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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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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에서 1870년까지의 철십자 훈장 종류 |
Eisernes Kreuz(아이저네스 크로이츠). 독일군의 훈장중 가장 잘 알려진 훈장으로 말그대로 철십자가 모양의 훈장이다.창공의 어벤저스의 지휘관이 말하길 자기 부대의 배지였다 카더라
안타깝게도(?) 전후 그놈의나치당으로 인한 정치적 이유 때문에 사라진 독일의 훈장. 다만 문양으로서는 오늘날의 독일군에서도 모양만 약간 바꿔서 쓰이고 있다.
최고 전훈 훈장이라면 보통 별 모양에 금으로 번쩍이게 만들기 마련인데, 철십장 훈장은 별 모양은커녕 극도로 투박한, 이름 그대로 강철로 만든 십자에 검은색이 박혀 있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활약을 요구하는 극악한 수훈 조건과[1][2], 무심하고 투박한 검은 철덩어리의 절제된 분위기가 절묘하게 결합된 것 때문인지, 역시 넘사벽급의 활약을 요구하는 다른 유명한 최고 전훈 훈장을 제치고, 훈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훈장일 정도.
조건에 따라서는 명예 훈장과 마찬가지로 넥타이처럼 착용할 수 있는데,검정색 몸체에 투박하고 정갈한 외형 덕분에 명예 훈장보다 멋있다고 하는 사람도 꽤 있다. 하지만 명예훈장도 뭔가 기묘한 파란 띠는 좀 그렇지만 못지않게 멋있으니 둘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볼 수 있다. 애초에 두 훈장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물론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듯[3]
추가적으로, 나치 독일 시기에는 동방부대 출신자 등의 비 유럽권 병사들에게는 철십자 훈장을 수여하지 않았으며, 대신 동방부대용 훈장을 따로 제정하여 수여하였다.
2 역사
1813년 프로이센 해방 전쟁 때 처음으로 제정되었으며 이후 잠시 사라졌다가 보불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때 다시 제정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훈장으로서 자국 및 소수의 동맹국 군인에게 수여되었다. 아주 드물게 민간인에게 수여된 경우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2급, 1급 철십자장과 대 십자 철십자 훈장의 3등급으로 분류되었지만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중단되었던 철십자 훈장 수여 제도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아돌프 히틀러로, 1939년 9월 1일 2차대전 발발일에 제국법령 IS. 1573 호인 철십자 훈장 재수여 규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명령에 의해 새로운 등급이 추가되면서 2차대전 당시 철십자 훈장은 크게 철십자 훈장, 기사철십자 훈장, 대철십자 훈장의 세 개로 구분되었다. 기사철십자 훈장은 기존 프로이센의 훈장이었던 푸르 라 메리트를 교체하기 위한 등급이었는데, 이 훈장은 장교에게만 수여되던 훈장이었으므로 1차 대전 때 하사 계급까지 진급했던 히틀러가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탓도 있다. 또한 히틀러는 비전투요원의 훈장으로 전장공로훈장(워 메리트 훈장)을 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한 이유중 하나는 1차 대전 직후 폐지된 푸르 르 메리트 무공훈장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기사 철십자장을 추가해서 8등급으로 세분화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패전으로 인해 전체 철십자훈장이 2차 대전 이후 폐지된다.
