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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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濟煥
1905년 ~ 1995년 3월 23일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이다. 호는 지봉(芝峰)이다.[1] 종교는 원래는 무종교였으나, 1963년에 가톨릭에 귀의하여서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마르코이다. 제12대, 제14대 국회의원박규식의 숙부이다.

1905년 경기도 부평군 옥산면 벌응절리 능골(현 부천시 역곡동)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퇴학되었다. 이후 경성부 휘문고등학교, 일본 도시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도시샤대학 재학 중 신간회 교토지부에서 활동하였다.

귀국하여 조선총독부 관리 채용시험에 합격하고 경기도 산하 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인정식을 도왔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다. 풀려나서도 경기도청, 부천군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에도 경기도청 식량과장으로 근무하다가 자신의 소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 경력이 부끄러워 사임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농지를 기증하여 공립 부천농업중학원(현 부천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부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두 번 다 자유당 장경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무소속이었음에도 1960년 8월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임명되어 부임하였다. 그러나 1961년 5월 5.16 군사정변으로 경질되고 서대문형무소에 두 달 간 수감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시흥군-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옥조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후보에 반기를 들고 윤보선 등과 신민당을 탈당하여 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로는 고향 부천에서 농업에 전념하였다.
  1. 고향인 부천시 역곡동에 그의 호를 딴 '지봉로'라는 도로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