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스프린터/클래식 스페셜리스트
1.1 마리오 치폴리니
말이필요없는 전설적인 스프린터 항목참조 사자왕
1.2 마크 캐번디시
선수로서의 재능은 최상급
인간으로서의 품성은 쓰레기.
영국, 정확히는 맨 섬 출신의 스프린터로 이명은 미사일. Etixx - Quick-step 소속의 에이스로 원래는 트랙 선수 출신이었다. 트랙 선수 출신답게 한번 불이 붙으면 누구도 못따라 오는 강렬한 스프린트로 유명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스프린터 인지라 오르막에 약하다는 약점이 있어 그랑투르에서는 종합 우승보다는 스테이지 우승을 노리는 선수.
한때는 하이로드 팀의 강력한 리드아웃맨들에 의존한 나약한 스프린터 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2010 투르 드 프랑스에서 팀의 서포트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1] 마지막 스테이지 샹젤리제에서의 극적인 우승을 포함, 총 다섯 스테이지 우승과 그린저지 포인트 2위를 차지, 논란을 종식시키고 명실공히 최강의 스프린터의 자리에 등극했다.
특이한 점으로 팀에서 준 잔차가 마음에 안들시 부품을 자기 마음대로 바꾼다.. 실제로 스캇도 버린적이 있고 FSA크랭크는 싫다고 듀라에이스크랭크를 다른팀에서 빌려와서 장착한적도 있다..
2011년 투르에서도 샹젤리제 포함 총 다섯 스테이지에서 승리하였고, 생애 최초로 그린 저지도 획득하여 변함없는 폭발력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소속팀 HTC 하이로드가 스폰서쉽 만료로 해체크리...영국 내셔널프로젝트인 팀 스카이로의 이적이 점쳐지고는 있다.
2011년 11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UCI 월드챔피언십 도로부문에서는 브래들리 위긴스, 게런 토머스를 필두로 한 강력한 영국팀[2]의 리드아웃을 바탕으로, 월챔 등극에 성공하였다. 이 공로로 왕실로부터 작위까지 수여받았다!
팀 동료인 버니 아일과 함께 예상대로 2012시즌 팀 스카이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2년 TDF에서 브래들리 위긴스의 마이요 존에 주력하기 위해 전략적인 후원이 없었지만 4연속 샹젤리제를 제패,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면서 손가락 4개를 치켜올리는 세레머니를 취하였다.
영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로드 금메달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캐번디시를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코스도 평지 위주로 설계하였다는 후문. 게다가 같은 팀 스카이 소속인 2012 마이요 존을 입은 브래들리 위긴스가 TDF에서 자신의 마이요 존을 위해 희생해준 캐브가 금메달을 딸 수 있게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언까지 했지만 결과는 페이스 조절 실패로 인해 29위에 그치고 만다.
TDF 3 스테이지 승리를 포함, 비교적 성공적인 2012시즌이었지만, 본인은 위긴스, 프룸 등 GC컨텐더 중심으로 구성될 수 밖에 없는 스카이 팀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 결국 2013 시즌에는 1년 만에 다시 새 팀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이적하는 팀은 벨기에의 명문 오메가-파르마 퀵스텝.[3] 토니 마틴, 벨리츠 형제 등 적지 않은 선수와 스탭들이 前 하이로드 동료이며, 마땅한 GC컨텐더가 없는 팀 상황을 감안하면 새 시즌에는 다시 팀의 주력으로 스프린트 승리에 집중할 수 있을 모양. 여름만 되면 작아지는 똥부넨은 잊자 똥부넨은 코블 3연전에나 집중해라
2013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에서 스프린터 우승을 차지했으며 통산 스테이지 100승이라는 기록까지 남기게 되었다.
2016년 현재에는 디멘션 데이터팀에서 서벨로를 타게 되었다!!
2016 투르 드 프랑스 1스테이지 1위를 하였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사이클 세부 종목인 포인트 레이스 도중 한국 박상훈 선수와 이탈리아의 엘리아 비비아니 그리고 호주의 글렌 오시어에게 사고를 냈다.캐번디시는 스피드를 조절하면서 52번째 바퀴를 돌다가 바로 뒤에서 추격하는 박상훈의 앞을 가로막은 것. 캐번디시의 뒷바퀴에 앞바퀴가 걸린 박상훈은 그대로 쓰려진 반면 캐번디시는 넘어지지 않았다. 캐번디시는 충돌 직전 박상훈을 분명히 봤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는 고의성이 짙었다. 사고 직후 낙차로 의식을 잃은 박상훈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함께 넘어진 나머지 두 선수는 자전거를 수리한 뒤 레이스를 마쳤다. 그러나 캐번디시는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았고, 그대로 은메달을 받으면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비비아니도 메달은 받았으니 입을 다물었고...) 현장에서 취재한 외국 기자들의 소셜미디어에 따르면 캐번디시는 사고에 대한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영국 언론들도 사고에 대한 질문을 꺼렸다. 결국 캐번디시가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는 했다. 그런데 비비아니에게만 했지, 글렌 오시어와 박상훈에게는 사과를 안했다.
상세 링크는 이곳을 참조 :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44&aid=0000447193
체이싱 레전드 등의 다큐와 그 동안 GT의 좋은 성적으로 그를 아는 국내 사이클리스트들에게도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상태.
8월 16일 박상훈 선수가 "캐브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사고 직후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고, "박상훈한테 사과한건 아니다. 네덜란드인이 아니지 않느냐." 하던 뻣뻣한 태도에서 급변한 건데, 비난 여론에 밀려서 사과를 했든 진심이든 사고를 당한 당사자가 대인배스럽게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하니 뭐 더이상 이 일로 비난하기도 어렵게 되었지만, 국내에서의 그의 인상은 오노 급으로 추락하게 됐다.
1.3 파비앙 칸첼라라
세간에는 TT 스페셜리스트로 흔히들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원데이 클래식(하루짜리 대회) 스페셜리스트이다.[5][6]
스위스 덕후, 이명은 스파르타쿠스. 스위스 출신 로드레이서로 조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지라 스위스 덕후라는 오명을 썼다(?) 그야말로 파워 라이더의 전형을 보여주는 엄청난 주행을 자랑하며[7] 특히 타임트라이얼에는 상대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최강이다. 09년 UCI 월드 챔피언 에서 타임트라이얼 부문 우승, 2010년 '북쪽의 지옥' 파리-루베 경기에서의 우승 등 타임트라이얼과 원데이 클래식 레이스의 스페셜리스트. 2010년 파리-루베 경기에서는 무려 50km의 브레이크 어웨이 독주로 우승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뭐야 이거... 하지만 그랑투르와 같은 스테이지 레이스에서는 약하다. 그래서 일부 팬들은 칸첼라라의 괴물같은 독주 능력을 조금 희생하여 클라이밍 능력을 약간 보완하면 TT전문가가 그랑 투르를 제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8]
2009년~2010년 투르 드 프랑스 에서는 첫날의 타임 트라이얼을 우승, 산악 구간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며칠동안은 마이요 존느를 입기도 했다. 2010 시즌까지는 슐렉 형제와 함께 삭소뱅크 소속이었지만, 2011년 시즌부터 슐렉 형제와 함께 신생팀인 레오파드-트렉 팀으로 이적, 팀 이름에서도 알수있듯이 이젠 칸첼라라가 트렉 자전거를 탄다! 2010년 호주 월드 챔피언쉽에서 TT부문 금메달로 전무후무한 4연속 타임 트라이얼 월드 챔피언이 되었다! 2위와의 차이가 무려 1분이나 나는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다...사람이 어떻게 말을 이깁니까 이건 사기에요
그 압도적인 실력과 준수한 외모 덕에 자전거 갤러리의 일부 로드게이들이 흠모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칸첼신 날가져요 흡사 용...용개??
2011년 시즌 들어서는 예년만큼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클래식 경기에서도 심한 견제에 시달리는가 하면[9], 본업인 TT에서도 토니 마틴 등 영건들에게 물먹기도 하고...심지어 투르 드 프랑스 ITT에서는 7위의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10] 물론 그래도 월챔은 칸첼라라의 차지일거라는 예상이지만...일부에서는 작년의 스페셜라이즈드에서 트렉으로 자전거를 갈아탄 탓이라며 트렉을 까는 반응도 있다.
