宮本茂/Miyamoto Shigeru
파일:미야모토 시게루!.jpg
1 소개
"결국 저에게 있어 적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전에 제가 만들었던 작품들이 저의 적이지요."[1]
지금의 닌텐도를 있게 해준 위대한 게임 기획자.
동키콩, 마리오, 링크, 피크민 등 여러 캐릭터의 아버지이자, 닌텐도를 이끈 전설의 인물.이자 닌텐도, 아니... 역사상 최고의 낙하산 인사
닌텐도 소속의 게임 제작자. 1952년 11월 16일생. 2012년 기준 환갑을 맞이했다! 2016년 현재 만 64세.
애칭은 미야혼.[2]
대표작은 마리오 시리즈, 젤다의 전설 시리즈, Wii 스포츠, Wii Fit 등.
2 상세
네이버캐스트 미야모토 시게루
사장님이 묻는다 미야모토 시게루 편
겜프의 미야모토 시게루 편
디자인을 전공하고 장난감 디자이너를 꿈꾼 미야모토 시게루는 아버지 소개로 낙하산 인사? 1977년 닌텐도에 취직한다.[3] 당시의 닌텐도는 화투와 트럼프 외에 아케이드 게임이라든지 디즈니 보드게임, 그리고 광선총이나 유모차 문구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 회사였는데, 미야모토 시게루가 취직할 때 가지고 간 포트폴리오의 내용이 '유아용 행어', '유원지용 기발한 시계', '아이가 3명 탈 수 있는 그네가 달린 시소'였다.
처음 맡은 일은 게임기의 외장을 색칠하는 디자이너 일. 그러다 당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4]에 급히 게임을 보낼 일이 생겨서, 사내 게임 제작 공모에서 뽀빠이 게임을 만들면서[5] 게임 디자인에 발을 들인다. 뽀빠이 게임은 라이선스 획득 실패로 뽀빠이는 배관공, 올리브는 공주, 브루투스는 고릴라로 바뀐 동키콩이라는 게임이 된다.
자기도 모르는 포텐셜이 폭발한 전형적인 일본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 당시 게임 제작이란 게 대부분 게임 프로그래머가 직접 도트 찍고 사운드 만들고 해서 내러티브 등이 아예 없었던 데 반해(예: 스페이스 인베이더), 만화를 좋아하던 시게루는 동키콩을 구상할 때 종이에다가 여자를 납치해가는 킹콩을 쫓는 남자를 그리는 걸로 시작을 했고, 테마 멜로디도 기타로 직접 작곡했었다.
현재는 그냥 닌텐도의 대장이라 생각하면 된다. 닌텐도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공헌도뿐만 아니라 이와타 사토루 대표이사의 사망으로 인해 임시로 타케다 겐요와 함께 2인 체제가 되었다. 동키콩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커리어는 닌텐도의 게임 개발 역사 그 자체. 닌텐도의 게임 개발 뿐만이 아니라 게임큐브와 Wii 같은 하드웨어 제작에도 전반적인 개발이나 디자인, 구조 등에 참여했다. 다만 Wii U는 망할 걸 알고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는 모양. 아니, 그가 관여하지 않아서 망한 게 아닐까
그의 대표작인 슈퍼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은 패미컴 시절에 창조되어 현재진행형으로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다. 소위 게임계의 거장들이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판권을 빼앗기고 다시 부활하기도 하고 심지어 먹튀로 전락하고 하는 와중에서도 이 사람만큼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게임 회사의 개발 수장으로 제일 오래 해먹고 있으며 심지어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이 정도의 명성을 얻었으면 대표직으로 옮겨갈 법도 한데 아직도 현장에 있다. 이는 본인의 의사이기도 하다. 몽키 D. 가프 물론 특별 대우를 받고 있으며, 연봉은 대표직이 아닌 개발자 치고는 무시무시하다. 2010년까지 1억 2600만 엔이었으나, 2011년 닌텐도의 판매실적 저조[6]로 삭감되었고, 이후 또 한 번 삭감되어 현재는 5000만 엔 정도인 듯(…). 삭감된 게 저 정도다... 한화로 대략 5억 정도 되는 금액이다 그리고 닌텐도의 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가 후임인 이와타 사토루의 후견인으로 뽑은 5명의 대표이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계에 진출하면서 그를 닌텐도에 있을 때 연봉의 10배를 주는 조건으로 스카우트하려고 했으나 미야모토는 '닌텐도엔 동료들이 있으니까.' 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또한 "닌텐도로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으니까"(서태웅?)라고 말했다고 한다. 뭐 이건 농담 삼아 말한 거고, 실제로는 닌텐도에서 게임을 제작하는 환경이 더 좋아서 안 간 거라는 예측이 많다. 제시한 연봉의 10배를 연구 개발비로 쓸 수 있는 회사는 닌텐도뿐이라는 발언도 있다. 이 일이 실현될 뻔했다니 소름 돋는다 연봉으로 126억을줄수있는 마소의 자본력은 대체ㄷㄷㄷ
