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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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日淳

대한민국 국군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15대 남재준16대 신일순17대 김장수

진정한 똥별 중 한 명.

대한민국 국군군인. 1948년 생으로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1]

출처. 육군사관학교 26기로 졸업, 임관했다. 동기로는 국방장관을 지낸 이상희가 있다. 제28보병사단, 제3군단, 육군교육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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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을 받으러 들어가는 신일순 대장. 2004년에 공금횡령으로 현직 대장으론 최초로 구속 수감되었다. 그러나 군부의 반감을 우려한 정부의 의지[2]에 의해 횡령금액(1억)[3]을 죄다 추징하면서도 징역형 대신 벌금형을 받았다. 2003년에 소장이 7천만원을 수뢰해 징역 5년을 받은 것과 달리 솜방망이 처벌이란 말이 나왔다. 출처

부하들을 몹시 잘 갈구는 걸로도 유명하다. 동아일보의 월간지인 신동아에서 다룬 대목이다.

예비역 중령 K씨는 2년 전 신 대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발한 바 있다. 2000년 5월 3군단 예비군 관리대대장이었던 K중령은 이른바 북풍사건이 언론을 통해 불거진 직후 당시 3군단장이던 신 대장에 의해 보직해임됐다. 북풍사건이란 19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군 수뇌부가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를 과장해 여당에 유리한 선거분위기를 조성했던 사건이다. K중령은 당시 합참 정보부서에 근무했었다.

K중령의 보직해임 사유는 부대 무단이탈에 따른 지휘체계 문란. 근무시간에 부대 인근 병원에 갔다 오면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예비군동원훈련장에 보고 없이 들렀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구색 맞추기로 씌운 혐의였고, 진짜 이유는 북풍사건과 관련해 YTN 기자의 전화취재에 응한 데 있었다. 당시 신 대장은 K중령에게 YTN 건을 거론하면서 “너 같은 XX는 인간쓰레기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육사를 나왔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K중령이 북풍사건의 진실에 대해 말하려 하자 “북풍사건엔 관심 없다”며 입을 막았다.
K중령은 보직해임 조치로 자신의 특기인 정보와 아무런 관련 없는 군수사령부로 발령이 났다. 이듬해 보직해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냈으나 1, 2심에서 모두 패했다. 그가 신 대장과 당시 3군단 감찰참모를 고발한 것은 행정소송 과정에 자신에 대한 감찰보고서와 국방부 인사소청인사위원회에 제출된 문서에서 사실과 다른 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 고발사건을 육군본부 검찰부로 이첩했다. 육본 검찰부는 감찰보고서 내용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신 대장 등을 불기소 처분했다. 지난해 6월 전역한 K씨는 신 대장에 대해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부하는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군 생활 30여년 중 3군단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신 대장이 교육사령관을 지낼 때 예하부대에 근무했던 예비역 대령 K씨는 “신일순에게 조인트 까인 대령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로 ‘신일순과 한번도 같이 근무한 적 없으면 복 받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참모총장이 교육사 행정학교를 순시했을 때 일이다. 이 경우 교육사령관은 행정학교장과 더불어 헬기 앞에 대기했다가 총장을 맞이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교육사령관인 신 대장은 총장이 헬기에서 내렸는 데도 한쪽에서 행정학교 장교들을 모아놓고 혼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K씨 기억으로는 “너희들 똑바로 일 안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게 요지였다.
참모총장 비서실장을 지낼 때의 일화도 그가 부하들에게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신 대장의 깐깐한 업무 스타일에 비서실 직원들은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의전과의 한 군무원은 결국 심장병을 얻은 후 사표를 냈다고 한다. 총장의 외박 기간에 비서실 전직원을 육사 생도 때처럼 완전군장시킨 후 24시간 근무하게 한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연합사 장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된장찌개 사건’은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벌어졌던 일이다. 4월 중순 신 대장은 취임 첫 행사로 연합사 소속 장성들과 그 부인들을 초대해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장소는 서울 남성대 클럽하우스. 참석 인원은 20여명에 이르렀다. 메뉴는 4000원짜리 된장찌개였다. 사전에 신 대장은 자신이 직접 메뉴를 선정한 후 보좌관에게 찌개 하나를 2~3명이 먹도록 주문하라고 지시했다. 즉 사람 수보다 적게 찌개를 시키고 공기밥을 추가하라는 얘기였다.
보좌관이 당일 식당에서 보니 1인용 찌개라 두세 사람이 하나씩 먹기엔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부득이 신 대장의 지시를 어기고 한 사람 앞에 하나씩 찌개를 주문했다. 다음날 보좌관과 비서실 직원은 신 대장 방에서 한 시간 가량 부동자세로 선 채 속된 말로 엄청 깨졌다. 신 대장은 "왜 지시대로 하지 않았냐" "너희들 돈 들어가는 거면 그렇게 했겠냐"고 호통을 쳤다. 남성대 회동에 참석했던 한 장성은 나중에 그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고 한다. 연합사에서 신 대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모 장교는 “그처럼 아낀 공금을 유용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출처

그가 구속된 데는 사관학교든 출신 눈치를 안 보는 군법무관들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단 평가도 있다. 당시 신 대장의 구속 수사를 국방부 검찰단이 주도했는데 주무자가 소령이었다. 소령이 대장을 어떻게 구속시키냐며 장교단 내에서 굉장히 싫어했다.

똥별 중에서도 부정부패, 인사 줄타기, 인격 모독에 이르기까지 3안타를 달성했고, 그나마 장교로서 3대 징계 사유인 성 군기, 음주 운전, 보안 사고는 가까스로 피했다.
  1. 오랜 영남권의 득세로 인해 호남의 군맥은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꾸준히 군내에 일정한 숫자를 유지했다. 김대중 정권을 만나 호남 출신 군맥들은 주요 요직에 진출했는데 이때문에 인적풀이 갑자기 늘면서 사고도 많이 쳤다고... 대표적인 호남 군맥으로 김장수가 꼽힌다. 김장수는 그래도 능력이나 인품면에선 신일순과는 극과 극이니까 같은 선상에 놓는건 실례다.
  2. 재판부는 금액 대부분이 접대에 쓰였다고 참작했다.
  3. 제3군단 군단장 시절에 9천3백만원, 부사령관 시절에 1400만원 수준인데 2003년조영길 국방장관한테 경고를 받은 탓에 부사령관 횡령 금액은 적은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