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칼라시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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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판 앞의 젊은 칼라시니코프 하사. 독사진인데

1919년 11월 10일 ~ 2013년 12월 23일 (94세)

러시아어, 불가리아어, 카자흐어: Михаил Тимофеевич Калашников
우크라이나어: Михайло Тимофійович Калашников
벨라루스어: Міхаіл Цімафеевіч Калашнікаў
세르비아어: Михаил Тимофејевич Калашњиков
루마니아어: Mihail Timofeevici Kalașnikov
헝가리어: Mihail Tyimofejevics Kalasnyikov
슬로바키아어: Michail Timofejevič Kalašnikov
크로아티아어: Mihail Timofejevič Kalašnjikov
폴란드어: Michaił Timofiejewicz Kałasznikow
아르메니아어: Միխայիլ Տիմոֆեի Կալաշնիկով
조지아어: მიხეილ ტიმოთეს ძე კალაშნიკოვი

1 개요

소련, 러시아의 군인이자 무기 설계자로 돌격소총 AK-47, AK-74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M16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와 함께 현대의 돌격소총의 양대 산맥을 구축한 인물.

2 생애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칼라시니코프를 포함, 총 19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 중 무사히 살아남은 이는 8명에 불과했다. 그도 자신이 몇 번째 아이인지 모른다고 했다. 일본 외교전문가 및 애널리스트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의하면 "11번째였나? 이젠 부모님도 돌아가신지 오래되었고 자신도 기억도 안 나서 모르겠다"고 한다. 비록 지옥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칼라시니코프였지만 유년 시절 지독하게도 허약했던 탓에 부모의 속을 어지간히 썩였던 모양이다. 94살까지 살아계실 정도로 정정하였지만.

부농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스탈린이 시행하고 있는 농업집단화에 앞서 부농에 대한 숙청이 이뤄질 때라서 아버지 티모페이는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가 사망했다. 다만 어머니는 100살 넘게 생존했는데 아마 칼라시니코프의 노익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듯 하다. 이렇게 보면 아버지를 앗아간 소련체제에 반감을 가질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라시니코프는 생애를 통틀어 소련-러시아에 충성을 바쳤다.

칼라시니코프는 성장과 더불어 하나의 재능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14살에 브라우닝 권총을 혼자서 수리하는 기염을 토했고 1936년 공업학교를 졸업했다. 중졸이라고 알려진 한국어 자료가 많은데, 실제로는 공업학교(중학 3년 + 고등2년, 도합 5년)에서 제대로 기계 제작을 배운 양반이다. 이후 시베리아 철도에서 철도공으로 기관차 수리하는 일을 하는 한편, 틈틈이 취미로 총기를 분해하고 조립하곤 했다. 1938년 소련군에 입대하여 전차병으로 근무했다. 이때도 기계의 설계, 제작에 재능을 보여 전차포의 발사탄수 계측기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이 공로로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손목시계를 표창으로 받기도 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T-34를 몰고 전차장으로 참전, 실패로 끝난 브리얀스크 반격전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고, 요양 중 독일군의 MP40에 대응할 총기의 개발을 결심하며 총기 설계자의 길을 걷게 된다. 패주 당시 소대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MP40이다! 누가 저런 무기 좀 만들어 주었으면..." 했던 것이 개발을 결심하게 된 요인들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칼라시니코프의 처녀작 기관단총은 결함품이었고 이미 생산성, 내구성 등 많은 면에서 소련군을 만족시킨 PPSh-41(따발총)도 등장한 상태여서 그의 처녀작은 좌절되었다. 하지만 총기 설계의 재능을 인정한 효도르 토카레프의 천거로 툴라 조병창으로 배치되어 총기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군은 대전 말기 독일군의 신무기 MP-44(STG44)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와 비슷한 신형 무기를 장차 소련군 주력 개인화기로 삼을 계획을 세웠는데, 이에 1946년도에 출시된 설계안들 중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한 소총이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소련군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고 1947년 첫 배치를 시작하여 AK-47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공로로 그는 1949년 스탈린 훈장을 수여받고, 1951년에 육군 상사로 군을 전역한 후에도 이젭스크 조병창의 주임 설계관으로 일하면서 AK-47의 개량형 소총 AKM, AK-47을 베이스로 한 RPK 분대지원화기, PK 다목적 기관총 등 소련군의 주력 총기들을 설계했다.

이러한 공적으로 사회주의노력영웅 칭호 2회, 레닌훈장을 수훈했다. 1969년에는 육군 대령 계급이 수여되었다. 1971년에는 비록 대학을 다니지는 못했으나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학박사 학위가 수여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체제가 수립된 후에도 이젭스크 조병창이 민영화된 이즈마쉬[1]사의 주임 설계관으로 재직하였다.

