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바 카즈시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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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zushi "The Gracie Hunter" Sakuraba

여러분, 프로레슬러는 정말로 강합니다.[1]

히카르도 아로나: 재밌네. 계속해봐

프로레슬러,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국적일본
종합격투기 전적46전 26승 17패 1무 2무효
4KO, 19서브미션, 3판정
10KO, 3서브미션, 4판정
생년월일1969년 7월 14일 [2]
신장 / 체중180cm / 87kg [3]
링네임"그레이시 헌터" "IQ레슬러"
주요 타이틀UFC 15.5 Japan 토너먼트 우승

桜庭 和志. 현대 종합격투기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MMA를 지금과 같은 인기 스포츠의 자리에 올려놓은 사람 중 하나이다. 또한 이종격투기에서 종합격투기로의 진화를 목격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관련항목 : UFC 역대 챔피언

1 전적

  • 무승부 : 알란 고에스

1.1 UFC 토너먼트 & PRIDE 데뷔

프로레슬링의 광팬으로 타이거 마스크를 동경하며 성장한 사쿠라바는 대학에서도 아마추어 레슬링을 전공했을 정도로 레슬링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타카다 노부히코의 UWF 인터내셔널에 들어갔지만 정작 프로레슬러로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쿠라바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타카다는 사쿠라바를 거의 먹여살리다 싶이 할 정도로 총애했고, 자신이 소유한 도장의 무에타이 코치, 레슬링 코치들에게 지시하여 사쿠라바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킨다.[4]

당시 일본의 프로레슬링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이외에도 실전지향의 격투기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카다 노부히코와 안조 요지가 힉슨 그레이시에게 패하는 등 격투기 무대에서는 연전연패에 빠져 있었다. 특히 ''를 숭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유술, 유도, 가라테 등 각종 무술의 종주국으로 자부심이 높았던 일본이 정작 이종격투기 무대에서는 월등한 체격을 가진 서구인들에게 연패하며 침울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 열린 UFC 토너먼트에서 사쿠라바가 우승을 얻어낸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시상식에서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길이 남을 감동을 안겨주었다. "여러분, 프로레슬러는 정말로 강합니다."[5]

UFC 토너먼트가 끝난 후 스승인 다카다가 창설한 종합격투기 단체인 PRIDE에서 격투기 선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스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1998년 6월 PRIDE 3에서 UFC 2대 웰터급 챔피언인 카를로스 뉴턴을 니바로 잡아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1999년 4월에는 UFC 12 토너먼트 우승자인 '머신 건' 비토 벨포트를 상대로 이기면서 PRIDE를 단숨에 인기단체로 끌어올렸다. 다만 비토는 본인 스타일답게 경기 초반 맹렬한 강공으로 사쿠라바를 압도했지만 그 이후 주먹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난 후 펀치머신건 답지않게 그냥 드러눕고 시간만 끌정도로 소극적인 플레이 끝에 판정패한다. 근데 사실 경기속행이 불가능한 부상은 반칙성 플레이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 대부분 TKO패가 선언된다,

1.2 그레이시 헌팅

당시 그레이시 일족은 이종격투기계의 절대강자였다. 발리투도 석권에 이어 UFC 토너먼트[6]1회, 2회, 4회를 호이스 그레이시가 연달아 재패하며 자타공인의 최강자의 위치에 올랐다.

이 그레이시 가문에 사쿠라바는 도전장을 던졌다. 1999년 11월 PRIDE 8의 첫 상대는 호일러 그레이시. 173cm 69kg의 경량급 선수였지만 ADCC에서 수차례 수상경력이 있는 강적이었다. 사쿠라바는 체격의 우위를 이용해 호일러를 몰아붙였고 기무라를 성공시키며 승리했다. 호일러는 팔이 완전히 꺾인 상황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나 심판이 TKO를 선언하여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그레이시 쪽에서 '호일러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도 심판이 부당하게 패배를 선언했다.'라는 항의가 있었다. 그레이시 변명의 시작

