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리 네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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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게리 알렉산더 네빌
(Gary Alexander Neville)
[1]
생년월일1975년 2월 18일
국적잉글랜드
출생지그레이트맨체스터 주 배리
신체 조건178cm, 74kg
포지션라이트 백
등 번호2번
유소년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1-1992)
소속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2-2011)
지도자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2-2016)
발렌시아 CF 감독 (2015-2016)
국가 대표85경기 0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로이 킨
(1997~2005)
개리 네빌
(2005~2011)
네마냐 비디치
(2011~2014)
발렌시아 CF 역대 감독
누노
(2014~2015)
보로
(2015)[2]
개리 네빌
(2015~2016)
파코 아예스테란
(2016)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3]
그러나 아무도 개리 네빌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4]
그러나, 박쥐 군단에서는 이 사람에 이은 빼도박도 못할 두 번째 금지어.[5]
훌륭한 선수는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속설의 전형적인 산증인.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이자 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맨유 황금 유스 출신. 같은 시기에 활동한 유스 출신 및 유망주들(일명 황금 세대)로, 다른 유명한 선수들로는 본인의 아우 필 네빌을 포함해 로이 킨, 라이언 긱스,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니키 버트, 올레 군나르 솔샤르[6] 등이 있었다. 잉글랜드와 맨유에서 오랜 시간 선수생활을 이어왔으며 국가대표 경기는 85경기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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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필 네빌, 오른쪽이 게리 네빌.

2살 어린 동생인 필 네빌 역시 형만큼은 아니지만 꽤 실력 있고 유명한 선수였다. 실력에서 형보다는 떨어지지만 필립이 나은 점은 멀티 플레이어. 주 포지션이 라이트백이지만, 이 외에도 레프트백,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중앙 수비를 제외한 모든 수비 포지션을 뛸 수가 있다. 단순히 뛰기만 가능한 게 아니라 어딜 놔도 준수하게 해준다. 2005년 에버턴 FC는 필립 네빌을 영입하면서 팀의 주장으로 임명하고 라이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2013년 선수 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다양하게 잘 써먹었다. 유로 96, 2000 때는 형제가 같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적이 있다. 이는 보비 찰튼, 잭 찰튼을 잇는 잉글랜드 역사상 2번째로 형제가 국대에 동시에 뽑힌 케이스.[7] 현재 필립은 2013~14년까지 맨유의 수석코치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을 보좌하였고,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해설을 맡았으며, 2015년부터 발렌시아 CF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다.

2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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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인생 20년 전부를 맨유를 위해 뛰어온 맨유의 주장. 동생 필립 네빌이 2005년 에버튼으로 이적할 때도 그는 맨유에 남았다.[8]

맨유 소속으로 20년 동안 리그 400경기에 출장하였다. 모든 경기 합치면 602경기 출전. 선수 시절 주요 등번호는 2번.
05-06 시즌 중간, 로이 킨의 뒤를 이어 팀의 주장이 되었다. 당시에 킨 다음 부주장은 라이언 긱스였지만 퍼거슨은 네빌의 팀에 대한 충성심과 경력과 리버풀에 대한 증오심을 보고 그에게 주장에 임명하였다. 이후 10-11 시즌 초반, 네빌이 완전히 후보로 전락하면서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가 주장에 더 어울리다는 판단을 한 퍼거슨 감독은 네마냐 비디치에게 주장을 넘겨주게 된다.

