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틀이 달린 문서에는 독자연구를 담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의견들은 다른 이용자의 정당한 반론에 의해 수정될 수 있습니다. 내용을 추가하기 전에 문서 내 검색을 통해 중복된 내용인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집단연구 문서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개요
널리 알려진 스포츠 격언 중 하나로 선수 시절에는 먼치킨 내지 넘사벽급 활약으로 해당 종목을 평정한 인물들이 이상하게 감독같은 지도자 자리에만 올랐다 하면 평범남혹은 존못남이 되어 버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2 원인
2.1 명배우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
명배우가 명감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배우와 감독의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우야 자기 배역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조율을 담당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4번타자라면 그냥 다른 것 필요없이 타석에서 홈런 뻥뻥 쳐대면 OK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경기조율과 분석, 선수 컨디션 체크, 선수교체시기 판별 등등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다. 물론 찰리 채플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명배우이면서 명감독이기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명배우는 명감독이 되기 힘들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이유는 두가지 재능을 동시에 갖추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는 게 아니라, 명감독이 되기 힘든 것이고, 그 이유는 두가지 재능을 동시에 갖추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명선수가 명감독이 될 수 없는 게 미스테리라는 말은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헌데 '선수 능력=감독 능력'이라면, 무명선수는 무명감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 선수로서는 그저 그랬지만, 명감독인 사례는 반대로 많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도 선수시절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것은 감독에게 요구되는 재능과 선수에게 요구되는 재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스테리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선수 재능과 감독 재능을 동일시하여 빚어진 오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인들은 명선수나 명감독 하나 되기도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두 재능을 다 갖출 확률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평범한 일반인들보다야 야구선수 출신이 명감독되기는 훨씬 수월하다. 아무래도 선수로 오래 활동하다 보면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기 때문에 본인이 은퇴 후 야구감독에 흥미가 있다면 지도자 수업을 받고 야구 인맥을 통해서 감독이 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배우 역시 다케시처럼 방송계에서 오래 활동하다보면 방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름의 경험, 감각이 생기기 때문에 본인이 감독에 흥미가 있다면 좀 더 교육을 받고 방송계 인맥을 통해서 감독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심형래가 개그맨으로서는 우뢰매, 영구와 땡칠이 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다가 감독에 흥미가 생겨 다양한 인맥들을 활용하여(방송계 관계자나 후배 개그맨들이라든지), 영화 감독으로 전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심형래가 명감독인지는 디워나 라스트 갓파더를 봤다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2 더 많은 기회를 받기 때문
일단 선수 시절 명선수여야 은퇴 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현역 시절 리그 전체를 대표할 스타급 선수나 한팀의 프랜차이즈 선수급 되면, 은퇴 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구단과 좋게 끝낼 수만 있다면 무명선수 출신보다 지도자 연수 및 감독 연수 등의 직접적인 지도자 교육 기회도 구단의 지원으로 훨씬 쉽게 받을 수 있으며 애초에 선수 시절 쌓아놓은 돈이 많거나 구단의 지원을 받아 재취업 자체가 더 유리하다. 또한 팬덤의 지지나, 선수에 대한 구단의 신임은 물론이고, 운동선수라는 특성상 선수 시절의 명성을 앞세워서 팬들과 후배들을 따르게 하는 데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즉 그 스타급 선수가 선수 시절의 생활을 통해 이룩한 권위는 감독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분명히 하나의 큰 무형적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골품제로 돌아가는 폐쇄적인 구단일 경우 근본적으로 명선수가 아니면 감독 기회를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또한 구단의 신임이나 선수 시절 쌓았던 인맥과 정치력을 동원하면 다른 코치들보다 빠른 승진가도를 달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현역 시절 스타급 선수는 무명 선수보다 은퇴 후 지도자 과정은 물론, 최종 목표인 감독 선임 기회를 훨씬 많이 받으며 실제로 감독이 많이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큰 수의 법칙에 따라 실패하는 스타급 선수 출신 감독이 무명 선수 출신 감독보다 많이 나오고, 현역 시절 명성 때문에 이 감독을 기다려주다가 그 실패가 두드러져 보이며, 구단 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이들이 팀에 민폐를 끼치는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선수 능력과 코치 능력을 별개로 보기 시작한 선진 프로 구단들은 이제 명선수라고 무조건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 특히, 팀의 직접 통제보다 프런트와의 소통과 관리가 중요한 야구 감독의 경우, 이미 미국은 선수 시절 듣보잡이었어도 코치 연수를 열심히 받고 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기회가 비교적 쉽게 주어진다. 그 외에도 주제 무리뉴처럼 일찌감치 구단 밑바닥에서 경력을 쌓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명감독이 되는 훌륭한 성장 사례도 있다.