2000년 5월 PRIDE 2000 그랑프리에서 드디어 UFC 3관왕인 호이스 그레이시와의 결전을 가진다. 여기서 호이스는 '무제한 라운드' 룰을 적용해 줄 것을 제의했다. 1라운드 15분으로 승부가 날 때까지 싸우는 무제한 라운드는 판정을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의 페이스대로 싸울 수 있는 실전지향의 그레이시 주짓때로들이 선호하는 룰이었다. 이에 "2박 3일이라도 싸우겠습니다"며 답한 사쿠라바는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진 싸움에서 변칙적이고 기상천외한 움직임으로 호이스를 괴롭혔다. 결국 호이스의 세컨이 타월을 던지며 경기는 사쿠라바의 TKO 승으로 끝났고 이때부터 그에게는 세계 최강의 그레이시 일족을 제압한 '그레이시 헌터'라는 칭호가 따라다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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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장 90분에 걸친 사투로 체력을 소모하여 준결승에서 만난 '아이스 콜드' 이고르 보브찬친에게 패하고 만다. 시합이 연장에 돌입하자 사쿠라바측의 세컨이 타월을 던진 것. 보브찬친도 이 시합에서 체력을 소진한 끝에 결국 결승에서 '해머' 마크 콜먼에게 패배하고 만다.

2000년 8월에서 헨조 그레이시를 맞아 2라운드 기무라승을 거둔다. 이 경기에서 보여준 기무라 록이 환상적이었기에 일본의 팬들이 이 경기에서 나온 기무라에 "사쿠라바 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2000년 10월 PRIDE 11에서 킹 오브 자버 쉐논 리치를 상대로 1라운드 힐훅 승리를 거두었다.

2000년 12월 PRIDE 12에서는 하이안 그레이시마저 판정으로 꺾으며 그레이시 헌터의 명성을 세계에 과시했다. 하이안의 어깨 부상 때문에 1라운드만 치르는 특별 룰로 펼쳐졌던 경기였는데, 여기서 하이언은 4점 포지션에서 사쿠라바에게 엉덩이를 맞는 굴욕(...)을 당했다.

1.3 그레이시 헌터, 도끼 살인마를 만나다.

하지만 2001년 3월 PRIDE 13에서 사쿠라바는 자신의 천적과 마주하게 된다. 브라질 슈트박세 아카데미의 '도끼 살인마' 반더레이 실바와의 첫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탄탄하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레이시 주짓떼로들과는 달리 실바는 전신이 근육으로 뒤덮힌 90kg을 훌쩍 넘는 거구의 스트라이커였다. 초반 사쿠라바의 라이트 훅이 적중했지만 놀랍게도 실바는 곧바로 일어나 회복해버렸다. 빰 클린치에서의 니킥에 이어 붕붕훅 원투가 들어갔고 사커볼 킥과 4점 니킥이 퍼부어지며 사쿠라바는 피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쿠라바의 TKO패는 일본 격투계에 경악으로 다가왔다.

2001년 7월에는 훗날 UFC 라이트헤비급을 석권할 '람페이지' 퀸튼 잭슨과도 대결하게 된다. 실바를 웃도는 파워를 가진 람페이지는 사쿠라바가 하위에서 걸어오는 서브미션을 모두 슬램으로 깨버리며 장중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결국 5분만에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승리를 따냈으나 퀸튼이 보여준 힘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는 워크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PRIDE 해체 이후 퀸튼으로부터 "서브미션으로 져 달라는 오퍼가 있었다."는 폭로가 있었다. 이어 오퍼를 거절했다고도 덧붙였으나 하필이면 정말로 서브미션으로 져 버렸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판정 자체는 사쿠라바의 서브미션 승리였다.

2001년 11월 다시 반더레이 실바를 상대로 2차전을 가졌다. 이 경기는 PRIDE 미들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이기도 했다. 경기 초반 팽팽한 접전 중 사쿠라바가 길로틴 그립을 완성시켰으나 실바는 그대로 사쿠라바를 들어올려 링바닥에 메다 꽂아버렸다. 이 슬램으로 사쿠라바의 어깨가 탈골되며 결국 2번째 대결도 패배로 끝나고 만다.[7]

2002년 8월에는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로 시합을 가졌다. 실바에게 농락당했던 크로캅 [8]이라면 사쿠라바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최측의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크로캅은 실바 이상의 피지컬을 가진 선수였다. 비록 당시에는 종합격투기선수로서의 완성도는 아직 높지 않았으나 수준급의 타격과 파워를 가지고 있었던 크로캅은 스탠딩을 압도하며 그라운드에서도 사쿠라바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경기 도중 사쿠라바의 얻어맞고 오른쪽 눈 언저리가 크게 부어올라 더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사쿠라바의 TKO패가 선언되었다.

