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미 역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다 끔찍한 일이다." - 아서 C. 클라크

1 개요

뭔소린지 모르겠다면 먼저 아래 동영상 2개를 보자.
Kurzgesagt의 동영상이다

1편
2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제기한 역설.

1950년 여름 로스앨러모스, 점심 식사를 하던 네 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엔리코 페르미, 에드워드 텔러, 허버트 요크, 에밀 코노핀스키)은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고려했을 때, 고등 외계 문명의 존재는 당연하다”는 의견일치에 도달했다. 그때, 페르미가 난데없이 질문을 던졌다.

"(외계생명체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데?(Where are they?)"

다시 말해, 우주의 나이, 그리고 우주에 있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별의 수, 그리고 그 중에 지구와 같은 천체 구성을 갖춘 별이 있을 확률을 생각하면 우리 문명과는 다른 지적 외계 문명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정말 그들이 존재한다면 그 중 먼저 생겨나 발전한 문명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중 일부 문명의 외계인들은 이미 지구에 와 있어야 하는데[1] 그렇다면 그 외계 문명은 모두 어디 있는가? 그들은 어디 있는가? - 이것이 바로 페르미 역설이다.

이후 이 역설은 외계 문명을 둘러싼 논의에서 일종의 지적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해왔으며, 새로운 학문적 성과에 따라 새로운 버전의 풀이들을 이어왔다. 과학자와 SF 작가는 물론 철학자, 역사학자, 심지어 종교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페르미 역설을 풀기 위해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갖가지 시나리오와 이론들이 만들어졌다. 페르미 역설은 외계 문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통과점’이 되었다.

한국에 출간된 책 중 이 역설을 중대하게 다룬 책으로는 영국 물리학 교수 스티븐 웹이 쓴 <모두 어디 있지?>가 있다. 이 책의 결론은 첫번째와 두번째는 현재까지의 인류사로서 보기에 희박하며, 결국 우리 은하 내에는 가장 번성한 문명이래봤자 우리 밖에 없다라는 식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현재로선, 앞으로 깨질지 안 깨질지조차도 알 수 없는, 떡밥과 우열을 다투는 묵직한 떡밥.

현재까지 이에 대해 나온 수많은 의견들을 큰 갈래로 나누어 보면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1.1 외계인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이 쪽은 '외계인 지구 문명설'과 이어지기도 한다. 일견 흥미롭지만, 옛날 유럽인들이 비유럽계 문명을 폄하할 때 썼던 '백인 문명설'과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란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이 자체적으로 이러한 문명을 일궈냈을 리 없다"라는 것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인류의 초기 문명들이 모두 비유럽 문명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2]

그러나 이런 오리엔탈리즘적 태도 말고 동물원 가설이라는 그럴듯한 가설이 있다. 이미 고도의 외계 문명이 오래 전에 전 우주(혹은 적어도 이 주변의 넓은 구역)를 정복했고 그들이 우주의 한 구역(우리 은하일 수도 있고 그보다 크거나 작은 범위일수도 있다)에 자연보호구역 혹은 동물원을 설치했는데 그 안에 지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구역 내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못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서 개발되지 않은 우주를 (아마도 연구, 관광 목적으로) 보존하려 한다는 것. 이 가설에 따르면 외계인 관리자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문명 발달 수준이나 개체수 등을 체크하고 있을수도 있다.[3]어쩌면 우리가 하는 짓들을 위키로 작성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1.2 외계인이 존재는 하지만 아직 우리와 의사 소통이 안 된다.

전파의 전달 속도가 광속을 넘을 수 없다는 한계에서 비롯된 설이다. 태양계 밖 어딘가에 있기는 하나, 아직은 수단이 없어서 서로 모르거나 알더라도 연락할만한 기술이 없다는 것. 동서양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고립되어 발전하여 만나게 되어 현재에 이른 것의 우주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주덕후 분들이라면 알 법한 천문대에서는 오늘도 우주의 외계인(혹은 문명)을 향해 메시지가 담긴 전파를 쏘아올리고 있다. 또한 우주의 전파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SETI 프로그램도 가동중. 그런데 통신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뜬금없지만 미스테리 서클도 이 가설의 증거로 사용되고 있다.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인류와 다른 외계인의 문명 정도가 아주 같다고 가정하고 두고 보자. 인류처럼 외계인도 다른 '인류'를 찾기 위해 전파를 여기저기 쏜다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그 전파를 우리가 수신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례로 중력 렌즈 효과가 있는데, 강력한 중력에 의해 을 포함한 전파는 방향이 왜곡될 수 있다. 블랙홀처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 천체도 존재한다. 단순히 위치상 우연히 지나가던 천체 따위가 가려버릴 수도 있다.[4] 마지막으로 서로는 서로의 위치, 존재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전파를 사실상 난사하게 된다.[5] 서로의 위치를 확신해도 연락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가 된다. 이런 특성을 더하면 '외계인이 우리의 신호를 받았어도' 문제는 여전히 발생한다. 우리가 그들을 인식하기 위해선 그들이 보낸 '응답을 받았다는 표현' 자체가 우주를 넘어 보내져야 한다. 물론 위의 과정을 다 뚫고 전달되었다는 가정 하의 일이다.