한국, 일본은 아직도 선수 시절 명성이 높을수록 감독직을 하는 데 유리하다. 대놓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성골 아니면 감독을 못하고, KBO리그 역시 선수 시절 스타가 감독 기회를 먼저 받는 편이다. 특히 지방구단쪽이 이것이 심한 편. 이전의 기준으로 보면 한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커녕 절대 감독이 될 수 없는 초라한 선수 시절을 보낸 염경엽의 감독 승진은 넥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인사이며 한국 야구판이 작게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사례로 볼 수 있다.[1][2]
2.3 댁은 더 이상 선수가 아닙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선수 시절의 멘탈로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수 시절에는 자신이 맡은 임무만 충실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많다 보니 팀 동료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쓸 이유나 여유도 없거니와 기술과 심리적인 부분 역시 감독이나 코치들이 맡을 일이지 자신은 자기의 컨디션이나 기량만 신경쓰면 별 문제가 안된다. 설령 경기가 안 풀려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오죽이나 경기가 안 풀려 답답하면 저럴까?"라고 실드는 쳐주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감독이 된 이후로는 이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격해있는 경우나 들뜬 선수들을 잘 추스려 이성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이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다.
슬램덩크에서도 김수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벤치에서의 김수겸은 이성적인 판단력과 심리 상태에서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 그러나 일단 벤치를 떠나 경기장안으로 들어온 그는 선수로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상태에서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강백호와 서태웅 두 신인들의 활약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못해 그 이후 제대로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했다. 여기에 선수단 전체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이 요구되기도 한다. 선수 한명, 한명이 각각 다르고 각자가 플레이하는 스타일 역시 다르기 마련이다. 이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때와 장소에 알맞게 기용하는 능력 역시 감독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즉 선수 시절보다 더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
사실 스포츠행정학이나 스포츠심리학 같은 주제에서도 언급되곤 하지만, 이것은 "피터의 원리"(Peter Principle)라는 이유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즉 선수로서 뛰어난 능력은 감독으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데, 첫째는 감독으로서의 요구 역량은 선수로서의 요구 역량보다 더 높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감독으로서의 요구 역량은 선수로서의 요구 역량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혀 다른 직종이라 할 수 있는데 선수 시절 화려한 업적만 보고 '감독에 앉혀놔도 잘하겠지'라는 기대를 품는 것은 완벽한 논리적 오류였던 셈이다.
2.4 니들은 왜 나처럼 못해?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스포츠이다. 명 선수는 이 타고난 재능 면에서 평범한 운동선수에 비해 뛰어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을 명 선수 출신 감독은 "왜 쟤는 저렇게 쉬운 걸 나처럼 못하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차범근이 대한민국 국대 감독으로 재직할 때 선수들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능력 밖의 기술[3]이나 전술을 요구하다 선수들 및 코칭스태프와 불화를 겪은 사례도 있고, 야구에서는 이만수, 김시진, 선동열이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냈다. 알렉산드르 카렐린은 "상대방이 방어 자세를 취한다고 당황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상대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리세요." (카렐린 리프트) 라고 말해서, 강의를 듣는 레슬링 선수들을 멘붕하게 만들었다.
