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지

1 개요

삼국지 팬픽(?)중 하나로 18세기 일본듣보잡 문인인 나카무라 고젠(中村昂然)이 저술했다고는 하나 후대의 위작일 가능성도 있다. 기원을 깊이 따지면 삼국지연의 이전의 삼국지평화로 결말을 유연의 아들 유총이 진나라를 밀어버리는 것으로 해서 해피엔딩 행세를 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에도 번역해 출판한 사례가 있다. 2부 10권 구성으로 1-5는 그냥 삼국지연의, 6-10권은 후삼국지였다. 68년 판의 번역이 최초인 듯한데, 이 판의 번역자는 이원섭이란 사람으로 되어있다. 번역자의 말로는 자신이 일본에 갔다가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라고 한다. 저자의 이름으로 나카무라 고젠이란 이름이 있으나 자신도 사실여부는 모르며, 상황설명 정도 수준의 내용이라 번역하면서 살을 많이 붙였다고... 그래서인지 은근히 현대적인 묘사도 한다.

종이책으로는 절판해 구하기 어렵지만 전자책으로 발매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전자책 사이트를 검색해 보자.

대전타임스란 지역신문에서도 속삼국지란 제목으로 2016년 1월 현재 연재중인데 아무리 봐도 저 후삼국지와 전체적인 내용과 인물 설정, 사건 등은 같고 다만 살만 좀 다르게 붙인 정도. 기타 블로그 등에 1984년판 후삼국지를 올려놓은 것들도 여럿 보이긴 한다.

2 특징

2.1 이후 역사에 삼국지 끼워 맞추기

삼국지의 이야기를 그 뒤의 오호십육국시대까지 이어가며 서진 이후로 벌어진 사건들을 모조리 삼국시대에 연관시켜 해설하는 작품이다.

그 근거는 유연한나라가 서진을 무너뜨려서인데, 지은이는 이걸 '절치부심한 부흥을 꾀하던 유비의 후손이 나라를 무너뜨린 것임!'이라고 해석하며 그와 협력한 모든 사람들이 오호대장군의 후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오호장군 뿐이 아니라 유연 휘하의 장수들 대부분이 요화, 왕평, 유봉, 위연 등의 후손들이라는 식이라 사실 유연 휘하의 수많은 장수들 중에 촉한 신하의 후예가 아닌 사람이 매우 드물다.

저 유연이 흉노이라 문제지(…).

왜 흉노족이 유씨냐...하면 후한대에 남흉노를 귀순시키면서 황족의 성인 유씨 성을 하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흉노가 한나라 황실의 적통을 이었다고 볼 수 없으니 문제이다. 당장 남흉노란 세력도 한무제의 정벌로 나왔다. 흉노가 쇠퇴하자 질지선우의 서흉노와 호한야선우의 동흉노로 분열되었다. 호한야선우가 이끄는 동흉노는 한나라에 귀순해 질지선우의 서흉노와 싸웠고, 결국 서흉노는 GG쳤다. 그러나 흉노의 수장 선우 자리를 두고 내란이 일어나 기원후 48년에 동흉노는 다시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해, 남흉노는 한나라에 귀순하고 북흉노는 서쪽으로 가서 훈족이 되었다고 예상되므로 몰려서 귀순한 것이다.

게다가 유씨란 성을 특정 인물에만 준 것도 아니고, 설령 그랬어도 보통 이 시기에는 유목민족 중에서 갑자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보통 뭔가 정통성이 있는 성씨로 바꿨다. 당장 오호십육국시대에 마지막 흉노 왕조인 호하를 세운 혁련발발도 혁련으로 성을 고치기 전의 원래 이름은 유발발이다. 위에 언급한 유연은 남흉노 선우였던 어부라의 손자다. 그리고 혁련발발은 어부라의 동생이자 다음 선우가 된 호주천의 후손이다. 만일 엄청나게 낮은 확률로 유연이란 사람의 몸 안에 한나라 황실의 피가 있다고 해봐야 20여년만에 떡실신해서 망한 나라가 부흥했다라면 어쩌라고(…).

물론 왕망이 망한 뒤 전한 황족의 먼 핏줄인 광무제 유수가 후한을 세운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흉노족이 아니고 엄연히 전한 경제의 막내 아들이었던 장사왕 유발의 후예였다. 위의 얘기는 한 마디로 '유'벤투스가 한나라 소속 축구팀이라고 하는 거랑 비슷한 수준이다. 더 웃기게, 조운의 후손이라 말한 석륵갈족(흉노의 일파로 투르크계열 이민족)이다. 사마르칸트 조자룡?

