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рден Ленина
Order of Lenin
레닌훈장
1 개요
나를 다른 혁명가들과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평가하라. 나의 행보를 숨기지도 말고 과대포장하지 말라. 장례는 최소한 검소하게 치르라. 절대로 나를 우상화하거나 신격화하지 말라. - 로버트 서비스의 전기에 등장하는 레닌의 유언 중 일부
레닌훈장은 1930년에 처음 제정되어 크게 나누면 총 5개의 타입이 존재한다. 사진의 것은 1943년에 등장한 4번째 것. 1943년 독소전 기간에 소련군은 군복개정을 하는데 여기에 맞추어 훈장도 대대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리본과 약장사용이다.
레닌훈장을 가장 처음으로 수훈한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기관지가 자축의 의미로 내보낸 기사. 자뻑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가 처음으로 레닌 훈장을 수상하다이 명예로운 상의 수훈은 모든 콤소몰의 승리다.
우리는 앞으로도 어떤 종류의 모든 반역자들에 대항하는 당의 총노선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후략)
레닌훈장 제정 50주년 기념 우표. 1980년. 우표에 도안된 훈장은 궁극의 최종형 5번째의 것이다.
1930년 4월 6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상무회(Президиум ЦИК СССР)의 결의에 의해 제정.1930년 5월 5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상무회에 의해 훈장 규범[1]을 제정.
1934년 9월 27일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상무회가 수훈 규칙을 제정하고 훈장 규범을 개정.
1943년 6월 19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가 훈장 규범을 개정.
1947년 12월 16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가 훈장 규범을 개정.
1980년 3월 28일 최고 소비에트의 상무회는 새 수훈 규칙을 발의.
10월 혁명을 완수하고 소비에트 정권을 세운 레닌의 이름을 딴 훈장으로, 당연하겠지만 제정 당시부터 소련 붕괴까지 소련의 최고 훈장이었으며 민간훈장과 무공훈장을 겸했다. 만일 스탈린훈장이 폐기되지 않았으면 2위 훈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레알 흑역사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이미 소련 최고의 무공훈장인 적기훈장이 제정되어 있던 때였으나 사람들이 "무공훈장 말고 빨리 민간훈장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라고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적백내전을 포함하여 소련-폴란드 전쟁 등의 크고 작은 전쟁이 끝난 뒤인지라 무공훈장인 적기훈장의 수훈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소련의 훈장덕후 많은 사람들은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솔까말 어떤 윗동네처럼 선군정치 하는것도 아니고 군인만 칭송해서 될 건 아무것도 없는 게 사실.
그리하여 1930년 예술 기업 '고즈나크'가고즈넉한 멋을 기대한다 레닌훈장 디자인을 고안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맘에 안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리하여 중앙에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레닌의 초상화가 올라간 레닌훈장의 시안이 올라가게 되었으며 같은 해 4월 6일에 제정되었다. 레닌훈장의 모습은 소련의 국장(Герб)을 모티브로 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스탈린훈장이나 적기훈장을 포함하여, 이러한 '이삭이 주위를 두르는農者天下之大本' 형식의 디자인은 훈장 뿐 아니라 각종 공산권 나라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 디자인은 불가리아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훈장을 제정할 때도 많이 응용된다.
본래 소련에서 시간과 예산을 더 달라고 하는 행위는 죄악이었지만 초기에 이 훈장을 제작할 때 꽤나 심혈을 기울였으며 이 점에서 적기훈장 다음으로 먼저 제정된 훈장 중 하나인 레닌훈장은 소련의 훈장문화를 정립하는 스타트를 꽤 잘 끊었다고 할 수 있는 훈장이다. 소련은 양산형(독소전 시기에 제작) 훈장들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와 달리 십자가 모양이라든지 혹은 단순한 기하학적 모양을 사용하지 않고, 훈장 하나하나에 특징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훈장을 만들었다. 덕분에 벽화나 인쇄물, 혹은 건물의 간판 등에 훈장의 도안을 넣으면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소련 훈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안되겠소, 메달은 버립시다!