그래서 2013년 현재도 공식적으로는 철십자 훈장은 훈장이 아니며, 받았다고 해서 국가유공자로 대접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 독일에서 철십자 훈장을 인정했다는 이야기가 돌긴 하는데, 실제로 독일에서 인정한 것은 단지 해당 시절 나치 독일에 해당인이 공훈을 세워서 철십자 훈장이라는 양철 조각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가 전부다. 다만 1957년 독일연방군은 비(非)나치화 정책의 일환으로 여태까지 수여된 나치 시절 철십자 훈장을 전부 하켄크로이츠가 없는 버전으로 교환해 주었다. 다만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지급한 것이 아니라, 기존 훈장을 가지고 오면 일대일로 교환한 것이라서 지금도 나치 시대 철십자 훈장이 다수 남아 있다.[4] 때문에, 전후 재창설된 독일연방군에 재입대한 구 독일 국방군 출신들 중 2차 대전 훈장 수훈자들은 약장 형태로 이것들을 정복에 패용했다. 다만 친위대 근속근무장 같이 나치의 조직과 관련이 있거나 오스트리아, 주데텐란트, 메멜란트 합병을 기념하는 기장 등 나치 독일의 확장을 의미하는 훈장은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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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군 용맹 명예장(Ehrenkreuz der Bundeswehr für Tapferkeit) |
이후 독일군이 코소보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다시 실전을 겪게 되자 전훈 관련 훈장이 사실상 전무한 독일 연방군 내외에서 다시 철십자 훈장을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한창 벌어졌었다. 이는 독일 연방군도 군대인 이상 훈장이 존재하지만, 딱히 실전에서 세운 공에 대하여 수여하는 훈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8년 독일 국방부가 이미 존재하던 독일 연방군 명예장(Ehrenzeichen der Bundeswehr)에 새로이 독일 연방군 용맹 명예장(Ehrenkreuz der Bundeswehr für Tapferkeit)을 추가하였으므로 공식적인 부활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해졌다. 해당 훈장은 십자 형태이긴 하나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 훈장 체계 내부에서 부가적 형태로 추가된 것이며, 의도적으로 과거 철십자 훈장과는 다르게 디자인하였으므로 철십자 훈장의 부활이나 후예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철십자 훈장이 그립긴 했나 보다. 금으로 만들었지만 검은 칠을 하면 철십자. 안 흔한 훈장 세계의 정신적 후계자
3 특징
전세계 독일군 밀덕, 소위 "독빠"들의 소망하는 최고의 아이템 중의 하나이며, 일반인이 보기에도 꽤나 정갈하면서 멋진 모습이고, 나치 독일이 사용하던 훈장중 하켄크로이츠가 가장 눈에 잘 안 보이도록 만들어졌기에 밀덕이 아닌 콜렉터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과거의 진품들은 밀덕의 손과 손을 거쳐가며 최소 가격이 20만원 ~ 1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거래된 철십자장은 전문가들의 진품 증명서와 함께 딸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인기가 많아서 레플리카가 많이 제작되었을 뿐더러[5], 전쟁 말기에 이르면 받지 않았는데 어딘가에서 습득한 경우나, 전쟁터에서 현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그냥 사기 진작의 목적으로 수여증 같은 정식 수여 절차 없이 그냥 철십자 훈장을 뿌려 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십자 훈장만 있다면 이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인해 밀덕들이 군복 코스프레를 하면서 걸치는 철십자장은 모조품이 대부분이며, 진품이 있더라도 "전투에 여러 번 참여하기만 하면 주는" 2급, 1급 철십자장이 대부분(그래도 20만원은 넘는다)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훈장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기사 철십자장" 이상이라고 보면 되며, 이런 훈장이 정말로 전쟁 영웅에게 주는 훈장이다. 기사 철십자장 서훈자는 최전선의 병사부터 참모장교, 집단군 사령관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넓고 공적도 다양하지만, 빌헬름 카이텔과 같은 정치 군인이 받은 경우도 존재한다.
4 종류
철십자장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훈장 등급마다 필요한 공훈 정도가 다르며, 이에 따라 수여갯수가 다르기에 값어치도 각각 다르다.
4.1 일반 철십자장
4.1.1 1813년형 철십자장 (나폴레옹 전쟁기)
1813년 3월 10일 제정.
4.1.2 1870년형 철십자장 (보불 전쟁기)
4.1.3 1914년형 철십자장 (제1차 세계대전)
2급과 1급이 존재했고 2급을 먼저 받아야 1급 수훈 가능.