왜 공통점도 없는 석륵이 조운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나오냐 하면, 그가 유비의 후손님이시라는 유연의 한나라를 지워버리고 세운 나라가 (趙)나라기 때문. 그래서 조륵이 본명이고 석륵은 바꾼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도 반삼국지에 비하면 팔왕의 난영가의 난의 자세한 전개 과정이나 주역 세력 이외인 연나라 모용씨나 동진의 상황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등 어떻게든 역사적 사실에 끼워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팔왕의 난 전개부분이나 이특과 이웅이 성도를 점거하고 성한을 세우는 과정은 꽤나 자세할 뿐더러 나름 정사에 충실하다. 생각보다 실제 역사를 공부하는데 도움을 주는 셈.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영가의 난 이후에 흉노족 등의 북방유목민족이 한 각종 뻘짓과 학살 등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목적을 다 이루었으니 급격하게 절제력을 상실하였다던지, 오랜세월 변방에 있다보니 자손들이 야만화해서 말을 듣지 않는다던지 하는 구절을 집어넣는다. 그래서 후삼국지를 읽다보면 초반엔 잘나가다가 갑자기 돌변에서 막장테크를 신나게 밟아 경악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대표적인 촉빠 소설일 뿐이니, 역사와 헷갈리지 말자. 그리고 사실 후삼국지 자체가 워낙 듣보잡이라 잘 알려지 있지도 않다. 실제 역사를 아는 삼국지 팬의 입장에선 그냥 2차 창작으로 이 정도로 끼워맞추기가 되는구나 헛 웃음만 나올 소설. 사실 후서유기, 수호후전 같은 후일담 종류의 소설인데 저들이야 역사적 사실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가공의 소재가 많지만 삼국지연의는 기본이 어쨌든 역사에 기반하니 속편을 내도 이후의 역사에 끼워맞춰야 한다. 연의조차도 '뒷사람들 탄식하며 공연히 가슴 설레네!'로 끝내버렸는데 억지로 후속편을 만들려고 하니 이런 황당무계한 소설이 나오지(...)애시당초 중국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일본산 사실 연의의 원본격인 삼국지평화 부터가 이런 결말이나, 나관중은 연의를 쓰면서 이 부분을 버렸지만 후대 소설가가 이걸 어찌 또 부활시킨 격이다.

2.2 주된 플롯

한 군대의 공격 -> 제갈선우랑 장빈이 '모처를 지키는 누구는 위나라 누구의 후손이며 조낸 용맹한 장수라 힘들다.. 하고 바람을 넣음.. -> 전투형 인간들이 나서서 그놈이 뭐 하던 놈이던 내가 털어버리겠다고 강하게 나섬 -> 진나라 측에선 한 군대는 강하니 성을 잘 지키자고 참모가 건의 -> 태수 생까고 공격, 일기토에선 비등비등하게 싸우다 어찌어찌해서 깨짐... -> 참모 말대로 그냥 지킴 -> 대치 며칠 하다가 장빈이나 강발이나 제갈선우가 "계략이 있습니다" 하고 허접한 유인책 수준의 계략을 냄 -> 진 군대 계략에 빠져서 성 넘어감... 의 구조가 거의 매 전투마다 계속된다. 특히 초반기에는 더더욱 심하다. 후반기에 가면 진과 한이 바뀐 상태에서 저런 꼴도 난다.

유독 전투 전에 일기토부터 하고 보는데 일기토 전에 장수들끼리 벌이는 트래쉬 토크가 약빤 드립들이 은근히 좀 있다.

그리고 진나라 장수들이 아무리 썩었어도 너무 약하게 나온다. 실제로 영가의 난때 한군의 장수들도 많이 죽었다. 주인공 보정이라서 그런지 너무 오래 살려두는 것 같아서 독자들이 오히려 진나라를 동정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기실 영가의 난이 대단할것도 없었던게 유연의 본거지인 좌국성이 소설에서는 엄청난 변방에 있는 곳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낙양에서 썩 먼 곳도 아니었다. 소설에서는 변방 오지에서 욱일승천의 기세로 낙양주변을 다 먹고 나간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닥 대단치도 않았던 것....

3 실제 역사와의 차이

사실 실제 역사와 일치하는 걸 적어야 더 의미있을 정도로 역자는 머릿말에서 이 소설이 어디까지 사실이냐고 묻는 독자들의 예상질문에 대놓고 소설에서 역사 그대로를 다룬 것이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라 되려 일갈한다. 육기가 실제로 육손의 손자라서 되려 신기할 정도로, 최소한 인물에서는 사실보다 뻥이 더 많다.