2.5 이 분야는 내가 전문가라고!
극히 일부분이긴 하겠지만 이러한 사고로 감독직에 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타 플레이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사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 당사자가 선수 시절이었던 때와 감독이었던 지금과는 경기 성향이나 선수들의 기량이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농구만 하더라도 개발된 초창기에는 신체적인 접촉이 금지되었던 스포츠였지만 지금은 리바운드를 위한 몸싸움이 흔하게 일어나고 전체적인 경기 진행 속도도 빨라졌다. 야구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종목이 더 빠르고 더 박진감 넘치는 진행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스타 선수 출신 감독 역시 나름대로의 이유는 댈 수 있다. 선수 시절 경험했던 것이 있는지라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 역시 타당성이 있는 것이 세부적인 것은 변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새로운 경기 환경과 변화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기도 하며 ━ 영광스러웠던 선수 시절에 대한 자부심으로 점철된━ 경험이라는 것 까지 더하면 이것이 오히려 올바른 지도력을 갖추는데 방해가 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2.6 멍석도 깔아주지 않으면서 판을 벌이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요소 중 하나인데, 아무리 스타 선수 출신 감독이라고 해도 감독이 마술사는 아니고 더구나 조물주나 신은 더더욱 아니다. 경영에 빗대 말하자면 제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고는 해도 회사의 주주들이나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 정상적인 기업체 운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오늘 내일 하는 것도 모자라 곧 쪽박 차고 거리에 내몰일 일만 남은 기업체를 단지 이름난 경영인이라고 해서 앉혀놓고 회사 살려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15년의 뉴욕 메츠가 전문가의 예상을 뒤집고 201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되었던 것 역시 전임과 현 단장의 양질의 선수 영입과 더불어 제한된 예산 내에서 팀을 운영하는 실력을 가진 샌디 앨더슨과 같은 단장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저 이름값에만 의존해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다. 뭐 반대로 구단주가 돈은 꽤 많지만 브렌던 로저스가 영입을 못해 반은 말아먹은 리버풀 FC 같은 사례도 있고, 부산 아이파크처럼 지원도 안 해줘서 망하는 경우도 있다.
3 유의점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이 굳어진 탓에 정말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고 일반화하는 경우가 있다.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지 못한 사례는 매우 많지만, 선수 시절 못지않게 명장이 된 사례도 충분히 있으며(예외 사례 항목 참고) 꼭 명선수가 아닌 선수가 감독으로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격언의 정확한 의미는 '감독 실력이 선수 시절 명성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따라서 '명선수라고 해서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 통용되는 것은 첫째로 명선수 출신에게 잘못된 기대를 걸었고, 둘째로 그 기대가 어긋난 경우를 지나치게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선수와 감독이 각각 책임질 역량은 다르다. 선수 시절 실력을 생각해 성공을 가정해선 안 되며, 그로 인해 예상과 다른 사례가 발견되어도 섣불리 일반화해선 안 된다.
4 결론
알렉스 퍼거슨[4]을 비롯해 데이비드 모예스, 토니 풀리스, 루이 반 갈, 아리고 사키, 그레이엄 테일러, 거스 히딩크, 아르센 벵거, 주제 무리뉴, 위르겐 클롭, 우나이 에메리,[5] 조지 칼, 토미 라소다, 톰 랜드리, 돈 슐라, 전창진 등을 봐도 알지만, 이들은 선수 시절에는 정점을 찍지 못했지만, 감독으로서 각자의 종목들에서 길이길이 남았다. 필 잭슨이나 팻 라일리도 선수 시절에는 평범했다. 그러나 필 잭슨은 감독으로서 NBA 최다 우승 경력을 거머쥐었다.[6] 이제는 레오 베인하커르나 그렉 포포비치, 잭 램지, 빌 피치, 플립 손더스처럼 아예 프로 선수도 아닌 사람이,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례도 많다.