2003년 8월 실바와의 3차전을 가졌는데, 경기 초반 실바의 타격에 맞서 타격으로 맞불을 놓는 무리한 작전을 들고 나왔으나 래그킥에 카운터 원투를 얻어맞고 그대로 실신하며 리벤지에 실패했다. 3:0.

2003년 11월에는 '몬스터' 케빈 랜들맨에게 암바승을 거두기도 했으나 2003년 12월 '미노토로'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를 상대로 경기 내내 압도당하면서 또 다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2005년 6월의 PRIDE 미들급 그랑프리 1차전에서 윤동식에게 승리를 얻어낸 사쿠라바는 이어 '브라질리안 타이거' 히카르도 아로나를 상대로 8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주최측으로서는 주짓떼로인 아로나를 보며 그레이시를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아로나의 주짓수는 그레이시와는 전혀 다른 근육질의 육체와 동급최강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 힘에서 눌린 사쿠라바는 기술을 펴 보지도 못한 채 4점 니킥에 난타당하며 패배하고 말았다. 이 때 사쿠라바의 얼굴은 원래 생김새를 알아볼 수도 없이 퉁퉁 부어올라서 심히 처참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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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 사진이 덜 잔인하게 나온거다. 경기 직후 사진을 보면 그냥 말그대로 피칠갑

아로나전을 마지막으로 사쿠라바는 탑텐더들과의 경기를 갖지 않게 된다. 전성기를 한참 지난 켄 샴락, 한 수 아래의 미노와 이쿠히사 등을 상대로 경기를 가졌다.

1.4 K-1

K-1으로 무대를 옮긴 사쿠라바는 2006년 8월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토너먼트에서 케스투티스 스미르노바스와 대결했다. 상대의 타격에 고전하던 중 역전 암바를 성공시키며 승리한다. 하지만 거의 실신 상태에서 레프리가 스탑선언을 하고 링 중앙에서 시합을 재개시켰기 때문에 선수보호, 편파논란이 일었다. 데미지의 누적으로 다음 대전상대인 추성훈과의 대전이 취소되고 패배한 스미르노바스가 올라가게 되었다. 결국 추성훈이 스미르노바스를 쓰러뜨리고 우승했다. 이 경기에서사쿠라바는 총 80대를 맞았다고 한다. 흠좀무...

2006년 12월 31일 추성훈과 경기를 갖게 된다. 사쿠라바는 경기 중 추성훈의 몸이 미끄럽다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라운드 5분 37초만에 KO패를 당했다. 하지만 경기 후 크림 도포가 사실로 판명되면서 이 시합은 무효처리된다. 추성훈은 공개사과를 했고 대전료를 삭감당했다. 아, 이 경기에선 총 130대(!!)를 맞았다고 카더라.[10] 단 두 경기만에 200대 가까이 맞은 사나이

이후 고만고만한 선수들을 상대하며 승수를 쌓다가 2007년 6월 호이스 그레이시와 재대결을 가졌다. 41세가 된 호이스와 38세의 사쿠라바의 대결은 주최측이 어필했던 '전설들의 재대결'이라기보다는 다소 루즈한 전개 끝에 호이스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리벤지를 축하하기에는 호이스도 사쿠라바도 너무 노쇠한 뒤였다. 그러나 승자인 호이스가 약물이 적발되었다.(하지만 무효처리는 되지않았다.)

2008년까지 3연승을 이어갔으나 2008년 6월 멜빈 만호프에게 난타당하며 1분 30초의 초살 KO패를 당했다. 이어 과거의 라이벌이었던 타무라 키요시에게도 판정패하는 등 갈수록 기량이 예전같지 않아지고 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듯.

2009년 10월 6일 로빈 윌리엄스를 상대로 기무라 승을 거두었다.

2009년 10월 25[11]일에는 '벤케이' 젤그 갈레시치에게 그라운드에서 백을 내준 채 파운딩 수십대를 맞았으나 니바를 성공시켜 역전승리를 거두었다.

