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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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부
(경남 FC)
이영익
(대전 시티즌)
조진호
(부산 아이파크)
정갑석
(부천 FC 1995)
김병수
(서울 이랜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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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성남 FC)
조덕제
(수원 FC)
송선호
(아산 무궁화)
이흥실
(안산 그리너스 FC)
김종필
(FC 안양)
◀ K리그 클래식 감독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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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겹게 실점하자!

사진 오른쪽 인물. 왼쪽은 제종길 안산시장 및 안산 경찰청 구단주이다. 경찰 축구단인데 왜 구단주가 경찰청장이 아닌거지..?

안산 무궁화 FC 감독
이흥실 (李興實 / Lee Heung-Sil)
생년월일1961년 5월 28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창원시
포지션미드필더
신체조건168cm
등번호12번[1]
프로입단1985년 포항제철
소속팀포항제철 (1985~1992)
완산 푸마 (1993)
지도자마산공업고등학교 감독 (1993~2005)
전북 현대 모터스 수석코치 (2005~2011)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대행 (2012)
경남 FC 수석코치 겸 2군 감독 (2014)
안산 무궁화 FC 감독 (2015~2016)
안산 시민축구단 감독(2017~)
국가대표6경기
1985년 K리그 신인상
신인상 제정이흥실(포항제철 아톰즈)함현기(현대 호랑이)
1986년 K리그 MVP
한문배(럭키금성 황소)이흥실(포항제철 아톰즈)
최강희(현대 호랑이)
정해원(대우 로얄즈)
1989년 K리그 도움상
김종부(포항제철 아톰즈)이흥실(포항제철 아톰즈)최대식(럭키금성 황소)
198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용세
FW
피아퐁
FW
강득수
MF
박상인
MF
이흥실
MF
박항서
DF
장외룡
DF
한문배
DF
최강희
DF
김철수
GK
김현태
198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용세
FW
정해원
FW
함현기
MF
조민국
MF
이흥실
MF
윤성효
DF
조영증
DF
김평석
DF
최강희
DF
박노봉
GK
김풍주
198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상국
FW
정해원
FW
김주성
MF
김삼수
MF
노수진
MF
이흥실
DF
구상범
DF
최기봉
DF
정용환
DF
박경훈
GK
김풍주
198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상철
FW
조긍연
FW
노수진
MF
이흥실
MF
조덕제
MF
강재순
DF
임종헌
DF
조윤환
DF
최윤겸
DF
이영익
GK
차상광
199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상철
FW
이태호
FW
송주석
MF
최진한
MF
이흥실
MF
최대식
DF
임종헌
DF
최영준
DF
최태진
DF
이재희
GK
유대순

손흥민 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 2호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 축구 지도자. 현재는 경찰청의 감독이다.

마산공업고등학교한양대학교를 거쳐 1985년 포항제철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하여 팀의 준우승을 이끌어 1985년부터 제정된 신인상을 차지하며 화려한 데뷔를 알린다. 그 다음 시즌인 1986년에도 맹활약하며 포항제철의 첫 우승에 기여하여 K리그 MVP가 되었다.[2] 1988년에는 포항제철의 우승에 기여, 1989년에는 11도움으로 도움왕에 오른다.

한양대학교 시절부터의 맹활약으로 각급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리긴 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장 횟수는 많지 않았으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본선 엔트리에도 이름은 올렸으나 우루과이전 1경기 출장에 그쳤다.

1992년까지 포항제철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전북 버팔로에 지명된 황선홍의 지명권과 트레이드되어 이적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전북에서 은퇴하고 모교인 마산공고 감독을 맡으며 2005년까지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2004년 당시 대표팀 코치진에서 사임한 최강희와 함께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갔다가 2005년 7월 전북 감독으로 선임된 최강희 감독이 이흥실 당시 마산공고 감독에게 수석코치직을 제안하자 두 말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2011년까지 최강희 감독을 보좌하면서 변변찮았던 지방 구단이었던 전북을 3년 동안 두번의 우승을 하는 강력한 명문 구단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였다.

2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대행직 수행

2011년 전북의 2번째 K리그 우승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전북의 코칭 스태프들과 선수단에 불이 떨어진다. 레바논 쇼크의 여파로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고 대한축구협회가 전북의 최강희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취임하는 자리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만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이후로는 전북으로 돌아오겠다고 밝혔으며, 그의 말대로 이란전을 마친 후 전북에 복귀한다. 그 때까지 전북 현대는 이흥실 수석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가기로 결정한다. 따라서 이흥실의 감독대행 기간은 일단 별 탈이 없으면 2013년 6월까지이다.

3월 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홈 개막전이자 자신의 프로 감독 첫 데뷔전에서 성남을 상대로 3:2의 승리를 거두며 화려한 데뷔를 했다. 하지만 3월 7일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중국의 광저우에게 홈에서 5:1 대패를 당하는 참사가 일어나고 일본의 가시와 레이솔 원정에서도 또 5:1로 패배하고 말았고 이후 태국의 부리람과의 2연전에서 승리하고 광저우 원정에서 극적인 3:1 역전승을 거두며 반등하나 했지만 가시와와의 홈경기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전북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맛보고 말았다. K리그에서도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은 경기력으로 3월달 다섯 경기에서 2승 1무 2패라는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을 내며 부진에 빠졌다.

