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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요약본 겜프의 닌텐도 이야기
1 화투패 회사에서 장난감 회사, 그리고 게임기 회사로(1889년 ~ 1970년대)
1889년 9월 23일 화투를 제조하는 개인 상점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임천당 골패)로 창업했다.[1] 닌텐도 곳파이는 화투를 만들때 손맛이 들어 치는 재미가 들게 끔 바닥에 내려칠 때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화투의 앞, 뒷면 사이에 석회가루를 넣었다. 열심히 화투를 치다보면 석회가루가 터져서 화투를 다시 사야했기에 닌텐도는 누구나 손쉽게 화투를 사도록 담배 가게를 유통점으로 개척했다. 이 화투는 현재도 판매하고 있고, 이 당시에 사용하던 가게는 현재도 연구소로 쓰고 있다고 한다. 닌텐도(任天堂)라는 이름이 실제로 어떤 뜻으로 작명됐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일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하늘에 맡기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라는 사훈이 있는걸 봐서는 그런 뜻이 아닌가 추측을 하게 된다. 근데 지금 닌텐도의 행보를 보면 임의로 즐길 수 있는 게임기의 천당이라는 뜻이 일지도 모른다.[2]
조부의 죽음으로 야마우치 히로시가 뒤를 이어 닌텐도의 3대 사장이 된다. 원래는 데릴사위인 그의 아버지가 이어야 하지만 실종(잠적)[3]으로 1949년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 22세의 나이에 뒤를 잇는다.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재질 트럼프 카드를 생산해(1953년) 히트를 치고, 디즈니 캐릭터들을 인쇄한 디즈니 트럼프(1959년)로 다시 한번 대히트, 일본 최대의 카드생산회사가 된 동시에 세계 최대의 카드 생산회사를 목표로 삼게 된다. [4]
그러나 야마우치가 견학을 간 세계 최대의 카드 제조회사인 미국의 US Playing Card[5]가 생각보다 초라한 조그만한 회사였음에 충격을 먹고, 카드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이후 이것저것 사업[6]을 벌여보지만 전부 실패해서 도산 위기에 처한다.
결국 야마우치 사장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느낌에서 아이들의 놀이기구를 만들어 보자."라고 결심, 아날로그 장난감들로 원펀치 투펀치 잽을 날리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에 만능팔인 「울트라 핸드」를 개발했고, 야구공을 칠 수 있도록 던져주는 야구공 피칭 머신인 「울트라 머신」, 잠수함의 잠망경을 닮은 「울트라 스코프」등 일련의 울트라 시리즈를 발표했다. 울트라 시리즈가 히트하자 닌텐도는 태양전지와 반도체 기업이던 일본 샤프의 우에무라를 영입해 장난감용 레이저 광선총을 개발했다. 특히 닌텐도는 기발하게도 오일 쇼크로 문닫은 볼링장들을 인수해 광선총용 실내 사격장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한편 1968년 N&B Block 이라는 레고 짝퉁을 만든 흑역사도 있다. 게다가 판촉광고에서는 레고블럭과 호환된다는 간큰 홍보문구를 내세웠다. 닌텐도 위키아의 관련문서
2 퍼스트파티와 서드파티가 공생한 닌텐도의 전성기(1980년대 ~ 1996년)
그래도 이걸로는 아직 많이 부족했고, 업계에서 버티고 있는 대기업들을 이길 수단을 찾던 닌텐도가 결정한 것은 당시로서는 첨단 산업이었던 전자 완구였다.
전자 완구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닌텐도는 요코이 군페이를 중심으로 개발정보부를 신설하고 1980년에 게임&워치를, 1983년에는 그 유명한 패미컴을 발매한다.