2010년 5월 29일 드림 14에서 할렉 그레이시에게 판정패했다. 할렉은 UFC를 탄생시킨 호리온의 아들로 호이스, 호일러에게는 조카다. '사쿠라바 vs 그레이시'라는 자못 의미심장한 대전이었지만 정말로 그냥 의미만 있는 대전이었다. MMA 전적 2전뿐인 할렉이 상대였지만 전성기를 훌쩍 넘겨버린 사쿠라바는 너무 무기력했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두 차례 기습적인 기무라로 할렉을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마운트를 허용하는 등 포지션 싸움에서 패했기에 판정패.

2010년 9월 25일 드림 16에서 "메이헴" 제이슨 밀러와 대결하여 1라운드 2분 9초만에 암트라이앵글 초크에 패배했다. 데뷔전 이후 첫 서브미션 패배. 은퇴만이 살 길인 듯.


이후 웰터급으로 전향이라는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2010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에서 드림 웰터급 챔피언 마리우스 자롬스키의 타이틀에 도전했다. 팬들은 그저 사쿠라바가 무사히 링 밖으로 걸어나오기만을 바랬으나, 팬들의 바람을 져버리고 타격전에서 완벽히 밀리며 가 떨어져 나가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경기는 닥터스톱으로 KO패.

2012년 9월 24일 드림 17에서 노바 유니온 소속의 주짓떼로 얀 카브랄과 붙어 경기 내내 끌려다니며 2라운드만에 암트라이앵글 초크로 패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종합격투기 경기를 뛰고 있지 않다. 더불어 2012월 12월 1일부로 자신의 도장인 래프터 7까지 폐쇄한걸 보면 더이상 MMA 경기는 뛰지 않고 다시 프로레슬링으로 돌아간 듯 했지만 2012년 12월 31일 DREAM 18 대회 중간에 링에 올라와서 '내년에 다시 경기를 뛸 것 같습니다. 응원해 주세요.'라는 마이크 어필을 한 걸 보면 아직 은퇴는 하지 않은 듯.
허나 이후 약 3년동안 경기를 갖지 않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프로레슬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고, 드림 파산 이후 일본에 사쿠라바의 네임벨류를 감당할만한 단체가 사실상 거의 없는 상황이라 MMA 복귀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1.5 Rizin FF

2015년 12월 29일 Rizin FF 월드 그랑프리에서 아오키 신야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며 졌다. 이제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는 듯 했으나 2016년 4월에 열리는 Rizin FF 1 대회에서 히데오 토코로와 팀을 이루어 반달레이 실바와 그의 파트너를 상대로 그래플링 태그팀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2 파이팅 스타일

서브미션의 스페셜리스트로 독창적이고 지능적인 그래플링을 펼치며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다. 초저공 태클, 슬라이딩 킥, 해머링을 시도하는가 하면 빠르고 정확한 태클로 거구의 파이터들을 넘어뜨린 후 어느새 정교한 서브미션 그립을 완성시킨다. 특히 호이스와의 1차전에서는 그레이시 주짓떼로들의 무기와도 같던 유술도복을 거꾸로 이용하며 호이스를 당황시켰다. 'IQ 레슬러'라는 별명은 이러한 창의적인 플레이에서 기인한 것. '기술'로 '힘'을 능가한 선수로 유명하다.

약점은 체격이 작고 파워가 부족한 것. 183cm에 87kg의 체격은 수치상으로도 반더레이 실바, 히카르도 아로나에 비해 피지컬이 떨어진다. 골격이 전형적인 동양인 형태의 몸이기 때문에 더욱 불리하다. 게다가 웨이트를 싫어한다. (전형적인 '게으른 천재' 타입이다.) 파워에서 눌리기 때문에 뛰어난 그라운드 테크닉을 갖고 있음에도 하위 포지션에 몰리면 무력하게 패하는 경우가 있다. 기술로 힘을 능가했지만 힘을 가진 선수들이 똑같이 기술을 향상시키자 타고난 신체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스탠딩 타격이 부족한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스탠딩에서도 특유의 변칙 복싱을 구사하는데, 펀치의 궤도가 매우 특이한 것은 장점이지만 파괴력이 약하고 핸드 스피드가 느려 정통파 스트라이커들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불리했다. 스탠딩 타격에서 압도당한 좋은 예가 반다레이 실바전이며, 실질적으로 한물 간 상태였을 때 만난 멜빈과의 대결에서도 비참한 수준의 복싱 스킬로 인해 일방적으로 구타당했다.

