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멤버 | ||||||||||||||||||||||||||||||||||||||||||||||||||||||||||||||||||||||||||||||||||||||||||||||||||
리더, 기타 | 보컬 | 베이스 기타 | 드럼 | |||||||||||||||||||||||||||||||||||||||||||||||||||||||||||||||||||||||||||||||||||||||||||||||
김태원 | 김동명 | 서재혁 | 채제민 |
- 공연시작을 알리는 손짓 (사진출처:)>
목차
1 소개
1969년 3월 6일 생으로[2],1987년 티삼스의 드러머로 데뷔했다. 부활의 기둥, 귀요미로 불리며,
부활의 정규앨범 6, 8, 9, 10, 11, 12, 13집에 참여했다.
최제민, 채재민, 최재민
소속그룹 부활
소속사 부활엔터테인먼트
공식사이트 페이스북
2 부활 이전
2.1 티삼스(1987년~1988년)
소년 채제민은 복싱선수,유도선수 [3] 생활을 했다.세계챔피언 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역대회 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지원하던 아버지가 고혈압과 중풍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공백이 긴 방황으로 이어졌고, 체급조절에 실패하고 체육관을 떠났다.
그것은 이후 새로운 꿈을 쫒는 발판이 되었는데 바로 음악이었다.
처음 드럼을 접한 것은 드럼을 연주하던 친구가 직업군인으로 입대하여 자리를 비우게 되자 얼떨결에 드럼스틱을 쥐게 되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흥미를 잃은 상태에서 드럼의 매력에 단번에 빠졌다고 한다.
운동했을때와 같이 정공법을 택했는데 무작정 덤벼들어 연습을 강행했고 한번 리듬에 취하면 시계를 확인할 틈이 없을 정도로 빠져들었다고 한다.
인하공전 토목과에 입학했는데 그 학교를 택한 것은 순전히 교내 헤비메탈 밴드 티삼스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파일:117718 photo.jpg
20살 무렵의 티삼스 시절
1987년 티삼스는 강변가요제[4] 에 출전하여 매일 매일 기다려[5]로 동상 및 가창상을 수상하는 것을 계기로 인천을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떠올랐다. 채제민을 포함한 멤버들은 인기스타가 되었고 여성팬클럽이 생겼을 정도로 공연은 늘 대성황을 이루었다. 방송과 라디오에서 티삼스 얘기가 나오면 꾸준히 언급되는 김태원의 드립은, 그 때 제민씨는 저희한테 밀렸었죠.
'당시 최고 인기을 누리던 부활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부활 멤버가 될 줄 상상할 수 없었는데'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인기를 얻은 티삼스는 많은 음반사들의 표적이 되었고 아시아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6개월 합숙에 들어갔다.
그러나 1988년 발표한 첫번째 앨범 실패로 멤버들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소득마저 부진하자 팀은 자연스럽게 해체에 이르렀다.
3 세션활동(1990년~)
티삼스 해체 후에 이승환,이승철,신승훈,이선희,박미경, 토이등 많은 가수의 라이브 및 레코딩 세션을 하였다.
이선희 공연때는 공연이 지루해질 것을 우려해 콘서트에서 연주가들의 차력쇼를 넣었는데 도사 가발을 쓰고 벽돌을 깨며 드럼을 치기도 했다.
부활에 들어왔어도 2002년에만 반짝 했고 나머지 기간은 연봉이 500만원이 안되었다고 한다.
부활 활동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다른 가수들의 세션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부활공연이 활발해지는 2009년에 와서야 KBS 콘서트7080 밴드를 끝으로 생계형 세션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1) 라이브 세션
1990~1998 이승환 세션 [Percussion]
1996~2002 이승철 세션 [Percussion & Drums]
1998~2008 신승훈 세션 [Percussion]
1998~2003 이선희 세션 [Drums]
1997~2008 박미경 세션 [Drums]
2000~2002 유희열 TOY [Percussion]
2000~2003 변진섭 세션 [Drums]
2001~2002 조성모 세션 [Percussion]
2003~2005 G.O.D 세션 [Percussion]
2001 신화 세션 [Percussion]
2005~ 뮤지컬 헤드윅 [Drums]
2007 김건모 세션[Percussion]
2006~2007 김수철 세션 [Drum]
2007~2008 SG 워너비 세션 [Percussion]
2007 프랑스뮤지컬 오리지널캐스팅 공연 [Drums]
2009 KBS2 콘서트 7080 밴드 연주
2) 레코팅 세션
이승환[THE SHOW LIVE 앨범/ HIS BALLAD앨범/이오공감 앨범]
이수영[2집 NEVER AGAIN/ 2001 LIVE 앨범],
이승철[6.5집 CONFESSION / 2000 LIVE 앨범],
TOY[3집 앨범],
김경호[6집 THE LIFE 앨범]
뮤지컬 [올슉업 녹음][6]
뮤지컬 [헤드윅 ost]
뮤지컬 [나쁜녀석들 녹음]
4 록밴드 부활의 드러머(1998년~현재)
4.1 김태원에게 보낸 편지
연주가로 활동하던 중 부활의 멤버였던 최승찬[7]의 제의가 계기가 되어 부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활의 여섯번째 앨범부터 합류하게 된 것이다.
