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學
Humanities/Arts[1]
1 개요
"인문"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말한다.-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호.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 즉 인간다움의 특징, 인간의 삶과 사고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더불어 기초 3과 학문에 속한다. 사회과학/자연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인간을 둘러싼 사회계와 자연계의 현상에 대해 경험적으로 접근하여 일반법칙을 유도하나,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해 사변적이고 비판적이며 또한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에 해당하는 영단어는 Humanities 또는 Arts인데, 두 용어의 뜻은 서로 비슷하다.
굳이 따지자면 Arts가 더 오래된 표현으로, 이는 현재 인문학에 해당하는 학문들이 중세 대학에서 Ars Liberalis[2]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현재 인문대학을 뜻하는 영어 명칭인 Liberal Arts으로 남아있는데, 앞의 Liberal을 생략해서 그냥 Arts라고 부르기도 한다.[3] 이중 Liberalis는 '자유로운 사람의' 라는 뜻이며 Ars[4]는 '기술' 내지는 '학문' 을 뜻한다. 즉, 본래 인문학이란 '자유로운 사람들을 위한 기술(학문)' 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반면에 Humanities는 르네상스 시기 이후 인문주의자들[5] 사이에서 새롭게 재발굴된 용어 Humanitas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이 Humanitas 역시 키케로가 수사학에서 연설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그가 생각했던 것, 즉 로마 시민의 교양지식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사실상 본래 의미는 Ars Liberalis와 다르지 않다. 단, 이쪽은 프랑스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인본주의 등의 색채가 덧입혀지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여러 학문들이 인문학에 속했는데, 처음 로마시대에 정립될 때에는 수학[6], 음악, 기하학, 천문학[7]의 4학[8]으로 출발하여, 이후 중세 대학에 이르러 문법, 수사학, 논리학이 합쳐져 총 7개 분과학문이 운용되었다. 그러다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중세의 학문 체계가 붕괴됨에 따라 체계의 대대적 편집과 변화를 거쳐 자연과학을 필두로 다수의 분과학문들이 독립해 나갔다.
2 인문학의 분과 학문
현대 한국에서는 인문학의 분과를 흔히 문사철(文史哲)로 나눈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구분이 아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은 인문학 제분야를 설정할 때 국내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른바 文·史·哲 체계가 1950·60년대 대만 학계에서 쓰인 것으로 그 역사가 짧고 결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9]. 그리고 문사철의 각 분과는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느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 학문을 논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하나와 마찬가지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영미권[10] 및 독일어권[11]의 최신 인문과학 편람, 세계 최고 대학인 하버드대학교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 언어 : 언어학
- 예술 :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서어서문학과, 노어노문학과,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타 학교의 일본학과, 중동학과 등을 합침), 미술사학, 음악사학, 공연예술학
- 역사 : 국사학, 고고학, 동양사학, 서양사학, 아시아언어문명학부,
- 사상 : 신학, 철학, 종교학
위의 분과학문들 외에도 신화학, 민족지학 등이 있는데, 현대에 들어 민족지학이나 위의 언어학 등 몇몇 학제들 내에서는 과학적 방법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지 않은 분과학문이라도 인간,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의 특성상 심리학의 연구 결과들을 많이 참고하고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인문학에 온전히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를 연구하는 학문이 과학 쪽 학문들이고[12],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를 연구하는 학문이 심리학이라면, 인문학 쪽은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가?',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가장 올바른가?' 를 연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대체 이 셋이 무슨 차이냐 싶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과학적으로 연구된 데이터나 이론에 따라 행동하면 그만 아닌가 싶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성욕을 가진 동물이니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것도 동물적 본능의 하나로 인정해야 하는가?',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어린아이보다 어른을 구하는게 올바른 일인가?'(영화 아이로봇에 소개됐던 사례), '자녀에게 유전적 결함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금지시켜야 하는가?' 같은 논제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문학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과는 달리 분과 간 통합적 사고를 대단히 중요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서도 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없이는 화학을 공부할 수 없고, 경제학에 대한 지식 없이 정치학을 깊이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문학은 분과학문 간 상호연계성이 이것보다 훨씬 강해 문사철 중 어느 한 분야를 전공하더라도 다른 분야에 대해 모르면 연구 자체가 진행이 되지 않으며,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만 하게 될 확률이 높다. 또한 자연과학의 여러 분과학문 간 경계에 비해 인문학의 분과학문 간 경계는 훨씬 희미한 편으로, 예컨대 근대성(modernity)과 같은 주제는 문사철 중 어느 한 학문을 탐구하든간에 반드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학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으로, 인간이 학문적인 탐구를 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생겨난 분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다른 분과학문들이 인문학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이 인문학에서 갈라져 나온 것은 대략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고, 사회과학이 본격적으로 체계를 잡기 시작한 것도 제아무리 높이 거슬러 올라가봐야 19세기 정도이며 그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인문학이 학문의 본류이자 시작과 끝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전통이 세계 각 대학에 남아있다. 예컨대 세계의 많은 대학에서 인문대학(college of humanities)은 항상 단과대학 리스트의 맨 앞에 오며,[13]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공식적인 학교 행사에서 최선두에 선다.
