交戰權. 합법적으로 적군과 전투를 할 수 있는 권리.
1 교전권이라는 개념의 유래
고대사회에서야 아무나 다 무기를 들고 싸워도 상관없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교전권이 없는 사람은 무기를 들 법적 자격이 없다.
사실 그 근원을 따져 보자면 중세 이후 서구에서 무기를 드는 것이 귀족, 전사의 특권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노예나 평민에게는 무장할 권리를 주지 않은 데 뿌리가 있다. 고대사회에서야 동서양을 불문하고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필요할 때 무기를 드는데 별 제한이 없었지만 게르만족의 이동 이후 무기를 갖는 것을 자유민, 더 나아가 귀족의 특권으로 간주하는 게르만족의 관습이 퍼지면서 기반이 생겼다. 스파르타나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귀족 전사 계층처럼 숫자가 많은 피지배계층을 무력으로 지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전사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편 나라도 있다.
반대로 노예 병사는 없거나 극히 드물었다. 고대 수준에서 남아있는 기록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그라쿠스 형제의 할아버지가 이끈 노예 군단정도이다. 이슬람교 계열 나라는 이런 인식이 좀 덜했는지 상대적으로 노예 병사를 많이 썼는데, 유명한 노예 병사는 맘루크 같은 부대나, 예니체리/카프쿨루 시파히 같은 명목상 노예 부대가 있었다. 다만 이들은 그야말로 '명목상' 노예 부대이고, 실상은 그저 주인에게 '예속된' 정예병 취급이었기 때문에 일반병보다 오히려 대우가 좋았다. 즉 현실적으론 이들도 위의 전사 계급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보통의 노예에 대한 인식으로 이들을 판단하면 곤란하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확실히 구분하여 치고박을 놈들끼리만 치고박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놈의 세상이 말처럼 아름답고 건전하게 돌아가지는 않는 법인지라 전쟁이란 것이 벌어지면 대개의 경우 진 편의 민중은 약탈당하게 마련이고 그게 싫은 민간인들은 농기구든 몽둥이든 들고 덤비게 되어 있다. 그러면 군인들은 "천한 놈들이 감히!!"하고 화를 내면서 더 죽였다. 물론 자기 편 군대도 때에 따라서는 약탈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자크리의 난 등 백년전쟁 당시 일어났던 민란이 이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영국군이 저지르는 약탈만으로도 피해가 심각했는데 프랑스군 병사들도 자국 농민들을 약탈하기 일쑤였으니. 물론 중세에는 용병의 비중이 컸으므로 프랑스군이라고 다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점은 감안할 것.
유럽하고 비슷하게 시스템이 돌아간 일본 전국시대에도 반항하지 않는 농민은 해치지 않는 등 비슷한 관념[1]이 있었고, 한국도 마찬가지였으나 농민이 곧 군인으로 징발되는 병농일치제가 정착하면서 신분에 따른 무기 소지 제한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졌다. 조선시대만 해도 군역을 져야하는 양인 농민이 스스로 무기를 구입하는 일이 아주 흔했다.
그러나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서구적인 관념이므로, 오늘날에는 전세계가 서구에서 확립된 교전권에 대한 관점을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그 기본 관념은 아래와 같다.
"전쟁은 정당하게 해야 한다"
이 한 줄이 교전권의 가장 기본이다. 따라서 정당한 싸움을 위하여 군인이 아닌 민간인은 전쟁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고, 육군이건 해군이건 공군이건 정규군이 민간인으로 위장하거나 적군으로 위장하고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정규군이 그런 짓을 하다가 적에게 잡히면 합법적인 포로 대우를 받을 수 없고, 스파이나 테러리스트로 간주되어 범죄자로서 처형당할 수 있다. 단 위장하고 도망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규정은 대부분의 병력이 모집병이나 용병이던 18세기 말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쟁은 언제나 정규군끼리의 싸움이었기 때문. 그런데 19세기 경에 이르러서는 민간인은 절대 싸울 수 없게 해버리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 자신도 아쉬워진다. 미국은 아예 상비군 규모가 작아서 지역 치안유지나 내란 진압, 대외전쟁 등에서 민간인 의용군에 크게 의지해야 했고 유럽 국가들도 적 정규군의 후방을 교란한다거나 하는데 민간인의 저항이 크게 요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폴레옹 전쟁 중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나타난 스페인의 게릴라다. 프랑스군은 이 게릴라들을 교전권이 없다고 해서 굉장히 잔혹하게 대했으며 그 광경은 당시 스페인 화가였던 고야가 그린 관련 그림에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저항권에 대한 인식이 깊고 총기가 널리 퍼져 있는 구미 지역의 특성상 적군과 싸우지 말라고 금지한다고 금지가 될 턱도 없었으므로, 타협하여 민간인이 조직한 비정규군에게도 교전권을 부여하게 된다. 단, 여기에는 가능하면 정규군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한 제한조치가 붙게 된다.