93-94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 꾸준히 팀의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동했지만, 2007년 볼튼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개리 스피드의 태클에 당해 장기 부상을 겪으며 시즌 아웃되었다. 이 때부터 점차 기량이 줄어들어 07-08 시즌에는 웨스 브라운에게 주전 라이트백을 내주었고 당해 시즌 통틀어 챔피언스 리그 1경기에만 출전하며 팀전력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고, 08-09 시즌부터는 존 오셔, 하파엘 다 실바에게 주전 라이트백을 빼앗겼다. 노쇠화로 인해 장기 부상 이후의 시즌은 스피드가 빠르고 민첩한 윙어들을 만나면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사정없이 털리기에만 바뻤다. 그러면서 10-11 시즌부터는 경기에도 거의 못 나오면서 후보로 밀려난 네빌은 더 이상 팀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퍼거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1년 1월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시즌 종료 이후 퍼거슨의 아이들과 함께 유벤투스와 은퇴 경기를 가지며 현역 은퇴한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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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5경기 출전. 국가대표팀 운은 조금 없다. 특히 월드컵은 매우 불운할 정도. 1998 월드컵에 첫 출전했으나 16강전에서 패배네빌보단 베컴이 더 문제였지만. 베컴을 좋아하는 네빌도 슬프다. 8강까지 올라온 2002 월드컵 때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2006 월드컵에서 다시 뽑혔지만, 역시 조별 예선 도중 부상을 당했고 그 자리를 제이미 캐러거 또는 오언 하그리브스가 메꿨다. 캐러거 또는 뒤에 아무도 없는데요? 월드컵 이후에는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의 세대 교체로 인해 글렌 존슨에게 점차 출전을 밀리고 있었다. 이 시절, 세대교체의 가장 큰 목적은 베컴 위주의 뻥축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베컴을 제대로 대체할 수 없었고, 결국 베컴은 다시 국대에 돌아왔다. 그러나 결국 유로 08 지역 예선에서 떨어지는 굴욕을 당했다.

게다가 유로 2008 지역 예선 도중에 자책골을 넣기도 했다. 이것이 개리가 국가 대표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집어넣은 골(...). 다만 이건 개리에게 매우 억울한 상황이었는데, 안전하게 볼을 돌리기 위해 골키퍼 폴 로빈슨[9]에게 백패스를 했다. 로빈슨이 이를 강한 킥으로 차려고 하는데, 잔디가 갑자기 뽑히면서 공이 굴절돼 로빈슨의 발에 공이 맞지 않았다. 그대로 공은 굴러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2007년 3월 장기 부상으로 1년간 전력에서 이탈한 이후 급격한 노쇠화가 진행되어 예전만한 실력이 나오지 않자 네빌은 삼사자 군단으로 두번 다시 복귀하지 못하고 국가대표 경력이 끝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FM에서 설명하는 그대로 공수 밸런스가 매우 뛰어난 풀백으로 유명했다. 오버래핑 후 정확도 높은 크로스가 매우 뛰어난 편. 여기에 수비도 상당히 안정적이고 리더십도 있고 파이팅도 넘치기 때문에 측면 미드필더 및 윙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를 찾기 어려울 정도. 단, 정확도 높은 크로스에 비해 골 결정력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 물론, 슛을 잘 안 때리기도 한다. 때문에 시즌 내내 1골 이상 넣은 시즌이 거의 없다. 그의 커리어 동안 넣은 골 수는 단 7골. 이 중에 국대에서는 단 한 골도 없다. 한 골이 있긴 한데... 자책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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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네빌과 함께 맨유 황금 세대의 일원이던 데이비드 베컴과의 호흡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클럽에서도 국대에서도. 괜히 잉글랜드가 뻥축하는 게 아니었다
베컴과는 경기장 내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둘은 매우 절친이다. 1975년생 동갑내기에다가 맨유 유스 시절부터 서로 붙어다녔으며, 베컴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내와 네빌 단 둘만 방에 있더라도 나는 네빌을 믿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라고 하니 친구로서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는 안 봐도 뻔할 정도이다.

5 은퇴 후

5.1 해설자

은퇴 후에는 방송계로 투신, 스카이스포츠에서 캐러거와 함께 축구 관련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다. 선수 시절 리버풀을 상당히 싫어하기로 유명한 그였기에 캐러거의 사투리와 더불어 리버풀 디스하고 캐러거와 싸우지 않나 우려가 있기도 했으나, 오히려 예상을 깨고 매우 중립을 잘 지키며 말도 잘 한다. 그런데 방송 활동 하면서 조상이 리버풀 출신이란게 밝혀졌다.(...) 리버풀 저지 받고 썩은 표정이 그야말로 백미. 이 토크쇼에서 리버풀 유니폼에 개리 네빌의 이름이 마킹되어 있는 유니폼을 받고 던져버렸다. 다만 코멘테이팅을 할 때는 중립적이나 MNF에는 은연 중에 맨유에 대한 빠심을 드러내고 칼럼을 기고할 때는 아예 대놓고 맨유 빠심으로 가득 찬 글도 내놓는다.

모예스 경질 이후 맨유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긱스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다. 또 2012년부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아스톤 빌라와 QPR의 경기에 출전한 윤석영이 자기보다 낫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물론 네빌의 커리어를 감안하면 이는 립 서비스다.