티삼스뒤에 모시게 된 문영배가 '드러머는 밴드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한 것을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고, 티삼스 뒤 다시 들어가게 된 밴드라서 마음이 설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앨범 판매도 부진했고, 보컬 김기연이 성대결절로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으며, 멤버사이의 갈등으로 자주 의견충돌을 빚었다고 한다. 최승찬이 멤버들과 함께 팀을 탈퇴했고, 채제민도 무리에 포함되었다.
최승찬은 채제민과 함께 주니퍼[8]를 만들어 하늘끝에서 흘린 눈물이란 곡을 히트시켰다. 이후 활동이 흐지부지 되다가 2015년 너의 목소리가 보여 에서 다시 한번회자되었다
파일:주니-horz.jpg
주니퍼 활동당시 멤버. 왼쪽아래부터 채제민(드럼), 최승찬(보컬,키보드), 박준영(보컬), 정준교(베이스),반상균(기타)
채제민은 착찹했다. 팀을 탈퇴하면서 답답한 심경을 편지지에 옳겨 김태원에게 보냈다.[9]
부활 탈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내용.
'나를 데려온 승찬이형의 종용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배신자로 낙인찍힐 게 두려웠다'며 괴로워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부활 탈퇴후 다양한 공연과 음반참여로 주머니는 넉넉해졌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고 한다. 이전부터 변하지 않던 바람. 밴드를 향한 열망 때문이었다.
3년뒤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 부활이었다. 2002년 이승철이 부활에 합류하면서 다시 드럼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부활에 다시 합류할 수 있었던 게 이승철이 권유해서 라고 알고 있었는데 김태원이 먼저 제안했다는 진실을 알고 많이 놀라워했다. 재회한 김태원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어깨를 두들기며 '잘 해보자'고 했다. '편지는 집에 잘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고
4.2 밴드의 기둥, 드러머
드럼은 화려하지 않다. 늘 무대 뒤를 맡는다. 주목하는 눈도 적다. 밴드 녹음에서 간혹 다른 연주가로 대체되기까지 한다. 티삼스 앨범 때가 그랬는데.. 자신의 실력 부족을 이유로 문영배로 대체하여 앨범을 녹음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티삼스 해체 뒤 올바른 연주가의 삶을 알려줄 길잡이가 필요했고, 문영배의 연습실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의 제자를 자청했다고 한다. 4년 동안 수하생활을 하면서
'드럼 기교와 음악인의 도리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때 선생님의 조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고 하면서 그 노하우를 개인레슨, 학원강의, 공연을 통해서 다음세대에 전달하고 있다. 2011년 인터넷사이트 '스쿨뮤직'을 통해 국내 최초로 동영상 드럼 교육을 선보이기도 했다.
교육활동[10]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록 그룹 NOISE 11(노이즈 일레븐)을 결성 해서 싱글앨범을 발표했다. 자작곡 '건전가요' 가 수록되어 있다.
D,W 드럼 인터내셔널 첫번째 엔도저, SABIAN 심벌 공식 엔도저이다.
부활의 김태원은 콘서트장에서 채제민의 드럼 솔로때 대기실로 들어가서 쉬지 않고, 무대 끝에서 드럼 솔로하는 모습을 넋놓고 바라볼때가 있다.
'이제 다른 드러머 소리는 못듣겠다' 고 밝히기도 하였다.
공연에서 드럼 솔로는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러나 팬들도 그렇고 공연관람객들도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모른다(...)
공연 셋리스트에도 곡명이 아니라 '드럼솔로'이렇게 적혀있다. 공연 중간쯤에 분위기 전환 겸 해서 김태원의 기타솔로 - 서재혁의 베이스솔로 - 채제민의 드럼솔로 순으로 진행된다. 공연의 피크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춤을 잘 추고 댄스에 관심이 많다.
2015년 부활 공연에서 드럼퍼포먼스에 맞춰 에니메이션 크루 백승주가 비보잉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특유의 스틱돌리기와 댄서의 움직임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드러밍을 본 관객들은 부활 공연은 슬픈 노래만 하는 것 아닌가요? 하고 기대 1도 안하고 왔는데 날 가져요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레드제플린 드러머 존 본햄의 연주 뿐아니라 연주제스쳐를 모방하며 연습을 했고, 지금의 연주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존 본햄을 뽑았다.
부활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는 '이상시선1, '희망에게' '1970' 드럼 연주곡인 'Beard of God'[11] 을 작곡하였다. 특히, 1970은 부활곡 중에서 몇곡 안되는 신나는 곡으로 공연레파토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부활의 신나는 곡은 1982를 제외하면 주로 채제민이, 팝송같은 색은 서재혁이 만들어내는 편.
