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이하 C.S.루이스
1898년 11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

파일:Attachment/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jpg

"기독교인간이라는 기계의 전체 설계도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설계도에서 이탈했고, 원래 설계도를 변경한 자신의 설계도야말로 진짜라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적인 것에는 이런 반응이 거듭 나타날 것입니다. 즉 누구나 거기(기독교)에서 끌리는 부분을 발견하지만, 오직 그 부분만을 골라낸 뒤 나머지는 버리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정반대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자신이야말로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싸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1]
요즘에 어떤 이들은 자선이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기보다는 그런 가난한 자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든 기독교의 도덕과 결별하는 것과 같습니다.[2]

1 개요

C.S.루이스는 영국소설가이자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평신도(layman)이다.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2 생애

북아일랜드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까운 친구에게는 잭(J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모의 사망을 계기로 15세부터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지만[3], 가톨릭 신자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성삼위(holy trinity)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으며,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톨킨과 우정을 유지했다. 그는 개신교, 성공회,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한 기독교 변증[4]과 소설, 특히 후에 영화화 된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하다.[5]

언론으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론자>라는 찬사를 받았고, 뛰어난 필력으로 인간의 본성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3 그의 기독교관

처음에 그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려고 애썼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도 한동안 성찬식만 참여했다. 말년에는 싫어하던 찬송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고.

예수를 도덕적 스승으로 보지만 그를 신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에 대해 그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런 답변을 하였다.

. "유대인 가운데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하느님으로 자처하며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줄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전부터 항상 존재해 왔다고 했습니다. 또 마지막 날 다시 와서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힌두교인 같은 범신론자라면 얼마든지 자기가 신의 일부라고 말하거나 신과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이 말이 하등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이 사람은 유대인이었고, 따라서 그가 말하는 하느님은 그런 범신론적인 신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이 점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의 말이야말로 인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말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주장 중에 이제는 우리 귀에 너무 익은 나머지 무심코 흘려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 준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이것이야말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무계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용서라는 것은 해를 입은 사람이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제 발을 밟았을 때, 제 돈을 훔쳤을 때 제가 여러분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발을 밟히지도 않았고 자기 돈을 도난당하지도 않았으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 돈을 훔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것은 아무리 부드럽게 표현한다 해도 얼간이 짓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바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했으며, 그들의 죄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양 행동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정말 하느님일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모든 죄는 하느님의 법을 깨뜨리며 그의 사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존재가 이런 말을 했다면, 역사에 등장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 우스꽝스럽고 자만에 찬 짓을 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이것은 이상하고도 의미심장한 사실인데)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복음서를 읽을 때 그에게서 우스꽝스럽거나 자만심에 차 있다는 인상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편견 없이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요. 예수는 스스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고(마태오 복음서 11장 29절), 우리는 그의 말을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인간에 불과할 경우, 온유나 겸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할 말들을 자주 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하지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그 누구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똑같은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 막을 수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이 논리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성경, 그 중에서도 예수의 언행을 다룬 복음서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으며 신뢰할 만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을 전제할 때 유효성을 얻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종교 서적을 바탕으로 그 서적의 신뢰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미친놈인지 구세주인지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부당한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유명 무신론 인사들에게 대차게 이 부분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6]

사실 저러한 주장은 기독교 대 외부세계가 아니라 기독교 내적으로 보다 유의미한데, 논리적으로 볼 때 복음서의 내용을 취사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신앙관에 대한 직격탄이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내용에 따라 예수를 뛰어난 인간으로 인정하지만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자 인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건 좀 후대의 오바가 아닌가, 하는 식의 기독교 내적인 절충주의에 대해 루이스가 가하는 비판이 바로 저것인 셈. 해당 구절이 등장하는 저서 <순전한 기독교>의 목표는 무수한 종파로 나뉘어진 기독교의 공통적 본질을 제시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론을 부정하는 절충주의를 기독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통찰을 주장의 형태로 제시한 것이 바로 위 제시문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주장의 전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좌우지간 루이스의 저서에서 인간성에 대한 흥미 있는 통찰이나 근본주의 기독교와 운동화된 기독교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성공회의 오랜 대립 문제인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에 대해서도 어느 한편에 서지 않았는데, 적어도 이단드립에 골몰하는 예수쟁이에 비하면 훨씬 개념적인 사람이다. 말년에 상당히 가톨릭에 호의적인 태도로 있었다는 평가도 많고, 실제로 가톨릭계 서적들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인물.

