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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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여신에 대해서는 니케 문서를, 미국의 미사일에 대해서는 나이키(미사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NIKE
설립1964년 1월 25일 (블루 리본 스포츠)
1971년 5월 30일 (나이키)
설립자필 나이트 (Phil Knight), 빌 바우어만 (Bill Bowerman)
본사미국 오리건 주 비버튼
사업의류, 스포츠 장비 등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Just Do It.
Risk Everything.

나이키를 신으면 나의 키가 크지
나이키 (NIKE)는 필 나이트 (Phil Knight)와 빌 바우어만 (Bill Bowerman)이 세운 미국의 스포츠 용품회사로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로 시작하여 1971년 처음 나이키라는 상호로 바뀌었다. 2016년 현재 스포츠 시장에서 라이벌 아디다스를 제치고 독보적인 1위.

나이키의 어원은 그리스의 승리의 여신 니케 (Νίκη, Nik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미국 공홈에도 온라인 스토어가 있으며, 델타 항공의 스카이마일스 쇼핑이나 아메리칸 항공의 어드밴티지 e-쇼핑 사이트를 경유하여 마일리지도 적립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라인 스토어가 대한민국 카드를 거의 안 받아 준다는 것. 대개 나이키 공홈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하려면 카드를 직접 이용하기 어려워서 페이팔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아니면 피니시라인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1]

2 로고

1971~1978년 로고
1978~1995년 로고[2]

흔히 나이키하면 떠올리는 스우시 (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 (Carolyn Davidson)이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다. 이 35달러도 처음부터 단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여서 17시간 30분을 만들고 만든 시간에 따라 35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슨이 로고를 완성하고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보여주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다고 한다. 로고가 발탁되고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 로고는 1971년 상호를 나이키로 바꾸면서 공개되었다. 로고가 공개되고 나서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만 있다.


스우시 로고를 만든 캐롤린 데이비슨 여사

데이비슨의 말에 따르면 1983년 9월, 나중에 나이트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한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특히 현재에 와선 이 로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부터 르브론 제임스, 로저 페더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수많은 선수들이 나이키의 협찬을 받아 장비를 입고 홍보를 하면서 이 로고가 자연스레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운동선수와 브랜드를 연결짓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1988년부터 밀어온 슬로건인 Just Do It과 함께 나이키의 대명사가 되었다.

3 역사

창립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와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
당시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운동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빌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제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 BRS)를 설립하였다.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아식스의 신발 메이커 중 하나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들이면서 사업은 시작되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 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달러로 매출이 증가하였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더 이상 오니츠카 타이거를 유통하지 않고 자사의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이키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때 나이키의 스우시 (Swoosh) 로고가 탄생하게 된다.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든가(...),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3]와 겹쳐 아디다스의 리즈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만다.

미국 내에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던 당시, 나이키는 조깅 열풍 당시의 아디다스처럼 아줌마들이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게 피트니스지. 그건 스포츠가 아님하면서 늑장대응(...)하여 가벼운 피트니스화[4][5]를 출시한 리복의 도전을 받는 듯했으나... 그래도 미국이 홈 그라운드인지라 아디다스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이후 1976년 브랜드 광고를 하게 되고 순식간에 성장하여 1980년에는 미국 운동화 시장의 절반을 집어삼키게 된다. 아디다스는 전세계 시장 지분에서 완전히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나이키의 매출은 마이클 조던과 협업으로 제작한 에어 조던시리즈의 성공으로 급상승하게 되었다. 에어 조던은 마이클 조던의 위대한 선수생활이 스토리텔링으로 더해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에어 조던시리즈의 성공으로 나이키는 조던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런칭하여 운영중이다. 에어 조던의 성공으로 큰 매출을 올린 나이키는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등 각 분야의 스타들과 계약을 맺어 하나의 라인을 런칭하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는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나이키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에 자신들의 생산라인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때문에 논란이 많은데 생산지의 노동자들이 아동이고 급여를 거의 못 받은 채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논란이 있음에도 계약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정보를 보고서로 제출하게 되었다.

나이키는 많은 회사들을 인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콜한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바우어 하키 (나이키 바우어)를 인수하고 2002년에는 헐리를 인수했다. 2004년에는 스타터, 2008년엄브로를 인수했다. 하지만 너무 여기저기 손대는 것 같은지(...) 자신들의 중심 사업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스타터, 바우어 하키, 엄브로, 콜한 순으로 처분되고 현재는 컨버스헐리만 남아있다.

4 광고

2004년 월드 시리즈 이후 나온 광고.[6]2016년 제작된 광고. 공개된지 1달도 안되 조회수 1천만을 돌파했다.
Just do it : 너를 외쳐봐just do it :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된다.[7]

나이키의 필 나이트는 광고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는데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는 상품을 광고에 직접 보이거나 선수들에게 협찬을 해주면서 광고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Nike is a marketing-oriented company, and the product is our most important marketing tool.

