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반트

Trabant

첫 모델인 트라반트 P50. 이 녀석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차다! 후에 이 차대를 베이스로 엔진만 변경하여 배기량을 증가시킨 P60도 등장한다.


1차 F/L 모델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모델 트라반트 601. 보통 트라반트 하면 이 차를 말하는 것이다.


2차 F/L 모델이자 최후기형인 트라반트 1.1. 다만 이 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를 통한 독일 통일로 인해 서독 지역 차량들이 유입되던 시기라서 3년이라는 하도 오랫동안 생산한 601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밖에 생산되지 못하였다.

601의 런칭 광고.

독일민주공화국에서 제작, 판매된 경차. 공장은 츠비카우에 있었고, 1959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되었다. 애칭은 트라비. 그러고보니 이 사람 이름도...

1 개요

동독은 한 집에 차 1대씩은 가지고 있었다는 사회주의 지상락원 전설의 주인공. 1958년에 츠비카우의 구 아우디 공장을 접수해서 이듬해인 1959년에 첫 모델을 출시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수요가 생산량을 추월했음에도 생산량을 많이 늘리지 않아 기껏 돈을 모아서 신청해도 출고까지 9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더해 자본주의 돼지들이 만드는 오토바이 따위보다도 후달리는 성능[1]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능 향상을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아서 초기형이나 후기형이나 성능 상의 큰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중고차신차보다 더 비싼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역으로 성인식 선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하는 훈훈한얘기도 있다. 여유가 좀 있는 집안이라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저축한 돈을 가지고 회사에 신청해서 9년 후 성인이 되면 받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덕택에 서독이나 프랑스같이 자체적으로 고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에서 진작에 동독 체제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유머거리가 되었고, 소련은? 거기 자동차야 품질이 트라반트보다야 괜찮았지만 애초에 보급률이 떨어져서... 웬만한 후진국들의 자동차에도 품질상으로 밀리는 1980년대에 와서는 세계 각지에서 "가격이 싸지 않으면서 출고 기간은 더럽게 길지만 품질이 후달리는 자동차"로 화려하게 명성(?)을 떨쳤다.

아래에 나오는 안습한 사양과 품질을 자랑하지만 그래도 이 물건이 당시 동독이 동구권 국가 중에서는(더 나아가, 소위 제 1세계라 불리는 서유럽, 미주, 일본등의 부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 중에서는) 그나마 경제적, 산업적으로 여유 있는 처지였다는 증거이긴 하다. 느리고, 시끄럽고, 힘도 약하고, 위험하고, 매연까지 풍풍 쏟아내는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어찌됐건 사람 타고 짐 싣고 엑셀 밟아서 나가기만 하면 자동차란 상당히 편리한 물건이고, 70년대 당시 중류층 월급 생활자가 자가용 차를 가질 수 있는 국가가 결코 많지는 않았다는 점은 참작하자. 당장 동시대 한국의 경우도 가격 면에서든 문화 면에서든 자가용 승용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지, 일반 봉급 생활자가 돈 모아서 살만한 물건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도 힘든 경우가 많은 빈국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저개발국에서는 차가 일반 가정에 오면 가보 1호가 된다고 한다.

2 사양

초기에는 2기통 2행정 500cc 18마력 엔진을 장착했으나, 1963년에 600cc 23마력으로 마이너 체인지가 있었다. 그러나 외관이나 편의 설비 같은 것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엔진 성능 한계 때문에 60km/h, 기껏 밟아봐야 100km/h를 넘기 힘들었다고 하며, 공냉식 엔진이라 중간에 적절하게 쉬어주지 않으면 엔진이 퍼진다고 한다. 릭샤냐? 2행정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인 별도의 윤활유 공급 장치가 없어 휘발유에 윤활유를 섞어 연소시키기 때문에 매연이 엄청난 편이었다. 트라반트의 매연이 나오는 사진을 보면 매연이 흰색이나 회색이 아니라 푸른빛을 띄고 있다. 매연 중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일반적인 매연에 비해 많기 때문에 매연이 푸른빛을 띄는 것. 물론 좋을 리가 없다.

엔진 힘이 딸리니 차체는 기본적인 뼈대만 강철로 만들고, 나머지는 목화섬유로 만든 식물성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차량의 무게는 600kg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이 차체에 쓰인 강화 플라스틱은 당연히 사고가 나면 복구하기 힘들었고, 결정적으로 일반 플라스틱보다 환경오염이 심했고 재활용이 불가능했다.식물성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이게 와전되어 종이로 만든 차라는 소문도 돌았다. 모든 차체를 플라스틱으로 제작하면 엔진, 서스펜션에서 차체에 가하는 힘 때문에 오래 못 가 박살난다.

