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시절/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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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포츠

1.1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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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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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스포츠

1.3.1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1.3.2 리그 오브 레전드

  • 종목 그 자체 - 2012년 롤챔스 출범 후 2016년 5월
  • SKT T1 - 시즌3 후반. 좀 넓게는 2014 시즌 초반까지. 2015시즌 롤챔스 스프링 2라운드부터 다시 한번 리즈시절을 맞는다.
  • CJ 엔투스 - 롤챔스 초창기. 즉 시즌2 초중반.(다만 이때는 MIG, 아주부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 삼성 갤럭시 - 2014 시즌

1.4 농구

1.4.1 대한민국

1.4.2 미국 NBA

1.4.3 국가대표

1.5 기타

2 방송&방송사

3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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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코미디언

4.1 1960, 70년대

4.2 1980년대

4.3 1990년대

4.4 2000년대 이후

5 PD

6 영화

7 게임

8 만화

9 애니메이션

10 성우

11 역사

12 기타

  1. 단 이 경우는 리즈 시절로만 칭하기는 애매한 게 2006년 초 이후 부터 약 2년간 하위권에 맴돌기는 했지만 08-09시즌에 우승을 하고 계속해서 상위권에 머물렀다. 또한 스타 1 마지막 프로리그도 T1이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오버 트리플 크라운 시절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2. 2015년 프로리그 우승과 스타리그 김도우의 우승, GSL 이신형의 우승, 그리고 2016년 스타리그 박령우의 우승
  3. 1차 KeSPA컵 우승과 스카이 프로리그 2005 2라운드 준우승
  4. 주축선수인 송병구와 이성은을 앞세워 프로리그 2회 우승을 이끌었다. 2008년에는 송병구의 개인리그 첫 우승도 거머쥐었다.
  5. 허영무의 2회 연속 우승. 특히 2011 때는 역대급 명경기를 남겼으니....
  6. 비록 부침은 있었지만 이 기간 동안에 통합 리그 2회 우승(09-10, 10-11)과 1회 준우승(11-12)을 일궈냈다.
  7. 주성욱의 대약진과 프로리그 우승으로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했다.
  8. 연고전(고연전)으로 체육관에 오빠부대를 몰고 가기 시작한 시기. 그리고 이 때 발굴된 대학선수들은 후에 출범하는 KBL의 스타들로 성장한다.
  9. 농구대잔치를 통해 활약을 펼쳤던 대학선수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로 진출하면서 KBL 초창기의 농구 열풍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농구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주역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윤세영의 뒤를 이어 후임인 김영기가 KBL 총재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10. 그 이후 2002~2003 시즌부터 2011~2012시즌까지 10시즌 동안 6강 PO에 딱 한번(2007~2008 시즌) 나갔다(...). 현재는 문경은 감독의 리더십으로 다시 리즈 시절의 강팀이 되었다.
  11. 15~16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2. 그러나 그 기간 중 2001~2002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했다.
  13. 이 이외의 시즌은...그야말로 좆ㅋ망ㅋ! 그 전은 32연패, 역대 최소승, 0할대 승률로 대표되는 98~99시즌이 있고, 그 이후 11-12시즌까지의 성적은 십구십십팔이다. 다행히 2012-2013 시즌부터는 다시 중위권으로 돌아왔다.