혹은 이미 외계인들이 고도로 발달해서 인류가 지금 쓰고 있는 전파 통신과 같은 미개한 방식은 쓰지 않는다는 가설도 있다. 예를 들어 전파 통신을 쓰는 요즘 사람들은 더이상 전서구를 사용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그들과 통신하기 위해 전서구를 날린다 하더라도 비둘기가 날아다닌다는 것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아니, 비둘기가 날아다니기때문에 관심이 생긴다 외계인들이 어떤 쪽으로 고도로 발달했다고 해서 꼭 전파 통신 기술을 발명했으리라는 법도 없다.[6] 다만 전파통신을 미개한것으로 치부할만한 오버 테크놀로지를 지닌 우주인이라 할지라도, 그 오버 테크놀로지가 '무제한'의 속도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가령 광속의 수백, 수천배에 해당하는 속도로 정보전달이 가능한 매체가 있다고 가정할지라도, 그 매체조차도 지구에 전혀 닿지 않을 거리에 있을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러한 전파가 아닌 매체의 경우엔 설사 우리에게 닿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해석 못한 나머지 그냥 흘려보냈을 가능성 역시 있다.

역으로 과학, 기술은 구석기 수준이지만 프로이트 철학을 하며 초현실주의 미술을 하는 종족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지성체가 기술문명을 만들리라는 것도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 존재를 감지해 냈지만 다른 종족과의 소통에 아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행성 급으로 집을 짓고 외계 성계를 개척하는 기술력은 있지만 지성이나 자아는 전혀 없는 우주 개미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매체의 영향으로 우리는 너무 '인간적인' 외계인만을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외계에 생명체와 기술 문명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인격' 비슷한 것을 가졌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외계인이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다른 생명체라면 그들도 자신들 외의 생명체의 존재에 호기심을 갖고 통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1.3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홀과 같은 우주 환경의 극단성과 가혹성, 그리고 지구와 태양계의 특별함 등이 논거로 주장된다. 하버드 대학교 천체물리학자 하워드 스미스 교수는 지금까지 발견된 행성들 의 환경의 극단성을 예로 들며,우주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이 유일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하나의 과학적 가설로 정립한 것이 바로 "희귀한 지구 가설" 이다. 자세한 내용은 희귀한 지구 가설 항목 참고.

외계생명체 자체는 존재할 가능성이 높지만 지적생명체까지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무생물 → 단세포 생물 → 다세포 생물 →지적 생명체 의 과정에는 아주 넘기 힘든 세 개의 고비가 있다. 이 중 한두개는 어찌어찌 가능하더라도 세 개의 고비를 모두 넘은 종은 인류가 유일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멸망 안하게 잘하라고!!

또한 우주가 무한하니(기회가 무한하니)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박사의 오류와 상통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했을 때[7] 최초의 지구에서 단세포 생물이 등장한 것 또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한 확률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 단세포 생물이 등장할 확률 자체가 사실상 0에 수렴할 정도의 극도로 낮은 확률이다. 그 낮디 낮은 확률을 뚫고, 지구적 혹은 우주적 재난을 통한 멸종의 가능성[8]을 뚫고 무수하고 다양한 진화의 가능성마저 돌파해야 한다.[9] 모두를 총합하면 인류가 존재할 가능성은 사실 논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희박한 확률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우주적 확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며 이런 확률의 복권을 사는 행위는 돈을 버리는 짓이라고 누구나 말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류와 지구의 생명체는 사실상 '0'이나 다름없는 확률을 돌파한 것이며, 일반적이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다. 물론 확률에 무한 시행이 더해지면 일어날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일어날 가능성이 무한시행을 통해 딱 한번 당첨된 것이 '인류'일 수도 있는 것 또한 확률이며, 인류가 있고 그럴 확률 자체가 존재한다고 해서 다른 인류와 같은 고등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절대로 확신할 수도 담보할 수도 보장할 수도 없다.