2011년 월챔 TT부문에서는 혹시나 했던 팬들의 기대를 역시나 저버리고, 토니 마틴은 물론 영국의 브래들리 위긴스에게까지 밀리며 3등을 기록하며 월챔 5연패가 좌절. 2012년 런던 올림픽 TT에서는 과연 칸첼甲이 부활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칸첼신도 슐렉 형제와 함께 2012년 레오파드와 래디오쉑-닛산의 합병으로 탄생한 새 팀으로의 합류가 확정되었다. 다만 2011시즌, 본인이 가장 큰 애착을 보이는 클래식 경기에서 소속팀 레오파드의 부실한 클래식 전략/서포트로 인해 영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본 바 있는 칸첼라라는, 이전 팀보다도 더욱 슐렉 형제의 그랑 투르 제패에 올인할 것이 확실한 새 팀의 탄생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듯 하다. 감독으로 내정된 요한 브뤼넬을 은근히 디스하기도(...)
투르 드 프랑스 2012에서는 10라운드까지 완주하고 11라운드에서 대회를 기권했다. 이유는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게 되어서, 그 자리에 꼭 같이 해야한다고. 이후 런던 올림픽에서 낙차로 쇄골 부상을 입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 결과 TT 세계선수권은 토니 마틴의 2연패로 낙착. 칸첼라라 항목인데 토니 마틴 내용이 더 많아 보인다면 눈의 착각
2012시즌 내내 소속팀 레오파트-트렉이 재정 문제로 월급을 제대로 못주고 있다든지, 감독한테 찍힌 선수에게는 고의적으로 출전 기회를 안준다든지 하는 흉흉한 팀 관련 루머로 인해 칸첼神도 1년 내내 이적 루머가 따라다녔지만, 결국은 룩셈부르크 팀과 1년 더 함께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12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여전히 강력한 라이더이며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 및 스폰서 계약과 함께 세계 최고의 타임트라이얼리스트 중 한명이지만,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 부상이 겹쳐 2010년의 플란더스-루베 더블을 정점으로 명백히 하향세...인 줄 알았는데 글쎄 2013 시즌에 완벽한 부활을 선언했다! 오래간만에 완벽한 타이밍의 어택과 칸첼甲만의 폭풍독주를 선보이며 3년만에 플란더스-루베 더블 우승으로 화려하게 복귀. 역시 사이클에서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2013년 월챔 TT에서 Sky의 1위인 토니 마틴과 위긴즈에게 밀려 3위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2015년 3월 28일, E3 하렐베케에서 집단 낙차로 척추 골절이라는 부상을 당했다. 상반기 시즌은 완전히 물 건너 갔고 자칫 잘못하면 선수생활이 끝장날 수도 있는 심각한 레벨.
2015 TDF에 출전하여 스테이지3에서 옐로 져지를 입는데 성공하지만 부상의 악화로 결국 스테이지4는 출전하지 못하고 그해의 TDF를 포기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그가 구사하는 영어는 English가 아니라 Fabianese라고 한다. 유창하긴 유창한데 자세히 들어보면 영어가 아닌 칸첼라라만의 언어라나. Multilingual의 명백한 한계 그리고 겁쟁이 페달의 등장인물 이즈미다 토이치로의 배근 이름이 파비앙이다.
2016 TDF에서 배번은62번, 주로 팀을 위해 달리느라 공격적인 플레이는 하지 못했고, 전문인 TT마저도 부진한 성적을 냈으며, 후반부에는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기권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곧 은퇴하는 단물 다 빠지 선수인 줄 알았지...
2016 리우하계올림픽 싸이클 종목에서는 남자도로경주와 남자도로독주에 참가하였다. 첫 경기인 남자도로경주에서는 원데이클래식 전문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34위(6:21:54)로 완주했다.(우리나라 선수는 펠로톤에도 따라가지 못하고 실격했다.) 그러나 그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 두 번째 경기인 독주에서는 그의 전성기 시절이 떠오를 정도로 대단한 플레이를 보이며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1:12:15) 경기가 끝난 후 좋아 죽을 듯이 시상대에서 뛴 모습이 압권.
1.4 피터 사간
http://pbs.twimg.com/media/CfIFfxwXIAUUlHg.jpgPeter Sagan
"도대체 이 슬로베니아 꼬맹이는 누구야?" - 랜스 암스트롱 [11]
"이런 유형의 라이더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도 할 수 있는 녀석." - 이반 바쏘 [12]
"제 2의 에디 먹스 보다는 제 1의홍진호피터 사간이 되겠다." - 피터 사간 본인 [13]
슬로바키아 출신의 올라운드형 윌리덕후[14] 스프린터로 90년생의 젊은 선수이다. 위 멘트들이 말해주듯이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에디 먹스 급의 괴수 올라운더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어마어마한 전망까지 나오는 무시무시한 재능.
프로 데뷔 이후로 쭉 캐논데일 팀이었으며 피니시 라인에서 윌리를 하는 등의 기행급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과격한 퍼포먼스 덕에 싸이클 전통주의자들은 물론이고 펠로톤 내에서도 가끔 고참급 선수들한테 쓴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안 할 녀석은 아니다.
프로 전향 첫 해인 2010년에, 투르 드 프랑스의 전초전 격인 스테이지 레이스[15] 파리-니스와 투르 드 로망디에서 세 스테이지 승리 및 파리-니스의 그린저지를 획득하며 순식간에 프로싸이클 계의 핫이슈로 떠올랐고, 2011년에도 다양한 스테이지 우승과 더불어 첫 출장한 부엘타에서 세 스테이지를 거머쥐며 몇 년간 캐번디쉬가 독주하던 스프린터 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2012년은 그야말로 사간의 해. 봄철 클래식 대회에서도 우승은 못했지만 수시로 포디움에 올라가며 재능을 과시한 사간은, 역시 주요 스테이지 레이스인 투어 오브 캘리포니아와 투르 드 스위스에서 개인 타임트라이얼 포함 도합 8 스테이지를 따내며 다시 한번 싸이클링 계에 충격을 주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4일 연속 우승은 덤. 투르 드 프랑스에서도 스테이지 3승으로 캐브와 승수는 동일했지만, 특유의 올라운드 능력으로 스테이지 중간중간의 스프린트 포인트를 착착 쌓아서 생애 최초의 그린저지 입수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이 기세는 2013년에도 여전하다. 봄철 클래식 경기에서는 기대에는 좀 못미치는 결과를 얻었지만 - 그래도 주요 클래식 경기인 겐트-베벨겜에서 우승했고, 밀란-산 레모, 플랜더스에서는 2위로 포디엄에 올랐다. 그리고 그 포디엄에서 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평가 - 연초의 투어 오브 오만의 2개 스테이지 우승을 시작으로 역시 이런저런 레이스를 모조리 쓸어담고 있다.
별명은 투어미네이터, 사간꾼, 국내한정으로 사간츄 등등. 대체로 그의 사기적인 재능과 스프린트 스킬 더불어 괴상망측한 셀러브레이션을 칭송하는 별명들이지만 사간꾼은 다소간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도 있다. 2012년 투르 드 프랑스의 스테이지1에서 계속해서 칸첼라라의 피를 빨다 마지막에 어택하여 이기는 등 논란이 될 만한 행동 때문인데...2분 30초쯤에서 칸첼라라와 사간이 어택하고 뒤이어 팀 스카이의 하겐 선수가 후미에 붙는데, 칸첼라라가 눈치를 주는 데도 절대 앞으로 안 나갔다.
이전 버전에서는 비신사적인 행동이라고 서술했지만, 그 정도로 문제가 될만한 무브는 아니었다. 칸첼라라 항목에서도 나와있듯이 칸첼라라의 파워 자체가 사간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릴 수 있는 굇수급이기 때문에,[16] 어줍잖게 로테이션을 받아주어 칸첼라라에게 다시 연료를 비축할 타이밍을 주었다가는 브레이크어웨이 그룹에서 다시 강력한 파워로 어택을 시도하는 칸첼라라의 등짝만 바라보게 될 것이 뻔한 상황. 실제로 2010년 칸첼라라가 역대급 퍼포먼스로 플랜더스-루베 더블 우승을 따낸 이후로는 사간 뿐 아니라 그 어떤 선수라도 칸첼라라의 교대를 쉽게 받아준 적이 없다. 받아주는 선수가 대인배인 것이다. 실은 받아 주면 지니까 못 받아주는 거다. 칸첼 뒤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붙어 가는 것만 해도 힘든데...
문제라면 칸첼라라는 사이클리스트로는 드물게 미남이고 그간 보여준 역대급 퍼포먼스 덕에 어마어마한 팬덤을 업고 있는데다가, 사간은 약간 시건방진 정줄놓 세레머니와 인터뷰 등으로 적잖은 안티가 유입 중인 상황이었다는 것. 이런 논란은 특히 싸이클 팬덤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한 느낌이 있는데, 기다리는 것도 엄연한 작전이다. 사간만 탓할 일이 아니며, 여기서 사간이 교대를 받아주었다면 경기의 승패를 떠나 감독에게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을 것이다. 현대의 레이스에서는 모든 선수가 무선으로 감독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13년 투어 오브 플랜더스에서 준우승한 후에 포디움 걸의 엉덩이를 만지는 퍼포먼스사건으로 데꿀멍한 전력이 있다. 기사는 여기서 보자, 그리고 우승자는 칸첼라라. 당시 국내에 붙은 별명은 엉덩사간.