4.1.4 1939년형 철십자장 (제2차 세계대전)
4.1.4.1 2급 1939년형 철십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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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sernes Kreuz 2. Klasse. |
가장 하급의 철십자장. 전투에 일정 회수 이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면 준다. 사실상 나중에는 표창장 수준으로 남발하는 훈장이 된다. 그래도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니라서 이 훈장이 있으면 적어도 베테랑 군인 대접을 받긴 한다.
수여할 때는 로먼 칼라 군복일 경우는 두 번째, 오픈 칼라 군복일 경우는 첫 번째 단추를 풀고 리본을 집어넣은 다음 단추를 다시 채우는 식으로 패용한다. 수여식이 끝나면 리본만 해당 단추 구멍을 통과하도록 안쪽에서 박아 패용한다. 큰 행사시에는 다른 훈장들처럼 가슴에 메달째로 달 수 있다.
4.1.4.2 1급 1939년형 철십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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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sernes Kreuz 1. Klasse. |
2급 철십자장과 같이 전투에 일정 회수 이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면 준다. 보통 2급 철십자장을 받은 다음에 추가적인 공훈을 세우면 1급 철십자장을 수여한다. 밀덕들이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훈장이며 1급, 2급 합쳐 7-80만명의 사람들이 받았다.
다만 그렇다고 가치를 낮게 봐서는 안 된다. 전쟁 후반 히틀러가 훈장을 남발하여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 전에는 병, 부사관에게 지급되는 훈장은 이것이 전부였고 독일군의 서훈 심사는 타국 군대보다 훨씬 엄격했다. 히틀러조차도 1차 대전 중 자신이 받은 1, 2급 철십자장을 평생 소중히 달고 다녔을 정도이다.
게다가 1급 철십자장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는 사병에게 수여되는 일이 매우 희귀할 정도로 얻기 힘든 훈장이다. 히틀러가 만든 기사 철십자장과 거의 맞먹을 수준을 자랑하며, 문자 그대로 가문의 영광 수준. 오스트리아 시민권자만 아니었으면 장교로 올라갈 수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히틀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근데 히틀러의 훈장을 추천한 장교가 유대인 장교인 후고 구트만 대위였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4.2 푸르 르 메리트
푸르 르 메리트 군사훈장 | 푸르 르 메리트 민사훈장 |
Pour Le Merite.
1차 대전부터 독일의 군대에 있었던 군인, 특히 장군이나 제독 등 고급 장교가 된 사람은 푸르 르 메리트 (Pour Le Merite)라고 하는 독일 제국의 훈장을 착용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해군의 빌헬름 마르샬 상급대장, 육군의 에르빈 롬멜 원수 등. 해당 훈장은 원래는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가 창설한 무공 훈장이다. 프랑스 빠돌이던 프리드리히답게 훈장 명칭도 프랑스어. 원래는 각 연방 국가마다 고유의 무공 훈장이 있었지만,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 과정에서 발휘한 영향력 때문에 독일 제국의 공통된 무공 훈장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철십자 훈장 중 2급과 1급은 푸르 르 메리트의 서훈 기준이 워낙 엄격해서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훈장의 서훈 기준에는 못 미치는 장교 및 사병들에게 서훈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 르 메리트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영국군과 러시아군 장교들에게 서훈이 남발되기도 했다는 흑역사가 있다. 블루 맥스니 블루 메리츠니 하는 별칭은 이 훈장의 몰타 십자가가 청색이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정식 명칭이 아니다.
따라서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의 경우에는 나치 독일에서도 기사 철십자장과 동등한 전훈을 세웠다고 인정하고, 대접도 똑같이 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2차 대전을 다룬 각종 픽션등에서는 기사 철십자장을 부하에게 수여해 주고 싶은데 훈장의 준비가 안 되었다던지,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푸르 르 메리트를 착용한 상관이 부하에게 푸르 르 메리트를 줌으로서 기사 철십자장을 수여하는 것을 대신했다는 스토리가 종종 나온다. 물론 서류상으론 그 훈장을 받은 게 아닌 상징적인 행위일 뿐이다.
