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generation
世代

1 개요

어떤 시대를 공유하는 무언가의 집합. 무언가는 사람도 제품도 될 수 있다.

2 국가별 세대 구분

인류의 대단위 사회구분 중 가장 대표적인 국가 개념을 기준으로 한 세대 구분.
다만 이 문서의 자료는 엄밀하게 얘기해서 세대 그 자체보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또는 사용되는 코호트에 더 가깝다.[1]

2.1 한국에서의 세대 구분

밀레니엄 세대 (2000년대) 이후로는 세대라는 표현 자체가 잘 사용되지 않는 추세다. 워낙 세상이 급변하고 있기도 하고 세대란 말의 어감이 살짝 구시대적이기도 하기 때문. '스마트 세대'란 말이 가끔 언론을 타기도 하는데 밀레니엄 세대 이전과 겹치는 부분도 많고 그 세대의 특징이 아닌 그 시대의 기기를 기준으로 하므로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2.1.1 근대사 세대 (1875년~1910년 생)[2]

흔히 한국사 근현대사 부분에 등장하고 있는 역사 인물들을 가리키는 세대들. 대표적으로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우남 이승만,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백야 김좌진, 홍범도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여타 세대들과는 꽤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대들이면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일본군과 일경(日警)들의 만행과 압박 속에서도 오직 대한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부르짖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세대들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그 당시 일본군과 일경들의 감시와 강박 등을 피하고 제지하면서 오직 조국독립에 헌신하였으며 중국이나 미국 등으로 건너가서 해외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등 조국해방에 헌신해 온 사람들이 바로 이 세대이다. 한국사 근현대사 부분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면서 역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세대들이었지만 이들을 제외하고 일부는 일제의 나부랭이와 앞잡이가 되어서 친일파가 되어 독립운동 탄압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들을 제외하고 민족의 양심을 가진 세대들은 3.1 운동에 동참하여 일제와 맞서다가 학살되기도 하였고 그 외에도 일본군경의 강경적인 탄압으로 인해 이들의 손아귀에 모조리 학살을 당하게 된 아픔과 슬픔을 갖고 있다.

2015년 기준 이 세대의 막둥이인 1910년생이 2016년 현재 한국 나이107세다. 2014년 2월 전국노래자랑에 1900년생 115세 할머님이 나오신 적이 있다. 2011년에 1박2일에 나온 당시 1910년생 102세 할아버님이 세대의 막둥이이시다. 참고로 1875년생이면 140년 전 태어났으며, 상당수가 20세기 후반 내지 21세기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고조부/오대조의 연령대에 해당하며, 1900년 생이면 115년 전 태어났으며 상당수 20세기 후반 내지 21세기 초반에 태어난 세대의 증조부/고조부의 연령대에 해당한다. 이 정도면 한국 근대/현대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2 일제강점기 세대 (1910년 8월 29일~1945년 8월 15일 생)

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극심한 공출과 수탈, 그리고 8.15 광복6.25 전쟁을 겪은 세대를 말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대다수가 사망했다[3], 강인한 생존력으로 전후 극심한 혼란기에서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건설하였다. 일반적으로 일본어를 곧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경우가 많고 전통 문화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 거의 잊어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90세가 되어서도 일본가서 일상대화가 되는 사람도 있다. 1924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 해의 간지를 따라 갑자생이라고 하는데, '묻지마라 갑자생'이라고 불리는 세대로서,.[4][5] 강점기에는 학도병으로, 그리고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에 징집되어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일본이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다가 미국에 의해 패망하여 한반도가 해방될 때 태어난 1937~1945년 생은 4.19 혁명, 6.3 시위의 주역들이다. 일반적으로 1920년대 후반 ~ 1930년대 중반 생은 베이비 부머의 부모 세대,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 생은 386의 부모 세대, 1940년대 초중반 생은 X세대의 부모 세대이며, 6.25 참전용사의 대부분은 1920년대 초반 ~ 1930년대 중반 태생이다.

2.1.3 해방둥이 & 한국 전쟁 세대 (1945년~1953년 생)

해방 직후와 6.25 전쟁 종전 사이에 태어난 세대. 1960년대 후반~1980년대 초중반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였다. X세대와 에코 부머의 부모 세대이다. 일제강점기 말 출생자(1930년대 후반 - 1940년대 초중반 생)와 이 세대를 합쳐서 산업화 세대라고도 지칭한다.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세대라는 설명이 있는데 이 세대는 중동의 소년병이나 아동 테러리스트처럼 직접 참전한 경우는 드물지만 아기의 경우 갓난애 시절부터 들은 포화소리 자극 등으로 인해 평범한 무대 불꽃도 두려워하게 된 써니의 사례처럼 잠재의식 속에 통제하기 힘든 트라우마가 발생하고, 스스로 걷고 지성도 어느 정도 생긴 아동들도 피난하는 고생, 때로는 죽을 위기도 겪으며, 만19세 성인이 된 이후로는 대한민국도 1964년부터 공식적으로는 1973년의 기간까지 월남전에 참전하여 고초를 겪는 등의 과정을 겪어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도 볼 수 있다.