2013년 TDF에서 캐번디시를 이기고 스프린트 순위 1위를 차지했다. 2013 TDF 스테이지 7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사간 특유의 올라운드 능력을 살려 초반 2,3등급 산악구간에서 캐논데일 트레인 전체가 타팀 스프린터들을 빽점놓고 150km(...)의 흠좀무한 리드아웃에, 골인지점에서는 어찌 따라오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스프린트가 약한 타팀 선수들을 양민학살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사간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2014년 TDF에서도 무난하게 스프린트 순위 1위를 차지했는데, 초반인 스테이지 6에서 2위가 137포인트일 때 217포인트일 정도의 압도적인 점수차로 가져갔다. 다만 스테이지는 전혀 먹질 못해서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는 모양.
2015년 TDF에서도 효율적인 포인트 관리로, 스테이지 우승은 없었지만 그린져지를 차지하면서 4년 연속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그리고 9월말 미국의 리치먼드에서 열린 로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현재까지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승리 하나를 추가 했다.
2016년도에는 시즌 초부터 2위를 거듭하며(...)콩의 자리를 확정하는가 싶더니 겐트-베벨험 우승으로 사기가 오르고 일주일뒤 엄청난 독주능력으로 투어 오브 플랜더스의 우승을 차지한다! 이는 사간의 커리어 첫 모뉴먼트 우승이자 월드챔피언져지를 입고 차지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그 뒤 파리-루베에 출전했지만 계속되는 불운에 결국 11위로 마무리하였다.
2016년 7월 4일, TDF 2일차 스테이지에서는 전날 산악왕을 포함한 브레이크어웨이 3인조를 앞에 두고 2진 펠로톤에서 20여 킬로미터를 가다가 막판에 따라붙은 후 결승선 수십 미터를 남겨놓고 냅다 밟아 바퀴 하나 차이로 1위로 들어왔다. 스테이지 우승으로 옐로 저지와 그린 저지 동시 획득. 벌써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
유독 칸첼라라와 연관이 많다. 칸첼라라도 사간의 재능은 인정하지만 그 녀석 너무 건방져... 라는 식으로 인터뷰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간X칸첼신 나의 칸첼신은 그러지 않아 그 말 취소해!
2 클라이머
2.1 마르코 판타니
1970년 1월 13일 ~ 2004년 2월 14일
전설로 남은 이탈리아의 명 클라이머. 한때 이탈리아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17] 클라이머로는 유일하게 투르 드 프랑스를 우승했고 그랑투르를 모두 우승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이탈리아 선수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체세나(Cesena) 출신, 1970년 1월 13일 생. 1998년 투르 드 프랑스와 지로 디탈리아를 동시에 석권(Giro 92시간 50분 17초, 평속 40.08km/h, TDF 92시간 49분 46초, 평속 42.1km/h)했으며, 현재까지 두 경기를 단일 시즌에 석권한 마지막 선수로 남아있다. 1994 지로 종합 2위, 1994, 1997 투르 드 프랑스 종합 3위. 순수한 힐클라임 스페셜리스트로서는 예를 찾기 어려운,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1997 TDF 10스테이지 랄프 듀에즈에서의 36분 30초의 기록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는 중이며, 가장 근접한 기록은 2004년 랜스 암스트롱의 37분 36초.(그러나 둘 다 알프 듀에즈를 오를 때 EPO를 복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2년 암스트롱 관련 USADA의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로는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
해적(Pirata, 삐라따)이라는 별명이 그 외모(대머리에 반다나(बन्धन Bandhana, 힌두어로 묶다라는 뜻. 삼각건 형태의 머플러이며, 머플러, 머리두건, 기타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가능하지만, 판따니는 주로 머리두건으로 활용), 왼쪽 귀의 굵은 귀고리) 뿐만 아니라 라이딩 자체도 딱 어울릴 정도로 경기 스타일 자체는 강력한 어택, 경기 내내 공세적이여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5년 월드챔피언쉽 도중 서포트카와 정면충돌로 인해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며, 수술과 물리치료 끝에 왼쪽 다리가 3cm나 짧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재기에 성공했고, 그게 새운 대기록들이 대부분 이 이후에 나왔다는 점을 보면 약물의혹 자체가 무색해지는 정도다. 업힐에서 펼쳐지는 댄싱은 가볍고 경쾌해서 버터플라이라고 불리운다. 2001년 투르 드 프랑스의 몽방뚜에서의 랜스 암스트롱과의 처절한 클라이밍 혈투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명경기.
하지만 약물 스캔들 등에 시달리다 2004년 2월 14일, 마약을 과다 복용함으로서 신들이 사는 언덕을 향해 힐클라임을 떠났다. 해적이라는 별명과 함께 큰 귀 덕분에 엘레판티노(코끼리)라는 별명도 있었다. 본인은 이 별명을 싫어하고 해적이란 별명을 좋아했지만....
부검으로 밝혀진 사인은 코카인 과량투입에 의한 대뇌부종 및 심부전. 장례식은 고향인 세제나티코(Cesenatico)에서 거의 국장 수준으로 치루어졌다. 판타니는 부상에서 재기 한 이후 계속해서 약물에 의한 도움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의심받아왔고, 1998년 지로와 투르 더블에 성공한 후 그 의혹이 극에 달했다. 사실, 그랑 투르를 달리는 것 자체가 자신과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고통과의 싸움이고, 최고의 선수들은 그것이 고통을 잊기 위한 것이든 경기에서의 성적으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든 항상 약물에 의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선수 들인 알베르토 콘타도르, 마크 캐번디시 같은 선수들도 의혹을 받고 있다. [18]
지로 디탈리아 경기위원회에서는 2004년도에 이탈리아측 알프스에 있는 고도 1852m의 파소 디 모르티롤로(Passo di Mortirolo)에서 1994년 환상적인 경기를 펼친 마르코 판따니를 기념하기 위해 코스를 헌정하고 이 코스에서 우승한 선수에게는 시마 판따니(Cima Pantani, 판타니의 언덕)라는 특별상을 수상한다. 1994년 판타니가 미겔 인두라인을 버리고 날아가는 동영상은 여기 참조. 판타니를 추모하는 수많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살아생전에도 최고의 선수로,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죽어서도 이토록 사랑받는 선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2.2 나이로 킨타나
1990년생의 콜롬비아 출신의 노안 클라이머.
Nairo Quintana(167cm/59kg)
나이로 퀸타나(Nairo Quintana)는 2000년부터 현역으로 활동 중인 콜롬비아 국적의 프로 사이클리스트이다.
2013 뚜르 드 프랑스 종합 2위와 산악왕 져지, 영 라이더 져지를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콜롬비아의 고산 지대 출신답게 근성의 힐 클라이밍이 특기인 선수로 2014 지로 디탈리아 16번째 스테이지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2016년도에는 투르에 출전하여 종합3위로 마무리했으며 부엘타에도 출전한결과 스테이지 우승과 함께 종합우승을 거머쥐었다!
산악 지역의 빈민가 출신으로서 일찌기 통학할 때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중고 자전거를 사 놓고는
매일 아침에는 자전거를 타고 계곡 밑 학교에 등교하고, 하교할 때에는 자전거를 탄 채로 다시 집으로 힘겹게 올라오면서
클라이머로써의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후 콜롬비아 국내의 자전거 대회에 우승을 한 그는 어른이 되자마자 스페인에 가서 사이클리스트 팀인 무비스타에 들어가게 된다.
유럽에서 클라이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여러 차례 시상대에 나갈 정도.
3 올라운더
3.1 강지용
본명은 강지용이지만 본명을 아는 사람은 드물고 다들 꼬꼬마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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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진성자덕이(앞에있는 앤디말고 뒤에서 해맑게 웃으면서 앤디를 쫒아가는 사람이다(…))[19]
1988년 2월 19일생으로 2006년 중고 로드바이크를 그냥 통학용으로 구입했는데, 그 자전거의 원 주인이 국대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면의 또다른 나를 발견한 것인지 그길로 본격 자덕질을 시작(…). 첨 자전거를 탈 때 남산을 끌바전설로 시작해서 남산산악왕대회에서 산악왕을 쎄우더니[20] 2007년에는 서울랠리에 출전하여 결국 로드뽕을 맞고야 만다.
