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플리트 성역 전투

1 개요

Battle Of Starzone Vanfleet
ヴァンフリート星域の会戦


우주력 794년, 제국력 485년에 은하제국군자유행성동맹군이 반플리트 성역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 전투는 주로 함대전을 이야기하지만 제국측 주인공인 라인하르트 폰 뮈젤이 지상전에도 참여했던 까닭에 이 전투에서는 지상전의 비중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

2 배경

반플리트 성역은 이제르론 요새가 위치한 이제르론 회랑 지역에서 자유행성동맹으로 향하는 출구 주변에 위치한 여러 항성계 가운데 하나이지만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갖춘 행성이 없었고, 은하제국과는 너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된 기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무인항성계였다. 따라서 다른 유인항성계에 비하면 전략적 가치가 매우 떨어지지만 이제르론 회랑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까닭에 동맹령을 향해 제국군이 진출하면 동맹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면서 충돌하게 되는 지역이었다.

본 전투에서 제국군은 우주함대 사령장관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의 지휘 하에 32,700척의 군함과 4,068,200명의 병력을 동원하였고, 동맹군 역시 우주함대 사령장관 라즐 로보스 원수의 지휘 하에 28,900척의 군함과 3,367,500명의 병력을 동원하였다.

여기서 제국 측의 주인공 격인 라인하르트 폰 뮈젤준장[1] 계급으로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중장 휘하에 배속되어 있었다.

3 전투의 전개

3월 21일 새벽 2시 40분에 전투가 개시된다. 양측 모두 기상천외한 작전을 세운 것도 아니었기에 무난하게 전투가 개시됐고, 꼼수를 부릴 생각도 없었끼 때문에 무난하게 혼전 상태로 빠져들었다. 양측 참모부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적의 배후로 우회시켜 찌르고, 본대가 정면 공격을 감행하여 적을 격파한다는 상식적인 작전안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적이 어느 위치에 병력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조차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군 마저도 연계 따위 저 머릴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따로 놀고 있었기에 상황 타개는 커녕 오히려 상황이 더 꼬이는 막장스러러운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결국 먼저 칼을 뽑아든 것은 동맹군이었다. 로보스 원수는 분산된 동맹군 함대에 집결명령을 내렸는데 이 때 참모들이 올리는 보고가 아주 가관이다. 총사령부는 실전부대와 멀리 분리되어 고립되어 있었고 실전부대 대부분은 연락두절 또는 행방불명 상태였던 것. 각 부대에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통신파를 가동시켜야 했는데 이럴 경우 제국군에 감청당할 우려가 있어서 함부로 가동하지 못하고 결국 연락용 셔틀을 파견하여 집결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모든 동맹군 함대에 간신히 명령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한편 우회기동중이던 5함대 사령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중장은 고심 끝에 이 명령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무리하게 명령을 수행하여 되돌렸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 덕분이었는데, 작중에서도 이 때 무리하게 집결명령을 따랐으면 제국군 주력과 우회부대에 포착되어 전멸했을 것이란 언급이 나온다. 게다가 뷰코크 제독의 결정은 전투 후반부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에서 노련한 판단이었다.

이 때 참모장 몽샤르망 소장, 부관 파이펠 소령 등은 총사령부의 명령을 그냥 묵살해도 되는거냐면서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뷰코크 제독은 '길을 잃었다고 보고하면 된다'거나 '그냥 셔틀 탑승자들 불러서 술먹여 재워버려'란 식으로 익살스런 대꾸를 하면서 참모들을 다독였다.