감독으로서 선수 시절 명성에 부합하는 활약을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선수 시절 명성을 훨씬 초월하는 경우도 있다. 즉 선수 역량과 감독 역량 사이에 절대적인 상관관계는 없고 다양한 양상이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명선수 출신 감독에 대해 선수 시절 기량에 못지않은 감독이 될 것을 막연히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명감독이 될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5 예시
(★) 초기에는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 부진을 겪어서 평가가 나빠진 경우.
(☆) 감독 시절 사건/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링크는 연관 있는 사건/사고 문서.
취소선이 있는 인물은 제명된 사람이다.
5.1 야구
5.1.1 한국
- 김성한(☆)
- 김시진 -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3개팀 감독을 맡으면서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여 사람만 좋고 무능력한 감독의 대명사가 되버렸다.
- 김용철 - 다만 정식감독에는 승격되지 않았다.
- 김용희(★) - 신사 이미지만 있고 승부사 기질이 없고 입으로만 강조하는 팀 시스템을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신사 이미지와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김시진과 꽤 유사하다.
- 김재박(★) - 현대 유니콘스 에서는 4회의 우승과 1회의 준우승을 이루어냈으나, LG 트윈스 감독으로서는 실패했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삿포로 참사와 도하 참사의 주역이었다.
- 백인천(★) - LG에는 첫 우승 감독이고, 삼성에서는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이승엽을 발굴하고 삼성 타선을 리빌딩한 감독으로 평가받았지만, 롯데에서는 태업수준으로 팀을 아예 방치하고 이대호를 망칠뻔한 장본인이어서 욕을 먹었다. 지금도 김성근, 서정환, 이순철과 함께 KBO 최악의 감독 4대 천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 서정환 -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 핵심 불펜들을 혹사시켜서 다음 감독이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장본인으로 현재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7] 삼성의 경우 불펜 회복에 성공했지만 KIA의 경우 2009년 우승 시즌을 제외하고는 불펜 덕을 계속해서 보지 못하고 있다.
- 선동열(★) - 우승을 두차례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빨, 팀빨 우승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2009년 21세기 들어 첫 포스트 시즌 탈락과 2010년 한국시리즈 에서 무기력한 스윕패배로 부정적 평가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고향팀 KIA 타이거즈로 금의환향했지만 불펜 강화 실패와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인해 재계약 1주일만에 팬들의 반발로 사퇴하는 굴욕을 당한다.[8]
- 이만수
- 이순철
- 조원우 - 선수시절에는 '쌍방울 돌격대'의 일원이었고 코치로써는 손아섭 등의 수비를 고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감독으로써는 더블 스틸 등 섬세한 야구를 시도했으나 팀 컬러와는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신인급 선수들을 발굴해내서 리빌딩에는 나름 성공한 모습을 보였다.
- 한대화 - 다만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5.1.2 일본
- 가네다 마사이치(★) - 그러나 인기는 자기 팀 선수들보다도 훨씬 좋았다. 비인기+떠돌이 구단이던 롯데 오리온즈의 슈퍼스타라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
- 가네모토 도모아키
- 곤도 사다오(★)
- 나카니시 후토시(★)
- 나카하타 키요시 - 희한하게도 성적에 비해서 평가는 좋은 감독이다. 감독 재임기간동안 6-5-5-6을 찍으면서 예전의 감독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재임기간 동안 선수, 팬들과 같이 어울려서 웃고 울고 하는 재밌는 모습이 점점 호응을 얻어 팬들의 증가가 뚜렷하게 나타났고, 팬들 사이에서의 여론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저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측에서는 임기만료 후 재계약까지 추진할 정도였다(!). 감독직을 물러난 것은 성적부진에 따른 구단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코칭스탭 구성에서 구단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자 스스로 사임했기 때문.[9]
- 다니시게 모토노부
- 마유미 아키노부
- 무라야마 미노루
- 미무라 토시유키 - 선수 시절에는 카프의 일본시리즈 2연패를 이끈 간판 유격수였으나, 감독으로는 1996년 11.5게임 차를 뒤집힌 역대급 DTD의 장본인이자 15년 연속 B클래스의 스타트를 끊는 등 영 좋지 못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 스기우라 타다시
- 스즈키 케이시(☆)
- 야마모토 코지(★)
- 오카다 아키노부(★)
- 야마다 히사시
- 요시다 요시오(★)
- 타나베 노리오
- 타부치 코이치
- 호리우치 츠네오
- 후루타 아츠야
5.1.3 미국
- 돈 블레이저(☆)
- 라인 샌드버그
- 로빈 벤추라
- 멜 오트 - 현역 시절에는 511홈런을 친 강타자였지만 그의 감독 시절을 대변해 주는 말이 사람 좋으면 꼴찌다.