2008, 2009년 TDK에서 개인종합 4위를 기록했으며[21] 군대 갔다온 뒤 복귀한 2011년에는 팀 와츠의 소속으로 3위로, 2012년에는 TDK를 개인종합우승, 스프린트, 신인상을 혼자서 쳐묵쳐묵하는 것도 모자라 산악까지 넘보다가[22] 결국에는 프로 투어팀[23]에 후보선수로까지 올라가서 일류급 선수들과 뛰고 있다.
강지용의 놀라운 점은, 각종 아마츄어 대회에 본격 출전한 2008년 경 부터로 스포츠 선수로써는 매우 늦게 시작을 한 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국내대회에서 강자로 떠오를 정도의 실력향상이다.[24] 그리고 미칠듯 한 맨탈과 근성의 소유자
팀 와츠 소속으로 ~~ 활동 중이며, 현재는 코레일사이클단 소속으로오리카 그린엣지에서 스따지에르[25]로 테스트 받는 중.
- 자덕연예인 인명사전 강지용편에 간략한 프로필(?)이 나와있다.
- 아직도 자갤을 잊지않고 찾아오며 꾸준히 눈팅도 하는 듯.
- 오리카 그린에지팀의 로 등용시험격인 투어 오브 앨버타(Tour of Alberta)[26]에서 초반 낙차에 휩쓸려 팔과 다리에 넓게 쓸리는 상처를 입었으나[27] 강력한 멘탈과 근성으로 91위를 기록.(오리카 그린엣지에 나와있는 경가결과는 여기 참조)
- 강지용의 블로그.
그냥 평범한 자덕이다.프로필에 보면 취미가 포풍 사이클링이다. 범상치 않다. - 강지용의 공식 팬 페이스북.
3.2 랜스 암스트롱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전설임은 분명하다. 랜스 암스트롱을 볼 것.
3.3 미걸 인두라인
스페인 출신의 싸이클리스트로 최초로 투르 드 프랑스 5연패에 성공한 인물이며 8명뿐인 그랑투르 더블 달성자 중 한 명.[28]
1991, 1992, 1993, 1994, 1995 투르 드 프랑스, 1992, 1993 지로 디 이탈리아 우승자.
188cm의 장신과 온화한 성격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전설적인 선수로 베르나르 이노의 뒤를 이은 투르 드 프랑스 본좌라인의 계승자 중 한명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뛰어난 선수였지만 특히 타임트라이얼에서 매우 강했던 선수로 타임 트라이얼만으로 2위와 4분 가까이 차이를 벌였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신체적 스펙 면에서는 역대 최고로 뽑을 수 있는 선수로 188cm의 장신과 보통의 2배 가까이 큰 심장, 압도적인 폐활량을 자랑했다. 동시에 매우 온화했던 선수로 한번은 아마추어 경기에서 관중이 다른 선수에게 던진 병이 그의 머리에 상처를 냈는데 인두라인은 그것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그를 발굴했던 에차베리 감독은 인두라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는데, “내가 아는 한 인두라인 같은 선수는 에디 메르크스밖에 없다. 그러나 메르크스는 로봇 같은 사람이었고 그의 힘은 다른 선수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줬다. 반면 미겔은 군주였다. 그는 관대했고 경쟁자를 존경했다.”
3.4 알베르토 콘타도르
스페인 출신의 사이클리스트로 2007, 2009, 2010 투르 드 프랑스, 2008, 2011, 2015 지로 디 이탈리아, 2008, 2011, 2014 부엘타 에스파냐 우승자. 포스트 랜스 암스트롱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009시즌에는 랜스 암스트롱과 함께 팀 아스타나 소속이었지만 둘 사이는 최악이라는 것이 중론. 2009시즌 투르에서 팀 아스타나는 암스트롱과 콘타도르 사이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했는데, 결국은 콘타도르 중심으로 팀이 재편되면서 이 과정에서 둘의 감정싸움이 여과없이 언론을 타기도 했다.
자타공인 레전드이자 미국의 영웅인 암스트롱과의 대립도 있고, 플레이스타일이 그 분을 연상시킬 정도로 승리에 대한 집념이 지독하게 강한 편이라 이미지가 살짝 나쁜편이었는데...2010시즌 들어 도핑 논란이 일면서 이미지가 더 추락하고 있다. 어째 불쌍한 사람.
노란색을 좋아하고 상징색으로 쓰는데 랜스 암스트롱도 같은 노란색을 쓰고 있어서 랜스 빠들에게는 더더군다나 눈엣가시.(룩 클릿페달의 콘타도르 에디션을 보면 노란색 클릿페달이다.) 09시즌 투르에서 랜스와 대립했던 모습 탓에 미국 언론이 악역으로 모는 탓도 좀 있고...어쨋거나 스페인에서는 국민영웅 대접. 카 퍼레이드도 한다.
원래 클라이밍의 본좌였는데다가, 지난 09, 10시즌의 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TT에서도 탑클래스 TT 전문가들에 뒤지지 않는 빼어난 올라운드 기량을 과시, 당분간은 적수가 없을 전망...이었으나 약물 의혹으로 인해 다소 궁지에 몰려있다. 본인은 먹었던 쇠고기에 들어 있던 성장촉진제 성분이 검출된 것이라고 주장하고는 있으나...
2011년 시즌에는 슐렉 형제, 칸첼라라, 옌스 보익트 등 간판 라이더들이 떠나 전력이 와해된 삭소뱅크 팀으로 이적, 투르 3연패에 도전하게 된다...일 줄 알았는데, 2011년 1월 27일, 스페인 싸이클협회로부터 1년간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비비시 보도 물론 항소 절차가 있긴 하지만, 징계를 받을 경우 은퇴도 불사하겠다고 버텨온 콘타도르의 선택은 과연 어찌될 것인지... 최악의 경우에는 자격 정지는 물론 2010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도 박탈당할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2월, 스페인사이클협회의 결정은 "도핑아님, 무혐의"로 결정되었다. 이게 자국 선수 감싸기라는 비판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콘타도르는 2011년 시즌을 일단 시작한 상태. 국제사이클연맹이나 국제반도핑기구등 상위조직의 결정은 2011년 3월까지는 아직 미정...이었는데 2011년 8월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 콘타 측에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서 발표해달라는 입장이지만...
어쨋거나 투르 드 프랑스 참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오래간만에 2011 지로 디탈리아에 참가, 격이 다른 라이딩을 보여주며 니발리, 스카르포니 등 GC 경쟁자들을 저 멀리 보내버렸다. 게다가 기존의 방어적인 라이딩 스타일에서 벗어나, 산악 스테이지 초반부터 사정없이 경쟁자들을 갈구는(...) 공격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어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팬들의 반응은 아 이제 콘타도 코너에 몰리고 보니 팬심을 좀 의식하는구나, 정도...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투르 참가가 결정되었는데...초반부터 낙차와 그로 인한 무릎 부상 등 불운이 겹친데다 지로 참가의 여파를 역력히 드러내며 결국 종합 5위로 투르를 마무리하였다. 그래도 역시 시종 공격적인 라이딩으로 확실히 팬들에게 어필은 한듯.
그러나 2012년 2월 6일, 긴 시간을 끌어오던 2010년 뚜르 도핑혐의가 결국 인정되어 2년간의 자격정지를 받아 2012년 8월까지(혐의가 제기된 2010년 8월부터) 경기 참가가 중지되고 2010년 뚜르 우승은 앤디 슐렉, 2011년 지로 우승은 스카포니에게 넘어갔다. 2012년 투르도 참가하지 못하게 되어 2012년 부엘타에 출전하겠노라 선언 후 이상한 침대광고 찍으면서개인적으로 트레이닝중. 결국 2012년 부엘타에서 알레한드로 발베르데와 호아킨 로드리게스, 크리스 프룸과의 혈투 끝에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화려한 복귀에 성공했다.
사실상 콘타 원맨팀이나 다름없는 소속팀 삭소뱅크가 벌어놓은 UCI 포인트가 간당간당하여 2013시즌 프로팀(=1부리그) 잔류가 어려워보였으나, 러시아 내셔널 프로젝트인 카츄샤 팀이 애매한 이유로 2부리그 격인 프로컨티넨탈 팀으로 강등되면서 가까스로 1부에 잔류할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100회를 맞이하는 TDF에서 화성에서 내려온 프룸에게 밀려 2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4위로 TDF를 마감했다. 그래도 소속팀이 팀 종합순위 1위를 차지했으니....