  14. 당시 팀명은 안양 SBS 스타즈, 단테 존스의 맹활약으로 15연승을 달리면서 7위에서 3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상대전적 3승 3패의 대구 오리온스까지 완파하면서 4강에 진출했다.
  15. KGC의 두 시즌간의 리빌딩 완성의 성과인 챔프전 우승을 거두었다.
  16. 김태환 감독 시절 평균 득점 100점대를 상회하는 닥공농구를 보여줬으며 챔프전 준우승..그렇지만 후임으로 박종천 감독이 하극상 아닌 하극상을 일으켜 2004~2005년 시즌은 9위로 추락
  17.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 2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산을 겪다가 김시래,문태종,김종규, 외국인 선수로 데이본 제퍼슨과 크리스 메시를 영입하면서 2월 이후 전승으로 챔피언결정전 진출, 그러나 통합 챔피언은 무산됨
  18. 전년도 최하위 구단이 문태종 영입으로 구단 창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정규리그 준우승을 일궈냈다, 다만 KCC에 밀려서 챔피언결정전 진출 좌절, 특히 전년도 혁혁한 활약을 했던 박성진, 정영삼 부진이 컸다. 그렇지만 이후 6강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으로 등극했다.
  19. 추일승팀의 플레이오프 최대 성적인 준우승 기록
  20. 전창진2010~2011 시즌 정규리그 우승, 그렇지만 원주 동부 프로미한테 4강 플레이오프에서 패퇴
  21. 1970년에는 무려 윌트 체임벌린-엘진 베일러-제리 웨스트 트리오를 꺾고 우승을 했다! 70년 파이널 7차전에서는 에이스 센터 윌리스 리드가 부상을 입었음에도 절뚝거리며 코트로 걸어나와 첫 4점을 넣으며 전설이 되었다. 유잉 시절엔 우승은 못했지만 불스 왕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중 하나였고 파이널에도 두 차례 올랐다.
  22. 5,60년대에 빌 러셀이 이끌던 셀틱스는 무려 8연속 우승, 56~57시즌부터 68~69시즌까지 13년동안 11번이나 우승했다!
  23. 사실 이 팀은 2010년도 중반 이전까지 암흑기라고 할만한 기간이 사실상 없었는데, 최고 황금기는 역시 80년대로 무려 5번의 우승을 차지하고 무려 8번이나 결승에 올랐다.
  24. 불스의 6회 우승은 역대 3위이다. 1,2위인 셀틱스와 레이커스가 여러 시대에 걸쳐 전성기를 누렸음을 생각하면 이들이 90년대에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5.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미국을 완파하고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농구 랭킹이 축구 랭킹보다 높았다.
  26.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90, 94, 98 아시안 게임 3연패 등을 일구었으나, 1999년에 이봉주, 권은주의 코오롱 탈퇴 및 2001년 정봉수 감독 타계 이후 한국 마라톤은 다시 90년대 이전으로 회귀했다.
  27. LA 아리랑이 그 포문을 열었다.
  28. 1995년 케이블 채널 개국과 후발주자 애니메이션 채널들의 잇따른 개국 이전까지는 주로 이들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어린이 시청시간대에 애니메이션을 많이 방영해 주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상 이 때가 전성기였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주로 생활정보 및 연예프로 등으로 채우는 편.
  29. 벡터맨, 요정 컴미를 시작으로 매직키드 마수리, 마법전사 미르가온 등이 인기를 끌었었다.
  30. 뉴스, 교양, 드라마, 예능까지 거의 전 부문에서 타 방송사를 압도했던 시절. 이젠 무도 하나 남았다.
  31. 이후 타블로 학력논란이 불거진데다 프로그램 컨셉에 지루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아지며 내리막길을 탄다.
  32. 스펀지를 역전한 뒤부터 하하가 군대갈 때까지. 시청률로는 리즈 시절, 재미와 화제성은 2010.3 ~ 2014.4 7인체제가 더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으므로 취존
  33. 허리케인 블루, 귀곡산장 등으로 소속 개그맨들이 대거 SBS로 빠지는 바람에(유머 일번지 참조) 침체에 빠졌던 KBS를 제치고 외환위기 때문에 수많은 가요, 오락프로그램들이 일방적으로 대거 종영될 때까지 코미디 프로그램의 본좌 자리를 먹었던 그 시절.
  34. 허무개그 방송 기간.
  35. 노브레인 서바이버 방송 기간.
  36. 주병진의 배워봅시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이문세-이홍렬-이휘재 트리오를 배출한 최고의 전성기.
  37. 이경규가 간다로 전국에 정지선 지키기 운동을 일으켰다.
  38. 게릴라 콘서트, 건강백서,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브레인 서바이벌, 대단한 도전 등.