별명이 '또자', 틈만나면 쪽잠을 잔다. 불규칙한 생활탓에 생긴 습관이라고 한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잦은 교통사고로 자주 대리운전을 애용하기도 하고 부득이하게 거처를 인천의 집이 아닌 서울의 작업실에서 독거하기도 한다고 한다. 뮤지컬 헤드윅 공연때는 연기자가 대사하는 동안 짬짬이 잠을 자기도 한다고(...) 이정도면 기면증? .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를 하다가 쇄골뼈 골절을 입어 공연을 못할 뻔했는데 철심을 박고 드럼을 치다가 철심이 살을 뚫고 나온적도 있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설도 있다 제민이형 몸 좀 아껴요..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부인은 첫사랑이며[12]
6년 짝사랑하다가 2년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고등학교때 도서관에서 훔쳐보다가 고백했는데 채제민의 인상을 보고 전력질주로 도망갔다. 수년 뒤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쳤고, 젠틀한 매너에 마음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미스인천 출신
2016년, 부활에 들어온지 17년이 되었다.[13]젖은 낙엽정신 길고 가늘게, 살아남는 놈이 이긴다으로 버텼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고, 그동안 팬들에게 보여준 신뢰, 부활이라는 밴드를 지키기 위해 인내해 온 시간을 통해 한국의 좁은 록씬에서 드러머로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그의 팔둑에 문신 boowhal을 새길 정도 김태원의 뇌인 서재혁과 허리인 채제민을 교체할리가
4.3 수상
2009 Mnet Asian Music Awards 록 음악상 수상 (부활)
2009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가요 부문 10대 가수상 수상 (부활)
5 활동
5.1 라디오
2012년 4월17일 국내 최초 락전문 음악방송을 표방하며 경인방송 iFM 채제민의 도깨비 라디오(방송시간 : 월~일요일 밤 10시~ 12시)를 1년간 진행하였다. 많은 인디밴드들이 초대되어 라이브 공연을 했고, 공개방송에는 헤리빅버튼, 부활이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상당한 애정을 갖고 시작한 방송이었고 청취률도 좋았다고 하는데 프로그램이 종영되어 굉장히 아쉬워 하였다.
2014년 1월7일 국민 TV 라디오 미디어협동조합에서 락밴드 중흥기의 부활을 꿈꾸며..를 표방하며 채제민과 김민기의 디디쇼를 2년간 진행하였다. 못말리는 롹사랑
라디오 공개방송을 진행할때는 빼어난 진행실력과 해박한 락음악 지식, 중저음에 안정된 목소리 거의 배철수급 귀여운 제스쳐로 숨은 끼를 발산하기도 하였다.
2016년 5월 MBC 표준 FM 원더풀라디오 김태원입니다 월요일 코너 '그것'과 당신의 이야기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8월9일 김태원의 입원[14]으로 자리를 비우자 8월9일~8월19일(2주간) 서재혁과 함께 대타 DJ로 진행을 했다. 사전연습도 없이[15] 김태원의 빈자리를 성공적으로 메웠다.그대로 계속가자는 글이 올라오기도
2016년8월24일 김태원이 라디오에 다시 복귀하면서, 다른 스케줄 다 취소하고 빈자리를 대신 해 준 멤버들과 박완규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기도 했다.
'전장터에서 무리와 무리가 싸우고 있는데, 제가 무너지고 있을 때 저쪽 산등성이에서 한무리의 말을 타고 지원군이
- ↑ 1대 황태순, 2대 김성태, 3대 정종철, 4대 김관진
- ↑ 1남5녀 중 막내, 3대 독자로 군대면제 받았다고 한다
- ↑ 유도선수로 시작했다가 중학교때 복싱선수가 되었다
- ↑ 대상:문희경<그리움은 빗물처럼>, 금상:제제<진실이야>, 은상:여운<홀로된사랑>
- ↑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슈퍼스타K 정준영, MBC 복면가왕 하현우, 영화 복면달호에서 차태현이 불렀다
- ↑ 2007 뮤지컬어워드 음악감독상수상 작품
- ↑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에서 키보드을 담당했고, 부활 5집 객원멤버이자 부활6집에서 정규멤버로 '너의침묵'을 직접 작곡하고 불렀다. 이후 주니퍼로 활동이어가다가 최근 송골매로 활동했다
- ↑ 보컬인 박준영만 제외한 나머지멤버는 부활에서 탈퇴한 최승찬,체제민,정준교가 활동한 밴드로 2000년도에 주니퍼 1집 발매했다.
- ↑ 이는 이후 불명에서 언급되는데, 상대가 불편할 수 있는 말은 편지에 써서 준다는 그의 순정한 면모가 있다.
- ↑ 부활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평생교육원 콘서바토리에 출강하고 있다
- ↑ 처음 제목은 모비딕이었는데 나중에 신의 수염로 바뀌었다
- ↑ 여담으로 현재 김동명은 솔로라고 하지만, 13집 당시 멤버들은 전부 첫사랑이랑 이어졌다. 당시 보컬은 가출하고 결혼했고(..)
- ↑ 김태원은 '죽을때까지 같이 할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도 인터뷰에서 자신은 영원한 부활을 꿈꾼다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 ↑ 패혈증으로 10일간 입원했다
- ↑ 방송국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서재혁이 먼저 도착해서 오프닝을 했고 몇분 후 다급하게 달려온 듯한 채제민의 숨소리가 그대로 방송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