2 교전권을 갖기 위한 요건
출처 : 헤이그 육전조약 (Laws and Customs of War on Land (Hague II); July 29, 1899) Annex to the Convention, Article 1#
- 1. 명확한 지휘체계가 있어야 한다.
지도자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는 군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스파이나 간첩처럼 지휘체계는 있으나 점조직으로 구성되는 등 사실상 누구의 지휘를 받는지 불분명한 경우도 지휘체계가 없다고 인정받아 교전권이 없다. 즉 적어도 누구의 명령을 받고 싸우는 지는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 2. 통일된 제복과 휘장을 공공연히 착용해야 한다.
전투원이 아닌 척 하면서 뒤통수 까지 말고, 싸우고 싶으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라는 이야기다. 나폴레옹 시절에도 혼자서 말타고 적진 후방을 돌아다녀야 했던 정찰 장교(Exploring Officer)도 군복을 입고 작전을 수행했다. 복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잡히면 정말로 스파이로 간주되어 처형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제복이란 것의 형태가 법으로 규정되거나 한 것은 아니므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청바지에 청자켓, 운동화를 신고 오토바이 헬멧을 써도 상관없다. 전원이 통일된 복장을 갖추기만 한다면.
물론 이게 물질적인 여건상 안 될 수도 있으므로, 과거 사례를 보면 완장 하나로 때우는 경우도 숱하게 있었다. 이 경우 전장을 빠져나가 손 한번만 살짝 움직이면 민간인이라고 우길 수 있으므로, 자의건 타의건 일단 끌려나갔어도 싸우기 싫어질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부작용으로 신경이 곤두서고 약이 오른 적군이 이쪽의 진짜 민간인을 향해서도 총질을 해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경우는 낡은 군복이라도 지급한다.
- 3. 무기를 공공연히 휴대해야 한다.
이게 사실 2번보다 더 중요하다. 심지어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어도 무기를 공공연히 가지고 있으면 전투의사가 있건 없건 제네바 협약[2]에서는 전투원으로 취급해 준다.(단, 대한민국은 이 부분을 "유보"하고 협약을 비준했기 때문에 적용이 안된다) 옷을 아무리 갖춰 입어도 무기 없으면 도루묵이니까. 정당하게 싸워야 하므로 주머니에 수류탄 숨기고 있다가 길 옆에서 던지고 도망가면 테러리스트지 전투원이 아니다.
그러다 잡히면 즉결처분. 아니 다른 놈들이 이런 짓을 흉내 못 내게 하기 위해서 본보기로 한층 더 잔혹하게 처형된다. 신체 여기저기가 토막나고 거리 한복판에 몇 달이고 매달릴 수도 있다. 제네바 협약이 공표된 이후의 전쟁 중 벌어진 양민학살에 대한 책임추궁에서 나오는 대답 중 상당수가 "민간인으로 위장한 군인들이 숨어있었다."이다.[3]
3 교전권 부여의 한계
위와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종합해서 스포츠에 비유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이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고 싶으면 (가급적)유니폼(제복)을 입고, 팀(지휘체계)을 짜고, 공(무기)을 가지고 들어와라."
이런 조건들을 만족시키면 민간인이 구성한 비정규군도 민병대로서 합법적인 교전단체가 되어 교전권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그럴때 적군은
"니들 교전권 없음. 범죄자, 테러조직임."
하면서 중지를 날리고 때려잡을 수 있다. 그리고 물론 규칙 다 지켰는데도(…) 그럴 수 있다. 자기들은 안 지키면서. 예를 들어 독일 국방군 이나 일본군.