또한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완벽히 가치중립적인 자연과학이나 가치중립을 지향하는 사회과학과 달리 필연적으로 어떠한 가치나 사상이 공부에 내재되는 것이 인문학이다. 따라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같은 문과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사회과학 전공 학생들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하고 삶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14] 실제로 인문학을 동경하여 인문대학에 진학한 대학생들 중에는 문학소녀나 청년 철학도 같은 희귀종들이 꽤 있다. 하단의 시에 이와 같은 인문학적 감수성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증명과 숫자들이 내 앞에 줄지어 나열되었을 때,
차트와 다이어그램이 더해지고 나누어지고 측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강의실에 앉아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천문학자의 강의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갑자기 지치고 싫증이 나서
슬그머니 자리를 떠 밖으로 나와 홀로 거닐며,
신비로이 촉촉한 밤 공기 속에서, 이따금씩,
깊은 고요 속에서 별들을 바라보았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When I heard the learn'd astronomer》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는데, 그 이유는 따질 필요가 없다네.
(Minus times minus equals plus, the reason for this we need not discuss.)
위스턴 휴 오든(Wystan Hugh Auden)의 시 중에서[15]
여러 인문학도들의 더 정확한 번역 바람.
3 인문학이 다루는 문제
이해를 돕기 위해 프랑스 고졸자격시험(바칼로레아)에서 출제된 문제들을 첨부한다. 대략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고민한다는 걸 알면 되겠다. 출처는 이곳[16]
1장 인간(Human) 질문1 -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질문2 - 꿈은 필요한가? 질문3-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질문4-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질문5 - 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질문6 -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질문7 - 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쳐지나가는 것인가? 질문8 - 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 - 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질문10 -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질문11 - 행복은 인간이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 -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질문2-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3 -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질문4 -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질문5 - 역사학자가 기억력에만 의존해도 되는가? 질문6 -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질문7 -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질문8 - 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질문9 - 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질문10 -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1 -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질문2 - 예술 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논할 수 있는가? 질문3 - 예술 작품의 복제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질문4 - 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질문5 - 예술이 인간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1 - 생물학적 지식은 유기체 일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질문2 -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3 - 계산, 그것은 사유를 말하는 것인가? 질문4 - 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질문5 - 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6 - 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질문7 -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8 - 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질문9 - 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10 - 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질문11 - 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1 -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질문2 -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3 -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질문4 - 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질문5 - 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질문6 - 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질문7 -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질문8 - 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질문9 - 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질문10 - 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질문11 -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질문12 - 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질문13 -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질문14 - 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질문15 - 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질문16 - 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질문1 -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2 - 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질문3 -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질문4 - 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질문5 -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질문6 - 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질문7 - 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질문8 -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 - 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질문10 -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질문11 -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
프랑스 고졸 자격시험 문제로, 한국에서는 수준 높은 대학은 1학년, 일반적인 대학교는 인문사회대학 기준으로 2학년[17] 정도 되어야 접하는 수준이며, 답도 천차만별이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이 시험은 실업계 진학자 외에는 대부분 응시하는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제시되는 문제 중에 하나를 골라 쓰는 방식의 시험이고, 자기 개인적인 의견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서 담고 있는 철학적인 문제 설정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바로 시험의 목적이다. 당연히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고전들을 동원하여 논거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채점하나 객관식이 아니잖아! 묻는 사람이 있을 텐데, 어느정도 글을 형식화해서 써야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거를 수 있다. 문제설정 발견->테제->안티테제->종합 심화->결론 순으로 써야 한다는 듯.[18]
예를 들어 4장 과학 장의 7번 질문인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해서 대한민국 인문계 대학원생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쓴다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 문제설정 발견 : 이 문제는 과학은 단순히 진리 확인에 그치는 학문이어야 하는가? 공학 같은 실용학문의 발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류 공동체의 행복을 보장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하는가?의 논란과 연관되어 있다.
- 테제 : 우선 과학은 단순히 진리 확인만 하면 된다고 치고 논거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사례를 예시로 들며 과학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안티테제 : 그러나 당연히 이에 반하는 여러 사례들이 나올 수 있다. 우생학,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같은
흑역사사고들을 예시로 들면서 과연 진리만 추구하는 과학이 올바른 것이냐고 반문하며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 종합 심화 : 허나 그렇다고 과학을 잠재적 문제아로 매도하고 거부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과학이 오늘날 인간 문명을 풍요롭게 만든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이나 클레어 페터슨[19] 지구 같이 무분별한 과학적 결과물의 남용을 경계하고 조언한 사례를 들수도 있을 것이다. 예시로 든 건 약간 양비론, 양시론적 접근이긴 하지만, 종합심화는 이런 식으로 입장을 전개하는 단계이다.