결국 2013년 부엘타에 불참을 선언하고 내년 TDF에서 복귀한다고 한다. 지못미
2014년 TDF 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스테이지 8에서 프레임 두동강낙차로 인한 무릎 부상으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2014년 TDF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뷰엘타 아 에스파냐를 석권한다. 경기 내내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인간 갖잖은 능력으로 인해 외계인이라 불리우는 크리스 프룸을 능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게 단순히 놀라운게 아니라 TDF의 부상 이후 누가보더라도 제대로 회복도 못한 상황에서[30] 이런 미칠듯한 질주를 보여줬다는 것.
2014년 TDF는 크리스 프룸은 물론이고 강력한 도움선수인 알레한드로 발베르데(Alejandro Valverde)[31]의 서폿을 받는 당해년도 지로 우승자인 나이로 킨타나(Nairo Quintana),[32] 호아킴 로드리게스(Joaquim Rodríguez), 떠오르는 별 파비오 아루(Fabio Aru), 사무엘 산체스(Samuel Sánchez) 등 산악은 물론 평지에서도 날고 기는 궷수들이 총 출동한 별들의 잔치였던 걸 감안한다면 정말 엄청난 결과란 걸 알 수 있다.
2015년도에는 지로 디탈리아에 출전하여 부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였으며 곧바로 TDF의 우승을 노린다고 하였다.이른바 지로-투르 더블.그런데 정작 투르에서는 피로감이 가시지 않은지 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5위로 마무리하였다.다소 아쉽게 됐지만 본인은 결과에 만족한다며 훈훈하게 마무리짓는다.
2016년도에는 지로 디탈리아까지 불참하면서 투르에 집중하였지만 스테이지1과 2에서 상당한 부상을 입으며 좋지않은 상황.결국 절반도 가지못하고 중도에 포기하였다.이후 올림픽까지 불참하며 부엘타를.노렸지만 이번에도 무릎부상을 입으며 종합4위로 마무리짓는다.그동안 소속되었던 틴코프팀이 해체되어 2017년도에는 트렉-세가프레도팀으로 이적하게된다. 2년 계약을 했다.
3.5 에디 메르크스
풀네임은 Edouard Louis Joseph, Baron Merckx.[33]
프랑스어권 벨기에의 Meensel-Kiezegem에서 1945년 6월 17일에 출생한 싸이클리스트로 에디 먹스라고도 부른다. 싸이클 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선수로 꼽길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 선수다. 투르 드 프랑스&지로 디 이탈리아 5회 우승에 부엘타 1회 우승, 5대 모뉴먼트를 포함한 수많은 클래식 레이스 등을 모두 휩쓸었다. 투르 드 프랑스 역사상 스프린터 포인트 져지와 산악왕 져지 그리고 리더져지인 마이요 존느를 동시에 입은 선수는 이 선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역사상 단 2명뿐인 트리플 크라운의 최초 달성자(지로+뚜르+월드)
우승기록으로는 그랜드투어만으로도 1969, 1970, 1971, 1972, 1974년 TDF 다섯 번 쳐묵쳐묵, 1968, 1970, 1972, 1973, 1974년 지로 디탈리아"도 5회 우승, 1973년 부엘타 에스파냐 우승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선수다. 그래서 별명이 식인종(Carnnibal). 그와 경쟁했던 선수의 딸이 했던 말에서 나온 별명이다.[34] 혼자 다 먹었다고...근데, 이게 끝이 아니다. TDF 사상 최다 스테이지 위너의 영예도 갖고 있다. 도합 34회 우승. 한 해에 여덟 개의 스테이지를 승리한 선수로도 기록되고 있다. 그것도 1970, 1974년 두번 씩이나.[35] 지로 디 이딸리아와 뜨루 드 프랑스의 경기간격이 거의 한달밖에 안되기 때문[36] 근데, 그랑뚜르는 초대받는 것 자체만으로 선수에게는 가문의 영광인 경기이고, 거기서 한 스테이지를 따는 것 조차 대를 물려 자랑거리이다. 하물며 져지 중 하나만 입어도 가보가 될 판인데, 이 인간들은 도대체 뭐냐...
주요 기록은 아래와 같다.
- 프로 선수로서 최다 우승 기록 : 525회
- 한 시즌 최다 우승 : 54회
- 투르 드 프랑스 누적 최다 스테이지 승리 : 34회
- 1회의 투르 드 프랑스 최다 스테이지 승리 : 8회, 1970년과 1974년
(1930년의 샤를 펠리시에와 1976년의 프레디 마르턴스와 공동) - 투르 드 프랑스 노랑 저지(=종합 순위 선두) 보유 일수 최대 : 96일
- 같은 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노랑, 녹색, 빨강 땡땡이 저지를 입은 유일한 선수(1969년)
- 클래식 경기 최다 우승 : 28회
- 단일 클래식 경기에서 최다 승리 : 7회(Milan-SanRemo)
- 5대 모뉴먼트에 모두 우승 경험이 있는 단 3명의 선수중 하나
- 현재까지 두명뿐인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 세계선수권 개인 도로 3회 우승(현재까지 개인통산 3회 우승이 최대기록으로 총 4명의 선수가 보유)
- 1972년 멕시코 시티에서 새운 아워 레코드인 49.431Km는 1984년 프란체스코 모세르가 유선형으로 만든 자전거로 기록을 깰 때 까지 깨지지 않았다.Wikipedia, Hour Record
은퇴 후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사를 차려 잘먹고 잘사신다. 후원팀이 그랑투르에도 참가한적도 있고 [37] 우리나라에도 수입되고 있으니 관심있는 자덕이라면 한번 사볼만도 하다.
3.6 앤디 슐렉
Andy Shleck. 룩셈부르크 출신의 사이클리스트. 올라운더라기보다는 클라이머에 가까운 선수로, 몸매도 뼈밖에 안남아 호리호리하고 얼굴도 준수하여 인기도 매우 많다. 5살 위의 형 프랭크 슐렉과 더불어 룩셈부르크를 대표하는 선수. 아버지도 투르 드 프랑스 참전 경력이 있는 프로 사이클리스트로, 자전거 가족이라 할 수 있다.
2008시즌 투르에서는 우승자 카를로스 사스트레를 보좌하여 사스트레와 팀의 동반 우승에 기여하였고, 본인도 25세 이하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하는 화이트 져지를 획득하였다.
2009시즌에는 삭소뱅크 팀의 에이스로 투르에 출전하였다. 클라이밍 실력이 원체 뛰어나고 TT에서도 그럭저럭 먹어주는 훌륭한 기량의 소유자에, 형 프랭크를 비롯한 소속팀의 서포트진도 강력한, 말 그대로 우승후보였으나...클라이밍은 비슷하고, TT에서는 그를 월등히 앞서는 알베르토 콘타도르라는 먼치킨에 밀려 2009, 2010시즌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준우승에 그쳤다.
2010시즌에서는 이런저런 트러블로 콘타도르가 고전하는 틈을 타 투르 중 후반까지 옐로 저지를 수성하고 있었으나 스테이지 15에서 콘타도르와의 업힐 클라이밍 대결 도중 체인이 빠지는 통한의 실책으로 콘타도르에게 옐로 저지를 내어주었고, 이후 콘타도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불과 39초[38] 차이로 2연준을 달성, 3년 연속 화이트 져지에 만족해야 했다.[39]
2010시즌 종료 후 형인 프랭크 슐렉, TT괴물 파비안 칸첼라라 등 기존 삭소뱅크 팀의 주요 멤버와 함께 새로 창단된 팀 레오파드-트렉 팀으로 이적이 결정, 2011년부터는 트렉의 자전거를 탄다. 그의 빈 자리에 라이벌 알베르트 콘타도르가 오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약물 파동으로 투르 이후 사실상 시즌을 일찍 마친 콘타도르와 2011년 투르에서도 치열한 타이틀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밝아온 2011년 투르.. 콘타도르가 부진하고 토마스 뵈클러라는 깜짝 스타가 옐로 저지를 수성하는 가운데 슐렉 형제는 중후반까지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코스 탓, 다른 선수 탓이나 하는 슐핑계, 슐렉 자매...로 전락하는가 했으나 스테이지 18, 투르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장장 60km 어택으로 다른 GC 경쟁자들을 털어내고, 스테이지 19에서 마침내 옐로 저지를 입수! 하였으나 스테이지 20의 개인 타임트라이얼에서 카델 에반스에게 2분 30초 이상 처절하게 발리며 3연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아 콩라인...
2012시즌에는 소속팀 레오파드와 닛산-래디오쉑의 합병으로 소속이 바뀌게 되었다. 자전거는 트렉 마돈을 유지하는 듯.