코민테른 회의에서 왼쪽을 보는 레닌. 이 사진이 훈장 디자인에 쓰일 레닌 그림의 기초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 훈장 도안을 통해 소련이 좌빨이라는 걸 알 수 있다.[2] 그런데 사진에서는 레닌의 몸도 옆을 향하고 있지만 훈장에서는 목돌리기를 시전한다. 스탈린의 특기(?) 실제로 이런 자세는 정말 목이 졸리는 불편한 자세인지라 5번째 타입에서 조금 부드럽게 수정된다.
1.1 종류
훈장의 최초 디자인 (1930년)
뒷면에는 제작회사인 '고즈나크(ГОЗНАК)'의 인장이 찍혀 있다.[3] 훈장 전체는 순도 925의 은으로 만들고, 낫과 망치, 초상화의 테두리와 글자판(СССР)은 금으로 만든 다음에 글자판과 테두리를 붉은 에나멜로 마무리한 것으로, 이런 요소들을 원판에 땜질하여 제작하였다. 따라서 이렇게 하나하나 세공하는 것도 노동이라, 나중에는 한번에 프레스로 찍도록 변경된다. 그것이 타입 2.
타입 2 (1934년 ~ 1936년)
훈장 개정의 표면적인 이유로는 '프롤레타리아의 상징인 붉은 별과 붉은 깃발이 없어서' 이지만 훈장 전체를 프롤레타리아와 더 관계 없어 보이는 금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물론 금의 순도는 650으로 낮았다. 프레스로 한번에 찍을 수 있도록 되었으며 별과 깃발에는 붉은 에나멜로 마무리했다 따라서 원래는 레닌의 초상 부분과 훈장 전체가 같은 색이어야 하는데, 사진처럼 일부 훈장은 레닌의 초상 부분을 은도금한 것도 있다. 이런 것은 불량이라고 싸게 사서 유니크로 비싸게 판다.
타입 3 (1936년 ~ 1943년)
훈장 전체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금의 순도가 950으로 늘어난다. 영웅메달과 동급 그리고 레닌 초상 부분을 백금으로 따로 제작하여 두가지 부품을 조립해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초상이 들어간 배경은 회색 에나멜로 마무리했다.
타입 4 (1943년 ~ 1947년)
타입 3과 가장 큰 차이라면 훈장의 리본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훈장의 뒷면에 존재하던 스크류백 형식의 지지대는 제거된다.
타입 5 (1947년 ~ 1991년)
뒷면에 '레닌그라드 조폐국(ЛЕНИНГРАДСКИЙ МОНЕТНЫЙ ДВОР)'이라는 완전한 글자가 세겨진다. 현재 레닌훈장의 레플리카나 모조품들은 이 5번째 타입을 모델로 제작되고 있다. 즉 리인엑트 등의 코스프레 하는 사람이 2차 대전 소련군을 제현하는데 이걸 그냥 달면 고증오류가 되는 셈. 그런데 우리나라의 밀덕의 경우는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
2 수훈 대상과 사유
수훈 대상 : 다음에게 수여된다.
소련 국적자소련 내의 단체[4]
외국인 및 외국 주재 단체
한마디로 뭐든 아무나
수훈 사유
소련의 경제, 과학기술, 사회문화 분야의 성공적인 업적 및 진흥노동의 질적 향상, 효율성 증대, 탁월한 작업 결과
소련 내 민족간의 우호 증진 및 단결 강화
소련 국방의 영웅적인 업적, 사회주의 조국 수호
혁신적인 국가의 정치 지도, 정치활동의 업적
사회주의 사회의 단결력 강화, 사회주의적인 탁월한 활동
평화와 민주주의적인 사회의 진보를 위한 투쟁
국제 공산주의와 노동 계급과 민족 해방 운동의 업적
영웅 칭호 수훈
한마디로 잘하면 뭐든
레닌훈장은 실제로 범국민적 최고상훈이었으며, 무공훈장인 적기훈장 이후 처음 생겨난 국민훈장이므로 후에 등장하는 소련의 훈장들이 목적에 맞게 세분화되기 전이므로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밖에 없다.