서양 게임계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가 높고 인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설명하자면 간단하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그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라왔고 그중에 개발자가 된 사람들은 그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워왔기 때문. 젤다의 전설, 마리오, 동키콩 등등 이미 넘사벽 시리즈의 아버지이자 그리고 현역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노력 중이니 평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3 특징
그의 게임은 모험과 탐구를 중시한다. 그러다보니 모험과 탐구를 위해 조작성과 인터페이스를 매우 중시하고 이 때문에 그의 게임은 매우 직관적이고 패드 손이 가는 대로 움직이도록 설계하는데 매우 집중한다. '어 저건 이렇게 해보면 될 것 같은데?' 하고 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머리 위에 있는 발판으로 점프하기 위해서는 공중에서 >궤도로 움직여야 하는데 해보면... 된다. 관성의 법칙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모험 게임의 기본조건인 게이머가 가고자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한다라는 명제를 이만큼 적절하게 실현시킨 게임은 많지 않다.
탐구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액자가 걸려있는데 액자를 떨어뜨리려면 활로 위의 줄을 쏜다든가.... 젤다 시리즈에서는 표지판을 베어버리는 게 가능하다. 이는 어린 시절 자주 숲 등으로 탐험을 떠나 이것저것 해봤던 자신의 경험을 녹아낸 것이라 한다. 이를테면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경우 토관 안에 들어가는 것은 어릴 때의 '파이프 안에 들어가면 무엇이 나올까?'라는 생각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다큐에서 말하길 어릴적 동네 뒷산에 올라갔는데 무슨 작은 호수 같은 게 튀어나와서 어? 했던 경외감 같은 걸 게임으로 표현해보고자 했던 게 젤다. 또한 캐릭터가 이동할 때 발생하는 마찰, 관성, 중력을 매우 섬세하게 재현해 예술적인 조작감을 연출하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정말 게임 속에 빠져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게임은 항상 보편적으로 재밌다. 본인 말로도 '만인을 위한 게임'이 자신의 지향점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족용 게임', '난이도가 낮은 게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만인을 위한, 만인이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에 가까운 게임을 제작한다. 적어도 그가 만든 게임 중 쓰레기 게임은 없다. 품질 관리를 그만큼 잘 하는 것이다. 있었다면 망하고 남았겠지만(...) 정작 닌텐도에서 만든 쓰레기 게임은 따로 있었으니..
A delayed game is eventually good, but a rushed game is forever bad.연기된 게임은 결국 좋아지지만, 무리하게 발매한 게임은 영원히 나빠진다. 명언 출처
완벽주의자 성미라 게임 제작 중 재미가 없으면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경우가 잦은데, 보통 그런 게임일수록 더 재밌다. 자기가 기획하거나 프로듀싱하는 게임이 아니라도 뒤집는다. 별의 커비도 주문 다 받아놓은 발매 직전에 미야모토에 의해 뒤집혔다고 한다. 다만 별의 커비 시리즈의 프로듀서 사쿠라이 마사히로 왈, '당시 닌텐도가 해준건 별의 카비(별의 커비)라는 제목을 지어준 것 밖에 없었다'라고.