3.1 반플리트 4-2의 상륙

제국군은 반플리트 성계 제4행성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그림멜스하우젠 함대에게 제2위성인 반플리트 4-2에 강하하여 재편 및 대기를 지시했다. 겉으로는 동맹군과의 결전을 대비한 중요한 예비부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언급을 덧붙였으나, 실상은 뮈켄베르거 원수가 이 무능한 연장자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로 머리를 쥐어뜯다가 그냥 전략적 예비부대로 취급하기로 결심하고, 당장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냥 전선에서 격리시켜 버린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림멜스하우젠 제독의 함대는 반플리트 4-2의 북반구에 강하, 함대가 주둔할 수 있는 임시기지를 설치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제국군이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반플리트 4-2의 남반구에 동맹군이 이제르론 방면 보급 겸 후방근거지를 목적으로 만든 기지가 성역 전투로부터 100일전에 건설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동맹군 기지에는 전선 방면의 보급을 담당하는 최고책임자인 싱클레어 셀레브레제 중장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전투경험이 거의 없었던 까닭에 제국군의 상륙을 보고받자 크게 당황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서 이 기지를 점거, 파괴하기 위해 강하한 것이라 오판하고 만다. 이에 로젠리터 연대의 12대 연대장 오토 프랑크 폰 반샤페 대령을 호출하여 대비를 지시했고, 반샤페 대령은 손수 정찰대를 이끌고 제국군의 움직임을 살펴 상황을 파악하려 시도했다. 한편 연대장 부재시 지휘를 위임받은 발터 폰 쇤코프 중령은 적이 아군의 존재를 파악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모한 정찰은 적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지만 반샤페 대령은 그런 쇤코프의 경고를 무시하고 정찰부대의 출동을 지시했다.

쇤코프의 판단대로 제국군은 동맹군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지만 3월 28일 22시경, 함대의 항로설정을 담당하던 라인하르트가 주변의 통신파를 분석한 결과 남반구에 어쩌면 동맹군 기지가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정찰을 제안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에게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떤 함대 참모부에서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경솔한 정찰은 오히려 적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유로 태클을 걸었다. 라인하르트도 이에 지지 않고 언쟁을 벌여 자신의 권한으로 대공/대지요격 시스템 구축과 가동을 승인받았는데, 헤르만 폰 뤼네부르크 준장이 라인하르트와 똑같은 의견과 제안을 내놓고 사령부로부터 승인을 받는 바람에 결국 주도권을 내준 격이 되어버렸다.

한편 쇤코프 중령은 8시간이 지나도 반샤페 대령과 정찰부대의 소식이 없자 카스퍼 린츠, 라이너 블룸하르트, 칼 폰 데어 데켄을 호출하여 피크닉 나간 연대장과 정찰부대 구출에 나섰다. 이들을 찾기 위해 정찰장갑차를 타고 주변을 방황하던 쇤코프 일행은 제국군의 정찰부대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고, 린츠가 정찰부대 틈바구니에서 전임 연대장이던 뤼네부르크를 본 것 같다고 보고했다. 쇤코프는 그 보고에 의구심을 드러냈으나 초상화를 그리는 린츠의 취미활동 등으로 사람을 비교적 명확히 알아본다는 점으로 인해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은밀히 움직인 쇤코프 일행은 마침내 장갑차가 고장으로 퍼져 있던 연대장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샤페 대령은 갑작스런 쇤코프의 출현에 명령을 내린 기억이 없는데 왜 왔냐는 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쇤코프는 너 도와주러 왔다 꼽냐? 적 발견과 접근 사실을 알리고는 장갑차 수리와 함께 서둘러 철수하려 했다. 하지만 동맹군을 포착한 제국군이 신속하게 포위망을 형성하는 바람에 그만 고립되고 말았으며, 제국군 부대를 지휘하던 뤼네부르크와 재회했다. 어쨌든 제국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탈출할 수는 있었으나, 적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은 반샤페 대령은 기지로 돌아오자마자 사망했다. 한편 뤼네부르크도 정찰의 목적을 달성했고 동맹군의 구원병을 염려하여 즉시 철수했기에 양측 정찰부대 간에 벌어진 충돌은 일단락될 수 있었다.