- 모리 윌스
- 폴 몰리터
-
피트 로즈(☆) - 19~20세기 초반에 활동한 감독 겸 선수 상당수.
5.2 축구
-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 개리 네빌
- 게오르게 하지
- 그레이엄 수네스(★)
- 기오르기 오르스(★)
- 김상호
- 데니스 와이즈
- 데이비드 오리어리
- 둥가(★) - 홍명보랑 매우 유사하다.
- 디노 조프
- 디에고 마라도나 - 월드컵 8강은 아르헨티나 같은 세계적인 강팀에겐 업적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때 독일한테 4:0으로 털린 임팩트가 컸다. - 로비 파울러
- 로이 킨
- 로타어 마테우스
- 루드 굴리트
- 마르크 빌모츠
- 마티아스 잠머
- 변병주(☆)
- 보비 찰튼
- 빌리 라이트
- 서정원
- 스탠리 매튜스
- 스튜어트 피어스
- 아만시오 아마로
- 앨런 시어러
- 울리 슈틸리케
- 윤성효
- 윤정환(★?) - 1부리그 문턱도 못간 사간 도스를 승격시키면서 명감독의 반열에 올랐으나, 정작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는...
윤할그러나 최근 들어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울산에서도 명감독이 맞는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 이안 러쉬
- 조광래(★)
- 존 반스
- 지안프랑코 졸라
- 차범근
- 최순호
- 최진철
- 토니 아담스
- 파비오 칸나바로
- 폴 개스코인
- 폴 인스
- 필리포 인자기
- 홍명보(★) - 2012 런던 올림픽/축구만 해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동메달을 안겨주면서 명감독의 반열에 오르는 듯 했다. 하지만...
- 황보관
5.3 농구
-
강동희(☆) - 강정수
- 댄 아이슬(☆★) - 덴버 너기츠의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1992~1995, 1999~2001년까지 감독을 역임하면서 1994년 플옵 1라운드에서 8번 시드의 기적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팀은 더욱 부진에 시달리고 아이슬 감독 본인이 고집불통인 탓인지 선수들과의 불화도 잦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12월 11일에 열린 샬럿 호네츠전 패배 이후 그에게 야유를 날린 히스패닉계 관중에게 “야, 넌 좀 짜져서 맥주 한잔이나 더 마셔 이 멕시코 X꺄.”라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구단으로부터 보름 만에 해임 조치를 받았다.
- 매직 존슨
- 문경은(★)
- 바이런 스캇
- 박수교 - 전자랜드를 개그랜드로 만든 장본인. 특히 그가 단장으로 있던 2005-06시즌은 한 시즌 역대 최다패 신기록을 수립하며 전자랜드 역사상 빼도 박도 못할 최악의 흑역사로 남았다.
- 박종천(☆) - KBL에서는 무능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WKBL에서는 현대 하이페리온의 첫 우승을 이끌었고, 만년 꼴찌였던 부천 KEB하나은행을 2위로 끌어올리는 등 약팀을 강팀으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여 농구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론은 KBL 한정. 하지만 희대의 첼시 리 사기극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던 것이 탄로나면서 다시금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하나은행에서의 업적도 모두 무효 처리된 것은 덤.
