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권 지폐

대한민국 주화
액수1원5원10원50원100원200원500원
무늬무궁화거북선다보탑벼이삭이순신고려청자두루미
대한민국 지폐
색상청색회색주황색녹색노란색
지폐천원이천원오천원만원오만원
전면 도안이황스피드 스케이팅 등 7개 동계올림픽 종목이이세종대왕신사임당
후면 도안정선의 계상정거도김홍도의 송하맹호도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죽도
혼천의, 천상분야열차지도사임당의 초충도
크기136mm * 68mm140mm * 75mm142mm * 68mm148mm * 68mm154mm * 68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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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1,000원권 지폐(가 천원, 1975~1983)구권 1,000원권 지폐(나 천원, 1983~200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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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1,000원권 지폐 (다 천 원, 2007~ )

1 개요

한국 거주민이라면 일상 생활에서 가장 쉽고 자주 대할 일이 많은 지폐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1,000원권 지폐

초상화 인물은 퇴계 이황으로 이유태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 도안을 적용했다.[4] 의외의 사실일 수도 있는데, 천 원권(가)는 오천 원권(가)이나 만 원권(가) 지폐보다도 2년 넘게 늦게 나왔다.[5]

현재 발행되는 신권은 다른 신권들과 마찬가지로 구권보다 크기가 작아지고 디자인에 이런저런 수정이 가해졌다. 첫 등장 이후부터 구권은 자주색이였으나, 신권은 푸른 색으로 변했다. 다른 지폐들이 원안의 색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홀로 색이 바뀐 것.

이 지폐의 퇴계 이황을 그린 사람은 현초 이유태 화백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미대 학장을 역임했다.

2 특징

앞면의 퇴계 이황 왼쪽의 꽃은 매화다. 이황은 살아 생전 매화를 많이 좋아했다. 죽기 직전에 저 매형에게 물을 주라고 했던 일화도 매우 유명.
건물은 성균관 명륜당. 이황은 대학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다.

뒷면은 경제 정선의 계상정거도. 이황이 강학하고 배향된 도산서원의 초창기 묘사다.
지폐이면서도 가장 가격이 낮기 때문인지 취급해주는 곳이 굉장히 많다. 계산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스름돈으로 쓸 일이 많기 때문에 손님이 1,000원으로 계산해주면 좋아한다. 반대로 수표로 계산하려 들면... 음...

현 대한민국 내 대부분 자판기는 1,000원권 지폐만 취급한다. 애시당초 지폐 투입기계가 1,000원만 인식하도록 짜여져 있다. 그 이상 단위의 지폐는 백날 넣어봐야 안 들어간다.[6]

그 때문인지 손을 많이 타서 더러운 지폐가 물량면에서는 많이 나오는 지폐이기도 한다.[7] 물가 사정상 거래의 주역은 안 되어 잔돈 취급을 당하는 1,000원권의 특성상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쓰는 경우가 잦고, 어른이나 꼬꼬마의 손에 들어갔다가 기괴한 낙서를 당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전화번호나 이름이 적혀있기도 하고... 참 이래저래 험한꼴 많이 보는 지폐이다.

몇몇 '손 맛'을 강조하시는 어르신들은 세뱃돈 같은 용돈을 줄 때 1,000원짜리로만 주시는 경우도 있다. 주는 이 입장에서는 두둑한 느낌 좀 받아보라고 좋은 의미에서 주는 것이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리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

3 변천사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00원 1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은근히 많았다. 1,000원 짜장면을 판매하는 중식집도 있었고, 1,000원짜리 생필품들을 판매하는 곳들도 많았다. 과자는 1,000원이면 2~3개는 사 먹을 수 있었으며, 누구나 잘 아는 김밥천국에서 판매하는 김밥도 1줄에 1,000원이어서 '천김'이라 불렸다.[8] 하지만 IMF에 한번 휘청이고 나서는 물가가 한 번 올라가면 함흥차사가 돼서 돌아올 생각을 안하는지라, 단돈 1,000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2000년대 중반까지 1,000원은 버스지하철을 한 번 타거나 컵라면이나 기본 김밥 등으로 간단한 식사를 때우는 등의 기본적인 한 가지 간단한 행위를 할 수 있거나 무언가를 사고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또한 이 때까지만 해도 노량진 학원가를 들어선 노점상에서 1,000원 한 장으로 토스트+음료 한 잔, 미니 피자+음료 한 잔 등의 간단한 식사가 가능했다.[9]

