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말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 Sovrano Militare Ordine Ospedaliero di San Giovanni di Gerusalemme di Rodi e di Malta | |
국기 | 휘장 |
위치 | 이탈리아 로마 내 위치 |
수도 | 말타 궁전 |
정치체제 | 기사단 |
지도자 | 매튜 페스팅 (Matthew Festing) 기사단장 및 수도사 |
언어 | 이탈리아어 라틴어 |
홈페이지 | 구호기사단 홈페이지 |
Knights Hospitaller. [1]
목차
1 개요
정식 명칭은 '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말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이탈리아어: Sovrano Militare Ordine Ospedaliero di San Giovanni di Gerusalemme di Rodi e di Malta, 영어: Sovereign Military Hospitaller Order of Saint John of Jerusalem of Rhodes and of Malta)'이다. 성 요한 기사단, 로도스 기사단, 몰타 기사단, [2] 병원기사단 등 여러 명칭이 있다. 현재까지도 존속 중이며,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군사단체가 아닌 구호와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사실상의 NGO로 탈바꿈하였다. 그들이 기사가 되기 이전의 업무인 의료봉사 단체로 복귀한 것이다. 단 각종 직책명은 과거 기사단 시절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중.
현재는 영토가 없어서 국제법상 주권 국가로 취급받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세속의 영토가 있었던 과거엔 엄연히 국제법상 주권 실체(sovereign entity)로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영토가 없는 현재도 구호기사단을 주권 실체로 인정해줘서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정식 명칭에 괜히 '주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 아니다. [3]
현재 본부는 이탈리아 안에 두 군데 있는데, 이탈리아는 구호기사단을 주권 실체로 인정하는 나라라서 구호기사단의 본부를 마치 외국의 대사관과 같은 치외 법권으로 인정해주는 듯하다. 자세한 내용을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한때 몰타를 지배했던 세력이라 몰타 정부가 영토의 일부를 떼어 주려고도 했었다고 한다. 만약 성사됐으면 교황청+바티칸 모델 비슷하게 돼서 다수의 국가들이 구호기사단을 국가로 인정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사는 되지 않았다.
2 연혁
2.1 창설
600년 예루살렘에 설립된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 시초로서 본래 구호활동을 담당하던 곳이다. 1차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들로 포위된 예루살렘 안에서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 의료봉사를 계속 했다. 이들의 이러한 기원은 그들이 유연하게 살아남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성전기사단은 보호할 성전과 전투가 없으면 존재 가치를 잃고, 실제로 사라져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병원 기사단은 전투가 없어지면 그들의 기원인 의료봉사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이후 1113년 십자군 전쟁과 함께 교황명으로 기사단으로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 방어와 같은 소극적 전투활동에 국한되던 활동영역이 이후 순례자들의 경호 등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계속적인 조직확대를 통해 거대한 군사조직이 되었다. 검은색 겉옷에 그려진 흰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으며, 십자군 전쟁 기간 동안 전쟁의 주력으로서 이슬람 군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십자군 전쟁 당시 난공불락의 요새로 꼽힌 크라크 데 슈발리에를 사수한 전력이 유명하다. 당시 이슬람 세력을 이끈 누르 앗 딘과 살라딘도 이 성을 공략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물러난 적이 있다. 당시 한 무슬림 작가는 이 성을 두고 '무슬림의 목에 걸린 가시'로 평할 정도.
1271년에야 이 성이 함락당하는데 이때 상황이 참 드라마틱하다. 당시 크라크 데 슈발리에를 지키던 구호기사단의 병력은 수백명 정도였으나, 그 몇십 배에 달하는 맘루크 왕조의 군대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그러자 맘루크 군을 이끌던 바이바르스 1세는 교묘한 방법을 이용했다. 트리폴리 백작 보에몽의 편지를 위조해서 '더 이상 승산이 없다. 항복하라.'라는 편지를 비둘기로 성 안에 보낸 것. 여기에 속은 기사단은 성을 내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이바르스는 항복한 기사단원들을 살려줬다고 한다.