1994년, 75세 생일 축하 선물로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종신 육군 중장계급을 수여받았다.사실 그의 공적으로 따지면 원수 계급도 모자를 듯 러시아군의 정년은 60세이므로, 칼라시니코프는 사실상 최고령 러시아군 장군인 셈이다.[2] 2009년 11월 10일 러시아 대통령 메드베데프는 칼라시니코프에게 러시아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그의 아들도 그의 뒤를 이어 총기 설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칼라시니코프의 아들인 빅터 칼라시니코프는 1993~1995년에 드라구노프와 같이 Bizon PP-19 기관단총을 개발해냈다. 그리고 이 기관단총은 러시아군 내에서 잘 쓰이게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테이블의 보드카는 신경쓰지 말자 사실 이 보드카는 단순한 보드카가 아닌, 아래에도 언급되는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보드카 브랜드이다. 칼라옹이 그 인기에 힘입어 만든 보드카 브랜드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특히 한정판 격인 "AK-47 모양 병"에 담긴 보드카는 전세계 총덕들이 러시아 여행을 가서 못 사오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물건.

M16을 개발해 그 로열티만으로 재벌이 된 미국의 유진 스토너와 달리[3]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당시 소련 제도 때문에 월 55만원쯤 되는 연금으로 생활하였고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붙인 보드카 판매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추후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 빈궁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정보라고 스스로 밝혔다. 호비스트에서 정발한 서적에 실린 칼라시니코프의 인터뷰에 따르면, 특허를 인정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대신 공로는 제대로 인정받았기 때문에[4] 구소련 시절에 이미 공장 노동자의 4배나 되는 월급을 받았으며 배급에서 우선순위에 놓여져 있었고 정든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며 여름에는 별장으로 놀러갈 정도였다고. 하기사 말년에도 종신 장성계급에 총기에 보드카까지 만들고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돈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어차피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연구원이 회사에서 설계한 지적 재산권은 회사에 있으므로, 칼라시니코프옹이 자기 이름이 붙은 총기로 재벌이 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자기 회사를 차리지 않는 한은 자본주의 사회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쨌든 보드카 사업은 대박이 터졌고, 시계의 나라 스위스에서 무브먼트를 공급받아 AK 시리즈 시계도 판매하고 있다. 이 성공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유명세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사실 유명한 사람이 유명세를 믿고 사업을 펼쳤다가 망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경영 감각도 상당하다는걸 알 수 있다.

문학의 나라인 러시아인답게 어릴 때부터 시를 써왔으며, 자기 이름으로 낸 시집이 6권이나 된다니 흠좀무. 여러가지로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09년 그의 90세 생일을 맞은 영상이 돌고 있다. 91세라는 나이에 불구하고 저렇게 시범 사격을 보이는 거 보면 정말로 노익장 그 자체.

12년 심장이 좋지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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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80을 쏴본 적도 있다. 입가의 알 수 없는 웃음기와 한숨만 나올듯한 표정이 포인트. 해당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총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거나 해당항목을 전에본 사람이라면 최악의 소총 1위로 선정할 그 총이다. 특히 신뢰성과 내구성에서는 칼라시니코프의 AK와 극과극 수준으로 차이난다.

일본 외교관련 전문가가 그와 만나서 AK-47이 전세계적으로 퍼져서 사람을 많이 죽이는 무기가 되었다는 말을 하자 언짢은 듯이 "그걸 내가 직접 퍼뜨린 게 아니며 해외에서 엄청나게 무단으로 찍어만든게 많다. 그리고 그리 따지자면 유진 스토너도 IRA에서 자신이 설계했던 아말라이트 AR-18을 써서 영국인을 쏴죽인 걸 두고 같은 질문을 듣었다면 과연 "죄송합니다." 라고 했을까? 그리고 이 총(AR-18)을 만들다가 해외로 퍼뜨려 테러에 쓰도록 기여하던 게 당신들 일본인 아닌가?[5] 그럼 일본도 테러 유발 총기를 퍼뜨린 원흉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는 소리다."라고 답한 적도 있다. 그 외로 일본의 잡지사인 Hobby Japan사가 출간한 만화 <피크세루☆마리탄 - 소녀가 군인으로 묘사>에 사인을 받으러 간 일본인 편집자는 "아이에게 총을 쥐어줄 참인가!"라고 하는 그의 호통을 들어야 했다.라고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2002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만들었을 뿐”이라며 “정치인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시대가 바뀌면서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 이전에 한 말과는 달리 그 역시 자신이 만든 무기가 악용되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고뇌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번은 "AK 소총 개발은 파시스트 침략군에 맞서 조국을 지키려는 소련 적군의 뜨거운 열정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만든 내 총이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들려 있는 모습을 TV에서 볼 때면 '과연 내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AK 소총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이 소총의 발명자로서 통제받지 않는 상황, 즉 범죄나 학살 등에 내가 만든 총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무기 거래에 대한 국제적 통제가 필요함을 느꼈다" "중국은 라이센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나 관계자의 수락없이 AK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AK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장삿속이다, 개발자인 나로선 심히 불쾌하다."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UN 개인화기 확산방지 회의, 국제사면위원회(AI)와 영국 자선단체 옥스팜이 벌이는 개인화기 확산방지 캠페인을 지지하기 위한 성명을 보낼 계획이라는 2006년 기사가 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각각 출처가 다르다.