- 밥 쿠지
- 빌 핸즐릭 - 1980년대에 덴버 너기츠의 주전 슈팅가드/스몰포워드로 활약. 그는 팀이 암흑기에 빠지던 1997년부터 친정팀의 감독을 지냈으나 11승 71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한 시즌만에 해임되었다.
- 아이재아 토마스(★)
- 엘진 베일러
- 웨스 언셀드
- 윌리스 리드
- 이상민 - 다만 15~16시즌에 팀을 정규리그 5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어느 정도 나아진 평가를 받고 있다.
- 이충희(★)
- 임정명
- 정덕화
- 정인교
- 조성원 - 이조추 트리오를 이루며 현대 왕조의 주역으로 이끌었던 현역 시절과는 달리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매우 초라하다. 특히 2008년 KB국민은행 감독으로 부임한지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흑역사가 있었다.
- 진효준
- 커트 램비스
- 케빈 맥헤일
- 클라이드 드렉슬러
- 1950~60년대에 NBA에서 활동했던 플레잉감독 상당수.
5.4 배구
- 강만수(★)
- 김상우 - LIG 시절에 그나마 유일한 플레이오프 진출 감독이지만 신인드랩에서의 희대의 뻘픽으로 논란.
- 박희상(☆?) - 드림식스 감독 시절 너무 강압적인 작전타임과 훈련 방식 탓에 선수단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불명예 사임하고 말았다.
- 이성희(★)
- 이호 - 이 쪽은 감독은 물론이고 코치로서도 평가가 좋은 편이 못 된다. 월드 리베로 출신이었지만 그가 거쳐갔던 팀들은 이상하게 리시브 성공률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만 보였다.
- 조혜정 -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여성 사령탑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한 시즌만에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 하종화
5.5 미식축구
- 바트 스타 - 1975년부터 1983년까지 8년간 친정팀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10]으로 활동했으나, 포스트시즌은 고작 1번밖에 못갔다.
- 포레스트 그렉(★) - 빈스 롬바르디 시대 그린베이 패커스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레전드급 선수. 1980년에 신시내티 벵갈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뒤 1981년에 팀을 슈퍼볼에 진출시켜 지도력을 인정받은 뒤 1984년부터 친정팀 패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감독생활 내내 총 75승 85패로 팀을 말아먹고 4시즌만에 쫓겨났다.
5.6 아이스하키
5.7 e스포츠
- 임요환 - 그가 맡았던 슬레이어즈는 해체, T1으로 복귀해서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낸 뒤 감독좌를 최연성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
- 박정석(★) - 한때 영웅토스로 불리며 추앙받았으나 LoL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평가가 급전직하했다. 정확하게 2팀체제 시절 나진 소드/나진 실드까진 평가가 꽤 좋았다. 그도 그럴 게 양 팀이 전부 결승에 올라가본 경험이 있는데다 각 팀간 전력도 꽤 좋은 편이었으니. 그러나 다진 퍼펙트 실드부터 평이 슬슬 안 좋아지더니, 이후 나진 스폰이 날아간 e-mfire부터 악평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후 CJ 엔투스로 이적하면서 그 악평은 정점에 달한다.
6 예외 사례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프란츠 베켄바워나 요한 크루이프, 래리 버드처럼 전설적인 선수 시절 경력에 못지 않게 감독으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쌓은 이들 대표적이다.
6.1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레전드
말 그대로 선수 시절엔 전설이었지만 지도자 때는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어시스턴트 코치부터 맡든지, 하부 리그를 맡든지, 마이너리그를 맡든지, 유스 팀과 2군 팀 감독을 하고 차근차근 올라가서 1군 감독이 된 경우이다.
최용수, 황선홍, 오기 아키라, 안토니오 콘테, 팻 라일리, 루디 톰자노비치, 제리 슬로언 등이 여기에 속한다.
6.2 선수 시절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
많은 기회를 잡는다는 위의 설명대로, 레전드 출신의 선수가 감독이 될 때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아 단합을 일으키는 유형의 지도자들이다. 휘어잡는다기보다 부드럽게 아우르는 유형도 포함된다.