2.2 이슬람 세력과의 대결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되면서 예루살렘 왕국이 성지의 영토를 모두 상실하고 키프로스로 밀려났으며, 이때 구호기사단도 성지의 거점을 모두 상실하자 당시까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로도스섬을 침공해 거점으로 삼았다. 이후 근처 수 개소의 섬 및 소아시아 본토의 일부 거점을 확보하고 계속해서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을 계속했다. 십자군 전쟁이 종료된 후 교황청 및 프랑스 왕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해체당한 성전기사단과 달리 구호기사단은 최전선에서 이슬람에 맞서는 성채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탓에, 성전기사단의 재산 상당량이 구호기사단에 흡수되어 유럽 각지에 지부를 두고 그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러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세력을 떨치자 이에 반발하여 1세기 가량 오스만 제국 선박에 대한 무차별 해적질을 벌였다. 분노한 오스만 제국은 섬을 장악하기로 결정한다. 셀림 1세에 이어 1522년 술레이만 1세의 공격을 받아 결국 기사단은 로도스섬을 잃고 시칠리아로 패주했다. [4]
이후 잠시 방랑생활을 하던 기사단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의 배려로 1530년 몰타 섬을 할양받아 이곳을 거점으로 다시 한번 오스만 제국과 전쟁에 들어갔다. 원래 기사단은 당시 기독교도의 영역이었던 트리폴리 지역의 할양을 요구하였으나 신성 로마 제국에서 번번히 거부하였는데, 기사단이 생각했던 최적의 활동지 트리폴리는 1551년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당했다. 기사단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5]
1565년에는 4만의 오스만군에 맞서 병력 약 9천으로 결사항전을 벌여 승리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1571년 레판토 해전을 계기로 오스만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구호기사단의 해적 행위도 더욱 극성을 부렸고, 몰타섬은 기독교도 노예를 해방하고, 반대로 아랍과 아프리카 노예를 유럽에 공급하는 시장으로서 번성하였다.
2.3 멸망
18세기 후반 들어 종교 개혁으로 대륙 지부들은 모두 해체되었으나 일종의 독립국가로 변질된 몰타 지부는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그러나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의 일환으로 몰타섬을 침공해 점령했고, 기독교도와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구호기사단은 항복하면서 기사단 국가는 멸망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나폴레옹이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가는길이라서 잠깐 쉬었다 가겠다고 속여서 아무 저항 없이 프랑스 군대가 상륙하게 놔둔후 뒷치기를 당해서 정복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기사단의 중심인 프랑스 출신 기사들이 나폴레옹을 환영하면서 받아들였고, 그랜드매스터는 이를 저지할수가 없어서 였다고도 한다.
2.4 재건과 현대의 기사단
베네딕토 16세의 방문. | 현대의 기사단 |
당시 기사단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폰 홈페슈는 그를 따르고자 한 단원과 함께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로 떠났다. 하지만, 1801년에 페르디난트는 살해되어 버리고 만다. 이에 비오 7세 교황이 스스로 기사단의 보호자로 자청하고, 바르톨로메오 프란체스코 마리아 루스폴리를 새로운 단장으로 임명해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 기사단의 임시 지부를 마련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카타니아 외에도 메시나, 페라라에도 임시 지부를 마련한 기사단은 마침내 1834년 로마에 정식 기사단 지부를 만드는 것을 허가받는다. 이 시기부터 구호기사단은 군사적인 면은 완전히 탈피하여 본분인 구호활동에 노력하는 일종의 NGO로 거듭나게 되었다. 로마에 콘도티 거리에 있는 구호소에서는 우표를 판매한다. [6]
한편 영국 지부는 1888년 빅토리아 여왕의 공인을 받아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으로 재건되어 영연방과 미국에서 활동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중에 영국 적십자사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7] 1963년 몰타 기사단의 인정을 받고 정식으로 구호기사단에 편입되었다. 한때 개신교에 장악되었던 독일 지부도 역시 동일한 명칭으로 재건, 스웨덴, 네덜란드, 헝가리로 조직을 확장했으며, 영국 지부와 연대해 활동하고 있다.
▲ 구호기사단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붉은색), 그 외의 공식 관계를 가진 나라(주황색).
외교 사절, 자국 등록 선박, 자체 자동차 번호판 등을 갖고 있고, 우편 협정을 유지하고 있는 몇몇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우표도 발행하며 UN의 영구 가입자격[8]도 갖추고 있으며, 별도의 여권이 발행되며[9], 이탈리아나 몰타 공화국 등 UN 회원국의 과반수인 104개국이 몰타 기사단을 완전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불인정) [10] 기독교권 국가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요르단이나 이집트 같은 이슬람권, 태국, 캄보디아 같은 불교권 국가들도 몰타 기사단을 나라로 취급한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몰타 기사단장 관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로 불리기도 한다.
구호기사단 홈페이지에는 "더 이상 검으로 싸우는 전쟁은 없으나, 평화로운 도구들을 사용해 질병, 가난, 사회적 단절과 편견과 싸워나가는 것은 믿음을 지키고 전파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라는 문구가 있다. 과거에는 귀족이 아니면 가입 자격을 주지 않았으나 이제는 귀족이 아니라도 가입할 수 있다고 한다.