이 시기 북미 게임업계에서 발생한 아타리 쇼크 사태를 시작으로 가정용 게임기 업계 전체가 큰 손실을 입은 직후였고 이런 상황에서 닌텐도는 게임에 필요한 부분 이외의 기능은 모두 없애서 성능을 극대화시키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중시하였으며, 당시에 아케이드 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던 몇몇 회사를 세컨드 파티로 영입했다. 또한 닌텐도는 먼저 소프트를 테스트해서 일정 이상의 퀄리티인 게임만 닌텐도 라이센스를 주는 방식(서드파티 제도)을 도입하는 등 전체적인 게임의 퀄리티를 높여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다시 살려내었다. 즉 아타리 쇼크로 거의 사장된 가정용 게임기 업계는 충분한 관리만 따르면 명품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덕분에 서구권에서는 닌텐도를 게임기 업계를 살려낸 구세주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패미컴 시절에는 닌텐도라는 명사가 게임기를 뜻하게 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당시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닌텐도 3DS를 줄여서 닌텐도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후 발매된 슈퍼패미컴 역시 패미컴의 뒤를 이어 일본 양대 RPG(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전부 닌텐도로 몰림으로써 일본에서는 경쟁하던 플랫폼이었던 PC엔진과 메가드라이브를 물리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다만 패미컴 시절과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의 이식에 충실했고 서양 게이머들의 입맛에 맞는 액션과 슈팅, 스포츠 장르가 많았던 메가드라이브가 슈퍼 패미콤보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여담으로 패미컴과 슈퍼패미컴이 연이어 히트하던 90년대 초반 닌텐도는 이미 경상이익만 1천억엔을 넘기는 회사였는데[7], 이건 당시 삼성, LG(당시 금성), 대우, 현대 등등의 한국 10대 그룹 경상이익 총합을 혼자서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한국 입장에서는 사원 700여명 남짓의 '작은' 기업이 애들 장난감이라 생각하던 게임기 하나로 이정도의 결과를 내놓자 새삼 거대한 일본의 경제력과 닌텐도라는 회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서[8] 삼성, 현대, 해태등등이 게임기 사업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된거 같기도 한데[9] 결과는.. 사실 닌텐도라는 회사는 일본내에서도 신기한 취급을 받았다. 단적으로 당시 비슷한 매출을 기록했던 후지츠만 해도 사원수가 5만여명이었으니. 사원 1인당 경상 이익이 1억엔대인 회사는 당시 잘나가던 일본내에서도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기록이었다고.
3 서드파티의 이탈과 암흑기를 맞이한 닌텐도(1996년 ~ 2005년)
슈퍼패미콤의 히트 이후 발표한 가상현실을 컨셉으로 잡은 휴대용 게임기인 버추얼 보이는 쫄딱 망해버렸고 슈퍼 갑으로 성장한 닌텐도가 엄청난 갑질을 시작하자 수많은 서드파티들이 다른 회사로 이전하여 닌텐도64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게 1위의 자리를 넘겨주었고, 결국 게임큐브에 이르러서는 플레이스테이션 2에게 결정타를 맞아 거치형 시장은 간신히 수지타산을 맞추는 수준까지 몰락하고 말았다.
사실 플레이스테이션의 제작회사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는 원래 닌텐도에게 부품을 납품하던 일종의 서드파티 회사였다. SCE는 닌텐도와 합작해서 슈퍼패미컴용 CD 드라이브를 개발하려고 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일이 추진되었지만 결국 닌텐도는 이를 취소해버렸다. 롬 카트리지 시스템이 닌텐도에서 더 이익이 있을거라는 계산하에서였다. 이 점은 닌텐도 64를 참고하기 바란다. 결국 SCE는 만들던 것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제작. 단숨에 게임계를 제압해버렸다. 닌텐도는 소니와 CD 게임기 등에 대해 평가절하 했지만 결국 당대의 승자는 소니가 되었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의 "오락산업은 언제 불황이 될지 모르고 언제 호황이 될지 모른다." 말 덕분에 전성기 시절에 모아놓은 자본력으로 적어도 회사가 기울어지진 않았으며, 닌텐도 64로 나온 슈퍼 마리오 64(1996)와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1998)는 3D 게임의 기본이 되는 등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부터는 CD 3D 서드파티 게임이 주류가 되어 퍼스트파티로서는 닌텐도 브랜드 외에는 내세울 만한 장점이 점점 약해진다. 닌텐도 64 이후 닌텐도의 가정용 콘솔의 게임 소프트의 대략 8할 이상이 닌텐도가 개발 및 제작에 참여한 게임인 것을 보아도 닌텐도의 암흑기는 영향력이 큰 것 같다.
다만 휴대용 게임기 산업에서는 게임보이 이후로도 계속해서 완벽한 패권자로 군림했다. 1989년도에 나오자마자 빅 히트를 친 게임보이는 1996년까지 전세계 4000만대를 팔아치우게 되고 90년대 중반, GB의 수명이 다 되어간다고 생각될 무렵에 등장한 포켓몬스터의 신화적인 히트는 휴대용 시장을 다시 한 번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내었다. 그래도 아직 휴대용 시장 자체가 틈새시장에 불과한 시점이었던지라, 회사 전체의 수입은 전성기때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의 수입도 매 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 상황은 게임보이 어드밴스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NDS의 발매 이전까지는.