2.1.4 베이비 붐 세대 (1954년~1963년 생)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치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이자 현재 기성세대를 위시하는 주요 세대 . 2016년 현재를 기준으로 54세~63세에 해당한다.

근대화에 따른 발전을 체감하기 시작한 첫 세대이기도 하며, 10월 유신과 유신 독재의 공포통치를 체감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여 아직도 무의식중에 자기검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대를 상징하는 관용어가 바로 58개띠. 이 세대를 상징하는 관용어가 58개띠가 된 이유는 1974년도 첫 고교평준화 입학생이기 때문이다. 고교 입시지옥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뺑뺑이로 명문고에 입학한 경우는 선배들에게 멍청이 취급 받았고 반대로 과거의 비 명문고에 입학한 경우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입시지옥보다 몇배 더 큰 스트레스였다는 말이 나왔다. 이해찬 세대와 G세대, N세대의 부모 세대이다.

2.1.5 민주화 세대 (1961~1972년 생)

386세대, X세대[6]현재 기성세대를 위시하는 주요 세대.

5.16 이후, 10월 유신 이전 태생.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박정희 정권이 부마항쟁10.26 사건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시 12.125.17 내란으로 총칼을 가진 신군부가 차지하는 것을 목격한 세대. 이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지켜본 이른바 '80년 광주 세대'로, 젊은 혈기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그 과정에서 숱한 희생이 있었다.

N세대와 밀레니엄 세대[7]의 부모가 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1961년생부터 1963년생까지는 베이비 붐 세대와 겹치며, 사실 베이비 부머보다 이들의 인구가 더 많다.[8] 2010년대 초반 이후로 에코 세대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9][10]

2.1.6 X세대 (1971~1980년생)

급속도의 경제 발전 속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사실상 가난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첫 세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학창시절에 누렸던 풍요로움과 대비되게 20대 대학생 또는 취업 준비생 시절에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세대로서[11] 사실상 그 경제 성장의 혜택은 IMF가 터지기 전까지 누리다 경제난을 겪었다. 2015년 현재 40대 초중반이다. 주로 4공 시절에 태어났다. 스마트 세대의 부모 세대이다. 성장기에는 기성 세대로부터 "싸가지 없는 놈들", "버릇없는 놈들", "완전한 신세대" 등의 평을 많이 들었으나 현재에는 이들도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도 40대가 되었으니까 웬만하면 함부로 못깐다 그도 그럴 것이 X세대나 현재 청소년 세대나 가난을 경험해 본적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기에... 그리고 대학 운동권 세력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힘을 발휘한 세대라고 볼 수 있다. 노태우 정부 시기를 거치고 1996년 연세대 사태를 거치면서 사실상 운동권이 흐지부지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유 외에도 외환위기 때문에 정치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많은 비정규직 고통이 시작된 1세대. (1971년~1980년생).
전쟁의 아픔보다 경제 아픔을 느낀 세대이지만 해외로의 한국 가요 진출의 초석을 다진 세대.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드렁큰 타이거 등)

2.1.7 에코세대 (1977~1988년생)[12]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따른 과실을 어렸을 때부터 향유했으며, 궁핍했던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난을 겪어본 기성 세대들과 문화적 괴리가 심해, 성장 과정에서 교육정책의 혼선이 빚어지고[13] 사춘기 또는 대학생 시기에 외환위기라는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정글자본주의가 체화, 소위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양태를 보이기도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극단적인 변화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 실력을 스스로 가장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

점차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기성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군대 문화와 술자리 문화의 악습이 짙게 배어 있고, 학창시절 카세트 워크맨브리프(속옷)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1990년대 초창기 아이돌 문화(서태지와 아이들, H.O.T., 신화, 젝스키스 등)를 청소년기에 접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우상은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를 기점으로 댄스음악과 랩의 대중화로 기존의 대중음악 트렌드가 새롭게 변화하면서 본격적으로 10대~20대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음악계의 혁명기를 접하게 된다.