푸르 르 메리트도 독일제국의 붕괴와 함께 더 이상 공식적인 독일의 훈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1840년대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학자와 예술가들을 서훈할 목적으로 추가제정한 푸르 르 메리트 문화 예술 훈장은 지금도 가끔씩 서훈된다. 이 훈장은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 훈장처럼 나이 좀 먹은 원로들에게 남발되는 경향이 전혀 없다. 서훈자 중에는 카미유 생상스, 오토 클렘퍼러, 카를로스 클라이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등의 음악가, 미스 반 데어 로에 등의 건축가, 칼 포퍼, 카를 야스퍼스, 에른스트 곰브리치 등의 인문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막스 플랑크,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의 과학자, 헤르만 헤세, 움베르토 에코 등의 작가까지 죄다 자기 분야에 한 획을 그은 굇수들이 가득하다.
4.3 기사십자 철십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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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terkreuzes des Eisernen Kreuzes. |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6]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추가된 훈장, 추가의 이유는 2급과 1급은 사실상 표창장같이 남발하는 역으로 격하되었으며, 대 십자 철십자 훈장은 특성상 전공 하나만 따져서 여러 명에게 수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실질적인 전공 훈장으로 봐야 된다.
이 훈장부터 전훈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필요했는데, 루프트바페의 경우에는 대전 초반 20대 격추, 그 이후에는 동부전선에서는 100기 격추, 서부전선에서는 40기 격추를 달성하면 수여한다. 이 훈장부터 흑색, 백색, 적색의 색상을 가진 리본이 달리므로 영화에서 흔히 나오듯이 목걸이처럼 군복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다. 그리고 이 훈장을 받으면 고향이나 원하는 곳에서 3-4주간의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7,318명에게 수여했는데, 많이 수여된 것 같지만, 전쟁 기간 중 독일군은 천만 단위의 병력을 굴렸음을 생각하면 결코 많은 게 아니다. 최초 수여자는 에리히 레더 원수, SS에서는 사병 프리츠 크리스텐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기본 베이스로, 훈장 등급이 올라감에 따라 곡엽, 검, 금강석 등 장식물이 추가된다.
4.3.1 곡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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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chenlaubs zum Ritterkreuzes des Eisernen Kreuzes. |
기사십자 철십자장에 백금또는 은 제질의 곡엽[7]이 추가된 형태.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받은 사람들이 추가적인 큰 공훈을 기록할 때 수여한다. 독일 공군의 기준은 대전 초반 40기 격추, 그 이후에는 동부전선에서는 150기 격추, 서부전선에서는 60기 격추를 달성하면 수여한다. 882명에게 수여. 외국인 중 핀란드의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 원수와 루마니아의 페트레 두미트레스쿠[8], 코르넬리우 테오도리니, 미하이 라스커르 장군이 수상하였다.
이 훈장부터는 가급적 히틀러가 직접 참석해서 대상자에게 수여식을 거행하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오토 카리우스가 경험한 것과 같이 하인리히 힘러등 나치 최고위급 인사가 수여식을 거행한다. 따라서 수여 대상자는 보통 독일 본토로 귀국해서 수여식에 직접 참석해야 한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히틀러가 현지를 방문해서 대상자에게 수여한 적도 있다.