  • 유연을 포함한 유씨들은 촉나라의 황족과는 상관없는 인물로 유거에서 유연으로 개명했다고 나오지만 유선의 일곱째 아들인 유거는 촉한 멸망 후에 낙양으로 갔다.
  • 소설에서 유연#s-4이 파견한 한군은 낙양을 함락시킨다(영가의 난, 311). 그런데 역사에서 영가의 난 당시 유연#s-4은 이미 사망(310)하여 한바탕 내분을 벌인 뒤 유총#s-2[1]이 즉위한 상태였으며, 유거를 비롯한 유선의 아들들은 낙양에 있다가 이때 대부분 살해당했다. 유연#s-4은 자기 스스로 군대를 보내어 자신을 죽인 셈.[2]
  • 촉한이 멸망할 때 촉한의 신하인 유표가 흉노에서 왕으로 있으니 의지하자는 것이 언급되지만 촉한의 유표와 흉노왕 유표는 동명이인일 뿐이다.
  • 북부왕으로 나오는 학원탁은 실제 역사에서 이름이 학도원으로, 유연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 마초의 후손으로 나오는 동부의 군주 마난, 서부의 군주 노수 등은 사실 북지에 있는 산인 마난, 안정의 경계 지역에 있는 강인 노수를 따온 것이다.
  • 제만년은 유연의 부하가 아니라 저족의 통수를 지내다가 저족, 강족 등과 함께 봉기했고 맹관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사로잡혔다.
  • 진의 각 친왕들과 자사들이 이끈 120만 대군이 집결해서 한과 전면전을 벌인 일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팔왕의 난이니 뭐니 하면서 지들끼리 싸우기도 바빴던 놈들이 그랬을 리가 없다. 뭔가 극적인 장치를 만들러 남자의 싸움을 만들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별 재미가 없고, 결론도 너무 싱겁다.
  • 석륵은 조운의 후손도 아니고 석숭의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니며, 갈족 수령의 아들로 사마등의 노예가 되었다가 일하던 목장의 주인인 급상과 함께 도적이 된 것이다.
  • 제갈량의 후손이라고 나오는 가상인물 제갈선우는 태사령인 선우수지에 따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제갈선우의 소설 속 지위도 태사령이며 자도 수지이다...
  • 장빈은 장비의 후손이 아니라 조군 사람으로 석륵이 태행산의 동쪽 지역을 순행할 때 스스로 석륵을 찾아가 석륵 휘하에 속했다.
  • 서진의 안서장군 하후준은 실제로 전사하지 않았다.
  • 유연의 부하인 공장은 공융의 후손이 아니다.
  • 유영은 기홍과 싸우다가 왕준[3]이 유영을 죽이기 위해 군사들에게 화살을 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유영, 기홍이 그 화살을 맞아 전사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기홍이 한의 기주자사인 유영을 광종에서 패퇴시켜 유영이 전사했다.
  • 소설의 첫 부흥전투인 제만년의 반란은 실제 역사에서 296년이고, 촉한이 망한 것은 263년이다. 위에 언급된 장빈이나 제갈선우는 촉한이 망한 후 위, 서진의 탄압을 피해 숨어 살다가 제만년이 서전에서 승리하자 그제서야 소식을 듣고 합류하는데, 결국 33년 동안 숨어서 살았다는 셈이다.[4]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처음 등장보다 최소한 33년의 나이를 더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처리하면 모든 등장인물이 노인이라 스토리 진행을 못한다. 결국 작가도 무리인 줄은 알지만 노인이어야 하는 등장인물은 장년처럼 묘사하고(거의 대부분), 장년이어야 하는 등장인물은 소년처럼 표현한다(유요, 석륵 등. 근데 생년이 불분명한 유요는 그렇다치고 석륵은 무려 274년생이다... 촉한 멸망시엔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근데 여기선 급상이 업고다니며 이야기하고 다닐 수준의 나이로 나온다.. 거기다 조왕 사마륜 축출 때 성도왕을 도운 걸로 나오는데 이 때 당당하게 14세라고 나이도 밝힌다. 사마륜이 301년에 쫓겨났으니 절대 안 맞을 나이... 뭐 이렇게 따지면 맞는 게 어디 있겠냐마는...).
  • 위의 나이와 연대 고증에 대해 한마디 더 하자면 장빈은 장포의 서자로 나오는데, 정사 기준 장포의 사망은 장비보다 전이며 연의기준으로도 229년 사망... 거기다 장빈은 정실 출생의 동생인 장경과 장실이 있으니 촉한 멸망시에도 이미 젊은 축에 끼기는 힘든 나이이다. 뭐 저정도는 괜찮은데... 제갈량보다 빨리 죽었다던 관흥이 멀쩡히 살아서 자식들에게 나라를 찾아달라 호소하지 않나... 유령은 유봉의 손자도 아니고 무려 아들로 나오는데, 이래선 촉한 멸망 때 이미 40대 중반의 나이... 어차피 픽션이라 어쩔 수 없지만, 연대기적으로 보면 설정구멍이 너무 크다.