현재 초중고교생 세대와 다르게 어린시절에 카세트 테이프 등 아날로그 문화 또는 패미컴, PC통신, 모뎀 연결 인터넷 등 초창기 디지털 문화를 접했으며 PC통신 문화 이후 딴지일보,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을 위시로 한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를 성립 및 변화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 2010년대에 이르러 에코 부머(1977~1982년생)의 자식들이 탄생하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요즘들어 이 에코 세대를 대상으로 한 추억 마케팅도 틈새시장에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ex. UV 및 인디뮤지션 기린,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물론 이것들은 X세대의 추억 마케팅에 해당되기도 한다.

또한, 산아 제한이 진행중일 무렵의 출생자 세대이기도 하는데, 연도별 인구 숫자의 경우 출생 연도별로 차이가 극심하다. 이른바 2차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에코 부머(1977~82)들은 출생아수가 80만명을 넘어가며 90만명을 넘긴 경우도 있으나 이해찬 세대(1983~84) 때부터 출생아수는 급감하였고, G세대(1985~1988)의 일원인 1987년 생[14]의 경우 출생아수가 고작 62만명으로 사실상 저출산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1998년생(63만명)보다도 적다.

이 뿐만 아니라 수능 초창기 + 본고사 폐지 + 널뛰기 수험생 숫자 + 대입제도의 혼란상(이해찬 세대의 경우)[15], 대학 졸업 이후 다시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기 시작한 사실상 첫 세대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의 패러다임을 경험한 사실상의 마지막 세대인 관계로 경계에 놓여진 세대라는 인식이 다분하며, 기성세대의 가치관(제사와 같은 유교적 풍습, 권위주의 등)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자식 세대에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성향이 강한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국민학교'로 입학해본 마지막 세대이고[16], 1989년생부터 적용된 중학교 무상교육에서도 배제된 세대이기도 하다.

2.1.8 N세대 (1989~1994년생)

1992년 PC통신 보급화와 1999년 ADSL 기반의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화 덕분에 컴퓨터 성능의 향상에 힘입어 G세대의 후반대와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정보화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고 DOS와 전화기 모뎀, 그리고 삐삐를 이용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1998년부터 가요톱10이 폐지되고 뮤직뱅크가 시작된 초등학생 시절부터 접하면서 본격적인 1세대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다.

IT 분야에서는 1995년 말에 정발된 Windows 95펜티엄 CPU의 보급[17]이 있었고 이른바 디지털 휴대폰이라고 불렀던 CDMA[18]폰의 서비스가 1996년에 상용화되어 때마침 국내 수입된 스타택과 맞물려 이듬해에 다른 통신사들도 2G 서비스를 잇달아 상용화하는 등, 디지털 드립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스타택이 폴더폰이었지만 삼성전자 최초의 2G폰인 SCH-100을 비롯한 국산폰 대부분은 플립커버를 열어서 다이얼 버튼을 누르그 통화하는 플립폰 형태였다. 또한 2010년대 기준으로 20대를 보냈다.[19] 검색을 통해 접한 것은 많아졌고 세상살이를 파악하는데에 있어서는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도 있으나 정신의 성장이 지식에 비례하지는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들은 초딩이라 불렸다. 평균적으로 대한민국 세대중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에 가장 능숙하지만 주로 게임에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이상에는 취약하다.[20] 2016년 현재 어느덧 성인이 된 이 초딩세대들이 중학생, 고등학생들까지 싸잡아 급식충이라 까고 있는 아이러니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유소년기에 IMF 외환위기라는 비극을 겪었으나 부모나 형제자매 등을 통해 듣지 않는 이상, 혹은 형제자매가 터울이 좀 나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그 상황을 잘 모르는 편이다. 당연한 일인 것이 이들은 외환위기를 맞을 당시 영유아, 유치원생 내지 초등학생[21]으로, 아예 상황을 이해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부족한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부모님들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바라보며 어두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중고등학교에서는 불안정한 입시제도에 시달렸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빚에 허덕이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두 차례의 거대한 경제위기(IMF, 세계금융위기)의 도래로 인한 지나친 과열경쟁, 경제적 정신적인 삶의 피폐함, 세대간의 소통부재와 불화로 어둡고 우울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이기도 하다. 주로 N포세대, 88만원 세대, 1000 유로 세대로 지칭하지만 어떻게 보면 에코 세대와 그 아랫세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명령-복종이라는 체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군대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고[22], 이는 군의 민주화에 의해 더 드러나는 경향이 있어 군의 변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 시대에 태어나 부자연스러운 억압을 받지 않았다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 이러한 시대배경 때문인지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탈개인화 경향을 보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심했던 두발규제를 대폭 완화시킨 데 기여한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유소년기 또는 영유아기 때 디지털과 아날로그 시기를 동시에 거친 경우가 많아 과도기적 세대로도 볼 수 있다. 어쩐지 신체적으로도 구분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평균 키는 그대로이지만 키가 상대적으로 큰 사람은 크고 작은 사람은 작은 양극화 현상을 보이는 것.[23]

그리고 처음으로 중학교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은 세대다.