- 결론 : 따라서 우리 인간은 과학의 부정적 측면을 억제하고 긍정적 측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인문학적 물음에는 진짜 문제의 의도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해진 답이 없다.[20][21] 이건 객관식이 아니다 단답형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얻게 되는 효용이나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이런 물음들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들이라면 해당 질문과 관련된 문제를 마주했을 때 판단력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앞서 설명한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라면[22] 적어도 '과학이 발견한 진리는 무조건 인간을 이롭게 할 거니까 닥치고 지원해라' 같은 망발을 늘어놓지는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고도로 발전해도 인간을 괴롭게 하는 고통은 여전히 존재한다. 혹은 새로 생기거나. 잘 모르겠다면 이 글을 보고 있는 위키니트 여러분 살림살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많은 인문학자나 철학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초탈해탈한 마냥 행동하는 것은 그런 사고 끝에 정나미도 미련도 떨어지기 때문 아닐까?
4 인문학의 중요성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문학이 무시될 경우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혹세무민 악덕 기업가가 등장하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게 된다. 인문학적 사유의 본질은 결국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포함한 '사람'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이성적이고 공정하다 생각하겠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결코 그렇게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지나친 욕심이 올바른 판단력을 해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하는 사례는 이미 역사책 속에 너무나 많다. 게다가 인간이 미래의 불확실한, 수많은 변수들을 모두 다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현재로써는 그저 자만일 뿐이다.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과학과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이었다. 만약 과학자들이 모두 다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며 대응할 수 있었더라면 환경 호르몬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을까? 유감스럽게도 일부 과학계통 종사자들은 연구 결과를 조작해 자신이 원하는 목적(돈, 권력 등)을 갈취하려 하거나, 일반인들의 반응에 공감하거나 적절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계산에만 근거해 중대한 사안을 처리하려 드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관악산에 방사능 폐기장을 짓는다는 주장을 한다던지. 뭐라고요? 설령 저 주장 정도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기술에 대한 맹신은 굉장히 위험한 짓이다. 기본적인 인문학 소양이 결여되었을 때 불거지는 사태가 바로 위와 같은 일들이다.
물론 기껏 인문학을 배워 놓고도 제 욕심만 채우려 몰지각한 짓거리를 일삼는 인간들은 어딜 가나 분명 있다.[23] 이 경우에는 잘 단련된 언변을 내세워 막무가내로 자기 생각을 밀어붙여 제지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 진정으로 인문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탐구해 나가려는 사람이라면, 아니, 전혀 다른 학문에 몸 담은 사람들이라도 최소한의 윤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잘 알고 충분히 주의할 것이다. 결국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나쁜 사람이 악용하면 위험 또한 전문가들의 과학적 의견이 일반인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고 배제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상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 문화에 항상 영향을 받는다. 핵폐기장에 관한 문제만 봐도 많은 사람들은 평소 듣던 상식에 따라 자연적 방사선 수치보다 인공적 방사선 수치가 배 이상 낮아도 인공적인 방사선 수치가 더 위험하다고 착각하지만, 카제인나트륨, 게임뇌 가설만 보아도 그렇게 통용되는 상식이 때로는 틀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뉴턴의 3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상식이듯, 미래에는 양자역학이 상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인문학에 대한 깊이 얕은 지식만 들고서 인문학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행태가 문제라는 것이다.예를 들어 이분이라든가
현대에는 인문학적인 당연한 지적과 우려를 쓸데없는 딴죽, 또는 전문지식도 없는 것들이 되도 않는 참견이나 하는 것마냥 치부하는 풍토가 있다. 한 예로 미 현대언어협회 필(Rosemary G. Feal) 집행이사는 "40여 년간 인문학 분야에서 일하면서, 크던 작던 인문학을 비웃는 소리를 듣지 않은 적이 없다" 면서 분노가 느껴진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나가서 돈이나 벌어오라는 소리 들은 게 분명하다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비전문가와 일반 대중에게 용어가 이해되지 않고 효용성도 분명하지 않은 '과학' 분야에 대해서는 인문학이 받는 것과 같은 비난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이라고 토로했다. 하긴 양자역학같은 건 그렇긴 하지 이게 농담으로 끝나면 문과 놀리기로 그치겠지만… [24]
물론 이런 비판들이 전부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내키는 대로 던져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25] 그리고 본문에 쓴 예들을 보면, 사실 인문학 쪽이 다 근거 없이 비판하지는 않는다.(…) 제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논리가 있다. 단지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 연결하기 때문에 엄밀한 개연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애초에 연구 타겟 자체가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고 물리실험처럼 눈 앞에 재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서 그렇다. 사회학, 인류학 등 소위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이용해 객관성을 확보하는 학자들도 일부 있지만.