교만의 반대편에 선 미덕은 겸손이다. 겸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겸손의 첫 단계라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이 단계를 밟기 전에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이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교만이다.

순전한 기독교[7]

그의 소설인 나니아 연대기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듀나의 평가) 황금 나침반의 저자 필립 풀먼은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종교 프로파간다"라고 대차게 깠다[8]. 성차별의 대한 문제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은유를 제외하고는 사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지만[9] 사막의 칼로르멘은 이슬람권에 대응되며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은 쉽게 벗어나기 어려워보인다. 또한 그의 (아동용) 소설이 그의 기독교 변증론에 비해 훨씬 일방적인 선전성이 강하다는 것도 분명 의미있는 비판이다.

'예민한 성인 독자들이라면 나니아와 아슬란이 모두 꿈에 불과하다고 주인공들을 설득하는 마녀, 이교신인 타슈와 아슬란을 합쳐 하나라고 속이는 칼로르멘인들, 가짜 아슬란에게 속은 뒤 진짜 아슬란마저도 부정하는 난쟁이들한테서, 루이스가 생애 후반 동안 맹렬히 대항했던 사상적 조류를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심지어 마지막 편의 악당인 원숭이 시프트의 존재가 진화론자들의 캐리커처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루이스의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수많은 창조론자들은 그냥 그렇게 믿어버릴 걸요.' (듀나)

그런데 여기서 듀나가 황당한 추측을 한 게 있는데, 사실 루이스는 창조설자가 아니라 오히려 유신론적 진화론자에 더 가까웠다. 그는 심지어 창세기 1장을 일종의 설화 내지 신화로 간주하면서, 이것을 원시 인류의 진화 과정 속에 대입하려고 시도하였다. 이해가 안 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개신교인들이 무신론 내지 반신론자들에게 공격받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는 "그렇기는 하지만 씨 에스 루이스가 말하기를..." 이 어째서 창조설 관련 주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까? 루이스가 창조설자들의 입장과는 백만광년쯤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자신의 신앙과 융합시키려고 시도했던 그의 어록을 여기 잠깐 인용해 보자.

"...신은 동물의 형상을 완성했고, 그것은 장차 인간의 매개체가 되고 신의 형상이 될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동물일 뿐이었다. 모든 물리적, 정신적 과정이 물질적이고 자연적인 것들만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신은 이 유기체의 심리와 생리에 '나' 라고 하는 새로운 의식을 심어주었는데, 그 의식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며, 신을 알고, 진실과 아름다움과 선을 판단할 수 있으며, 시간 너머에 존재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인식이었다... (중략)

 
...우리는 신이 이런 창조물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천국 같은 상태를 지속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머잖아 끝이 났다. 누군가는 또는 무언가는 자기들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이기도 했다. (중략) 이들은 신을 향해 "이건 우리 일이지 당신의 일이 아니오" 라고 말할 우주 어딘가의 후미진 곳을 원했다. 그러나 그런 후미진 곳은 없다. 이들은 명사가 되고 싶었지만 단지 형용사에 머물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자기모순의 불가능한 소망이 어떤 행위에서 또는 일련의 행위들에서 표출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소망은 아마도 열매를 말 그대로 먹는 행위와 관련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ㅡ C.S.Lewis (F.Collins, pp.210~211에서 재인용)

루이스는 '기독교'의 범주를 정하는 데 있어서는 완강한 편이었고 스스로 신앙을 가질지 판단하는 여부에서도 엄격했지만,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뒤로는 기독교 바깥의 사상이나 과학적 연구 등에는 상당히 열린 자세를 유지했다. 가령 외우주에 인류와 별도의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일이다라는 정도의 주장을 하기도. 작가다운 상상력 무분별하게 그의 발언을 인용하여 어거지를 쓰는 일부 기독교인들에 비하면 대인배적인 면에서 한참 윗길에 있다고 하겠다.