4 NDS, Wii 출시 이후에 다시 찾아온 리즈시절(2005년 ~ 2010년)
소니가 PS2의 빅 히트를 발판으로 휴대용 게임시장 역시 넘보기 위해 PSP를 출시하였을 때, 닌텐도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기에 NDS를 출시한다. 그리고 닌텐도의 그동안의 경험과 역량, 그리고 2002년에 새로 취임한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의 야심찬 계획을 담고 출시된 NDS는 그간 게임기 시장의 주류였던 거치형 콘솔마저도 압도하는 히트를 쳐, 휴대용과 거치형을 모두 아우르는 게임업계 전체의 주류시장을 차지하게 된다.[10]
2004년 말에 출시한 NDS는 듀얼 스크린과 터치 스크린이라는 획기적인 기획 등으로 2005년 쯤에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덕분에 역대 휴대용 콘솔 1위를 차지하게 되고, 그 히트를 발판으로 하여, 2006년에 닌텐도는 마침내 체감형 게임기인 Wii를 출시. 이 역시 총 기기 판매량 1억을 넘는 대박을 치게 되고, 겜덕후들에게 "닌텐도가 부활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목을 다시금 받게 된다. 이후 2007년엔 한국닌텐도도 설립하게 되고, 한국에서도 오랜 암흑기 끝에 대박을 치게 되었다. 이 시기엔 패미컴과 슈퍼패미컴의 영광을 사실상 되찾았다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다. 그리고 2010년 5월에는 소니와의 오랜 싸움에서 승리하였음을 선언하였다. 헌데...
5 세대 교체 시기에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암흑기(2010년 ~ 2014년)
DS와 Wii로 인해 한때 7만 가까이 도달했던 닌텐도의 주가는 이후 계속해서 떨어져 2012년 1월 27일 기자회견 당시 9980까지 떨어졌다가 10250으로 회복하는등 큰 혼란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단기 수익이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외화(달러)로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엔고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120원 하던게 80원 이하로 떨어진 셈. 흠좀무 하지만 일본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1달러당 75엔을 바라보고 있는 2011년 11월 현재, 엔고 현상이 떨어질 날은 머나먼 일인듯 하다. 하지만 닌텐도는 막대한 환차손을 보면서도 가격을 조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12년 4월 26일에 2011 회계년도 결산 발표가 났다. 결론은 상장 이후 50년만에 처음 겪어보는 적자. 닌텐도는 2011년 회계연도(2011년 4월 ~ 2012년 3월) 에 423억엔(약 590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오로지 엔고에 따른 달러자산 손실 때문이었까? 물론 엔고도 영향이 없다고 할수는 없으나, 엔고를 감안하고 보아도 영업적자가 373억2000만엔이다. 매출은 3년 연속 감소에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6% 줄어든 6476억엔(약 9조470억원)이었다. 엔고와는 무관하진 않으나 대개의 원인은 쉽게 말해 안 팔려서 적자 난 것.(기사)
일본 내 언론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0년 들어서는 일본내에서 Wii가 플레이스테이션3보다, NDS가 PSP보다 적게 팔리기 시작했다. 3DS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소프트 판매량은 미묘한 수준. 물론 세계로 눈을 돌리면 아직까지는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12년 닌텐도는 Wii U를 출시했다. 하지만 출시 직후부터 Wii U의 평은 그리 좋지 못했고 결국 소매점들이 게임큐브의 재림을 우려할 정도로 Wii U는 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경쟁사들과 비교해 킬러타이틀이 적은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할 게 없다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다. 2013년 초 현재 닌텐도에서 낸다고 한 작품은 많지만 출시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시기를 서드파티가 감당해 주면 좋겠지만, Wii U의 성능이 차세대기(PS4와 엑스박스 원)에 비해 좋지 못해 서드파티의 참여가 좋지 못하다.
물론 꼭 그래픽이 좋아야만 좋은 게임인 것은 아니나, 현대의 게임은 대체적으로 좋은 그래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위해서 빠른 연산 속도와 메모리 확보가 필수이다. 이 때 성능이 낮은 Wii U로 엇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이려면 다른 콘솔에서보다 더욱더 최적화가 잘 이루어져야만 하고 이는 많은 비용으로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저사양 게임을 만들 때 비용이 덜 드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최적화를 잘 한다고 해도 쓰인 부품들의 세대가 다르다 보니 차세대기에 적용된 고급스러운 효과를 적용하기는 힘들다.
개발비가 덜 드는 것도 아니면서 그래픽은 더 안좋고 거기다 판매량마저 시원치 않으니 서드 파티는 점점 닌텐도를 외면해 가고 있다.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친숙하지 못한 Wii U의 패드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게임 제작사가 적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긴 닌텐도 퍼스트 파티 게임조차도 패드를 잘 활용한 게임이 별로 없으니 서드 파티로서는 더욱 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닌텐도가 여태까지 하이스펙 타이틀의 개발을 등한시했던 것도 발목을 잡고 있다. Wii U가 닌텐도 최초의 HD 그래픽을 제공하는 하드웨어로, 당연히 닌텐도는 여태까지 HD 그래픽의 게임을 개발한 경험이 없는지라 게임 개발과정에서 많은 난항이 있었고, 덕분에 출시가 예정돼있던 퍼스트 파티 타이틀의 투입이 대폭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드 파티의 게임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퍼스트 파티 타이틀까지 발매가 지연되자 Wii의 막바지와 마찬가지로 소프트 부족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Wii U는 스타트 대쉬에 실패.