또한 인문학은 그 범위가 무한대로 넓어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 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차검증할 과거 사례나 역사 기록이 좀 있을 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값을 낼 수 없는 의견이나 가설이 많으며 실험이나 재현으로 검증할 수도 없는 학문이라, 일단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부여한 뒤 상호 비판과 토론을 통해 서로의 편견과 오해를 깨 나가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바닥이다. 인문학은 시간의 흐름이 곧 검증이요 실험인 경우가 많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인문학자가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는 그 영향력을 상실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더 발전해 지금 기준으로 보았을 때 '기적' 으로 보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종교는 사라질 것이다.' 라는 발표를 했다고 하자. 과거 과학이 발전하면서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든 명백한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어떻게 될 지 알 수는 전혀 없다. 스타크래프트의 UED 세계관처럼 종교를 아예 숙청해버릴 수도 있는 반면, 오히려 프로토스나 인류 과거의 중세마냥 오히려 종교와 과거에 목매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즉 그때가 돼 봐야 알 수 있다. 이 이론에 찬성하는 이들은 근대 이후 감소한 종교의 영향력을 근거로 들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 반면 반대 입장에서는 2010년 대두된 이슬람 극단주의 등을 근거로 들어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좀 애매한 점이 두 주장 다 일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문학은 이공계와 체계부터 다르다. 인문학에는 명확한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학문 영역에 대한 정의 가지고도 신나게 싸울 수 있다.[26] 허나 인문학은 서로에 대한 비판과 성찰,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했다. 인문학은 명확한 룰이 없기에 학문으로 부를 수 없다는 주장에는 몇몇 과학자들의 근거없는 우월감과 무지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런 학문들을 '과학' 으로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학문' 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과학적 객관성을 공격하는 것을 비판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대다수 인문학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기저에 깔려있는 이성중심주의의 위험성' 이나, '과학적 방법론이나 부산물이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 를 비판하는 것이다. 지구는 평평하다거나(…) 인간은 신이 창조했다거나(…) 하는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27] 과학이 과거지향적(일어났던 일에 대한 사실)이라면, 인문학은 미래지향적(일어날 만한 일에 대한 예상)이다. 과학이 존재론에 초점을 맞춘다면, 요즘 인문학은 윤리학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과학계가 이런 비판을 싫어하는 데에는 그런걸 다 신경쓰며 연구활동을 할 수 없다한마디로 귀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28] 이런 점을 비판하면 반발하고 너희도 과학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일거냐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인문학자들의 주장은 '기술은 혜택뿐 아니라 부작용도 주며, 그 부작용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해야 한다' 같은 주장임을 명심하자. 혜택 누리면서 딴소리 하지 마라 식의 논리는 너네도 공범이니 잠자코 따라라 하는 소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기왕이면 당연히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좋은 일 아니겠는가?
또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다양한 인문학적 고찰을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교양 수준의 상승과 다양한 사고의 폭의 확대와 창조성 증진, 문화 발전의 밑거름 형성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이 대부분 문화 대국이기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오래된 인문학적 전통을 통해, 비록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창조적 사고와 문화적 토양이 쌓아졌고, 그 위에 다양한 문화적 성과물이 모습을 드러내게되고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커다란 경제적인 효과까지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자연과학과 공학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자연과학 역시 당장 기술을 개발하거나 제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탐구하여, 결과적으로 그러한 이론을 통해 공학도들이 다양한 신제품과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얄궂게도 인문학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당장 뚜렷한 결과물을 보기 힘든 자연과학 역시 우리 사회에서 무시받는 풍조가 횡횡하고 있다(ex : 물리학과? 그런데 가서 뭐먹고 사냐 의대나 공대를 가라).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 삶인가?" 등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아무런 물음도, 우리의 역사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돈을 벌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만이 목표인 사회의 사람들은 과연 정말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누린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당신이 직장에 가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하는건 대체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이런 질문을 고찰해 보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역할이다. 즉 인문학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인문학은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미래를 생각해 보게 하며 다양한 사유의 폭의 확대와 문화적인 결과물들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서 그저 의식주만 해결되면 만족하는, 동물들과 별다를게 없는 저차원적인 삶으로부터 보다 고차원적인,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다른 학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으로, 사실상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인문학은 비록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가시적인(=돈이 되는) 결과물을 당장 눈앞에 보여주는 학문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정신적인 토대가 됨과 동시에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여 궁극적으로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인 것이다. 또한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문학적 토대를 통해 길러진 창조성과 사고의 유연성, 문화적 소양은 직접적으로는 문화 산업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제품의 디자인 개발, 사람들간의 소통 확대 등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즉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문학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경제적인 파급 효과까지도 크게 끼칠 수 있는 학문인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이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라는 이유만으로 멸시하는 것은 대단히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고전의 가치?
긍정론 |
인문학은 그 깊이(depth) 차원에서 매우 심오하며 다른 분과학문과 비교하여 고전(classics)이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예컨대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물리학사(史)를 전공하지 않는 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전부 볼 필요는 없으며, 그 주요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고전역학 교과서를 이해하는 정도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치철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한 번이라도 반드시 플라톤의 <국가>를 제대로 읽어 볼 필요가 있으며, 이와는 별개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플라톤에 대한 해석도 눈여겨 봐야 한다. 따라서 마음먹기에 따라 인문학은 그야말로 평생을 파고들어가도 모자랄 정도의 엄청난 독서량과 생각의 깊이를 요구하는 학문이 된다. 실제로 유명 철학의 원전을 강독하는 대학원 수준 수업의 경우 1시간 강의에 채 2페이지를 못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구절 한 구절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문학은 고전을 통해 과거 사람들(학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비판하며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요시한다. 사실 혼자 생각하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많은 학자들은 이미 과거에 누군가 생각해보았던 것들을 참고한다. 어느 철학자는 "열심히 사유했는데, 어느날 플라톤의 책을 열어보니 플라톤이 이미 내가 했던 생각은 다 했더라." 라는 말을 남겼다.