  39. 일밤 시절 일요일 예능을 천하삼분하던 시절.
  40. 독립 후 아담커플의 대활약이 있었다.
  41. 이문세 별밤지기 시절.
  42. 김현정의 정오의 희망곡 시절. 싱글벙글쇼를 청취율로 이긴 유일한 정오의 희망곡이다.
  43. 1991년 12월에 SBS가 개국하고 난 뒤 KBS 개그맨들이 SBS로 대거 이탈하면서 몰락한 뒤 1992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4. 스크림, 사바나의 아침 등. 하지만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이 단체로 개그 콘서트에서 하차하면서 침체기가 오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45. 갈갈이 삼형제, 박준형의 생활사투리, 도레미 트리오 등으로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의 이적 파동을 단숨에 극복하고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
  46. 2016년 현재 매주 프로그램 최저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47. 용의 눈물 방송 기간.
  48. 경우에 따라서는 2004년, 즉 무인시대의 종영과 함께 리즈 시절이 막을 내렸다고 보기도 한다.
  49. 마법소녀 리나를 시작으로, 에스카플로네, 슬램덩크 같은 작품성 높은 애니메이션과 카드캡터 체리 같은 로리 미소녀물은 물론이고, 미소녀가 많이 나오는 대운동회기동전함 나데시코까지 더빙해 주었던 시기. 일명 만화왕국 시절.
  50. 컬투의 "그때그때 달라요", 리마리오의 느끼 개그, 신인들의 활약으로 개그 콘서트와 시청률 경쟁을 하던 시절.
  51. 이천희, 박예진 하차.
  52. 초반 침체기를 극복하고 승승장구하여 2012년에는 2부 코너로 바뀌어 1박 2일을 꺾고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고 나서 다시 진짜 사나이에게 1위를 빼앗기기 전까지
  53. 롤러코스터 부속 코너 시절에도 인기를 얻었고, 단독 편성 시즌 1도 후반의 무리수 에피소드가 문제였지만 나름대로 선전했다. 하지만 시즌 2인 푸른거탑 제로는....
  54. 이 때부터도 리즈시절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케이블 방송 개국 초창기라 보급률이 영 시원치 않아서 투니버스를 본 사람이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좁게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를 리즈시절로 보기도 한다.
  55. 오죽했으면 커서 애니 안보던 사람들도 미친듯이 그리워한다. 아무래도 이 시절에 보여준 디지몬이나 특촬물 등에서 어린 감성에 여러 감동을 준 영향이 큰 듯하다.
  56. 비록 2006년까지보단 조금 못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2007년에는 츠바사 크로니클, 블리치오란고교 사교클럽이; 2008년에는 은혼캐릭캐릭 체인지가; 2009년에는 메탈 베이블레이드가; 그리고 2010년에는 동쪽의 에덴이 방영되었다.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의 경우 비록 로컬라이징 및 편집 문제로 호불호가 갈리진 했어도 확실히 흥행은 했으며,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전부 포함된다.
  57. CJ E&M 인수 이후로도 2010년 한 해 동안은 아직까지 애니메이션 전문채널로 남아있었다는 점에서 2011년 이후보단 훨씬 나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자막방송 신작의 비중도 늘었고 그마저도 늦은 심야 ~ 꼭두새벽 시간대에 편성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지만 앞서 언급된 동쪽의 에덴은 물론, 심슨 외의 또 다른 성인향 미국 애니메이션인 패밀리 가이를 편성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였고, 2008년 방영 예정이었지만 계속 미뤄졌던 사상최강의 제자 켄이치(자막판)도 어떻게든 처음부터 끝까지 방영을 했고 (게다가 자막작치고는 드물게도 VOD 서비스까지 했다), 피아노의 숲(자막판)이나 썸머 워즈를 비롯한 극장판 신작도 대거 편성하였다.