N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 or 386 세대의 자식세대일 확률이 높다.[24] 이 경우 튜닝세대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 바가 있지만. 그리고 이 세대 출생자(1989~1994년생)는 최악의 남초현상을 보이는 세대이기도 하다. 1990년 116.5, 1993년 115.2, 1994년 115.3 ][* 더 길게 잡아서 1985~96년생 중 1987년생을 제외하고 모두 남녀성비 110 이상이다.

2.1.9 밀레니엄 세대 (1995~2000년 출생)

1997년 11월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삽시간에 바뀌어버린 격동의 세계를 보내고 있는 인구들이다. 이들은 외환위기 전후로 태어났다.[25] 이제 막 태어난 애들을 냅두고 확실한 유아 관련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거기다가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2차산업의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기업들의 인건비 절감의 여파로 인해 비정규직, 청년실업을 겪으며 사회에서 내몰리고 있는 세대다.[26] 이 때문에 한국의 근대화 이후 가장 안습한 힘든 고초를 겪고 있는 세대로 평가된다.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로 들어섰다고 평가되는 시기에 청소년기를 맞이한 세대이나, 한국 정부의 정책 기조 및 고도화의 수준은 기성 선진국들의 정부에 비하면 매우 원시적이며 이를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가장 뼈저리게 차이를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초교 시기즈음 광랜의 보급과 포털 중심의 한국 인터넷 인프라가 잡혀 바로 전세대인 N세대보다 인터넷의 혜택을 더 크게 받은 세대이다.

정보통신과 교육 보급의 발달로 외국의 사례를 알게된 부모 세대로 인해, 행정부와 입법부인 국회의 대기업 및 상류층 위주의 정책 책정 등에 대한 불만을 정부가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 커버하지 못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27] 이렇게 저출산 문제가 시작된 세대로서 1999년 출생자 수는 1987년 이후 역대 최저치[28]를 기록했으며, 그 전 해인 1998년부터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이 1.5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러한 정부의 대한 불신과 분노는 그대로 자식 세대, 혹은 손아래 동생 세대인 밀레니엄 세대로 이어졌다.

이전 세대들이 접했던 학창시절 두발규제 등 소위 한국의 야만적인 교육계의 규제 문화와는 거리가 개미 발톱 때정도 멀어진 세대이며 아날로그에 대한 경험은 95, 96, 97년생들 정도만 아주 어릴때 경험하였고 그 외로는 윗 형제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 전부인 세대이기도 하다.[29] 그러나 이들의 의무교육 기간동안 국정화 교과서 논란, 정부의 단말마와 같은 예고 뒤의 갑작스런 입학사정관제 도입, EBS 위주의 수능으로의 변화, 자율형사립고 및 자립형사립고의 등장과 실업계ㆍ전문계 고등학교의 특성화고로의 변화, 수능의 언수외 -> 국수영 및 가나체제에서 AB체제로의 변화와 언어 영역의 문이과 분리 시험등 전 세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교육계의 개판 난리통으로 정부의 교육방침에 대한 신뢰가 최악이기도 한 세대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N세대를 비롯한 윗 세대도 정부의 교육방침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1998년도 부터 차례차례 일본에 대한 문화개방이 이루어지며 성장기에 일본의 문화와 일본 컨텐츠에 대해 가장 많이 접한 세대이다. 따라서 이들은 정보통신의 발달과 더불어 일본 문화에 대한 풍부한 경험으로 냉랭전선을 펼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민간 수준에서 가장원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세대로 기대되기도 한다.

