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상시에 먹는 식량
비상금이 일반적인 돈과 다를 바 없듯이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비상식량 역시도 딱히 자격요건은 없으며 다만 긴급한 사태를 대비해 비축해놓으면 무엇이든 비상식량이 된다.
하지만 비상시의 상황은 극단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은/전문적인 비상식량이 되는 조건은 있다. 보존성이 매우 좋아야 하고, 약간의(혹은 아예 없이) 불과 물로 섭취할 수 있어야 하며, 휴대성도 좋아야 한다. 적은 양으로도 살아남는 데 필요한 열량을 전달할 수 있는 고칼로리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비상시에 죽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니 맛이나 섭취시의 편의성은 어느 정도 희생해도 괜찮다. 다만 보관상의 편의성은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습기찬 밀림, 고산지역, 극지방, 해양, 각종 오염된 장소, 늪지대 등 어떤 극한의 환경에서도 비상식량은 변질없이 오래 놔두고 보관하거나 아예 휴대를 하고 다녀야 하는데 보관상의 편의성이 없는 식량은 이렇게 하기엔 영 좋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비상식량은 장기간 공기와 습기를 차단하여 내용물을 보호하는 방수포장이 있는 것이 제일 좋고, 포장 없이 보존하는 계열이라도 장기간 변질없이 보관하다 비상시 쓸 수 있는 강력한 보존성이 있어야 한다. 포장된 비상식량은 개봉한 후에도 장기간 변질 없이 보관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은데 그 이유는 한꺼번에 다 먹지 않고 최대한 아껴가면서 오래 먹을 수 있기 때문.
이러한 이유로 전쟁시에 먹는 전투식량과는 좀 차이점이 있다.
군용 식량에는 주둔시 먹는 식량(garrison ration)과 전투시 먹는 전투식량(combat ration), 그리고 낙오나 파일럿의 추락 등의 비상 상황에 먹는 비상식량(D-ration)의 구분이 있다. 전투식량도 휴대성과 보존성이 필요하지만 휴대성과 보존성을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해도 될 정도는 아니다. 전투식량은 군인들의 유일한 식도락이 될 수 있으므로 되도록 제대로 된 것을 먹이고자 하는 게 군의 방침이다. 반면에 비상식량은 되도록 안 먹을 수 있으면 안 먹는 게 좋은, 하지만 꼭 필요한 극한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다. 미군은 특수부대원이나 파일럿 등이 상시 휴대하는 D-레이션 모델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는데 전투식량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부피와 크기가 작고 보존성이 우수하면서도 비상시에 살아남을 원동력을 준다.
바다에서도 하늘에서도 구조(救助)의 손길은 당신을 찾고 있다. 희망(希望)을 가지고 힘을내자!!1.漂流(표류)한 후 24時間(시간)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體力(체력)은 유지할 수 있다.
2.이 救難食糧(구난식량)을 責任者(책임자)의 指示(지시)에 의하여 1日(일)의 量(양)을 調整(조정)할 수 있다.
3.이 카드의 裏面(이면, 뒷면)에 連絡事項(연락사항)을 記入(기입)하여 테이프로 密封(밀봉)하여 바다에 버리십시오.
데이터 말소?
한자를 못읽어서 희망을 잃었다.
2번 3번 해석 못하면 못살아나는건가?
저 한자들을 알고 있어도 한글이 아니라 읽기 짜증난다.
다만 적은 양으로 고칼로리를 내기 위해 초콜릿, 사탕 등 당류와 염분이 상당량 포함되어 있어서 일상에서 상식하면 비만이나 고혈압이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일단 영양이 우선인 데다가 맛있다고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맛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특히 D-레이션은 한약맛 알사탕, 타이어맛 초콜릿 같은 시식 소감이 일반적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군 군납 초콜릿이 딱 이랬다. 이유는 위에 써 둔 것과 같다. 당시 주문 사항은.. '삶은 감자' 정도로만 맛있게 였다고 한다.