2014시즌에는 뚜르에 형 프랭크 슐렉을 지원하기 위해서 트렉-팩토리 팀원으로 출전하였다. 그러나 스테이지 3의 피니시 직전에서 크게 낙차하였다. 무릎을 크게 다쳐 경기를 포기하고 이후 팀과의 재계약도 성사되지 않으면서 여러 불안한 전망이 나왔다. 그러던 결국, 2014년 10월 9일 트렉-팩토리 팀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뚜르에서의 낙차로 인해 무릎 연골이 완전히 파열되어 장거리를 탈 수 없게 되었다고한다. 본인 왈, '내가 은퇴를 결정한 것이 아닌, 내 무릎이 은퇴를 결정하였다'고. 비록 선수 생활은 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해 은퇴한 옌스처럼 자전거 업계에서 계속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3.7 옌스 복트
Jens Voigt
내가 어택한다고 해도, 승리할 확률은 잘 쳐줘야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어택을 나가지 않는다면, 승리할 확률은 0%다. 0%보다는 10%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 논리적인 게 아닌가?
독일 출신.[40] 옌스 보이트라고도 부를 수 있다. 사실 그의 이름의 발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서,[41] 직접 본인에게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묻는 인터뷰 영상까지 존재한다.... 다 필요없고 옌스성님
근성 그 자체. 사이클계의 멘탈갑. 71년생으로 2013년 현재 뚜르 드 프랑스 참가선수 중 최고령이며 약쟁이랜스 암스트롱과 동갑이다. 언제나 유쾌하고 솔직담백한 모습, 싸이클링과 팬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는 펠로톤의 최고 인기인 중 한 명.
1997년 프로에 데뷔하여 2013년이 그의 프로 17번째 시즌이며, 비얀 리스가 이끄는 CSC->Saxobank 팀의 주력 멤버로 카를로스 사스트레의 2008년 투르 우승 및 슐렉 형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고, 2011 시즌에는 슐렉 형제와 함께 신생팀 래디오섁-레오파드-트렉으로 이적. 17년간 그랑 투르의 스테이지 우승 3회를 포함하여 숱한 레이스 우승 경력을 갖고 있으며, 특히 2007-2009년에 걸쳐 크리테리움 인터내셔널을 3연패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어지간한 동년배 라이더들이 하나 둘 은퇴하는 와중에도 펠로톤의 살아있는 화석이자 산신령으로 후배들의 무한한 존경과 팬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프로싸이클링계의 아이콘.
...뿐이라면 여기에 특별히 항목이 생길 이유로는 부족했겠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 커리어가 무진장 화려하거나 역대급 임팩트가 있었거나 한 건 아니다.
그가 팬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바로 그의 미칠듯한 공격성향. 위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기회만 주어지면 무조건 펠로톤을 뛰쳐나가 외로운 브레이크어웨이에 나선다. 사실 그가 말한 10%의 가능성도 많이 높게 잡은 것이고, 펠로톤이 브레이크어웨이를 잡지 못해 브레이크어웨이가 승리할 확률은 사실 1~5%. 그러나 어느 스포츠나 비슷해서, 팬들은 공격적이고 화끈한 선수에게 열광하기 마련이다. 레이스 내내 팀 동료들의 보호 아래 펠로톤에 묻혀 있다가 마지막 500M의 스프린트 승부에 나서는 스프린터나, 업힐 피니쉬 한정으로만 공격성향을 보여주는 클라이머/GC라이더 들에게서 볼 수 없는 브레이크어웨이의 화끈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가 바로 옌스 보이트.
실낱같은 가능성만을 보고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브레이크어웨이에 외로이 도전, 무시무시한 펠로톤의 추격을 뿌리치고 간발의 차이로 스테이지 우승을 거머쥐는 승부사의 모습에 싸이클링 팬들이 열광하는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17년 동안 브레이크어웨이 한우물을 파시고, 게다가 이 브레이크어웨이로만 통산 70승 이상을 거두셨고 올해도 거두고 계신 옌스 선생... 자덕들은 그저 하악하악
게다가 옌스 성님은 언제나 팀과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따듯한 남자시기까지 하다. 옌스와 같은 유형의 선수들은 오르막도, TT도 제법 하는 등 올라운드 성향이 강하지만, GC에 도전하기에는 종합적인 능력치 총합이 부족하고, 클라이머나 TT전문으로 나서기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당하기 어려운, 한마디로 어정쩡한 포지션에 있다. 이런 선수들은 간간히 주어지는 브레이크어웨이 기회를 성공시키는 것 말고는 승리의 영광을 누리기 어렵고, 팀 내에서는 주로 GC에 도전하는 진짜 올라운더들을 보호하며 타팀의 어택을 견제하는 역할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도움 선수(domestique)인데, 옌스는 이 분야에서도 특유의 열정과 팀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헌신으로 펠로톤와 팬들의 압도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연속된 낙차사고와 자전거가 완파했지만 팀카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체이싱 레전드로 유명한 2009년 투르에서는 알프스의 다운힐에서 낙차로 뇌진탕과 안와골절로 리타이어, 모두가 은퇴를 예상했으나 2010년 시즌에 변함없는 모습으로 복귀. 2010년 투르에선 중립차량의 자전거를 빌리기까지하는 악조건도 이겨냈다.) 완주하여 다시 팀을 위해 달리는 엄청난 근성!에 그에 대한 평가는 좋을 수 밖에 없다. 원데이 레이스 뿐 아니라 그랑 투르에서도 투르 스테이지 2승, 지로 1승으로 제 몫을 다했다.
2012년, 본인이 타는 자전거 탑튜브에 Shut up legs (다리야, 닥쳐!) [42] 라는 문구가 사진에 찍히며 더욱 더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2013년경부터 슬슬 은퇴 이야기가 있기도 했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2014년 초반부터 은퇴시기가 관심거리가 됐었다. 그래도 TDF에는 출전하여 여전한 공격성향을 보여주기도 했다.[43] 그리고 USA 프로챌린지를 마지막 프로투어로 은퇴. 이 대회에서도 역시 공격적인 라이딩으로 옌스 어디 안간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 프로투어에서의 모습
2014년 9월, 은퇴하며 마지막으로 도전한 아워 레코드[44]에서, UCI룰에 따른 기존의 공식 기록이었던 49.7km의 기록을 경신하여 51.115km를 기록해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한다. 기록을 세울 당시의 평균 파워는 430 와트를 뛰어넘은 수치였다고.
- 팬들은 이런 옌스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런 것도 만들었다. 옌스 보이트에 관한 진실
어째 척 노리스에 관한 유머와 비슷한거 같지만 넘어가자
- 2013년 현재 소속팀인 라디오색 레오파드 트랙(Radioshack Reopard Trek)팀에는 2013년 뷰엘타 아 에스빠나(Vuelta a España)에서 스테이지 10까지 우승과 산악왕을 유지하고 있는 크리스 호너(Chris Horner, 1971년 10월 23일생)와 함께 팀의 평균연령을 정신없이 올려주시고 계시다. 무서운 건 둘 다 그나이에 현역, 거기다가 한명은 GC로 뛰고 있다는 거.
3.8 카델 에반스
콩라인의 배신자
호주 출신의 싸이클리스트. 랜스 암스트롱 밑에서 만년 2인자였던 얀 울리히[45]의 뒤를 잇는, 포스트 랜스 세대의 콩라인 으로 유명했던 선수.
태어나자 마자 코가 부러지고 8살 때 말에게 머리를 채여서 반신불수가 될 뻔 한 순탄치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원래 MTB 선수 출신으로 월드 챔피언쉽과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는 등 상당한 실력을 보였었고, 2001년도부터는 유럽에서 로드레이스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2005년 Davitamon-Lotto team의 일원으로 처음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하여 GC라이더[46]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2007년, 2008년도 두차례나 종합 순위 2위를 차지하는 등 강력한 우승후보로 이름을 드높였지만 언제나 마지막 2%가 부족한 퍼포먼스+지독스럽게 없는 운[47]+도움이 안되는 팀 덕에 무관의 제왕, 콩라인의 이미지를 착실하게 이어나가던 정말로 전형적인 2인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09년 TDF에서 30위라는 부진한 성적과 싸이클리스트로서도 적지 않은 나이 덕분에 이제는 투르에서 종합우승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그해 월드 챔피언쉽에서 월드 챔프가 되어 다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다만 유명한 월드 챔피언 져지의 저주[48] 때문인지는 몰라도 10년도 TDF에서 중간에 리타이어 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을 반전시키면서 2011년도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극적으로 종합 우승을 하면서 마이요 존느를 입었다! 2011년도 TDF 초반 팀 타임트라이얼에서 2위를 하고 스테이지4에서 스테이지 우승을 하는 등 투르 초반의 분위기를 잡은데다 조지 힌캐피라는[49] 걸출한 팀원을 중심으로 한 팀의 도움,[50] 그리고 과거 2% 부족했던 퍼포먼스의 모습을 떨친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스테이지 18, 19에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옐로저지를 획득한 앤디 슐렉과의 마지막 콩라인 결정전승부처[51]였던 스테이지 20의 개인 타임 트라이얼. 에반스는 1위를 기록한 HTC 하이로드의 토니 마틴[52]과 겨우 7초차로 2위에 올랐다. 에반스는 초능력으로밖에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발목을 잡았던 알베르토 콘타도르를 1분 이상의 차이를 벌리며 제껴버렸고, 무엇보다도 그와 1분 차이로 종합순위 1위였던 슐렉을 2분 30초 가까이 따돌리면서 종합우승을 결정지었다. 콩라인 대탈선의 극적인 현장.