3.2 반플리트 4-2의 지상전

기지로 복귀한 쇤코프로부터 상황보고를 들은 셀레브레제 중장은 일단 공석이 된 로젠리터 연대의 임시 연대장 자리를 맡겼다. 그리고 제국군의 공격에 대한 대비에 나섰지만 당시 기지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일단 기지부터가 전투가 목적이 아닌 보급을 위한 후방근거지를 목적으로 건설한 시설이었다. 이에 보급 및 행정병과만 우글거릴 뿐 전투부대는 연대나 대대 규모의 독립부대가 수평 분산되어 있을 뿐이며, 이들을 통합하여 지휘할 장성급 지휘관이나 조직 체계도 없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기지사령관 셀레브레제 중장은 전투경험이 없는 후방근무 출신이므로 뛰어난 지휘력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쇤코프와 같은 적임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최선의 상황이었겠지만 그래야 한다는 것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결국 각 독립부대는 자신의 담당구역에서 알아서 싸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유리한 점이 있다면 기지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좁아 제국군이 대병력을 한꺼번에 투입할 수 없다는 것, 보급기지를 목적으로 크게 건설된 곳이라 비축된 무기와 탄약이 풍부하다는 점 정도였다.

복귀한 뤼네부르크도 동맹군 기지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을 주장했다. 그림멜스하우젠 중장은 전제주의 국가의 군대 지휘관인데도 희안하게 꼬박고박 참모들의 의견을 물어본 후에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뤼네부르크가 자신이 지상군 담당이므로 다른 참모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없고 사령관의 결단이 중요하다고 강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세에 밀린 그림멜스하우젠이 뤼네부르크의 제안을 수용했고, 역시 강력한 요구를 수용하여 라인하르트가 뤼네부르크의 부장으로 임명됐다. 이 과정에서 그 전까지 라인하르트라면 이를 갈면서 태클을 걸어대던 참모진들이 이번엔 뤼네부르크의 도를 넘는 강권에 이를 갈며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며 라인하르트의 편을 들어주거나 동정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졌다(...).

한편 사령부의 지시를 씹고 기존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던 뷰코크 제독의 제5함대가 반플리트 성역 제4행성 근처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5함대 통신장교는 반플리트 4-2의 동맹군 기지에서 발신한 긴급구조 요청을 수신하고 이를 보고했다. 제국군 함대까지 진주했다는 점에서 참모들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뷰코크 제독은 구조 요청을 접수하고 함대 급행을 지시했다.

공격준비를 마친 제국군은 4월 6일 6시 22분에 동맹군 기지 근처에 모습을 드러내며 병력을 배치했고 지상에는 본격적인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보통 공격측에서 먼저 항복을 권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인데, 서로 회선이 교환되자마자 쇤코프가 먼저 통신을 날려 기선을 잡았다.

제국군에게 고한다. 쓸데없는 공격을 중지하고 두 손 들고 물러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아직 늦지 않았다. 너희 고향에서는 애인이 침대를 정돈하고 너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거다.

졸지에 자신의 차례를 빼앗긴 뤼네부르크는 쓴맛을 다시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먼저 여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냐? 무례한 동맹군 자식! 무리하게 부장으로 끌어들여져 준비과정에서 이런저런 굴욕감에 시달렸던 라인하르트는 그런 뤼네부르크의 표정을 보고 동맹군에도 제법하는 놈이 있다면서 칭찬했다.