그리고 사쿠라바의 치명적인 약점은...귀가 너무도 잘 찢어진다는 거다. 이건 레슬링 & 유도를 하는 선수들이나 선수출신들이 만두귀가 되는 특성이 있긴 한데 사쿠라바의 경우는 심할정도의 만두귀에다 피부가 아주 약해서 귀가 끔찍할 정도로 찢어져 떨어져 나갈 지경에 이른 경우가 몆번이나 있었다. 프라이드 시절에도 이런점 때문에 귀쪽에 보호대를 한적도 있을정도...마리우스 자롬스키전에서 패배후 하마터면 귀가 괴사할 뻔했다고...

2.1 이종격투기종합격투기

사쿠라바는 이종격투기의 끝자락에 걸친 세대로 보는 것이 옳다. 발리투도의 이종격투기에서 프랭크 샴락의 프로토타입을 거쳐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BJ 펜, 조르쥬 생 피에르로 진화하는 종합격투기의 흐름의 마지막을 지켜본 파이터가 바로 사쿠라바 카즈시이다.

그레이시 가문은 브라질리안 주짓수 만능론에 입각하여 그래플링을 극한의 정수까지 발전시킨 일족이었고 이에 대응하는 사쿠라바도 레슬링 베이스의 그래플러였다. 하지만 실바, 크로캅, 호제리오 노게이라는 타격과 그래플링을 조율하며 유기적인 시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한 수 위의 신체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PRIDE 2005 그랑프리를 기점으로 마우리시오 쇼군, 퀸튼 잭슨 등이 이러한 흐름에 합류했다. 어느 한가지 격투기로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이종격투기의 시대가 지나고 만능형 선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종합격투기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그래플링에 극히 치중하는 사쿠라바의 스타일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사쿠라바도 슈트박세에서 합동훈련을 하는 등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3 기타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스타가 아닌 영웅의 영역. 이는 그의 기량이 하락세에 접어든 지금에도 유효하다. 이 인기가 어느정도냐면 사쿠라바가 K-1 Hero's로 이적했을 당시 원래 히어로즈 라운드 타임이 전라운드 5분 였는데 사쿠라바를 배려하기 위해 프라이드와 똑같이 라운드 타임을 1라운드 10분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것도 사쿠라바가 활동하는 -83kg급에만 한정해서.

다만 PRIDE의 고향인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에서는 "프라이드를 배신했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야유도 환호도 없는 메우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

2006년 이후로 괄목할만한 활약은 보이지 못하고 있으나 MMA의 전설로서 예우를 받고 있다. 이는 일본 뿐 아니라 북미의 팬들도 마찬가지인데, 일례로 DREAM 16에서 상대한 제이슨 밀러가 '사쿠라바에게 승리해서 그의 자리를 이어받고 싶다'라는 의견을 밝혔을 때 미국 팬들의 답은 '그를 이기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었다.

입장, 인터뷰시 독특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리오[12], 리전 오브 둠의 코스프레를 하거나 타이거 마스크,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아로나와의 기자회견장에서는 몸매에 관한 말을 듣고 사인펜으로 몸에 근육을 그려넣기도 했다[13]. 이래저래 관객을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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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같은 성격으로 호기심이 많고 재치가 넘친다. 머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학 문제 풀기'가 취미라고 한다.

레슬링의 광팬으로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다카다 노부히코의 UWF에 입단했다. 다카다는 사쿠라바의 레슬링 스승으로 자주 사쿠라바의 세컨을 봐주었다. 총괄본부장과 흥행스타로서 PRIDE를 견인해 온 각별한 사이였으나 2006년 K-1으로 이적할 때 완전히 틀어져 버린 듯.더불어 일본의 프빠들도 그를 떠났다
사쿠라바는 원래 다카다를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 언급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나, 프라이드에서 활동하면서 다카다의 독단적인 운영방식에 불만을 품게 된다. 모 일본 격투기잡지에 실린 일화를 보면 다카다 계열의 선수들의 회식자리에서 사쿠라바는 자신의 은퇴한 선배들을 잘 챙기지 못한다며 다카다에게 항의한다.[14] 다카다가 자기 행동에 토달지 말라고 일축하자 이에 격분한 사쿠라바가 거칠게 항의하면서 회식을 엎어버린 적도 있다. 또한 사쿠라바의 부인이 '요시다는 도장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데, 공헌도가 높은 당신은 어째서 하나도 없어요?'하고 부추긴 것도 사쿠라바와 타카다가 결별한 또다른 요인 중 하나이다. [15]

