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행정부의 조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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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군사기구 | → | 국방부 |
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 : DoD.
1 개요
미국의 국가행정조직. 국방・군사를 담당하며 미군의 5군 중 해안경비대를 제외한 육군・해군・공군・해병대의 4군을 관할한다. 해안경비대는 국토안보부 관할이며 전시에 대통령령이 있어야 해군으로 편입되긴 하지만 일단은 미국 제5의 군조직으로 불린다.
게임을 제작,유통하기도 한다
본청사는 오각형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펜타곤'이라 불린다. 미국 대통령의 관저조직이 '화이트하우스(백악관)'라 불리는 것처럼, 펜타곤이라는 이름 자체가 미 국방부를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국방총성(国防総省)'이라고 번역한다. 산하기관인 육군청, 해군청, 공군청의 경우는 육군성, 해군성, 공군성으로 번역. 이유는 아래에 후술한다.
미국 관청 중에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예산 순위는 보건사회복지부에 밀려 2위.
특히 미국 국방부는 전세계 방위사업, 항공산업 및 각종 과학기술 분야에서 사실상 표준 역할도 하며 한국에서도 많이 준용한다.
2 역대 장관
현직 |
애슈턴 카터 |
- 3대 조지 마셜(1950. 9. 19-1951. 9. 19) 육군 원수
- 4대 로버트 러벳(1951. 9. 19-1953. 1. 20) 해군 중령
- 5대 찰스 윌슨(1953. 1. 20-1957. 10. 8) 군 경력 없음
- 6대 닐 매클로리(1957. 10. 9-1959. 12. 1) 군 경력 없음
- 7대 토머스 게이츠(1959. 12. 2-1961. 1. 20) 해군 중령
- 9대 클라크 클리퍼드(1968. 3. 1-1969. 1. 20) 해군 대령
- 10대 멜빈 레어드(1969. 1. 22-1973. 1. 29) 해군 중위
- 11대 엘리엇 리처드슨(1973. 1. 30-1973. 5. 24) 육군 소위
- 직무대행 윌리엄 클레먼츠(1973. 5. 24-1973. 7. 2)
- 12대 제임스 슐레진저(1973. 7. 2-1975. 11. 19) 군 경력 없음
- 13대 도널드 럼즈펠드(1975. 11. 20-1977. 1. 20)
- 14대 해럴드 브라운(1977. 1. 21-1981. 1. 20) 군 경력 없음
- 15대 캐스퍼 와인버거(1981. 1. 21-1987. 11. 23) 육군 대위
- 16대 프랭크 칼루치(1987. 11. 23-1989. 1. 20) 해군 중위
- 직무대행 윌리엄 태프트(1989. 1. 20-1989. 3. 20)
링크가 뚱뚱한 가카로 연결된 것 같다면 기분 탓이 아니라 이 양반은 가카의 증손자다. 정확히는 윌리엄 태프트 4세
- 17대 딕 체니(1989. 3. 21-1993. 1. 20) 군 경력 없음
- 18대 레슬리 애스핀(1993. 1. 21-1994. 2. 3) 육군 대위
- 19대 윌리엄 페리(1994. 2. 3-1997. 1. 24) 군 경력 없음
- 20대 윌리엄 코언(1997. 1. 24-2001. 1. 20) 군 경력 없음
- 21대 도널드 럼즈펠드(2001. 1. 20-2006. 12. 18)
- 23대 리언 패네타(2011. 7. 1-2013. 2. 27) 육군 중위
- 24대 척 헤이글(2013. 2. 27-) 육군 병장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강력한 문민통제를 중요시하고, 미국이란 나라의 강력함의 원동력이 강력한 문민통제라고 보는만큼 국방부 장관은 문민이 임명되는 게 원칙이다. 농담이 아니라 미국같이 큰 나라에서 2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쿠데타가 한번도 안 일어난 것은 강력한 문민통제 덕분이다. 비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군 경력이 있더라도 군에서 제대한지 10년이 지나야 문민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조지 마셜같은 경우는 그때 상황이 워낙 험하게 돌아가고, 종신직인 원수 계급이어서 특별히 예외를 둬서 임명되었다.
미국 민주당에선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공화당 소속을 국방장관으로 두는 일이 꽤 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의 4대 국방장관인 러벳, 존 F. 케네디나 린든 B. 존슨 때 8대 국방장관을 지낸 맥나마라, 빌 클린턴 때 20대 국방장관을 지낸 코언, 버락 오바마 때 연임된 게이츠와 헤이글이 대표적이다. 공화당에서 민주당 인물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사례는 없다.
2.1 청장
본래 과거에는 국방부 대신 전쟁부(육군을 담당)와 해군부가 각각 있었으나 국방부를 창설하면서 전쟁부와 해군부는 각각 육군청과 해군청으로서 국방부 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후에 미 공군이 독립하면서 공군청도 국방부 산하기관이 된다. 한국어 번역으로는 위계 구분을 위해 육군부, 해군부, 공군부를 격하시켜서 각각 육군청, 해군청, 공군청으로서 급을 낮춰서 번역하였지만, 영어 원어로는 국방부, 육군청, 해군청, 공군청 모두 department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육군성, 해군성, 공군성의 격을 낮추는 대신 국방성의 급을 올려서 국방총성으로 번역하였다. 미군 가운데 연방공공보건서비스부대는 보건사회복지부가 지휘하며 해안경비대는 국토안보부가 지휘한다.