밀레니엄세대가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가장 특별한 점이라면 역시 인터넷의 혜택과 그에 따른 정부 및 상류층에 대한 분노를 꼽을 수 있다. 다른 세대들이 (심지어 N세대라 하더라도) 생산과 수입 활동을 시작하는 성인이 되서야 정부와 정부가 만들어낸 사회에 대한 부조리함을 느꼈다면 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외국의 사례, 지구촌의 경향에 대한 이해,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찰이 유아청소년기 내내 이루어졌다. 특히나 이들이 중~ 고등학생시기인 2010년도부터 스마트폰의 발달과 그에 따른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와 가장 손쉽게 외국어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구글 사용량이 극대화 되며[30] 이들은 다양하고 정확한 외국 사례의 데이터를 얻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교해낼 수 있게 되었다. 에코세대와 N세대, 밀레니엄 세대가 한국 인터넷의 주류가 되는 2013년~2014년 시점에 자국 혐오가 극에 다달아 헬조선, 지옥불반도 같은 단어가 널리 유행을 탄 것이 단적인 예이다.

앞서말한 것처럼 경제적으로 가장 커다란 압박을 견대내야하는 세대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문화의 주력이 될 세대로서, N세대와 에코 세대의 후반기 출생자들이 일궈낸(?) 자국 이성 혐오와 한국 인터넷에 만연해진 타인에 대한 비방문화, 그릇된 페미니즘 운동, 인터넷 언론사들의 폐해, 정부의 친 여성주의와 문화 사업에 대한 규제 등을 해결해야하는 이건 순 죄다 꼰대들이 싸질러댄 똥뿐이잖아 골치아픈 업무를 떠맡게 된 비운의 세대이기도 하다.

2.2 미국에서의 세대 구분

  • 가장 위대한 세대 (Greatest Generation, 1910-1924 출생)
대공황을 겪고 자라났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의 황금기를 주도한 세대. 스트라우스-호우 세대이론에서는 "GI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로자 인권과 사회복지 부문에서 많은 발전을 이끌어 내어서 자식세대들이 잘먹고 잘살수 있는 기초를 닦았지만,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한 세대.
  • 침묵의 세대 (Silent Generation, 1925-1944 출생)
대공황과 2차대전중에 태어났으며 한국전쟁베트남 전쟁[31]파병되었던 세대. 큰 특징도 없고 정치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지도 않으며 묵묵히 일만 한다고 해서 Time지에 의하여 "침묵의 세대"라고 명명되었다. 물론 이것은 침묵의 세대가 위대한 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에 비하여 인구가 적어[32]물량이 훨씬 부족한 것도 한 몫을 한다. 이 세대에는 딕 체니 부통령제시 잭슨(1941년생), 존 맥케인(1936년생), 뉴트 깅그리치(1943년생), 조 바이든(1942년생), 마이클 듀카키스(1933년생), 에드워드 케네디, 도널드 럼즈펠드(...) (1932년생), 콜린 파월(1937년 생) 등 거물 정치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대통령은...그나마 근접한 나이가 1924년생인 지미 카터조지 H. W. 부시 정도. 빌 클린턴조지 W. 부시1946년생으로 베이비 부머 세대다. 한마디로 위대한 세대와 부머 세대 부자 사이에서 낀 세대.
  • 베이비 부머 세대 (Baby Boomer Generation, 1945-1962 출생)
역사상 가장 안락한 삶을 살았던 세대중 하나이자 2010년대까지 가치관의 변화를 봐온 세대. 보통 줄여서 "부머"라고 많이 부른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출산율이 쩔어줄때[33] 태어난 세대이며 이 기간동안 무려 7600만명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 어마어마한 잠재력에 매료된 마케팅업자들에 의하여 어릴때부터 철저하게 분석된 세대이기도 하며 은퇴의 나이에 이른 현재는 미국의 약품, 휴가, 개인금융자산 시장을 먹여살리고 있다. 이전 세대들이 피를 흘려가며 얻어낸 근로자 인권과 사회복지의 혜택을 어릴때부터 누렸으며, 그전까지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대학교육을 훨씬 싼값에 받을수 있었고 미국의 황금기에 자라났기에 그 이전 어느 세대보다도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누렸다. "16살때 아르바이트로 자동차를 사고 22살때 취직과 동시에 집을 살수 있었던" 세대이며 "서양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한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나온 것도 부머 세대에게는 그게 경제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히피 문화라든가 반전시위들 때문에 좌파 성향일것 같지만 히피는 당시 서브컬쳐에 불과했고 베이비붐 세대내에서도 그 차이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상당수는 보수적이다. 하지만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발전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듣고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1946년 생인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1955년 생인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가 이 세대에 속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부머 세대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사회보장 연금등이 "버틸수 없다!"를 외치고 부담이 전부 더 어린 세대들(우리)에게로 전가되고 있다. 사실 부머세대는 물량도 많을뿐 더러 장/노년층이라 투표를 열심히 하기때문에(...) 미국에서 대마초, 동성애, 낙태등의 이슈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슈(예를 들면 Proposition 13)에서도 이 세대의 이익에 반대되는 입장이 채택되기는 굉장히 힘들다.
  • X세대 (Generation X, 1963-1980 출생)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부유하게 산다"는 통념을 처음으로 깬 세대(...) 이전 세대들보다 맞벌이나 이혼 가정에서 자랐을 확률이 훨씬 높았기에 독립적이라고 평가받는다. 또한 이전 세대들에 비교하면 비백인 인종의 비율도 더 높다. 미국을 제조업 위주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혁신시켰고 처음으로 컴퓨터 등 첨단기술에 눈뜬 세대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많은 위기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며 그래서 그런지 조건에 따라 직장을 자주 옮기며 삶의 질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수는 약 5천만명 가량으로 부머세대의 물량에 밀려서 정치적으로는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모부터가 침묵의 세대 한국의 X세대도 10년 이상 늦지만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 Y세대 (Generation Y, 1981-1994 출생)
2010년대 현재 청년층에 해당한다. 밀레니엄 세대, Millenial이라는 단어가 더 자주 쓰인다. 위키백과의 문서도 Generation Y를 Millenial로 리다이렉트 할 정도, 혹은 제2의 부머라고 해서 "에코 부머" (Echo Boomers) 라고도 불린다. 이는 X세대가 출산률이 수직낙하하던 시기에 태어난 것과 비해서 출산률이 다시 상승세에 접어들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제일 큰 특징이라면 역시 어릴때부터 첨단기술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것. 이전 세대들과 비교했을때 부모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확률이 높지만, 최근의 경제난으로 인하여 대학 졸업 후 부모와 같이 사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부메랑 세대" 혹은 "피터팬 세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한 어릴때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감 넘치게 키워졌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받는다. 약 7천만명 가량이 이 세대에 속하고 대마초, 동성애, 낙태등의 이슈에 진보적인 입장을 보이기에 앞으로 정치/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기대받지만 이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고 자리잡아야할 2010년대 현재 경제전망이 안좋기에 앞으로 고생할 세대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 Z세대 (Generation Z, 1995-2010 출생)
2010년대 현재 어린이-청소년으로 구분되는 세대. 어느정도 아날로그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Y세대에 비해서 이 세대는 출생부터 인터넷[34]을 접했기에 Digital Native라고도 불린다. 세계화가 완전히 이루어진 시점[35]에서 태어난 세대이기도 하다. 멀티태스킹에 능하지만 집중력이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3 일본에서의 세대 구분