4.3.2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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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chenlaubs mit Schwertern zum Ritterkreuzes des Eisernen Kreuzes. |
곡엽 기사십자 철십자장의 곡엽에 검이 추가된 형태다. 미하엘 비트만처럼 곡엽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받은 사람이 더 큰 공훈을 세울 때 수여한다. 이 훈장부터는 일반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에 요구되는 적기 몇 대 격추나 전차 몇 대 격파같이 확실한 기준이 필요한 것 외에도 고급 장성들과 정치가들의 협의가 필요하다. 독일 공군에서는 대전 초반에는 70기 격추, 그 이후에는 동부전선에는 200기 격추, 서부전선에서는 100기 격추를 달성하면 수여대상이 된다. 160명에게 수여. 이 중에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유일한 외국인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상자로, 전사 직후 특례를 인정받아 전 단계의 훈장들을 받지 않았음에도 수여되었다.
수집가의 입장에서는 일반인이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한계선이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이다. 사실 이 훈장도 그냥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다. 이 단계 이후의 훈장은 입수가 불가능한데, 일단 수여자가 적을 뿐더러 훈장 자체가 귀금속과 보석을 사용해서 고가품이기 때문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래서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뛰어넘는 (진품) 철십자상을 수집한 밀덕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4.3.3 곡엽검금강석 기사십자 철십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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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chenlaubs mit Schwertern und Brillanten zum Ritterkreuzes des Eisernen Kreuzes. |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의 곡엽에 금강석을 여러 개 박고 검에도 금강석을 추가한 물건. 이 훈장부터는 객관적인 공적만 있다고 수여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받은 사람중 국가에 매우 특별한 공훈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사람에게 심사 과정을 거쳐서 수여한다. 상당히 주관적인 수여 기준이지만 잘 운영한다면 나름대로 엄정한 수여 기준을 확립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훈장을 주는 곳이 나치 독일... 당연하게도 이 등급부터는 괴링[9], 히틀러의 확실한 수여 의지가 없으면 수여가 불가능하다. 27명(공군 11명, 육군 12명, 해군 2명, 무장친위대 2명)에게 수여.
4.3.4 황금금강석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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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Eichenlaubs mit Schwertern und Brillanten zum Ritterkreuzes des Eisernen Kreuzes. |
곡엽검금강석 기사십자 철십자장의 곡엽과 검을 황금 재질로 바꾼 물건. 독일 공군 초유의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 공군 대령만이 이 상을 받았다. 원래 전사자 중 12명을 선별해서 수여하기 위해 제정된 훈장이었다고 하는데 정작 생존 장병인 루델 혼자만이 받았다.
4.4 대십자 철십자장
Großkreuz des Eisernen Kreuzes.
일반 철십자장과 마찬가지로 4개 연식이 존재하며, 기사십자의 곡엽 같은 업그레이드 개념으로 별모양 후광이 추가된 대십자 철십자 성장이 있다.
대십자 철십자장 수훈자는 역사상 20명 존재하며, 대십자 철십자 성장은 단 2명 존재한다.
4.4.1 1813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나폴레옹 전쟁기)
수훈자 목록:
-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이후 대십자 철십자 성장으로 승격
-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뷜로프 남작
- 스웨덴 왕세자 칼 요한
- 보기슬라프 프리드리히 에마누엘 폰 타우엔친
- 루트비히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
1813년형 대십자 철십자 성장. 일명 블뤼허 성장.
4.4.2 1870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보불전쟁기)
수훈자 목록:
- 작센 국왕 알베르트
- 아우구스트 카를 폰 괴벤
- 에트빈 폰 만토이펠 남작
- 헬무트 카를 베른하르트 폰 몰트케
- 프로이센 왕자 프리드리히 카를
-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 아우구스트 폰 베르더 백작
- 카이저 빌헬름 1세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
4.4.3 1914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제1차 세계대전기)
수훈자 목록:
- 카이저 빌헬름 2세
- 파울 폰 힌덴부르크: 이후 대십자 철십자 성장으로 승격
- 에리히 루덴도르프
- 바이에른 공자 레오폴트
-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1914년형 대십자 철십자 성장. 일명 힌덴부르크 성장.