  • 한의 후예들이 신나게 진나라를 털어야 하는데 지들끼리 싸워서 망한 걸로 하면 뭔가 어색했는지 팔왕의 난(290~307)을 적당히 미뤄서 서술한다. 그래서 제만년의 반란 이전인 291년에 이미 가남풍에게 죽은 양준#s-2유연#s-4에게 작위를 주고 화친할 것을 건의하는 황당한 대사가 나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맹관이 양준#s-2 터는데 앞장섰던 것도 제만년 죽인 공을 인정 못받아 그랬다는 것과는 한참 다른 이유이다. 제만년 진압은 한참 뒤의 일...
  • 정작 한족이었던 근준은 월지국에서 도망온 이민족의 핏줄로 나온다. 근준이 실제로 흉노족에 적의를 가지고 유씨들을 도륙하고 진 황제들의 시신을 동진에 돌려보낸 정황이 있으니 이것도 좀 적반하장격..
  • 주처의 군대가 제만년의 군대에 유인책으로 당해 1만이 전멸했다고 나왔지만, 실제론 5천의 군대로 이끌고 제만년의 군대 7만에서 1만명을 참살하고 전사한다.
  • 유요가 낙양을 함락시키고 종회등애의 묘를 도굴했다는 건 당연히 뻥이다. 종회는 역적으로 주살되었으니 무덤을 만들어 줄 일이 없고 등애도 억울하게 모함으로 죽어 당시에 이미 묘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둘 다 촉땅에서 죽었는데 낙양에 무덤이 있을 리가(...). 그리고 당대에 그런 짓을 했다간 민심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다. 실제로 진나라가 멸망 후 항우가 진시황의 여산릉을 원한을 사서 도굴하였더니 진나라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만다.
  • 호연유와 호연호가 나와 낙양 공방전에서 나온다. 그랬는데 실제로는 그 전에 호연유는 유화와 작당하여 유총을 죽이려다가 오히러 유총의 반격으로 3족이 몰살해 죽었다. 영가의 난 이후에 죽었다면 시기가 맞지 않다. 호연호 또한 장안공략전에서 활약한다는데 실제로는 낙양 공방전에서 전투 도중 복궁순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 석륵이 장빈의 계책으로 왕미를 유인하여 죽였지만 편지를 들이대고 순식간에 석호가 칼날로 참살하진 않았다. 왕미가 술에 취한 사이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
  • 석호가 석륵의 아들로 나오는데, 실제의 석호는 구멱의 아들로 석륵과는 혈연관계가 아니다. 다만 석륵의 아버지인 석주갈주의 양자로 들어왔다.
  • 사마동으로 나오는데 실제이름은 사마융이다
  • 유곤과 나오는 단필탄은 단필제이다.
  • 석륵이 단필제의 유주성을 치고 황위에 올랐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전조를 멸망시키고 330년에 천왕에 이어 황위에 올랐다. 이전까지는 왕이였다.그리고 유요에게 구석과 조왕 작위를 받았다 하는데 실제로는 조공 작위이였고 유요와의 갈등으로 갈라지자 왕위로 참칭한것이다.
  • 장빈이 조억을 멸망시키고 나서 90세로 죽었다 하였는데 실제로는 그전에 석륵이 후조를 세우고 3년뒤 322년에 사망하였다.
  • 이웅이 양난적에게 패배하여 그 충격으로 병마를 얻어 죽었다는 것은 시기가 너무 빠르다 양난적에게 패배한 시기는 324년이고 이때 조카인 이반을 황태자로 세운건 사실이다. 이웅은 실제로 석륵이 죽고난 후 334년에 죽었다.

4 여담

고우영이 만화로 옮긴 적이 있으나, 완결을 지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1. 실제 역사에서는 유화#s-3가 차기 계승자였으며 소설에서 마치 차기 계승자인 것처럼 나오는 유총#s-2은 계승자가 아니었다. 유화#s-3가 즉위하자마자 동생들을 숙청하였는데 유총#s-2은 이를 피하고 역으로 유화#s-3를 보내버린다.
  2. 작가도 이 부분을 의식해서였는지 작중에서 유연을 낙양 함락 직후 죽여버린다. 평생 소원을 달성하여 허무해져 술과 여자를 밝히게 됐다나 뭐라나.
  3. 서진의 장수로 진나라를 통일할 당시의 장수가 아니라 1세대 뒤의 인물이다. 저 항목의 3번 인물..
  4. 그래서 소설 중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마치 몇 년만 지난 것처럼 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