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서울메트로의 전동차
1호선(1000호대)VVVF저항제어
2호선(2000호대)VVVF · 초퍼제어 · 저항제어
3호선(3000호대)VVVF · 초퍼제어
4호선(4000호대)VVVF · 초퍼제어
P8187219.JPG
완전 초기개조 전.개조 후.(롤지시절)2차 개조 후.(현재)

저항제어 전동차 운행 영상.

114편성 LED 전광판 작동 영상.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저항제어 전동차 롤지 변경 영상.

1 제원

서울메트로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1974년형 제원>
전장19.50m
전폭3.18m
전고3.80m
차중Tc33.30t
M42.10t
M'46.10t
T33.00t
재질마일드 스틸 용접 구조 연강판[1]
대차코일스프링 탑재 스윙볼스터 방식 대차
출력전동기120Kw
편성2,880Kw
열차형식도시철도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
구동방식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운행 노선수도권 전철 1호선 양주역 이북 구간과 병점역 이남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급전방식직류 1,500V / 교류 25,000V 60Hz 겸용
운행 최고 속도110km/h
기동 가속도2.5km/h/s
감속도상용3.0km/h/s
비상4.0km/h/s
신호방식ATS
제작회사하타치 제작소,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도입연도1974 ~ 1989, 2004년
제어방식직병렬조합 및 약계자 저항제어
동력장치직류전동기
제동방식발전제동 병용 전자직통제동
편성량 수 / 편성 구성량 수60개 (60량) / 1개 편성 당 10량
전동차 비6:4 (무동력차:동력차)

2 설명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전동차

수도권 전철 1호선에서 운행되고 있는 저항제어 전동차.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전동차라는 나름 뜻깊은 타이틀을 달고 있다. 전동차를 처음 도입한 1974년 당시에는 전동차 제작 기술과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제작된 차량을 직수입하였으나, 이후 국산화되었다. 현재 6편성(111~116편성)이 재적되어 있다.

100편성이 넘는 전동차들이 굴러다니는 1호선에서 꼴랑 6편성밖에 없기 때문에 마주치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2015년 현재는 양주역 이북은 원래 안다니고 경부선에서는 가뜩이나 안 걸리는데 보기가 더 힘들게 되었다. 경인, 경원선에 비해 경부선은 비교적 확률이 더 낮은 듯. 물론 여섯마리가 다인데 확률이 높고 낮고 따지기는 좀 뭐하긴 하다. 근데 사실 마주쳐도 전혀 좋을 게 없는 게, 1호선 전 차량 중 옆집 저항차 다음으로 승차감이 좋지 않다. 구형 전동차라서 소음과 진동이 심한데다(코일볼스터 대차 특유의 통통거림은 다른 의미로 일품이다.) 저항제어 전동차라는 특성상 발열이 심하며[2], 서울메트로 열차라 의자가 스테인레스 재질이기 때문에 오래 앉아있으면 엉덩이에 쥐가 나는 걸 느낄 수가 있다. 한겨울에 타기라도 하면 프라이팬에 엉덩이가 노릇노릇 익는 듯한 느낌을 맛볼 수도 있고 단열에 취약한 낙창식 창문의 특성상 뒤통수에서 찬바람을 맞을 수 있다. 그래도 최근에 대수선을 거치면서 승차감이 기존보다 향상되었다고 한다.

급행 운행은 하지 않고 완행으로만 운행하며(1호선에서 서울메트로는 급행열차 미운영) 그마저도 코레일과의 협약에 의하여 양주역(2011년 10월까지는 의정부역) 이북과 병점역 이남에서는 운행하지 않는다.

3 제작 시기별 분류

3.1 초저항 (1974 ~ 1978, 1989)


아직까지 1001호가 굴러다니던 시절.


신정차량기지에 보존되어 있는 1001호.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전동차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노선인 수도권 전철 1호선 구간을 운행하기 위해 서울지하철공사에서 도입한 전동차이다. 철도청에서 도입한 같은 전동차와 함께 국내 최초의 지하철 전동차, 국내 최초로 생산한 전동차 등등 오만가지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전동차이며 한국 도시철도 역사의 산실이다.