2015년 5월 22일 영국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유럽에서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던 리버풀이 이대로 가다가는 평범한 지방 클럽이 될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하며 최근 뒤숭숭한 분위기에 처한 리버풀에 일침을 가했다.
본인은 세계 최고 리그의 명문팀을 동네 축구팀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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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거의 표정이 모든걸 말해준다.
캐러거는 단지 웃기만 했을뿐

5.2 감독 커리어

[네] 혹은 ㄴㅂ
네빌의 엄청난 흑역사
입만 산 자의 최후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훨씬 무서웠다

2015년 12월 2일, 발렌시아 CF의 임시감독비정규직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6개월로 알려졌다. 발렌시아의 피터 림 구단주와의 친분에 의해 선임된 데다, 잉글랜드 코치직을 맡고 있지만 감독 경험은 전무한지라 발렌시아 팬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게다가 잉글랜드 코치직 역시 자기가 능력이 좋아서 맡게 되었다기보다는 코치들이 전부 선수 시절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구색 맞추기 및 기강 잡기용으로 개리 네빌을 선임했다고 볼 수도 있다.[10] 폭망할 거라는 팬들의 예상대로, 2016년 1월 말 기준 리그 무승(5무 2패)을 하고 있다. 의외로 코파 델 레이에서는 16강, 8강을 뚫고 4강까지 진출시키긴 했지만 당연히 더 중요한 건 리그다. 발렌시아 팬으로 유명한 웹툰 만화가 칼카나마는 개리 네빌은 축구 철학마저 없는 것을 제외하면 로날드 쿠만과 똑같다평하며 한 화를 전부 할애해 미친 듯이 깠다.[11] 그러니까 그 쿠만도 축구 철학만큼은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로 최악의 혹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선전한 코파 델 레이에서 4강 상대로 바르셀로나를 만났고, 캄프 누에서 치뤄진 1차전에서 풀백을 4명 기용하여 중원을 완전히 갖다바친 결과 7-0(수아레스 4골, 메시 3골)라는 점수로 개발살이 났다. 그 영감은 풀백 4명 써도 이기던데 물론 바르셀로나 경기 전까지 국왕컵에서 5경기 11골 1실점이라는 호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나, 그나마 선전하던 국왕컵 마저 이렇게 굴욕당하고 탈락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되었으니..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라 홈 구장에서 경기를 한 번 더 해야 한다. 레코드 브레이커 개리 네빌 쿠만이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첩자라면 네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보낸 첩자라 카더라 심지어 발렌시아의 팬 사이트 아문트에서는 개리 네빌의 현 상황에 대입하여 그 동안 'ㅋㅁ'이나 '그 사람'으로 불리던 로날드 쿠만의 이름이 게시글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됐다!

발렌시아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레전드,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아직까지 안 물러나고 있는게 놀랍다."며 비꼬아댔고, 다비드 알벨다"쿠만보다 더한 감독"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디스를 시전하였다. 카니사레스와 알벨다는 쿠만이 부임하기 전까지 확실한 팀의 주전 멤버이자 레전드였는데 쿠만이 부임한 이후, 아무 이유도 없이 미겔 앙헬 앙굴로와 함께 방출 명단에 들어가 팀 전력에서 배제된 경력이 있다. 그것도 겨울 이적 시장이 오기도 전에. 이로 인해 팀의 주장이기도 했던 알벨다는 주장 완장을 루벤 바라하에게 넘겨준 건 물론이고 오랫동안 뛰어온 발렌시아를 떠날 뻔하기도 했다. 카니사레스는 아예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는 쿠만이 최악의 감독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사람들마저 쿠만보다 더하다는 말을 할 정도면 진짜 막장이라는 얘기. 가만히 있는 쿠만 재평가행 에메리 데려오고 싶다 한편, 우리나라의 축구 해설자인 한준희는 "그래도 아직까지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는 있으며, 선수들과 불화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는 쿠만보다 나은 점도 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쿠만처럼 불화가 없는데도 성적이 이 모양이면 전술 짜는 능력과 현장 지휘력에선 더 문제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게다가 쿠만은 발렌시아에서 워낙 화려하게 막장짓을 벌여서 그렇지 다른 팀들에선 기본 이상은 하는 감독이다. 네빌과 비교되면 차라리 쿠만에게 더 굴욕이다. 저게 그 얘기잖아 그리고 제이미 캐러거가 바르셀로나 훈련장을 방문하면서 손수 부관참시를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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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알아듣겠어?