부정론 |
그런데 인문학에서 고전이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고전을 읽더라도 단순히 '누가 어떠 어떠한 얘기를 했다더라.' 거나 '그의 주장은 이러이러하다.' 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더욱 중시한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 대학교의 유명한 철학자 길버트 하먼은 사무실 문에 "철학사 꺼져" 같은 문구를 붙여놓기도 했고, 분석철학의 거장 콰인은 철학사 강의를 지루한 작업이라 평가하면서 진짜 철학(즉 자기 연구)을 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고전 중심의 강의가 인문학 교육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좀 비약이다. 무엇보다도 학부 커리큘럼에서는 고전 한 권을 정해서 한 학기 동안 강독하는 강의가 있을 수 있지만, 대학원에서는 논문주제로 어떤 고전을 선택하는 것이면 또 모를까 이런저런 고전들을 정독해 볼 시간조차 없다. 어떤 이는 고전에 대한 반발조차 고전의 영향 하에 있다는 증거로 아전인수하지만 이는 그가 현대 분석철학 등의 연구 동향에 무지하다는 증거일 뿐이다. 콰인이나 하먼의 연구는 고전의 해석이나 비판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고전을 몰라도 그들의 연구를 이해하기에는 지장이 없으며 그들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은 동시대의 동료들의 연구 성과와 타 학문 분야의 연구 성과들이다. 당장 대학교에서 분석철학 수업을 듣게 되면 두꺼운 고전이 아니라 중요한 현대철학자들의 논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철학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인문학이라고 간주되던 여러 학문 분과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전이 인문학 커리큘럼에서 당장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여전히 자주 마주치기야 하겠지만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차라리 고정관념에 가깝다.
6 인문학의 위기
If your child majored in fine arts or philosophy, you have good reason to be worried. The only place where they are now really qualified to get a job is ancient Greece. Good luck with that degree.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순수예술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근심이 크실 만 하군요. 그 아이들이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곳은 고대 그리스뿐이거든요. 행운을 빕니다.
─코난 오브라이언,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식 축사 중 영상
인문학은 위 예시에서 보았듯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추상적인 관념을 연구한다. 즉 재화의 흐름을 연구하지도, 권력에 따른 재화 분배를 관찰하지도, 직접적인 기술을 연구하지도 않는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정부 입장에서 인문학은 그렇게 쓸모 있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은 취업 시장에서도, 취업률을 올리려는 정부에게도 많은 차별을 받는다. 이를 '인문학의 위기' 라고 칭한다. 다음의 기사가 그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공계 전성시대, 인문계는 서럽다
인문계 공급과잉, 이대로 방치할텐가
때문에 인문계와 관련한 온갖 자학 드립이 난무한다.# 안습 문송합니다 문송합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시민권 자격 부여만 봐도 소위 '스템'(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계열(한국으로 치면 전화기) 전공자를 우대하지 인문학 전공자를 우대하진 않는다. 옆나라 일본만 해도 최고대학인 도쿄대학의 문과 1(법학/정치학), 문과 2(경제학)에 비해 문과 3(광의의 문학)은 선호도나 취업률이 떨어지며, 미국 또한 '인문학의 위기' 를 외칠 만큼 인문학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 최고 명문인 하버드 대학교마저 인문계열 학생 수가 감소하였고, 그나마 있던 다른 학생들도 다수가 전공을 바꾸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학들도 인문학의 위기 이는 딱히 일본이나 미국이 기술 중심 사회이기 때문이 아니다[29]. 인문학의 위기 전세계적 현상 그렇기 때문에 유수의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밥벌이용으로 경제학이나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는 경우가 많다[30] 그나마 졸업생에게 전부 높은 연봉의 정규직 교사/교수 직위를 보장해 주는 그랑제꼴 고등사범학교가 개설되어 있는 프랑스가 조금 나은 형편이랄까[31].
인문학의 부진한 연구 때문도 있지 않을까? 한국어 어족을 오히려 외국 학자들이 더 많이 연구할 정도였으며, 향찰 해석도 영문과 양주동 교수가 한 일이었는데. 하지만 이런 한국어 관련 연구의 부진은 식민지 시기에 조선어문학이 제대로 발달할 수 없던 사정 때문이지, 딱히 인문학자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언어학 자체가 근대 초기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이라는 점, 일제시대에는 총독부가 세운 경성제대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연구기관이 없었다는 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어 연구 자체가 한동안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리고 향찰을 양주동이 최초로 해석한 것은 그 개인이 한국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배경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우 많은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한국문학(및 한국문화)에도 민족주의적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다. 또한 앞서 말한 바처럼 인문학은 학제 안이 아닌 학제를 넘나드는 공부가 필수적이다 보니 이러한 관심이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문학에 대한 이해가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도를 심화, 발달시킬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 또한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자기 분과 학문을 벗어난 연구를 하는 인문학자의 사례를 그 분야에서 '부진' 하거나 '게으르다' 고 매도하는 행위는 몰이해의 소치에 불과하다.