유프 하인케스, 돈 넬슨, 신태용[11], 조 토레, 허재, 루이스 아라고네스, 비센테 델 보스케, 빌 러셀, 디에고 시메오네, 왕정치, 김세진, 지네딘 지단, 시니사 미하일로비치[12], 박정석 등이 여기에 속한다.
6.3 난 사실 전술도 잘 짠다
선수 시절로도 날리고, 감독으로도 독자적인 전술을 구사한 이른바 사기 캐릭터들.
카를로 안첼로티, 펩 과르디올라, 요한 크루이프, 카와카미 테츠하루, 히로오카 타츠로, 모리 마사아키, 오치아이 히로미츠, 프란츠 베켄바워, 제이슨 키드, 레니 윌킨스, 닥 리버스, 최태웅[13], 박주봉 등 감독으로도 커리어가 화려한 유형이다. 대체로 보면 선수 시절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넒다', '지능적인 플레이를 한다', '동료를 활용할 줄 안다' 같은 평가를 듣던, 그리고 그로 인해 위대한 선수가 된 경우.
6.4 번외: 나는 더 큰 그림을 본다
선수 시절에 날렸지만 감독으로서 실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프런트로 취임해서 팀을 강팀으로 이끄는 케이스도 있다. 물론 레드 아워백, 팻 라일리나 오 사다하루, 프란츠 베켄바워처럼 선수 → 감독 → 프런트의 테크를 타면서 모든 단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케이스도 있지만, 감독으로서는 실패하거나 감독기간을 거치지 않고 프런트로서는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미식축구 NFL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GM 아지 뉴섬이나 덴버 브롱코스의 존 엘웨이처럼 감독테크를 타지 않고 프런트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세이부 라이온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네모토 리쿠오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제리 웨스트처럼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아주 특출나지 않았지만 프런트에 취임해서 왕조를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미셸 플라티니, 펠레처럼 감독 경력이 전무하거나 미흡함에도 축구나 체육 행정계로 진출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프런트로서 팀의 전력을 구축하여 강팀으로 이끄는 것은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라 종종 명감독 출신이 구단의 단장이나 사장자리에 앉았는데 팀을 말아먹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프로야구의 히로오카 타츠로. 히로오카는 선수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로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감독이 되어서도 야쿠르트와 세이부의 두 구단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90년대 중반 치바 롯데 마린즈의 단장 자리에 취임해서는 팀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특히 1995년 시즌 바비 발렌타인이 MLB식 팀 운영을 도입하면서 선풍을 일으키고 85년 이후 10년 만에 팀을 리그 2위로 10년만의 A클래스로 이끄는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인의 MLB식 팀 운영이 맘에 들지 않았던 히로오카는 시즌 내내 발렌타인과 충돌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1년만에 해임하고 대학 후배였던 에지리 아키라를 감독으로 앉혔는데 결국 롯데는 이듬해 5위로 추락해버렸고, 선수들과도 심한 갈등을 일으켜 히로오카는 결국 해임당했다. 그리고 롯데가 다시 리그 A클래스로 복귀한건 발렌타인이 팀에 복귀한 10년 후였다.