일어판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였다. 일본어 위키백과 세대

다이쇼 천황이 집권했을 당시에 태어난 세대로, 일본 역사상 최후의 징병제 겪은 세대로,어린시절에는 관동 대지진[36]세계 대공황을 겪었고, 청년 시절에 특히 남성들은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대부분 징병을 당해, 그 세대의 16% 전사를 당해,헬게이트 세대 현 전후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올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 쇼와한자릿수 세대 (1926년~1934년 출생)
청소년기를 전시체제 속에 지낸 세대로, 군국 소년 소녀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거나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일부는 가미카제로 참전하거나 공장 공습으로 전사하고, 또한 자신의 가족을 공습으로 잃은 사람이 많다. 이후에는 젊은 노동력으로 전후 고도성장의 주역이다.
  • 불탄 자리 세대 (1935년~1946년 출생)
유소년기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보낸 세대. 아직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아 중졸, 고졸 학력으로 사회에 나온 이들이 많으나, 전후 체제가 복구되면서 대학 진학률이 급속도로 상승한 시기에 끼어있기도 하다. 특히 1940년대생은 전학공투회의 등 당시 활발하던 학생운동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 세대의 키워드는 경쟁, 학생운동, 외국 문물 등이 있다. 학생운동에 격렬하게 참가하였으나 사회 변혁은 이끌지 못하고 사회에 흡수되었다. 그 후에는 일본 경제의 고도 성장을 이끌지만, 정작 그 혜택은 그보다 아래 세대인 신인류(60년대생)에게 돌아갔다. 넓은 의미로는 전공투 세대 전부를 단카이로 이르기도 한다.
이 세대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학생운동의 불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들이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향해 내달렸다고 평가한다. 서브컬처 류의 오타쿠 문화도 이들 세대에서 태동했다.
80년대 일본 버블경제 당시 풍요롭기 그지없는대학생 시절을 보냈거나, 또는 그 시대에 취직 전선에 나선 세대.
이들이 취직 전선에 나선 90년대부터 일본의 취직 빙하기가 와서 이렇게 부른다. 무사히 취직에 성공했다 해도 일본 특유의 연공서열은 점차 사라져가고 장래에 대한 불안은 늘어갔다.
유토리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

