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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북악산 정기도 맑다 가슴엔 더운 열정 슬기를 품고 이상에 나래치는 배움의 전당 우정을 다져가는 배움의 요람 아~아 마음의 고향 광운대학교 영원토록 빛나리라 광운대학교 -광운대학교 교가- |
광운대학교 光云大學校 KWANGWOON UNIVERSIT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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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 참·빛 VERITAS ET LUX |
분류 | 사립대학 |
개교일자 | 1934년 5월 조선무선강습소 |
총장 | 제9대 천장호 |
국가 | 대한민국 |
소재 | 서울특별시 노원구 광운로 20 |
재학생 수 | 학부생 : 8,751명 (2016년) 대학원 : 1,355명 (2016년) |
교직원 수 | 전임교수: 331명 (2016년) |
상징동물 | 비마(飛馬) |
재단 | 학교법인 광운학원 |
웹 사이트 | 광운대학교 홈페이지 |
목차
1 개요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4년제 종합사립대학교.
교훈은 참·빛(Veritas et Lux), 상징은 비마(飛馬, 페가수스)이다.
1934년에 조광운 박사가 설립한 조선무선강습소가 모체이다.[1][2] 그 후 조선무선공학원,광운전자공과대학,광운공과대학 등으로 교명을 변경해 오다가 1983년에 광운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1987년에 종합대학교 개편과 함께 종합대학교로 승격했다.
1993년도에 입시 부정 사건이 터지고, 그 후 설립자 아들이자 이사장이었던 조무성과 그 아내가 또 비리를 저질러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한다. 이후 전 이사장 조무성은 사실상 광운대에서 추방됐고, 그 후 2016년에 전 STX 부회장이었던 신철식이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2 재단
2015년 사립대학 법인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
9.1%로써 심각하게 낮은 편이다.(전국 평균 56.9%)
2014년 사립대학 등록금 의존율 현황
운용수입중 등록금 비율이 73.0%로...전국평균 63.2%보다 높다.
2.1 역사
광운대학교(조선무선강습소부터)의 초대 이사장 및 설립자의 이름은 조광운(曺光云)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도 '광운대학교' 라 이름지어졌다. 조광운은 1899년 4월 11일(양력)에 태어났는데 그의 호는 '화도' 이며 학교 건물중 '화도관' 이라는 건물에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조광운의 10대 시절. 최소 1910년 이후, 즉 경술국치 이후에 상하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이쪽 일에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언급은 되지 않았으나 그의 학문적인 재능이 당시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에게 인정받아 그는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때 당시 유일한 사립대학교였던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가 30대가 될 때까지 그는 여러가지 직업을 경험했는데 첫째로는 쌀가마니 운반노동자, 둘째로는 택시 운전사 , 그리고 일본 부잣집의 지배인으로 일했는데 그 부잣집 사이에서 그의 근면 성실함이 꽤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하던 도중, 그는 자기가 모았던 재산을 전자 기업에 투자를 했는데 그 투자가 잭팟이 터져서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 물정 없던 16세 청소년이 뭘 알겠는가. 사기꾼에게 털리고 재산을 흐지부지 탕진하여 90퍼센트의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돈을 가지고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일본으로 부터 백열전구를 수입해서 파는 사업이였다. 그러다가 사업을 확장하여 일본으로 부터 기계를 수입하여 전자 조립 공장을 만들었으며 한국부터 만주까지의 이쪽 관련 사업에 꽤 큰 손이였다고.. 이렇게 돈을 잘 벌어들인 결과 겨우 20대에 몇백만 달러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재벌이 되었다.
그의 사업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몇년이 지나자 조광운은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을 보면서 '이 돈을 더 뜻깊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파나소닉의 전신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설립자였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로부터 '교육기관을 설립해 보는게 어떻겠소?' 라는 조언을 들었고, 그 생각에 동의한 조광운은 1934년 '조선무선강습소'를 설립하고 그후 1963년에 광운공과대학, 마침내 1988년 4년제 종합대학 '광운대학교'로 인가를 받아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학교를 만든 설립자 자체가 전자공학에 몸을 담고 있었고 학교의 시작또한 '조선무선강습소' 라는 전자공학 전문 교육기관.