당시 철도차량 기술 자체가 빈약한 증기기관차와 객차, 화차를 겨우 만들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초기분은 일본을 통해서 직수입, 후기분 부터는 국내에서 조립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철도청 차량과는 일본 기술자문단과 공동으로 설계를 의뢰하는 등 기본 설계베이스는 거의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 철도 동호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열차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도쿄 지하철 5000계나 도큐 8500계와 매우 흡사한 식빵형 전두부를 지녔으며[3] 그 외에도 일본 국철 101계, 103계, 301계 등과도 비슷한 상자형 전두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초기분의 경우는 태생이 일본이기도 하고.

1호선 설계 당시에 간선철도 전철화의 호환성을 고려해 철도청의 전철 구간은 교류 25,000볼트 60HZ 주파수 전압으로, 서울지하철의 종로선 구간은 직류 1,500V 전압으로 설계, 시공되었기 때문에 절연구간과 교직혼용에 대응한 설계가 이루어져 있고, 최대 승객하중의 약 110%까지 버텨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들 지하철공사 소속 차량의 경우 74년 1호선 개통으로 도입된 6량 10개 편성 60량은 1972년 4월 10일 대일 차관계약에 따라 1973년 5월 히타치와 계약되어 생산, 1974년 4월부터 완성된 차량들이 바지선을 통해 국내에 반입되기 시작했다. (TC 20량, M'20량, M차 20량으로 도합 60량), 같은 해 7월 28일까지 시운전을 마치고 8월 15일 본선 개통에 투입되어 운행에 들어갔다. 철도청 차량과의 구별을 위해 외장 도색은 붉은색을 채용, 그 외에 내, 외적인 사양에 일부 차이가 있다.

전동차의 국산화 과업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후,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공업 주도로 73년 2월부터 국산 전동차 생산준비와 일본차량(주)와의 제휴를 통한 기술 취득절차, 1975년도 11월, 국고 채무부담행위 예산에 의한 구매계획의 국회 통과 과정을 거쳐 국산 전동차 개발을 시작했다. 1976년 12월 철도청에 TC, M', M 각각 3량이 처음으로 국내 생산을 마치고 반입되었다. 이후 한국기계공업이 대우중공업으로 사명을 바뀐 이후 철도청에는 본격적으로 국내 조립된 차량들이 증차분으로 납품되기 시작한 것에 따라 지하철공사 측에서도 추가 증차를 위한 6량 6개편성을 국내 생산하기로 결정, 대우중공업(주)와 1977년 11월까지 16량(TC 6량, M'5량, M 5량)의 국산 전동차가 납품되어 시승식을 갖고, 78년 2월에 2차로 2량(M, M' 각 1량씩), 78년 6월에 3차로 18량(TC 6량, M차 6량, M'차 6량)이 반입, 78년까지 6량 16개 편성을 운용한다. 비록 국산화는 실제 전장품이 거의 수입품인 단순 조립에 그치는 것이었지만 철도차량 제작사에 한 획을 그은 나름 인상깊은 일이었던것.

수 차례에 걸쳐 85년까지 코레일의 초기저항 차량이 대부분 10량화 되는 와중에도 6량 편성을 고수하다가 87년 냉방개조 이후에는 10량화가 추진되었다. 이미 경인선은 수용량이 한계치에 이르러 헬게이트가 열린 상태였기 때문에 6량이었던 지하철공사 소속 차량들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던 경부선으로만 원칙적으로 투입되었으나 10량화 이후에는 제한이 풀렸다. 88년 12월에 10량화 증차분 32량이 현대와 대우로부터 공동 발주(T차 8량, M차 8량, M'16량) 89년부터는 16개 전 편성이 10량으로 운행된다. 이들 증차분은 출입문이 강판에서 스테인리스로 바뀌고 손잡이가 삼각 형태로 변경되는 등의 소소한 변경이 있었다.

한동안 국내에서 운용되는 유일한 중문열차였다.[4]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원래 서울 지하철 계획은 여러대의 열차를 병결하여 운행하는 구상을 했다. 이는 러시아워대에는 열차 여러대를 붙여서 많은 승객을 나르고, 평시에는 6량 한편성으로만 운행해서 배차 운영을 유연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당시 사람들에겐 지하철이라는 물건이 너무 신기한 나머지에다가, 지하철의 장점이 너무 부각되면서 예상했던 것에 비해 상당량의 승객이 늘어나면서[5] 사실상 흑역사 중 하나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원래 자주자주 열어줄 계획이 있던 문이었던지라, 나중에 가면 밀폐가 잘 안 되어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문제점이 있었다고...