3 세대론

4 관련 문서

5 무기의 구분

무기체계의 개념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세대로 구분한다. 전차나 전투기를 1세대, 2세대, 3세대 등으로 구분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대구분이란 것은 어딘가 협회가 있어서 '이제부터 세대는 이렇게 구분합시다.'라고 정하는 것이 아니다. 반쯤은 홍보용 목적이 강해서 '내가 신세대 전차/전투기다!'라고 주장하며 세대를 하나 늘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시기에 따라 세대구분이 변하기도 한다. 일례로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방쪽 세대 구분 기준으로는 F-15가 3세대 전투기였으나 2000년대 들어 러시아쪽에서 세대를 하나 더 늘린 구분법이 나오고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해져서 현재는 F-15가 4세대가 된다.

5.1 전차의 세대 구분

세대별 전차
1세대 전차2세대 전차3세대 전차3.5세대 전차

6 통신의 구분

통신체계의 개념적, 기술적 전환을 통해 데이터 송수신의 양과 질이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것을 세대로서 구분한다. 무선통신에서 흔히 세대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1세대는 기존까지의 아날로그 통신을 모두 포함한다. 무전기 같은 거.

2세대 통신은 1993년부터 등장한 디지털 방식의 통신규약을 가리키는 말로서, GSM, CDMA의 초기형으로 대표되는 시대이다. 3세대 이후에는 거대한 폰으로 상징화, 희화화되는 경향이 있다.

3세대 통신은 IMT-2000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무선통신을 가리키는 말로, 3세대 서비스는 음성 데이터와 비음성 데이터(데이터 다운로드, 메일 주고 받기, 메시지 보내기 등)를 모두 전송할 수 있게 한다. 현재까지 완전하게 3세대를 벗어난 통신방식은 없다. 오늘날 사용하는 CDMA2000, WCDMA나 한국에서 개발하는 와이브로는 3.5세대 정도로 분류한다. 사실 소위 4세대라 불리는 LTE도 분류기준에 따르자면 3.9세대에 불과하다. 이거슨 언플.

4세대 통신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차세대의 통신을 말하는 것으로 초광대역(100+ MiB/s와 같은 기가비트 속도) 인터넷 접속, IP 전화, 게임 서비스 및 스트리밍 멀티미디어를 사용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기가비트 속도라는 게 기술적으로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서비스는 없다. 대략 핸드폰으로 실시간 온라인 게임에 렉 없이 접속하여 치고박을 수 있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의 개발로 인해 등장 예상 시점이 빨라지고 있다.