하지만, 닌텐도 3DS는 사정이 나쁘지 않은 편으로, 제2의 파판7 사태라고도 불리는 몬스터 헌터 4의 3DS 출시를 전환점으로 많은 킬러 타이틀을 내놓고 있다. 경쟁기인 PS Vita가 힘을 쓰지 못해 DS - PSP 시절 시장을 이등분[11]했던 것과 달리 사실상 원탑체제를 유지중이다.[12] 닌텐도의 재정을 흑자로 돌릴 정도까지는 아닌 듯 하지만. 그리고 처음에는 비난 일색이었던 2DS 역시 막상 출시된 뒤에는 호의적인 평이 많이 늘었다. 그와중에 나온 미디어믹스는 개망했다. 그래도 이후 반등은 하긴 했지만...
6 '스마트한 성공'을 얻기 위한 도움 닫기 기간 (2014년 ~ 2016년)
6.1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경영방침의 발표 (2014년)
Wii U의 판매부진 및 여러 악재가 더해지면서 닌텐도가 기존의 노선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인가 하는 우려는 계속 되었으며, 결국 2014년 1월 발표된 2013년 손실이 발표되면서 그 우려는 현실화 되었다. 결국 닌텐도는 2014년 1월 30일 새로운 경영방침을 발표했다. 해당 설명회의 실시간 트윗을 모은 글. 설명회 전문.
새로 발표한 경영방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닌텐도 게임을 다른 플랫폼으로 출시할 일은 여전히 없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정책은 그대로 유지한다.
- 하드웨어 개발 강화. 이는 계속 이슈가 되었던 닌텐도 플랫폼의 저성능에 대한 자책으로 보인다.
-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출시할 일은 없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한 서비스는 올해 런칭으로 예정. 이 어플리케이션은 유저-유저 및 유저-닌텐도 간의 소통을 위한 장이 될 것이라 한다. Mii버스 PC 버전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있다. [13]
- 스마트폰 서비스는 디바이스 베이스가 아닌 ID 베이스로, 휴대기기/플랫폼과 공유. 이는 닌텐도가 이상하게 고집을 부려왔던 디바이스 귀속 방침을 버린다는 의미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 2015년부터 신흥시장 진출. 여기서 신흥시장이란 건 다른 플랫폼을 말하는 게 아니라 게임이 아닌 다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며, 건강과 관련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다음 10년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 유연한 소프트 가격 도입
- 자사 캐릭터 IP를 게임 이외의 분야에도 적극 활용 예정[14] - 사실 이는 이전에도 애니메이션 등의 미디어 믹스가 된 전례가 많았다. 그리고 출시된 것이 게임 연동 피규어인 아미보.
- Wii U에 버추얼 콘솔로 DS 소프트 출시
2014년 4월 28일과 5월 2일. 일본 다이아몬드誌 에서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이를 재확인시켰다.원문 전편 원문 후편 번역
- 닌텐도는 시대에 맞추어 유연하게 변신해온 기업이다. 닌텐도를 비디오 게임기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황스러울것.
- 故 야마우치 히로시 前 사장이 엔터테인먼트 사업 이외의 영역에 진출하지 말라고 했으나 "엔터테인먼트 = 비디오 게임" 으로 생각하진 않았다[15].
- 특정 타겟을 노리는것이 성공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것이 상식이나, 닌텐도의 개성 중 하나는 대상 고객을 과도하게 노리지 않는 것이며, 이렇게 폭 넓은 고객에게 진심으로 접근하는 것을 추구하는 회사는 적기 때문에 닌텐도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확실히 효율이 나쁠지도 모르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닌텐도 DS나 Wii가 태어 났다고 생각한다[16].