하지만 2008년 즈음하여 물가가 미친듯이 올라서 천김마저도 거의 멸종되어서 이후로는 기본 1,500원은 한다. 아직도 편의점 등에 1,000원짜리 김밥이 일부 명맥을 잇고는 있지만 밥 조금에 반찬 한 두가지가 실처럼 올라간 거의 손가락 굵기의 김밥이나 1,000원이고 이것도 거의 없어서 1,000원으로는 삼각김밥 하나 정도 밖에 못 산다. 역시 같은 해에 노량진 노점상에서 천 원짜리 메뉴가 사라졌다. 1,000원 생필품 상점도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 막상 가서 보면 1,000원 가지고는 안되는 물건이 더 많다. 이쯤되면 그냥 깔쌈하게 만냥마트로 이름 바꿔도 될 듯. 게다가 과자 마저도 1,000원 따위는 가볍게 넘는 과자들만이 주를 이루고 있어, 옛날의 1,000원의 가치를 5,000원이 대신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통비마저도 버스지하철 한 번 탈 때 어지간해선 기본이 1,100원에서 1,200원 사이이다. 충남은 더하다 이쪽은 그나마 다행히도 2000년대 후반부터 환승할인이 널리 퍼졌으니 망정이지. 그래서 아주 가끔 1,000원짜리 동전을 만들 때가 되었다느니 2,000원권 지폐(이거) 깨알같은 콩콩사랑 를 만들 때가 되었다는 의견도 나오나 시기상조 혹은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며 무시당하는 중이다. 적어도 2천 원권 지폐는 물건너갔다. 퇴계 이황: 내가 동전이라니 기껏 만들어도 통용이 잘 안되는 케이스도 있으니....그냥 배째

2014년 현재 1,000원 짜리 하나로 여러 개를 살 수 있는 물건은 붕어빵 정도? 그것도 10년전에 비해 절반 수준인 3개 정도 살 수 있다. 계란빵, 호떡 등도 살 수는 있으나 싼 곳도 하나에 700~800원 하는지라 2개 이상은 못 산다. 만약 호떡에 씨앗이나 야채 등이 들어가면 1개에 1,000원도 한다.

4 기타


지폐의 모델인 퇴계 이황배우 소지섭을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일해라 위화감

참고로, 신권으로 교체하면서 일련번호 글자가 한글에서 알파벳으로 변경되었다.[10] 이때문에 '이제 지폐까지도 영어우월주의가 팽배했느냐?'는 식의 반발이 컸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어쩔수 없다는 입장. 그전에 알파벳을 영어권만 쓰는게 아니잖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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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권이던 시절에는 한글 일련번호다보니 3글자가 합쳐져서 오묘하게 뜻이 있는 글자가 되곤 했다. 대표적으로 처머거, 처너어, 더처너, 바나나 등(...) 장롱속의 구권을 잘찾아보자. 은근히 애니와 연관된 글자도 있다. 가아라, 마마마, 다다다 등(...)

연결형 은행권으로 가장 많이 발행된 화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호남선에는 천원역이 있다.
  1. 구권을 지금도 쓸 수 있긴 하다. 자판기는 잘 안 먹긴 하지만. 대신 은행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바깥구경을 할 수 없게 된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2. 우리나라 주화의 초상화 주인공은 신사임당 빼고는 싹~다 씨들이다. 50원의 이삭, 100원의 이순신, 1,000원권의 이황, 5,000원권의 이이, 10,000원권의 이도. 게다가 5천 원권과 5만 원권은 관계.
  3. 여담으로 발행초기에 나온 나 천원은 냄새가 심하게 나서 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4. 정작 퇴계는 영정에서 쓰고 있는 복건을, "중이 쓰는 고깔 같은 모양새"라고 해서 누가 복건을 선물로 보내줘도 절대 쓰고 다니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안 자체가 고증오류인 셈.
  5. 가 천 원(1975년 8월 14일), 가 오천 원(1972년 7월 1일), 가 만 원(1973년 6월 12일).
  6. 단 법원이나 시청의 등본발급기의 지폐투입기는 5,000원권, 10,000원권도 인식한다. 또한 기차역의 자동발매기, 지하철역의 교통카드 충전기나 승차권발매기 대부분이 요즘엔 10,000원권까지 사용 가능하다. 최근의 지하철 교통카드 충전기/일회용 교통카드 발급기 겸용 기기엔 50,000원권도 들어간다.
  7. 신권도 자주 생산하기 때문에 의외로 더러운 게 많다는 걸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8. 오히려 천 원 김밥의 전성 시대는 90년대보다는 2000년대 였다. 김밥천국을 위시한 각종 김밥 체인점에서 기본 김밥 저가 판매 정책으로 2~3천 원 하던 김밥 한 줄이 내용물도 간소화고 가격도 저렴해진 것.
  9. 사실 이 시기면 노점상이라도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사라졌지만 2014년 지금도 그렇지만 노량진 노점상 물가는 인근 영등포 등과 비교해보아도 훨~씬 쌌다.
  10. 이는 오천원권 지폐, 만원권 지폐도 마찬가지.
  11. 구권이 처음 발행되던 때(1983년)에 비해, 지금은 우리나라 지폐가 외국에서 많이 통용되는데, 그에따라 해외에서 발행된 위조지폐도 급증하였다. 그렇다보니 외국 경찰과 함께 수사를 해야 하는데, 정작 외국에서는 일련번호가 한글로 되어있어 읽지 못했던 것. 결국 어쩔 수 없이 알파벳으로 바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