나이키는 마케팅에 기반한 회사이다. 그리고 상품이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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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에어 조던 광고 후에 에어 조던 29에 프린트되어 나왔다.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나이키 CF를 거쳐갔다. 마이클 조던[8][9]부터 시작해서 타이거 우즈까지...

5 제품군

많은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헐리, 컨버스 등이 있으며 같은 나이키라도 브랜드가 상당히 많다. 에어 조던, 나이키 골프, 나이키+, 나이키 프로, 나이키 블레이저, 에어 포스 1, 나이키 덩크, 에어맥스, 나이키 스케이트보딩, 나이키 풋볼, 티엠포 등이 있다. 콜한, 엄브로는 이전에 자회사였다.

사실상의 본업과 다름없는 육상은 물론이고 축구, 농구(에어 조던), 수영, 골프, 스케이트보드, 야구 등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스포츠 용품을 제작 판매중이다. 전문 트레이닝 라인의 성능도 좋지만, 패션 브랜드로도 이름있다. 원래는 전문 트레이닝 라인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패션 라인으로 팔리는 것들로는 에어맥스, 에어포스, 덩크 등이 있다. 미국에서도 나이키 신발은 그리 싸지 않은 편이지만[10], 일단은 국민화화 되어있다[11].

2015년 이후 골프 시장에서 철수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야구 시장에서도 철수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6 유니폼 협찬

나이키가 협찬하는 곳을 다 적으려면 문서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할 수준이다(...) 영어 위키백과 참조[12].

6.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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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협고등학교 일진형들 "야 빵셔틀 이리와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스폰서

역대 나이키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찾는다면 이 항목을 참고하자.

1995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스폰서를 맡고 있다. 나이키가 축구용품을 런칭한 초창기부터 함께했으니 거의 20년간 공식 스폰서인 셈. 2012부터 2019년까지 8년간 총액 1200억원(물품600억+현금600억)재계약을 맺었다. 아디다스가 재계약 기간에 매번 스폰서 계약을 노리고 있어 지원액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3년부터 유럽 메이저 팀이 받는 트레이닝복을 받게 되어 이제서야(...) 20년간 공식 후원사의 대우 좀 해줬다. 유니폼 디자인은 좋게 보는쪽은 깔끔하고 심플함,나쁘게 보는쪽은 그냥 빨강 티셔츠에 나이키 스우시, 축협엠블럼 땡인 성의없는 디자인[13]이라고 평한다. 이래서 파이어 드래곤 유니폼이 이 모양이었구나. 축구팬들은 불에 가까운쪽이라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높게 쳐준다. 아디다스도 삽질하긴 하지만 나이키보다는 낫다는게 평. 그러자니 꾸미면 의미부여를 많이 한 나머지 해괴한 디자인이 나와버려 또 까인다(...)[14] 1995-96 시즌 유니폼[15]은 아직 나이키 특유의 독자적인 디자인이 정립되기 전이라 현재 적-백-청 조합이 아닌 적-백-흑 조합에 얼핏 보면 1994 월드컵 때 유니폼의 색동조각 무늬와 비슷해 보인다. 2002 월드컵 유니폼은 월드컵 4강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대 나이키 스폰서 유니폼 중에서 가장 디자인이 좋았던 유니폼이라 현재도 평가는 좋은 편. 하지만 팬츠 색깔이 데님블루여서 강렬한 맛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다. 그리고 2003-04 시즌의 유니폼은 앞면에 박힌 특유의 동그라미 등번호 마킹 때문에 '로또 유니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파일:/image/295/2013/02/22/121651397_%25BD%25BA%25C6%25F7%25C3%25F7%25C3%25E1%25C3%25DF-%25BE%25DF%25B1%25B8%25B4%25EB%25C7%25A5%25C6%25C0.jpg]]

1998 방콕 아시안 게임부터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까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담당했다. 역대 유니폼. 야구유니폼은 축구유니폼과 달리 대회를 치를수록 디자인이 점점 진일보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013년의 야구 국대의 유니폼은 나이키 본사에서 직접 제작한 맞춤형 유니폼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WBC에 참가하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메이저리그 유니폼 공식후원사인 마제스틱사가 일괄적으로 디자인하는 것과는 달리[16][17] 한국은 MLB 사무국(WBC 대회 조직위)에 별도의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마케팅 성과를 거둬 나이키에게나 한국 국가대표팀에게나 모두 윈윈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2013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었으나 이후 대한야구협회데상트와 4년간 20억원의 스폰서를 체결해 두 번 다시 나이키 유니폼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18]

농구 국가대표팀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그 즈음부터 공식 스폰서가 됐다. 농구 대표팀 유니폼 항목 참조.