우리나라 전자공학의 처음와 끝을 함께하고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대한민국이 현재, 전자공학분야로 세계에서 지금 수준에 오른걸 보면,
- 육사니, 경찰대니, 문과중심 대학이니, 보다 나라 경제의 주축 핵심을 자리매김해오는 매우 현실적으로 애국하는 대학이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연구순위에서도 2010, 2011, 2012 3년 연속 전임교원 1인당 논문 순위 2위를 달성하였고, 외부 연구비 2위, 교내 연구비 8위
단 학교가 현재 상태에서 입결로나 내외적으로나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단의 파워가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 보인다. 미국최대명문으로 인정받는 칼텍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한자리 수에 불과한데, 중앙일보 대학평가 기준 2012년에 비해 5~6명 정도 꽤 많이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31명 수준으로, 국내 상위권 대학인 서카포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많은 편이다.(카이스트 15명, 포항공대, 서울대 11~12명 수준). 학원에서도 소수정예를 좋은 학원이라고 홍보하듯이 다수를 위한 강의보다 소규모를 위한 강의가 더 효과적인건 사실이나, 많은 교수 임용을 위해서는 교수의 임금이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재단의 부족한 파워가 한 몫한다고 보여진다. 사립대 1위인 연세대의 경우 교수 1명 당 19명 정도인데, 10명의 차이는.. 매우 커보인다.
물론 교수의 숫자가 곧 질로 연결되는건 아니다. 그런데 교수의 숫자가 늘어나면 교수 1인당 강의부담비율이 적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교수가 자기 개인 연구에 투자할 시간과 노력이 많아지고 그것은 곧 기존보다 다량의 그리고 양질의 논문 연구가 가능해진다는 것. 그렇게 연구능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교수준도 상승하게 된다.
2.2 교통
수도권 전철 1호선 광운대역[3]에서 도보로 학교 후문까지 약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정문보다는 후문이 역에서 가깝다.[4] 광운대역에서 정문, 누리관을 가려면 걸어서 가거나 월계삼거리(11-336)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5] 참고로 대학 역명을 사용해 대학의 인지도를 높힌 최고의 사례로 꼽힌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석계역에서도 이용가능하다. 석계역에서 정문이나 후문을 가려면 석계역1번출구(11-457)에서 261번 버스를 타면 된다. [6] 후문으로만 간다면 석계역1번출구.B(11-481) 경우 1130이나 1133을 이용하고, 석계역(11-594)에서 셔틀버스를 타서 정문에 내리거나 노원09를 타서 삼창아파트(11-793)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태릉입구역과 석계역에서 학교까지 가는 스쿨버스도 운영하고 있다. 학기 중에만 08:20~10:30에 배차간격 10분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 차를 타면 참빛관까지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주변에 가까운 학교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덕대학, 서울과학기술대학교등이 있다.
3 개설학과
3.1 학부
3.1.1 전자정보공과대학
- 전자공학과
- 전자통신공학과
- 전자융합공학과
- 컴퓨터공학과: 특이하게 다른 학교의 컴퓨터공학과와 다르게 주로 SoC/네트워크/임베디드시스템(HW)/FW 등을 많이 가르친다. 다른 학교들의 학과들과 비교해 볼 때는 컴퓨터공학과보다는 전자공학과에 가깝다. 최근에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모바일프로그래밍 과목이 생김. 정체성이 모호하다.
-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
컴퓨터공학과에서 컴퓨터소프트웨어로 갈라졌다. 최근까지 통합되어 있던 과라서 입결과 아웃풋은 컴퓨터공학과와 사실상 동등하다.1971년 전자계산학과로 개설되었다.(컴퓨터공학과는 응용전자공학과->전자계산기학과->컴퓨터공학과) 컴퓨터공학군에서 컴퓨터공학과/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로 나뉘어 있었으나 학군/학부가 없어졌다.원래 '컴퓨터과학과'로 간판을 걸려고 했는데, 어른의 사정이 개입하여 컴퓨터소프트웨어가 되었다. 여기에 대한 미련(?)인지 교수들은 '컴퓨터 사이언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커리큘럼도 컴퓨터소프트웨어에 대해 배운다기보다는 컴퓨터과학에 가까운 편.학과의 영문 이름은 컴퓨터 사이언스가 맞다.재학생들도 컴공과와의 차이를 햇갈려한다컴퓨터공학과는 전자과와 맥락을 같이 하여 전자통신공학과와 커리큘럼이 거의 동일하다. 반대로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는 말그대로 컴퓨터과학과로, 일반적인 전산학과의 커리큘럼을 따른다. - 전기공학과
- 전자재료공학과
- 로봇학부
3.1.2 공과대학
- 건축공학과
- 화학공학과
- 환경공학과
- 건축학과 (5년제)
3.1.3 자연과학대학
- 수학과
- 전자바이오물리학과
- 화학과
- 생활체육학과
- 정보컨텐츠학과(야)
3.1.4 경영대학
광운대학교의 상경계열 학부들이다. 실질적으로 문과의 원탑이다.