  58.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간츠, 데스노트, 헬싱 OVA (재더빙판), 러키스타 등에서 시작되어 강철의 연금술사 BROTHERHOOD, 기동전사 건담 00 (자막판), 절대가련 칠드런, 소울 이터 등에서 끝난 전성기. 하지만 2011년에 방영된 원피스 Original을 기점으로 찬사는 별로 많이 못 받고 욕만 줄기차게 얻어먹으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59. 2014년 가면라이더 포제,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스마일 프리큐어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시작한 시기. 그리고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인해 대원방송의 수익이 좋아지면서 2015년 내 이야기!!여고생 수다클럽 같은 고연령층 애니메이션의 더빙을 재개하기에 이른다. 특히 2014년을 전후로 애니맥스가 더빙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사실상 거의 유일한 고연령층 애니메이션 더빙 방송국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비단 12세/15세 작품들뿐만 아니라 극장판 베르세르크: 황금시대 편 3부작이나 오소마츠 6쌍둥이를 비롯한 19세 작품들까지도 더빙을 계속하고 있다.
  60. 제로의 사역마, 작안의 샤나, BLOOD+, 교향시편 유레카 7, 천원돌파 그렌라간, 흑의 계약자 1기 방영 시절.
  61. 신작 동결을 풀고 케이온토라도라,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로 주가를 올리던 시기. 하지만 반짝 열풍에 그쳤고, 급기야 2014년에는 애니플러스처럼 신작을 자막으로만 방송하게 되면서 서서히 망해가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기존 더빙작의 후속작마저도 얄짤없이 자막으로 방송한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성덕후들과 더빙빠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블리치작안의 샤나 등의 중복 캐스팅, 발번역 등으로 말아먹은 저퀄리티 더빙작은 그렇다 쳐도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헌터X헌터,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등의 개념 더빙작마저도 속편을 자막으로 돌리니...
  62. 최대 30작이나 되는 애니메이션 신작을 동시방영하기 시작한 때. 다만 해당 분기에 만들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적으면 덜 들여올 때도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2분기에는 약 25편의 애니메이션만 들어와 방영했다. 또한 최신작 위주의 100% 자막방송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대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투니버스가 어린이 채널이 되고, 애니맥스는 기존 더빙작의 속편을 자막으로 방송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고, 대원방송전속 시리즈 계열 더빙작을 많이 내놓으면서 욕을 바가지로 먹는 등 타 방송국이 안 좋은 모습만 계속 보여준 것도 한 몫 했다. 하지만 한국 성우팬들과 더빙 선호자들 입장에서는 리즈 시절이 아니라 흑역사
  63. 다만 2015년부터는 애니맥스에서도 다수의 신작을 본격적으로 동시방영하기 시작했으며, 대원방송넷플릭스에서도 소수의 신작을 동시방영하기 시작하면서 애니플러스에서 가져간 신작의 수가 리즈 시절에 비해 줄어들었다.
  64. 하지만 이 작품 2기 후반부에서 유인나를 주조연에 캐스팅하는 병크를 저질러 끝나버렸다. 아이엠스타 시청 포기가 늘어도 이상하지 않다.
  65. 관점에 따라서는 헌터X헌터 애니와 스쿨럼블 1기를 심상백 PD의 리즈 시절이라는 시각으로 평가되나 데스노트 시절이 진정한 리즈 시절이라는 평가가 많다.
  66. 파워레인저 엔진포스러키스타, 절대가련 칠드런, 투 러브 트러블(...) 등등 다작을 연출하던 시절.
  67. 가면라이더 W파워레인저 캡틴 포스를 연출하던 시절. 더블은 무난한 더빙 퀄리티와 가면라이더 시리즈 사상 최초의 한글식 현지화, 최고의 전성 시대를 열었던 캡틴 포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68. 벨제바브내 마음의 비밀을 연출하면서 호평을 받았지만 한꺼번에 4개의 작품을 맡으느라 연출력이 다소 떨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한 피디가 짧은 기간에 다작을 연출하게 되면 컨디션 저하는 물론 피로도가 생기면서 작품 퀄리티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기 때문에 팬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69. 가면라이더 포제, 스마일 프리큐어!, 텐카이나이트등등 다작을 연출하던 시절.
  70. Yes! 프리큐어 5 시리즈와 미나미가 1~2기, 강철의 연금술사 브라더후드 더빙 시절.