6.1 한국
인문학은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기피 학문이 된 지 오래다. 인문학 대학원들 중에 그나마 순혈주의를 고수하거나 타 대학 학생들에게 거의 논문심사 수준의 면접을 요구하는 곳들[32]은 그나마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서울, 지거국 수준이고 수도권 대학 정도만 돼도 최소한의 자질만 있다 싶으면 수업계획서 대충 보고 나서 입학시킨다.[33] 실제로 인문학 전공자들은 취업을 하려면 회사들이 기피하고, 공부를 하려고 하면 궁핍함을 감수하고 더 심화된 다음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나마 석사까지면 늦어도 30대 중반 이전에 끝이 나니까 좀 낫지만[34] 박사를 잘못 밟으면 박사 학위도 못 따고, 그냥 40대 초반 석사로 남게 되면서 그나마 취업의 기회가 남아있는 30대를 통째로 날려먹을 수 있다. 물론 40대 석사가 30대 학사나 20대 고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하다는 건 상식이다. 이렇게 되면 인생은 진짜로 헬게이트. 인문학 분야의 시간 강사들은 가뜩이나 이쪽 업계가 급여가 낮은데 자연과학같은 분야보다 수입이 적다고 한다. [35] 물론 책을 써서 인세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인문학 책도 많이 팔리지가 않는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소위 '인문학의 위기' 가 품은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의 글들 참고. 인문학의 위기 혹은 가로지르기 인문학의 위기, 진단 그리고 대책 한국의 인문학은 조금씩이나마 서서히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인문학이 처한 가혹한 환경에 비추어 볼 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여전히 유수의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에서는 어렵고 힘든 학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인문학도들이 결코 적지 않으며, 이들이 사실상 전력으로 한국 인문학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외일지는 모르지만, 서로 다른 학제간 통섭이 필요하다는건 한국의 학자들도 다 인정하고 있다. 인문학이 살아야 과학이 산다 이런 일도 벌이는 모습을 보면 분명 인식하고 있다.
방송이나 일부 강연에서 인문학 콘서트 등이 우후죽순 열리면서 '인문학 열풍' 이 불고 있다. 그러나 보통의 인문학 토크콘서트가 '인문학에 대한 맛보기' 수준의 이야기를 대중들이 경험하는 컨셉을 잡고 있는 한계 때문에 사유가 동반되지 않은 요점 정리식 신변잡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곳에서 논하는 인문학의 수준이라 해봐야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수업보다도 낮은 수준의 내용이거나, 심지어 비전공자가 대충 알아보고 만들어 이곳저곳 오류로 가득찬 엉터리 이야기들도 허다하다. 때문에 인문학 전공자들 중에는 오히려 저런 겉핥기식 인문학이 인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왜곡한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 대기업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뽑겠다는 식으로 언플을 하는 사례가 많이 늘었는데, 취업준비생들의 소감은 기업들이 인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그냥 책 좀 읽어본 이과생을 원하는 것이라고. 절대다수의 기업은 깊이 있게 철학 등을 연구하거나 그런 사람을 채용해 볼 생각 따위는 전혀 없으며, 그저 상품을 좀 더 잘 팔 수 있도록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내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라는 얘기다. 애초에 언플 내용조차도 인문학 전공자를 뽑는다고 한 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고 하였다. 심지어 인문학 전공자들은 면접에서 '당신의 전공으로 우리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되겠냐' 는 식의 질문을 엄청나게 받는다고 한다. 상경계열이나 공학계열 출신은 거의 받지 않는 질문이다.
이를 좀 과격하게 해석하면, 공대생에게 철학을 가르치는게 인문학 전공자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식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공대생은 철학을 수박 겉핥기로라도 배워 올 수 있지만, 인문학 전공자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의 부족 때문에 기술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는 있다. 이런 움직임들이 거름으로 뿌려져서 인문학의 토양이 비옥해질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문학 열풍을 기업 차원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이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신세계그룹에서 2014년부터 시작한 SSG 지식향연이 있는데, 무척 괜찮은 구성과 파격적인 특전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6.2 외국
그렇다면 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인문학의 현 상태와 향후 전망은 매우 좋지 않다. 오죽하면 "인문학의 위기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라는 뉴스기사가 나올 정도이다.[36] 미국에서는 인문학 연구 자금 지원금이 2009년부터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2011년 기준으로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비의 0.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전체에서의 인문학 전공비율은 1966년부터 2010년 기간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버드 대학 인문학 연구소장은 인문학이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 모두에서 심각한 고전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제너럴 일렉트릭 공장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것 보다는 경영학 같은 실용학문을 배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는 2011년부터 인문학 분야에 대한 정부 직접 지원을 끊어버리고 수업료로 대체하였으며, 호주에서도 1억 300만 호주 달러(한화로 약 995억원)의 인문학 연구 자금을 의학 분야로 돌리겠다고 발표하였다. 인도 또한 인문학은 빈사 상태이며 반대로 직업학교와 경영, 기술 분야 연구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말하기조차도 민망하다. 체제도 체제였거니와 60년대에 중국 대륙의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를 싸그리 파괴와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홍역 탓에 인문학이 말살당했기 때문이다. 분서갱유의 대륙답다 중국 사회과학원 같은 유수의 학술 기관이 있다고 하지만 학자 개인의 견해를 다는 것은 물론 각주 하나, 단어 하나까지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혁 관련 공문서 및 기록들은 체제붕괴의 위험성과 연관되기 때문에 모두 공개금지 조치가 되어 있다.해금돼서 대박 논문 내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듯 이 때문에 중국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이공계열 출신들이다. 당장 현재 중국 주석인 시진핑만 해도 베이징대학 공정화학과를 졸업했고, 후진타오 전 주석도 칭화대학 수리공정과를 졸업했으며, 그 전 주석이었던 장쩌민은 자오통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으니 말 다한 셈. 물론 그것은 문혁이 쓸고 간 대륙 얘기고 홍콩 및 대만은 한족 자체의 문화 수준이 높은 관계로 인문학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문과 출신에게 기회를 준다. 당장 중국사 사료는 베이징이 홍콩이나 타이베이에서 수입해 오는 판. 홍콩대와 홍콩중문대가 베이징대학보다 더 사료 보유량이 많으니 말 다했다. 홍콩은 문사철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 비주류 전공자에게도 취업 기회가 열려있으며, 실업률도 낮아서 한국이나 중국대륙보다 훨씬 낫다.