- 경영학부
- 국제통상학부: 동북아대학 동북아통상학부의 후속된 신설 학부. 동북아대학 계열의 학과들 중에서 2학년 때부터 가장 공부할 것이 많은 학부이다.
가령 무역상무라던가.. 미시경제라던가.. 거시경제라던가..
3.1.5 인문사회과학대학
인문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이 합병되어서 만들어졌다.
- 산업심리학과
- 미디어영상학부
- 동북아문화산업학부: 동북아대학 동북아문화산업학부의 후속된 신설 학부.
- 국어국문학과: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의 후속된 신설 학과.
- 영어영문학과: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의 후속된 신설 학과.
3.1.6 정책•법학대학
법과대학에서 정책•법학대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법학부
- 행정학과: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의 후속된 신설 학과.
- 국제학부: 동북아대학 국제학부의 후속된 신설 학부.
- 자산관리학과(야)
3.1.7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는 15년도까지 인문대학 소속으로 신입생을 받았다. 하지만, 교육부의 지시로 인해 사회과학대학과 통폐합이 결정되었고, 16년도부터는 인문사회과학대학 소속으로 신입생을 받게 되었다.
- 국어국문학과: 후속된 학과는 인문사회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06~07년도 당시에 국문과 폐지논란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기현상이 언론에 보도가 된 적이 있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학교측에서는 국문과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문과대를 그리 좋게 보지 않고 있으며 기회만 나면 예산을 축소시키려고 한다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특히 14년도에는 국문과 입학정원을 뜬금없이 절반으로 줄인다는 안을 내놓아서 다시 반발이 생겼다
어째 국문과만 존나 패는 분위기가 있다 - 영어영문학과: 후속된 학과는 인문사회과학대학 영어영문학과.
3.1.8 동북아대학
우리나라 최초로 동북아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을 2008년에 신설했다. 08년도부터 15년도까지 신입생을 받았지만, 교육부의 지시로 인해 각 학부는 16년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각 학부의 후속된 학부의 신설이 결정되었다.
- 동북아통상학부: 후속된 학부는 경영대학 국제통상학부. 1학년 때는 외국어를 주로 배워서 대학교 공부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2학년 때부터 수강해야할 전필 및 전선 수업이 많아서 죽어난다.
무역상무라던가, 미시경제라던가, 거시경제라던가, 국제기업경영론이라던가..사실상 동북아대학의 학부들 중 중심이자 원탑. - 동북아문화산업학부: 후속된 학부는 인문사회과학대학 동북아문화산업학부.
- 국제학부: 후속된 학부는 정책•법학대학 국제학부.
3.2 대학원
- 일반대학원
- 특수대학원
- 환경대학원
- 경영대학원
- 정보콘텐츠대학원
- 교육대학원
- 상담복지정책대학원
- 건설법무대학원
4 건물/시설
광운대학교/캠퍼스 항목 참조 바람
5 특징
5.1 남녀성비
공대가 중심적인 대학이라 재학생 중 공돌이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재학생 중 여학생비율이 21%로 서울시내 4년제 대학교 중에선 여학생 비율이 가장 낮다.
참고로 70년대에는 여학생이 들어오기만 해도 장학금이었고, - 공대의 전기공학과는 89년에 최초로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행히 무사히 졸업했다.[7]
이것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것이냐고 한다면 한학년에 남학생만 최소80~100명, 곱하기 4, 선배는 당연히 없고, 후배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보내야 한다. 거기에 교수님들에게는 언제나 주시의 대상이 되는 상태, 그당시 공대 여학생비율이 3%정도였다. 그것도 건축공학과의 위엄이랄까] 90년대에는 대략 10%의 여학생 비율, 하지만 이것은 인문사회대학이 있어서 가능한 숫자였고, 축제에서 여학생 부분은 국문과, 영문과, 전산과를 주축으로한 이과대학, 공과대학(?)연합 네개정도로 치뤄졌다. 2000년대 들어 여학생이 많이 늘어나서인지 몰라도 졸업한 선배들이 오면 샤방샤방한 학교 모습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광운학원 자체가 남초학원이다, 아래 소속된, 광운전자공고도 남고, 광운중학교도 남중, 남대문중도 남중, 광운초와, 광운유치원은 남녀공학
그래서인지, 광운의 자체적 이미지나 분위기가, 굉장히 사나운편이다. 장점은, 여자로 인해 정신분산되는 염려는 없다.
위 모두, 광운대학교 설립자 조광운이 설립했다.
광운학원에서 키우는 운동은 축구.