  71. 초창기의 엄청난 안습 시기를 딛고 더블이전의 카부토에서부터 디케이드까지의 헤이세이 가면라이더 시리즈금색의 갓슈벨 3기, 미치코와 핫친 등등 다작을 연출하던 시절. 다만 중간에 이누야사 완결편 같은 실패작이나 가면라이더 키바디지몬 세이버즈에서의 연출력에 대한 미숙함, 디지몬 세이버즈의 2기 오프닝과 가면라이더 키바의 삽입곡을 번안하지 않았으며 일부 개념 더빙작에서도 무성의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이후 하트 캐치세일러문 재더빙, 가면라이더 오즈를 연출하면서까지 완전히 망했다.
  72. 간츠멋지다 마사루. 그 당시에는 대원 전속 성우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73. 페어리 테일 1기 연출 시절.
  74. 스위트 프리큐어♪, 베르세르크 극장판, 트랜스포머 프라임 3기 등등 다작을 연출하던 시절. 간츠멋지다 마사루, 페어리 테일 1기 이후 오랬동안 침체기에 있었다가 스위트 프리큐어와 베르세르크 극장판 3부작 정도가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이 베르세르크 극장판으로 2008년 시절의 연출력을 되찾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여전한 중복 캐스팅페어리 테일5, 6기에서 모 성우를 캐스팅한 논란이 있어서 애매한 시각도 있었던 편. 이 기간 동안 그 이전에 자신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안습한 결과를 냈던 시절과는 다르게 다수의 평타작을 배출하면서 어느 정도 조짐이 보이기도 했다.
  75.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해피해피 다마고치!를 연출하던 시절, 이 두 작품으로 "드래곤볼 Z 카이를 연출하던 그 피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미지가 점점 나아지고 있으며, 황태훈 PD와 함께 대원방송의 재평가와 이미지 회복에 큰 기여를 하였다.
  76. 레옹, 그랑블루 등 영화를 통해서 국내에서도 높은 인지도로 전성기를 맞았다.
  77. 국내 유일의 70mm 대형 스크린을 자랑하였던 곳이었지만 2000년에 들어서 잠시 폐관되었다가 복합형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하였다.
  78. 토탈 이클립스,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이어지는 95~97년은 정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2005년 이후에도 블러드 다이아몬드,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인셉션에 이르기까지 나름 흥행과 비평을 중시한 출연을 시도하고 있다. 너무 아카데미를 노렸다는 지적도 있지만.
  79. 원래는 무명신세를 면하지 못하였다가 1982년의 코난 더 바바리안과 1984년 터미네이터를 통해서 인기배우가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기 전까지는 수 많은 히트작에 출연하게 되었다. 주지사 은퇴 후 다시 영화계에 복귀하였는데 이혼 스캔들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옛 전성기는 되찾기는 틀린거고 사람들은 예측하고 있다.
  80. 70,80년대 청춘들의 우상으로 불리우며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그 당시 많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81. 90년대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을 통해서 이 당시 최고 흥행성적을 거두었던 시절이었다.
  82. 다만 지옥의 묵시록은 코폴라에게 꽤나 큰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었으며 이후 1982년작인 마음의 저편(One from the Heart)이 흥행에 대참패(제작비 2600만 불로 흥행 성적 63만 불)하면서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게 되었다.
  83. 이 역시 한국 기준이다.
  84. 삼국지 4는 평이 영 좋지 않아서 예시에서 제외했다. 또한 삼국지 6도 캐릭터의 고유 성격을 부여하여 장수제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하필 한국에서는 이 게임이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묻혔다. 그리고 7부터 추락을 거듭한다.
  85. 앞에 나왔던 삼국지 3,5,6보다 인기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장수제를 채택한 삼국지 시리즈 중에서는 뭔가 나사가 빠진 전투만 빼면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다.
  86. 특히 1990년대에는 메가드라이브, 세가 새턴 등으로 닌텐도와 게임기 시장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87. 이 패치로 그간 인기가 좋았던 카트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다시 롤백해서 어느정도 회복하고 있었으나 2014년 5월 이후 완전히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다.