민간인의 경우 군인만큼 보존성 휴대성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냥 일반 식량 중에 오래 비축 가능한 황도나 백도, 참치 같은 통조림을 비상식량으로 쓰거나, 군용 전투식량을 비축하곤 한다. MRE 같은 전투식량 정도만 돼도 민간인에게 보존성, 휴대성, 에너지 면에서 필요충분하고도 남아돈다. 전투식량은 뛰고 걷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폭발적인 칼로리 소모가 이루어지는 군인을 위한 식량이라서 일반인의 일일 권장 소모 열량인 2500kcal[1]를 월등히 뛰어넘는 칼로리를 자랑한다.[2] 그런 이유로 MRE의 민수용으로 나오는 버전은 개당 850kcal 정도로 열량을 훨씬 낮춘 것이 보통. 그래도 맛과 부피 면에서 군용과 다르지 않다. 되려 억지로 섭취 성분을 강화하느라 철분 영양제 넣은 듯한 군용보다 민수용이 조금 더 맛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들은 보편적으로 위기의식이나 생존주의 관련 지식이 다소 부족한 데다 위협에 비해 위기감도 기이할 정도로 둔한 편이다. 그렇다보니 판매하는 제품들도 생존술에 적합한 경우가 드물고 생존술용 제품은 수입 제품이 많아서 쓸데없이 비싸다. Datrex 등의 비상식량 제품은 기본이 몇 만원 단위에서 시작한다.[3] 이는 한국의 지형적 특성에 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자주 닥치는 자연재해라고 해봐야 태풍 정도인데 태풍은 진행경로를 수 일 전부터 미리 알 수 있고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에 중국 남부, 일본 규슈, 오키나와, 타이완이 땜빵해주어 태풍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에 대피나 대비가 가능하고 태풍 자체의 위력도 매미 같은 유달리 강력한 태풍을 제외하면 도시 전체가 개발살 나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에 고립된다는 비상상황 자체를 잘 생각하지 못한다. 반면 예고도 힘들고 도망갈 시간조차 벌기 힘든 허리케인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미국에서는 대피소를 겸하는 지하실로 도망가는 일이 많아서 미리 지하실에 일정량의 통조림과 등유 등 생활필수품을 비축해놓는 일이 많고 관련 교육도 활성화되어 있다.
라면을 비상식량용으로 사재기하곤 하지만 라면은 저장하기엔 간편하나 유통기한이 의외로 매우 짧다. 부피 때문에 저장용으로도 낙제점을 주는 생존주의자도 있다. 게다가 라면은 보통 맵고 짜다. 라면 1개를 스프 다 넣어서 국물까지 다 마시면 나트륨 1일 권장 섭취량의 90~100%를 충당한다. 너구리 순한맛 등 덜 짠 라면도 70%대 정도다.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식수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인데 이런 자극적인 음식들은 갈증을 일으킨다. 만약 불이 없는 상황에서 염분이 많은 스프는 빼고 밍밍하게 끓이거나 생라면만 먹더라도 면 자체가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역시 식수가 없으면 소화 과정에서 갈증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다. 더구나 국물까지 먹기 위해서는 불 또는 조리기구가 필요하고 뒤처리(설거지 등)에도 여러모로 손이 가기 때문에 긴급 상황에서는 좋지 않다. 한마디로 장기보존용 비상식량으로는 부적절한 식품. 다만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의 면은 불을 붙여 연료로 사용가능하고, 스프는 양념으로 사용가능하다
차라리 걷거나 움직이면서도 별도의 조리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부피도 작은 초콜릿이나 사탕, 시리얼바, 육포, 양갱 같은 게 비상식으로 라면보다는 훨씬 유리하다. 설탕 같은 단당류는 같은 부피라면 지방 다음으로 열량이 높고 소화/흡수가 다른 영양소에 비해 월등히 빠르다. 또한 당분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어서 고통을 경감시키고 사기와 생존의지를 키운다. 등산을 가면서 비상식으로 1개당 하루치 열량만큼 나오는 큰 초콜렛이나 사탕봉지 등을 등산 날짜의 수만큼 배낭에 넣고 출발한다는 점을 상기하자. 그리고 과거 나폴레옹 시절의 전쟁들부터 현재까지 설탕은 장병들의 식량 겸 전투력 유지의 목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쟁 발생시 귀중한 물자로 취급되며 배급될 가능성이 높다.
단, 연료와 식수가 적절히 준비되었고 조리할 여유가 있다면 라면도 단기적인 비상식량으로는 나쁘지 않다. 1개월치 정도 쌓아놓고 평소에 먹어가면서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관리하면 된다. 어차피 민간인 입장에서 비상 사태가 1개월 이상 지속되면 그거 자체가 세계멸망급 대이벤트이고 라면이 아니라 통조림이나 전투식량을 비축해놓더라도 별 차이없다. 그리고 라면 1개의 스프에 포함된 소금이 거의 하루치 필요량이기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려 염분을 잃는 상황에선 생존에 도움이 되는 면도 약간은 있다. 추운 날이라면 더운 음식이 체온 유지에도 유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에 사기 유지에 도움이 된다.
지진 재해가 잦은 일본에서는 1가정 3일치 비상식량 세트나 빵 통조림도 파는데, 엄청 잘 팔린다고 한다. 건빵은 물론이고 리츠 크래커 같은 비스킷류도 통조림 포장이 나오고 있다. 또 보존기간이 1년 남은 시점에서 이 비상식량을 구호용으로 돌리는 시스템도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본받을 만한 일이다.[4]
미국제 Datrex, Mainstay 등의 브랜드에서 만든 말라 비틀어진 코코아맛 쿠키 비슷한 패키지형 민수용 비상식량이 있다. 미국에서는 코스트 가드용으로 표류 등의 극한 상황에 대비해 발매되었으며 국내에서도 어렵잖게 구할 수 있는 물건. 패키지당 하루 필요 열량인 2400~3600kcal 정도가 들어있다고 한다.