PRIDE 2005 그랑프리에서 윤동식 선수에게 참패를 안겨준 선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윤동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며 MMA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퀸튼과의 시합에서 세컨을 봐주기도 했고 PRIDE가 도산한 후 윤동식이 K-1 히어로즈에 진출할 수 있도록 손을 써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성기가 지난지 오래고 기량도 하락해서 안습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2010년이 되어서도 계속 현역으로 뛰고 있다. 아마도 DREAM의 빈약한 중량급이 그 원인인 듯 하다. 쓸만한 놈들은 죄다 미국으로 가버리는 것이 현실이니.

2015년 12월 29일에 DREAM의 계보를 이어서 새로이 출범한 종합격투기 단체 RIZIN의 첫 대회에 메인이벤트로 출전하여 아오키 신야와 대전하였는데, 경기내내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전혀 손도 못써보고 1라운드에 기권패했다. 일방적으로 파운딩 당하고 있었음에도 심판의 스톱도 없었고 사쿠라바측의 세컨드도 타올을 던질 생각을 안하는 바람에 때리고 있는 아오키가 사쿠라바측의 세컨드와 심판에게 "빨리 타올 던져!" "움직이질 않는다구요!"라고 호소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결국 사쿠라바의 얼굴이 완전 피떡이 되고난 후에야 겨우 타올을 던져서 TKO로 시합이 종료되었다. 시합이 끝난 후에 아오키는 사쿠라바측 세컨드에 왜 빨리 타올을 던지지 않았냐며 강력하게 항의하고는 쓰러진 사쿠라바를 끌어안고 눈물까지 흘렸다. 결국 사쿠라바는 시합후 인터뷰도 못한 채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고, 아오키는 이렇게 불쾌했던 승리는 처음이라며 흥행을 위해서 선수 보호는 뒷전으로 미루는 주최측이나 세컨드측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EA 스포츠 UFC 2에서 레전드 로스터로 등록되었다.

3.1 레이드

워낙 일본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선수라서 그를 쓰러뜨린 선수는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도 한다.

PRIDE 13에서 반더레이 실바가 사쿠라바를 쓰러뜨리자 슈트박세는 순식간에 브라질의 악마소굴이 되었고 최종보스 실바에 대한 일본인 파이터들의 일대 레이드가 시작된다. 일본의 차기 에이스인 타무라 키요시, 곤도 유키, 요시다 히데히코, 나카무라 카즈히로 등이 나섰으나 막넴이 공대파괴자급인지 모두 전멸해 버렸다. 심지어는 헤비급의 후지타 카츠유키마저도. 안타까운 사실은 이들의 노력이 실바 입장에서는 떡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 오히려 일본인 파이터들을 상대로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수년간 PRIDE 타이틀과 셔독 랭킹 1위를 독식하게 된다.

두번째 레이드는 로션 파동의 추성훈. 다만 얘는 난이도가 낮아서 금방 잡혔다. 야렌노카에서 미사키 카즈오에게 떡실신당하며 정리되는가 했더니 미사키의 사커킥 반칙으로 무효가 되면서 버그성 플레이로 인해 초기화되었다. 이후 시바타 카츠요리와 토노오카 마사노리가 트라이했지만 1페이즈에 전멸.

3.2 의혹

PRIDE에서 WWE존 시나 마냥 거의 원톱으로 밀어주던 선수이다보니 워크, 판정 의혹도 많고 어드밴티지도 많이 받았다.

비토전에서는 비토가 부상을 어필하지도 않고 요상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바람에 워크 의혹이 있었다. 퀸튼은 아예 스스로 오퍼가 있었다고 폭로해 왔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3명 다 쓰레기인 셈. 퀸튼은 오퍼를 거절했다고도 말했지만 하필 경기결과가 의뢰한 내용대로 흘러갔기 때문에 의혹을 피할 수 없었다.근데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잊혀져서...