- Wii는 발매 직후부터 단번에 퍼졌던 느낌이 있기 때문에 오해 받기 쉽지만,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는 모두가 순식간에 퍼지는 것이 아니라, 소문으로 서서히 퍼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 세상이 생각하는만큼 닌텐도는 스마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부 성공 경험이 시끄럽게 전달되는 한편(반대로), 그늘에서 몸부림 치고 있으며, 과거부터 다양한 실패도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세상이 요구하는 '똑똑한 성공 "
이라 쓰고 원가절감이라 읽는다을 얻기위한 도움 닫기 기간 인지도 모르겠다. - 하드·소프트 일체형 비디오 게임기를 경영의 핵심으로하는 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2014년 1월 오는 3월 끝나는 2013회계연도에서 당기 순손실 250억엔(약 25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데, 미국 시장에서 3년 연속 적자를 낸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닌텐도가 Wii의 후속작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Wii U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극심한 부진으로 겨우 500만대가 넘어서는, 당초 계획상 판매 대수였던 900만에 크게 못미치는 판매 대수인데다, 출시 한달만에 300~400만 판매를 넘어선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엑스박스 원 등과 비교되어 더욱 참혹한 결과로 비추어지고 있는 상황.
언론 등에서는 대체로 닌텐도가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것이 오산이었고, 무엇보다 신형 Wii가 스마트폰 게임과는 차별화된 그래픽을 가진 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을 사로잡기에는 성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닌텐도의 이와타 대표가 "게임기를 수만엔에, 게임 소프트웨어를 수천엔에 파는 전통적 방식이 힘을 잃었다"라는 발언을 하여 닌텐도의 자사 하드웨어 집중 전략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지만,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는 닌텐도가 '젤다'나 '마리오' 같은 자사의 초히트 게임들을 닌텐도의 하드가 아닌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내던지는' 유래없는 선택을 하는건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결국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로 2014년 1월 20일 닌텐도 주가가 한때 전 거래일(17일) 대비 19%나 밀리면서 1990년대 이후 최대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주가가 큰폭으로 하락하는건 주식회사라면 흔한 일이지만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에 허덕일때도, 2008년 금융위기때도 아랑곳없는 모습을 보이던 닌텐도라서 언론의 주목을 모았다. 다만 떨어진 주가는 얼마 안 있어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2014년 4월 22일 닌텐도는 대만에서 닌텐도 제품을 취급하던 자회사 닌텐도 유한 회사를 해산하고 대만쪽 직원들은 대부분 해고한 다음 모든 업무를 홍콩 닌텐도로 이관한다고 밝혔다. 닌텐도 유한 회사는 1991년에 설립되어 닌텐도가 지분 100퍼센트를 보유한 형태로 23년간 이어져온 기업이었으며, 뉴스 등에서는 이 해산을 닌텐도 본사의 적자로 생긴 부진으로 인한 자회사 축소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평소 닌텐도 최고 경영자 등이 공공연하게 '현금을 잔뜩 보유하고 있으므로 구조조정 같은거 안해도 괜찮다'고 떠들던 닌텐도였지만 이번 사태로 어디까지나 일본 본사나 적어도 중요 지사 한정인게 되어버렸다.한국 닌텐도는 괜찮은가?? 한편으로는 2014년 1월 중국 정부가 상하이 자유무역지구 개방과 함께 14년간 금지해온 콘솔 게임 봉인을 해제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쪽에 판매 중심을 옮기기 위한 조치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하나의 중국을 의식한게 아니냐 하는것.
2014년 5월 7일 2013 회계연도(2013년4월~2014년3월) 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5천717억엔(5조7천490억원), 영업손실 464억엔(4천666억원), 순손실 232억엔(2천33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출은 지난 1월 발표된 예상 매출 5천900억엔(5조9천33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결과다. 닌텐도의 5년 연속 매출 감소와 3년 연속 영업적자에 이와타 사토루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책임을 완수하는 것은 그만두는 게 아니라 사업의 추진력을 회복시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이라고 답해 연임 의사를 확고히 내비쳤고 새로운 사업 추진력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히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2014년 10월 29일 2014년 3분기에 영업순손익을 242억 엔(2,343억원)의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Wii U의 마리오 카트 8등이 꾸준한 실적을 거두고 3DS에는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즈 시리즈등의 킬러 타이틀이 많이 나온 덕에 기기견인이 상당히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또한 예상치를 훨신 윗도는 수익이 나온 것은 또 엔저로 인한 환차익으로 재미를 보아서이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발표한 2015년 3월기 제3사분기 결산발표에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를 발표했다.