대표적으로 설기현이 광운대학교 출신이다.
5.2 등록금
꽤 오랜 시간 동안 재단이 없었고, 2011년 현재도 등록금 의존률이 엄청나게 높다.[8] 2007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등록금이 높은 이화여대 다음이었으니 말 다한 듯.(...) 덕분에 등록금이 쓸데없이 높아 등록금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많다. 특히 등록금 문제는 총학생회장 투표 때마다 사실상 필수요소급 공약으로 등장하고 있다. 재단 정상화도 꾸준한 떡밥이었으나[9] 이미 복귀한 지금은 그저 삽질화 된 듯. 반면 등록금의 경우 2013년 기준 5년째 동결하고 있다. 다만, 이는 레알 꼼수 중 꼼수로 원래 16주였던 수업일수를 15주로 줄이면서 동결한거라 사실상 등록금 인상의 결과를 낳았다.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하지만 재단은 들은척도 안한다.
5.3 대학입시 전형
광운대 적성검사는 적성검사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로 평가받았는데, 일단 수리 적성검사는 둘째손 치더라도 오답 시 감점이라는 게 문제였다. 보통 적성검사는 시간이 매우 모자라기 때문에 잘 안풀리는 문제는 찍는다던지, 시간관계 상 다 못푼 문제는 한번호로 밀어버리는데 이 방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응답시에는 감점이 없기 때문에 모르겠거나 못푼 문제는 그냥 마킹하지 않는것이 일반적.
2012년 입시부터는 적성검사로 인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광운대 생각했다가 피눈물 좀 본 사람이 있을듯.
2014학년도 입시부터(2013년 고3부터)는 개편된 수능 방식에 따라 자연계열에서 수리'나'형 응시자, 즉 수리 A형 응시자를 모집하지 않는다. 수능 개편 전, 나형 공대중에 가장 높은 입결을 자랑하여서 나형과 가형 구분의 의미가 거의 없었긴 했으나 앞으로의 입결에 변동여지가 많다.
5.4 유명인
신종균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무선사업부 사장
김용회 삼성전자 부사장
이재령 에릭슨엘지 엔터프라이즈 CEO
유원식 한국오라클 사장
최춘석 롯데슈퍼 CEO
김영만 한빛소프트 회장
김준상 현대차 사장
이선용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
권성주 LG전자 부사장
최병화 신한은행 부은행장
김영휘 KBS기술국장
김석진 MBC 국장
엄평영 유진테크 사장
김종선 옴니텔 사장
구관영 에이스테크 회장
엄정근 하이스틸 대표이사
이종구 웰텍 대표
장성균 카이스전자 대표이사
임용재 미디어솔루션 사장
최종배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김영해 KBS 부사장
조항진 대한항공 부사장
구관영 에이스테크놀러지 그룹 회장
오환원 (주)우원테크놀러지 대표이사
송광석 경인일보 사장
홍성규 한국전력공사 파주지사장
한정탁 (주)경기그린에너지 대표이사
엄홍석 롯데백화점 창원점장
김미경 판사
박인비 골프선수
설기현 현 성균관대학교 축구부 감독대행
최순호 전 축구선수
김수철 가수
조항조 가수
김원희 MC 탤런트
5.5 총학생회
과거에는 한대련의 본거지로 운동권 학생회가 강성했으나, 그것도 옛말이 되어 다른 대학처럼 비운동권 학생회가 주류이다. 2014, 2015년에는 ROTC출신이 총학생회를 배출하고 주요 학생회를 ROTC가 수권하여 ROTC 세력이 막강한 학교 중 하나이다.군사정권 2014년 총학생회는 재단 문제에 대해 비교적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온 반면 2015년 총학생회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 향후 재단 문제가 발생할 시 어떻게 대응할 지 두고볼려했으나..
결국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은 채 임기를 마치고 내려갔다. 사실상 총학생회는 하는일이 없다. 스펙 셔틀
5.6 기타
- 2015년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평가에서 탈락했다. 1년동안 이대학으로 유학올려는 외국인은 유학생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다. 즉 못온다. 인서울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2]
- 과거 동급생 시리즈를 비롯한 수 많은 게임들의 한글패치를 만들었던 사과나무팀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 정치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BBK 발언을 한 곳으로 유명. 덕분에 대운하 시공이 시작될 경우 운하의 시발점이 되어 지도에서 깨끗이 증발한다는 괴담이 있었다(…) 괴담의 바리에이션으로 '광운대는 수상대학이 되고 통학버스는 통학 곤돌라로 대체되며 리얼 아리아가 실현된다.'가 있었다
- 교내의 명물(?)로 비마타이거라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비마타이거"는 하얀색과 노란색이 섞여있고 꼬리가 선천적으로 굽은 코숏이었는데, 무려 99학번부터 학교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특기는 비마관의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이면지 박스에서 숙면 취하기, 전자정보공과대학의 과사무실 등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하도 수업시간 잠만자서 유급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심지어 교직원 혹은 교수님들이 점심식사겸 회의를 주제히는 자리에 참여해서 밥을 얻어먹고(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도서관을 자유로이 들락거리며 엘리베이터 등을 자유자재로 이용해주는 등 그야 말로 범상치 않은 묘생을 살았다.
