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역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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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2대 : 서종철

재임기간
(2299일)
1981년 12월 11일 ~ 1985년 4월 1일
1985년 4월 1일 ~ 1988년 3월 27일

박정희 정권육군참모총장, 국방장관을 지냈던 거물인사로, 집권 세력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프로야구가 정치권 입김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군 시절 하나회 후원자 역할을 해주었고 서종철이 육군참모총장이던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의 부관을 지낸 경력도 있어서 한마디로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던 막강 KBO총재.[1] 젊은 세대들에게는 샵(S#arp) 멤버 출신 서지영의 할아버지 정도로만 기억되지만... 사실 프로야구 초기에 적극적인(=반강제적인) 대기업의 참여와 기타 정부 지원 등이 서 총재가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다.[2]

2010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2 3대~4대 : 이웅희

재임기간
(1634일)
1988년 4월 1일 ~ 1991년 3월 31일
1991년 4월 1일 ~ 1992년 5월 26일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제5공화국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청와대 대변인, 문화방송 사장[3], 문화공보부장관을 지냈다. 용인시 지역구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3선(13대~15대)까지 지냈으며,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에서 자진 은퇴했다.

청보 핀토스 매각 문제를 해결하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참여(1991년)로 8개구단 시대를 연 총재이기도 하다.

2014년 별세했다.

3 5대 : 이상훈

재임기간
(409일)
1992년 5월 27일 ~ 1993년 7월 9일

前 국방부 장관, 재향군인회 회장. 율곡 비리의혹으로 사임했다. 이후 구속.

4 6대 : 오명

재임기간
(25일)
1993년 11월 26일 ~ 1993년 12월 21일

정치권에서 내려오는 낙하산 총재에 질린 야구계가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서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인물. 야구에는 완전 문외한이었으나, 조직위원장으로 1993 대전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행정능력을 보고 데려왔다. 그러나 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하면서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다. 먹튀역대 최단기간 재임 총재로 한 달도 안채웠는데 앞 총재가 비리로 구속 당할 상황에서 떠난것에 비하면 그래도 좋은일로 떠난거라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았지만 사실 총재감이 얼마나 없는지를 보여주는 사건. 이후에는 아주대학교, 건국대학교 총장,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철도기술연구원장으로 기여를 하면서 철도기술연구원 공연장이 아예 오명홀이란 이름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

5 7대 : 권영해

재임기간
(277일)
1994년 3월 21일 ~ 1994년 12월 23일

前 국방부 장관. 1994년 말에 국가안전기획부 부장에 발탁되면서 총재 자리를 사임했다.

이후 총풍(1997년 대선 직전 휴전선에서 무력 시위를 해달라고 북측에 요청한 사건) 사건 때 조사 중 자해를 시도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나중에 북풍 3인방이 북한 인사와 접촉 사실을 알고도 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가 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6 8대 :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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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485일)
1995년 2월 9일 ~ 1996년 6월 8일

前 법무부 장관, 3선 국회의원(15대~17대). 前 박근혜정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

1996년에 자진 사임했다. 당시 기사.당시 기사2

낙하산 인사 싫다고 야구계가 외치는데도 총재로 오더니 다른 이유도 아닌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고 1년 반만에 무책임하게 떠나버려서 이임 이후에도 비난을 받았다.

7 9대~10대 : 홍재형

재임기간
(671일)
1996년 7월 4일 ~ 1997년 3월 31일
1997년 4월 1일 ~ 1998년 5월 6일

前 재정경제원 장관, 3선 국회의원(16대~18대). 재임기간에 외국인 선수를 도입을 실시했다.

앞 총재들과 달리 경제통이고 야구를 좋아해서인지 취임 때부터 향후 포부를 막힘없이 설명했다고 하는데, 첫 임기는 잘마쳤지만 두 번 째 임기에는 시작하자 마자 자진 사임.

비리와 관련되어 조사를 받게 되자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났고 1998년 5월 6일 사임의사를 밝히면서 물러났다.[4]

일신상의 사유로 물러났다 주장 하지만 검찰 조사를 당시에 받고 있던 상황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8 11대 : 정대철

재임기간
(100일)
1998년 5월 27일 ~ 1998년 9월 3일

前 5선 국회의원(9~10대, 13~14대, 16대). 경성 게이트[5]로 구속, 사임하면서 100일 만에 KBO를 또 괴롭게 만들었다.그러나 훗날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취지 파기환송이라는 충격적 반전이 일어난다

9 총재 대행, 12대~14대 : 박용오

재임기간
(2611일)
1998년 9월 23일 ~ 1998년 11월 27일
1998년 12월 8일 ~ 2000년 3월 31일
2000년 4월 1일 ~ 2003년 3월 31일
2003년 4월 1일 ~ 2005년 11월 25일

두산그룹, 성지그룹 회장. 1998년 11대 정대철 총재가 비리혐의로 구속당하면서 사임하자 9월 23일 총재 대행으로 취임을 하였다. 그러나 2달 만에 총재 대행에서 사퇴하였다. 그 이유는 정부가 구단주가 총재가 되는것은 정관에 위배 된다며 압력을 넣었기 때문. 과거에는 총재 대행이 없이 모두 정식 총재였지만 이번에는 총재 대행이었기 때문에 12대 총재가 아니었다. 며칠 뒤 12월 8일 정식으로 12대 총재로 취임한다. 구단주끼리 돌아가면서 KBO총재를 하기로 합의하였는데 그 첫번째 인물.[6] 역대 총재에서 박용오가 가장 낫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최초의 구단주 출신 총재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에 반대하면서 방송에 나와 "프로야구 따위 없애버린다."고 대놓고 망언이나 한 탓에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2005년 11월 25일 일신상의 이유로 총재직을 사퇴한다고 했으나, 7월 27일 출국 금지를 당하고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시점이었다.