국가대표팀 유니폼 제작에는 열정적인 반면 국내스포츠팀 유니폼 후원에는 소극적이라 팬들의 비난이 있는 편. A대표 1200억원-K-리그 0원, 글로벌 나이키의 마인드. 보다시피 축구쪽의 비난이 많다. 참고로 다른 동아시아 국가를 보면 중국의 경우엔 전구단이 나이키 스폰서를 받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산프레체 히로시마, 가시마 앤틀러스 등이 나이키의 후원을 받고 있다.

  • K리그의 경우에 2000~2001년 부산 아이콘스 유니폼, 2003년 광주 상무 유니폼, 그리고 2009년 강원 FC의 유니폼 제작을 제외하곤 전무하며, 다른 축구 리그로 확대해봐도 2007년, 2008년에 챌린저스 리그서울 유나이티드의 킷스폰서로 참가한 것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강원 FC는 강릉점 차원에서의 스폰이라 그냥 기본킷에 글자만 넣어놨던 물건이었고, 2003년의 광주 상무 유니폼도 비슷한 성격이었다.
  • 오랫동안 K리그 스폰서로써 K리그 공인구가 나이키로 쓰여왔지만 이마저도 2012년부터는 아디다스로 바뀌면서 국내 프로축구에선 완전히 손을 뗐다.[19]
  • 프로야구의 경우엔 2013년 넥센 히어로즈유니폼 킷스폰서 계약을 맺었으며 반응이 좋았는지 2017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20] 다른 구단들의 경우에는 배팅장갑, 야구화등 야구 용품 일부를 구단 단위로 나이키에게 스폰서를 받는 경우가 있다.
  • e스포츠에서는 SK텔레콤T1이 2006년부터 이어져온 아디다스와의 유니폼 계약이 종료된 이후 2012년 12월, 나이키와 유니폼 계약을 맺었다. 다만 이쪽은 따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품에 팀 엠블럼만 부착해서 제공 된다.

7 논란

7.1 욱일기 디자인 논란

2009년에 조던12 시리즈가 발매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라이징 선은 밑창에 욱일기를 그대로 갖다붙여놓은데다 이름마저 라이징 선[21]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3년에는 홈페이지에서 아예 대놓고 일본 욱일기 디자인임을 밝히고 있다. 2016년 3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에어 조던 12 레트로 더 마스터는 색상만 바꾸어 재발매한 버전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욱일기를 가장 증오한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국내에서 이런 욱일기 디자인 신발들이 출시 당일에 재고 없이 모두 판매되는 처참한 상황을 맞이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나이키보다는 개념없는 컬렉터들의 윤리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항의가 빗발치고 불매운동이 시작되어봐야 문제의 제품은 이미 완매된 상황인데 나이키를 비판하거나 말거나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우리 얼굴에 침뱉기밖에 안된다. 실제로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이키 측도 욱일기 논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다가 뒤늦게 한국에서의 판매를 중지하는 것만으로 모든 조치를 끝냈다.

다만, 국내 나이키 매니아들이 모두 이런 컬렉터와 같은 윤리는 화장실에 물내려버린 성향을 가진 것은 절대 아니며, 오히려 이런 무개념 컬렉터들은 소수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다는것부터 이미 수치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또한 이 문제의 제품을 단지 좋아서 구매한다기보다는 되팔기 위해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잊으면 안된다.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증거로, 조던12 시리즈 문제에 대해 국내 최대 나이키 팬사이트라 할 수 있는 네이버카페 나이키매니아에서는 이미 조던12 시리즈에 대해 통일된 여론[22]을 형성했으며 심지어 역으로 이를 계기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위한 기부행사를 시작했다. 기부된 운동화를 이베이 경매로 판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수익을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8 기타