- 2007년에 TV동물농장에 친히 출연해주시어서 항상 인지도로 고생하던 광운대의 인지도 상승에도 크게 기여하여 밥값을 해 주었다. 다만 이 당시 이미 연로하시어 노천극장 까치떼에게 공격당해서 이마가 찢어지는 등의 흑역사도 있다. 2008년 6월 27일 축구부 학생들의 숙소 옆 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사망하였다. 죽은 후에는 사진동아리 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어 평상시 비마타이거를 아끼던 교직원과 경비 담당 직원에 의해서 참빛관 옆 잔디밭에 묻어주었다.[10]
2016년 2학기 부터 비마타이거 2세라고 불리는 고양이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페북페이지 광대전에 제보되었으며 광냥이, 비마타이거 2세, 비마타이거 쥬니어로 불린다
- 의정부시와 MOU 체결로 의정부캠퍼스가 생길 수도 있었으나 얼마 안 가서 흐지부지 됐다고 한다.
- 2012년 12월 24일 있었던 솔로대첩의 주최자가 광운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학생 이였다. 자세한 사항은 솔로대첩 참고.
- 2014년 12월 28일 조무성 이사장의 비리사건이 터졌다. 애초에 학교비리 사건으로 미국으로 도피했다 십수년만에 복귀한 인물이 돌아오자마자 다시 여러가지 비리를 저질렀기에 학교내의 충격은 컸다. 사건기사
- 2015년 7월 광운대학교소속 만화동아리에서 새로운 부원을 모집하기 위해 양 손에 쿠지락스의 상업지를 들고 부담을 가지지말고 들어오라고 했다가 작가가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고 기사까지 떠버렸다.... 해당 동아리에서는 추후 불미스러운 일이라며 언급을 자제하고 반성하는 식으로 들어갔고 학교 차원에서 진상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사건기사
- 2016년 2월 12일 수강 신청 시간에 대다수 학생들이 듣는 '공학수학1' 과목이 신청이 안되는 1400오류로 인해 프로그램이 튕기고 수강신청이 망하는등의 엄청난 사고가 생기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수강 신청 프로그램도 제대로 못 만드는 IT 강세대학1시간이나 흘러서야 사과 공지를 올리고 정상화 되었지만, 이미 망한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신청이 안되는 과목은 공학수학1을 포함한 여러 기초필수 과목이었으며, 2016년에 기초필수라는 새로운 과목 분류가 생성됨에 따라 수강 신청 프로그램에 에러가 난 것이었다.
- 지하캠퍼스(광운스퀘어) 건설과정, 교원채용과정, 법인에 금전적 손해 및 청탁에 횡령에 배임죄까지
도대체 몇 개야엄청나게 저질러버렸다는 의견이 대세. 애초에 비리혐의로 수사받은 적이 있던 인물이 재차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으니현재까지 진행된 캠퍼스 공사가 어떻게 될지는 완전히 미지수의 영역이 되어버렸다(...)광운스퀘어 및 80주년 기념관 공사는 이 일과 관계 없이 계속 진행중이라고 한다.
- 이 일로 조무성 이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현재는 재단법인 두레원의 대표이사인 김진홍 목사가 광운학원의 이사장이 되었다.
-이런걸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하지..- - 2015년 5월 15일 1심 재판부는 불구속 기소된 조무성 전 이사장에게 검찰 구형량 3년보다 높은 징역5년형(추징금 6천)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시켰다. 조무성 전 이사장의 아내도 징역 3년(추징금 6천).
-부부가 나란히 비리 저지르더니. 교도소도 나란히 들어갔네..- 판사도 돌아오자 마자 비리종합셋트를 저지른데다 뻔뻔하게 잘못한게 없다고 반성도 안하는 피고인에 대해 열받은듯.. 근데 애초에 비리 저지르고 미국에 도피한 인간에게 재단을 돌려준 인간들은 책임 안지고 있다. 신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