그 뒤 회삿돈 297억 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29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횡령) 등으로 불구속 기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을 선고 받았다. 나중에 대법원까지 끌고 갔지만 결과는 1~3심 모두 같았다. 그 뒤 성지건설을 인수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했고, 차남 박중원 성진건설 부사장이 2009년 초 주가조작 혐의로 2009년 7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고 수감되자 많은 스트레스를 받다가 2009년 자택에서 자살했다. 향년 72세.

10 15대~16대 : 신상우

재임기간
(1072일)
2006년 1월 10일 ~ 2006년 3월 31일
2006년 4월 1일 ~ 2008년 12월 16일

前 7선 국회의원(8~11대, 13대~15대).

박용오에 이어서 임명된 총재. 박용오 이후 구단주들이 나서지 않자 정치인이 다시 임명되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라는 이유로 낙하산 인사라는 평가도 있었다. 특이하게 3달도 안채우고 정식 15대로 인정받았다.

다만 이러한 정치인들과의 연줄 덕에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4강 진출후, 선수들의 병역 혜택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또한 재임중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인기를 프로야구 쪽으로 이끌어 냈고 해체될뻔한 8개구단 체제를 유지시켰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7]

2008년 12월 15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영주 전 KTF 사장이 "신총재에게 법인카드를 줬다"는 진술이 드러나자, 16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8개 구단 사장들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공식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11 17대~18대 : 유영구

재임기간
(798일)
2009년 2월 24일 ~ 2009년 3월 31일
2009년 4월 1일 ~ 2011년 5월 2일

명지학원 이사장. 취임 당시부터 이미 부정부패 관련해서 검찰 수사중이었기 때문에 선수협 뿐만 아니라 각종 야구계에서 논란이 일었다.[8] 결국 비리 논란과 관련하여 # 2011년 5월 2일 KBO에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3일 검찰구속된 뒤 4일 사퇴한것이 알려졌다. #

서울대학교에 베이스볼 아카데미[9] 설립을 주도한 업적이 있다.

12 18대 직무대행 : 이용일

재임기간(97일)2011년 5월 17일 ~ 2011년 8월 21일

초대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야구계의 거물급 원로 인사이며 유영구 총재가 비리로 인해 사퇴하자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직무대행을 맡았다.

인물에 대한 내용은 이용일KBO/역대 사무총장 항목 참조.

13 19대~21대 : 구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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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일 총재 직무대행이 신임 구본능 총재의 취임식을 축하하고 있다.
재임기간
(1518일)
2011년 8월 22일 ~ 2011년 12월 31일
2012년 1월 1일 ~ 2014년 12월 31일
2015년 1월 1일 ~ 현재

LG가 인물이며 희성그룹 회장. 이용일 직무대행 체제를 오래 유지할수 없었고 정부 낙하산 인사를 피하기 위해 전문경영인인 구본능 회장을 추대했다.

기업인 답게 KBO 리그 수익을 대폭 확충하고 KBO 리그 흥행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총재로 10개구단 체제와 중계권 500억 시대를 열어 제쳤고 아마추어 야구 발전에도 전폭적인 투자를 통해 야구 발전을 도모하는 등의 업적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KBO의 버드 셀릭이라는 평가내리기도 하지만, 두차례의 승부조작이 발생했음에도 제대로된 대처를 하지 못한 총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1.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사시절 교관(=담임)이었다. 이때부터 평생 전/노의 후원자였다.
  2. 프로야구 출범 직전 정부에 신청한 야구장 조명탑설치, 보수공사 예산이 거부당하자 노태우 전 대통령(당시 체육부 장관)에게 전화 한 통으로 바로 해결한 사례도 있다.
  3. 이 때 전두환 대통령에게 땡전뉴스의 중단을 건의하여서 일시 중단되었으나 나중에 부활되었다.
  4. 다만 사임이유에 대해서는 홍재형 총재측에서 반박했다.홍재형 KBO 前 총재 사임과 관련한 반론보도문.
  5. 대전의 건설업체 경성이 대전 지역 민영방송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유력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건.
  6. 다만 다른 재벌들이 부담을 느꼈는지 계속 고사하면서 3번 연임하다가 이후에는 다시 정치인이 왔다.
  7. 하지만 현대 유니콘스의 매각 과정에서의 잡음들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다.
  8. MB정권 출범직후 논공행상의 일환으로 KBO총재에 친이계 정치인을 낙하산 투하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신상우 총재가 노무현 후원회장 출신이라 한나라당 정권에서 탐탐치 않아 한다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러자 야구인들이 낙하산을 막기 위해 여러 논란을 알면서도 기습적으로 선임한게 유영구 이사장이다.
  9. 지도자 양성 학교. 영어, 야구심리학, 야구사회학, 스포츠생리학등을 가르치며 시험을 통해 이수를 완료한 인원에게 지도자 라이센스를 지급한다. 축구계의 "축구 지도자 자격증"을 발급해주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