게다가 각종 계기 장치도 저렴함의 끝을 달려서, 타코미터가 바늘이 숫자를 가리키는 형태가 아니고 표시창에 색깔이 바뀌는 어처구니없이 단순한 형태였다고 한다.왠지 요즘 차에 달린 에코미터 비슷한 형상이다 절대 대림 시티100 같은 게 아니고 4인승 패밀리 카의 스펙이다.

그리고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 모델이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이나 공통적으로 연료 탱크가 앞의 엔진룸에 같이 자리잡았고, 안전장치? 당연히 그런 거 없다. 게다가 상기했듯이 차체가 플라스틱이라서 정면으로 들이받을 경우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

충격과 공포 당시 광고 영상을 보면, 4인 가족과 짐을 실을 수 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근데 그나마 동독인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차가 트라반트 정도밖에 없었다(...)

1965년에 동독 국영 영화제작소(DEFA)에서 트라반트 제작 공정을 촬영한 영상으로 제작한 홍보 영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3 파생 모델

왜건 모델인 트라반트 우니버잘 (Universal), 콤비 (kombi). 기본형인 2도어 세단을 기본으로 하며, P50 시절부터 존재하였다. 참고로 이 모델의 경우는 동구권 유럽이 배경인 하프라이프 2에서 버려진 채 폐차로 이곳 저곳 나오는데, 색상은 타이어만 터진 연한 살색, 심하게 부서지고 문짝이 날아간 빨간색이다. 주로 운하에서 나온다.

군용 지프인 트라반트 퀴벨. (Kübel) 당시 동독 군인들이 쓴 실제 군용 모델이며, 위 사진처럼 민수용으로도 팔려서 트람프(Trabant + Jeep)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 사람 말고

껍데기만 같은 다른 차경주용 모델인 트라반트 800 RS, 당연 경주용이다 보니 기존의 600cc급 엔진을 800cc 급 엔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아래에 후술할 바르트부르크와 같이 랠리를 뛰기도 하였다.

최후기형인 1.1부터 추가된 트라반트 픽업. 다만 1.1의 경우는 다른 서독 차들에게 밀려서 일찍 단종된 탓에 픽업 버전 트라반트는 보기가 비교적 힘든 편이라고 한다.

4 통일 이후의 운명

트라반트는 80년대까지 성능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독일이 통일되면서 서독 자동차 회사의 기술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통일 직후에는 폭스바겐제 1.1L 엔진을 얹어보는 등 성능 향상을 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사진 속의 모델과 폭스바겐제 엔진. 잘 보면 그릴과 범퍼 등의 부품이 개량되었다. 하지만 당시 동독인들 사이에서는 벤츠폭스바겐, BMW, 아우디, 오펠 등 품질과 승차감이 좋은 서독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게 대세가 되었고, 반대로 이미 트라반트보다 승차감이 좋은 차들이 넘쳐 나는 서독에서 트라반트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게다가 서독의 환경 규제에 맞춰서 구 연방주 지역에서는 트라비의 신규 차량 등록을 불허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트라반트가 폐차장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독일 교통사고 건수가 크게 증가했는데, 성능이 좋은 서독차를 새로 산 동독인들이 아무리 꽉꽉 밟아도 시속 100km를 겨우 넘을락 말락 했던 트라반트를 운전하듯이 새로 산 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내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한동안 동독인들이 김여사 취급 받았다나 뭐라나...

그나마 수출이라도 잘 되었으면 모를까, 하필이면 소련이 붕괴되던 때라 일반인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던 참이었고, 트라반트는 서민용 차라서 당연히 소련 부유층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리는 없었다, 게다가 동시기에 체제 전환 과정을 거친 폴란드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의 사정도 영 좋지 못한데다가 그 동안 쌓아 놓은 이미지가 있는 탓에 수출도 부진했고, 결국 채산성 악화로 1991년에 단종되었다.

그래도 5만여 대 정도가 독일 국내에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 구 동독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추억의 자동차로 기억되고 있으며, 일부 독일인들은 이걸 수집품 취급하기도 한다. 구 동베를린 지역에 가 보면 트라반트를 세워놓고 그 차를 찍는 대가로 돈을 받는 식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유튜브를 뒤져 보면 트라반트 레이싱 대회 동영상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트라반트 추억 보정 덕분인지전기 트라반트도 나왔다고 한다(..)

동독과 서독 통일 이후에 동독 지역에 살던 가족이 트라반트를 타고 유럽 여행을 떠나며 생기는 일들을 그린 영화로 "트라비에게 갈채를(Go Trabi Go)"라는 영화가 있다.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검색하면 아주 조금 나오긴 한다.