- 3DS 총 708만대
- Wii U 총 303만대
- 포켓몬스터 오메가루비·알파사파이어 935만장
-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3DS 619만장
- 마리오 카트 8 477만장
-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Wii U 339만장
분기 순이익은 595억 1500 만엔으로 작년 동기 대비 5배에 가깝다. 다만 이건 작년 동기가 워낙 폭망해서 그런거고(...) 전반적으로 볼 땐 나쁘지만은 않은 매출을 올렸으며 그 전 분기에 이어 일단 흑자가 나왔다는데 의의가 있다. 일단 닌텐도가 완벽하게 회복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적어도 심각한 경영난에서는 벗어나는데 성공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 발표에서 Wii U는 퍼스트/세컨드 파티 게임(또는 서드 파티 독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하였으며 이는 Wii U가 앞으로 출시될 퍼서트/세컨드 파티 게임들에 크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2015년 라인업도 만만치 않은 타이틀이 있고 그 중엔 젤다의 전설 신작도 포함되어 있지만 퍼스트/세컨드 파티 특성상 제한될 수 밖에 없는 타이틀의 양 때문에 이 소수 기대작들이 얼마나 견인해 줄 지 관건이다.[17] 마리오와 올스타들이 막아놓은 것을 젤다가 얼마나 하드캐리할지 지켜보자
6.2 모바일 시장 진출 발표 및 신규 콘솔 발표 (2015년)
2015년 3월 17일 17시경, 일본의 모바일 게임업체인 DeNA와 업무・자본 제휴를 맺는다는 취지의 공동기자발표회를 통해 자사 IP를 스마트 디바이스로 확대해 나갈 것을 발표하였다. 기자회견 전문 번역 이는 이전부터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고 발언해온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결심한 사항으로, 다소 경직된 문화를 가진 닌텐도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한 닌텐도 IP의 게임은 2015년 연내 선보일 예정으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다만 UX를 중요시 여기는 닌텐도답게 기존에 나온 게임의 이식작 등은 내놓지 않을 것이며 철저히 모바일엔 모바일 전용 게임을 내놓을 거란 방침이다.
또한 스마트 디바이스로의 진출과 더불어 이와타 사장은 '코드네임 NX'라는 차기 게임전용 플랫폼을 발표하며 이후로도 콘솔 플랫폼을 소홀히 하진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차기 플랫폼의 정보는 2016년에 발표하고 싶다는 발언을 하며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아직 Wii U가 발매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 발표가 너무 이르다는 평도 없진 않지만 게임보이 어드밴스도 에뮬레이터 문제 등으로 인해 2001년 발매 이후 불과 3년 뒤인 2004년에 닌텐도 DS에게 자리를 내준 것을 생각하면 닌텐도 측에선 더 이상 Wii U를 끌고 가기엔 힘들 것이라 판단하고 재빨리 9세대로 세대 교체를 하려는 생각을 한 듯하다. 물론 NX가 거치형 게임기일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 발표 후 닌텐도의 주가는 수직상승하여 2011년 6월 이후 약 3년 9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닌텐도는 2015년 E3때 NX나 스마트폰 게임들에 대해서 발표를 안한다고 선을 그었다. 무엇을 발표할지는 이제 미지수.
한편 2015년 5월 8일 닌텐도는 2014년 회계연도(2014년 4월 1일~2015년 3월 31일) 실적발표에서 매출액 5497억 8000만 엔, 영업이익이 247억 7000만 엔, 순이익이 418억 4300만 엔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회계연도 연간 기준으로 영업이익을 낸 것은 4년만에 처음으로 전년도에 닌텐도가 영업손실 464억 2500만 엔, 순손실 232억 2200만 엔을 기록하였던 것에서 흑자 전환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매출액은 전년도에 기록한 5717억 2600만엔에서 3.8% 감소하여 2009년에 매출액이 정점을 찍은 이후 6년 연속 감소하며 여전히 매출액 감소세가 지속되는 중이다.
2015년 모바일 시장 진출 발표 후 닌텐도의 주가는 승승장구 했고, 5월 말 출시한 스플래툰이 일본 매장 내에서 죄다 매진되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보이면서 덩달아 Wii U의 판매량도 쑥쑥 상승했다. Wii U의 판매량이 약간 감소했다.[18] 특히 스플래툰의 성공은 항상 오래된 IP만 우려먹는다는 비판을 날려버렸고, 개발자로써의 닌텐도의 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효과를 주었다.
아미보역시 매우 순조롭게 팔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판매 수량을 못따라가 품절하는 사태가 속속 터지면서 사실상 닌텐도가 다시 옛 위상을 되찾을 것 만 같았다.
그러나 2015년에 열린 E3 2015는 다시 한번 닌텐도가 서드 파티들을 버린 댓가가 무엇인지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특히 닌텐도와 Wii U 유저들에겐 앞으로의 타이틀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가 큰 과제가 되었다. 말그대로 비가 안오는 가뭄이다 심지어 차라리 보여줄게 없다면 E3를 아예 참가하지 않았거나,[19] 저번 닌텐도 다이렉트를 하지 않고 그때 발표한 내용들을 이번에 발표하는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도 있다.
