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시절/야구

"왕조" 소리를 들었던 팀들의 경우에 대해서는 왕조(스포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KBO 리그

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3 일본프로야구

4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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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 이 기간 가운데 2006년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 한국시리즈에서의 혹사로 첫 전성기가 마지막 전성기가 되어버렸다. 이유는 해당항목 참고. 그래도 1995년에는 리즈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냈다.
  3. 비밀번호를 끊으면서 부산에 역대급 야구 열풍이 불었고, 부산의 야구 응원문화가 전국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팀 창단 최초로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의 기염을 토하기도. 다만 99년 이후 가을야구 승리는 2012년에서야 겨우 했다.
  4. 실제 그의 전성기는 경남고-연세대 시절이었고, 프로에 데뷔했을땐 전성기가 약간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기간동안 쌓은 승수가 무려 80승이다(!) 특히 84년의 대활약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ㅎㄷㄷ
  5. 트리플 크라운 1회 달성. 단 류현진이 충공깽급 성적을 올리면서 MVP도 타는 바람에 묻혀 버렸지만...
  6. 트리플 크라운 2회 달성(!), 타격지표 8개중 도루를 제외한 7관왕, 그리고 2003년 이승엽, 심정수 이후 7년만의 40홈런 달성(!!), 세계 프로야구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9경기)(!!!) 충공깽.
  7. 한국시리즈에서는 준우승만 세 번 했지만, 전력과 선수층 면에서 단연 리즈 시절이었다.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킨 85년 통합 우승도 바로 이 시기에 했다.
  8. 이 해부터 그 전설의 12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의 시작이다.
  9. 2002년 첫 우승 이후 이 기간만 무려 7회 우승을 했다. 2009년에만 유일하게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10. 덕분에 항상 2인자 이미지의 삼성이 2010년대 들어 드디어 왕조로 불리기 시작했다. 물론 05, 06년에도 왕조에 대해 언급이 있었으나 너무 짧아서 왕조 소리를 듣진 못한다. 게다가 삼성팬들에게조차 선동렬 감독이 돈을 쳐바른 걸로도 모자라 배영수의 선수생명을 작살내가며 우승했다며 우승 자체를 흑역사...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우승은 하긴 했으니 그렇게 좋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
  11. 2011년 부터 2014년 까지의 4년 연속 통합 우승 기간은, 왕조가 아닌 제국으로 불린다(..) 전성기의 해태조차 이루지 못했던 4년 연속 통합 챔피언이기 때문.
  12. 그러나 일명 칩성 사건이 터진 후 곯아온 단점들이 터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1년만에 1위에서 9위로.
  13. 물론 턱돌이 때문에 밀렸을 뿐, 아직도 마스코트 관련 설문조사를 하면 턱돌이와 함께 인기 순위 1,2위를 다툰다.
  14. 뒷 세대 야구팬들은 올드 투수하면 최동원과 선동렬 밖에 없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김시진이 당시 최동원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큰 경기에 약한 건 논외다 최동원을 제치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100승 투수가 된 것이 그 증거. 롯데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는 못해도 10승 중반 잘하면 20승+α를 기대 가능한 대투수였다.
  15. 전설로 회자되는 181구는 1993년 한국시리즈의 등판기록이다. 즉 신인이 그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선동렬을 상대로 멘탈이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선동렬을 강판시켜 버린 것...(물론 9이닝이나 던졌으니 강판이라는 말은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16. 롯데 자이언츠 프랜차이저였으며 故임수혁과 마림포를 결성했고, 99년에 박정태, 펠릭스 호세와 함께 공포의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했으나 선수협 활동으로 구단에게 찍힌 이후 2001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삼성에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여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게다가 KBO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전설의 클린업인 이마양을 결성한 것도 이 시기. 