한국에는 2대 들어와 있다고 하는데, 삼성교통박물관에 1988년식 트라비가 정태 보존 중이라고 하며 나머지 하나는 개인 소유라고 하며, 96~03년 사이에 발급 되었던 번호판을 달고 있다고 한다.[3] 경차의 탈을 쓴 이륜차가 차량 등록이 된단 말인가?!

이 외에도 트라반트보다 훨씬 품질 좋은 외제차로 소련라다 쥐굴리,[4], 다른 동구권 국가였던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르노, 스코다 등등이 수입되었긴 했다.

참고로 티코 시리즈의 원조가 바로 트라비다. 하지만 성능은 당연히 58년에 기본 형태가 만들어진 만큼 티코보다 딸릴 수 밖에 없는편. 애초에 원 모델인 스즈키 알토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이다.[5]

5 번외, 바르트부르크 (Wartburg)

[6]

1956~1991년까지 아이제나흐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된 트라비의 상위 모델이자 1L급 엔진을 장착하였던 음?차량. 공장이 위치한 아이제나흐의 상징인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이름을 따왔다. 첫 모델인 311부터 시작해서 중간기이자 1.3까지 바디 디자인 우려먹은 353, 마지막 모델인 1.3까지 있었다.[7] 이 차도 트라비와 마찬가지로 2행정 엔진에(...) 왜건 모델이 있었고, 경주용 모델도 있었지만, 이 자동차는 여러모로 홀대를 많이 받은 트라반트와는 달리 해외로 많이 수출했던 차라서 품질은 어디까지나 트라반트에 비하면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그리고 통일 후 트라반트처럼 배기량을 늘리고 서독제 엔진을 단 1.3을 판매하긴 하였으나, 이들에 비하면 여러가지 면으로 뛰어난 편인 서독차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생산이 중단되었다.

바르트부르크의 광고. 311 모델이다. 뒤에 붙은 1000은 배기량이 1000cc라서(...)

353 모델의 광고. 다른 광고

참고로 바르트부르크나 외제차의 가격은 보통은 트라반트의 2배 이상이라서 쏘비에뜨제 볼가[8]를 타고 다니는 고위층이나 나름대로 자리 잡고 있었던 당원이 아닌 이상 몇 년간 근성을 가지고 뼈빠지게 야근을 해야 겨우 차 살 돈을 모을 수 있었던 데다가 그나마 돈을 모아서 신청을 해도 출고 기간이 더럽게 긴 최대 15년에 달해서 그나마 빨리 구입하려면 비슷한 돈을 주고 중고차를 구입해야 했다. 그래서 좁고 후지지만 그나마 가격은 싸고 일찍 받을 수 있었던 트라반트에 대한 수요가 넘쳐났다. 그리고 이때문에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 주민들이 많이 버린 차가 되기도 하였다

6 기타 여러가지





섀시를 제외한 차체가 플라스틱이란 특징과 특유의 컬트적 인기 덕분에 여러가지 의미로 마개조에 가까운 튜닝도 이루어지고 있다. (...)
  1. 동시대 서유럽권의 마이크로카 및 경차 정도의 성능이다.
  2. 그나마 다행이게도 최후기형인 1.1부터 연료 탱크가 엔진룸에서 후면부로 가긴 하였다.
  3. 개인 소유주는 독일 유학생 출신으로 한국에 들어올 때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독일 여행을 다녀오는데 그때마다 자동차 부품을 사오곤 한다고 한다.
  4. 피아트 124피아트 125를 베이스로 생산된 소형차이다. 자세한건 라다 쥐굴리 항목 참조.
  5. 다만 트라반트가 1950년대 태생에 별다른 변화 없이 계속 생산된 점, 스즈키 알토가 등장한 게 1980년인 점, 둘 다 "서민차"로 구성된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진짜 문제는 알토와는 달리, 한 차종으로 너무 오래 우려먹은 것이긴 하다만.
  6. 353의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7. 참고로 최후기형 모델인 1.3의 경우, 튜너 브랜드인 이름셔에서 손을 대기도 하였다. 허나 시판되지는 못하고 프로토타입만 남아있는 신세.
  8. 소련의 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당시 볼가는 고위급 공무원이나 꽤 권세 있던 당원들이나 타던 차였다고 하고, 일반인들은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구하기 무지하게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1990년대에 BMW, 포르쉐 등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결국 2006년에 생산 중단되어 버렸다. 참고로 본 슈프리머시의 러시아 추격전 장면에서 택시 모델로도 등장한 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