  • 나이키와 애플의 합작라인인 Nike+iPod도 있다. 최근엔 아이팟 없이도 Nike+ 기능을 쓸 수 있는 제품이 나왔다고 한다.
  • 의외로 일본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와의 연관이 꽤 있다. 2004년 그란투리스모 4 시절에서는 나이키와 그란투리스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출시되기도 했었으며,[23] 게임 내에서도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Nike One 2022라는 미래지향적 컨셉트카를 수록.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그란투리스모를 위한 차를 디자인해주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Vision Gran Turismo에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메이커로는 유일하게 컨셉트카 발표 예정.[24]
  • 한국의 힙합가수 Beenzino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나이키 찬양가인 'Nike Shoes'를 만들었다. 그의 EP 앨범 1번 트랙 노래이기도 한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
  • 시그니쳐 제품들은 대부분 스포츠 스타와 손을 잡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스포츠 스타와 최초의 콜라보레이션은 칸예 웨스트와 손을 잡고 만든 AIR YEEZY.[25]
  1. 그러나 피니시라인은 서로 치수가 안 맞는 신발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막장라인"으로 불린다. 실제로는 물건을 직구로 구매하고 받아놓고선 못받았다고 카드결제를 취소해버리고 물건도 보내지 않는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안받는다. 다른 풋계열은 잘받는중이고 변팔만 잘되면 미국공홈에서 충분히 한국카드 사용가능 하다.
  2. 현재는 주로 NIKE 로고가 안 달린 버전으로 쓰지만 이 버전도 간간이 쓰인다.
  3. 아디다스의 미국 내 총판을 맡고 있던 미국인들로부터 판매권을 인수하는데 자금을 무리하게 동원하였다.
  4.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실수로 장갑용의 가죽으로 신발을 생산하여 납품한 것이었다. 그 모 국가는 대한민국일 가능성이 높다. 화승산업에서 리복의 운동화를 생산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시절 세계 최대의 스포츠화 생산기지는 대한민국이였다.
  5. 화승은 1970~1980년대 나이키에 스포츠화를 공급했고 국내에도 나이키 브랜드를 들여왔지만 1986년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로 르까프 브랜드를 런칭했다. 여기에는 나이키 뿐만 아니라 리복을 위시한 타 브랜드에도 신발을 납품하려는 화승의 계획과 자사에만 독점 납품하기를 원했던 나이키와의 의견대립이 원인이였다는 설이 있다.
  6. 별다른 문구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을 표시했음에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광고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광고계에서 엄청난 주목도를 받았다.
  7. 빅뱅태양, 2ne1산다라 박, 축구선수 박지성, 테니스 선수 정현이 카메오 출연.
  8.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의 팬이었고, 계약을 맺을 당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와 계약하기를 고대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4년 당시 나이키의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었지만 조던과의 계약 후 최초의 시그니쳐 개념을 가진 Air Jordan이란 메이커가 대박을 친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상황이 역전됐다. 흠좀무.
  9. 1990년대 초반, 즉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최고였을 때에는 몇몇 사람들이 Air Jordan을 나이키에서 독립시켜 독자적 브랜드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만약 그랬다면, Air Jordan은 세계 3위의 신발 제조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또 흠좀무.
  10.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보다 비싼편은 아니다. 소득의 규모를 따지면 그렇게 비싼것도 아닌셈.
  11. 일례로 나이키의 신발 중 하나인 Air Force 시리즈는 심플하면서도 다양한 색상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국민 신발' 지위를 누리고 있다.
  12. 이 링크에 따르면 현재 아디다스가 스폰서로 있는 첼시 FC언더 아머가 스폰서로 있는 토트넘 핫스퍼 FC가 이번 2016-17 시즌을 마지막으로 2017-18 시즌부터 나이키로 갈아 탄다고 나와있다. 여기에 스위스가 2018년 부터 나이키의 협찬을 받는다고 명시되었다. 퓨마에게 더 이상 시달릴 일은 이제 없겠군..
  13. 이 특징이 월드컵 최종예선 유니폼만 엄청 부각된다
  14. 우리나라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나이키 스폰서 팀의 공통사항이다.
  15. 당시에 원정 유니폼은 있었긴 했으나 실제 착용하고 뛴 경기는 전혀 없었다.
  16. 그 외에 2013년 WBC에서 일본은 미즈노가 키트 스폰서를 맡았다.
  17. 대만 역시 2009년 대회까진 일본 미즈노사 것이었다가 2013년 대회에서부터 미국 마제스틱사 것을 쓰게됐다.
  18. 스폰서 만료 시점에서 나이키가 야구 시장에서 철수할 확률이 높다.
  19. 이는 본토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스포츠 4대 리그 역시 전체가 같은 회사 제품을 쓰는, 독점계약 체결 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고로 MLS의 공식 스폰서는 아디다스다. 즉, 아디다스에서 MLS 구단 유니폼을 일괄 제작한다는 얘기.
  20. KBO 리그에 참가하는 구단들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가하기는 쉽지 않은데, 목숨걸고 스폰서하려는 국내기업을 받는 곳도 있고, 삼성 라이온즈 처럼 모기업 스폰서를 받는 구단도 있고, 기왕이면 야구 용품으로는 더 높게 쳐주는 곳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끼어들기 힘들다.
  21. Rising Sun : 떠오르는 해=욱일
  22. 당연하지만, 욱일기 디자인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으로
  23. 나이키 디자인의 드라이빙 슈즈와 티셔츠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의 패키지.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24. 사실 에어 조던 역시 예정하고 있지만 나이키 산하의 조직이다.
  25. 칸예 웨스트는 이후 마이클 조던처럼 지분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나이키에서 거절해서 아디다스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