2008년 79대 기사단장이 취임했다.
우리나라에도 회원 중 한명이 지부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제 군사적 성격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기사단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했기 때문인지 구호기사단의 이름을 따온 많은 사이비 기사단들이 존재한다. 이를 정리한 책도 있으며 배포는 진짜 구호기사단이 맡는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정리한 사이비 기사단 수는 무려 16개. 움베르토 에코는 이런 사이비 기사단 중 하나의 초청장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이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기도 하였다.
3 직책/계급 체계
상술된 대로, 구호기사단의 직책과 계급 체계는 중세 시대부터 쭉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상태다. 또한 근본적으로 다른 기사단들과 달리 다국적 기사들이 모여 있기에 기사단의 체계 자체가 출신 국가별로 나타내고 있다. 단 현재 기재되는 직책과 계급 체계는 중세 시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 기사단장: 구호기사단의 총지휘관
- 대원수: 기사단의 2인자이자 프로방스(옛 프랑스의 남동부 지역) 출신의 기사들을 통솔했다.
- 원수: 기사단장의 부관직을 겸임, 프랑스 출신의 기사들을 통솔했다.
- 부원수: 이탈리아 출신의 기사들을 지휘했다.
- 제독: 스페인 출신의 기사들과 구호기사단에 소속된 모든 해군들을 지휘했다.
- 갤리선 제독: 제독 아래에 있는 해군의 2인자
- 재무감: 영국 출신의 기사들을 통솔했으며 기사단의 재정을 담당했다.
- 대집행관: 독일 출신의 기사들을 통솔했다.
- 대법관: 카스티야 출신의 기사들을 통솔했으며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 기사단 주교: 출신별, 국가별로 한 명씩 있었다.
- 기사단 수도원장: 기사단 주교 밑에서 아래 계급의 기사들을 지휘했다.
- 기사대장: 백인대를 지휘한 기사
- 수도기사: 귀족출신의 기사
- 평민기사: 비귀족출신의 기사
4 몰타 십자가 (Maltese Cross)
8개의 꼭짓점을 가진 이 십자가 도안은 몰타 기사단의 상징이면서 몰타의 상징이기도 하다.
4면은 용기, 정의, 절제, 인내를 의미하고 8개의 꼭지점은 아라곤, 카스티야, 오베르뉴, 바바리아, 포르투갈, 영국, 이탈리아, 프로방스 등 기사단을 구성하는 8개 출신 지역을 의미한다. [11] 기사단의 의무 역시 8줄로 되어 있어서 각 꼭짓점마다 이 의무를 대입하는 해석도 있다.
진실하게 살고(Live in truth) 신앙심을 갖고(Have faith) 죄를 뉘우치고(Repent of sins) 사람들을 겸손하게 대하고(Give proof of humility) 정의를 사랑하고(Love justice) 자비를 베풀고(Be merciful)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하며(Be sincere) 박해를 인내한다(Endure persecution) |
현재의 독립국 몰타는 국기가 따로 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몰타 십자가를 쓰지 않지만, 여전히 기사단 관련 유적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관광 상품에도 다양하게 변형해서 집어넣어 팔고 있다. 참고로 이 십자가 도안은 독일 제국의 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erite) 훈장에도 채용되었다.
5 대중 매체
사실 예루살렘 왕국 시절에는 그 성전기사단과 라이벌 격이었으며, 오히려 성전기사단보다 더 강력하게 오스만 제국과 장기간 대결하며 기사단 국가를 유지했고, 심지어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기사다운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안 망하고 남아 있다 보니 신비스러움과 음모스러움이 부족해서 그런지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빈도는 성전기사단에 비해서 많이 밀린다(...). 아무래도 현존하는 준 국가/NGO 단체이다 보니 성전기사단처럼 막 다루기 껄끄러운 면도 있다. 교황청도 막 다루는데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긴 하다만 음모론 분야에서도 성전기사단은 이야기가 많지만 구호기사단은 거의 이야기가 없다.
- 미니어처 게임 Warhammer 40,000의 스페이스 마린 챕터인 블랙 템플러도 몰타 십자가와 검정색 메인 컬러 등 모티브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은 다른 십자군 기사단들에서 온 모티브도 많이 섞여있다. 덤으로 현대의 구호기사단과는 달리, 자비 없는 무시무시한 자들이다. 심지어 옛날엔 오랜 전우라도 사이커(Warhammer 40,000)의 자질이 생기면 자결을 종용하거나 거부하면 처형해버리곤 했다. 요즘엔 설정변경으로 이런 막장짓은 폐지.