메츠거와의 시합에서는 세컨인 켄 샴락이 연장전을 거부한 채 선수를 데리고 링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몰수승을 얻기도 했다. 메츠거는 원래 연장이 없는 계약을 했는데 PRIDE 측이 연장을 요구해 왔고 이를 거부하자 게임을 몰수당했다. 메츠거가 우세한 경기였기 때문에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16]

켄 샴락과의 경기는 레프리가 지나치게 빨리 말려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은 샴락의 다리가 완전히 풀려 있었고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이 링 밖에 나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경기포기 의사라고 판단한 것. 한데 샴락이 그대로 벌떡 일어나 항의를 했기 때문에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스미르노바스전은 선수보호 차원에서라도 사쿠라바의 TKO패로 끝내야 했었다는 의견이 많다. '스탑 돈 무브'가 선언되면서 시간을 벌어준 탓에 경기는 승리할 수 있었으나 다음 경기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았기 때문에 결국 그랑프리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 후유증도 의외로 심각해서 이후 연습 중 구토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이것은 일본 단체 및 선수들의 성향을 따져봐야 할 문제인데, 일본 단체에서는 TKO 선언이 비교적 늦은 편이고 선수들도 탭을 잘 치지 않는다. 프로레슬링이 원류인 일본 격투계에서는 근성 넘치는 진짜 남자라며 선호하지만 선수보호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사실 시마다 유지 같은 레프리들 보면 사망자 안 나온게 대단하게 보일 정도다

3.3 프로레슬러

그의 경력 중 프로레슬링 경력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UWF는 프로레슬링 단체이긴 했지만 실전적인 관절기와 타격기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형태의 프로레슬링이었으며, 이른바 "U계"라고 불리우는 이 단체는 잠깐 인기를 얻었지만 곧 시들해지고 만다. UWF 출신의 유명 레슬러 및 격투가로는 대표로 있었던 타카다 노부히코 외에도 사쿠라바, 타카야마 요시히로 등이 있다. 이러한 U계와 정통 프로레슬링계의 대립을 그린 만화로 원,투의 산시로(정발명 다 덤벼)가 있다.

어쨌든 레슬러로서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일단 체구도 작은 편이고, 타카다 등의 단체의 얼굴마담을 보면 굉장히 잘생겼기 때문에 본인의 임팩트가 너무 약한 측면이 있었다. 심지어 프로레슬링 시절에는 가면 레슬러로 활동한 적도 있을 정도. 그래도 U계 레슬러로서의 상징성과, 무엇보다 미국식 엔터테인먼트보다 격투기로서의 요소가 강조된 일본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있어 실전 격투기라는 무대에서 프로레슬링을 우습게 만들지 않는, 의지가 되는 존재 였기에 레슬링게의 레전드 중 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프라이드 링 위에서도 프로레슬링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실 기기묘묘한 하체 관절기 등은 U계의 혈통인 UWF나 슈토 출신의 레슬러들의 전매 특허라고 할 수 있으며, 사쿠라바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마운트 포지션에서의 몽골리안 춉을 사용하기도 했다. ...맥시마의 그 몽골리안 맞다.

사실 그가 최고의 스타가 된 것은 그레이시 가문을 연전연파한 것도 있지만, 안토니오 이노키라는 걸물의 존재로 인해 프로레슬링의 강함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자극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이 경우 재미있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와 일본화된 유파(프로레슬링) vs 일본에서 건너가 외국화된 유파(그레이시 유술)이라는 기묘한 대립 구도가 성립되게 된다. 사쿠라바와 그레이시 가문의 대립의 저변에는 이러한 독특한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2012년 이후부터는 일본 격투계가 영 분위기가 식은지라 프로레슬링도 겸하고 있는데[17] 2013년 1월 4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IWGP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전에서 챔피언인 나카무라 신스케에 도전했으나 분전 끝에 나카무라의 필살기 보마예에 맞고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나카무라 신스케는 일본 선수답지 않게 상당히 개성적인 기믹의 소유자이고 단체에서 밀어주는 스타고, 사쿠라바 카즈시도 거물이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관심이 쏠렸었는데, 나카무라가 결국 승리했지만 경기는 메인 이벤트 못지않게 훌륭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종합격투기의 그래플링을 프로레슬링에 맞게 어레인지하여 화려하게 연계하는 감각은 전업 프로레슬러 못지않았다.