  1. 더 깊은 세대론으로 들어가면 코호트+계층론+규범론+... 등등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이 작동한다. 아래 나온 세대 구분과는 전혀 다르게 세대를 구분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확정된 세대 구분 개념도 없고 그것이 일반적이라 해서 학문적으로 온전히 옳은 해석이 될 수도 없음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2. 운요호 사건이 있던 1875년부터 한반도가 일본에서 독립한 1945년까지를 근대라고 한다. 근대 중에서도 1894년 갑오개혁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를 개화기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개새끼 해봐
  3. 일제시대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1925~1930년 생이 86세에서 91세, 해방둥이인 1945년 생이 71세. 일제 말기에 태어나신 1941~1945년 생 중에서도 약 30% 정도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4. 사실 딱 1924년 생이 아니라, 1924년을 전후로 1923 ~ 1926년 생.
  5. 1924년생은 2015년 현재 92세로써. 생존중인 사람은 별로 없다.
  6. 1971~1972년 생은 386이 아니라 X세대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들도 386세대에 넣기도 한다. 자세한 설명은 1991년 연쇄 분신 파동 문서 참조.
  7.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은 경제 호황으로 인해 연령대비 결혼 시기가 지금에 비하면 빠른 편이었다.
  8.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매 해마다 90만 명 이상 탄생했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는 출생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 상당수 여러분의 부모님들도 같은 해에 태어난 구십 몇 만, 백 몇만 명 중에 한 명이다.
  9. X세대와 민주화세대가 겹치는 70년대 초반생은 어중간하게 껴있다. 근데 하필이면 1970년~1972년 출생자가 도합 300만명에 육박한다.
  10. 에코 세대의 부모는 대개 해방둥이~베이비붐 세대이므로 386과는 부모 자식 세대간이 아니다.
  11. 1997년 당시 X세대는 만 21~26세.
  12. 세분화하면 에코 부머(1977~82), 이해찬 세대(1983,84), G세대(1985~88)로 분류된다.
  13. 대표적으로 6차 교육개정과 '이해찬 세대'
  14. 1987년 생은 1992년 생보다 11만 명 이 적으며, 1982년 생보다 22만 명이나 적다.
  15. 2000학년도 대입 수능은 86만 명 정도가 응시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으나 출생아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1983년(2002학년도 대입 수능 응시자) 77만 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1987년에는 62만 명까지 떨어지며 2006학년도 수능 응시자 수는 역대 최저치다. 참고로 에코 부머인 1977~82년 생의 출생 당시 인구는 1978년(75만 명)을 제외하고 83~87만 명 정도 된다.
  16. 1983년생은 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졸업한 세대이고, 1988년생은 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입학한 세대다.
  17. 1999년 10월에 나온 국민PC의 보급률 만큼은 아니지만 PC통신을 접한 사람들에겐 혁명같은 변화였다.
  18. GSM과 함께 2G로 분류되는 기술이다.
  19. 미국에서는 Y세대와 대강 겹치는 1977~1994년 출생자를 일컫는다. 물론 이유는 미국의 발전이 빨라서 컴퓨터가 더 빨리 보급되었기 때문에. 다만 90년대 말에 들어서면 그 보급률이란 게 별 차이가 없어지지만.
  20. 다만 에코세대 이전의 구세대는 아예 다를 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밀레니엄 세대 이후로는 숙련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21. 1989년생은 1997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 1994년생은 1997년 당시 만 3세.
  22. 2014년 6월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 병장이 1992년생, 윤 일병 사건의 주동자 이 병장이 1988년 후반 생, 나머지 가해자들은 1991~1994년생이다.
  23. 징병신체검사 연령대에 해당하는(만 18~19세) 남성의 평균키는 1997년 172.5cm 이후로 둔화되다가 2009-2010년 174cm을 정점으로 평균키가 줄었다. 2013년 징병신체검사 기준 평균키는 173.6cm. 그러나 체중은 계속 증가하여 2013년 징병신체검사 기준 평균 체중은 67kg이다. 1980년 징병신체검사 기준 평균 체격은 168cm/55kg.
  24. 사실 N세대의 부모중에서 386세대인 사람들도 꽤 많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이 워낙에 경제 호황이라 초혼연령이 꽤 이른 편이였다. 돈 벌고 모으는게 쉬웠으니. 당시 남성 평균 초혼연령 20대 중후반, 여성 평균 초혼연령 20대 초중반.특히 N세대 중후반(1991~94년생)의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386 세대다.
  25. 1995~96년생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 호황기에 태어났으나, 걸음마도 채 떼기 전에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26. 따라서 한국의 밀레니엄 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7. 실제로 소위 '갑질'에 대한 가장 극렬한 반발이 이루어진 것이 N세대와 에코세대를 보낸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교육부 차관인 나향욱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사건, 대한항공땅콩 회항사건 등은 전부 386세대와 그 근처 시기의 출생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28. 1998년 출생자 수 약 635,000 명 > 1987년 출생자 약 624,000 명 > 1999년 출생자 약 614,000 명
  29. 1995~97년생들이 중학생이던 2010년 2학기에 학생인권조례가 정부에 통과되고 2012년경부터 전국으로 확대되며 1998년생부터는 사실상 '빠따' 경험이 사라졌다. 그 후로도 암암리에는 있지만
  30.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구글 계정과 구글 검색 엔진을 사용하게끔 디자인 되어있다. 스마트폰 활성화 이전엔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의 인기가 구글 검색과 구글 사의 인지도 확보에 한 몫했다.
  31. 한국전 참전자들은 1920년대 중후반 - 1930년대 초반 생, 베트남전 참전자들은 1940년대 초반 생.
  32. 경제대공황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서 이 당시 미국의 출산율은 2명대 초반 정도의 낮은 수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은 1940년대 전반기까지도 이어지다가 1940년대 중반들어 갑자기 출산율이 급증하면서 해소된다.
  33. 1950년대 미국의 출산율은 3.5를 넘었다. 참고로 당시 한국은 출산율이 5-6명대였다
  34. 1995년 8월에 출시된 Windows 95가 인터넷을 쉽게 사용하기 위해 거처야 할 OS와 PC가 본격적으로 대중화해준 일등 공신이었다.
  35. 대표적으로 1995년 1월 1일에 출범한 WTO가 있다.
  36. 간토 지역민에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