게다가 E3가 끝난지 1달도 채 되지 않아서 7월 13일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7월 11일 경 암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미야모토 시게루와 다케다 겐요가 임시로 사장 일을 맡는다고 한다. 현재 NX의 발표와 모바일 시장 진출이 남아있는데 이와타가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닌텐도의 앞날은 현재 매우 불확실하다.
이와타 사토루 문서에도 있지만, 14일 오전 2시 현재에도 트위터의 #ThankYouIwata 태그는 자꾸만 늘어나고 있고, 전세계 많은 게이머들과 심지어 다른 경쟁 게임사들의 대표인물들도 애도를 표하였다.
그리고 2015년 8월 27일, 포케토루(pokemon shuffle)이 출시되었고,.2015년 9월 10일 포켓몬 GO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 두 게임 모두 DeNA와 협력해서 만든 게임들이 아니다.
2015년 9월 16일 부터 키미시마 타츠미[20]가 故 이와타 사토루의 후임으로 닌텐도 사장으로 부임한다.
2015년 10월 29일, 결산설명회를 통해 향후 계획이 더 공개되었다.
- 아직 발표안한 Wii U와 3DS용 타이틀이 많이 있다. 이는 NX의 발표로 인해 초조해 하는 Wii U 유저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드 파티 개발사들의 로컬라이징도 적극 지원할 것이다.
- 드디어 계정제 시스템이 발표되었다. 이 계정제 이름은 닌텐도 어카운트로, 콘솔-모바일 기기-PC를 아우른다. 당연히 클라우드 시스템을 지원한다.
- 신규 스마트폰 게임은 'Mii Tomo' 이며, 내년 3월 발매로 미루어졌다. 홍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나...
- NX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사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하며 아미보가 그 일환이라고 한다.
서드파티가 다 떨어져 나가 자사 IP밖에 사용할 게 없는 거 아닌가 - 설명회 이후 주식시장에선 닌텐도의 주가가 9%, 협력사인 DeNA의 주가가 15% 떨어졌다. 스마트폰의 전개 일정이 미뤄진데다 공개 타이틀인 Mii Tomo의 내용도 기대 이하인 것이 원인이라는 평.
여담으로, 닌텐도의 팬들 사이에서는 "닌텐도에서 게임기뿐만 아니라, 스마트폰도 직접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실제로 닌텐도에서 출시한 게임보이나, 패미콤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직접 만들어 본 컨셉 디자인의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게임기와 스마트폰이 합쳐진 상상도를 보기만 해도 "아! 딱 닌텐도에서 만든거 맞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친숙하고 흐뭇하다.# ## ### ####만약 나온다면 3대 게임회사가 스마트폰으로도 경쟁하게 되는건가 게임패드에서 컨트롤러가 분리되는 것은 닌텐도 스위치에서 구현되었다
6.3 성공적으로 모바일 시장에 진출한 닌텐도, 그리고 베일을 벗은 닌텐도 스위치(2016년)
2016년 3월에 Miitomo가 출시되었다. Mii에게 옷입히고 다른 Mii랑 대화하고 그런 게임인데, 일단 닌텐도 측에서도 애초에 이건 게임보단 SNS라고 했다. 그정도로 게임으로서의 기능은 별로 없다.
2016년에 파이어 엠블렘과 동물의 숲을 모바일 버전으로 내놓을 것이란 발표가 있었다.스팀도 출시해줘
2016년 5월에는 닌텐도는 퍼스트 파티 IP를 이용한 CG 영상 사업에 진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단순히 라이선스를 주는 수준이 아니라 파트너사와 함께 컨텐츠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겠다고 하며, 파트너사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있고 경험도 있는 업체를 모색중이라고 한다.야마우치:뭣?!
2016년에 출시 예정이던 NX의 출시일을 2017년으로 연기한다고 한다.
E3 2016에선 2015년보다 더욱 초라한 라인업을 가져왔지만, 드디어 타이틀이 공개된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가히 압도적인 인기를 구사하면서 게임 개발사로써의 닌텐도는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2016년 7월에 출시한 포켓몬 GO가 전세계적으로 대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단 하루만에 주식이 20% 넘게 폭등하고 있으며, 미국 앱스토어에서는 하루만에 최고 매출 1위로 올랐다. 7월 주가가 두배나 뛰어올라 3만을 찍었지만 8월 현재는 2만대로 다시 내려온 상황이다. 꾸준히 인기만 끌어줘도 닌텐도의 부활은 그렇게 멀지 않은 상황. 모바일 사업 진출 한지 얼마 안되서 비록 공동개발이라지만 대작을 내놓은 것을 보면 역시 닌텐도는 닌텐도답다.