레닌훈장은 최고 등급의 훈장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적절하게 수여되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레닌의 아내 '나제쥐다 크루프스카야'도 이 훈장을 수훈했다는 것.[5]
소련의 해체(1991)와 함께 수훈이 중단되었다. 총 약 43만명이 수훈했다. (기관이나 단체 포함)
2.1 자동으로 수훈된 자
레닌훈장은 소비에트연방영웅, 사회주의노력영웅 등의 영웅칭호가 수훈될 때 자동으로 수훈되었다.1+1 행사 이는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은 소위 영웅도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었다.
1944년부터는 25년 이상 소련군 장교로 근무한 자들에게도 레닌훈장이 수여되었다. 1950년대 초반부터는 같은 직종에서 장기간 근무한 시민들에게도 수여되었다.[6]
2.2 6회 이상 다수 수훈자
최대 수훈자는 12회 수훈이다. 여기서 영웅칭호와 훈장의 레벨 차이를 느낄 수 있다. 6회 이상의 전설은 아닌 레전드급 수훈자만 기록하며 당연히 누락이 존재한다.
수상자 이름 - 업적, 혹은 직책
12회 ~ 9회 수훈자
니콜라이 파톨리체프 - 소련 해외무역성의 수장, 12회 수훈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 소련 국방장관[7] 11회 수훈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 항공기 설계사, 야코블레프 설계국의 설립자. 10회 수훈
바실리 추이코프 - 소련군 원수,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제62군 사령관, 9회 수훈
8회 수훈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 소련 공산당 서기장 무능의 대명사 [8]
세묜 부됸늬 - 소련군 원수 무능의 대명사
안드레이 투폴레프 - 항공기 설계사, 투폴레프 설계국의 설립자.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 소련군 원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 소련군 원수 무능의 대명사
세르게이 일류신 - 항공기 설계사, 일류신 설계국의 설립자.
트로핌 리센코 - 소련의 생물학자. 무능의 대명사[9]
7회 수훈자
니키타 흐루쇼프 - 소련 공산당 서기장
세르게이 고르시코프 - 소련 해군의 어머니
안드레이 그로미코 - 외교관 겸 정치인. 최고소비에트간부회의장 역임.
이반 코네프 - 소련군 원수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 소련군 원수
6회 수훈자
게오르기 주코프 - 소련군 원수. [10]
아나스타스 미코얀 - 소련의 정치인, 혁명원로, 아르툠 미코얀의 형.
아르툠 미코얀 - 항공기 설계사, 미그 설계국의 창립자 중 한 명.
안드레이 비신스키 - 소련의 정치인, 검찰총장도 역임했다. [11]
알렉세이 코시긴 -
이반 이사코프 - 소련군 원수. [12]
파벨 로트미스트로프 - 쿠르스크 전투 당시 제5근위전차군 사령관.
미하일 숄로호프 - 소련의 소설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2.3 외국인 수훈자
외국인도 많이 수훈했다. 자기네들 말로는 국제적인 노동계급과 공산주의 운동에서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준다는데.. 솔까말 독재 확산
김일성 (김씨 조선 왕조)
남도부(한국)[13]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불가리아)
카다르 야노시(헝가리)
호치민(베트남)
피델 카스트로(쿠바)
발터 울브리히트(동독)
요시프 브로즈 티토(유고슬라비아)
등등..
2.4 주요 수훈단체
레닌훈장은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닌 도시, 산업체, 학교 등에도 수훈되었다. 이 문단에서는 단체에 수훈된 레닌훈장을 기록한다.
6회 수훈 (최대)
고스플란 - 소련국가계획위원회. 사람 아니다.
3회 수훈
콤소몰 - 소련공산주의청년동맹.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아르메니아 공화국
카자흐 공화국
우즈베크 공화국
모스크바 주
V. I. 레닌 명칭 레닌그라드 광학 기계 조합 [14]
모스크바 I. A. 리하체프 자동차 공장 [15]
우랄 S. 오르조니키제 중기계 공장 [16]
2회 수훈
S. P. 고르부노프 명칭 OAO 카잔 항공기 생산 협회.
우파 엔진 산업 협회
모스크바 전기 램프 공장
제1근위전차연대 [17]
소련 과학 아카데미
피오네르 - 소련과 공산권의 소년단을 일컫는 말. 소련 피오네르에는 레닌의 이름이 붙었다.