- 닥터후 중 11대 닥터의 타디스 문에 이 기사단 문장이 붙어있다. 그래서 시즌 7의 에피소드 6에서는 중세의 수도사들이 타디스 전화벨 소리를 '성 요한의 종소리'라고 말하는 언어유희적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캠페인에선 두 번 나오는데, 살라딘 미션에선 적으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미션에선 동맹군으로 나온다. 둘 다 십자군 전쟁기를 배경으로 한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에서는 첫 번째 주인공이자 블랙가문의 시조인 모건 블랙이 성 요한 기사단소속인데, 위에서도 나오듯이 성 요한 기사단은 구호기사단의 옛이름들중 하나다. 첫 시작이 몰타 공방전인데, 거기까지는 역사적 사실에 그런대로 충실하지만
실제 기사단장 대신 엉뚱한 놈이 기사단장이랍시고 나오고, 모건 블랙이나 사힌 등도 몽땅 가공인물이라는 점만 눈감아준다면그 다음 아메리카로 넘어가면서부터는 판타지의 극을 달리게 된다.
- 하드 보일드 소설의 시초인 몰타의 매에서의 매 조각상은 여기서 만든 것이다.
- 헬싱의 제9차 공중기동 십자군(...)의 구성원으로 등장한다.[12] 전체 3172명 중 몰타 기사단이 2457명이었는데 최후의 대대#s-3와 아카드에게 전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 ↑ 함께 십자군 국가들을 방위하던 성전기사단원은 'Templar'라고 불리었지만 구호기사단원은 'Hospitaller'라고 불리었다.
- ↑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양쪽에서는 흔히 몰타 기사단으로 알려져 있다.
- ↑ 비슷한 케이스로 교황청이 있다.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교황령을 상실한 뒤 한 동안 영토가 없어서 서러운(...) 세월을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 일부 국가들은 교황청이 영토가 없어도 주권 실체로 대우해 줬다. 현재는 바티칸 시국이 만들어지게 교황청이 영토까지 있는 국가나 마찬가지가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교황청(바티칸 시국 자격이 아니다)과 직접 수교를 해주고 있다. 자세한 점은 바티칸 문서 참고.
- ↑ 술레이만 1세의 로도스 공성전은 병력 22만, 함선 400여척을 동원한 대 공세였다. 수비하던 기사단 병력은 8천여 명 수준이었으나, 수개월간 잘 막아내서 결국 술레이만 1세의 '모든 무기와 군기를 가진 채로 섬을 빠져나가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항복, 명예로운 퇴거를 할 수 있었다.
- ↑ 일부러 트리폴리에 안 들어갔다는 견해도 있다. 기사단은 당시 유럽 귀족의 자제만 입단을 허용하는 까다로운 규칙 때문에 전투원이 아무리 많아도 1000명을 넘을 수 없을 정도로 인원이 모자랐다. 이런 상황에서는 육상전에 강한 튀르크군이 공격하면 순식간에 밀려버리는 트리폴리보다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고 절벽으로 둘러싸여 상륙 지점도 마땅치 않은 몰타가 방어에 더 유리하다고 봤다는 견해다.
- ↑ 가치있는 것들은 5유로 이상이며, 이탈리아어를 하는 것이 좋다.
- ↑ 영국에서 오는 구호품들은 영국 적십자사와 성 요한 기사단 명의로 오곤 했다. 참고로 나치 독일에도 엄연히 적십자사가 있었으며 나치 정부의 선전 도구로 쓰이기도 했지만(적십자 문양에 하켄크로이츠를 쑤셔박았다.) 연합군 사상자를 수습해주는 등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 이들마저 없었으면 2차 세계대전 전몰 장병의 시신 수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 다만 UN총회의 옵서버로서의 자격이며, 그마저도 바티칸 시국과 같은 비가맹국 대우도 아니라는 점에 주의.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지위는 국제적십자사나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같은 옵저버 '단체'이다.
- ↑ 심지어 전자여권이다.
- ↑ 오히려 중화민국(대만)이나 코소보를 인정한 나라 숫자보다 더 많다.
- ↑ 사실은 나중에 8개의 의미는 나중에 적당히 갖다붙인 것이고, 8개의 꼭지점을 가진 십자가는 원래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아말피의 문장이다. 아말피의 상인들이 구호기사단을 창립하면서 도시의 문장을 그대로 사용한 것.
- ↑ 본문의 내용을 읽었다면 이게 어느 정도의 왜곡
과 고인드립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