4 작품

4.1 나니아 연대기

  • 마법사의 조카(The Magician's nephew)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 말과 소년(The Horse and his boy)
  • 케스피언 왕자(Prince Caspian)
  • 새벽 출정호의 항해(The voyage of the dawn treader)
  • 은 의자(The silver chair)
  • 마지막 전투(The last battle)

4.2 기독교 관련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10]
  •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 픽션)
  •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
  •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
  • 시편 사색
  • 네 가지 사랑(The Four Loves)
  •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
  • 기적(Miracles)
  • 피고석의 하느님(God in the Dock, 유작 모음, 1964년)

4.3 그 외

  • 순례자의 귀환(첫 소설, 1933)
  • 인간 폐지
  •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 까지
  • 우주(Space) 3부작[11] - 침묵의 행성 밖에서, 페렐란드라[12], 그 가공할 힘

4.4 전기물

이 책들은 C.S.루이스가 직접 쓴 책이 아니다.

  • 루이스와 잭(Lewis and Jack)
  • 루이스 VS 프로이트
  • 루이스와 셰퍼의 대화
  • 루이스와 톨킨

5 트리비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바 있다. 참호전의 와중에 부상을 입어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이런 경험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등에도 반영되어 있다. '전쟁은 되려 인간이 신에 가까워 질 수 있는 곳'이기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좋아할 필요가 없다는 고참 악마의 논리가 대표적이다.

톨킨은 그의 종교관을 설득시키는데 가장 많은 공로(?)가 있었으나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쉬워 했다고 한다.

결혼은 상당히 늦은 예순(만 58세 6개월)의 나이에 했는데, 상대 조이 데이빗먼은 미국의 소설가인 빌 그레셤(Bill Gresham)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13], 무신론자에 마르크스 주의자(미국 공산당원)유태인계였다. 그녀는 또 결혼 직전에 골수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녀를 기독교인으로 변화시켰고, 이민 비자를 위해 1957년 결혼했으며, 3년만에 그를 떠나 보냈다. 이런 상황을 그는 '죽음의 신(사신)이 연적인 팔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3년 후 그 역시 사망한다. 이 결혼 이야기는 1993년에 영화 섀도우랜드로 영화화되었는데, 루이스 역을 맡은 사람이 다름 아닌 한니발 박사님...

연옥 교리에 대해서는 그가 대죄까지도 연옥에서 씻겨진다고 보았다는 평가가 있다. 즉, 이 평가에 따르면 지옥행으로 가는 인간이 훨씬 적었다고 보았다는 이야기.근데 루이스가 믿었던 성공회에서는 연옥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데(...)[14]

5.1 아일랜드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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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파스트에 있는 C.S. 루이스의 동상

그는 무신론자 시절에 아일랜드 신화켈트 전통, 북유럽 신화 등에 관심이 많았고, 게일어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예이츠를 젊은 시절 두 번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이런 관심은 그가 주된 관심을 기독교로 돌린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조상을 웨일즈에 둔 성공회교도 집안에서 자란 그가 가진 종파적 비 배타주의 관점과,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 점은 사실 당시 기준에선 나름 대인배급이다. 물론 그가 북아일랜드 독립을 지지한 건 아니었지만.