원래부터 수적으로 열세였고 셀레브레제 중장이 지휘 계통을 방사상의 형태로 분산시키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분전한 동맹군 전투부대의 맹활약으로 제국군은 세 차례나 기지에 돌입하다가 격퇴당했다. 뤼네부르크는 쇤코프가 수비대 전체를 지휘하는 줄 알고 지휘력을 높게 평가했는데 실제 쇤코프가 담당한 방어선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만큼 동맹군 다른 부대들이 분투했다는 의미이지만 그것이 물량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고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방어선은 제국군의 공세에 무너졌고 기지 내부까지 제국군 병사들이 침투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동맹군은 두 차례 반격을 가해 쫓아내려 했으나 제국군에게 밀려 기지가 유린당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데어 데켄이 뤼네부르크와 맞딱뜨렸고, 이를 본 쇤코프는 데어 데켄을 대신하여 뤼네부르크와 맞서기 위해 이동하다가 라인하르트를 잃어버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대위와 마주쳐 1:1로 맞붙는 바람에 발목이 잡혔다. 막상막하의 승부를 치르던 도중 잠시 결투를 멈추고 서로 이름을 묻는 참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옆에서 폭발이 일어나 두 사람은 헤어졌고 각자 본래의 목적을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쇤코프가 도착했을 때 디어 데켄은 이미 죽어 있었고 뤼네부르크는 그곳을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분노한 쇤코프가 뤼네부르크에게 덤벼들고 여기에 블룸하르트가 가세하자 뤼네부르크는 그대로 도주해버렸다.

한편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와 재회하며 기지 사령관 셀레브레제 중장을 사로잡는 공적을 세웠다. 이 공로가 뤼네부르크에게 돌아갈 것에 대비하여 키르히아이스는 즉시 사령부에 라인하르트가 적 장군을 잡았다고 보고를 올렸고, 라인하르트는 같이 세운 공적인데 그럴 필요가 있었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나중에 보고를 받은 뤼네부르크는 이를 보고하려다가 키르히아이스가 선수친 사실을 파악하고는 겉으로는 꽤 순화된 반응을 보였으나 겉으로는 죽쒀서 개준 꼴이 된 상황에 속으로는 화를 삭히고 있었다.

기지를 파괴하고 적 사령관을 포획하는 성과를 올린 제국군은 서둘러 철수했다. 사실 기지에 돌입하던 시점에 이미 사령부로부터 전투중지 및 철수 지시를 받은 상황이었는데, 최고지휘관인 뤼네부르크가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통에 전달이 늦어졌던 것이다.

3.3 반플리트 4-2의 함대전

사령부가 서둘러 전투중지와 철수 지시를 내린 이유는 뷰코크 제독의 동맹군 제5함대 때문이었다. 당시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는 지상군의 상공에 별다른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는데 제5함대가 갑툭튀하는 바람에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이에 참모들의 주장에 따라 지상군의 철수지시를 내렸다.

뮈켄베르거 원수는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림멜스하우젠 함대를 구원할 이유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에 주력부대에 집결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명령을 내린 타이밍이 늦어 제5함대에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한편 뷰코크 중장 역시 보로딘 중장에게 구원을 요청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보로딘의 제12함대가 접근하고 있었고, 동맹군의 다른 후속부대들도 하나둘 반플리트 4-2로 집결하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반플리트 4-2의 공간이 함대전을 펼치기에는 너무 좁았다는 점이었다. 결국 양쪽 부대가 밀려오자 전술은 고사하고 부대배치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서로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머리를 싸매다가 적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려고 하였는데 서로가 답 안 나오는 상황에서 우왕자왕하다가 결국 또다시 혼전크리(...).

뮈켄베르거 원수는 지상전 병력으로 인해 발이 묶인 그림멜스하우젠 함대에 신경질을 부리면서 동맹군 후방을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그림멜스하우젠은 간신히 지상부대를 수용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이 공격도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결국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4 종전

이후 양측은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고 찔끔찔끔 맞붙다가 동시 철수로 마무리 되었다. 중요성이 큰 전투는 아니었기 때문에 양쪽 모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결국 이어지는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의 전초전 정도로만 평가받게 됐다.