열량에 비해 크기가 작고 보존성은 3년 이상으로 매우 월등한 것이 장점이지만 사실 그다지 권장할 만한 비상식량은 아니다. 2400kcal 패키지는 2일치, 3600kcal는 3일치라고 판매하고 있으니 실제론 하루 1200kcal, 거의 죽지 않으려고 먹는 수준의 열량밖에 못 준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견디는 거라면 모를까 뛰고 달리고 대피하면서 육체활동을 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에너지다. 사실 Datrex 자체가 표류시 고무보트에 타고 가만히 앉아 떠다니는 상황을 예상하고 운동량을 낮게 잡아 만든 제품이라 게다가 값도 좀 비싸다. 2400kcal 패키지가 2만원, 3600kcal 패키지가 2만 4천원. 맛도 그다지 별로이고 칼로리 숫자에만 눈을 뺏기면 속기 쉬운 게 성분을 보면 밀가루와 코코넛을 설탕, 소금 등으로 반죽해 식물 쇼트닝에 튀긴 것, 즉 쿠키다. 함유 성분이 탄수화물과 쇼트닝 중심이라 매우 불균형한 식량이다. 먹으면 죽지 않고 살 수는 있지만 그다지 건강한 식량도 아니요 힘이 나는 식량도 아닌 것이다. 유일한 장점은 유통기한이 길다는 것 뿐이지만 먹기 좋고 맛도 좋은 에너지 바와 초코바, 육포, 양갱 등을 왕창 사놓고 유통기한 다 되기 전에 조금씩 까먹으면서 새 것 사서 유통기한을 갱신하는 식으로 보존하는 것이 훨씬 만족감도 높고, 맛도 좋고, 힘이 난다. 다른 쿠키랑 비교해보면 할인할땐 1000원정도에 살수있는 오리지널 다이제가 유통기한 1년에 930kcal다.
농담 삼아 애완동물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그밋이라든가... 물론 정말로 다급한 상황에서 먹을 게 아무도 없으면 애완동물이 비상식량이 된 경우가 많긴 하다. 사실 죽은 사람이나 쥐, 벌레까지 먹는 판국에 애완동물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다. 프랑스 파리 코뮌 시절 포위된 파리에서 먹을 게 바닥난 파리 시민들이 개나 고양이는 물론 동물원 코끼리를 비롯하여 파리 시내에서 쥐조차 보이질 않을 정도로 잡아먹었다든지 독소전쟁 당시 러시아 곳곳에서 먹을 게 없어지자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진 근현대 일화[5]가 그렇고(레닌그라드 공방전 같은 경우에는 식인에 대한 증언도 나온다) 공성전에서 포위된 성에서 먹을 게 바닥나자 애완동물부터 먹은 것도 허다하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대가 '실수'로 대량의 투시 롤을 보급받은 적이 있는데, 새옹지마인지 혹한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던 미 해병대에게 좋은 비상식량이 된 일화가 있다. 왜 '실수'인지는 투시 롤과 장진호 전투 항목을 참조.
엑셀 사가에 등장하는 애완견 멘치도 일단은 비상식량이다.
2 유희왕의 마법 카드
비상식량(유희왕) 항목 참조.- ↑ 사실 앉아서 사무 업무 보는 사람은 이것마저도 남는 편이다.
- ↑ 군용 MRE 하나에 1200kcal 정도. 세 끼를 먹으면 하루 3600kcal 정도를 섭취하게 된다.
- ↑ 비상식량은 아니지만 자가충전되는 비상용 라디오의 상황도 매한가지라 국내 오픈마켓에 가봐도 몇몇 수입 제품들이 보일 뿐이고 이마저도 판매량이 적은 편이다.
- ↑ 다만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특전식량의 경우 보관하다가 유통기한이 되면 장병들의 훈련용으로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비상식량답게 맛이 별로인 데다 소화까지 잘 안 되어서 개선이 필요하기는 하다.
- ↑ <식인문화의 수수께끼>란 책자에서 언급되는데 독소전쟁 당시 러시아 한 도시가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먹을 게 끊겨지자 어느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개를 잡아먹고 슬퍼하던 걸 이웃들이 그저 위로했다든지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그 상황에 애완동물을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개를 10마리 이상 키우며 끔찍히 아끼던 당 간부도 결국 개들을 하나하나 잡아먹어야 했다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