6 한국에서의 입지

C. S. 루이스는 한국의 기독교 출판계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이다. 《순전한 기독교》(영어: The Mere Christianity)등의 일부 저작들이 영국 C. S. 루이스 협회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홍성사에서 출판하고 있는데, 이는 전 홍성사 편집장 옥명호 씨가 대학생 시절 우연히 성 바오로서원 출판사에서 읽은 C. S. 루이스의 작품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4월호 《기독교사상》에 《순전한 기독교》를 번역한 이종태 목사(장로교)와 C. S. 루이스 팬인 옥명호 전 홍성사 편집장 등이 C. S. 루이스의 신학과 삶에 대해서 쓴 글이 실리기도 하였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후속편 서문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대해 다루고 있자 이를 소개하고 차기 번역을 약속할 정도.

옥명호 씨가 루이스를 접하게 된 성바오로서원이란 이름에서 짐작 갔을지 모르지만, 가톨릭에서도 매우 호의적으로 인용하는 인사다. 성바오로서원 자체가 성바오로 수도회가 운영하는 것으로, 루이스의 책 대부분을 취급했던건 물론 심지어 나니아 연대기도 번역했다(...) [15] 유캣 같은 청년 교리서에서도 인용되는 인물.

흥미로운 것은 성공회 교인이긴 했으나 가톨릭에 우호적이었던 그의 글이 정작 성공회는 소수 교단일 뿐인 한국 개신교에서 무척이나 인기라는 것. 어떤 성공회 교인들은 루이스와 스토트의 저작이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에게 인기를 받는 걸 보고 한편으로 성공회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 카더라 물론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인문적으로 인텔릭하고, 말년에 가톨릭에 호의적이었다고 매우 백안시해대며 고깝게 보며 탐탁치 않아 하는,(주로 보수적 경향이 매우 강한) 개신교도도 적지 않다.
  1. 《순전한 기독교》, 141쪽.
  2. 《순전한 기독교》, 143쪽.
  3. 그는 “하느님에게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나 있었다”고 한다.
  4. 대표적인 것으로 고통의 문제,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있다. 작품 목록 참조.
  5. 뭐 나니아 연대기는 사실 1편의 흥행(7억달러)을 제외하고는 2편, 3편은 반타작만 하면서 제작비 건지기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황금나침반의 흥행 패망보다는 사정이 좀 나으니... 사실 2,3편의 흥행 실패는 동화와 전쟁물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탓도 크다. 항목 참조.
  6. 참고로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기독교 신학계의 최고봉 중 하나인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미 대차게 깐 적이 있다(...).
  7. 라디오 방송 편집본이다.
  8. 실제로 황금나침반의 세계관은 '정통'교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확히 반대의 세계관을 지향한다.
  9. 아슬란이 '여자들이 전투에 참가하는 건 보기 좋지 않다'라고 하는 정도. 신약도 그렇긴 하지
  10. 인간을 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악마의 태도로 쓴 풍자적 작품이다. 그는 악마 집단을 일종의 기만적 관료집단으로 묘사했다. 자신도 쓰는거 자체는 나름 흥미롭고 쉬운 일이었지만 그 일 자체가 오래하기에는 감정적으로는 대단히 지치고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원래 위악이란게 좀 어렵습니다 1942년 작.
  11. 루이스의 SF 소설.
  12. 톨킨과의 내기 결과로 쓰여진 작품이다. 한 사람은 우주여행에 관해, 한 사람은 아틀란티스에 관해 쓰기로 했는데 루이스가 우주여행을, 톨킨이 아틀란티스를 쓰게 된 것. 참고로 톨킨은 그 이야기를 다듬어 누메노르의 이야기로 자신의 세계관에 넣는다.만약 내기 결과가 반대로 나왔어도 볼 만 했을 것이다
  13. 루이스를 만나는 시점(1952년)에는 별거 중. 1954년에 제대로 이혼했다.
  14. 그런데 성공회는 보수적 개신교 교단처럼 연옥교리를 완강히 배척하는 정도는 아니고, 연옥에 대한 불가지론적 입장까지 수용하긴 한다. 연옥 교리를 믿건 안믿건 그건 성공회 신자 개개인의 자유로, 교회 차원에서는 터치하지 않는다.
  15. 현재는 판권 문제로 홍성사에서만 출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