어찌 보면 원자폭탄을 만들었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오펜하이머는 처음부터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핵군비 확장에 반대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사실 만들어낸 무기의 위력으로 따지면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이 칼라시니코프의 AK-47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끔찍하고 무서우나, 정작 각자의 개발품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칼라시니코프의 무기 쪽이 훨씬 많다는 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이다. 수십-수백만을 한번에 죽일 수 있는 핵무기는 그 끔찍한 위력 덕분에 어느 누구도 쉽사리 사용할 수 없지만, 사람 한두명 죽이는 것은 그에 비하면 훨씬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6]

물론,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이 AK소총을 들고 있는걸 본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오고 죄책감이 들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AK소총이 없었다면 빈라덴 일당이 사람 안죽였을지를 생각해보자. 칼라시니코프의 AK소총이 없었다면 그들은 다른 총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칼라시니코프는 군인들이 쓰기 불편한 총을 개량해서 군인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좋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좋은 무기를 불법으로 빼돌려 유통시키는 밀수업자들이나 그 총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나쁘다는걸 잊지말자. 참고로 테러리스트들은 총이 없어도 작은 칼로도 인질 목을 쓱싹쓱싹 잘도 베어 죽인다.

이젭스크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13년 5월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결국 병세 악화로 2013년 12월 23일 향년 94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리고 그의 장례는 26일 치러졌다.

그의 사망에 대한 한국 뉴스들.

2.1 그가 설계한 총기

엄밀히 말해서 AK-47과 AKM의 개발에만 직접 관여했고, AK-74 등 나머지 작품들은 그가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관여는 한 물건들이다. 요즘 나오는 AK-107을 포함한 이후의 물건들은 사실상 그와 관련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물건들이지만, 위 동영상에서 보듯 판촉이라든가 하는 걸 보면 여전히 이 사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물건임은 틀림없다.

이외에도 그가 직접 설계한 물건은 아니지만 그의 AK 시리즈의 구조를 이용하거나 영감을 얻어 제작된 많은 동구권 무기들까지 합치면 직/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총기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러시아에서 나온 총기들 중 제식으로 채택된 총기들 대다수는 그의 AK를 조금이라도 참조하거나 아예 설계를 가져다 쓴 물건들이다. K2 자동소총 역시 설계 과정에서 AK-47의 롱 스트로크 피스톤 방식을 참조했으므로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 결국 2013년 8월 14일, 대주주의 요구로 칼라시니코프옹의 업적을 기려(?!) 회사명을 칼라시니코프로 바꾸었다. 나름대로의 보상일지도?
  2. 장군 계급 덕분(?)에 "동장군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장군" 이라는 별명이 생겼는데 밑에서 보면 알겠지만 AK소총으로 인한 테러나 전쟁을 칼라시니코프가 사주한 것도 아니고 칼라시니코프 본인의 성향은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므로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따진다면 검이나 둔기를 개발한 사람이야말로 유사이래 최대의 살인마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자면 거의 모든 인류가 그 살인마의 후손들이 된다)
  3. 알다시피 M16, 정확히는 AR-15의 모든 권리는 콜트가 사들이긴 했는데, 원래 모든 발명품의 특허권은 발명 당사자의 것이며 따라서 당연히 아말라이트가 콜트에게 넘긴 권리들은 오직 아말라이트 자신이 보유한 권리들 뿐이였다. 유진 스토너가 보유한 권리들은 고스란히 본인에게 남아 있었다.
  4. 1990년에 유진 스토너와 만난 뒤에 한 인터뷰에서, 자기는 개인용 비행기나 헬기는 없고 AK소총으로는 한푼도 못벌었지만 훈장은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스토너가 자신이 받은 훈장들을 부러운듯이 봤다고. 유진 스토너는 생애 많은 돈을 벌어서 매우 부유하게 살았지만 훈장 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상을 수여 받은 적은 없었다. 적어도 사회적 명망이나 명예에 있어서는 칼라시니코프가 유진 스토너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5. 'IRA가 AR-18을 사용하는' 경위는 다름아닌 일본 기업 호와 공업에서 AR-18을 라이센스로 만들어 팔던걸 IRA가 사들였기 때문이다.
  6. 영화 로드 오브 워에서도 비슷한 투의 대사가 나왔다. 자세한 것은 AK-47 항목 참고.
  7. 취소선 개그가 그어져있으나 사실 칼라쉬니코프옹은 총기 디자인에 한해서(AK-47같은 자기가 만든 총) 톰슨 기관단총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8. 러시아에서의 분류와 개발목적은 돌격소총이나, 실제로는 카빈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