또 주니치 드래곤즈의 오치아이 히로미츠는 선수로써 88년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4번타자로 맹활약했고, 감독 시절에는 재임 기간 동안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4번의 리그 우승, 그리고 결정적으로 팀을 2007년 53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으로 이끈 명장이지만, 프런트로써는 팀을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그동안 쌓아둔 자신의 명성을 말아처먹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명선수가 명감독은 되기는 힘들어도 명감독이 명프런트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감독의 소위 '용병술 및 경기 운영'과 GM으로서의 '(선수 선발 등을 포함한)팀 구성과 구단 운영'을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선수를 투입하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과 구단 경영진의 입장에서 팀에 도움이 될 선수를 뽑고 주어진 예산 내에서 경영을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이는 최근 MLB에서 비경기인 출신 단장들의 성공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도 잘 나타난다. 명감독이 프런트에 취임해서 실패하는 이유 또한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기 어려운 이유와 매우 비슷한데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운영과 구단 운영'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시각과 "이거 내가 옛날 감독할 때 해봐서 잘 아는데..."라면서 감독의 경기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거기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경우에 있다. 이것이 경기인 출신 프런트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이다. 또한 용병술 및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도 팀에 주어진 선수들을 잘 활용하는 것과 아직 포텐셜밖에 없는 신인들을 드래프트에서 선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임에도 감독 시절의 소위 '선수보는 눈'을 그대로 투영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선수 위주로 선발하는 과정에서 로스터에 불균형이 오고 팀이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사람마다 각자 적성에 맞는 포지션이 있고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팀도 잘되고 개인도 잘된다는 얘기.
물론 아이재아 토마스나 엘진 베일러처럼 감독도 실패하고 프런트로서도 실패한 케이스도 얼마든지 있고, 감독을 하지는 않았지만 맨시티의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1994년에 친정팀의 회장을 맡아 팀 운영에서 무능함을 보여 1996년과 1998년에 각각 2부-3부 리그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회장직에서 쫓겨난 프랜시스 리 같은 사례도 있다.
7 기타
사실 이는 비단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통용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정치 쪽에서는 독재자가 된 영웅들이 있고,- ↑ 염경엽 본인도 스스로 자신은 잘해봐야 어느팀을 가도 수석코치로 끝날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 ↑ 두산의 감독 김태형은, 숫자가 다소 떨어지는 수비형 포수라는 약점 외에는 라커룸 리더 역할도 하는 등 두산의 나름 진골 프랜차이즈 선수라고 볼 수 있기에 염경엽만큼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조범현, 김경문과 같이, 코치 경력을 딴 팀에서 쌓았기 때문에 성골이 아니라 진골이다.
- ↑ 차범근 항목에도 있는 예로, 상대 수비를 크루이프 턴으로 제치고 다이렉트 크로스 올리는 것을 요구했고, 본인이 시범(...)을 보여줬다고 한다.
- ↑ 근데, 가장 처음 예시로 나와 있긴 하지만 나름 스코틀랜드 리그에선 한 시즌에 20골 가까이 기록하던 나름 주가 높은 선수였다. 레인저스에서 팀원 간의 불화로 잘 활약하지는 못했을 뿐.
- ↑ 이쪽은 선수 시절이 더욱 암울했다. 적어도 벵거나 퍼거슨은 1군 선수였고, 선수 시절 평은 그저 그랬다. 우나이 에메리는 레알 소시에다드 2군 팀에서 1군 팀으로 올라온 적이 몇 번 없는 선수였다.
- ↑ 시카고 불스에서 6번, LA 레이커스에서 5번 우승을 차지한다. 참고로 선수 시절에는 뉴욕 닉스에서 2번 우승했다.
- ↑ 다만 삼성은 후임 감독이 전권위임을 행사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정적으로 감독이 끄동님인 점도 있었고그러나 KIA는 후임 감독들이 이렇게 생고생을 다 하는 걸 보면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한다. - ↑ 게다가 KIA 시절에 신인 드래프트 에서 인성타령 하면서 지나친 대졸사랑으로 욕먹은 것은 덤.
- ↑ 사실 2015년 6위도 올스타전 전까진 1위를 했으나.. 그 뒤 DTD 시전으로..
마치 왕정치의 은퇴연도인 2008년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떠오른다. - ↑ 1980년까지 단장 겸임.
- ↑ 선수들이 해이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커리어를 언급하며 군기를 무섭게 잡는 걸로 유명했다.
- ↑ 이분은 군기보다도 자신이 더...
- ↑ 사실 스피드 배구는 오래 전부터 세계 주류지만, 한국에서는 15-16 시즌 돼서야 현대캐피탈이 제대로 된 스피드 배구를 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