  88. 록맨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가 이 시기에 나온 작품. 하지만 록맨 시리즈록맨 X7 이후로 삐그덕거리기 시작하여 이나후네 케이지의 캡콤 퇴사와 후속작의 연이은 개발중지로 시리즈가 끝날 위기에 놓였고, 데빌 메이 크라이로 한때 중흥기를 이끌기도 했지만, 2010년대 이후 연이은 경영진의 무능력한 정책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암흑기를 걷게 된다.
  89. 포트리스3는 개발자들과의 트러블로 인해 주요 개발진들이 떠나는 불상사와 각종핵과 불법패치, 버그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방치되다가 많은 유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서비스 종료를 강행했고, 포트리스2는 현재까지도 운영이 되고 있기는 하나 정상적인 관리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
  90.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건 2013년 하반기, 그 인기를 꾸준히 유지했던건 2015년 상반기까지로 볼 수 있다.
  91. 특히 2013년 12월 ~ 2014년은 여러 쟁쟁한 중견급 성우들이나 인기 성우들이 가장 많이 기용된 시기였던지라 성덕후 제독들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리즈 시절이었다.
  92. 특히 진주시 도입이 시급했던 2012년 경상대 1327과 프리존에 각각 1대씩 들어올 정도니 말 다했다. 그 후로도 한 동안 라임라이트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괜찮았던 편. 그러나 그루빈 어퍼에서...
  93. PS1은 무려 1억 249만대를 판매하면서 닌텐도 DS게임보이게임보이 컬러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 4위를 차지하고 있다.
  94. PS2는 무려 1억 5천 5백만대를 판매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 1위를 현재까지 차지 하고 있다.
  95.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가 압도적으로 가정용 시장을 정복하는걸 넘어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시기. 이 당시 이 두 기종은 각각 모두 월드와이드 1억대 이상을 팔았을 정도였다.
  96. 하지만 2006년에 출시된 PS3는 현재 총 판매량이 8천 3백 8십만대를 기록하고 있고, 2004년에 출시된 휴대용 게임기인 PSP는 8천 2백만대, 2012년에 출시된 PSP의 후속기기인 PS VITA는 현재 1천 3백만대로 다른 시리즈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부진한 판매량이다. 그리고 현재 생산중인 PS4의 총 판매량은 4천 3백 5십만대이다. 결론적으로 PS2 이후에 나왔던 PSP부터의 게임기들은 두 게임기의 총 판매량과는 좀 차이가 난다.
  97. 총 판매량이 8천 4백만대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 6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엑스박스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갔던 시기. 비록 일본에서는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구 엑스박스와 이후 나온 엑스박스 원괴의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정말 잘 나갔던 시기. 본격적으로 서양의 게임들이 발전을 했던 시기와 맞물려 구 엑스박스 시절부터 대표했던 퍼스트 파티 프랜차이즈인 헤일로 시리즈, 페이블 시리즈, 포르자 모터스포츠 등이 더욱 발전하였고,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도 건재하였다. 그리고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 등의 새로운 킬러 프랜차이즈까지 등장하였다. 게다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철권 시리즈, 위닝일레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 아머드 코어 시리즈 등의 일본 서드파티 프랜차이즈 대작들도 엑스박스 360의 참가를 선언했던 시기였다. 물론 이 당시 총 판매량과 라이트 유저층을 보유한 Wii에 밀려 2인자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그래도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 진영을 처음으로 이겼던 시기였다. 하지만 2009년 초부터 불거진 레드링 문제플레이스테이션 3로 나온 언차티드 2로 인해 이후 전세계적으로 PS3에게 밀리게 되었다. 이후 엑스박스 원이 PS4에 밀리면서 이 엑스박스 360 초기 시절은 그야말로 엑스박스 역사상 최고의 리즈시절로 남게 되었다.