잇따른 5:1 패배로 오대일 감독, 겹게 점이라는 오명을 얻으며 욕을 많이 먹었으나...

4월 27일 광주와의 경기에서 광주를 5:2로 격파하고 이후 6월 28일까지 8연승을 달리며 3주 연속 1위를 수성한다. 이 8연승은 최강희 감독 시절에도 달성하지 못했던 기록이며 전북 역사상 최다연승 기록이다. 7월 11일, 서울전에서 K리그 통산 최다 연승 기록과 타이기록인 9연승에 도전했으나 아쉽게 0:0 무승부에 그치며 연승행진을 멈췄다.

그러나 시즌 내내 이어진 수비진의 줄부상으로 미드필더인 김정우나 스트라이커인 정성훈이 수비를 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상승세를 이어나가지 못하며 2012년 시즌을 2위로 마쳤다.

최강희 감독이 갑자기 팀을 떠난 상태에서 1년동안 선수들의 부상 악재에도 불구하고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나, 전북 팀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탈락 등 팬들의 높아진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으며 2012년 12월 12일에 자진 사퇴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이후 브라질 출신의 파비우 레푼지스 피지컬 코치가 이흥실의 후임으로 전북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최강희 감독의 복귀가 잠시 지연되자 새로 수석코치가 된 신홍기최강희 감독이 복귀하기 전에 1경기를 감독 대행으로 치렀다.

3 경남 FC

전북의 수석코치직에서 사임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잠시 연수를 받았다. 이후 고향 팀 경남 FC의 감독 내정설이 들렸으나, 이차만 전 부산 감독이 후임 감독으로 내정됐고 이흥실은 경남 FC의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그러나 구단 고위층 인사와 선수기용 문제로 불협화음을 겪은 끝에 결국 2군 감독으로 내려가 시즌을 마쳤다.

4 경찰청

2015년 1월 계약이 만료된 조동현 감독의 후임으로 경찰청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15시즌엔 적응안된 모습을 보이며 경찰청의 스쿼드에 비해 턱없이 낮은 성적을 냈으나 16시즌에는 반등에 성공. 리그 초반 선두로 치고 나섰다.

5 안산 시민축구단

2016시즌 안산 무궁화를 우승시킨것을 인정받아 새로 창설하는 안산 시민축구단의 1대감독을 맡게되었다.

6 능력

축구전술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 등은 조광래, 박성화와 더불어 현존하는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도 전북 구단의 메인전술로 선호되고 있는 4-2-3-1을 이용한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윙어축구는 사실상 이흥실이 창조해낸 전술. 닥공 축구 전술의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창조자이며, 가장 아름답고 선진적이던 전북 축구의 전술적 트렌드를 이끌던 지도자였다.[3]

그러나 박성화와 마찬가지로 능력치가 전술에만 몰빵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감독으로서 필요한 선수 관리 및 조합, 안목 등 모든 부분에서 현재로선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중. 또한 지나칠 정도로 포메이션과 전술 놀음에 집착한다는 평가가 많다. 자기 말로는 유연한 남들 보기에는 미친 전술로 팀의 밸런스를 깨부수고 선수를 지나칠 정도로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등 마치 안양 시절의 조광래마냥 돌발스러운 짓을 자주 벌인다. 이 때문에 전북 수석코치 시절에는 그 유명한 윤성효와 더불어 많은 프로팀들이 감독감으로 탐내던 지도자였으나 전북 감독대행 시절과 경찰청을 거치며 거품이 빠졌다는 평가가 지배적.

7 기타

2008년 시즌을 앞두고 경남 FC에서 박항서 감독이 구단 프런트와의 마찰로 사임하자 경남 FC의 새로운 감독 후보로 경상남도 출신의 젊은 지도자인 이흥실 코치가 유력한 후보로 올랐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조광래FC 서울 감독이 선임되면서 유야무야. 이후 2010년에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로 부임하면서 경남 FC 감독직이 비자 이번에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FC 서울 2군 코치였던 최진한 감독이 선임되며 또 무산되었다. 2013년 12월에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기사가 떴으나, 이차만이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이흥실은 수석코치로 내정됐지만.....2군 감독으로 내려갔다. 2015년부터 본격적인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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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이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임 최강희 감독과 청년회장인 이동국에 이어 자신은 새마을지도자 정도면 괜찮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즉석 코스프레를 했다.(...),
  1.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2. 종전 서술에는 현대 호랑이의 수비수 최강희와 함께 공동 MVP에 올랐다고 되었지만, 최강희의 MVP는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 MVP로 오늘날에는 이 대회를 리그컵의 일환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K리그 MVP에는 기록하지 않는다.
  3. 팀 코치진의 상징과도 같은 이장님의 경우, 전술보다는 선수단 관리와 조련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는 지도자 유형이다. 실제로 두 가지를 모두 해내는 지도자를 찾기는 매우 어려우며 두 명의 지도자가 역할분담하는 체계가 가장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