이를 팬들은 "미야모토의 밥상 뒤집기"라고 하며 미야모토가 밥상을 뒤집어 발매가 연기되면 오히려 환호한다. 2년 동안 판을 수 차례 뒤엎어서 완성했다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게임사의 전설이 된 걸 봐도 그렇다. 물론 판을 뒤엎으면 제작진은 그만큼 죽어나간다. 메트로이드 프라임의 제작 당시 미야모토가 레트로 스튜디오에 제작 상황을 보러 방문하곤 했는데 올 때마다 밥상 뒤집기를 시전하여 레트로 스튜디오의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미야모토 시게루의 방문은 다스 베이더급의 공포"라고 했다(...). 더 무서운 건 이 사람은 퇴근도 거의 안 한다는 것이다. 개발이 난항을 띄면 집에도 안 가고 현장에서 매의 눈빛으로 제작진을 감시한다고 한다. 같이 슈퍼 마리오 갤럭시를 제작한 제작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퇴근해서 집에 가서 자고 있었는데 새벽 3시에 새 아이디어가 생각났으니 당장 튀어나오라고 해서 새벽에 회사에 출근했었다고 한다.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물론 이러한 '밥상 뒤집기'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불러온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미야모토의 가장 커다란 실책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페이퍼 마리오: 스티커 스타. 안 그래도 슈퍼 페이퍼 마리오에서 좋지 않았던 평가를 잘못된 판단으로 더욱 악화시켜 해당 프랜차이즈를 거의 벼랑으로까지 몰아넣었다.
미야모토 자신이 만든 게임 중 가장 불만족스러운 물건으로 링크의 모험을 꼽았다. 이유는 처음 계획한 그대로 만들어졌기 때문. 그의 얘기에 따르면 원래 게임을 만들다보면 계획이 변화해야 하는데 링크의 모험은 그런 일이 없었기에 본인 입장에선 실망스러웠다고.
4 기타
비디오 게임계의 스티븐 스필버그이자 현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 별명으로 "마리오의 아버지", "게임계의 월트 디즈니", "게임계의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있다. 이 중 스필버그와는 E3 게임쇼에서 서로 Wii 스포츠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 이명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이유는 게임이 영화보다 못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 보통 미국 게이머나 게임 제작자들은 일본의 게임 디렉터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는데[7] 유독 미야모토 시게루만은 미국, 나아가서 전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 인기도 높다. 유명인이라 TIME지에도 자주 나온다. 2007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7위였다. 2010년 7월에 실시된 "영향력 있는 일본인 TOP 100"을 뽑는 투표에서 65위를 기록했다.# Academy of Interactive Arts & Sciences에서 선정한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등재된 인물도 미야모토 시게루이다[8]
- 시게루하면 유명한 영상 중 하나. 2004년 E3에서 젤다의 전설 황혼의 공주를 발표한 뒤 직접 링크의 칼과 방패를 들고 휘둘러 엄청난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이 장면은 워낙 유명해서 이후 E3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역대 명장면 중 하나로 꼭 나오기도 한다. # ##
- 개발자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전 세계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영웅을 뽑는 설문 조사에서 30%의 득표로 1등을 한 적이 있다. 2등은 존 카멕, 3등은 윌 라이트.# 게임 철학에 있어서 반대 방향이라 할 수 있는 닌자 가이덴의 이타가키 토모노부마저도 인터뷰에서 젤다빠임을 인증했다. 실제로 닌가 1의 퍼즐들은 젤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 포켓몬스터 1세대 게임과 일본판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주인공 레드/사토시(한지우)의 라이벌인 그린/시게루(오바람)의 모델이다. 이는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차용한 타지리 사토시가 지은 것으로, 말 그대로 동경할 수밖에 없는 라이벌이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극중 두 캐릭터의 관계와 매우 흡사. 참고로 포켓몬스터에 통신 기능이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게이머들이 양쪽 버전을 모두 사게 만들었다
- 2012년 4월 17일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내한했다.# 개그맨 안상태와 닮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수 년 전 루리웹의 한 용자가 교토 구석 닌텐도 본사를 쳐들어갔다가 우연히 그를 직접 만나 사진찍고 사인받은 것을 올렸는데 수수한 차림에 일수가방을 든 그냥 아저씨 모습이다. 하지만 웃음과 포즈에서 숨길 수 없는 본좌의 여유가 나온다.