키로프 공장
레닌그라드 금속 공장
모스크바 라디오 공장 "템프"
흑해 조선소
모스크바 열공학 연구소 소련은 추우니까
차이콥스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프라브다 - 공산당 기관지
지명
하리코프 -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드네프로페트롭스크 - 우크라이나 중공업 지대의 중심지
키로프그라드 - 우랄 공업지대에 위치해있고 비철금속제련과 야금의 중심지. 원래 이름은 갈라타.
케메로보 주 - 쿠즈바스 탄전이 위치한 지역.
스베르들롭스크 - 현 예카테린부르크
오렌부르크 주 - 우랄 산맥 남쪽에 있다.
알타이 지방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예프
1회 수훈
도시들 - 세바스토폴, 오데사, 볼고그라드(구 스탈린그라드), 노보로시스크, 케르치, 툴라, 민스크, 무르만스크, 스몰렌스크, 브레스트 요새[18], 울리야놉스크[19] 리보프, 페름, 니즈니노브고로드, 로스토프나도누, 마그니토고르스크[20], 빌뉴스[21], 보로네시, 옴스크 주 등.
산업체 - 아즈네프트나 그로즈네프트와 같은 국영 석유 기업, 스탈린그라드, 하리코프, 첼랴빈스크의 트랙터 공장, 쿠즈네츠의 야금공장, 고리키[22]와 민스크의 자동차 공장, 스탈린그라드 강철공장 "붉은 10월", 콜롬나 공장, 북코카서스 철도국, 쿠이비셰프[23] 철도국, 모스크바 철도국, 우랄바곤자보드 등을 비롯한 380여개의 산업체.
농업 조직 - 180여개의 농업 조합이 받았다.(콜호스와 소프호스 같은)
군부대 - 300여개 이상의 군부대와 조직(사단, 연대 등등)이 수훈했다. 참고로 207개가 대조국전쟁기에 수훈된 것이다. 흠좀무.
모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SSR)
20개의 자치 공화국
8개의 자치주
6개의 지방
100개 이상의 지역
교육기관 - 제르진스키 고등해군기관학교와 프룬제 해군학교, 로모노소프 모스크바 국립대학[24], 바우만 모스크바 국립기술대학,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해양기술대학, 카잔 국립대학[25]
기타 : 모스크바 예술극장이나 붉은 광장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 '이즈베스치야'나 '문학 신문'과 같은 신문, 레닌그라드 지하철[26], 모스크바 지하철 메트로 2033은 레닌훈장의 가호, 스파르타크와 같은 스포츠 조직도 받았다.
레닌훈장을 수훈한 도시 페름의 10월 광장에 있는 것이다. 크고 아름답다.
3 관련항목
훈장/소련
소비에트연방영웅
사회주의노력영웅
스탈린훈장
10월혁명훈장
노력적기훈장
인민우호훈장
존경징표훈장
노력영예훈장
개인용기훈장
- ↑ 훈장의 외형에 관한 법령을 말함
- ↑ 실제로 소련의 훈장에서 대개의 인물상은 왼쪽을 본다. 스탈린훈장을 포함 수보로프훈장 등도 마찬가지.
- ↑
메달은 버리고통상 소련 훈장의 뒤에는 '조폐국(МОНДВОР)'이라는 인장이 찍힌다. 레닌훈장도 '타입2' 부터는 동일. - ↑ 소련 내 존재하는 모든 단체가 수여 받을 수 있다.
- ↑ 크루프스카야는 실제로 레닌을 미라로 만드는 것을 반대했지만 개인의 신격화에는 찬성하여 레닌의 업적을 정리하고 전기를 출판하는 데 힘을 보탰다.
- ↑ 후에 이런 경우를 위해 소련군 노병메달/장인메달이 제정된다.