냉/난방 시설은 상당히 후달린 편이다. 최종 도입분까지 에어컨 따위 없이 모두 선풍기였고, 이는 당시의 극심한 혼잡율과 함께 여름철 지하철 통근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었다.[6] 특히나 여름에 저항제어기가 설치된 칸은 더 심했다. 속도 조절시 발생되는 에너지를 저항열로 처리했기 때문. 출입문이 열리면 올라오는 열기는 가뜩이나 더운 차내를 사우나 못지 않은 곳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차내에는 수동 개폐 창문을 제외하면 환기 설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출퇴근 시간 혼잡도+탁한 공기+더운 실내 온도+장마철 습기와 어우러지면 정신이 아득했을 정도였다.
결국 1990년대에 차내 냉방장치를 에어컨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진행되어 대부분의 열차들이 에어컨 개조가 되었다.[7] 허나 초기 개조차량은 냉방성능이 매우 부족했으며, 일부 차량에서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이 열차 내부에 떨어지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기도 하였다.

퇴역은 1998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77년에 편성 단위로 최종적으로 도입된 분량은 2002년에 모두 현역 은퇴. 이제는 더이상 그 사각형 식빵 모양의 전두부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서울메트로는 장래에 생길 지하철 박물관에 이 차량을 기증하기 위해 101편성의 74년 도입분 6량을 2호선 신정차량기지에 보존하고 있는데, 그 곳에는 보존용 차량을 위한 유치 공간이 따로 있을정도로 서울메트로는 이 차량에 대해 각별하다. 또한 상태가 퇴역 당시의 상태와 거의 같다. 다만 1002호[8] 선두차의 경우 출입문을 2호선 신정지선의 245편성 2045호와 교환, 이유는 불명이나 서로 재도색을 해서 끼워넣은 상태가 되었다. 신정기지에는 2호선 201편성도 보존 중이지만, 101편성에 비해서 운전실 기기가 뜯겨나가고 차체가 여기저기 부식되는 등 상당히 엉망인 관리상태를 보이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개통 극초창기[9]에는 일부 1호선의 빨간 초저항 열차가 2호선으로 다니기도 했다.[10]

1989년 제작 차량은 아직도 서울메트로 1호선 열차에 드문드문 짬뽕편성으로 들어가 있다. 원래 6량 1편성으로 도입되었다가 8량, 10량 순으로 길이가 길어졌기 때문에, 초저항에 들어간 차량이라도 10량으로 증결될 때 도입된 차량은 아직 내구 연한이 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차량은 모두 불연재 개조가 되어 있으며 초저항 개조차 중 110편성에 편입된 차량은 접이식 의자 시범사업으로 개조된 적도 있다.(1610호)

일본 철도 동호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열차 중 하나. 일본 국철 101계, 103계, 301계 등과 매우 흡사한 선두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태생이 일본이기도 하고...

3.2 개조저항(1999~2003)

서울메트로장수만세.

JR 서일본103계 전동차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가 있다.

초저항의 대량 폐차가 시작된 1999년, 그 당시 운행하던 차량들 중 일부는 1989년에 1호선 10량화 사업에 의해 추가로 반입된 것이라 내구 연한이 남아있었는데, 초저항이 대부분이던 Tc차가 전부 폐차되면서 운전실도 없이 덩그러니 남아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남은 무동력 객차 중 일부를 잘라서(!) 서울메트로 4000호대 전동차의 전두부에 기초하여 운전실로 개조하여 현재까지 운행하고 있다. 무동력 객차 중 다른 일부는 초저항을 대체할 서울메트로 1000호대 VVVF 전동차의 부수차로 들어가서 운행되고 있다.[11][12] 1977~1978년에 들여왔던 차들 역시 2002년에 전부 폐차되었는데 89년산 증결분 부수차들이 남아서 이들을 모아 신차의 부수차로 넣어서 다니게 된다.