  98. 기네스북가장 빨리, 많이 팔린 가정기기 1위에 올랐을 정도로 다시 엑스박스 360의 판매량을 견인해주었다.
  99. 20권 쯤부터 초판발행부수가 눈에띄게 줄어든다.
  100. 후에 이 에피소드를 만화화한 부분에서 각 나라의 이중극점을 검증해 보기까지 나왔다.
  101. 이 때만 해도 이 만화가 그렇게 망가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2. 화당 시청률 19%가 넘었었다. 하지만 4기는...
  103. 다마고치펜들럼 시리즈의 열풍 후, 디지몬 어드벤처파워 디지몬 방영 시기를 일컫는다.
  104. 3기 StS의 긴장감 없고 부실한 전개 때문에 이후 나노하 시리즈의 인기는 점차 하락세를 탔다.
  105. 통칭으로는 괴수붐 혹은 변신붐이라고도 불리며 73년의 오일쇼크와 로봇애니붐이 일어나기 전까지만해도 기라성같은 특촬물들이 그 당시 대중문화를 지배했다.
  106. 그외에도 당시 심의규정이 지금처럼 엄격하지않았기 때문에 하고싶은 표현들이란 표현들은 모두 할수있었기 때문에 70년대를 리즈시절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107. 초대 울트라맨과 울트라세븐 시절.
  108. 티가부터 가이아의 시절로 통칭 평성 3부작이라 불리우며 만약 이 세작품이 없었다면 울트라 시리즈는 영원히 부활하지 않았을 것이다.
  109. 도에이의 마법소녀 시리즈.
  110.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시리즈로 전투형 마법소녀물이 흥했던 시기.
  111. 흔히 말하는 무인편 방영 시기를 일컫는다. 다만 중간에 악재가 끼어있긴 하지만.
  112. 포켓몬스터 DP가 방영되던 시기이다. 하지만 이후엔... 그나마 후후속작에서 분전했다지만 후반부의 상태가 흑역사의 취급을 받을 정도며, 그의 다음 시리즈는 방영 전부터 논란이 많다. 박수칠 때 떠났어야 했다.
  113. 로보트 태권V, 마루치 아라치.
  114. 떠돌이 까치로부터 시작된 TV 만화영화 제작 붐.
  115. 이 시기에는 외화나 애니매이션은 물론이고(단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이라 한국으로 수입된 모든 일본 애니메이션현지화를 거쳐 방영되었다는 점은 감안하자.) 1990년대 중반부터 태동되었던 패키지 게임마저 한국 성우를 기용하여 한글화하는 게 관례일 정도로 한국 성우팬들에게는 두 번 다시 돌아오기 힘든 한국 성우들의 최전성기였다. 심지어 이 당시의 KBS 성우극회는 성우를 뽑을 때 한 기수당 무려 20여명 넘게 뽑았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116. 특히 엄상현은 대한민국 애니메이션에선 최종보스급으로 푸쉬를 받아 이 성우 한사람 만으로 대한민국 방영 일본 애니메이션 더빙에서의 성우 푸쉬가 다 설명될 정도. 안그래도 위에 언급한 두 방송국들 다 자사도 아닌 타 방송국들이다. 2012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애니 방송국들의 신작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분을 뛰어넘을 용자스러운 성우는 절대로 안 나올 듯 하다.
  117. 경제성장률도 절정을 찍었고, 빈부격차도 그리 크지 않았으며 많은 서민들이 행복했던 대한민국 최고의 리즈시절.
  118. 2000년대에 들어 선진국에 들어서고 지역강국 모임인 G20에도 포함되며 GFP순위에서 10위권 내외로 들어가 전통적 강대국들의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고, 2015년에는 러시아, 호주, 스페인를 제치고 GDP 11위와 GFP 순위 7위를 달성하는 등 대외적으로는 리즈시절.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서민들에게는 리즈시절이라고 불리기 힘든 시기가 되었다.
  119. 대중적으로는 조선 후기의 리즈 시절로 치긴 하지만 사실 영조, 정조 치세는 조선의 리즈 시절이라기보단 '중흥기'에 가깝다. 임란의 피해가 완전히 복구된 것도 이 때 즈음이기도 하고. 애당초 영조나 정조는 물론 말기의 흥선대원군까지도 이상으로 삼았던 시기가 바로 15세기의 조선.
  120. 특히 극우를 포함한 일본 우익들과 넷우익들에게는 매우 좋은 시절이었으며, 이 시절은 아시아 국가, 특히 한반도의 국가들에게는 가장 치욕적인 시기로 대한민국에게 만악의 근원이 시작된 시대(식민지배, 분단, 전쟁, 독재등)로 인식되는 시기이다. 웃기게도 아시아 국가 외에도 일본 서민 대다수에게도 징병, 징발, 폭격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우 지옥같은 시절이다.