미 NASA가 2015년 10월 20일 발표한 이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구형 행성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46억년 전에 태양계가 형성됐을 때, 우주에 태어날 수 있는 모든 거주 가능 행성들 중 단 8%만이 존재했었다고 하며 나머지 92%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 결론은 NASA의 허블 우주망원경과 외계 지구형 행성 탐사용 케플러 우주망원경으로 수집한 정보에 기반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른다면 인류는 우주의 초창기 지성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다다른다고 한다. 그토록 젤나가를 찾아 헤맸는데 알고보니 우리가 젤나가

문명은 필연적으로 멸망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외계인이 없다는 설명도 있다. 모든 문명은 환경오염이나 핵전쟁 등 여러 이유로 외계 생명체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인류 문명이 우주적 기준에서는 찰나조차 되지 않는 수천년간 얼마나 빠르게 발전했는지 생각해본다면 우리 이전 어느 시점에, 가령 10억 년 전에 외계 문명이 탄생했었다면 이미 그들이 은하 전역에 퍼져나가 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외계 문명이 존재한 적이 없다거나, 존재했지만 발전하기 전에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우주에는 인류 이전에도 수많은 문명이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문명이 존재할 것이지만 그들은 결코 가까운 거리 내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에 모든 문명은 페르미 역설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고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1.4 기타

우주의 방대함에 비해 아직까지 인류의 지식은 미약하다고 표현하기에도 한없이 모자랄 정도로 부족하니, 3가지 설 모두 가설일 뿐이라는 점에 주의하자.

영화 콘텍트에서는 이 넓은 우주의 생명체가 우리 뿐이라면, 얼마나 큰 공간낭비겠니 하는 말로 정리했다.

아서 C.클라크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관하여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리말고 더 있거나, 우리뿐이거나. 그 두 가능성이 모두 끔찍하다 라는 말을 남겼다.[10] 결국 우주 자체가 끔찍하다는 소리 아닌가

  1. 혹은 지구에서 (외계인의 흔적이) 관찰 가능해야 하는데-도 된다. 외계인이 지구에 와 있지 않은건 초광속항해가 알고보니 결국은 불가능하다던가, 은하계가 너무 넓어서 우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십~수만 광년 거리에서도 받아볼 수 있는 강력한 전파를 송신하는 것은 지금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에서도 향후 수백년안에는 거의 확정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거기에 간단하게 소수들을 이진법으로 백여개 정도 찍어서 보내는 것 만으로도 향후 수만년 안에 지구 반경 수만 광년의 수백억개의 항성계에서는 지적생명체가 존재하고 우리의 전파를 수신/해석할 수준만 된다면 자신들이 우주에 유일한 문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2. 사실 이런 태도는 초고대문명설의 기본 바탕이다.
  3. 이것과 유사한 개념이 SF 미드 스타 트렉에 등장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워프엔진 개발전의 문명에는 간섭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해당 문명의 자유로운 발전에 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 이에 따라 지구에 지적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찰만 하던 발칸인들이 워프엔진을 개발하자마자 찾아와서 퍼스트 콘택트(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첫 만남)가 이루어진다.
  4. 켜 둔 손전등을 손으로 가려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좋겠다.
  5. 기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곳에 쏘기는 한다. 하지만 우주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난사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당장 1mm의 오차가 수십, 수백 킬로미터에선 수미터, 수십미터 이상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매우 허다하다. 하물며 광속도 무색하게 만드는 거대한 우주에선?
  6. 잉카 제국은 상당히 발전된 국가였지만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고 아즈텍 제국은 바퀴를 만들었지만 수레는 만들지 않았다. 이런 예는 역사상 수도 없이 많다.
  7. 창조주와 같은 종교을 배제하고
  8. 엄청난 규모의 화산 폭발, 빙하기로 대표되는 급격한 혹은 극단적인 기후변화, 지진, 대기산소 등의 구성물질 조성 변화, 운석, 블랙홀제트, 초신성의 폭발, 대규모 행성, 항성 간 충돌.... 우주가 거대하고 사실상 무한한 만큼 이런 위기 역시 무한히 높다 볼 수 있으며, 시베리안 트랩으로 대표되는 화산의 역대급 폭발, 지진, 거대 운석 충돌 등은 실제로 벌어졌고 대규모 멸종의 원인으로 추측될 정도이다. 이런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9. 단세포 생물을 공통 조상으로 두면 어느 분파는 벌레로 진화했고, 어느 분파는 개미핥기로, 어류로, 포유류 등 수 많은 갈래로 진화했다. 거기서 지적 능력을 발달시켜 도구를 제일 잘 활용하는 인간으로 진화할 경우의 수는 얼마나 될까?
  10. 이 문구는 엑스컴 시리즈의 오프닝 씬에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