- 4월 17일, 닌텐도 3DS의 한국 내 정식 발매 관계차 방한. 엇갈림 통신으로 Mii를 교환받은 사람도 있다.
아니 이 분은...
- 젤다의 전설 스카이워드 소드 발매 기념 25문답을 한 적도 있다.#
- 2014년 5월 3일에 출제된 SAT에서 그의 일생에 관한 문단과 문제가 출제되었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넥트의 E3에서 공개 당시 시범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표정이 가관이시다(...).
옆에있는 사람 제임스 롤프 닮았다저딴 쓰래기는 도무지 돈을 벌어줄것 같지가 않아
- Wii U에 이어 NX의 개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드웨어보다는 게임 개발 자체에 주력하고 싶다고.
- Chris-Chan의 소니츄를 굳이 읽어보며, 섬세한 지적과 위로의 말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오오 갓 오오[9]
- 요즘은 VR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중이시라고 한다. 닌텐도가 한때 VR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의아한 부분. 그리고 포켓몬 GO 현장에 등장했다.
- ↑ 닌텐도 3DS 한국 런칭 당시 방한한 그에게 기자 간담회에서 스마트폰의 보급이 닌텐도에게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이 오자 타 기기와의 경쟁관계보다도 더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 ↑ 성인 宮本에서 本만 음독으로 읽은 것.
- ↑ 취소선을 마냥 농담이라고 볼 순 없는 게, 당시 닌텐도는 1차 석유파동 후폭풍으로 사정이 안 좋던 시절이라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었다.
- ↑ 영어권 버전의 공통점으로, 영어권 패미콤이나 NES 게임은 제작사 외에도 Licensed by Nintendo of America라고 표기한다.
- ↑ 정확하게는 게임 초안을 만든 것으로, 실제 게임의 완성 과정에서는 요코이 군페이의 영항을 많이 받았다.
- ↑ 이 당시 닌텐도는 1983년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처음으로 적자가 났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3년 연속 매출 감소는 덤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한 엔고 현상과 그로 인한 일본 경제 쇼크가 원인이었다. - ↑ 미국 게이머들은 어릴때부터 플레이 해온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철학, '높은 자유도' '직관적 플레이' '훌륭한 조작감'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하는데 정작 대부분의 일본 개발자들은 미야모토의 철학을 따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본 개발자들은 '통제된 상황' '화려한 연출' '시나리오 중시'등을 우선한다. 예를 들면 FF13까지 이어진 ATB시스템이라던가, 유독 일본에서 기를 못쓰는 샌드박스(게임)들이라던가. 그러니 미국 게이머 입장에서는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는 것. 물론 이는 성향의 차이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 옳다고 무작정 단언할 수는 없다.
- ↑ 2015년까지 총 20명이 등재되었다. 미야모토 시게루에 이어서 등재된 인물로는 시드 마이어, 사카구치 히로노부, 존 카멕, 윌 라이트, 스즈키 유, 피터 몰리뉴, 트립 호킨스(일렉트로닉 아츠의 설립자), 리처드 개리엇, 마이크 모하임, 게이브 뉴웰, 코지마 히데오 등이 있다.
- ↑ 허나 낚시란 설이 유력하다. 자세한 내용은 CWCWiki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