2014년에 수선을 통한 15년 연장 사용 판정을 받았다. 전 차량이 대수선과 시운전을 마치고 영업운전에 들어갔으며 112편성은 시운전 하루만에 퍼져버리기도 했다. 2015년 12월 이후 전 차량이 대수선이 완료되어 더이상 1호선에서 롤지를 볼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대수선이라고 보기엔 다소 빈약한 수준으로, 승객 입장으로써 체감할 수 있는 것은 냉방기 교체(VVVF차량과 같다), 객실내 LED 행선안내게시기 설치, 외부 행선안내기 LED화, 회로장치 수선, 스크류식 압축기 적용, MG에서 SIV로 교체 정도고 나머지는 전장품 중검수 수준이다. 이 정도 개조는 대부분의 구형 전동차들이 실시한 상태. 국내에서 거의 최후로 전동발전기와 피스톤식 공기압축기를 달고 다녔던 차량이지만 이제는 그 특성도 사라진다. 이후로는 서울메트로 3호선과 부산 1호선의 쵸퍼차량만이 남게 되는데, 이들 차량도 2020년대까지 폐차되거나 VVVF 마개조를 통해 사실상 교체가 예정되어 있다. 현재 인버터 차량에 개조되어 투입된 저항제어 부수차들도 마찬가지로 연장사용 판정을 받아 계속 운행할 예정이다. 명실상부 철도계의 살아있는 화석이 될 듯. 심지어 운행구간도 도입 당시와 비교해 길어졌다. 개조 없이 달리는 난카이 6000계 전동차도 해내지 못한 운행구간 연장을 초저항이 해냈다.

2015년 12월 현재, 모든 개조저항 측면 행선판을 막아두었다. 하지만 코레일 구간의 스크린도어가 아직 전 역에 설치되지 않은데도 측면 행선판을 막아두었다. 스크린도어 없는역이 있어도 측면 행선판 막아둔 이유가 에너지 절약이라고 한다. [13]

3.2.1 개조저항 107편성 → 개조짬뽕저항 111편성(1999, 2004)

89, 99, 04년식 차량이 혼합된 차량의 형태가 일품이다.

1999년에 폐차되고 남은 차량을 모아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동력차 4량이 부족해 6량(4T 2M)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게다가 그렇다고 조기폐차하기에는 내구연한이 너무 많이 남았다. 또한 당시는 IMF 크리로 인해 상당히 경기가 어려운 시기였는데 모터카가 없이 객차만 남았다면 VVVF모터카를 조합하는 형식. 즉, 개조저항 객차에 VVVF 동력카 형식으로 갔겠지만 저항모터카도 2량 남은 상황이기에 남는 차들만으로 VVVF 차량을 만들 수도 없었다. 현대정공에서 기존 전동차(저항제어)와 맞는 사양으로 차량을 새로 제작하여 107편성으로 만들어 운행하게 된다. 선두차 형태는 3VF 전동차와 비슷한 모양으로, 다른 선두차 개조차량과 사양을 얼추 맞췄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반개폐식 창문과 출입문의 직사각형 창문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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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2년 2월 22일,어? 수원역 장내에서 철도청 소속의 모터카가 신호대기 중이던 서울지하철공사 소속 전동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다.[14] 게다가 하필이면 들이받은 차량이 새로 뽑은지 3년밖에 안 된 107편성이었던 것이다.[15]이 사고의 보상을 두고 코레일은 구형 저항제어 열차를 주려 했으나[16] 안그래도 새차 박살나서 열받던 지하철공사 측은 차량 신조 비용이나 이번에 새로 뽑은 차를 요구하여 보상이 2년이 넘게 지연되었다.[17] 결국 새차를 부숴먹은 코레일 측이 차량 신조 비용을 물어주는 것으로 합의[18]를 하긴 했는데 서울메트로에서는 이 금액에 약간 더 보태서 기존 차량은 조기폐차나 개조로 신정지선이나 성수지선으로 보내고 신조차를 뽑을것을 착수했었으나 곧이어 감사원의 지적으로 무산되었다. 직접적으로 들이받혀 두동강 절단파손된 선두차량은 폐차되고 아예 부품까지 새로 제작, 선두차량에 인접해 있던 차량은 파손된 부품을 재활용해서 새로 제작했으며 나머지 4량은 약간의 수리를 거쳐 2004년 11월에 111편성으로 바뀌어 운행을 재개하였다. 참고로 현재 107편성은 VVVF 전동차다.