제국 함대는 5월 19일에 오딘으로 귀환하였다. 그림멜스하우젠 중장은 당초 승진추천을 받지 못했으나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개입과 군부의 타협으로 대장계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때의 조건으로 함대 지휘에서는 영영 물러나고 말았다. 라인하르트는 셀레브레제 중장을 사로잡은 공적으로 소장으로 승진했으며, 부장인 라인하르트가 승진했는데 지휘관인 뤼네부르크가 승진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는 논리에 따라 역시 소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키르히아이스는 최근에 대위로 진급했다는 이유로 진급대상에서 빠졌다.[2] 이에 라인하르트가 군무성에 처들어가서 따지고 들었지만 소령으로 승진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럴 경우 보직원칙에 따라 키르히아이스 소령이 뮈젤 소장의 부관으로 보임될 수 없는 답을 듣고는 조용히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림멜스하우젠 제독이 이 사실을 알고 개입하여 군무성에 압력을 넣은 결과 소령으로 승진될 수 있었다. 또한 황제를 경유한 안네로제의 입김으로 키르히아이스는 참모 겸 부관이란 기묘한 겸임보직을 받아 라인하르트를 계속 보좌할 수 있게 됐다.

동맹군은 쇤코프 중령이 대령으로 진급하여 정식으로 로젠리터의 13대 연대장이 되었다. 또한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던 사안으로 반샤페 대령은 전사자 계급추서를 통해 그토록 목숨걸고 노리던 장군계급에 올랐다. 더불어 셀레브레제 중장이 실종되면서 뜻밖의 행운을 잡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행정에 있어서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알렉스 카젤느. 준장으로 승진하면서 사령부의 참모가 되어 셀레브레제의 스타일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동맹군의 보급체계를 재편성하게 되었다. 이는 필시 적의 포로가 되었을 셀레브레제가 동맹군의 보급체계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죄다 불어버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1. 은하제국 유년학교 살인사건 당시인 제국력 484년 4월에 대령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승진한 것은 아니므로 언제 준장이 되었는지는 불명. 계속 함께 승진해 오던 키르히아이스가 그대로 대위인 것을 보면 높으신 분이 뮈젤의 생일(3월 14일)을 맞이하여 3년 연속으로 그냥 승진시켰을 수도 있어 보인다. 매년 생일축하선물이 진급이라니 라인하르트는 전년도인 484년에도 명목상으로는(실질은 비밀작전인 지향성 제플입자 발생기 탈환 작전 공적으로) 생일축하로 진급한 바 있다.
  2. 사실 최근이라고 보기 좀 그런 것이, 키르히아이스가 대위로 진급한 것은 지향성 제플입자 발생기 탈환 작전의 공적 때문인데, 그게 제국력 483년 12월의 일이니 1년 이상 지나긴 했다. 물론 우리의 상식에 비하면 이것도 엄청 빠른 것이지만, 뮈젤의 진급속도이건 뭐 말이 안 되는 것이라서를 비롯한 은하영웅전설 제국군 설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황당한 사람은 비텐펠트로서, 제국력 485년 11월에 대령인데 487년 상반기 원수부 개설 당시 중장으로 3계급 승진해 있어, 뮈젤 못지 않은 진급속도를 자랑한다 사실 이때까지는 다나카 요시키 선생이 유년학교 졸업 당시의 1계급 차이(소위 vs 준위)를 본편 1권 아스타테 성역 회전에서의 계급 격차인 5계급 차이(상급대장 vs 대령)로 만들기 위해 뮈젤의 진급속도를 비정상적으로 당겨야 했으므로, 대위에서 소령,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 부분은 진급사유를 알려 주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고,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구축함으로 순양함을 잡은 공적에 따른 소령에서 중령으로의 진급은 뮈젤만 시켜서 어거지로 계급 차이를 맞춰나가는 과정이었다. 이후 같은 해에 벌어진 제6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뮈젤 혼자 중장으로 승진하여 5계급 차이(중장 vs 소령)가 맞춰진 후에는 뮈젤과 키르히아이스의 진급속도가 같아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