- ↑ 이 때문에 문과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받는 학위가 B.A.가 Bachelor of Arts이다. 문과대학이라 과잠바에 'College of Liberal Arts'라고 새겼는데 뒤에서 고등학생들이 미대인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다(...). 오해하지 말자.
- ↑ 복수형은 Artes Liberales, 자유칠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 ↑ 스티브 잡스 때문에 보통 Liberal arts를 인문학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오역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문학, 즉 Humanities는 Liberal arts보다 협소한 영역을 지칭한다는 것인데, 이를 비추어 보면 Liberal arts는 인문학보다는 교양학으로 번역하는 쪽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다. ### 언뜻 번역 탓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라틴어권 국가에서도 Humanities와 Liberal arts는 꽤 혼용되어 쓰이는 편이다.
- ↑ 그리스어 technē를 번역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로, 본 의미는 원래는 Scientia(생김새를 보면 알겠지만 현재 이학을 의미하는 영단어 Science의 어원이다. 주로 "지식"을 의미하는 epistemē를 번역하기 위해 차용되었다.)와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의술은 길고, 생명은 짧으며…(하략)"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와 유사하게 손자병법의 영제목이 The Art of War인 것도 이러한 흔적을 반영한 것이다.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이후 자연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구분이 엄밀해진 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정착하였다. 그 결과 현재는 arts와 sciences(이학)이 보통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다.
- ↑ 사실상 이 사람들이 오늘날의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즈음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당시 교회의 권위에 반항하면서 고전을 원어로 직접 읽고 연구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학풍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르네상스 이후 자연과학의 발달과 종교개혁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 ↑ 정확하게는 현대의 '수론(Arithmetic)' 에 해당한다.
- ↑ 현재와 같이 천체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물 일반의 물리법칙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당연히 수학과 음악, 기하학을 모두 사용하는 응용학문으로, 당대 학문을 아우르는 최고봉이었다.
- ↑ 이는 로마시대 보에티우스의 편집으로, 이 네 학문을 보편수학이라고도 부른다
-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인문대학 발전방안 연구, 1995. 7-8쪽
- ↑ Rens Bod : A New History of the Humanities - The Search for Principles and Patterns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 ↑ Helmut Reinalter · Peter J. Brenner : Lexikon der Geisteswissenschaften - Sachbegriffe, Disziplinen, Personen. Wien ; Köln ; Weimar : Bohlau Verlag, 2011, XX-XXI
- ↑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리학에서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의 구조를 따질 것이고, 발생학이라면 DNA나 효소, 단백질이 어떻게 인간을 구성하는지 따질 것이다.
- ↑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들도 마찬가지이다. 단 고려대학교의 경우는 그 전신인 보성전문이 법과와 상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법과대학과 경영대학이 가장 앞에 오며, 한양대학교 역시 그 전신이 동아공과학원-한양공대이기 때문에 공과대학이 가장 앞에 온다. 성균관대학교의 경우 조선 성균관의 후신임을 표방하기 때문에 그 정신을 계승하는 유학대학(儒學大學)이 맨 앞에 온다. 물론 이 대학들도 그 다음 순서는 자연스레 인문대학이 위치한다.
- ↑ 물론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비교언어학이나 영미 분석철학, 경제사학처럼 여느 사회과학 못지않게 건조한 느낌의 인문학 분과도 있다.
- ↑ 어디까지나 농담성으로 인용한 것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해당 시구의 정확한 출처는 http://en.wikiquote.org/wiki/W._H._Auden 참조
- ↑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 이정옥 엮음, 휴머니스트, 2003. 이 책의 소주제들이 88년부터 02년까지의 실제 기출문제다.
- ↑ 단 전문대는 교육과정이 빡세서 그냥 1학년 때부터 내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답을 쓸 능력이 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수준이 완전히 갈린다. 전자는 편입 등으로 나가고, 후자는 헬게이트로...
- ↑ 참고로 테제, 안티테제, 종합은 헤겔이 변증법을 논하며 제시한 대표적인 논거 전개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변증법은 있었지만.