그래서 현재 111편성을 타보면 다른 저항제어 전동차들과는 달리 묘하게 때깔이 좋은걸 느낄수가 있으며, 창문도 낙창식과 반개폐식으로 나뉘어져 있고, 출입문 창문도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으로 나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얇은 창틀과 두꺼운 창틀도 나뉘어져 있는 완벽한 짬뽕편성이며, 어째선지 대수선 이전에는 잔고장이 많기로 유명했다.

111편성과 마찬가지로 추돌사고로 짬뽕이 된 경우는 코레일 뱀작이, 2호선 239편성이 있다.[19]
  1. 거의 차체가 강철 또는 연철로 용점된 통짜 구조라 보면 된다.
  2. 출입문에 붙어 있는 굴림체로 쓰인 안내문구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3. 특히 5000계와 도큐8500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80% 비슷하다.
  4. 현재 초저항Tc카는 전량 폐차되었고 대신 신분당선 D000호대 전동차대구도시철도공사 3000호대 전동차가 비상탈출용으로 중문을 채택했다.
  5. 지하철 개통 후 1980년대 말까지 서울의 지하철은 RH 기준 250%~300%의 혼잡율을 매우 흔하게 기록하던 때이다. 참고로 현재 서울 지하철에서 가장 혼잡한 9호선 염창~당산 구간의 RH 때 혼잡율이 237%이니 250%~300%면 엄청난 수치임을 짐작할 수 있다.
  6. 당시 신문에 심심하면 냉방화 요구가 기사나 독자기고란에 올라올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7. 냉방개조 조선공사(한진중공업) 라는 팻말이 차량 내부에 부착되었다. 조선공사라는 약칭을 쓴 대한조선공사는 훗날 한진중공업으로 사명이 변경되었고, IMF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선박,건설부분 등은 잔류하고 철도부문만 현대로템으로 흡수되었다.
  8. 101편성 맞다. 현재의 차호변경이 있기 전 번호로서 과거의 차호체계는 현재의 차호체계와는 다르다.
  9. 신설동-종합운동장 운행 시기
  10. 리그베다위키의 서울메트로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항목에 있는 사진 중 분명 1호선 전동차임에도 불구하고 행선판이 종합운동장으로 나와있는 것이 있다. 그 사진의 배경이 된 역은 신설동역으로 추정된다.
  11. 색깔을 똑같이 칠해놔도 겉에서만 봐도 확연히 다른 게 보인다. 옆 씰링도 없고 창문도 낙창식, 출입문 창도 정사각형으로 한눈에 봐도 다르다.
  12. 해당 편성은 105, 106, 109, 110편성
  13. 서울메트로 1000호대 VVVF 전동차, 서울메트로 3000호대 VVVF 전동차, 서울메트로 4000호대 교직겸용 차량은 코레일 구간의 스크린도어가 아직 설치되지 않은데도 측면행선판 작동된다.
  14. 이 사건 때문에 원래 2004년 천안역까지 한번에 연장개통하려던 것을 2003년 병점역까지만 조기개통하였다. 왜 병점역까지 먼저 개통했는지는 병점역 항목을 참조.
  15. 정확히는 동력차 4량만 1999년산.
  16. 그도 그럴 것이, 협상이 잘 안 풀리자 코레일이 돈을 좀 더 얹어주겠다고 했으니 거의 확인사살.
  17. 2002년에 동글이가 도입되었기는 한데, 사고가 난 이후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납작이가 신차였다. 그런데 '뽑은'의 의미를 조금 변화시켜 해석한다면, 그 "새로 뽑은 차"라는것은 코레일이 사고 이전에 주문하여 사고 발생시엔 제작 중이었던 동글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1호선 동글이는 코레일이 더더욱 넘겨줄 리가 없다. 아직 자기들도 안 굴려본건데...
  18. 합의당시 코레일이 서울메트로에 변상해준 금액이 67억이다
  19. 111편성은 일부 칸이 새로 제작된 것이고, 319X06, 319X07편성은 납작이에 머리만 뱀눈이로 바꾼 형태이며, 239편성은 미개조 차량과 개조 차량이 섞인 것이다. 뱀작이와 111편성은 영등포 ~ 금천구청 구간, 혹은 평일 출퇴근시간 한정으로 영등포 ~ 병점 구간에서도 같이 볼 수 있고, 111편성은 군자차량사업소 소속이고 239편성은 신정차량사업소 소속이지만 239편성이 군자차량사업소로 오면 111편성과 239편성을 군자차량사업소에서 같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