최근 묘하게 루이 반 갈 맨유 감독과 함께한 짤이 흥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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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라 리가에서는 다시 보기 힘들 듯하다.

발렌시아 홈에서 열린 코파 델 레이 2차전에서는 바르셀로나가 선발 멤버에 라키티치를 빼면 모두 벤치 멤버들을 투입해서 경기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점유율에서 밀리고 경기에서도 1:1로 비기는 위엄을 보였다. 심지어 바르셀로나에서 득점을 한 윌프리드 카프툼은 벤치 워머도 아니고 그냥 B팀 레귤러 선수(....).

24라운드 에스파뇰전에서 드디어 리그 첫 승을 거뒀다!

그 이후 유로파 리그 라피드 빈 전에서 6:0 대승을 거두었고, 그 후 25R 그라나다 원정에서 1:2 승리를 거두며 3연승을 기록했다. 이에 자극받은 발렌시아는 단기 6개월 계약이 아닌 종신계약을 추진중이라는 소식이다. 외쳐! 네빌 종신 수석 코치를 바꾼 효과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전까지 네빌이 보여준 게 있다 보니 네빌 바지감독설도 나오는 중(....). 그러나 그 후 귀신 같이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리그와 유로파 2연패, 그리고 꼴찌 레반테에게 패배하며 레반테에게 강등권 탈출 희망을 선물하기도 하며 감동님의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국 가디언 지에서 이번 시즌을 끝으로 물러난다고 보도했다. 발렌시아에서의 감독 생활은 인생 최대의 흑역사로 남을 듯... 전임 감독인 누누의 평가가 극악에 달해 결국 수장을 교체했지만 역시 코드 인사의 한계는 극복해내지 못하는, 오히려 누누보다 더한 모습을 보이며 제대로 말아먹으며 과거 해설가 시절 '축잘알'의 명성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미 일부에서는 네빌이 해설가로 돌아가면 캐러거가 어떻게 까 줄지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스페인 현지 시각 3월 30일에 발렌시아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경질 소식을 전했다. 파레호가 기뻐합니다 칼카나마도 기뻐합니다 남은 시즌은 파코 아예스타란 코치가 감독 대행 역할을 하며 보내게 되었다. 이 코치가 위에서 언급한 새로 바뀐 수석 코치인데, 과거 라파 베니테즈가 발렌시아를 감독할 적부터 리버풀까지 베니테즈를 보좌한 수석 코치로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아주 좋은 수석 코치로도 유명하다.

개리 네빌의 발렌시아 감독 총 성적은 10승 7무 11패로 35%대 승률을 기록했는데, 10승이나 했다니 코파 델 레이나 유로파 리그를 제외한 라 리가에서 거둔 성적은 3승 6무 8패로 안 그래도 낮았던 승률이 더 낮아져 17%대를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5판 해도 1판도 못 이기는 확률이니 답이 없었다. 후임 파코 아예스타란 감독 대행이 네빌이 잘린 지 3주 만에 세비야와 바르샤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네빌이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 보여주는 중이다.

결국 이 양반 덕분에 발렌시아는 2016년 여름 리그 최하위를 기록중이며, 공-미드필더-수비 핵심인 파코 알카세르, 안드레 고메스(이상 to FC 바르셀로나), 슈코드란 무스타피(to 아스날 FC )를 모두 잃었다.

그런데 16-17시즌 발렌시아가 4연패로 꼴지로 추락하면서 우스갯소리로 개리 네빌이 재평가받아야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칼카나마는 이것에 대해 당신네들 응원팀이 개리네빌과 5년동안 계약했으면 좋겟다는 따금한 일침을 날렸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얼마 못 가 그와 필적하는 감독이 등장하는데...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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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리버풀 FC를 상당히 증오하기로 유명했다. 얼마나 증오하는가 하면, 05-06 시즌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리오 퍼디난드가 종료 직전 헤더 결승골을 넣고 1-0으로 승리하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리버풀 서포터들을 향해 다가가 점프하고는 대놓고 엠블럼에 키스하였다. 당연히 리버풀 팬들은 난리가 났다. 이 사건으로 네빌은 FA로부터 벌금을 받게 되었다. 다만, 리버풀에서 태어났고 에버턴 유스였던 웨인 루니는 싫어하지 않는다. 반면, 맨유에 대한 충성심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엄청나며 여기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인다.