그의 TDF 종합 우승은 투르의 역사에 몇가지 진기록을 남겼는데 1.남반구에서 최초로 나온 투르 종합 우승자(당연히 오스트레일리아 최초의 TDF 종합 우승자이기도 하고) 2.투르 역사상 최고령 종합 우승자가 그것이다.
원래 전문 클라이머가 아닌데다 오르막을 올라갈 때 표정을 보면 정말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실제로 콘타도르, 바쏘, 사스트레 등 클라이밍 초고수들한테 고비마다 처절하게 발려온 것이 에반스 경력의 대부분이기도 했고...게다가 댄싱도 뭔가 흐느적흐느적한 것이...파워 넘치는 (전성기의) 암스트롱, 가볍고 경쾌한 콘타도르와는 비교가 많이 되지만, 역시 육체는 단명이나 근성은 영원한 것. 그의 콩라인 탈출에 박수를 보내자. 압도적인 피지컬과 천부적 재능을 지닌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1977년생으로 30대 중후반의 나이임에도 꾸준하고 엄격한 자기관리가 없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
하지만 2014년 첫 경기인 Tour Down Under에서 1초차이로 종합우승 2위를 차지했다.
3.9 브래들리 위긴스
Sir Bradley Marc Wiggins, CBE
영국인 최초의 뚜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자. 그랜드 투어를 노리는 올라운더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선수로 출발하여 많은 노력 끝에 TDF의 정상을 차지한, 사이클링 역사에서도 독특한 경력의 선수중 하나다.
1980년 벨기에 겐트에서 호주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뒤 2살때부터 런던에서 성장하였다. 처음에는 축구를 하며 아스널의 팬이었던 위긴스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크리스 보드먼의 우승 이야기를 통해 사이클링에 관심을 가지고 12살때 처음 트랙 레이스에 입문하게 된다. 이때부터 재능을 선보였던 위긴스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영국 대표팀에 선발되어 단체 추발 동메달을 따게 된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프로로 전향해서 주로 프랑스 국적의 팀에서 뛰었지만 2008년까지 그의 주종목은 트랙 추발과 투어 경기의 프로롤그&TT 레이스였다.
2015년 6월 7일, 기존 아워레코드 보유자인 알렉스 다우셋의 기록인 52.937km에서 1.589km나 앞선 54.526km 라는 넘사벽급 기록을 세우면서 현 아워레코드 보유자가 되었다. 원래 위긴스의 목표는 55.250km였으나 당일 영국의 높은 기압으로 인해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상이기때문에 가볍게 밟는것같지만 당시 아워레코드에 사용된 바이크의 기어비는 58x14.
참고로 아워레코드는 한시간동안 주행한 거리를 측정하는 기록이므로 54.526km라는 기록이 나오기 위해선 평속이 54.526km정도라는 말이 된다.... 마력으로 따지면 말 한마리 힘을 1시간동안 유지한것과 비슷하다.. 진정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날짜 추가바람) 자신의 이름을 뜬 팀 위긴스를 설립했다. UCI-Continental Level의 팀이라 뚜르나 지로 등에서는 안 뛰는 것 같고 간간히 트랙 시합이나 중규모 도로경주에 나온다. 영국의 재능있는 사이클리스트를 찾아 양성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현재 작성 중입니다 계속 추가예정-
3.10 크리스 프룸
Chris Froome
뚜르 드 프랑스 3연패에 빛나는 세계 최정상 선수
2013년 뚜르 드 프랑스의 몽방뚜 업힐 코스를 무려 평속 41.7km/h에 오르는 굇수, 아니 사람이길 거부한 싸이클계의 외계인 위긴스의 기록까지 처참하게 만들었다 카더라
TT,TTT,산악,스프린트 어떤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진정한 올라운더
팀 스카이의 리더다. TT,TTT, 산악지형, 스프린트 등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고, 타임 트라이얼과 산악은 주 종목으로 유명하며 스프린트 역시 올해 뚜르에서 그린 져지를 차지한 피터 사간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진정한 올라운더라 할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부엘타에서의 종합 최고 성적이 2위인데, 2016년 올해는 종합우승을 목표로 하며 이에 걸맞게 스테이지 10에서는 펠로톤 쯤으로 밀려난 상태에서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퀸타나 뒤로 따라붙어 3위로 치고 올라오는 계산된 추격전을, 스테이지 11에서는 뛰어난 육체를 보여주며 현재 종합순위 2위로 달리고 있다. 스테이지 19에서 상당한 시간을 벌며 격차를 줄였지만 결국 종합2위로 마무리하였다. 이는 정말 대단한 기록인데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에다가 올림픽 상위권, 라 부엘타 종합 2위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만든것이다!
-현재 작성 중입니다 계속 추가예정-
4 경륜/트랙
4.1 엄복동(嚴福童)
일제강점기 조선의 전설적인 선수.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4.2 조호성(趙浩成)
엄복동 이후에 나온 경륜계의 또 다른 전설적인 선수. 해당 항목 참조.- ↑ 2009시즌 6회의 스테이지 우승을 합작해낸 극강의 리드아웃맨 마크 렌쇼가 박치기 반칙으로 투르 중간에 퇴출되고, 다른 팀원들도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2009년과 같은 알고도 못막는 옐로 트레인 리드아웃이 불가능해졌다.
- ↑ 월챔은 일반적인 프로대회와는 달리 국가대항전이다.
- ↑ 캐브와 스카이의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적잖은 위약금이 오갔다는 정황이 있다.
- ↑ 칸첼라라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 동영상이 증명한다. 1마력은 약 745.7 와트라는 것을 참고하면서 동영상을 보면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 일전에 본인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TT보다는 원데이 클래식이 주력"이라고 밝힌 적이 있으며, 12년 시즌에 소속팀이 클래식 레이스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 ↑ 사실 이 항목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칸첼레라를 따로 TT스페셜리스트/클래식 스페셜리스트로 분류 해야한다. 그는 절대 스프린터는 아니며 앞의 분류가 스프린터의 하위 항목인 같은게 아닌 별개의 선수 타입이다.
- ↑ 심지어 도핑도 아니고 자전거에 모터를 장착했다는 모터 도핑 설이 진지하게 나왔을 정도로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한다! 그의 자전거에 찍힌 파워 수치가 1마력을 아득하게 넘겼다나 뭐라나...Fabian Cancellara-Innocent or Guilty of Cheating-You Decide - 그것에 대한 진지한(?) 고찰.
- ↑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어려운 일이다. 오르막 등판능력은 체중 대비 근육인데, 한마디로 체급을 줄이는 것이다. 체급을 줄이면 그만큰 근육량이 줄어들어 칸첼라라 특유의 출력이 발휘되지 못한다. 즉,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일 뿐더러, 줄어든 체급에 대해 선수 본인이 적응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어정쩡한 수준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GC에 도전하는 브래들리 위긴스도 어정쩡한 선수가 되었다는 평가고...다만 칸첼라라와 카델 에반스의 은사인 명코치 故 알도 사시가 마지막까지 칸첼라라의 GC 도전을 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 물론 그래도 포디움은 올라간다.
- ↑ 출발이 앞쪽인데 오후부터 날이 개면서 손해를 본 셈이라 젖은 노면을 탓할수도 있...나?
- ↑ 아래도 나와 있지만 사간은 슬로바키아 출신이다.
동양권 사람들만 두 나라를 헷갈리는 게 아니다 - ↑ 주드 로 닮은 미남 이탈리아 싸이클리스트. 지로 2회 우승자지만 이 사람도 약쟁이다.
- ↑ 아래의 에디 먹스 항목을 보면 이게 얼마나
건방진?패기 넘치는 얘기인지 알 수 있다. - ↑ 구글에서 사간을 검색하면 윌리 사진이 숱하게 넘친다.