4.4.4 1939년형 대십자 철십자장 (제2차 세계대전기)
수훈자는 헤르만 괴링이 유일하다.
1939년형 대십자 철십자 성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승리로 끝나면 히틀러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 두었으나 독일이 패망하면서 수여되지 못하고 미군의 노획품이 되었다.
5 여담
- 영화 스탈린그라드에서는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주인공 부대에 공수지원으로 철십자 훈장이 가득 담긴 통과 위문품인 초콜릿 깡통이 가득 든 통이 떨어지자 철십자 훈장이 든 통은 내팽개치고 초콜릿을 까먹으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직후 이 영화의 악역인 헌병 장교의 총격으로 전우 한 명을 잃는다. 그런데 그 헌병 장교는 다른 장교들과 함께 보급품을 빼돌려 건물 지하실에 식량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었다. 소련군 여자 성노리개는 덤.
- 블랙 라군에서 레비와 로크가 가라앉은 유보트를 털 때 챙겨가던 물건이기도 하며, 군복 미소녀나 밀리터리 의인화, 나치를 모티브로 한 미연시나 애니에서 히로인들이 걸치고 나오는 주요 아이템이다. 하켄크로이츠처럼 노골적으로 나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은유적으로(어디까지나 하켄크로이츠보다는) 표현하는 물건이라 하켄크로이츠에 민감한 서양에서는 하켄크로이츠가 삭제되는 대신 나치 독일의 상징물로 나오기도 한다. 이 점은 게임이나 영상 매체뿐이 아닌, 독일 국방군 관련 프라모델들도 마찬가지인듯. 그리고 구 서독과 현 독일 연방군의 국적 마크가 이 철십자 훈장에서 따온 철십자 마크다.
- 일본인들은 욱일기가 하켄크로이츠가 아니라 이 철십자 문양과 같은 부류의 것이니 정치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확히는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았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에서도 철십자 상징과 흑백적(Scharz-Weiss-Rot, 독일 제국 깃발)은 하켄크로이츠와 달리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반쯤 금기시되는 등[13]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친독 성향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에게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선 철십자 상징도 매우 백안시된다.
- 2차대전 종전이 가까워질 때, 독일인들의 동프러시아의 대탈주 당시 이 훈장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필라우항(현재는 러시아의 발티스크)에서 독일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상선과 잠수함까지 닥닥 긁어모아 동프러시아의 독일인을 서쪽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수행할 당시, '에버하르트 쇠퍼'대령은 마지막으로 동프러시아에 남아있는 현장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접촉한 피난민은 갓난아기였는데, 대이동 당시 아마도 부모와 헤어져버린 아기였고, 간호원이 그 아기를 데려와 젖을 물리고 있었다. 간호원은 자기가 맡아서 이동시키겠다며, 다만 현재 상황의 설명과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적은 문서를 작성해줄 것을 요구했고, 쇠퍼 대령은 그대로 해주었다. 간호원과 젖먹이를 포함한 수십명의 민간인이 서쪽으로 가는 배에 탑승하는 것을 직접 확인한 뒤, 이후 모든 철수작전이 사실상 종료되고 나서, 이제 소련군에 의한 죽음 혹은 죽음보다 더한 상황만을 기다리는 대령에게 한 무리의 남자들이 접근한다. 그들은 피난민들과 군인들의 식사를 담당하기도 하고, 현장의 정리나 허드렛일이 임무였는데, 동프러시아 지역에서 징집된 세상물정 모르는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대령에게,
"대령님, 우리들은 여기서 몇 주동안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 철십자 훈장이라는 거를 받을 수 있을까요?"
쇠퍼 대령은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제 휴지조각만도 못한 철십자 훈장을 한움큼 들고 와, 십여명 남짓한 남자들에게 엄숙히 훈장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자네들은 충분히 받을 수 있지. 받을 수 있고 말고."