이후로도 사쿠라바 카즈시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꾸준히 참전하기로 결정, 2014년 같은 격투가 출신인 스즈키 미노루와 대립하면서 2015년 1월 신일본 최대의 흥행인 레슬킹덤 Ⅸ에서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스즈키 미노루의 슬리퍼 홀드에 걸려 레프리 스톱 패배.

프로레슬러로서 사쿠라바는 팬들 사이에서 심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스트롱 스타일'을 주창하며 다른 격투기에 관대한 편이지만, 아무래도 사쿠라바의 'U계' 스타일은 정통 프로레슬링 팬들 시각에선 외도이기 때문. 즉 '하라는 프로레슬링은 안하고 혼자 격투기를 하고 있다'고 반감을 사는 측면이 있다.

2015년 현재는 악역 군단 CHAOS의 멤버로서 주로 활동하는 중이며 야노 토오루와 함께 태그팀으로 주로 나온다. 야노 특유의 악역 플레이나 롤업등을 배워 써먹는걸 보면 과거 격투가로서의 모습과는 상당한 갭이 느껴지기도(...) 이외에도 인디 단체 DDT에 출장하여 개그성 짙은 시합을 소화하는 등 풀타임 프로레슬러로 굳어진 모양새.
  1. UFC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후
  2. 우연히도 빌리 헤링턴과 생년월일이 같다
  3. 전성기시절 몸무게..대부분 84~88kg 사이를 왔다갔다했지만 반델레이와의 3차전과 아로나전패배뒤 슈트복세 전지훈련이후로는 의도적으로 93kg까지 불려서 나온적도 있긴하다.
  4. 이때 사쿠라바와 타카다 간에는 신뢰가 높아 둘 사이엔 계약서조차 없을 정도였다. 타카다가 지시하면 지시하는 대로 사쿠라바가 묵묵히 싸우는 형태였다.
  5. 마커스와의 결승에서 초저공 태클을 했는데 이를 다운으로 착각한 레프리가 KO를 선언했다. 사쿠라바 측의 항의로 해당시합은 무효가 되었고 바로 재시합에 들어가 승리했다.
  6. 1997년 이전의 UFC는 토너먼트 위주로 진행되었다. 즉 토너먼트 우승자가 챔피언.
  7. 이때가 실질적으로 사쿠라바의 전성기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사쿠라바는 패배와 떡밥들과 의승리를 오고 가게 된다
  8. 농락당했다기엔 크로캅의 번개같은 미들킥시전으로 반델레이 옆구리에 남은 선명한 피멍의 압박이 너무크다..또한 5라운드까지 승부가 안나면 무승부로 하기로한 룰때문에 결과로는 무승부였다. 경기종료후 크로캅이 반델레이의 인사를 의도적으로 씹은건 비밀
  9. 보통 선수였다면 진작 TKO판정이 났겠지만 사쿠라바라면 혹시...라는 생각에 심판이 선뜻 개입하지 못했다. 덕분에 사쿠라바는 제대로 방어도 못하고 몇분동안 4점 니킥에 처참하게 난타를 당했다.
  10. 또한 이날 경기를 말리지 않고, 크림 도포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레프리는 2ch 유저들에게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11. 경기 텀이 매우 짧은데, 그 이유는 이 경기가 대타로 뛴 경기였기 때문.
  12. BGM까지 입장곡으로 재현했다!. 그리고 그 복장을 하고 붙은 상대가 케빈 랜들맨. 게임과 내용도 똑같았다
  13. 다만 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거기에 하나를 더 했다. 바로 근육맨.
  14. 사쿠라바와 친한 한 격투기선배는 은퇴후 다카다의 주선으로 음식점 견습요리사로 취직했는데, 사쿠라바는 이 선배에 대한 다카다의 예우가 충분치 못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15. 사쿠라바의 처가 고용한 타카다 도장의 스탭을 타카다의 처가 해고해버리면서 사쿠라바의 처가 타카다 측에 앙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16. 차후에 PRIDE측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미숙을 들어 사죄를 했다.
  17. 프로레슬링은 부시로드 체제의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중흥을 맞이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인지 사쿠라바도 신일본 출신의 격투가이자 신 투혼 삼총사로 알려진 시바타 카츠요리와 함께 태그를 맺고 참전하였다.