  121.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일본의 진정한 리즈시절로 바로 앞의 시대와는 달리 일본 서민들에게도 리즈 시절이라 1960~1980년대에 군사독재에 시달렸던 한국과 문화대혁명천안문 사태를 거쳐 인터넷 시대의 황금방패 등 현재까지도 공산당 독재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과는 달리 북유럽급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맛봤다고 자뻑하는 경우도 꽤 많다. 2차대전 이후 독보적인 원탑이었던 미국의 코 앞까지 추격했을 정도였으니 사실상 일본 최고의 시절
  122. 전쟁 이후 국력이 급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1920년대에 절정을 찍었다. 일명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현재도 이 떄의 돈지랄과 호황은 그 누구도 못 따라간다.
  123.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들였는지 그 조그만 나라의 무역 수입이 프랑스 전체 세입을 뛰어넘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1503년 후에도 1669년 크레타의 상실 전까지는 유럽에서 알아주는 경제 대국이었다.
  124. 정확히 말하면 빈 공방전 직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후부터 빈 공방전 직전까지는 유럽에서 '악마의 수호를 받는 무적의 군대'라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에 못 따라가 점점 쇠퇴하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유럽 열강들의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명맥만은 잇고 있다가 1922년에 멸망했다.
  125. 세계에서 수위권을 다투던 부국이였으나 군사독재 및 농업 위주의 산업을 뜯어고치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악재로 후진국화 됨.
  126. 아는 사람을 알겟지만 세계최초이 문명권이라는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엘람이라는 이름으로 일찍이 문명을 꽃피웟으며 이후 이슬람 제국이나 튀르크인들의 도래 이후에도 실질적인 관료들은 모두 페르시아 인들이었다.
  127. 극장판을 찍기 위하여 롤프는 2011년 모든 AVGN 활동을 중단하였다. 2012년 7월 아놀드 슈워제네거 게임들의 리뷰로 복귀하였는데, 그때 부터 거의 2달 간격으로 에피소드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도 그러는 중이다. 현재 서양 인터넷에 활동이 많은 수많은 인터넷 리뷰어들이 등장하게 되고 경쟁자(?)들이 많아져서 과거 옛 시절을 되찾기는 힘들 것 같은 모양이다.
  128. 설립 102년 동안 다른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모두 십억 달러 돌파 영화들을 만들어서 10억불 클럽에 가입했지만 혼자 재개봉 힘없이 10억불을 넘긴 작품이 없어 유일하게 10억불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으나 유니버설 픽처스 설립 103주년인 2015년에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시작으로 첫 10억불 돌파 영화가 등장하고, 뒤이어 쥬라기 월드, 미니언즈도 잇달아 3연타로 10억불을 넘겨 유니버설 픽처스는 수익이 수직상승 중이다.
  129. 박정희대통령이 된 순간
  130. 노태우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순간
  131. 외환위기 터진 순간
  132. CANVAS2 이후 막장 드라마 붉은 Canvas 시리즈 나데시코 ~선홍색의 나선~이라는 작품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덕분에 이후의 작품들은 찬밥 신세를 당하고 있다.
  133. 2012년부터 김연정과 함께 사직여신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다가 2013년 비키니 사건으로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3년 말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하여 치어리더의 고충을 자세히 보여주면서 이미지가 다시 회복되었고, 이후 2014년 해피투게더 3에 출연하여 소주광고를 찍고 연봉이 몇 천만원을 돌파하는 등 대성공을 거두고 2015년 중반까지 국민 치어리더라 불리며 전성기를 맞았으나 2015년 10월 발생한 장성우 사생활 폭로 사건 이후 방송 출연이 어려워지고 광고 업체 계약도 취소되면서 현재는 하락세를 타는 중이다. 특히 2016년 가수 데뷔를 한다고 하여 대중들에게 인식도 안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