- ↑ 단, 이쪽은 전공을 초인적으로 쌓아도 받을 수 있지만, 명예 훈장의 경우엔 거의 저승 구경을 하고 와야 받을 수 있다(...).
저승 구경만 하고 오면 다행이지따라서, 사실 철십자장의 수훈 조건은 다른 넘사벽급 훈장들에 비해 오히려 덜 까다로운 편. 다른 최고 훈장들과 달리 희생보다는 전공 자체에 집중된 느낌이다. 다만, 요구하는 전공의 분량이 넘사벽... 아, 물론, 소비에트연방영웅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 ↑ 참고로 명예훈장은 미군 역사를 통틀어 총 3400여번만 수여되었으며, 그나마도 남북전쟁때 남발해서 저 정도다. 기사 철십자장이 저거의 2배에 가까운 7천400여번 수여된 걸 생각하면... 다만,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집단군을 굴렸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미군 역시 독일군 못지않게 세계 대전 동안 엄청난 병력을 굴렸었다. 독일군은 대전 동안 철십자 훈장을 남발했기에 독일군 내에서 제대로 된 무공훈장 역할은 '기사철십자장'부터이다. 굳이 당시의 양국 훈장을 매치한다면 기사 철십자 훈장은 미군의 수훈십자장(2위)과 비슷한 지위다. 애당초 훈장의 등수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 ↑ 이쪽은 금빛이긴 하지만, 투박한 외형에선 철십자 훈장과 일맥상통
- ↑ 예를 들어 오토 카리우스 옹도 이렇게 하켄크로이츠가 새겨진 철십자 훈장을 그대로 소장한다. 전장에서 생고생하며 받은 훈장을 고작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훈장의 의미가 전혀 다른 새 걸로 교체받으라고 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JG54 출신의 에이스인 후고 브로흐의 경우 이와 관련해 국내 서명 수집가와의 서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갈고리 십자가 상징물은 변경되었습니다. (갈고리 십자가를 떡갈나무 잎으로.) 그것은 이른바 ‘도덕군자인 척하는 사람들’의 산물입니다." 출처:[1]
- ↑ 전쟁이 끝난 뒤, 훈장을 제작하던 많은 회사나 장인들이 생계를 위해 훈장 만들던 틀을 그대로 사용해 점령군이나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여럿 찍어내 팔았다. 당연히 생산 시기 차이로 진품이 아니지만, 제작방식과 재료, 제조한 곳이 동일하기 때문에 레플리카치고는 정품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최고급인 물건이다.
- ↑ "십자(Kreuz)"가 두 번 들어간다.
- ↑ 통상적으로 '백엽(栢葉; 측백나무잎)'이라고 표현되는데, 실제로는 곡엽(槲葉; 떡갈나무잎)이다. Eichenlaub의 Eiche가 떡갈나무이기 때문. 일본에서 번역된 명칭이 한국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 1882.02.18~1950.07.15 제1차 세계대전을 참전한 이후로 독소전 개전으로 루마니아 제3군을 이끌었다. 종전후 루마니아 공산 정부 하의 전범 재판을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됨
- ↑ 공군 에이스 하인츠 뵈어가 괴링의 병신짓을 항의 하자 괴씸죄를 적용해서 다이아몬드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못받았다.
- ↑ 최초 수여자
- ↑ 전부 U보트 에이스들이다.
- ↑ 크릭스마리네 2위의 유보트 에이스로, 무사히 종전을 맞이...하였으나 종전 직후,
패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새벽녘까지 퍼마시다가만취상태로 관사로 복귀하던 길에 초병의 수하에 불응, 사살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게 무슨... - ↑ 위의 서술처럼 독일 연방군에서 계속 쓴다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고깝게 보는 시각이 많다. 사실 이건 네오 나치들이 "하켄크로이츠가 금지라면 철십자를 쓰면 된다" 같은 논리로(...) 굴리고 있는 게 큰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