- ↑ 납의 반감기를 측정해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걸 밝혀냈다. 연구 과정에서 납 오염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무분별하게 납을 사용하는 기업들을 비판했다.#
- ↑ 그렇기 때문에 과학에서는 가설의 검증 후 채택 혹은 기각으로 깔끔하게 끝나는 문제라도 이 동네에서는 다수설, 소수설 이런 식으로 표현하며, 쪽수에서 밀리는 의견도 완벽히 내치지 못한다.
- ↑ 일부 위키 사이트에서는 이런 현실을 모른 채 자기 주장만이 진리라는 생각에 빠진 몇몇 유저들이 심각한 민폐를 끼치고 있다.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의거, 언급하지 않는다.
- ↑ 인문학자든 과학자든 상관없이 저런 생각을 해 본 사람들을 말한다. 사실 이런 논제는 과학 쪽에서도 과학철학이나 연구윤리 쪽에서 심도있게 고민하고 있다. 단지 인문학자들처럼 고민과 연구 주제가 일치하진 않아서 문제지.
- ↑ 어떤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다른 쪽 사람이 반드시 착한 것은 아니다. 이는 이분법적 오류다.
- ↑ 이 글은 문과 대 이과 구도로 써 놓았지만, 사실 인문계는 정치, 경제계와 더 많이 대립한다. 사실 생계 문제라는 게 사람을 가장 사람답지 못하게 괴롭히는 문제다 보니(…)
- ↑ 대표적으로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참고. 소칼이 가짜 논문으로 낚아서 의도했던 것은 현대 인문학계 학자들, 특히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논리도 없는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려 드는 세태를 지적하려 했던 것이다. 헌데 사실 소칼의 행동에도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 논문으로 낚은 건 좋은데, 그건
듀크 대학이 병X이라는 것과 함께앤드류 로스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한 과학의 문화학, 파이어아벤트주의가 학문적 깊이가 얕다는 증거가 될수는 있지만, 그것을 인문학 전체나 포스트모더니즘 전체가 학문적으로 엉터리라는 논리로 비약시킬 수는 없다.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에 지나치게 경도된 일부 인문학자들이 파이어아벤트마냥 과학 전체를 이성 중심주의로 몰아붙이고 유사과학도 또 다른 과학이라고 주장하면서 과학자들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기에 일어난 사건인데다 소칼이 비판한 라캉철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프랑스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학설이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와 함께 철학계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심한 것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인문학을 잘 알지 못하는 과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 = 인문학이라 착각하고뭐라고?이 사례를 인문학 자체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집합 속의 요소 A가 검다고 그 집합 속 요소들이 모두 검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 예를 들면 윤리학에서의 메타윤리학
- ↑ 다만 그럼에도 논쟁은 남는데, '객관적인 진리가 과연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 에서 두 분야가 완전히 태도입장이 다르기 때문. 당연히 과학은 '있다' 고 보겠지만, 인문학은 '없다. 상대적이다.' 라고 볼 것이다. 근데 수식하는 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찰을 통해 살펴보면 객관적 진리가 발견된다' 와 '그것이 초래할 결과로 미루어보면 특정 집단의 관점에 따라 진리는 상대적으로 정의된다.' 로 차이가 있다. 애초에 전제조건부터 꽤 차이가 있다.
- ↑ 과학계에서 예를 들자면 대표적으로 생명윤리 문제와 동물실험 문제. 그 외 분야에서 예를 들자면 군대의 존재 문제.
- ↑ 영미권이나 이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강조되는 풍토이다.
- ↑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전설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펀드매니저 빅 5는 워렌 버핏을 제외하면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 ↑ 오히려 박노자의 회고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구 소련의 경우 취업 걱정이 원칙적으로는 없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먹고 살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원하는 인문학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이 곧 구 공산권 국가들의 인문학 연구 성과가 자본주의 국가보다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일당독재 체재 하에 철저한 검열이 이뤄지는데다, 외국 학계와 교류하기 어려운 폐쇄적 환경에서 제대로 된 학문 발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때문에 북한의 인문학 사정은 그야말로 시궁창. 학문 수준은 초보 수준이고, 그나마도 주체교의 경전인 주체사상을 보조하는 데에나 쓰인다.
- ↑ 논문연구사 등을 요구하면 거의 100%이다. 이걸 무슨 수로 쓰란 말인가. 다만 평소 읽어 자기소개서에 쓴 책들의 내용에 대해서는 적당히 정리를 해놓고 언제든 답할 준비를 할 것.
- ↑ 모자라는 건 나중에 입학하고 나서 신나게 털어주면 된다. 그리고 석사는 대충 써도 학위는 받지만, 박사학위자라면 털리는 걸로 끝나지 않고, 학위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 ↑ 물론 남자 기준이다. 군대 갔다 오고, 대학 졸업한 뒤 이거저거 자격증 시험 치고, 그 다음 대학원 응시해서 2년 내에 졸업할 경우. 여자는 더 불리하다.
- ↑ 이들의 고충은 국문학 전공 시간강사 김민섭이 출간한 수필집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 잘 드러나 있다.
- ↑ 미국에서도 문과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고 인문학기피가 심각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