삼성에 있는 동안 30홈런에 100타점은 기본으로 해주었을 정도로 짧고 굵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2003년 시즌 후 FA 선언으로 삼성은 그를 붙잡지 않았고,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지만 이후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7. 이 기간에 때린 홈런포만 무려 302개(!)에 타점은 799점(!!), 게다가 모두 30홈런 이상에 50홈런 이상만 2번 기록(!!!) 게다가 50홈런 이상을 기록한 한 시즌(2003년)은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개 홈런(!!!!) 충공깽.
  18. 단, 2002년은 제외
  19. 박명환, 손민한과 함께 우완 트로이카를 구축하던 시절이다. 최고 구속 150대 초중반의 직구에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까지 곁들여 던지는 그야말로 삼성 투수진의 최종보스. 이 기믹은 한국시리즈에서도 여전했다. 비공인 노히트노런 때문에 2004년 한국시리즈가 유명하지만 사실 2006년 한국시리즈야 말로 최종보스 배영수의 절정판이다.
  20. 일명 SK 왕조 시절. 김성근 감독이 시즌이 진행중이던 8월에 해임되었지만 팀은 이 기간에 한국시리즈 5회 연속 진출해 우승 3회, 준우승 2회를 기록했다. 뒤를 이은 이만수 감독 체제에서 한국시리즈 연속 진출 기록을 6회로 연장했지만 2013년에 4강 탈락이 확정되면서 SK의 전성기는 이것으로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21. 류현진과 더불어 리그 최고의 좌완이였던 시절. 지금은... 그래도 2014년에 부활에 성공하며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켰다.
  22. 1998년 이후 팀의 주축이 빠져나가면서 몰락했다.
  23. 단, 1992년은 어깨 건초염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
  24. 신생팀치곤 빠르게 팀을 정비하여 신흥 강호로 우뚝섰으나 해태와 롯데에 밀려 준우승만 4번 했던 리그의 2인자 시절.
  25. 첫 우승이자 2015년 현재 한화의 마지막 우승.
  26. 이 기간에 홈런 104개, 타점 324개를 기록. 특히 92년에는 크보 최초로 단일시즌 40홈런을 달성했다. 이승엽 이전의 원조 홈런타자의 위엄.
  27. 단 1993~2000년 기간중 1996년 7위, 1999년 매직리그 4팀중 3위로 포스트시즌 실패로 부진했다
  28. 2013년 이전 LG가 마지막으로 가을야구를 한 해. 그 뒤로는 쭈욱 버로우를 타다가 2013년에서야 비밀번호를 종결지었다.
  29. 2007년 크보 미스터리의 주인공 중 한 명
  30. 단 1997년 7위, 1999년 드림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31. 태평양 시절에 가을야구를 한 두 시즌. 그 중 94년은 준우승.
  32. 김원형과 함께 쌍방울 마운드의 상징이었다. 1997년은 전설의 계투 20승 시즌이다.
  33. 06년 디비전 우승, 07~08년 월드시리즈 우승. 09년은 거르고 10년 디비전 우승 다시 강조하는데 2000년대가 아니다
  34. 필라델피아는 지구에 현존하는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1만패 팀이라는 전통의 약체팀이다. 80년에는 명예의 전당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에이스 스티브 칼튼의 활약으로 우승. 1883년 창단 이후 97년만의 우승은 메이저리그 최장기간. 월드시리즈도 1950년이 마지막이었다.
  35. 00년대 후반에는 07년 지구 우승, 08년 월드시리즈 우승, 09년 월드시리즈 준우승으로 최강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36. 전설의 V9시대.
  37. 랜디 바스-가케후 마사유키-오카다 아키노부로 이어지는 역대급 클린업을 앞세워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뤘던 해.
  38. 목메달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지휘 하에 18년 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해.
  39. 1982년부터 1994년까지 84, 89년을 제외하고 모두 리그 우승. 일본시리즈 3연패 2번, 2연패 1번의 충공깽한 성적을 올렸던 시기.
  40. 그 후로도 25년 연속 A클래스(상위권)에 들었고, 2012 시즌에도 초반 최하위에서 1위로 올라오는 등 여전히 퍼시픽리그 강팀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일본판 올라올 사자는 올라온다?
  41. 도쿄 시절의 흑역사를 마감하고 인기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시절. 2008년을 제외하고 모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으며, 2006년에는 44년 만에 우승했다.
  42. 야마다 히사시, 후쿠모토 유타카를 앞세워 요미우리를 꺾고 일본시리즈 3연패.
  43. 이치로와 리그 2연패, 96 일본시리즈 우승.
  44. 아키야마 고지 감독의 지휘 하에 리그를 씹어먹었던 해. 시즌 종료 후 2위 니혼햄과의 게임차가 17.5경기였다. 충공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