2016년 9월 7일(현지시각) 아이폰 7 발표장에 미야모토 시게루가 깜짝출연하여 마리오 시리즈 최초의 모바일 게임인 슈퍼 마리오 런을 발표하였다. iOS 선행 출시라고 한다. 이쪽도 발표 이후 주가가 폭등하였다.
2016년 10월 20일, 드디어 NX가 닌텐도 스위치라는 이름으로 정식 공개되었다.- ↑ 2016년 현재 127년이다.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기업인 두산도 닌텐도보다 7년 늦게 창업했다.
- ↑ 「닌텐도 이야기」라는 책에서 해당 사훈의 의미로 닌텐도라는 사명이 지어졌다는 점이 나온다. 막상 야마우치 히로시 본인은 "증조부가 붙인 이름이지, 사훈은 아니다. 그런 사훈이 있으면 게임 회사 같은 건 안 한다."라는 듯한 발언을 했다.
- ↑ 사실 이건 좋게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는 바람피우고 잠적한 것이다. 어차피 히로시가 대를 이을 시점에는 사망했지만.
- ↑ 잭커 전격대에 나오는 트럼프들도 닌텐도에서 만들었다.
- ↑ 마술을 하는 사람들이 카드 마술용으로 자주 쓰는 바이시클 카드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하다.
- ↑ 택시라든가, 러브 호텔이라든가, 인스턴트 라이스라든가, 유모차라든가(...)(#) 인스턴트 라이스라면 지금의 '햇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정작 중요한 맛이
영국맛이라서별로 없었기 때문에 실패. - ↑ 1990년 9월 13일 발표에 따르면 매출 4천 4백억엔, 경상 이익 1천 2백 70억엔
- ↑ 당시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게임기는 완구, 즉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간주되었기에 아동용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회사의 수익이 그 정도라는 사실이 희귀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주력사업군에서 어린이용 장난감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문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하드웨어 성능 하나만 갖고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게임기 산업이다. 엑스박스가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 제작할 수 있는 개발환경의 조성, 즉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 ↑ 플레이스테이션 1과 2와 함께 하드웨어 베스트 셀러 위치를 차지한다.
- ↑ 사실 이등분이라 해 봤자 1:1에는 한참 못 미친다. PSP의 최전성기 당시 게임 판매량이 DS의 30% 정도며(그마저도 대부분 몬헌에 의한 판매량) 전체적으로 기기 판매 수는 DS 2 - PSP 1 정도다. 그나마 PSP가 휴대기 시장에서 닌텐도와 제대로 경쟁한 거의 유일한 기기이기 때문에 나름 선전했다고 평가받는 듯 하다.
- ↑ 특히 PS Vita가 더욱 힘을 못쓰는 북미, 유럽 등 서양에서 더더욱 드러난다. 그나마 일본, 한국 등 아시아에서는 PSP나 3DS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PS Vita가 어느 정도 힘을 쓰고 있는 편이다.
- ↑ 그리고 이는 결국 2016년에 자사 캐릭터를 이용한 스마트폰 증강현실게임의 출시로 이어졌다. 물론 이 게임은 닌텐도가 직접 개발, 서비스하는 것은 아니다.
- ↑ 여기에는 해외 게이머들 중 닌텐도 레고를 기대하는 반응이 매우 많았다.
- ↑ 엄밀하게 얘기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비디오 게임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지고 어느새 이것이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되버려서 그렇지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은 그 분야가 광범위하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같이 모든 이들이 부담없이 즐길수 있는 TV프로들 역시 엔터테인먼트의 한 종류이다.
- ↑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 이 논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이 닌텐도가 기획해서 내놓았던 상품이나 게임들 상당수가 어린 연령층이 즐길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때문에 벗어나기 상당한 어려운 이미지인 건 사실이다.
- ↑ 대난투는 출시일 직전까지 트위터를 통해 매일 스샷과 함께 정보를 올렸으며, 지금은 스플래툰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는 출시되는 타이틀 사이 공백이 길기 때문에 그 공백을 매꿔 기다리는 유저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마케팅 전술이다.
- ↑ 2015년 닌텐도 회계연도 1분기(4월 1일~6월 30일) Wii U 전세계 판매량이 47만대인데 전년도 같은 분기 판매량이 51만대였다. 하지만 차세대 게임기 NX를 전격적으로 발표하여 정상적이라면 Wii U 판매 감소 현상이 나타나야 했던 것을 감안하면 선방한 것.
- ↑ 허나 이건 매우 위험한 의견이다. 게임 콘솔 제작사가 E3에 참가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건 해당 콘솔 소유자는 물론 주주들에게 엄청난 악영항을 주고 그 여파는 다름아닌 닌텐도 본인에게 돌아오게 된다.
- ↑ 전 닌텐도 아메리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