기 청마반은 중학교 내신으로 뽑히기 때문에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 적응을 하지 못한 학생들은 1학년 2학기에 낙마하게 된다.
  16. 중학교 티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청마반이 선별된다는 1학년 2학기 청마반을 살아남고 이후에 낙마를 하는 경우
  17. 1학년 때는 선생님들이 1학년 2학기 때부터가 진짜라고 많이들 강조한다.
  18. 청마반 자습을 무단으로 도망간다든지..
  19. 성적 상위권
  20. 내신 성적 조작이 아니라, 특정 대회 참가 기회 및 수상실적을 서울대 지원할 학생에게 몰아주는 식으로
  21. 이건 레알이다. 1학년중 청마반, 즉 공부잘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생활기록부를 따기위해 특별 방과후수업이 만들어졌는데. 일반 학생들을 수강신청을 못하게 해놓았다.
  22. 좋은 말로 명분을 주고 실리를 취해라라는 식으로 상위권 학생을 설득하기도 한다. 근데 내 앞날도 보장하기 힘든 대입에서 학교에 명분을 제공해 줄 정도로 여유로운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혹시나 있다고 해도 정당한 방법이 아닌 것이다.
  23. 치대는 2016년부터 부활
  24. 서울대는 1학기 수시가 없었다. 그래서 1학기 수시로 타 학교에 합격하면 그냥 그 학교에 가야했다.
  25. 고 3 재학생들의 성적이 타 학교에 비해 낮아서 입시 폭망이 예상되는 경우
  26. 사실 지방 사립고등학교의 서울대진학자의 경우 거의 전 학년 선생님들이 이름을 다 안다. 그리고 졸업생이 오지랖을 부려서 졸업 후 학교를 몇 번 더 찾아가면 바로 레전설급 애교심을 가진 모범 졸업생이 되기때문에, 서울대 진학자와 모교의 커넥션은 꾸준히 유지가 되는 편. 당장 교장선생님이 직접 서울대 동문회 정기총회를 뛰어다니는 판이다.
  27. 소녀시대는 예전에 했던 통신사 주관 이벤트덕분에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