하지만 법적 교전단체로 간주 받지 못하는 게 나은 경우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지리산 등지에서 잡힌 "공비"를 기본적으로 적의 비정규군이 아니라 "납치되거나 오도되어 가담한 선량한 양민" 또는 일반 범죄자로 간주했고, 생포한 빨치산은 민간인 학살 등에만 연루되지 않았다면 대개 재판을 받고 얼마 안 가서 석방되었다. 물론 전투가 벌어지는 현지에서는 걷지 못할 정도의 중상자라 데려오기 귀찮다거나 토벌대 측의 피해가 커서 화가 나 있다거나 해서 즉석에서 사살된 경우도 있지만, 산 밑까지만 내려오면 생명은 보장받았다. 만일 대한민국 정부가 이들을 교전권을 가진 북한의 정식 비정규군으로 간주했다면, 빨치산 포로들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갔다가 북한으로 송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게릴라를 포로로 대우하지 않았으므로 송환하지 않았고, 이 점은 북한도 빨치산에 대한 송환요구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아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어쨌거나, 전쟁 중에 일신의 안녕을 원한다면 교전권을 따지기보다는 정규 군인이 아닌 이상 무기에 손대지 않는 편이 낫다. 당신이 포로로 잡혔을 때 전투원으로 인정받을지 못 받을지는 순전히 적군 지휘관의 판단에 자비심과 관대함이 얼마나 포함되느냐에 달려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스스로 나서 싸울 의사가 있다면 포로 대우 따위는 체념하는 편이 마음 편할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특수한 환경상 20대 초반~30대 중반의 민간인 남성들은 대부분 예비군에 편성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즉, 이 글을 읽고있는 대부분의 위키러들은 전쟁날 경우 군인이라는 것(…). 어차피 젊은 남자는 잠재적 전투원이므로 최악의 경우 민간인도 학살 당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인이 혹시라도 전쟁할 윗동네. 그나마 중국이나 러시아는 외국과의 전쟁에서는 그럭저럭 지킬 건 지킨다지만[4] 북한은 그것도 아닌 게 현실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할 적 이 교전권이라는 개념 때문에 법적으로 상당히 골머리 썩었고, 바통을 이어받은 오바마 행정부 역시 고민중이다. 서양적 개념상 자신들이 정정당당히 전쟁중이라고 선언을 하긴 해야 하고, 대통령이 의회한테 전쟁 허가를 받은 건 좋았다. 하지만 전쟁은 주권을 가진 두 국가단체간 하는 것. 아프가니스탄의 주권을 지니지 않은 알 카에다나 연계 테러 조직을 상대로 "전쟁"은 법적으로 테러라는 범죄를 저지른 민간인에 향한 "경찰 행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는 시설 설비, 예를 들어 아부 그레이브, 관타나모와 같은 곳들이 "전쟁"이란 개념하에 운영하자니 분명 정보 확보=고문를 해야 하는데 테러리스트들의 교전권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제네바 협약에 보호받는 군인 신분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교전권을 박탈하는 순간 미군은 주권이 없는 타지에서 민간인 사살 및 구금 활동을 펄치고 있는 멋진 불법 행위를 진행 중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것.
결국 법적으로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미국 행정부는 테러리스트를 불법전투원이라는 지극히 서양중심적이며 애매한 법적 굴레 안에 포함시켜 테러리스트 상대할 때 "전쟁" 행위, 즉 그들을 하나의 주권 세력으로 상정하는 건 가능하나 군인이 아니므로 제네바 협약을 지킬 필요는 없다 는 이중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포로(테러리스트)를 재판에 회부할 시 전쟁중이니 군법에 맡겨야 된다는 주장과 교전권이 없는 불법전투인은 민간인이므로 정당한 인수 절차를 거쳐 미국 법정에 세우거나 체포된 국가의 법정에 맡기는 것이 옳다는 법적 싸움이 일어난 것. 물론 실제로 포로를 수용중인 미군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거의 모든 경우 군법정에서 재판을 열고 있다. 이 경우 무고하게 붙잡힌 사람은 공정한 재판, 항소심, 증거 제시 및 검토 기회 이런거 없다. 그냥 유죄판결 기다리는 것 뿐. 복수 결의 할 때에는 앞뒤 보이는 게 없으니 밀고 들어갔지만 "전후" 처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골치아픈 문제인지 보여주는 사례.
4 참고 항목
- ↑ 우선 적의 영지를 점령한 뒤에도 농민은 세수의 대상인데다 공적으로 쳐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양민 수급을 들고 와서 적군 무사를 베었다고 구라치며 봉록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목 검시관이라는 직책이 따로 있었을 정도
- ↑ 정확히는 제1 의정서. 44조에 규정되어 있다.
- ↑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소전에서 독일군이 벌인 빨치산 소탕작전이나 중일전쟁 중 일본군에 의한 난징학살도 이런식이었다. 물론 둘다 무저항의 민간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죽여놓고 대는 핑계에 불과했지만
- ↑ 물론 국내에서는 가차없다. 특히 중국보다는 러시아가 더 가혹한 편이며, 체첸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