댄디해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4차원이기도 하다. 한때 축구 커뮤니티를 웃음바다로 만든 개리 네빌의 일기에서 그 4차원의 절정체를 볼 수 있다. 일기의 주요 내용은 맨유 최고, 나 최고, 퍼거슨 짱짱맨, 베컴도 짱짱맨, 필립은 바보, 리버풀은 꺼져. 문체가 꼬마들이 쓴 거 마냥, 매우 유치하다. 다만 이 중에 일부는 기자들이 지어낸 것도 있다.
  1. 게리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Gary'의 정확한 표기는 '개리'가 아니라 '게리'가 맞는데, 어쩐 일인지 '개리'로 항목이 생성되었다.
  2. 감독 대행
  3. 하지만 네빌은 현역 시절 단 한 번도 세계 최고의 선수라 불리진 못했다. 90년대에는 카푸, 주세페 베르고미, 릴리앙 튀랑(다만 튀랑 본인은 센터백으로 뛰는 것을 더 선호했다. 실제로 98 프랑스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커리어를 센터백으로 보냈으며, 센터백에서 최강의 폼을 보여줬다) 등에게 접어두고 들어갔으며 2000년 초중반은 그때까지도 건재했던 카푸잠브로타, 윌리 사뇰, 하비에르 사네티가 있었고, 중후반으로 접어드니 본인이 하향세에 접어들고 마이콘, 필립 람, 세르히오 라모스, 다니엘 알베스이 급부상해 세계 최고를 다퉜다.
  4. 후술할 제이미 캐러거와의 EPL 분석 프로그램에서 제이미 캐러거가 시전한 디스. 심지어 윙백들은 센터백이나 윙어가 못된 선수들이 차선책으로 뛰는 포지션이라고 깠다. 말디니 피꺼솟 발렌시아 팬들이 최근 이 멘트에 급격히 공감하기 시작한다 카더라
  5. 이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 둘의 상황이 너무나도 흡사하다. 시즌 도중에 감독으로 부임해 무리한 개혁으로 전임 감독들보다 심하게 못한 성적으로 팬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이 두 감독은 감독을 맡으면서 주장을 바꿨는데 이 전임 주장들은 전부 감독들에게 큰 피해를 얻었다. 쿠만에 의해 주장을 빼앗긴 발렌시아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다비드 알벨다는 주장 완장을 뺏기기 전부터 팀에서 방출 명단에 올랐고, 네빌에 의해 주장을 빼앗긴 다니 파레호는 전임 감독이 있을 때는 팀의 최고 에이스였지만, 감독이 바뀐 뒤에는 전혀 맞지 않은 롤을 맡게 되면서 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리그는 개판인데 코파 델 레이는 잘했다. 네빌은 첫 감독에 팀을 4강까지 끌어올리고,4강에서 제대로 망했지만 쿠만은 아예 우승을 이끌었다.
  6. 이들 중 로이 킨과 솔샤르는 맨유 유스 출신이 아니다.
  7. 다른 나라 경우에는 덴마크의 미카엘 라우드럽-브라이언 라우드럽 형제, 네덜란드의 프랑크 데 부어-로날드 데 부어 형제가 있다.
  8. 네빌 형제는 서로 다른 클럽에서 동시에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 개리는 맨유, 필립은 에버튼 FC.
  9. 04/05 부터 07/08 시즌까지 토트넘에 활약하던 골키퍼. 기복이 있지만 반사 신경이 매우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이 외에도 사거리가 매우 긴 골 킥도 유명하다.
  10.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인 스타 선수들은 자신과 달리 선수 시절 무명인 감독과 코치를 무시하는 일이 종종 있다.
  11. 칼카나마가 이 웹툰을 짠 계기는 개리 네빌의 부진도 있지만 칼럼니스트이자 해설자인 한준모 칼럼을 보고 칼카나마의 한준 디스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칼럼에서 한준은 다니 파레호가 포백 앞에 배치되면서 공격적으로 큰 효과를 받았다고 적었는데 현실은 칼카나마 웹툰에도 수없이 적혀 있듯이 파레호를 포백 앞에 배치함으로서 파레호의 장점을 살리지 못 하고, 단점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졌다. 결국 개리 네빌과 한준을 동시에 디스하는 웹툰인 것이다. 결국 나중에는 한준도 파레호의 수미 기용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한준은 이전에는 김실바 건으로 칼카나마에게 디스당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