각 청장은 국방부 장관처럼 문민이다. 문민통제를 중시하는 미국의 배경상 각 군 참모총장이 지휘를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청장이 교체되어 새 인물을 뽑는다던가 등의 이런저런 사유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때 참모총장이 직무대행을 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육군청 | 해군청 | 공군청 |
에릭 패닝(Eric Fanning) | 레이 메이버스(Ray Mabus) | 데보라 제임스(Deborah Lee James) |
대체로 동맹국/비동맹국 등의 대외활동은 국방장관이 맡고 3군청장들은 각 군의 자체 업무에 신경쓰는 편이다.
22대 국방부 청장 에릭 패닝은 최초의 동성애자 청장이다. 청장이라 문민이긴 하지만 DADT가 폐지된지 6년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명됐음을 생각하면 꽤나 대단한 샘. 지명자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
2.2 조직
- 국방장관
2.3 역사
본래는 독립 이래로 육군을 담당하는 전쟁부(육군부)와 해군을 담당하는 해군부로 나뉘어져 있었고 장관도 따로 두고 있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통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국방활동의 조정제안은 1944년 하원에서 처음 나왔다. 육해군 및 통합참모본부에 의한 계획은 1945년에 제출되어 1945년 12월 19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하원에 내린 특별교시로 국방에 관한 통합부문 설립이 제안되었다. 제안은 1946년 4월에 나왔지만 권력집중에 대한 반대와 해군사무위원회의 공청회로 인해 늦어졌다. 결국 트루먼은 1947년 2월 하원에 새로운 제안을 했으며 그로부터 몇개월에 걸친 토의를 거쳐 수정되었다.
1947년 7월 26일, 트루먼은 국방법안에 서명했다. 동 법안에 의해 1947년 9월 18일 국가군사기구(National Military Establishment)가 발족, 초대 국방장관에는 해군장관 출신의 제임스 포레스털이 취임했다. 해당 부서는 약칭인 'NME'가 enemy(적)과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에 1949년 8월 10일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로 개명되었다. 국방장관에게는 3군을 통솔하는 강력한 권력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 배경에는 육군에서 막 떨어져나온 공군이 해군에 편중된 예산을 자기네 쪽으로 뜯어내고자 했던 의도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트루먼 행정부에서 2차대전 이후에는 어차피 공군이 핵 쏴서 석기시대로 보내버리면 되니 해군과 해병대가 꼭 필요하겠냐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었다. 해전도 항공전 위주로 진행되는 시대이므로 적 해군은 공군이 핵을 날려서 갈아버리면 되고 해병대가 할 수륙양용작전도 더이상 할 일이 없을테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육군이 대신하면 된다는 얘기. 초대 국방장관 제임스 포레스털(그는 전쟁부/해군부 통합을 극구 반대함)은 194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듀이와 비밀리에 만나서 듀이가 대통령이 되면 국방장관 자리를 보전해달라고 로비를 했던 일이 들통나서 1949년 3월 말 경질되었다. 해군 장성들도 포레스털이 국방장관을 맡았던 시기부터 이런 조짐을 모를리가 없었기 때문에 사상 초유의 대규모 항명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체스터 니미츠 원수도 이전에 해군참모총장 퇴임식에서 해군에 힘을 실어주는 의견을 강하게 개진했고, 해군 장성들은 1949년 제2대 국방장관 루이스 존슨이 U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항공모함 건조를 시작한지 5일 만에 취소해버리자 제대로 빡쳤다. 결국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지병인 우울증으로 치료받던 포레스털 전 국방장관이 충격을 받아서 투신자살했고, 존 설리번 해군장관도 그 즉시 사표를 냈으며,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주요 제독들이 전부 국방부에 항명을 해버렸다. 후세에 '제독들의 반란'으로 회자되는 이 사건에서 해군참모총장 루이스 덴펠드 대장을 비롯한 수많은 제독들이 강제로 퇴역당하거나 좌천당했고 주동자 격이었던 알레이 버크 소장도 극동해군으로 좌천되었다. 이런 공방부(?)/핵만능주의 기조는 마침 소련의 핵개발이 성공하며 핵무기 썼다간 둘다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재래식 무기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주춤하더니 1950년 북한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단행하자 인천 상륙작전 등에서 해병대와 해군이 맹활약하며 버로우탔다. 전쟁 당시 버크 제독이 대한민국 육군 백선엽 장군의 함포사격 요청에 꼬박꼬박 화답해주며 포병사령관 노릇을 해줬다는 일화가 유명하다[1]. 또한 이런 혼란의 카오스가 벌어지는 바람에 조지 마셜 원수가 역대 유일의 비문민 국방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오늘날 미국 국방부는 육/해/공/해병대가 웬만큼 균형잡히고 협력하는 형태의 바람직한 구도로 운영되고 있다.
국방부는 워싱턴 D.C.의 외곽부, 포토맥 강 건너편 버지니아 주의 알링턴 카운티에 위치한 펜타곤을 근거로 한다. 1789년 설립된 미국 구 육군부와 미 해군부 및 신설된 미 공군부가 산하에 놓였다. 이로써 국방부는 '부' 밑에 '부'를 거느린 미국에서 유일한 관청이 되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일본에서 국방총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이것 때문.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육/해/공군부를 최근 들어 우리나라 직제에 맞춰 육/해/공군청으로 낮춰 번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