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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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지원(朴智元)
출생일1942년 6월 5일
출생지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본관밀양 박씨
최종 학력단국대학교 상학 학사
소속 정당국민의당
지역구전남 목포
의원 선수4
의원 대수14, 18, 19, 20
종교가톨릭(세례명 : 요셉)
배우자이선자
자녀2녀
약력(현)제20대 국회의원
(현)국민의당 원내대표
(현)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전)제14,18,19대 국회의원
(전)문화관광부 장관
(전)민주통합당 원내대표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관료, 기업인이다.


2 생애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출생했으며, 2016년 만 74세로 의외로 고령이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박종식(朴鍾殖, 1910년 ~ 1948년)으로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목포 문태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가발 수출 사업을 하다가 김대중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가발 수출 사업을 하면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 씨와 가까이 교류했던 것 때문에 비판받기도 한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김대중 정부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을 지냈으며,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북한 측이 조의화환과 함께 공개적으로 보내온 편지의[1] 수신자 두 사람(임동원[2], 박지원) 중 1인이었을 만큼 DJ의 최측근으로 간주되었다.[3]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대북송금 사건 수사 당시 곁다리로 걸린 SK그룹에서 7000만원, 금호그룹에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2004년 최후진술에선 “입으로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관행에 젖어 잘못한 것은 처벌받겠다.”고 했다. 대북송금사건 당시 구속되어있는 동안 녹내장이 악화되어 왼쪽 눈을 실명하여 의안을 착용하고 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통합민주당에 복당하여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다시 원내대표를 지냈다.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자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임하고 뒤를 이었던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마저도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은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선거에 뛰어들었으나, 2015년 2월 8일에 열린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에서 결국 2위로 석패했다. 자기 꿈이 당 대표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당 대표를 맡아 본 적이 없다. 원내대표만 두 번 역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8,000만 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2년 9월 불구속 기소되었다. 1심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015년 7월 9일에 열린 2심 재판에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동교동계 등 친DJ계였던 인사 중에서 지금도 친DJ계임을 드러내면서 현역 정치인으로 있는 유일한 인사다. 김대중이 발탁했거나, 재야에서 같이 활동한 정치인들은 아직도 제법 현역에 남아있지만, 박지원을 제외하면 다 각자도생한 상태.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는 동교동계와 다소 거리가 있으면서도 김대중의 신임을 받는 직속 인사로서 실세직을 맡았고, 18대 국회 당시에는 무소속 출마 후 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는 친노 인사인 이해찬과 연대하여 다시 한번 원내대표를 맡는가 하면,[4] 2015년에는 비노 세력의 구심점이 되어 전당대회에서 친노 인사인 문재인과 대결하기도 했다. 타 정당 인사들과도 교류하는 친화력 덕분인 것으로 보이지만[5]

참고로 2016년 1월 22일에 탈당했다.[기사#] 3월 2일 국민의당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합류 이후 목포에서 당선되어 4선의 중진이 되었다. 2016년4월 27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국민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추대된 김성식 당선인과 함께 원내대표로 만장일치 합의추대되었다. 이로써 박 의원은 2010년 민주당, 2012년 민주통합당에 이어 이례적으로 3번이나 원내대표를 맡는 진기록을 세웠다. [#] 2016년 6월 29일 천정배, 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였고, 박지원은 만장일치로 비대위원장(원내대표 겸직)으로 추대되었다.

관련 사건 목록은 [여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2016년 8월 23일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 황주홍 의원과 마찰을 빚었다. [기사]

별명으로 정치 알파고, 정치 9단이라는 별명이 있다.


3 논란

3.1 북한에 대한 비상식적인 옹호 발언들

아래는 그 중 대표적인 발언들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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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천안함 공격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2010.4.1)
"김정은의 3대 세습은 북한에서는 상식이다."(2010.10.10)
"북한이 붕괴하면 우리도 함께 망한다"(2010.2.24)
"북한인권법은 불필요한 법"(2011.6.1)
"김정은은 상당한 수업을 받아서 늠름하다."(2013.12.11)
"김정은 체제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좋다."(2014.12.11)

심지어 저 마지막 발언은 저 시점을 기준으로 장성택의 숙청, 북한의 3차 핵실험,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김정은 체제의 온갖 만행과 도발이 일어난 뒤에 한 발언이다.

최근에도 2016년 10월 10일 "김정은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망나니짓을 하더라도 북한은 평화와 통일의 대상이다" 라고 대북지원을 주장해 논란이 되었다.[#]


3.2 광주 개새끼들아 논란

해당 문서 참고.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21번)민주당6,004,578(29.2%)당선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부천시 소사구)새정치국민회의31,786 (37.3%)낙선 (2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시)무소속45,415 (53.6%)당선 (1위)2008.8 민주당 복당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시)민주통합당63,705 (71.2%)당선 (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목포시)국민의당58,630 (56.4%)당선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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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목상 수신인은 이 두 사람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뭔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언론에서 그 함의를 추정하기도 했다.
  2. 국민의 정부의 대북정책 바탕을 기조한 사람이다.
  3. 친분관계에 있어서는 DJ가 젊었을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호형호제까지 하는 권노갑, 김상현 보다 못하지만 일하는 수완이 뛰어나, 한광옥을 제외한 권노갑, 김상현, 한화갑(언변을 인정받은 측근), 김옥두(민주화 투쟁 시절, 징역과 고문을 견딘 사람) 등이 대통령이 된 DJ에게 부담지우지 않고자 당무에만 전념할 때, 대통령이 믿고 일을 맡기는 중요한 역할을 자주 담당하며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4. 이 과정에서 담합 논란이 있었다.
  5.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