- ↑ 이 사람의 지도 하에 소련은 핵전력을 급격히 확장하여 1950년대는 천조국과의 비교도 안되던 핵전력을 1980년대에는 소련의 경합우세로 바꾼 인물이다. 원래가 군출신이 아니라 기술관료 출신으로, 군계급이 있었지만, 이사람은 유능한 행정가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이 삽질한 것은 이사람 탓이 아니라 원래부터 병맛같은 결정을 한 브레즈네프의 문제였다.
- ↑ 그러나 이사람은 그렇게까지 무능한 인물은 아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라는 자리가 김정일이나 김정은처럼 물려받는 자리도 아니라 당이나 정부의 관료들의 신임을 얻어야 정치국의 파워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신임을 얻지 못하면 흐루쇼프처럼 불신임 당할수도 있었다. 어쨌든 소련 (그리고 중국)의 지도자들은 관료제 하에서 유능함이 증명된 사람만이 될 수 있었다. 브레즈네프에 대해서는 평이 여러가지지만, 어쨌든 스탈린식의 독재나 개인숭배에 빠지지 않았고, 흐루쇼프식의 극과 극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으며 안정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를 포함해서 이사람 통치시기가 러시아-소련 역사상 가장 살기 좋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현상유지에 급급해서 미래를 보지 못해 국가의 비전을 제시 못했고, 더구나 거의 모든 정치국원들이 반대한 아프가니스탄 침공결정을 내리는 병크를 범한다. 그 짐은 이 사람 사후 10년 남짓후에 소련 붕괴로 나타난다.
- ↑ 흐루쇼프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의 왠지 병신 같지만 멋있는 이론에 소련 농업이 똥망했고 덕택에 흐루쇼프도 같이 모가지 당한다.
- ↑ 본좌급 인물인데 다른 원수에 비해 레닌훈장이 적은 것에 의문을 표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4번 받은 사람이라 다른 원수와는 넘사벽이다.
- ↑ 공명 정대한 법관이어서 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 대숙청 당시 검찰총장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쿠즈네초프와 고르시코프와 함께 소련에 세 명밖에 없던 해군 원수다.
- ↑ 본명 하준수. 빨찌산 대장으로 48년 8월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수훈. 김일성 보다 빨리 받았다. 그는 당시 남로당과 북로당 양쪽에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심정적으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중간에서 갈등중인 상태라 포섭용으로 준 듯.
- ↑ 정식 명칭은 레닌훈장을 세 번 수훈한 V. I. 레닌 명칭 레닌그라드 광학 기계 조합.
- ↑ 후에 정식 명칭은 레닌훈장을 세 번 수훈하고 노동적기훈장을 수훈한 I.A 리하체프 명칭 모스크바 자동차 공장으로 바뀐다. 소련에서는 이렇게 수훈한 훈장을 기관 명에 붙이는 것을 좋아했다.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이라든지 소련 해군이 좋은 예시.
- ↑ 정식 명칭은 레닌훈장을 세 번 수훈하고 10월혁명훈장과 적성훈장과 1급 조국전쟁훈장과 노동적성훈장을 수훈한 S. 오르조니키제 명칭 우랄 중기계 공장
- ↑ 정식 명칭은 체르츠코프의 레닌훈장을 2회 수훈하고 적기훈장과 수보로프훈장과 쿠투조프훈장과 보그단 흐멜리츠키훈장을 수훈한 M. E. 카투코프 기갑 부대 원수 명칭의 제1근위전차연대
- ↑ "나는 여기서 죽더라도, 조국이어 절대 항복하지마라"라는 문구로 유명한 독소선쟁 초반당시 독일을 상대로 항전한 도시
- ↑ 레닌의 출생지, 구 심비르스크
- ↑ 소련 중공업의 상징이다. 이거 만드느라 스탈린이 많은 사람을 갈아넣었다.
- ↑ 리투아니아의 수도
- ↑ 현재의 니즈니 노브고로드
- ↑ 현재의 사마라
- ↑ 레닌훈장은 물론이고 10월혁명훈장, 노동적기훈장을 받았다.
- ↑ 레닌이 다녔던 대학이다!
안 주는게 이상한데그럼 스탈린이 다닌 트빌리시 신학교는? - ↑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이전의 명칭은 레닌훈장을 수훈한 V. I. 레닌 명칭 레닌그라드 지하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