캐브는 버니홉, 사간은 윌리 - ↑ 투르의 전초전 격으로 주요 GC 컨텐더들이 대거 출격하는 주요 스테이지 레이스로는 봄철의 파리-니스와 투르 드 로망디, 투르 직전의 투르 드 스위스와 크리테리움 뒤 도피네가 있다. 2012년의 브래들리 위긴스도 파리-니스와 크리테리움 뒤 도피네 우승으로 투르 드 프랑스 종합우승을 예고한 바 있다.
- ↑ 사간이 올라운더적 재능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절대적인 파워에서는 칸첼신과 같은 TT전문 선수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 ↑ 거진 우리나라의 김연아 정도의 유명세였다고 현지인의 증언이...
- ↑ 판타니는 도핑테스트에서 한번도 양성판정을 받은 적이 없었으나, 1999년 지로 도핑테스트에서 혈소판 수치가 높게 나와 EPO(Erythropoietin. 조혈세포를 자극하고 헤모글로빈의 생성에 영향을 미쳐 적혈구를 많이 만들도록 한다. 빈혈치료에 사용)의 사용에 대한 의혹으로 결국 경기를 마치지 못한다. 이후 다른 경기에서도 몇몇 산악구간을 제외하고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 ↑ The Epoch Timesf 기사 Andy Schleck Wins Tour de France Stage 18; Voeckler Keeps Yellow; Contador Cracks 2011년 TDF Stage 18. 2011년 TDF 개최지를 따라
성지순례투어링을 했었다. 상세한 내용은 강지용의 블로그 참조. - ↑ 정확한 연도, 기록을 아는 자덕은 내용추가바람.
- ↑ TDK는 컨티넨탈급 경기로 국제대회임과 동시에 아마츄어가 대거 참가할 수 있는 매우 드문 경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으로 외국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참가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비록 스테이지가 적지만 아마추어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프로 사이클링팀의 평속인 42~44km/h와 큰 차이가 없는 40km/h 정도로 장난 아니다.
- ↑ 머니투데이 투르 드 코리아와 만난 자전거 마니아 '강지용'
- ↑ TDF같은 전세계급 경기를 뛰는 프로 사이클링팀
- ↑ 강지용의 자전거 구입에서부터 2013년 현재까지의 간략한 내용은 바이크메거진의 인터뷰 기사인 엘리트 라이더로 다시 시작한 강지용를 참조.
- ↑ Stagairie 견습생. 후보쯤 된다. 참고로 구성은 선수는 여자팀 정식 선수로 뛰고 있는 중. 남자팀에는 일본의 벳푸 후미유키도 있는 걸로 봐서 동양권 선수가 매우 드문 프로 사이클링팀 중 은근 동양권 선수를 좋아하는 것 같다.
- ↑ 앨버타에서 열린 1회 경기였지만, 시마노 아르고스, 벨킨, BMC, 케넌데일, 가민, 오르카 그린엣지의 프로투어팀, 프로 컨티넨탈팀, 컨티넨탈팀이 경기를 펼친 나름 국제경기. 피터사간도 참가했다. 홍보성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 ↑ Tour of Alberta 2013 - Stage 1 2분 15초 이후. 3분 5초부터는 상처입은 모습이 나오니 혐 주의.
- ↑ 투르 드 프랑스 5회 우승자는 자크 앙게티, 에디 메르크스, 베르나르 이노, 미겔 인두라인이며 5연승은 인두라인이 유일. 알다시피 랜스의 기록은 말소되었다. 그랑투르 더블 달성자는 파우스토 코피, 자크 앙게티, 에디 먹스, 베르나르 이노, 조반니 바타그린, 미겔 인두라인, 마르코 판타니, 알베르토 콘타도르.
- ↑ 2010년, 투르 드 프랑스 3회 우승한 세레모니로 손가락을 세개 펼쳐보이는 콘타도르. 대회 중 어떻게 와인을 마시는 여유를 보이는지 궁금하겠지만 마지막 스테이지의 경우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퍼레이드 형식으로 편안히(?) 도는 형식이기에 가능하다. 물론 스테이지 우승을 코앞에 두는 결승선 앞에서는 그런 거 없다.
- ↑ Increíble pero cierto(믿을 수 없는 사실)(혐짤주의) 기사의 사진 중 왼 쪽이 부상 수술 후 6일 경과, 오른 쪽이 뷰엘타 20일 전 상태. 아래 사진은 두 번째 낙차 이후의 모습으로 이미 한 쪽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 2009년 뷰엘타 우승자이자 2012년 2등, 2013/2014년 3등을 했으며 킨따나와 함께 모비스타의 투톱으로 이번 뷰엘타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였다.
- ↑ 그러나 경기 중 낙차로 인한 부상으로 접었다.
앙대 영감님! 무슨소리야 작년만 해도 영라이더였어 - ↑ 보시다시피 남작이시다. 1996년 벨기에 국왕인 알베르트 II세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았다.
- ↑ "아빠 아빠 저 사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전부 먹어치웠어요! 저사람은 정말 식인종이예요!"
- ↑ 동일한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는 2명인데, 둘 다 1개 년도의 기록이다. 이미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ㅅ-;;; 한편, 랜스는 1999년 이후 오로지 뚜르 하나만 목표로 하여 1999~2006년까지 7년 연속 우승을 하였지만 이후 도핑스캔들로.... 이 중 최 고수(?)로 항상 언급되는 아저씨가 바로 에디 메르크스.
- ↑ 보통 TDF 한 경기를 위해서 1년동안 차근차근히 휴식하고 훈련하고 해야된다고. 랜스가 그런 케이스.
- ↑ 2016년 현재에는 UCI 월드투어에는 후원하는 팀이 없다.
- ↑ 역대 투르 사상 5번째로 적은 1-2위 격차
- ↑ 그러나 이후 콘타도르가 약물 검사에 걸린 것이 확인되면서 우승자 신분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 ↑ 통일 이전 동독 출신이다. 얀 울리히, 안드레아스 클뢰덴, 토니 마틴, 안드레 그라이펠 등 펠로톤을 주름잡았던/주름잡고 있는 독일 출신 싸이클리스트들은 대개 동독 출신자들이 많다.
- ↑ 심지어 이 문서에서도 복트와 보이트가 혼용되어 있다.
- ↑ 수십~수백키로를 40~50키로의 속도로 달리면 제 아무리 프로라도 피곤하고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한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문구. 아드레날린이 뚝뚝 흐르는 문구라서 남자 자덕들이 더욱 더 열광하는듯.
다들 그렇게 게이가 되는거야 - ↑ 심지어 마지막 샹젤리제 스테이지에서도 변함없이 어택을 걸었다.
- ↑ 1시간 내내 트랙을 달린 거리를 재는 기록경쟁. 도로경기와 달리 주행시간 내내 최대출력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매우 힘들다
- ↑ 랜스보다 앞서 1997년 24세의 나이로 TDF우승경력이 있긴하며 현재까지 유일한 독일인 우승자
- ↑ General Classification, 즉 스테이지 레이스의 종합 순위를 노리는 선수를 일컫는 용어. 통상 올라운더들의 몫이다.
- ↑ 2010년도 TDF에서는 옐로저지를 입자마자 낙차 부상으로 팔이 부러져 리타이어 했다.
- ↑ 사이클계의 유명한 징크스 중 하나로 그해의 월드 챔피언은 당 시즌에 이상하게 부진한 성적을 보인다는 징크스. 11년에 챔피언 져지를 입고 달리던 토르 후숍이 좋은 성적을 거둬서 없어지나 싶었더니 TT챔피언 칸첼라라가 몰락했다...
- ↑ 본인도 빼어난 올라운더이며, 과거 랜스 암스트롱의 7회 우승을 보좌한 슈퍼 도메스티크(도움 선수). 2011년 현재 펠로톤의 최고참이기도 하다.
- ↑ 그러나 까놓고 말해 이번에도 발목을 안 잡았다 뿐, 팀의 서포트는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선두그룹에서 떨어지거나, 경쟁 선수들이 어택을 치거나 할 때마다 에반스 혼자 타임트라이얼이라도 하듯 추격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을 정도...물론 팀TT에서 저 정도 성적을 낸 것만 해도 큰 도움이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일궈낸 우승이라 더욱 감동적.
- ↑ 2회 준우승자까리의 대결이었다.
- ↑ 칸첼라라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칸첼라라의 뒤를 잇는 최강의 TT 전문선수이자, 2012년 현재 월드챔피언이다! GC와는 거리가 있는 토니 마틴이 직전 스테이지까지의 산악구간 동안 후위에서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에반스의 승리나 다름없는 결과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